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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즐거웠으면 좋겠어

누구든 그렇다. 즐겁던 일들이 하나도 즐겁지 않은 일이 되고, 너무나 기다려온 순간이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운 순간이 된다. 아무런 생각 없이 즐기듯 하면 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부담감에 치를 떨게 된다.일을 처음 시작하게 되는 순간을 떠올려보라. 어떻게든 취직을 하려고 했던 순간이 무색하게도, 실수에 대한 부담이 스스로를 짓누른다.등단을 준비하던 20대 때에는 등단만 하게 된다면,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쓰며 작가라는 직업을 즐기며 살 줄 알았다.하지만 정작 등단을 하고 나서 느낀 가장 큰 감정은 즐거움이 아니었다.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과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긴장감이 매순간 나를 압박했다.글의 내용이 구설수에 휘말릴까봐 두려웠고, 이번 청탁을 끝으로 더 이상 일이 들어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고민했다. 그러다보니 내가 쓰고 싶은 글보다 남들이 좋아할 글이 뭘까에 대한 고민을 훨씬 많이 했던 것 같다.타인이 좋아하는 건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 그게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어쨌든 그런 생각에 빠져있다 보면 나 자신이 사라져버린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다. 매순간 보이지 않는 타인에게 자신을 평가받는 기분. 내가 원하는 것보다는, 그 평가에 자신을 점점 더 규격화해나가는 것 같은 기분. 그땐 이 기분이 작가의 중압감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대중에게 글을 보여주고 평가 받는 직업이 가진 고충 같은 것이라고.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반 정도만 맞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사실 우리가 살면서 저지르는 실수라는 건, 혹은 일을 처음 시작하면서 저지르는 실수라는 건 지나고 생각해보면 그리 큰일들이 아니다. 단지 일을 처음 시작하는 단계에서 저지르는 사소한 실수가 자신의 일생을 좌지우지할 것만 같은 중압감에 그 크기를 더욱 크게 느끼는 것뿐이다.물론 가끔은 그런 거대한 실수를 저지를지도 모르지만, 어떤 일이든 신입에게는 그렇게 크고 중요한 일을 맡기지 않는다. 실수를 마음껏 저지르라는 말은 아니지만, 그렇게 벌벌 떨 필요까지는 없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하지만 우리는 일을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면 늘 비슷한 상황에 처한다. 사소한 실수가 나에 대한 누군가의 평가로 이어질 것만 같고, 그 실수가 나를 평생 따라다니며 짓누를 것만 같다고 느낀다. 순간의 판단과 사소한 말실수가 나의 평생을 망가뜨릴 것만 같은 기분. 늘 긴장하게 되고, 그래서 더 위축되고, 그 탓에 다시금 사소한 실수를 저지르고, 실수를 들키지 않으려 조마조마한 기분으로 하루를 보내고, 이 일에 적성이 맞지 않는 걸까 고민하게 된다.생각해보면 허송세월 같은 건 없다. 조금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일이 조금만 손에 익고 나면, 영영 찾아오지 않을 것만 같던 마음의 여유가 조금씩 차오른다. 그 즈음에 다시금 옛 일들을 떠올리자면 괜한 불안과 걱정을 한껏 부풀려 상상하며 살아온 것만 같아 실소가 나오곤 한다. 어쩌면 내가 사회 초년생으로써 느낀 불안과 걱정이라는 건 단지 내가 만들어낸 상상에 불과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얼마 전 ‘베개’라는 독립문예지의 낭송회에 다녀왔다. 그날도 원고 작업에 한껏 지쳐있었다. 그날 내가 쓴 글이 자기 복제처럼 느껴져서 마음이 위축되어 있는 상태였다. 아무도 좋아하지 않을 글을 썼다는 생각이 드는 하루였다. 그러던 찰나에 내가 본 낭송회의 풍경이란 익숙하면서도 낯선 그런 모습이었다. 사람들이 각기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표현하기 위해 시를 쓰고, 그걸 최선을 다해 떨리는 목소리로 낭독하는 장면은 분명 감동적인 것이었다. 타인을 위해 쓴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쓴 글을 읽는 것. 어쩌면 그게 문학이라는 문화의 본질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청탁과 원고료에 목을 매는 나 자신이 조금은 우습게 느껴졌던 하루였다.사실 생각해보면 작가라는 건 꽤 즐겁고 재밌는 직업인데. 글을 쓰기 위해 고민하고 사색하고 무언가를 목격하기 위해 끊임없이 세상을 돌아다닌다는 건 생각보다 낭만적인 직업인데, 나는 이 직업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을 하나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즐거워지고 싶다. 즐거워지기 위해 다른 일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 일을 하면서 즐거워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2022-12-06

건조함을 경계하기

날이 부쩍 차가워졌다. 집 밖의 나무는 앙상한 가지를 뻗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옷차림도 두껍다. 어느새 성큼 다가온 겨울에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린다. 서늘한 공기에 입술도 손끝도 바싹바싹 마르는 것이 느껴진다. 이맘때는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건조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감정의 폭이 유난히 큰 사람이 있다. 사소한 일에 크게 웃고 우는 이들과는 반대로 냉철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도 있다. 흔히 감정적, 이성적으로 나누는 이러한 특질은 사람의 본질을 결정짓는 부분은 아니다. 그러나 각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는 다를 것이며 옳고 그름을 떠나 삶을 운용하는데 필요한 상반된 관점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나는 스스로가 굉장히 감정적인 편이라 생각했지만 최근엔 어떤 부분이 완전히 메말라버렸다고 느낀다. 그건 겨울이라는 계절이 주는 특이성과는 또 다른 것이다. 출퇴근하고 여러 사람과 부대끼면 용납할 수 없는 일이 자꾸만 생겨난다. 단조롭고 고요한 시간을 살았을 때는 알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도 한다. 소설이라고 생각하면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인물과 사건이 현실을 사는 내 앞에 나타난 순간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고민으로 나타난다.그러니 자유와 사랑, 낭만을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날이 점점 줄어든다. 이상을 꿈꾸고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을 믿는 일이 바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좋게 보자면 현실적으로 되었다고 할까? 낙관적인 내일을 상상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늦지 않게 일어나야 한다는 것.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보다 먼저 떠오르는 건 처리해야 하는 업무의 양. 문득 눈이 떠진 이른 새벽 소복이 쌓인 첫눈을 마주하고서는 탄성보다 탄식을 뱉어냈다. 내면 깊은 곳에서 언제나 퐁퐁 솟아오르던 감정이 말라서 어떤 면에서는 마음이 완전히 늙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시장의 논리가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 감수성이야말로 우리가 획득해야 하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감수성이 높다는 것은 타고난 것이기도 하지만 노력으로도 이뤄질 수 있는 일이다. 동시에 경계하고 훈련하지 않으면 금방 휘발되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모두 다른 면면을 가지고 있으며 개인에게도 여러 면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모두가 같지 않음을 인정하고 모든 일을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다고 여기는 순간부터 타인과 세계를 이해하는 감수성은 시작된다. 삶은 수학 공식처럼 정확한 숫자를 대입하면 맞아떨어지는 답이 나오는 게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불투명한 답을 획득하기 위해 나아갈 수밖에 없다.여전히 나는 누군가의 문장을 읽고 눈물을 흘린다. 좋은 노래를 들으면 숨이 쉬어지는 것 같다.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을 찬찬히 헤아리면 어김없이 슬퍼지고 만다. 그것은 내 안에 아직 살아있는 감정의 불씨며 그것을 지키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는 증거다. 현실을 살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건조함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폭포처럼 쏟아지는 감정 또한 세계를 돌파할 수 있는 커다란 힘이 된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월드컵으로 모두의 마음이 들썩일 때 한 연예인이 대한민국의 16강 진출과 관련하여 ‘어차피 안 될 것을 알면서도 왜 희망을 품느냐’는 식의 이야기를 꺼내어 빈축을 샀다. 누군가는 그것을 이성적인 판단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승리와 패배를 계산하며 가능성이 적은 쪽을 믿는 이들을 조롱하는 것은 패배주의에 빠지기 쉬운 일이다. 그럴 때 우리는 허무적이고 냉소적인 사람으로 전락한다. 감정을 누르고 오직 머리로만 삶을 통제할 수 있다고 여기는 순간 모든 일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희망을 믿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 아니다. 낙관적인 가능성만을 열어놓는 것도 아니다. 부정적인 영역까지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것이다.알다시피 그가 불신했던 미래는 현실이 됐다. 포르투갈과의 경기 끝에 대한민국의 16강 진출이 확정됐을 때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손에 땀을 쥐고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는지 모른다. 꺾이지 않는 마음. 분투의 마음. 다음을 꿈꾸고 해낼 수 있다고 믿는 일. 행여 그 믿음이 실패로 돌아올지라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무조건적인 승리를 바라는 게 아니다. 우리 모두가 뭔가를 함께 바라고 간절히 호흡하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손을 잡을 수 있는 곁의 누군가가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면 건조하게 느껴졌던 마음이 촉촉하게 젖어온다. 어떤 일이 찾아와도 절대 메마른 사람이 되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이 겨울을 시작한다.

2022-12-06

탄소중립 포항만들기…시민의 실천이 중요

포항시가 지난 5일 시청 대회의실에서 ‘탄소중립’ 실현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포항 미래 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포럼은 ‘기후 위기에 강하고 기후변화에 안전한 탄소중립도시 포항 조성을 위한 과제와 비전’이라는 긴 주제가 말해주듯이, 포항시의 구체적인 탄소중립 실현 방안이 집중 논의됐다. 기조발표를 맡은 이원태 경북도 탄소중립지원센터장은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과제로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의 유기적인 정책 공유’를 제시해 참석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이날 포럼개최도 그렇지만, 최근 포항시가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을 위해 시민들과 적극 소통하고 있는 모습은 바람직하다. 포항시는 지난달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조례’를 제정하고, 지역 단위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2050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 수립용역’을 발주하기도 했다. 지난 9월 6일 포항지역을 휩쓴 태풍 힌남노 때문에 아파트 지하 주차장이 물에 잠겨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나오고, 포항제철소와 인근 철강공단이 마비되는 것을 보면서 포항시민들은 기후변화에 대한 실체적인 위기를 몸으로 겪었다.탄소중립 실천은 이제 필수가 됐다. 유럽의회는 지난 6월 ‘탄소국경세’ 도입 법안을 통과시켰다. 탄소 배출량이 많은 국가에서 생산·수입되는 제품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이다. 미국도 탄소국경세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탄소국경세는 수출업체뿐만 아니라 해당제품 생산에 참여한 모든 공급망에 적용된다. 온실가스 실질 배출량 제로를 의미하는 탄소 중립 달성이 이제 모든 기업에게 ‘신(新)무역장벽’이 된 것이다.탄소중립 실천은 기업이나 지자체만의 몫이 아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서는 각 개인이 생활 속에서 실천해야 하는 일들이 많다. 철저한 재활용품 분리, 개인 손수건 사용, 이면지 활용, 대중교통 이용하기, 엘리베이터 타지 않기, 계단 이용하기 등은 우리가 쉽게 실천할 수 있는 탄소중립 과제들이다. 사소하고 작은 것이라도 반드시 실천하는 ‘탄소중립 사회’를 만드는 일에 포항시민 모두가 동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2022-12-06

실내 마스크 해제, 신중한 접근 필요하다

대전시가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를 자체 해제하겠다고 밝히면서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화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대전시는 최근 중앙안전대책본부에 오는 15일까지 실내 마스크 의무 해제 결정이 없으면 내년 1월부터 행정명령을 통해 자체적으로 실내 마스크 의무를 해제하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지방자치단체가 자체적으로 실내 마스크 의무를 해제하겠다고 밝힌 것은 대전시가 처음이다. 대전시는 식당·카페 등에서 이미 대부분 마스크를 벗고 있어 실효성이 떨어지고 아이들의 정서, 언어발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사유로 들었다. 충남도 김태흠 도지사가 실국장 회의에서 실내 마스크 착용 자율화 시행을 지시하면서 실내 마스크 자율 해제에 동참할 움직임이다.그러나 보건당국은 “당장 실내 마스크를 벗으면 감염이 늘 것이 뻔하고 그만큼 중환자와 사망자가 늘 것이기 때문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정기석 코로나19 특별대응단장은 “우리나라는 일일생활권으로 아침에 서울에 있다가 저녁에 목포에 있는 나라”라며 “위험한 지역이 생기면 다른 지역으로 바로 전파되기에 방역에 관한한 일관성 있는 정책 유지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는 정부의 방역조치 중 마지막 남은 보루다. 정부도 “겨울철 유행 정점을 지나 실내 마스크 해제 시기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어 급히 서둘 이유는 없다. 특히 겨울철 독감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시점이어서 더 신중히 검토하는 것이 좋다. 지자체의 독자 결정은 코로나19에 대한 방역의식을 떨어뜨리고 방역에 혼란을 초래할 우려도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정책의 일관성이 유지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지자체 단독 결정보다는 중앙방역당국과 협의를 거쳐 통일된 결론을 내는 것이 방역의 일관성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중앙의 보건당국도 지자체의 실내 마스크 해제 요구에 대해 종합적인 의견을 모아 적절한 대응책을 내놓아야 한다.유럽 등 해외 주요국 대부분이 실내 마스크를 해제하고 있다. 정부도 실내 마스크 해제에 대해 보다 전향적 태도를 가지고 의견수렴에 나서야 한다.

