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녀와 나무꾼’은 전 세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모티프 중 하나이다. 하늘의 존재가 어떤 이유이건 땅으로 내려오고, 땅의 존재와 이어지면서 하나의 연결고리를 형성한다. 하늘과 땅을 잇는 이야기는 자연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는 과거의 농경사회에서는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선녀와 나무꾼’ 또한 하늘과 땅의 연결고리를 맺기 위한 과정 위에서 해석할 수 있다. 사슴을 구해준 나무꾼이 선녀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으나 금기를 지키지 못해 하늘로 돌아가는 것을 막지 못한다. 하늘로 따라 올라간 나무꾼은 지상의 노모를 방문하다 또 금기를 어겨 천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닭이 되어 하늘만 쳐다본다.
‘선녀와 나무꾼’은 지역마다 조금씩 변형되고 때로는 일부 빠지거나 추가되어 전승되어왔다. 선녀 또는 나무꾼 한쪽만 이야기에 등장하기도 하고, 옥황상제의 벌을 받아 연인과 강제로 헤어지거나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야기에서 선녀와 나무꾼은 평행선을 달리는 불통의 관계다. 나무꾼은 훌륭한 여인과의 결혼을 통해 신분 상승을 희망하는 자로서 계획적으로 약탈혼을 추진하며, 선녀는 이성에 대한 호기심과 구속에 대한 해방을 꿈꾸다 나무꾼과 결혼한다. 특히 우리나라 ‘선녀와 나무꾼’은 우리가 상상하던 절절한 사랑 이야기보다는 효를 강조하다 연인이나 부부를 이별시키는 비극에 가깝다. 결혼으로 끝이 나거나 홀로 하늘로 떠나버리는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 선녀는 아이들을 꼭 데리고 하늘로 올라간다.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하늘에 올라 함께 살던 나무꾼이 노모를 걱정하다가 지상에 내려가고, 금기로 인해 돌아오지 못하게 된다. 아이와 선녀, 노모와 나무꾼은 ‘엄마와 아이’라는 관점에서 떨어뜨릴 수 없는 관계였던 모양이다. 돌봄과 돌봄을 당하는 생의 역전 관계에서 사랑은 뒷전이 되고 ‘선녀와 나무꾼’은 비극으로 끝나고 만다.
대구에도 ‘선녀와 나무꾼’에 관련된 설화나 민담이 전승되고 있다. 신분 상승, 장가가기, 약탈혼, 이성에 대한 호기심, 구속에 대한 해방, 가정 지키기 등 욕망과 갈등 그리고 그 결과가 부분적으로 전해져 내려온다. 대구의 ‘선녀와 나무꾼’의 옛이야기에서도 역시 소통 부재로 인한 문제들을 엿볼 수 있다. 달성군과 동구를 살펴보면, 달성군 하빈면에는 선녀와 정을 나누고 도망가는 죄를 지어 지상으로 귀양 온 용이 좋은 일 10가지를 하고 승천하는 이야기(‘용재산 용의 승천’)가 있다. 달성군 옥포읍에는 선녀곡, 선녀지, 선녀마을, 선녀약천, 장부타령에서 선녀 이야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물이 너무 맑아 일곱 선녀가 여름이면 목욕하러 하늘에서 내려오고(삼탕 이천의 유래), 선녀에게 반한 머슴이 선녀곡 옹달샘에 들었다가 하늘의 노여움을 받아 장대비를 맞는다(‘장부타령’). 달성군 가창면에서는 하늘에서 베를 짜러 내려온 옥랑각시에게 노총각이 반하여 욕심을 내었으나 놀란 선녀가 벽에 구멍을 뚫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이야기(‘옥랑각시굴’)가 전해진다. 동구 불로동에서는 옥황상제에게 벌을 받고 운명이 얽힌 양씨와 그의 아내가 된 다섯 선녀의 이야기(‘하늘 선관과 다섯 선녀’)를 찾아볼 수 있다. 동구 팔공산 자락의 환상산의 한 봉우리 초례봉에는 약 1천500년 전 어씨라는 나무꾼이 하늘의 선녀를 만나 초례를 올렸다는 이야기(초례봉의 유래)가 전해진다.
또 달성군과 동구, 두 지역 모두 전승되는 노동요에서도 ‘선녀와 나무꾼’의 모티프를 찾아볼 수 있다. 동구 공산동의 민요 ‘베틀소리’에서는 선녀가 내려와 베를 짠다는 내용과 베틀의 부위별 비유적 표현이 들어있다. 동구 평광동의 민요 ‘어사용’과 달성군 현풍읍의 민요 ‘땔나무 노래’에서는 나무꾼의 신세 한탄이 주를 이룬다. 베를 짜서 옷감을 짓고 나무로 땔감을 삼았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금기를 어기고 이어진 인연이나 정서상 떨어뜨릴 수 없는 ‘엄마와 아이’의 관계는 선녀와 나무꾼이 인연을 이어가는 데 분명한 한계점을 제공한다. 그러나 주어진 환경을 감안하더라도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부족해 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마냥 순수하게 인연을 맺지 못하는 현대인처럼 그 옛날 선녀와 나무꾼의 시선은 애석하게도 매번 엇나가기만 한다. 이러한 ‘선녀와 나무꾼’의 옛이야기는 대구에서 정기공연을 이어오고 있는 ‘나무꾼의 옷을 훔친 선녀’라는 지역 연극 작품에서도 그 모티프를 찾아볼 수 있다. 사랑은 현실일까 아니면 마술일까. 결혼과 돈 그리고 사랑. 현대연극 속 선녀와 나무꾼이 어떤 선택을 할지 함께 고민해보고, 옛이야기의 그들과 달리 소통과 배려로 진정한 사랑을 찾을 수 있을지 상상해봐도 좋을 것이다.
지역에 전해져오는 옛이야기는 직접 발을 디딘 땅의 기억에도, 이야기로 재구성된 문화 예술에도 녹아있다. 지역마다 문화콘텐츠 사업에서 테마파크, 출판, 공연, 영상, 음반, 전시 등 다양한 장르로 발굴되고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대구의 ‘선녀와 나무꾼’의 옛이야기는 서서히 그 가치를 잃어가고 있다. 풍부히 향유되지 못하는 문화가 세월에 먹히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지만 안타깝기만 하다. 문화 발전을 위한 정기적인 스토리 콘텐츠 개발이 무엇보다 필요해 보인다. 옛이야기가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대구의 지역민에게도 살아 숨쉬는 문화로서 소통의 장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
/최정화 스토리텔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