이대로 가다간 소아환자를 치료해줄 종합병원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쇼킹한 뉴스가 나오고 있다. 밤늦은 시간에 갓난아이가 아파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아본 부모들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것이다.
최근 전국 수련병원(대학병원) 69곳에서 내년 전반기 소아과 전공의(레지던트)를 모집한 결과, 대구·경북을 포함해 영남권 병원에서는 한 명의 의사도 지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수련의가 지원한 병원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11곳에 불과하며, 정원을 채운 곳은 서울아산병원과 강북삼성병원 2곳뿐이다. 정부가 지난해 소아과 전공의를 4년제에서 3년제로 단축하는 극약 처방을 단행했지만, ‘백약이 무효’임이 드러났다.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수련병원 중에서 당장 내년 2월 4년차 소아과 수련의들이 나가고 나면, 소아과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병원이 속출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상당수 대학병원에서는 소아과 전공의가 모자라 교수들이 당직을 나눠 하고 있는데 내년 2월에 4년차 전공의들이 빠져나가고 나면 대구·경북을 포함해 대부분 대학병원이 소아의료 공백 상태를 맞이하게 된다.
대구·경북 수련병원(5곳)의 경우도 현재 1~3년차 전공의 충족률이 정원대비 8%밖에 되지 않는다. 이대로 가면 전국 대부분 대학병원의 야간 소아 응급진료가 불가능한 상태로 치달을 수 있다. 최근 인천지역 상급종합병원인 가천대 길병원이 소아과 입원을 중단한 것도 밤에 환자를 돌볼 레지던트가 없기 때문이다.
전공의들이 소아과를 기피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낮은 의료보험 수가(酬價) 때문이다. 소아과는 특히 모든 진료가 보험에 적용돼 환자를 어지간히 많이 보지 않고선 병원으로선 적자운영을 벗어나기 어렵다. 소아들은 수술과정이 힘들지만 어른과 수가가 똑같고, 약물투여나 검사비도 적게 나와 수입이 다른 진료과목에 비해선 적을 수밖에 없다.
저출산도 소아과 기피 주요 원인이다. 최근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초혼 신혼부부(혼인신고 후 5년이내) 중 절반(45.8%) 정도가 자녀를 가지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초혼 신혼부부 평균자녀수는 0.66명으로 통계 작성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처럼 병원을 찾는 소아환자가 줄어들고 있는데다, ‘귀한 아이’ 환자에 대한 의료사고 소송도 갈수록 늘어나 전공의들이 굳이 소아과를 택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최근 한 종합병원에서 아픈 아이를 오래 기다리게 했다는 이유로 전공의가 환자 보호자에게 뺨을 맞았다는 소문도 의사들 사이에선 화제가 되고 있다. 소아과에 오는 보호자들은 극도로 예민해져 의사들이 감정노동에 시달려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주 건강보험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을 예고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돼 만약 대학병원 응급실에 소아과 전공의가 없어진다면 한밤중 소아 응급환자는 누가 치료할 것인가. 소아과의사들은 우리사회의 필수적인 ‘의료안전망’인 만큼, 전문의 양성에 국가가 적극 나서야 한다. 수가 현실화 외에는 소아과를 살릴 다른 방법이 없다는 말도 귀담아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