2022-12-06

여당에서 ‘제2의 이준석 대표’ 나올까

심충택 논설위원 오늘(7일) 친윤(윤석열)계가 주축인 ‘국민공감’이 출범하면서 국민의힘 당권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국민공감은 원래 친윤계의 핵심인 장제원 의원이 만든 ‘이너서클’ 성격을 가지고 있다.전당대회를 석 달여 남긴 시점에 장 의원이 당내 최대 모임의 구심점으로 활동을 재개하는 것이다. 국민공감에는 국민의힘 의원 115명 가운데 70여명이 참여하기 때문에, 리더인 장 의원이 직접 차기 당 대표에 욕심을 낸다면 당선될 확률이 높다.만약 장 의원이 당권을 잡는다면 국민의힘은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특정인 지지층에만 의존하는 폐쇄적인 정당이 될 수밖에 없다. 여야 진영간의 강대강 대치는 결국 지지층 결집을 더욱 공고히 하고, 2024년 총선판세를 일찌감치 굳힐 가능성이 있다.주호영 원내대표가 지난 3일 대구에서 열린 ‘아시아포럼21 토론회’에서 차기 전당대회 당 대표 출마 후보군을 일일이 언급하며 “다들 성에 차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이러한 정치흐름을 우려한 것으로 읽혀진다.주 대표가 이날 토론회에서 대안으로 내놓은 당 대표 조건론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가 제시한 3가지 조건은 “국회 지역구 의석의 절반이 수도권인 만큼 수도권에서 대처가 되는 대표가 나와야 한다. 특히 청년층인 MZ세대에도 인기 있는 대표여야 하고 오는 총선 공천에서 휘둘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공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주 대표가 토론회에 참석하기 직전 윤석열 대통령과 독대한 점을 들며, 이 기준이 대통령의 의중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나오지만, 아마 국민의힘 지지자들이면 누구든 수긍을 할 것이다.국민의힘 스케줄대로 내년 3월중 전당대회가 치러진다면 지금으로선 갑자기 혜성처럼 의외의 인물이 당권주자로 나타날 것 같지는 않다. 주 대표의 말대로 현재 거론되고 있는 인물 중에서 당 대표가 나온다면 국민의힘은 윤핵관이 주도하는 모양새로 차기 총선을 치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국민의힘이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에 이길 수 있었던 일등공신은 이준석 전 당대표였다. 이 전 대표는 지난해 6·11 전당대회에서 젊은 당원들과 2030세대의 열광적인 지지로 36세에 제1야당 당수로 선출됐다. 당시 국민이 이준석을 국민의힘 사령탑으로 선택한 본질은 권위주의와 부패에 찌든 낡은 정치를 바꾸라는 것이다. 이 대표는 취임 후 국민의힘을 디지털정당으로 변신시켜 기업처럼 효율성과 효과성을 추구했다. 각 시·도당에서는 온라인 입당신청자가 쇄도했고, 호남지역에서도 신규당권이 급증했다. 국민의힘 전성기는 그때였다.민주당이 지금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아마 6·11전당대회 당시와 같은 국민의힘의 역동적인 변화일 것이다. 김어준, 더탐사 같은 장외정치세력에 끌려다니는 민주당이 차기 총선에서도 과반이상 의석을 차지하면 한국에서 어떤 무서운 일이 벌어질지 짐작할 수 없다. 지금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의힘 지지율은 민주당에 항상 뒤지고 있다. 집권여당이 차기총선에서 민주당에 이기려면 ‘제2의 이준석’을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

2022-12-06

퍼머크라이시스

우정구 논설위원 영국의 영어사전 출판사인 콜린스는 올해의 단어로 ‘퍼머크라이시스’를 선정했다. 영구를 뜻하는 Permanent와 위기의 Crisis가 합쳐진 말이다. 콜린스 측은 “장기간에 걸친 불안정과 불안”을 이 단어의 정의로 규정하고 “2022년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끔찍했는지를 요약하는 단어”라고 설명했다.이 단어는 1970년대 학문적 용어로 처음 사용됐으나 최근 몇 달 동안 사용이 급증하면서 올해의 단어로 선정되는 배경이 됐다. 계속된 코로나 팬데믹 상황과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인플레이션, 경기침체, 고물가, 미. 중 패권 경쟁 등 하루도 쉴 새 없이 이어져 온 지구촌의 위기 상황이 퍼머크라이시스 시대를 열었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올해 우리나라 사정도 퍼머크라이시스로 요약되는 세계적 흐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위기의 연속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상황이 이어진 가운데 글로벌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경제는 최악이다. 생산, 소비, 투자가 모두 감소하고 각 연구기관은 내년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1%대로 전망했다. 정치는 위기상황을 외면하고 있다.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내년도 세계 경제를 아우르는 키워드로 퍼머크라이시스를 제시한 것 또한 우연이 아니다. 내년도 예측 불가능한 위기상황이 이어질 것이란 관측 때문이다.해마다 한해가 마무리되어 갈 무렵이면 각기관들이 내놓는 세평이 있다. 교수신문은 지난해 “고양이와 쥐가 함께 있다”는 묘서동처(苗鼠同處)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꼽았다. “도둑 잡을 사람이 도둑과 한패가 됐다”는 뜻이다.콜린스는 ‘퍼머크라이시스’로 올 한해를 세평했다. 우리나라 각 기관들은 올 한해를 어떤 내용으로 요약해 세평할 지 자못 궁금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2-12-06

‘영유’ 뜻을 몰랐었다

이명균 창원대 명예교수 ‘영유’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무슨 뜻인지 몰랐다가 나중에야 ‘영어유치원’이라는 것을 알았다. 요즘 자녀교육에 열성적인 가정에서는 아이를 유치원 때부터 영어유치원에 보낸다하며 어떤 영어유치원은 입학 때부터 영재테스트를 거쳐 영어수준테스트도 한단다. 영어뿐 아니라 어떤 학습내용이든 유치원 때부터 아이를 시험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필자 생각으론, 정교한 기계에 모래를 뿌리는 것과 같으며 자유롭고 다양한 사고력 형성을 크게 저해하게 된다.언어의 주된 기능이 의사교환 수단의 역할이지만 인간은 언어를 습득함으로써 사물이나 현상을 구별할 수 있게 되고 추상적이며 개념화된 사고를 시작한다. 언어를 정확하고 아름답게 구사할 줄 알아야 논리적 사고력과 풍부한 창의력을 발달시킬 수 있다. 언어를 잘 구사한다는 것은 말과 글로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영어를 잘한다는 것은 좋은 내용의 자기 생각을 영어로 체계적으로 정확하게 표현한다는 뜻이지 그저 발음 좋고 일상생활대화를 매끄럽게 하는 것으로 여겨선 안 된다.영어조기교육에 열성적인 엄마들은 미국의 대표적 언어학자인 노엄 촘스키 이론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촘스키 주장은 13세 이전엔 문법을 별도로 배우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언어를 습득할 수 있지만, 이후로는 문법규칙을 인위적으로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2018년에 발표된 MIT 인지과학 연구원의 조슈아 하트숀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외국어 문법실력이 원어민 수준이 되려면 10세 이전에 학습을 시작하는 것이 좋은 것으로 나타났으나 18세까지는 언어문법 습득능력이 크게 쇠퇴하지는 않는다고 한다.어느 쪽 주장을 따르든 원어민 수준의 문법습득은 영어권 사회에서 생활하려는 아이들이나 나중에 우리 풍습이나 정서를 담은 문학예술작품을 영어로 번역하는 직업을 가지려는 아이들에게는 필요할 것이나 영어를 외국어로 삼으며 생활할 아이들에게는 그렇게 필요한 학습이 아니다. 외국어로서의 영어는 고등학교나 대학 때 공부하더라도 필요한 영어능력은 얼마든지 습득할 수 있다. 어릴 때 영어 학습에 쏟을 에너지를, 악기나 운동 등 다른 재능이나 기능들의 개발·연마에 쓰는 것이 아이의 미래행복을 위해 훨씬 더 중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말을 정확하고 아름답게 잘할 수 있어야 사고도 정확하고 고상하게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외국어도 수준 높게 잘 구사할 수 있다. 영미권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교수라는 사람이 우리말 설명을 제대로 못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는데, 그런 사람은 대개 영어실력도 별로였다.집에선 우리말을 하는데 유치원·학원에선 영어를 써야한다면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을 뿐 아니라 인성교육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5∼7세 사이에 모국어 습득이 체계화되면서 아이들의 사고력이 형성되는데, 외국어 학습을 인지발달이 충분히 이루어진 후에 수행하면 더 효과적이란 연구결과도 있다. 영어 장사하는 사람들의 광고와 마케팅에 좌우되지 않은 채 중심을 잡고 아이를 키우겠다는 엄마들의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2022-12-06

너도 콩이다

조현태수필가 필자에게는 유휴지를 이용한 칠십 평가량의 밭이 있다. 옛날에는 논이었다는데 경작하지 않고 너무 오래 방치해 둔 땅이라 잡목과 풀만 가득했다. 어느 날 트랙터를 빌려서 나무는 뽑아내고 밭으로 일구었다. 비록 내 소유의 땅은 아니지만 누군지도 모를 주인이 나타나면 그냥 돌려주면 될 일이었다. 하여, 유실수나 약초처럼 재배기간이 긴 작물은 심지 않고 당년에 수확하는 콩이나 들깨, 고추 정도만 재배했다. 그 땅을 경작한 지 벌써 삼십 년이 넘었다.올해는 검정콩(서리태)을 심었다. 11월 중순에야 콩대를 잘라놨다가 그저께 마당으로 옮겨 털었다. 전문 농사꾼이 아닌지라 땅 면적 대비 수확량은 많이 떨어지지만 몇몇 지인들과 나눠먹는 결실은 충분히 된다. 흐뭇한 기분으로 항아리에 쏟아 부으면서 잠시 생각이 며칠 전으로 돌아간다.마른콩대를 차에 싣고 나니 땅에 떨어진 콩이 눈에 들어온다. 검정색이라 유난히 눈에 띄기도 하지만 자연스럽게 꼬투리에서 터져 나온 콩알이라 더욱 굵게 보인다. 그거 다 주워 모아도 일 리터가 될까 말까하지만 그냥 돌아설 수가 없다. 거의 한 시간을 소비하고 ‘끙’하며 일어서야 할 판에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마당에서 막대기로 두드려 털고 바람에 날려서 알곡을 가릴 때였다. 빈껍데기야 당연히 선풍기 바람에 날려 나가지만 아직 덜 영근 콩알이나 그것이 들어있는 꼬투리는 반쯤 날아가다 어정쩡하게 떨어진다. 그러니 곡식도 아니요 죽정이도 아니다. 버리기는 미안하고 거두기는 찜찜하다. 그러다 결국은 어중간한 놈들을 따로 쓸어 담는다. 저녁에 심심풀이로 손질해 볼 요량으로.이틀 저녁 동안 그 콩을 마무리하고 보니 제법 한 되는 되어 보인다. 품질이 떨어지는 곡식이라 남에게 주지는 못해도 내가 먹을 수는 있다. 밥 지을 때 섞어보니 그다지 나쁜 콩이라 여겨지지도 않는다. 평소에도 땅콩이랑 밤이랑 은행 따위를 섞어 밥을 짓는데 검정콩이 보태지니 훨씬 더 잡곡밥으로 보인다. 그래서 했던 말이 ‘그래 너도 콩이다’했다. 충실하게 영글어 저절로 터지는 콩만 콩인가 생각하니 관자놀이가 뜨듯해진다. 사람으로 치면 꼴찌도 사람이니까 말이다.재건중학교와 고등기술학교는 학력으로 인정되지 않으니 초등학교졸업 학력으로 사회생활을 했던 청년 시절. ○○대학교 정문 앞에서 장사하며 대학생을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른다. 대학생들이 가게 구석자리를 차지하고 종일 바둑 두며 떠들어대도 좋게만 보였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대학생이 될 수 없다고 여겼으니까. 육순을 훌쩍 넘은 나이에 방송통신대학이라도 공부하려고 등록했다가 한 달 만에 등록취소 당했다. 그때야 검정고시에 도전했고 만 사 년 만에 나도 대학교 졸업생이 될 수 있었다.반세기 동안 묵었던 땅도 갈아엎으면 밭이 될 수 있었다. 그냥 두었다면 묵지일 뿐이요 거들떠보지도 않는 땅인데 일구어 밭을 만들면 농지다. 깨를 심으면 깨밭이요 콩을 심으면 콩밭으로 일컬어진다. 비록 잡초에 부대껴 자라면서 반쯤 영글다가 뽑히고 마는 어설픈 콩이더라도 콩은 콩이 아니던가.

