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천룰 확정 작업에 분주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최근 당 행사에서 “국회의원이 입김을 행사할 수 없는 룰을 만들겠다”고 밝혀 주목을 받았다. 권리당원이 100% 공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과거처럼 국회의원이 후보를 내리꽂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의힘도 지방선거 때마다 현직 국회의원(당원협의회 위원장)의 공천전횡을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밝혀왔다. 직전(2022년) 지방선거 때도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는 각 시·도당에 국회의원의 ‘내리꽂기 공천’ 잡음이 발생할 경우 다음 총선 공천에서 불이익을 주겠다고 공언했었다.
여야의 이러한 방침에도 불구하고, 지방선거에서 지역구 국회의원이 ‘자기사람’을 공천하는 관행은 거의 일반화돼 있다. 국민의힘 텃밭으로 불리는 대구·경북(TK) 지역은 특히 지방선거 때마다 현역 의원의 공천개입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2022년 지방선거 때는 경북도당 공관위가 ‘교체지수’라는 낯선 여론조사 방식을 통해 3선 도전 단체장(포항·영주·군위)들을 경선에서 탈락시켰다가 번복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당시 컷오프 과정에서 해당 지역 국회의원들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국민의힘은 내년 지방선거 공천에서도 ‘기초단체장 평가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일각에선 차기 총선 경쟁자 싹을 자르려는 ‘제2의 교체지수’라는 평가가 나온다.
국민의힘 공천이 곧 당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TK지역의 경우 특히 현역 의원의 입김이 강하다. 이 때문에 기초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이 국회의원 ‘가방모찌’라는 자조적인 말도 나온다. 사실 현역 의원이 지역구 공천 작업을 주도하겠다고 나서면 당 지도부에서도 이를 말릴 명분이 별로 없다. 지방선거 결과는 지역구 의원이 책임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차기 총선 공천주체는 먼 훗날에 결정되기 때문에 현 공관위의 압박에 긴장하는 의원도 많지 않다.
결국 비상식적 공천에 대해서는 유권자가 심판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TK지역에서는 정치권을 중심으로 한 기득권 세력들이 학맥, 인맥으로 카르텔을 형성해 ‘끼리끼리’ 먹고 사는 도시를 만들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대구의 GRDP가 전국에서 꼴찌고, 시민소득이 울산의 3분의 1에 그칠 정도로 쇠락한 것도 TK지역의 이러한 정치적 폐쇄성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TK지역은 국채보상운동이나 1960년대 민주화운동, 1970년대 산업화의 주역도시다. 우리 자녀들이 살아가는 이 지역 환경을 변화시키는 역할은 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이 중심이 돼서 해야 한다. 극단적인 비교일지 모르겠지만 실리콘밸리에서 사는 아이와 폐쇄적 도시에서 사는 아이가 한평생 누리는 행복수준은 같을 수가 없다. ‘한국의 시간’이라는 베스트셀러를 쓴 김태유 박사는 “자라는 아이에게 새총을 주면 산에 가서 참새를 많이 잡는 꿈을 꿀 것이고, 엽총을 주면 호랑이나 사자 같은 맹수를 사냥하는 꿈을 꾼다”고 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는 TK지역 아이들에게 큰 꿈을 가질 수 있게 만드는 리더들이 많이 출마하길 기대한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