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세 개의 동사로 이루어진 영화

등록일 2022-12-19 18:31 게재일 2022-12-20 17면
스크랩버튼
라이언 머피 감독 ‘먹고 기도하고…’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포스터

불현듯 삶이 공허해진다. 안정적인 직장에 원만한 결혼생활, 경제적인 안정까지 꾸준히 쌓아 올렸던 일상,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일상에 의문이 든다. 진정 내가 원했던 삶은 무엇인가. 누구나 살아오면서 한번쯤 던졌을 질문이 시작된다. 우리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인생의 행로를 수정하며 살고 있는가. 쉽지 않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얼마나 큰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가를 깨닫는 순간 의문 가득한 불안한 일상 속에 머문다.

물론 누군가는 과감히 떨치고 반복되는 일상의 궤도를 이탈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어진 여건(경제적이거나 시간이 허락하는 범위) 속에서 환기의 차원에서 잠시나마 다른 궤적을 그리다 다시 일상으로 복귀한다. 혹은 상상에 그친다.

선택은 크고 작은 희생과 용기를 동반한다. 한쪽을 선택하게 되면 다른 한쪽을 희생해야 한다. 그 가치에 따라 끊임없이 저울질 한 끝에 택하게 되는 것. 하지만 그 선택이 늘 더 큰 이익과 삶의 가치를 가져다 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주저하게 되고 후회하게 되며, 머뭇거린다.

다시 반복된 질문을 던져보자. 우리의 삶이 불현듯 공허해지고 이것은 아니라는 의문이 든다. 떠나야할 이유와 떠나지 못하는 이유 사이에서 발목을 잡는 것들의 총량을 가늠해보지만 전자는 구체적이지 않은데 반해 후자는 구체적이며 지극히 현실적이다. 떠나야할 이유가 불분명한 하나라면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분명하면서도 쉽게 설명이 가능하다.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용기가 필요한 당신을 위한 기적같은 여행’이라고 시작한다. ‘머무는 것보다 힘든 건 떠나는 거’라는 선택의 어려움을 전제에 깔고 있다. 이 영화는 홍보 문구처럼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가볍게(?) 해소했을 때 찾아오게 되는 이상적인 여행의 전형을 그린다. 그리고 맹렬히 먹고 기도하며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그 무언가, 공허함의 원인을 찾아 다닌다.

안정적인 직장에 결혼을 했으며 뉴욕에 집까지 마련한 저널러스트인 리즈는 “아침에 눈 뜨면 어떤지 알아? 열정, 희망, 감정, 아무 것도 안 느껴져. 제일 힘든 순간은 지나간 줄 알았는데 계속 이렇게 사는 건 죽음보다 잔인해”라고 하며 갑자기 찾아온 삶에 대한 의문을 갖는다. 그리고 발리의 어느 한 점쟁이에게 들은 점괘처럼 결혼생활과 일상을 정리하고 이탈리아로 떠난다. 크고 작은 희생과 용기를 동반하는 자아와 행복 찾기에 있어서 분명 이 영화는 일반적이지 않으며 판타지에 가깝다.

아픔의 무게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탈리아의 폐허로 변해버린 유적지에서 리즈는 이곳이 온통 무너져 내린 처참한 자신의 삶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때론 무너져도 괜찮아. 무너지면 다시 세울 수 있잖아”라며 “두렵지만 한 번은 무너져야 한다”고 자신을 다독인다.

인도의 수도원에서 기도를 마친 리즈는 “내 안에 있는 신을 발견하는 거다. 신은 완벽한 인간을 기대하지 않는다. 신은 내 모습 그대로 내 안에 존재한다”고 인도에서의 여정을 정리한다. 그리고 다시 발리를 찾아가 “때론 사랑하다가 균형을 잃지만 그래야 더 큰 균형을 찾아가는 거야”라며 또 다른 사랑을 만난다. “비행기 표 세 장이 복권”이라며 떠나 온 자아찾기의 결과다.

영화의 제목인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모두 동사(動詞)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렇게하라는 권유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어쩌면 명령인지도 모른다.

버리고 비우면서 채워지는게 여행이라고 할 때, 이 영화는 간명하고 단순한 버림 뒤에 발견하고 찾아지는 것, 획득하는 것이 두드러진다. 우리가 쉽게 끊어내지 못하는 일상의 끈에서 상상만으로 그칠 때, 이 영화는 세 개의 동사처럼 즉각적으로 행동하고 당연히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권유한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다음 남는 것은 “내가 정말 그렇게 할 수 있을까?”라는, 좀 더 솔직히 “내가 그럴 수 있는 경제적인 형편이 될까?”라는 의문이다.

/(주)Engine42 대표

김규형의 영화 읽기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