2022-12-06

사람경영과 기업문화

정상철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세계 일류기업은 독특한 기업문화가 있다. 기업문화는 창업주의 철학과 사상에서 시작되거나 업의 특성과 창업시기의 사회적 여건에 따라 형성되기도 한다. 기업을 움직이는 힘이 문화에 달렸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조직에 인사문화실을 두어 움직이는 기업들이 많지만 기업문화에 대한 올바른 인식부족으로 문화를 거꾸로 가는 기업도 있고 이것은 쇠퇴하는 기업의 지름길이다.삼성의 창업주는 후계자가 부회장으로 승진했을 때 목계(木鷄)를 선물하고 ‘목계지덕(木鷄之德·최고의 싸움닭은 자랑하지 않는다)’과 ‘경청(敬聽)’의 휘호를 써서 선물한다. 목계(木鷄) 사상은 기원전 8세기 무렵의 일인 장자 외편 달생에 나오는 싸움 닭 투계의 자세와 태도에 관한 일화다.‘목계’란 나무로 만든 닭이란 뜻이다. 마치 나무로 깎아놓은 닭(木鷄)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상대에게도 동요하지 않고 평정을 잃지않은 경영자로서의 덕목을 가르친 것이다. 이것은 덕의 완전성과 경청의 중요성을 말한 것이고,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경영의 시작이며, 경청은 사람을 이해하는 비기(秘技)인 것이다.삼성의 기업경영 비밀은 인재중심의 창조경영에 있다. 사업 특성에 따라 다르겠지만 냉장고, 세탁기 등 끊임없이 신상품을 시장에 내놓아야 하는 전자산업은 소비자가 원하는 디자인과 기능을 갖춘 제품을 지속적으로 개발하여 시장에 출시하고 선점을 놓치지 않아야 생존할 수 있다. 또한, 미래의 산업으로 반도체를 선택했을 때 직접 실리콘밸리를 찾아가 적합한 인재를 발굴하는 선택과 집중전략을 통해 성공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결국 사람이 답인 것이다.좋은 인재들이 선택하는 직장의 조건은 연봉과 기업복지, 성장 비전이라고 한다. 젊은이의 선택에서 멀어지는 기업이 일류기업으로 성장하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다. 모 글로벌 선진기업은 ‘Working Life Challenge Vision’으로 인사문화를 형성하고 좋은 기업문화에 역량있는 인재들이 모여든다고 한다. 입사를 하면 개인별 퇴직할 때까지 성장비전이 설정되고 도전하는 기업문화가 형성되어 있어 선망의 대상이 되고 명문가 선진기업이 되는 것이다.사람경영에는 3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첫째, 능력을 갖춘 인재 등용이다. 결국 사람이 답인데 좋은 인재가 시장 경쟁력의 기본이 되는 것이다. 둘째, 덕을 갖춘 사람이다. 능력이 있어도 덕이 없으면 긍정적인 조직문화 형성이 어렵고 조직의 융화와 힘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셋째, 개인의 성장 비전을 제시하는 운영제도이다. 성장 비전이 제시되는 기업문화의 틀 속에 개인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성장경로를 선택하고 도전하면 회사의 발전과 개인의 성장이 함께 가는 기업문화인 것이다. 기업문화는 기업의 특성을 바탕으로 창업주의 철학과 사상, 후대의 경영전략에 따라 시간의 흐름 속에 형성되며, 가장 큰 요소는 결국 사람경영을 어떻게 하느냐에 기업의 미래가 결정되는 것이다. 사람경영과 기업문화는 선진기업의 성장과 발전의 핵심요소이다.

2022-12-05

감나무와 까치밥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어느새 12월, 매듭달이다. 무던히 앞만 보고 달려온 듯한 올해도 이제 달력 한 장만 달랑 남겨두고 세모(歲暮)의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해마다 이맘 때가 되면 저마다 연초에 세웠던 계획이나 목표를 어느 정도 이뤘고, 이루기 위해 얼마만큼 노력했는지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게 된다. 성취를 누린 안도감이나 미진함에서 오는 아쉬움 등으로 이래저래 희비가 교차하고 뒤숭숭하지만, 어쨌든 한 해를 매듭지어야 하기에 연말은 늘 착잡해지는지도 모른다. 이런 때일수록 차분한 마음으로 자신과 주변을 성찰하며, 막연한 회한에 빠져들기 보다는 아직 남은 날들에 새로운 기대와 희망을 걸어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 듯싶다.우거의 뒤뜰 감나무에도 까치밥으로 남겼었던 십여 개의 감 중 마지막 한 개가 ‘마지막 잎새’ 마냥 가지 끝에서 대롱거리고 있다. 감꽃 피는 5월을 지나 무성한 잎새의 여름날 속에서 파릇한 감들을 숨기듯 꿰어 차다가, 가을 초입에 들이닥친 태풍의 생채기로 절반가량을 떨궈내고, 정갈한 햇살 받아 용케도 정(情)처럼 익어 얽힌 주홍빛 감들이 스무 여개. 태풍과 천둥을 견디면서 떫고 힘겨운 시절을 이겨내듯 가을날의 환하고 반가운 결실로 보답하는 감나무의 수고(?)이다. 해마다 늘 그 자리에서 한결 같은 모습으로 몇 개의 감을 선사하기에 고맙고 넉넉하기만 하다.감꽃과 홍시를 간식처럼 먹던 유년시절이 있었다. 필자의 고향집에서 50여미터 위쪽 언덕에 사셨던 조부모님 집 뒤로는 제법 큰 감나무가 10여 그루 있었는데, 봄이나 가을날이면 뒤란에 떨어진 감꽃과 홍시를 주워 먹으며 허기를 달래곤 했었다. 감꽃이 많이 떨어지면 빗자루로 일일이 쓸기까지 하면서, 할머니께선 밤새 소변을 받아낸 요강을 감나무 근처에 쏟으시며 나무뿌리를 튼튼히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서리가 내리면서 감들이 익어갈 즈음이면 감 따기는 으레 내 몫이었다. 긴 대나무 끝에 V자 홈을 파고 잠자리채 같은 망(網)을 매단 ‘감조리개’로 땅에서 따거나 다람쥐처럼 감나무에 올라가 가지 사이사이를 날렵하게 옮겨가면서 그 많던 감들을 거의 다 따내곤 했었다. 손이 닿지 않으면 당연히 까치밥으로 남겼었는데, 감나무가 많아선지 대부분의 까치밥은 눈이 내릴 때까지 남아있기도 했었다.효자동 집 주위에 심겨진 몇 그루의 감나무에 예전을 반추하는 감들이 꽃등처럼 열려서 회억에 잠기곤 한다. 올해는 해거리가 무색할 정도로 많은 감들이 열려‘새들을 위한 잔치(?)’를 벌이기로 했다. 찾아온 새들을 쫓지 않고 혹여 방해가 될까봐 창밖으로만 넌지시 감 쪼는 모습 보기를 은근히 즐기면서, 한 달가량 까치밥으로 10여개를 내주고 이제 마지막 1개만 남겨두고 있다. 도심의 새들은 갈수록 먹이 구하기가 힘든 걸까? 크고 작은 새들이 수시로 날아와 재잘거리며 감을 쪼아대는 풍경이 그림처럼 푸근하기만 하다.

2022-12-05

굴의 계절이 돌아오다

겨울, 굴의 계절이다. 뜨거운 화로 위에 통째 구워 먹는 석화구이는 겨울철 대표적인 낭만 중하나다. 훌쩍 떠나는 바닷가 캠핑족에게도 석화는 반가운 식재료다. 올해는 크기와 상품성 등 작황이 특히 좋다고 한다. 알이 굵고 생산량이 많아 가격도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다. 고물가시대, 건강과 감성을 채울 수 있는 식재료로 인기를 얻고 있다.굴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급 식재료로 인식되어 왔다. 특히 유럽에서는 클레오파트라와 카사노바가 즐겨먹은 음식으로 손꼽혔고, 일반인들에게는 젊음과 고급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우리나라에서 굴은 남해안 지역의 대표적인 수출효자상품이다. 미국 FDA(美 식품의약국)의 점검 하에 매년 수출 길에 오르고 있어 국제적으로 청정해역의 지위를 갖추고 있다. 남해안과 서해안은 1972년 한미패류위생협정에 따라 ‘패류수출지정해역’으로 지정돼 있어 이곳에서 생산되는 굴은 미국 뿐만 아니라 캐나다와 유럽, 일본 등지로 수출된다.생산량도 매년 증가세다. 굴은 경남 남해안이 주산지로 전국 굴 생산의 75% 가량이 이 지역에서 출하되며, 물량으로 따지면 매년 30만 톤가량이 생산된다. 수출의 경우 가격경쟁력과 상품성 등에 따라 수출량의 변동이 발생하지만 매년 국제적인 수요가 늘고 있다.최근에는 식재료뿐만 아니라 굴 껍데기(이하, 굴 패각)가 새로운 산업원료로 각광받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포스코와 현대제철에서 사용하는 ‘석회석 대체 원료’다. 일반적으로 가루형태의 철광석을 고로(용량로)에 넣기 위해서는 주먹크기의 소결광으로 만드는 작업이 선행된다. 철광석을 소결광 형태로 잡아주고 성분을 조절하는 역할에 석회석이 활용되는데, 이 석회 원료를 굴 패각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는 소결공정에 사용되는 석회석의 성분이 굴 패각의 함유성분과 유사하다는 데에서 착안한 것으로, 현대제철과 포스코는 이를 통해 약 40만 톤의 탄소를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굴 패각을 활용한 산학연의 연구개발도 활발하다. 한양대학교 건축공학부 배성철 교수팀은 시멘트 내 석회석 대체재로 굴 패각을 활용하는 방안을 개발했다.차세대 시멘트로 주목받는 ‘석회석 소성 점토 시멘트(LC3)’에 굴 패각을 재활용한 방안으로, 지난해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주최한 대회에서 ‘과학기술 우수논문상’을 수상했다. 배 교수팀에 따르면 시멘트의 원료인 석회석에는 다량의 탄산칼슘(CaCO3)이 함유돼 있는데, 굴 패각 내 탄산칼슘은 석회석과 동일한 구조를 갖췄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고품위 석회석 기준치보다 탄산칼슘의 함량이 더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굴 패각이 친환경 건축 재료로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입증한 것으로 앞으로 현장 활용가능성이 더 높아질 것으로 예측된다.연세대학교 화공생명공학과 박진원 교수팀은 최근 ‘패각 내 유효성분 활용 고품질 경질 탄산칼슘 합성 연구’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굴 패각을 잘게 부숴 산화칼슘을 만든 뒤 탄소를 투입해 경질 탄산칼슘을 생성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경질 탄산칼슘은 입자 크기가 나노(10억분의 1미터)수준인 것으로 중질 탄산칼슘보다 반응성이 높아 활용도가 좋다고 한다. 산화칼슘이 탄소와 결합해 경질 탄산칼슘으로 바뀌는 성질은 콘크리트 등 건설소재나 화장품 제조, 약물 전달 매개체로 사용될 수 있다.해양수산부는 산학연의 이런 움직임에 발 바꿔 제도 개선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7월 해수부는 수산부산물을 친환경적으로 처리 및 재활용하는 것을 촉진하기 위해 ‘수산부산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패각 폐기물의 재활용을 장려했다. 그동안 굴 패각은 ‘폐기물 관리법’에 따라 사업장 폐기물로 분류돼 활용하는 방안이 마땅치 않았다. 이 법은 올해 7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됐으며, 양식 굴의 대표 산지인 통영시 역시 이 법에 발맞춰 배연탈황흡수제를 생산하기로 했다. 정현미 작가 배연탈황흡수제는 화력발전소 매연에서 나오는 황산화물을 제거하는 물질로 석회성분이 원료가 된다. 통영시는 굴 패각의 석회성분을 자원화해 배연탈황흡수제로 활용한다고 밝혔다. 이는 매년 수만 톤에 가까운 굴 패각을 처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던 지자체가 스스로 나서 문제를 해결한 결과이기도 하다.굴 패각은 산학연정의 관리 하에 새로운 산업의 가능성을 선보이고 있다. 그동안 매년 쌓이던 굴 패각의 처리문제가 결국 다양한 주체들의 적극적인 노력과 발상의 전환으로 해결방향을 찾아가고 있는 셈이다. 수산부산물을 폐기물로 보느냐, 재활용이 가능한 산업원료로 보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가 도출됐다. 굴 패각은 탄소를 줄이는 새로운 원료로 활용되고, 더욱이 산업적인 측면에서 경제적인 이득까지 갖출 수 있는 자원으로 재탄생했다. 앞으로도 굴 패각은 다양한 형태로 활용될 전망이다.

