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MBC 인기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는 전현무, 박나래, 이장우의 베트남 여행기가 그려졌다. 세 사람은 평소 먹는 것을 좋아해 얼굴이 자주 붓고 기름기가 번들번들한데, 이 공통점을 가지고 그룹 이름을 ‘팜유 라인’으로 지었다. 팜유 라인은 베트남 달랏의 온갖 맛있는 음식들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웠다. 레스토랑부터 길거리 음식까지 장장 스무 시간에 달하는 식사를 했다. 다음날 아침 퉁퉁 부은 얼굴로 모인 세 사람의 모습은 시청자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방송에서는 팜유라는 단어가 수백 번 등장했다. ‘팜유즈’, ‘팜유 라인’, ‘팜유 원정대’, ‘팜유 세미나’ 등등 다양하게 변주되었다. 방송이 나간 후 인터넷 검색창과 연예 기사란은 온통 팜유로 도배됐다. 사람들은 급격히 팜유에 관심을 갖게 됐다. 건강에 좋지 않다는 부정적 인식을 가졌던 사람들이 팜유에 친근감을 느끼게 됐다. 팜유는 정감 있고, 유쾌하며, 무해한 것이 됐다. 출연진들과 작가, 피디가 신중했어야 하는 지점이다. 가벼운 웃음의 소재로 쓰였지만, 팜유의 진실은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70여 년 동안 오랑우탄 개체수는 지구상에서 전체 80퍼센트 감소했다. 그 결과 보르네오 오랑우탄은 멸종 위기종으로 지정됐다. 서식지가 파괴됐기 때문이다. 1960년대부터 90년대까지 30년 동안 인도네시아의 숲 4천 만 헥타르가 사라졌다. 우리나라 면적의 네 배다. 가구, 종이, 선박 제조 등에 쓰이는 목재를 얻기 위해 대규모 벌목이 자행됐다. 벌목보다 더 심각한 건 야자유, 바로 ‘팜유’ 채취다. 식용유뿐만 아니라 우리가 쓰는 공산품들 중 식품, 샴푸, 치약, 비누, 화장품 등의 원료명에 팜핵유, 팜올레인유, 팜스테아린이 적혀 있으면 야자유가 함유된 것이다. 여담이지만 보르네오섬에서는 인간이 암컷 오랑우탄을 포획해 화장을 시키고 란제리를 입힌 후 인간 남성들을 고객으로 하는 매춘 학대를 저지르기도 했다.
‘나 혼자 산다’는 장수 예능 프로그램이다. 1인 가구 시대에 혼자 사는 연예인들의 소박한 일상을 보여주며 공감을 얻던 초기의 취지는 이제 사라지고, 유명인들의 럭셔리 라이프가 전시되거나 친한 연예인들끼리 어울려 노는 친목 과시만 남았다. 그래도 전에는 환경 문제나 사회적 약자의 소외 양상 등 시의성 있는 문제의식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이제는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흥미만 남았다. 시청자들은 ‘나 혼자 잘산다’라든가 ‘너희들끼리 산다’라고 비꼬는 중이다.
이번 ‘팜유’ 에피소드는 ‘나 혼자 산다’의 문제와 한계를 명확히 드러냈다. 바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생각 없음’이야말로 ‘악’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수십만 명 환경운동가들의 간절함보다, 일상에서 환경보호를 실천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보다 인기 예능 프로그램이 만들어낸 이미지 하나가 훨씬 더 파급력이 크다. 팜유는 ‘지구의 눈물’이다.
“방금 배달된 장미 한 다발/ 장미는 얼마나 멀리서 왔는지/ 설마 이 꽃들이 케냐에서부터 온 것은 아니겠지/ 장미 한 다발은/ 기나긴 탄소 발자국을 남겼다, 주로 고속도로에/ (…) 도시의 사람들은/ 장미 향기에 섞인 휘발유 냄새를 눈치채지 못한다/ 한 송이 장미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봄부터 소쩍새가 아니라/ 칠에서 십삼 리터의 물이 필요하단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많은 휘발유가 필요하겠지/ (…) 오늘은 보이지 않는 탄소 발자국을 따라가 보자/ 한 다발의 장미가 피고 질 때까지”(나희덕, ‘장미는 얼마나 멀리서 왔는지’ 부분)
꽃의 아름다움을 잠시 소유하기 위해 인간의 탐욕은 자연을 착취하고, 자원을 낭비하고, 결국 세계를 황폐하게 한다. 시인은 “오늘은 보이지 않는 탄소 발자국을 따라가 보자”고 제안한다. “한 다발의 장미가 피고 질 때까지” 희생되고 버려지는 것들을 생각해보자고 설득한다. 탄소 발자국을 추적하다 보면 우리가 쓰는 물건들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그것이 인간과 자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게 된다. 또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우리 삶이 자연과의 촘촘한 상호작용을 통해 구성된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그때 비로소 ‘함께 잘산다’가 될 수 있다. ‘팜유 라인’ 멤버들은 생각해야 한다. 팜유는 얼마나 멀리서 왔는지를. 물론 우리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