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핵심으로 하는 ‘문재인 케어’를 건보 재정을 파탄내는 포퓰리즘 정책으로 규정하며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정부의 시각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다. 정확한 팩트를 확인하고 따지는 일은 중요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이번 논란의 본질이 아닐 수 있다.
돈 때문에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의 수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는 명제는 반론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돌아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코로나19’ 가 한창 유행하던 당시에 미국의 코로나 검사 비용은 400만 원에 육박했다고 한다. 정부가 건강보험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에 맡긴 탓이다. 그러니까 세계 최강 미국에서 국가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의료 보장을 해주는 것은 비효율적인 행위일 뿐이다.
미국의 사례를 따라갈 것이 아니라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OECD 수준으로 높이는 것은 당연한 순서다. 이 과정에서 생겨나는 문제는 적절한 해결책을 찾아 개선하면 될 일이다. 보장성 강화 정책에 부작용이 있다고 물줄기를 바꾸자는 것은 자본과 경쟁의 논리, 즉 시장 중심의 사고방식이 국민의 건강을 대상으로도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할 뿐이다.
최근 집안 어른이 갑자기 쓰러져서 간병비로 하루에 최소 13만원 이상을 지급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거동이 어렵거나 대소변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면 일일 간병비는 더 올라간다. 간병비로 한 달에 400만원을 감당할 수 있는 집이 얼마나 있을까. 간병비를 부담하기 어려운 집에서 환자가 발생한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날까? 알다시피 간병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공동 간병인 제도는 문재인 케어의 대표적인 성과이다.
나는 정부가 폐기하려는 문재인 케어의 구체적인 항목을 알지 못한다. 다만, 돈이 없어서 치료를 받지 못하고 결국 죽음을 맞는 사람이 생기지 않게 국가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국가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느냐에 따라 평범한 국민의 삶과 죽음의 경계가 결정된다. 다시 묻자. 가야만 하는 길이 비바람으로 엉망이 되었다고 목적지가 다른 길로 돌아가는 것이 올바른 선택인가? 처음부터 다른 목적지로 갈 마음이 있었던 것 아닌가?
지난 16일은 ‘이태원 참사’ 49재였다. 여전히 여당 일각에서는 그날의 참사를 이태원에 나간 대학생 아이들을 말리지 못한 부모 책임으로 돌리려는 시각에 존재한다. 100명이 넘는 시민이 서울의 한복판에서 죽었지만, 시스템에 대한 성찰은 조금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나는 이태원 참사에 대한 정부의 태도와 건강보험 보장성을 폐기하려는 시각이 다른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2022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2023년은 경기침체가 본격화되며 유례없이 힘든 한 해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팽배하다. 새해에는 부디 각개전투가 아니라 공동의 전선이 마련될 수 있기를! 국가에 기대하지 말고, 내 가족의 건강과 함께 우리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새해가 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