2022-12-05

비잔틴 미술이 비잔틴에 없는 이유

서양미술사는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등 서유럽 지역에서 나타난 미술을 중심으로 서술된다. 지금의 서유럽 각 나라들은 국경을 통해 서로 분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각자 자신들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미술사 전개에 있어서도 나라 간의 차이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중세미술을 살필 때는 역사를 바라보는 다른 틀이 필요하다.중세미술은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긴 시기를 차지한다. 로마제국이 동서로 분열된 후 게르만의 침입으로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476년 중세가 시작되어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르네상스가 꽃을 피운 1400년까지 이어졌다. 고대 로마와 르네상스 중간에 나타난 시대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 ‘중세(中世)’이고, 르네상스인들은 이 시대에 ‘암흑’이라는 ‘부당한 수식어’를 붙였다. 미술사적으로 이 수식어가 부당한 이유는 중세 전체가 암흑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혼란이 극심해 학문과 문화 예술이 쇠락한 시기도 분명히 있었다. 예컨대 500년에서 800년 사이가 특히 그렇다. 이 시기 서로마제국을 멸망시킨 게르만의 군소 부족들이 여러 지역에 터를 잡으면서 시시각각 전쟁과 약탈이 벌어졌다. 하지만 이런 혼란기에도 비잔틴 제국에서는 예술이 융성했고 비잔틴 최고의 기술자들이 옛 서로마제국의 땅으로 건너와 걸작들을 남겼다.이탈리아 북동부 아드리아 해안에 위치한 고도(古都) 라벤나에는 비잔틴 미술의 걸작들이 지금도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다. 서양미술사에서 특히 초기 기독교 미술에 있어서 라벤나는 성지나 다름없다. 서로마제국이 멸망할 당시 제국의 수도가 라벤나였고 이민족에게 빼앗긴 땅을 비잔틴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가 수복하면서 기념비적인 교회들이 세워졌다. 그런데 정작 비잔틴 제국이 자리하던 지금의 터키나 북아프리카 혹은 중동지역에서는 그 화려했던 미술의 흔적을 거의 찾을 수 없다. 이것은 기독교가 종교적 체계를 잡아가던 과정에서 미술품 사용에 대한 동서 교회의 입장이 달랐던 것과 관계가 있다.교회에서의 미술품 사용은 우상숭배라는 민감한 신학적 문제에 닿아 있다. 대교황 그레고리우스가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림 사용을 적극 옹호한 가운데 동방교회는 성상사용을 반대했고 급기야 ‘성상파괴운동’이 일어나게 된다.성상에 반대한 동방교회의 핵심 논리는 이렇다. 예수나 마리아 혹은 성인들의 모습을 담고 있는 그림들 종교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우상숭배이다. 기독교 교리에 따르면 예수는 사람의 몸을 입고 태어난 신이다. 이것을 성육화(Incarnation)라고 한다. 예수는 완전한 신이자 완전한 사람으로 그에게는 신성과 인성이 공존한다. 그림은 인간 예수의 모습을 담을 수 있지만 그의 신성은 물질로 표현지 못한다. 따라서 예수를 그림으로 그리는 것 자체가 예수의 신성과 인성을 분리하는 행위로 교리에 반할 뿐 아니라 물질적 대상을 경배하는 우상숭배라고 주장한다. 로마 가톨릭의 성상옹호론자들은 동일한 문제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석한다. 신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온 사실 그 자체가 이미 육체 안에 신의 형상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뜻함으로 그림으로 그리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결국 성상을 둘러싼 논쟁은 비잔틴의 황제 레오 3세가 성상반대자들의 손을 들어주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726년 황제는 ‘성상 금지령’을 내렸고 교회를 장식하던 비잔틴의 미술품들이 대거 파괴되었다. 이 때부터 100여 년 동안 비잔틴 제국에서는 성상파괴운동이 진행되었고 그 여파로 대부분의 미술품이 희생되었다.성상 금지령이 발효되자 가톨릭의 서방교회는 게르만족에 대한 포교가 어려워졌고 이를 이유로 콘스탄티노플에 바치던 세금을 중단한다. 이 일이 발단이 되어 동서 교회의 본격적인 대립이 시작된다. 사실 로마 가톨릭에게 성상 금지령은 분쟁의 명목에 불과했다. 서방 교회의 속내는 비잔틴의 간섭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었고 결국 두 교회는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다./미술사학자

2022-12-05

포항 죽도시장, 낡은 이미지 버리고 거듭나야

포항을 대표하고 전국적으로도 명성을 널리 알리고 있는 죽도시장이 상가의 노후화와 위생 및 화재 취약성 등 각종 문제점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본지 보도2022년 12월 5일자가 있었다.특히 외래 고객이 많이 찾는 수산물도매시장의 부속시장인 분장어시장은 죽도시장의 노른자위 땅이라 불릴 만큼 요지인데도 고객의 발길이 줄어들고 있다 하니 걱정이다.어두컴컴한 골목과 축축한 바닥, 정체를 알 수 없는 악취 등이 고객의 발길을 끊게 하는 이유라 한다. 특히 분장어시장은 상인들조차 “쥐나 벌레 등이 수시로 나온다”고 귀띔할 정도로 위생 상태가 불량한 것으로 전해져 충격이다.죽도시장은 그동안 주차장 확보와 시설현대화사업 등으로 여러 차례 변신을 꾀해 왔다. 그럼에도 노후 상가가 늘고 위생이나 화재 취약성이 여전히 노출돼 경쟁력 있는 재래시장으로 거듭나지 못하고 있다.죽도시장은 1950년 갈대밭이 무성한 포항 내항의 늪지대에 노점상이 모여들면서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곳이다. 1971년 시장 개설허가를 받고 본격적인 상거래가 이뤄지면서 경북 동해안 최대 농수산물 거래 요충지로서 성장해 왔다. 지금도 1천개가 넘는 점포가 형성돼 있고 포항을 찾는 관광객이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광명소로서 명맥을 잇고 있다.비록 재래시장이지만 역사와 스토리가 있고 시내 중심지에 위치해 교통이 편리하며 활어시장에서 볼 수 있는 훌륭한 먹거리 등으로 관광객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하지만 시대 흐름에 따른 변화를 시도하지 않으면 현대화된 유통시장에 고객을 뺏길지 알 수 없다. 전국적으로 최근 10년 사이 200여개 재래시장이 사라진 것은 재래시장의 취약성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라 하겠다.죽도시장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당국의 지원도 필요하지만 상인들의 의지와 단합된 모습도 필수다. 재래시장의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개선하는 데 모두 힘을 모아야 한다. 죽도시장은 포항을 대표해 포항의 이미지를 대외적으로 알리는 곳이다. 포항의 소중한 관광 자산임을 인식하고 낡은 이미지를 버리고 거듭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2022-12-05

기적의 세리머니

홍석봉정치에디터 카타르 월드컵 축구 대회에서 포르투갈을 꺾고 16강에 오른 한국 선수단은 단체 슬라이딩을 하며 응원단과 함께 16강 진출의 기쁨을 만끽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대표팀의 슬라이딩 세리머니가 20년 만에 도하에서 재현됐다.축구경기에서 선수가 골을 넣은 뒤 보여주는 기쁨의 표현이 ‘골 세리머니’다. 우리말로 ‘득점 뒤풀이’다.골 세리머니는 80년대 이전에는 요란하지 않았다. 1982년 스페인 월드컵 결승에서 마르코 타르델리라는 선수가 득점 후 사자후를 지르며 질주하는 퍼포먼스 ‘타르델리의 포효’가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 세리머니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세리머니가 점점 발전돼 90년대부터 축구계의 콘텐츠로 자리잡았다.백혈병에 걸린 경북 칠곡의 여고생이 카타르 월드컵에서 손흥민 선수의 ‘럭키칠곡’ 골 세리머니를 보고 싶다는 사연이 화제다. 럭키칠곡 포즈는 왼손 엄지와 검지를 펴 검지가 아래쪽으로 향하게 하는 ‘7’자 모양의 자세로 김재욱 칠곡군수가 고안했다.칠곡 순심여고 1학년 김재은(15)양은 지난 3일 서울대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는 병실에서 ‘7’자 세리머니를 하며 축구 대표팀을 응원했다. 김양은 이날 SNS에 손흥민에게 골과 럭키세븐 세리머니를 해달라는 글을 올렸다. 자신은 물론 질병으로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에게 긍정적인 생각과 희망을 전하자는 뜻에서다.손흥민의 등 번호가 ‘7’번이고 대표팀과 토트넘에서 7번을 달고 뛴다. 칠곡은 첫 글자 ‘칠’과 발음이 같은 숫자 7을 ‘평화와 행운’의 상징으로 여긴다.럭키칠곡 세리머니가 손흥민의 새 아이콘이 되고 승리의 여신이 되길 바란다. 백혈병 김양에게는 기적의 세리머니가 되길./홍석봉(정치에디터)

2022-12-05

‘자전거 친화도시’

남광현 ​​​​​​​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소설가 김훈은 “자전거 타는 것은 과정을 생략하지 않고 거느리면서 내 몸을 다 부여하면서 가는 것이기에 매우 신나는 일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자전거는 엔진과 연료가 없이 인간이 가진 고유한 생명의 힘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며, 이는 중요한 문명적인 대안이자 아름다운 가능성이다”라고 하였다.그런데, 실상은 아파트 계단이나 외벽에 부서지고 녹슨 채 방치되어 있는 자전거가 너무 많다. 초중고등학교 시기에 놀이용이나 등하교용으로 집집이 한 대씩은 있었던 자전거가 점차 성인이 되면서 출퇴근용으로는 거의 사용을 하지 않고 있다.2015년 교통통계연보에서 대구광역시의 수송분담율을 보면, 승용차 36.5%, 대중교통(버스, 철도, 택시 등) 30.1%, 도보 25.9%이고, 자전거는 2.5%에 불과하다. 이후 2019년 현재 승용차 52.4%, 대중교통 38.9%로 증가하고 도보나 자전거 수송분담율은 오히려 감소하였다.대구시의 자전거 도로연장이 2021년 현재 1,071.5㎞로 7대 특광역시 중 서울시 다음으로 가장 길게 조성되었음에도 그렇다. 아마도 조성된 4가지 형태의 자전거도로 중에 자전거보행자겸용도로 비율이 87%로 가장 많고 자전거전용도로는 11%에 불과하여서 자전거 이동의 실효성이 매우 낮기 때문일 것이다.2021년 자전거 교통사고 통계를 보면 대구광역시는 인구 10만명당 자전거사고 발생건수가 17건으로 서울시(18건) 다음으로 많고 사망자 수도 4명으로 서울시(13명) 다음으로 많다. 자전거 사고의 원인은 매우 다양하고 안전시설과 의식의 부족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되지만, 자전거 운전자의 고령화도 큰 원인이 되고 있다. 실제 2021년 기준 연령별 전국 자전거 교통사고 현황을 보면 피해운전자 기준 사고건수 7천960건 중에서 51세 이상 연령대 발생건수가 4천67건으로 무려 51%나 되었다. 결국 자전거 사고는 자전거수송분담율 감소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2018년 기준 대구시의 에너지 부문 온실가스 직접배출량은 약 712.5만톤(이산화탄소 환산량)인데, 이중에서 수송 부문이 372.8만톤으로 무려 52.3%를 차지하며, 가정, 상업 및 공공부문을 합친량 200.3만톤(28.1%)보다 월등히 높다. 따라서 대구시의 2050년 탄소중립계획에 녹색교통(Green Mobility) 전략을 수립하였으며, 친환경차 전환, 대중교통 확충 및 자전거 이용 활성화 등의 계획을 수립하였는데, 가급적 자전거, 대중교통, 친환경차 등의 순서로 정책의 우선순위를 둘 필요가 있다.도로다이어트를 통한 자전거도로 조성, 자전거 주차장 확대와 자전거 표지판 정비 등 자전거 인프라 확대와 함께 자전거 안전교육장, 수리센터 등도 늘여야 한다.대구에는 시민사회가 주도하여 전국 최초로 에코바이크 앱을 만들어 자전거 마일리지 운동이 시작되었고,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지난 5월에는 아이바이크 대구클럽이 출범하여 자전거 출퇴근 캠페인과 각종 행사에 자전거 시민참여를 활성화하고 있어 ‘자전거친화도시’로 전국적 명성이 높아지고 있다.

2022-12-05

대중교통 ‘TK광역환승제’는 民生과제다

대구시와 경북도가 지난 2일 대구경북연구원에서 대중교통 환승체계 도입을 위해 맡긴 연구용역 최종보고회를 가졌다. 2024년 말로 예정된 대구권 광역철도 개통에 맞춰 대구와 경북간 대중교통 환승체계 개편을 위한 용역이다. 이번 용역결과를 바탕으로 대구시내버스, 대구도시철도와 대구 인근 경북의 8개 시·군 시내버스간 환승체계가 결정된다. 8개 시·군은 대구와 공동생활권인 김천, 구미, 영천, 경산, 청도, 고령, 성주, 칠곡이다.이번 용역에서 나온 광역환승제 대안은 4가지로, 무료환승제(기본요금 100% 할인), 정액할인제(기본요금 50% 할인), 거리비례제(기본요금 10㎞ 이후부터 추가요금 부과), 무료환승제+광역철도 정액할인제(버스·도시철도간 환승시 무료, 광역철도는 50% 할인)이다. 환승체계는 관련 지자체가 협의해 내년에 확정된다. 환승제가 시행될 경우, 대구·경북을 상호 방문하는 시·도민들이 요금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돼 대중교통 이용이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함께 대중교통 환승제는 대구·경북간 교류 확대의 마중물 역할도 해 시·도민의 생활권이 확대되고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대구시내버스 업계에서는 만약 무료환승제로 결론이 날 경우, 업계 적자폭이 많이 늘어날 것을 걱정하고 있다. 무료환승으로 인한 요금손실을 차치하더라도 경북 시내버스 업체들의 대구진출이 가속화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금도 시행하고 있는 대구­경산간, 대구­영천간 무료환승제로 인해 대구시내버스 업계가 타격을 입은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경북도민의 입장에서 보면, 대구와 인접해 있는데도 불구하고 시내버스 환승이 안돼 요금을 2배 이상 부담하고 있는 것은 불합리한 측면이 있다. 대구시내버스의 경우 만약 적자가 나더라도 준공영제를 시행하고 있는 만큼 손실분은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할 것으로 예상한다. 대중교통 광역환승제는 생활권이 같은 대구·경북의 주민불편을 해결하기 위한 숙원사업이니만큼 ‘민생과제 해결’이라는 차원에서 판단해야 한다.

2022-12-05

서해 공무원 피살, 인권 혹은 정쟁

김진국 고문 문재인 전 대통령이 “도를 넘지 마라”고 했다. 검찰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조작 여부를 수사하는 데 대해 지난 1일 입장문을 내고 불만을 표시했다. 언뜻 보기에 문 전 대통령이 부하를 보호하고, “모든 게 내 책임”이라고 대인배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자세히 읽어보니 그런 첫인상에 의심이 생긴다.2020년 9월 21일 실종된 어업지도원, 이대준 씨를 하루 뒤 북한군이 사살, 소각했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이 씨가 월북했다가 사살됐다고 발표했다. 발표대로라면 그는 대한민국이 싫어서 달아났고, 우리와 대치 중인 북한에 귀순했다. 죽었어도 동정의 여지가 없다. 자기 의지로 죽을 곳을 찾아갔다. 이 씨 가족도 죄인이다. 연좌제가 없어졌다고 하지만 월북자 가족이 겪는 고통은 여전하다.그런데 정권이 바뀌면서 국방부가 “실종 공무원의 자진 월북을 입증할 증거는 없다”라고 발표했다. 해경도 “수사했지만, 월북 의도를 발견하지 못했다”라고 뒤집었다. 간단한 문제 같지만, 당사자에게는 완전히 다르게 다가온다. 적국으로 달아날 수밖에 없는 많은 죄를 저지른 인간쓰레기, 부역자로 낙인이 찍힐뻔한 이 씨가 정부의 부실 대응 탓에 희생된 억울한 국민이라고 인정받는다. 가족도 손가락질이 아니라 사과와 위로, 보호와 보상을 받게 된다.이 사건은 정쟁의 대상이면서 인권 문제다. 두 가지 성격을 다 담고 있다. 하지만 국가 공권력과 힘없는 개인이 얽혀 있다면, 국민의 인권, 생명 문제를 먼저 살펴보는 게 순서다. 국민 옆에서,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도 문 전 대통령이 이 씨와 그 가족에게 사과부터 하지 않고, “도를 넘지 말라”며 정치적 반격을 한 것은 실망스럽다.문 전 대통령은 입장문에서 “사실을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사실을 추정”했다고 한다. 이 씨가 월북했는지, 표류한 것인지 단정할 수 없었다는 말이다. 단정할 수 없다면 억울한 누명은 쓰지 않게 하는 게 형사법의 원칙이다.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일부 보도를 보면 단순히 부족한 정보로 추정만 한 것인지도 의문이 생긴다. 조작 가능성이다. 당시 조사 당국은 이 씨가 한자가 적힌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는 정보를 애써 무시했다. 자진 월북이 아니라는 다른 정황들도 모두 외면했다. 관련 첩보를 삭제한 흔적도 있다. 채무 등 이 씨 형편도 과장됐다. 미리 방향을 정해놓고 ‘월북’으로 몰아갔다고 의심된다. 국가 공권력이 힘없는 하위 공무원이 살해되도록 방치하고, 정치적 목적으로 범죄자를 만들었다면 중대한 인권 범죄다.문 전 대통령은 자신이 ‘월북’이라는 판단을 ‘최종승인’, ‘수용했다’라고 밝혔다. 판단을 잘못하고, 조작했다면 자기 책임이라는 말인가. 아니다. 교묘한 말장난이 숨어 있다. 그는 자신이 ‘판단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보고와 판단을 ‘수용했다’라고 했다. 조작이나 오판은 부하들 책임이라는 말이다. 자신은 잘못된 보고를 받고 ‘수용’한 책임밖에 없다.문 전 대통령은 “다른 가능성은 제시하지 못하면서 발표가 조작되었다는 비난만 한다”라고 주장했다. 다른 가능성이나, 다른 증거를 확인하려면 수사가 필요하다. 그 증거가 어디 있나. 문 대통령은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해 15년간 볼 수 없게 봉인했다. 유족에게 진실을 밝히겠다고 약속해놓고, 확인조차 못 하게 만들었다. 풀어줄 수 있는 건 본인이다. 그런데 감사원의 서명 조사 요구에도 그는 “무례하다”라고 발끈했다.문 전 대통령은 “오랜 세월 국가 안보에 헌신해온 공직자들의 자부심을 짓밟는다”라고 비난했다. 증거를 조작하고, 불가능한 판단을 억지로 내려 인권을 짓밟은 ‘공직자의 자부심’은 강조하면서, 확인하지도 못한 혐의를 씌워 고통받은 피해자에게는 사과도 하지 않았다. 무례하고, 도를 넘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나. 감히 전직 대통령을 건드린다는 말인가. 법 앞에는 만인이 평등하다. 황제라도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는 게 민주국가다. 국민의 편, 인권의 눈으로 이 사안을 바라볼 때 국민도 전직 대통령으로 예우할 것이다. /본사 고문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2-12-04

테니스를 골프보다 더 즐기는 이유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필자는 오랫동안 테니스와 골프를 즐겨왔다. 둘 다 나이가 들어도 즐길 수 있는 개인 운동으로 즐겁고 건강에도 좋은 운동들이다.그런데 “테니스와 골프 중 어느 운동이 더 즐거운가”라고 물으면 서슴없이 “테니스”라고 대답한다.필자가 왜 테니스를 더 좋아하고 즐길까 하는 이유가 좀 색다르다. 운동량이 더 많아서 라든가 비용과 시간이 적게 든다는 점이 보통 테니스를 골프보다 더 좋아하는 대표적인 이유이다.테니스가 2시간 정도의 운동량으로 4시간의 골프운동량을 넘어서고 잠시 시간을 내서 칠 수 있지만 골프는 하루 종일 시간을 내야 하고 비용도 한국에서는 테니스보다 엄청 비싸기에 그런 이유가 테니스를 더 즐기는 대표적 이유가 된다.그런데 필자가 테니스를 더 즐기는 이유는 위에 열거한 이유도 있겠지만 아주 색다른 이유가 있다.스코어를 세는 방식이 공정하기에 마음이 편하다는 이유이다. 테니스는 상대의 공을 받아치면서 스코어가 카운트 되기에 속일 수도 없고 봐줄 수도 없는 경기이다. 물론 약한 상대를 위해 살살 치는 경우가 간혹 있지만 대체적으로 최선을 다하고 스코어도 정확히 카운트 된다.그런데 한국의 동호인 골프는 시작부터 룰이 파격적이다. 첫 홀이나 마지막 홀은 모두 파(par)라고 선언하기도 하고, 더블보기(double bogey) 이상은 카운트 안한다든가 하는 룰도 있다. 또 그린에서 OK라는 제도가 있는데 기준이 들쑥 날쑥이어서 한사람이 버디(birdie)를 하면 모두 OK라고 하면서 퍼팅을 안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공을 만지고 라이(lie)를 개선한다든가 오비, 해저드 티(OB, Hazard tee) 가 별도로 플레이에게 유리하게 설정되어 있기도 하다.캐디에게 들은 이야기는 일본이나 미국사람들이 골프를 치면 스코어를 공정하고 정확히 카운트 한다고 한다. 스코어를 적당히 얼버무리지 않고 공정한 카운트를 통한 즐거움을 찾는다는 것이다.한국 골퍼들에게 인기를 끄는, 줄로 연결된 티(tee)가 왜 미국에는 없는지 한동안 의아했었다. 그런데 줄티는 타구 방향을 가르치기 때문에 룰에 어긋나 사용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룰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 몸에 배어 있는 것이다.한국에서 불공정한 스코어링으로 진행되는 골프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다. 왜 미국은 과학, 의학 등 분야에서 노벨상을 300여 명도 넘게 받고 우리 한국은 한 명도 없는가? 그건 적당주의를 거부하고 룰을 지키는 그들의 몸에 밴 문화 때문이 아닐까?‘MIT, 스탠퍼드 같은 미국 명문대의 조교수는 인간이 아니다’라는 자조적인 말은 그들이 테뉴어라고 일컫는 종신직을 얻기 위해 피눈물 나는 노력을 하고 있는 현상을 일컫는다. 반면, 한국 대학 교수들의 테뉴어 심사는 일부 대학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명목뿐인 경우가 많다. 한국대학에서 테뉴어를 못 받아 다른 대학으로 옮기는 교수를 보는 것은 쉽지 않다.한국의 ‘적당주의’는 사회 곳곳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학계뿐만 아니라, 최근 일어난 이태원 참사부터 시작해서 오래전 일어난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붕괴, 태풍 매미 참사 같은 대형 사고는 물론, 정교한 정책질문이 아닌 호통으로 일관하는 국회 청문회에 이르기까지 학계, 사회, 정치 모든 면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얼마 전 미국유학 중 맹장이 터져 수술을 해야 하는 아들이 대학병원에 입원했으나 수술을 즉시 하지 않고, 항생제 투여로 염증을 치료할 수 있는지 가능성을 보는 의사를 보면서 답답해하던 기억이 있다. 수술은 안 할 수 있으면 안 한다는 원칙이 있다고 한다. 미국 의술의 현장 집행 방법에 대해 의문점을 가졌던 적이 있다.한국의 친구 의사는 “한국 사람들은 손재주가 좋아서 골프도 잘하고 그리고 병원에서 수술도 잘하는 거야. 자네 아들 맹장염 수술도 역시 한국이 최고야”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필자에게 한 가지 진한 의문이 다가왔다. “골프도 잘하고 수술도 잘하는 손재주 좋고 머리 좋고 재능 있는 한국 사람들이 왜 노벨상은 단 한 개도 타지 못할까?”엉뚱하게도 필자는 골프에서 원칙을 지키는 스코어링과 맹장염 수술을 미루면서 원칙에 충실하려는 미국의학이 답답하긴 해도 노벨상 수백개를 타낸 밑바탕을 형성하고 있는 저력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사실 수천가지 약품은 한국인이 만든 건 없다고 한다. 서양인들이 만든 약품과 CT, MRI 등 기술과 로봇 수술 등 대부분 서양에서 만들어 졌다. 손재주는 좋다고 하지만 그들이 만든 수술방식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아이러니를 생각할 때 무엇이 더 중요할까?“빨리빨리” 와 적당주의가 빨라보여도 결국 깊이를 더하지 못하는 근본적 문제를 가져와 각종사고는 물론 노벨상을 타지 못하는 얕은 학문을 초래하고 있는 건 아닐까?아마도 그건 동호인 골프에서부터 적당주의 카운트 방식을 몰아내는 것이 첫 걸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간다.

2022-12-04

기후 변화 불확실성에 대응할 역량 있는가?

양만재포항지역사회복지연구소 소장 폭우가 또 내렸다. 지난달 22일 오전 11시까지 울진군 온정면 182.5㎜, 영덕군 영해면 146.4㎜, 포항시 호미곶 139.5㎜의 비가 내렸다. 11월 최대 강수량이라고 했다.겨울에 즈음하여 집중 호우는 기후변화를 연속 실감한다. 지난 9월초 한반도에 상륙한 힌남노 태풍은 한국의 제조업의 기반을 붕괴시켰고, 포항지역 시민 10명의 귀중한 생명을 빼앗아 갔고, 600여 명의 이재민을 발생시켰다. 시간당 100㎜ 이상 내린 폭우에 따른 천재지변의 자연재난과 도시화와 산업화에 의한 인재와 결합된 일명 ‘복합참사’(hybrid disaster)일게다.8월 서울 폭우, 9월 힌남노 폭우에 이어 11월에 다시 우리 경상북도 지역은 집중호우로 생명과 재산에 위협에 느끼고 있는데 반해, 호남지역은 최악의 가을가뭄으로 인해 광주지역은 30년만에 제한 급수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하고 있다.기후변화에 따른 참사라는 말이 언어의 수준을 넘어 재산을 파괴하고 생명을 파괴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기후변화의 심각성은 갈수록 점증되고 있다. 왜냐면, 첫째, 기후변화는 태풍, 홍수, 산불 등과 같은 재난을 갑작스럽게 발생케 한다는 것이다.포항시가 겪은 힌남노 태풍으로 홍수 피해도 기후변화의 속성을 보였다. 또 기후변화로 인한 갑작스러운 자연재난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발생 빈도가 증가하면서 연속적으로 발생할 뿐만 아니라 동시다발적으로 참사가 발생하여 재난의 피해가 ‘계단식’(cascading)으로 증가하는 특징을 보인다.서울과 경상지역에서 예기치 않은 집중호우가 쏟아지고 전라도 지역은 최악의 가뭄 사태로 재난의 피해를 가중시키는 상황이 입증하고 있다.기후변화는 다중적인 속성을 실감케 한다. 이상 기후현상이 발생할 수 없는 지역에서도 예기치 않은 재난이 발생하는 특징도 보인다.예컨대 지난 500년 동안 홍수피해와 무관하였던 지역에서 홍수피해를 키워 세상이 변했음을 체험하고 있다.우리 지역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포스코 창립 50여년만에 공장가동이 멈춘 초유의 사태를 직면했으니 말이다. 작은 변화가 큰 변화를 창출하기도 한다. 지구의 평균기온 1℃가 증가하면 지구의 극단적인 참사를 일으키는 주범이 바로 기후변화로 귀속시킬 수 있는 세상으로 변했다.기후변화에 관한 가장 권위 있는 세계협의체가 지난 4월에 발표한 내용이다. “만일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이 1.5℃에 도달하면 약 22억 인구가 5년마다 더 잦고 거센 폭염에 노출되고, 해수면이 상승하며 일부 생물종은 멸종하고 식량위기가 심화하고 새 전염병이 출몰한다.”점진적인 작은 기온 변화가 갑작스럽고 예측가능하지 않는 참사의 주범이 바로 기후변화이다. 2025년부터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를 시작하지 않으면 최악의 순간을 맞게 될 것이라는 내용도 있다.기후변화의 재난증가는 이제 더 이상 강 건너에서 바라볼 불이 아니다. 재난의 강도, 범위, 빈도가 증가할 것이며 일상의 삶을 파괴하는 심각한 위협으로 다가왔다.세계 국가의 정상들을 향해 비판의 메시지를 거침없이 전달하고 있는 스웨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도 더욱 위협적인 주장을 했다. “기후 변화는 인류에게 존재론적 위협이며 이로 인해 인류는 여섯 번째 대종말을 맞이하고 있다. 생존은 회색 지대가 존재하지 않는 죽느냐 사느냐의 영역이다. 현대 문명의 존속 여부와는 상관없이 기후 변화는 저지되어야만 한다.”기후재난 위험에 대응하는 전략과 방안도 결코 쉽지 않다. 복합재난인데다 과학적인 사실에 근거한 예측가능성이 낮은 ‘불확실성’ 때문이다.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럭비공이나 다름없다. 예컨대 기상청의 예보가 예상에서 벗어나는 횟수가 증가하고 있다.우수한 장비를 갖춘 기상청은 힌남노 태풍이 포항에 근접할 것이라는 예보는 할 수 있지만, 포항시의 어느 지역에 어느 시간대에 400~500㎜ 집중호우 예측을 할 수 있는 수준에 아직은 못 미치고 있다. ‘위험’을 쉽게 인지할 수 있고 충분한 예상을 할 수 있고, 사전 징후와 예고가 통하는 ‘단순한 재난’이 아니다. 위험을 예측하기 힘들고 예측할 확률적 지식도 부재한 ‘불확실성이 높은 복합재난’이다.그럴지라도 우리는 지역수준에서의 기후변화에 따른 불확실성을 대처하는 실천적 전략으로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 과거와 근본적으로 다른 기후 변화의 불확실성과 함께 살고 대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할 시기가 도래했다. 예측과 통제로 주도하는 중앙 집중식 관료와 전문가 중심의 지식에 의해 대처하는 기술 관료적인 방안으로는 부족하다.지역에서의 민관이 자발적이며 다양한 영역에서 서로 협조와 참여를 이끌어 내고 다양한 지식을 활용하는 ‘회복탄력성’과 ‘변혁적인 리더십’이 필요한 현실이다.

2022-12-04

경운기

가난했던 아버지는 반평생 땅 한 평 가지지 못했다. 사람의 손이 닿기 어려운 산비탈을 개간하여 고구마나 콩을 심어 놓으면 짐승이 제 주인인 듯 먼저 다녀갔다. 실망한 아버지는 점점 바쁠 것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산골의 아침 햇살이 방안으로 들이닥치면 그제야 이불에서 빠져나왔다.아버지와 달리 어머니는 걸음이 재발랐다. 동살이 잡히면 채마밭에서 웃자란 풀을 향해 호미를 들었다. 고추, 상추, 호박이 잘 여물 수 있게 고랑을 돋우고는 부엌으로 우물가로 잰걸음을 걸었다. 어머니 덕분에 우리 집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봉수대처럼 산골 마을의 아침을 알렸다. 그러나 우리 집 살림살이는 쉽게 볕이 들지 않았다갑자기 어머니 걸음이 빨라졌다. 새마을 개발위원과 이장을 만나 머리를 맞대더니 이웃의 논과 밭을 무시로 드나들었다. 뭔가를 도모하는가 싶더니 읍내에 나가 경운기를 덜컥 샀다. 농사일에 서툴렀던 아버지는 돈이 없다는 것은 참 좋은 핑계였다. 더욱이 경운기처럼 덩치 큰 농기구를 들인다는 것은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경운기가 집에 오는 날, 아버지의 목소리는 쩌렁쩌렁했다. 구령에 맞춰 출정식을 하고 우리를 경운기에 태웠다. 어머니는 대문을 활짝 열고 손을 흔들어주었다. 아버지의 심장도 경운기 엔진처럼 힘이 넘쳤다. 스타트 레버를 수십 번 돌려 퉁, 퉁, 탕, 탕, 탕 경운기 엔진과 펌프질한 아버지의 심장이 밭으로 나갈 준비를 끝냈다.동창을 벗기는 것은 아버지의 경운기 소리였다. 비알밭을 맴돌고 있던 콩새는 아버지 연장 끄는 소리에 숨죽이고 경운기 소리에 댓 걸음 도망쳤다. 산비탈에서 탕탕거리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어느 사이 논에서, 하천 밭에서 저녁노을을 물릴 때까지 경운기 소리가 났다.타작할 때면 경운기에 줄을 걸어 탈곡기를 돌렸다. 경운기 소리 못지않게 탈곡기도 ‘아롱시롱’ 떠들어 댔다. 그 소리에 신이 난 우리는 마당과 뒤안을 쏘다니며 놀았다.하루는, 평상시처럼 일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중이었다. 막 모퉁이를 돌아가다가 경운기가 갑자기 산언덕으로 올라갔다. 아버지는 방향을 돌려 보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급기야 아버지는 조종간까지 놓쳐버렸다. 그 순간, 아버지는 거칠게 발버둥 치는 경운기에서 뛰어내렸다. 어머니까지 버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디론가 도망갔다.어머니는 평생을 같이한 당신이 그럴 수 있느냐고 따졌다. 다 늙어서 혼자 살려고 줄행랑치는 꼴이 볼썽사나웠다며 어머니는 분한 마음을 쏟아냈다. 겁이 나서 얼떨결에 그랬다고 아버지가 해명했지만, 경운기 사건이 소문이 나자 아버지는 대문 밖을 나가지 않고 집 안에만 머물렀다. 이순혜 수필가 경운기 시동 거는 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았다. 아버지의 부지런에 어지간히 시달린 경운기였지만, 헛간 구석으로 밀려나 녹이 슬기 시작했다. 어둠이 내리면 덜컹거렸던 몸을 쉬고 또 가야 할 곳을 생각하며 이우는 별을 헤아렸던 때가 가물가물했다. 후둑 후두두 헛간 슬레이트 지붕에 비가 내려도 아버지는 경운기를 돌보지 않았다.아버지도 다리에 힘이 빠졌다. 헛간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경운기와 마루에 힘없이 쪼그리고 앉아 있는 아버지는 그렇게 같은 시간을 보냈다. 한 하늘 아래에서 아버지와 함께했던 경운기도 탕탕거렸던 소리를 기억하고 있을까. 헛간에 오도카니 놓인 경운기에 아버지는 더는 시동을 걸지 않았다.아버지의 전성기도 이울었다. 뜨거운 심장 소리를 내며 한 시대를 풍미하던 아버지는 더는 경운기 시동을 걸지 않았다. 마당 구석에 있던 경운기는 텅텅 힘 빠진 소리를 내며 옆집 아재네로 옮겨졌다.경운기는 일머리를 모르는 아버지에게 자존심과 같은 존재였다. 그 자존심이 사라지고 아버지의 기력도 쇠하여졌다. 그렇게 경운기가 없는 헛간은 오래도록 고요에 들었다.어디선가 탕탕탕 경운기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2022-12-04

상상이 곧 현실이 되는 대구 동구

윤석준 대구 동구청장 “모든 것은 SF로 통한다. 현대의 SF 작가들이 오늘 발명하는 것들을 당신과 나는 내일 실현할 것이다.”무려 50년 전, 영국의 SF 소설가이자 역사가인 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가 한 말이다.드론택시, 플라잉카, 자율주행차 등 SF 작가들이 상상하고, 수많은 영화로 나왔던 장면들이 이제 현실로 만날 날이 머지않았다.그 현실에 한 발 다가간 날이 최근 있었다. 동구청이 주관한 공항후적지의 성공적인 개발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열렸기 때문이다.‘미래모빌리티와 첨단산업이 융합된 스마트도시’란 주제로 열린 이날 토론회에는 국내 최고의 도시계획과 미래모빌리티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해 열띤 토론을 펼쳤다.주제 발표와 토론을 듣는 내내 머릿속으로 상상을 해보았다.드론 택시로 이동하는 시민들, 버티포트(Vertiport)라고 불리는 UAM(Urban Air Mobility: 도심항공교통)의 정류장에서 하늘로 날 준비를 하는 플라잉카 등 마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우리 동구에서 이뤄질 것이라는 생각을.‘UAM은 가까운 미래의 이동수단이 될 것이며, 그 중심엔 대구 동구가 있다’, 토론회에서 나온 많은 이야기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어디 상상이나 한 번 해봤을까. 불과 몇 년 전만해도 낙후된 도시, 소음의 도시, 고도제한의 도시였던 곳이 바로 동구였다.하지만 이제 동구는 내일을 기대하고 있다.UAM 특화도시로 발돋움 할 준비를 하고 있다. 토론회에서 공항후적지가 UAM 특화도시가 될 수 있는 최적의 입지 조건임이 확인됐다.특히 공항후적지는 자유로운 도시 설계를 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고도 설정부터 회랑 설계가 용이하고, 충분한 서비스 인프라를 반영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한 마디로 공항후적지는 계획된 UAM 특화도시로 건설이 가능하다는 말이다.앞으로 공항후적지는 UAM이 결합된 친환경 글로벌 수변도시로 거듭나 대구를 넘어 대한민국의 대변혁을 이끌 것이다.한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공항후적지 개발에 대한 동구 주민들의 기대가 매우 크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동구청에 실시한 공항후적지 개발 구민설문조사에서 응답자 중 93.6%가 ‘공항후적지 개발이 동구발전에 기여할 것이다’고 답한 것. 인상 깊었던 점은 공항후적지 개발을 통해 동구에 계속 거주할 의향을 묻는 질문에도 95.7%가 긍정적으로 대답했다. 공항후적지 개발을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과제도 확인 할 수 있었다.응답자 중 40.3%가 다양한 첨단산업이 어우러진 중견 기업도시 조성을 통한 경제 활성화를 해야 한다고 답했으며, 34.9%는 국내외 대기업 1∼2개 중심으로 선택과 집중을 꼽기도 했다.즉 아파트 위주의 공동주택이 아닌 첨단산업을 통한 기업 유치로 일자리를 만들라는 게 동구 주민들의 생각이다. 또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특별법 제정을 통한 국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도 답했다.이제 시작이다.이날 토론회에서 나온 전문가들의 의견 그리고 설문조사를 통해 나타난 주민들의 생각을 모으고 모아 공항후적지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무엇보다 연내 신공항 특별법 역시 통과되어야 한다.앞으로 대구 동구청은 공항후적지 개발과 관련해 주민들의 생각을 묻는 자리를 더 많이 만들 생각이다.특히 공항후적지 인프라 구성에 대해 ‘테마가 있는 도심 숲, 수변공간 조성’(38.9%), ‘대규모 복합쇼핑몰’(29.1%), ‘세계적인 테마파크 유치’(17.8%) 등 의견이 다양한 만큼 주민들이 원하는 수변공간의 모습은 무엇인지, 원하는 쇼핑몰과 세계적인 테마파크는 어떤 것이 있는지 등 지속적으로 들어볼 생각이다.토론회에 참여한 한 주민은 나에게 “공항이 간다는 말을 들은 게 10년도 넘었다. 가지 못할 거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토론회를 보니 이제 공항이 가는 게 조금 실감이 난다”고 말씀해 주셨다.주민들의 기대가 크다.소음과 고도제한 등으로 수십년 고통을 받아온 우리 주민들을 위해서라도 성공적인 대구경북통합신공항 건설과 공항후적지 개발에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다.동구 주민 모두와 함께 무한한 가능성이 확신이 되고, 상상이 곧 현실이 되는 공항후적지를 반드시 만들겠다.

2022-12-04

개인과 국가

김규종 경북대 교수 월남(越南) 작가 이범선(1920∼1982)의 단편소설 ‘오발탄’(1959)을 읽다 보면 숨이 턱턱 막힌다. 요즘엔 상상하기도 힘든 새빨간 가난이 등장인물들을 날로 먹어 치우기 때문이다. 가장인 철호의 모친은 해방이 되었다고 곱게 차려입고 만세까지 불렀지만, 토지개혁으로 집과 땅을 빼앗긴 채 남한으로 내려온다. 6·25 한국동란 와중에 폭격으로 실성한 그녀 입에서는 ‘가자, 가자’하는 소리만 흘러나온다.계리사(공인회계사) 사무실 서기로 일하는 철호에게는 이대를 졸업한 아내와 다섯 살 먹은 딸아이, 남동생 영호와 여동생 명숙이 있다. 10년 전 음대 졸업식장에서 싱싱하고 어여뻤던 아내는 가난에 찌든 만삭의 몸이고, 딸아이는 철호의 셔츠를 잘라 만든 치마를 입고 있다. 영호는 고학으로 대학을 다니다가 제대한 후 일자리도 구하지 못한 채 2년 넘게 무직이다. ‘양공주’ 노릇을 하는 명숙에게 철호는 말을 섞지 않은 지 오래다.“해방촌 고개를 추어 오르기엔 속이 너무나 허전했다. 산비탈을 도려내고 무질서하게 주워 붙인 판잣집들이었다. 철호는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레이션 곽을 뜯어 덮은 처마가 어깨를 스칠 만치 비좁은 골목이었다. 부엌에서들 아무 데나 마구 버린 뜨물이 미끄러운 길에는 구공탄재가 군데군데 헌 데 더뎅이 모양 깔렸다.”처절한 빈곤으로 시달리는 철호에게 영호가 양심이고 윤리고 관습이고 법률이고 다 벗어던지자고 말한다. 양심은 손끝의 가시, 윤리는 나일론 팬티, 관습은 리본, 법률은 허수아비라는 것이다. 가시는 빼내면 그뿐이고, 나일론 팬티는 입으나 마나 하며, 리본은 없어도 그만이고, 허수아비에 참새는 놀라지만, 까마귀는 그것을 비웃는다는 명석한 논리가 아닐 수 없다.하지만 양심적인 지식인이자 선량한 인간 철호는 영호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법과 정의 그리고 윤리와 도덕은 철호가 금과옥조로 지키는 신념이자 철칙이다. 생활의 고통이 아무리 크다 해도 철호는 금지의 선(線)을 넘어서지 않는다. 하지만 영호의 생각과 행동은 철호와 다르다. 법과 정의가 무너진 약육강식의 정글에서 살아남는 극단적인 수단 가운데 하나인 은행강도 짓을 하는 것이다.우리는 ‘오발탄’의 결말을 알고 있다. 돌이킬 수 없는 길을 선택한 그들을 찾아오는 것은 죽음과 감옥과 처절을 극한 완벽한 절망뿐이다. 여기서 우리는 철호의 선택과 영호의 선택을 사유해야 한다. 국민의 가난을 해결하지 못하는 국가에 대하여 영호는 격렬한 저항의 방식을 택하지만, 철호는 순응 일변도로 나아간다. 현대사회에서 개인과 국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하는 심각한 문제를 이범선은 제기한 셈이다.이승만 치하에서도 적잖은 인간들은 호의호식했고, 일부는 권력의 호사마저 누렸다. 그러나 허다한 철호와 영호는 가족은커녕 개인 하나도 구원하지 못한 국가의 희생양으로 전락한다.그 가난뱅이들의 뼈아픈 삶의 질곡을 외면하고 그 같은 참상에 침묵하는 국가를 어찌할 것인지, 그런 정황에 처한 개인의 선택은 또 무엇이어야 하는지, ‘오발탄’은 묻고 있다.

2022-12-04

“축구공은 둥글다”

우정구 논설위원 축구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현대식 축구의 개념이 완성된 곳은 영국이다. 1863년 영국은 세계 최초로 축구협회를 설립했고, 이후 축구의 세계화에 기여함으로써 종주국의 위치를 지금도 고수하고 있다.우리나라에 축구가 전해진 것은 1882년 제물포에 상륙한 영국군에 의해서다. 육지에 상륙한 그들이 축구를 하고 이를 지켜본 어린이에게 축구공을 건네주고 간 것이 시발이라 한다.축구공은 총 12개의 5각형과 20개의 6각형으로 이어져 있다. 공에 바람을 불어넣으면 각 부분들이 부풀어 오르면서 꼭지점과 모서리가 없어지고 둥근 모양으로 변한다.“축구공은 둥글다”는 말을 쓴다. 축구 경기에는 이변이 일어날 수 있기에 그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카타르 월드컵에서 연속 이변이 일어나 화제다. 일본이 독일과 스페인을 꺾고 연속 16강에 올랐는가 하면 한국이 포르투갈에 역전승하면서 16강에 올라 세계를 놀라게 했다.한국과 일본 등의 승전보는 아시아권 국가의 축구 역량이 크게 신장된 결과기도 하지만 이들 국가의 부단한 노력의 산물이라는 평가도 있다.특히 일본은 2005년 ‘일본의 길’ 프로젝트를 시작해 이번 대회에 모두 19명의 유럽파 출신 선수를 등용했다. 우리(8명) 보다 2배나 많은 숫자다.월드컵 4회 우승 경력을 가진 독일 전차군단의 몰락 또한 이변이다. 준우승 4번까지 합쳐 독일만큼 막강한 팀은 없으나 2번 연속 16강 탈락으로 독일은 충격에 빠져 있다.스포츠 경기의 이변은 스포츠에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다. 뻔한 승부는 재미가 없다. 둥근 축구공 때문에 한국 축구에 거는 기대감 또한 높아져 있는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2-12-04

포항만 제공할 수 있는‘항만 낀 테슬라 産團’

포항시가 ‘테슬라전기차 아시아 제2공장’ 유치를 위해 전용 산업단지를 영일만에 조성하기로 한 것은 놀라운 발상이다. 포항시는 지난 1일 테슬라 기가팩토리 전용 산단 지정을 위해 경북도와 협의 절차에 들어갔다. 해당 부지는 북구 흥해읍 용한리(영일만3일반산업단지와 영일만4일반산업단지 우측)다. 이 부지는 영일만 산업단지 중에서 항만 접근성이 가장 뛰어난 곳이다. 정부가 최근 개최한 테슬라 공장유치 제안설명회에서도 밝혔듯이, 포항은 테슬라 공장입지로는 국내 최적지다. 전용항만 제공 외에도, 포항은 전기차의 핵심인 전국 최강의 배터리 산업 생태계를 갖추고 있다. 포항의 ‘차세대 배터리 리사이클링 규제자유특구’에는 포스코케미칼, 에코프로, 삼성SDI, LG에너지솔루션 같은 세계적인 이차전지 대기업이 포진해 있으며, 정부로부터 3년 연속 우수 특구로 지정됐다.포항에는 이미 세계 기업가치 1위인 애플이 들어와 있다. 포스텍에 입주한 애플은 지난 4월부터 ‘애플 개발자 아카데미’를 개설해 최근 두 번째 학기 수강생을 모집하는 중이다. 9개월 과정의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는 애플 아카데미는 소프트웨어 핵심인력을 양성하는 곳이다. 애플은 이와 함께 포항에 ‘애플 제조업 RD 지원센터’도 열어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최신 스마트 기술을 트레이닝시키고 있다. 애플은 그동안 스마트폰 경쟁사인 삼성전자가 장악하고 있는 한국시장에 투자할 마음이 없다는 태도를 고수해 왔지만, 지난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포항에 투자하게 됐다. 경북도와 포항시, 포스텍이 민·관 합동TF를 구성해 애플 유치에 총력을 쏟아온 결과다.아직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지만, 현재 포항지곡연구단지에는 제3·4세대 방사광가속기, 나노융합기술원, 한국로봇융합연구원 등의 우수한 연구기관과 포항창조경제센터가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소프트웨어 자산과 애플기술까지 연계할 경우, 테슬라 전기차 공장의 효율성과 경제적 성과는 극대화될 것이다. 중국에 이어 아시아에 2공장 부지를 찾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포항을 눈여겨볼 것을 기대한다.

2022-12-04

어려울 때일수록 희망나눔 캠페인에 동참을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경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희망2023 나눔캠페인을 시작했다. 대구는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에서, 경북은 도청 앞마당에서 출범식을 갖고 사랑의 온도 탑을 채우기 위한 본격 장정에 나섰다. 이 캠페인은 이달 1일부터 내년 1월 31일까지 62일간 진행되며 전국 17개 시도가 함께 동참한다. 경북은 지난해 목표액보다 11%가 늘어난 152억6천만원을 목표로 했다. 대구시 목표액은 100억원이다. 이 기간동인 기부에 참여할 사람은 공동모금회 사랑의 계좌나 각 주민센터, 언론사 등에 성금과 물품을 기탁하면 된다.매년 이맘때쯤 사랑의 온도탑이 올라가게 되면 우리는 또한번 우리의 이웃을 생각하게 된다. 한눈팔지 않고 바쁘게 살아왔던 한해를 되돌아보면서 어렵고 힘든 이웃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표시하는 시간이다. 사회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우리는 과연 얼마나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며 살아왔는지를 반성하는 시간이기도 하다.올해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3년째 이어지는 데다 글로벌 경제난까지 겹쳐 어렵게 살아가는 이웃이 더 늘었다. 물가는 다락같이 올랐고 일자리마저 줄어 방황하는 이웃들도 늘었다.십시일반의 기부가 지금 필요한 때다. 작은 나의 기부가 사회를 따뜻하게 만들고 이웃에게는 희망을 안겨 준다. 우리나라가 세계 경제강국이라 하지만 기부문화에서는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 2020년 세계기부지수 자료에 의하면 한국은 110위권에 머물렀다. 매년 기부금은 늘지만 기부문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부족하다.나눔과 봉사는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경북어린이집연합회는 2014년부터 사랑의 동전모으기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고사리손으로 모은 동전이 모여 2억원이 넘는 돈이 경북지역의 어렵고 힘든 이웃에게 전달됐다. 이번도 이들이 모은 동전이 사랑의 탑 첫 기부자로 등록했다. 이웃사랑은 실천할 때 비로소 그 가치가 빛날 수 있다. 기부액이 적든 많든 상관없이 실천이 중요하다. 올해도 사랑의 온도탑을 채워 우리 사회에 훈훈한 온정의 등불을 밝히자.

2022-12-04

시대, 헷갈리다

강길수 수필가 ‘날더러 어찌 살라고 이리도 갑자기 불어닥칩니까. 야속해요. 헷갈려요!’…. 학교 담장에서 들려 오는 소리다. 소리 내는 장미꽃 붉은 볼에 냉기가 스며있다.듬성듬성하게 아직도 푸른 잎 사이로, 네댓 송이 장미꽃 붉은 볼이 초겨울을 밝힌다. 11월 마지막 날부터 밀어닥친 한파를 담장에 매달린 채, 장미꽃은 무방비로 사흘째 견뎌내고 있다. 더 매서운 칼바람 덮쳐오면, 저 장미꽃과 잎은 산 채로 얼어버릴 것이다. 그리곤 마른 미라가 되었다가 스러져 갈 테지. 운 좋아 장미 뿌리 사는 땅에 떨어지면 훗날, 장미꽃으로 환생할 수도 있으리라.장미뿐만 아니라 아직 잎 푸른 나무와 많은 풀, 꽃을 피워낸 화초들도 높바람에 헷갈리다 산 채로 얼어 생을 다할 터. 자연은 늘 그래왔고, 그럴 것이다라고 누가 말할지 모른다. 아니다. 한 세기도 못 산 내 눈에 비친 자연은, 어릴 때와는 너무 달라졌다. 기후변화 시대라 해도 요즈음의 자연은 사람을 헷갈리게 한다. 사계절이 한눈에 보이고, 몸으로 느꼈던 게 엊그제 같다. 한데, 하루에 기온이 초가을에서 한겨울로 간 것처럼 변하니 사람도, 식물도 헷갈리고 어지러운 것이리라.그래서일까. 한 주 전쯤 제자리 돌기라도 한 듯, 몇 시간 약한 어지럼증이 왔었다. 빈혈 증세거니 했는데, 아내의 성화로 이튿날 난생처음 신경과에 가 검진을 받았다. 다행히 ‘이상소견 없음’으로 나와 안도의 숨을 쉬었다. 나이 들며 기력이 쇠하기 때문일 수 있겠지만, 사람을 헷갈리게 하는 자연환경 요인과 정치 사회적 요인, 심리적 요인이 그렇게 했을 수 있다.다른 나라에서 바닷물이 상승하여 육지를 삼키는데도, 우리는 강 건너 불 보듯 한다. 제주도를 비롯한 동해안 등 국토의 해안선에 해수면이 오르며 심각한 변화를 일으켜도, 언론과 정치권과 정책당국은 미온적이다. 꿀벌개체수나 곤충이 줄어들어 농민들이 작물 재배에 수분(受粉)용 벌을 키우거나, 사람이 수분 작업을 하는 사태에 이르러도 사회는 무관심하다.헷갈린다. 나와 너, 우리나라와 지구촌도 헷갈린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일어난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구촌을 헷갈리게 한다. 민생을 버린 채 핵폭탄을 생명줄로 삼아 세계를 위협하는 북한도 사람을 헷갈리게 만든다. 간이 부었는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정치권의 행태가 침묵하는 다수 국민을 헷갈리고, 분노케 한다. 명분 없는 파업으로, 나라 경제를 볼모 잡는 소위 귀족노조들이 우리를 헷갈리고 허탈하게 한다.우리나라 나아가 지구촌은, 헷갈리는 시대를 살고 있음이 분명하다. 46억 년이라는 지구촌 역사에서 ‘자칭 만물의 영장 인간’이란 종이 등장한 것은, 길게 잡아 800만 년 전이라 한다. 현생인류와 가까운 계통은 역사가 300만 년 정도라고 본다. 하여, 인간이 지성체라면, 지구와 다른 생명체의 입장도 헤아리며 살아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인간은 자연을 헷갈리게 하는 악질변종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이제 인간은, 자기 욕망과 욕구를 극복하며 이 헷갈리는 세상과 자연을 치유하는 길로 나아가야만 한다. 그 길이 비록, 탈 문명을 요구한다 해도….

2022-12-04

대표라는 무게

유영희작가 2022년은 참 힘 빠지는 한 해였다. 국정 지지도를 회복하지 못하는 집권 여당은 물론, 희망을 보여주지 않는 거대 야당의 행태에 국민의 한숨은 날로 커지고 있다.집값은 좀 내려간 듯하지만 거래 절벽으로 큰 효과는 없는 상태다. 고물가 때문에 실질 소득은 2.8% 줄고, 하위 20% 가구는 명목 소득마저 줄어들어 빈부 격차는 더 커졌다.이렇게 우울한 한 해를 보내던 우리 국민에게 12월 3일 새벽 울려 퍼진 대표팀의 월드컵 16강 진출 소식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우리 팀이 16강에 진출할 확률은 9%였고, 32강 진출도 어마어마한 성과였다고 하니,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한국이 포르투갈에게 먼저 1점을 내주었을 때 선수들이 얼마나 절망했을까? 우리가 1점을 얻어 추가 경기를 하게 되었을 때의 선수들의 긴장감 역시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상대 선수 7명에게 둘러싸인 손흥민이 가랑이 사이로 환상적인 패스를 하고, 열심히 공을 따라온 황희찬이 귀신같이 이 공을 잡아채어 골을 넣었으니, 소설을 쓴대도 이런 역전극은 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승리의 기쁨도 잠시, 우루과이와 가나의 경기 결과가 나오기까지 5분은 선수들에게 숨 막히는 시간이었을 것이다.무엇보다 이 역전 드라마가 더 감동적인 이유는 손흥민과 황희찬의 부상 투혼 때문이다. 손흥민은 바로 한 달 전 챔피언스리그 경기 중 부상으로 안와골절 수술을 받아 마스크를 끼고 뛰고 있었고, 역전 골을 넣은 황희찬 역시 허벅지 부상으로 1, 2차 전에는 출전도 하지 못하고 3차 전에서도 후반전에서야 뛸 정도로 컨디션이 안 좋은 상태였다.이런 부상에도 이들을 열심히 뛰게 한 원동력은 1억6천만 원의 포상금이 아니다. 손흥민은 인터뷰에서, 9%라는, 그 작은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 너무나 많이 노력했고, 부담 속에서 성장해왔다고 하면서, 골 넣은 것도 기쁘지만 무엇보다 16강 진출이 기쁘다고 한다. 16강 진출이 온 국민의 열망이라는 것을 선수들은 너무나 잘 아는 것이다. 개인의 명예나 부는 그 책임을 다했을 때 뒤따라오는 포상일 뿐이다.그런데 정작 안전과 생활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정치인이 얼마나 있는지 의심스럽다. 국민을 위해 봉사할 것을 약속하여 선출되었건만, 당선된 후에는 공복으로서의 책임은 뒷전이고 자신의 명예나 이익을 챙기는 데 급급하다. 10·29 참사만 봐도 일선에서 책임져야 하는 용산구청장은 거짓말까지 하며 발뺌하기 바쁘고, 수해로 일가족이 참사한 지역에 간 정치인은 비가 와야 사진이 잘 나온다는 망언까지 서슴없이 한다.요즘 내가 사는 지역의 기초 의회 정례회를 참관하는 중이다. 의원들이 자료를 꼼꼼히 살펴보지 않고 오거나, 공무원의 답을 듣지도 않고 윽박지르거나, 심지어 결석하는 등 기대에 못 미치는 의원들이 여럿 보였다. 중앙정치인들처럼 이들에게도 대표라는 무게는 가볍기 그지없었다. 혹시 우리가 스포츠에 거는 기대만큼 정치에 관심 갖지 않아서 이들에게 대표라는 무게가 이토록 가벼운 것일까?

2022-12-04

겨울의 맛, 과메기

윤영대수필가 올해 첫눈 소식이 들려온다. 이제야 추위가 시작되는 모양이다. 겨울이 되면 제일 먼저 생각되는 것이 구룡포 바닷가 덕장이나 죽도시장 건어물 거리에 주렁주렁 걸려있는 반쯤 마른 꽁치 과메기, 또 그 맛이다.과메기는 관목(貫目), 즉 ‘눈을 꿰다’는 말에서 ‘목’을 ‘메기’로 부른 사투리가 굳어진 것이라 하며, 청어나 꽁치를 통째로 짚끈에 묶어 약 1주일간 바닷가 찬바람에 말린 반 건어물로 포항 지역 특산품이다. 원래 가마솥 부엌의 연기로 그슬며 말렸다 얼렸다 하는 ‘엮걸이’ 통 과메기가 전통 방식이었고 조금은 비린 맛과 물컹한 식감이 좋은 훈제였는데 요즘은 반으로 잘라서 말린 ‘배지기’ ‘편 과메기’가 대세이고 11월부터 건조설비를 이용하여 말리기도 한다. 나는 청어 과메기가 귀한 탓인지 맛은 더 있는 것 같다.시장에서 과메기를 고르다 보면 ‘발 과메기’라고 있기에 ‘발로 밟아서 숙성시키나?’했더니 발(足)이 아니고 해변에 즐비한 덕장의 발(簾)에 걸어 말렸다는 뜻이란다. 10여 년 전까지는 20마리씩 엮어놓은 것을 사서 아파트 뒤쪽 외벽에 걸어두고 한 마리씩 빼먹곤 했는데 가끔 큰 새들이 매달려 쪼아먹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제대로 말리면 짠 내나 비린내가 없고 초고추장에 찍어 알배추나 깻잎, 생미역 또는 생김에 싸서 먹으며 소주 한잔 마시는 것도 겨울의 별미요 낭만이다. 예전에는 주점 난롯가에 앉아 껍질을 직접 벗겨 먹고 구워 먹는 맛도 있었다. 언젠가 여름철 냉장고를 정리하다가 발견한 과메기를 그대로 먹어봤더니 푸석하게 씹히며 맛은 어디 가고 없다. 과메기는 겨울철 음식인 것이 틀림없다. 불포화지방산과 오메가3 등 영양분이 많아서 혈관과 뼈, 두뇌와 눈의 건강에 좋고 노화 방지 등에도 효과가 많다고 하지만 꾸덕한 기름 덩어리가 산패되지 않도록 잘 보관해서 먹어야 한다.12월 3일과 4일 이틀간 과메기 특구로 지정된 구룡포의 과메기 문화거리 ‘아라광장’에서 코로나로 2년간 열리지 못했던 제23회 과메기축제가 열린다. 힌남노 태풍의 피해를 극복하는 힘을 보태자는 마음으로 ‘바다와 바람이 키운 자연 그대로의 맛과 향취를 느낄 수 있는 구룡포 과메기’를 표방하며 축하공연과 가요제, 그리고 깜짝 경매까지 열린다니 옷 두껍게 입고 둘러보며 시식도 해보고 포항 지방의 특산물을 K-푸드로서의 가치를 높여보자.매년 연말이면 가족과 친지, 지인들에게 채소와 고추장 등으로 푸짐하게 꾸며져 잘 손질된 과메기 1세트씩을 보내어 맛보게 한다. 모두 잘 먹었다는 감사 인사와 함께 내년 겨울이 기다려진다며 웃음을 전해오면 나 또한 50여 년 전 낯선 포항에 와서 처음 과메기를 맛본 기억들이 생생하다. 자랑하듯 꽁치 과메기를 먹으러 가자고 하기에 그 작고 마른 꽁치가 뭐 그리 대단하냐고 했었는데, 알고 보니 내가 알고 있었던 꽁치는 ‘양미리’였고 사투리로 알았던‘삼마’는 일본말이었던 것이다. 과메기 꽁치가 통째로 식탁에 올라왔고 각자 껍질을 벗겨 먹으며 술잔을 기울였던 기억이 새롭다.올해도 첫눈이 내리면 겨울의 맛, 과메기에 꽂혀 요즘 어수선한 세태의 씁쓸한 맛을 날려버리고 싶다.

2022-12-01

유언비어, 청담동 술판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 2022년 7월 20일 01시에서 03시 사이, 서울 청담동의 모 술집에서 김앤장로펌의 변호사 30여 명과 윤석열 대통령, 한동훈 법무장관, 이세창 전 자유총연맹총재 등이 모여 술판을 벌였다. 그 자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첼로 반주에 맞추어 ‘동백아가씨’ 노래를 불렀고, 한동훈 장관은 윤도현의 노래를 불렀다. 그때 반주를 한 첼로연주자는 경비원들의 통제로 남자친구와 전화통화도 할 수가 없었다.# 위의 스토리는 그 술집에서 첼로를 연주한 채아라는 여성이 당일 02시 59분에 남자친구에게 한 전화의 내용이다. 그 통화를 녹음한 남자친구는 ‘더탐사’라는 유튜브에 제보를 했다. 그것을 또 누가 더불어민주당에 제보를 해서 대변인인 김의겸 의원이 10월 24일 국회법사위 국정감사장에서 한동훈 법무장관을 불러놓고 통화녹음을 공개하면서 사실이냐고 물었다.# 한동훈 장관은 장관직을 걸겠다면서 강력 부인했지만, ‘더탐사’ 유튜브가 연일 의혹을 부풀리는 방송을 하고,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 가세에다 다른 언론매체들이 베껴서 쓰거나 방영을 하는 바람에 일파만파 국내외로 퍼져나갔다. 일단은 육하원칙을 갖춘 위의 통화내용에 대해 절대로 아닐 거라고 확신을 한 국민들은 그리 많지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대다수는 반신반의 했을 것이고, 틀림이 없을 거라고 믿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던 것 같다.# 11월 23일 첼로 반주자 채아라는 여성이 서초경찰서에 출두해서 당시 남자친구와의 통화에서 한 말이 거짓이었다고 실토를 했다. 그 시간에 남자친구에게는 말 못할 다른 사정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거짓말로 둘러댄 거라는 얘기다. 온 국민을 의혹의 늪에 빠트린 사건이 허무하게 끝나는 결말이었다. 그러면 폭로라는 미명으로 모함과 음해에 가담했던 자들은 ‘아니면 말고’ 한 마디로 깨끗이 손을 씻을 수 있는 일인가. 하기야 아직도 그 여성이 경찰의 강압과 회유에 굴복해서 거짓 자백을 한 거라고 믿는 자들이 없지 않지만.# 23년 동안 한겨레신문 기자였고, 청와대 대변인 경력에다 지금은 더불어민주당의 대변인인 김의겸 의원이 과연 ‘청담동 술판’을 사실이라고 믿었을까. 국감장에서 발설하기 전에 최소한의 사실 확인만 했더라도, 아니 자신의 청와대 근무 경험으로 미루어도 대통령이 심야에 그런 술판을 벌였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걸 몰랐을 리 없는 일이다. 더구나 바로 그날 한·가봉 정성회담이 있고, 사우디아라비아 외교장관 접견이 있으며, 제3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앞둔 대통령이 새벽 3시까지 술집에서 술판을 벌였을 거라고 믿는다면 어찌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라고 하겠는가.# 의혹을 제기하고 부풀린 자들은 아무도 팩트체크(fact-checking)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의혹을 부풀리기 위한 구실을 찾는 데만 혈안이었다. 그들은 옛날 윤지오 사건 때처럼 채아라는 여성이 외국으로 도피하거나 아주 사라져서 기껏 부풀려 놓은 의혹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기만을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허황된 기대는 꺼지고, 유언비어를 퍼뜨려서 모함하고 음해한 책임을 질 일만 남았다.

2022-12-01

아이들과 함께 읽는 ‘영혼의 난로’

새해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한 해도 다 지나가고 있다. 절대 가난을 경험한 우리 세대에게 겨울은 추운 계절이다. 메주를 쑤고 김장을 담는 겨울 준비 속에서 연탄도 들이지 못하고 힘든 추위를 타는 아이들은 없을지 걱정이 된다. 생활고로 세상을 떠난 이웃의 이야기들이 간간이 들려오는 이 겨울, 풍요 속에 가려진 빈곤이 자신의 부끄러움인양 아프다는 티도 못 내고 혹시나 배를 곯지는 않을까 걱정이다.그러나 더 걱정인 것은 코로나19의 긴 터널을 지나며 배보다 가슴이 먼저 허기진 아이들이다. 감염병으로 인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글로벌 기업들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의 가속 패달을 밟고 있다지만, 우리 아이들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관계가 단절되면서 사람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으로 스트레스 지수가 점점 높아져 각종 정신건강 지표에 빨간불이 들어오고 있다.내 머릿속에 아직 채우지 못한 빈 공간이 느껴질 때, 바쁘다는 이유로 조금은 식어버린 내 감성에 모닥불이 필요할 때면 나는 한 권의 책을 읽는다. ‘20세기의 성서’라 일컬어지는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The Prophet)’로 고교시절 읽었던 감동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책이다. 100여년 전의 생각이라 어떤 이에게는 지금 현실과 동떨어지거나 모순적이라고도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런 모순이나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 소중한 무엇인가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우리들이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잊고 있었던, 그렇지만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그 무엇, 영혼이 바로 그것이다.‘알무스타파’라는 예언자가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을 하는 형식으로 사랑, 결혼, 일, 아이들, 가르친다는 것, 선과 악 등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삶의 진리를 깊이 있게 던져준다. 스물여섯 편의 시적 에세이와 그가 직접 그린 신비스러운 삽화들이 담긴 이 책은 지금까지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다. 레바논계 미국인으로 화가이자 시인이며 작가인 칼릴 지브란은 1923년 이 작품을 발표하면서 ‘영혼의 순례자’로 영미권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그는 자신이 ‘말하는 자’이자 ‘듣는 자’이며, 자신이 전하는 말보다 오팔리즈 시민들이 자신에게 가르쳐 준 것이 더 많다고 말한다. 20세기의 단테라 칭송받는 칼릴 지브란의 글귀는 사후에도 전 세계에 널리 널리 퍼져 사람들에게 따스한 울림을 주고 있다. ……아이들에게 육신의 거처를 마련해 줄 순 있겠으나 영혼의 거처까지 마련해 주진 마세요. 그들의 영혼은 내일의 집에 살고 있고, 당신들은 그곳을 꿈에서조차 방문할 수 없으니까요.……(‘아이들에 대하여’ 중에서)그의 말은 힘이 있다. 단순히 아름답다고만 말할 수 없는 그 이상의 힘. 어떻게 살아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한 철학자이자 시인의 말은 그 무엇보다도 진실하다. 나는 그 치열한 진정성에 나의 기도를 덧붙이고 싶다. 우리 아이들이 이 겨울 홀로 떨지 않기를, 홀로 외로워하지 않기를... 삶이 무엇인지, 아파질 때 읽어보라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을 넘어, 볕이 잘 드는 창 앞에 손을 맞잡고 함께 읽고 싶은 책이다. 내가 한 줄 질문을 하고 네가 한 줄 답으로 들려주면 더 좋겠다. 그럼 서로의 체온을 나눠 가질 수 있는 손난로처럼 영혼을 다독이는 영혼 난로가 되겠지. 서로에게 들려주는 이 책을 함께 읽으며 아이들 마음속에 푸른 가지를 품었으면 좋겠다. 한 아이도 포기하지 않고 함께 가는 따뜻한 경북교육의 지향점도 이것이 아닌가 한다. 손을 맞잡고 오히려 더 따뜻한 겨울을 지내고 싶다.

2022-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