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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혼자인 삶은 없다

김규종 경북대 교수 달포 전에 이장님이 전화한다.“김 교수, 집에 땔나무 충분한가?!”몇 차례 구들방에 불을 넣으면 나무는 바닥이었다. 어차피 겨울도 끝나가는데, 대충 넘어가야겠네, 하던 참에 걸려온 반가운 전화였다. 엔진 톱 가진 이가 산에 널브러진 나무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주기로 했다면서 환하게 웃는 목소리로 전화는 끊겼다.날이 가고 달이 바뀌어도 어찌 된 영문인지 소식은 없다. 답답한 마음에 내가 전화한다. 톱 임자가 과수원 전지(剪枝) 때문에 시간을 낼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조만간 그이를 만나 일정을 잡아보리라는 언질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 소득이었다. 마침내 그날은 오고 말았다.3월 초하루 바람이 매섭고 기온이 뚝, 소리 나게 떨어진 날 오전에 구들방에 마지막 나무를 넣고 있는데, 대문이 소란스럽다. 경운기에 나무를 가득 싣고 이장님이 등장한 것이다. 오전 10시도 되기 전인데 어디서 저리 굵은 나무를 가져온 것일까?! 칠순이 넘은 이장님 내외가 이웃 마을에서 우리 집까지 손수 나무 배달에 나선 것이다. 이렇게 고마울 데가 있는가?!하지만 이것은 서막에 지나지 않는다. 오후 1시에 이장님 경운기 뒤에 타고 뒷산에 오른다. 장발에 붉은 얼굴을 한 풍류남아가 엔진 톱을 들고 우리를 기다린다. 문제의 톱 주인이다. 그가 나무를 잘라낼 때 우리는 복숭아나무 전지로 잘려 나온 크고 작은 나뭇가지를 경운기에 한가득 싣고 집으로 내려온다. 벌써 두 대의 경운기 분량 나무가 마당에 부려진다.여기 더하여 다시 두 대 분량의 경운기에 소나무와 감나무 둥치가 차례로 실리고, 나의 발길은 한층 더 분주해진다. 전화기가 웅, 소리를 낸다. 옆 마을에서 나를 도와주러 강 농부가 출동한 것이다. 그 역시 엔진 톱을 가지고 왔다. 집 마당에서는 그가 차분하게 나무를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그사이에 나와 이장님은 뒷산을 오르내린다.마침내 경운기 네 대 분량의 나무가 마당에 몸을 푸니 마음이 뿌듯하고 온몸에 온기가 도는 듯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던 이장님이 총총히 귀로에 오르고, 강 농부가 바지런하게 손을 놀려 톱질을 계속한다. 읍내 근처에 자리한 횟집에 광어회를 주문하고, 서둘러 장을 봐서 조촐한 상을 마주하고 강 농부와 마주 앉는다.“촌에서는 절대 혼자 못 삽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살아가는 삶은 농촌에서는 상상할 수 없지요.” 강 농부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화양(華陽)에 스며든 지 어언 10년이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세월 동안 나는 실로 여러 사람의 신세를 지고 살아오고 있다. 만약 그분들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이곳에서 안온한 삶은 정녕 불가능했을 터였다.요즘 세상에는 잘난 사람들이 참 많고, 그들은 하나같이 혼자 잘 나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며 우쭐댄다.‘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덕으로, 누군가에 힘입어, 누군가에 의지하여 살아간다. 이것을 잊어버리는 순간 우리는 인간의 도리를 상실하고 육축(六畜) 수준으로 전락한다. 그것을 잊지 말고 살아가면 좋겠다. 봄 시샘 바람이 제법 차다!

2024-03-03

이강인 사태로 보는 교훈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축구스타 이강인 선수(파리 셍제르맹)의 문제로 시끄럽다.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회장의 사임 요구까지로 불똥이 튀고 있다.아시안컵 축구대회 기간 중 이강인 선수가 손흥민 주장 선수에게 대들고 선배 선수들에게 하극상을 보인 이 선수의 태도를 놓고 엄청난 비난과 후폭풍이 불고 있다.2001년생 20대 초반의 이강인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난이 쇄도하고 여러 계약이 끊겼고 팬들의 사랑이 급격히 냉각되고 있다.이강인 선수는 “한국축구의 미래”로 여겨졌다. 해외 클럽에서 성장하여 공격적이고 빠른 해외 축구를 배웠기에 그가 아시안컵 예선 기간 중 보여준 결정적 골과 활약으로 팬들은 열광했다.그러나 그런 열광이 한순간의 거품으로 사라졌다.그를 광고 모델로 기용한 한 치킨회사가 이제 이 선수와 계약 연장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이 회사는 이강인을 모델로 발탁하며 ‘이강인 치킨’으로도 알려지면서 마케팅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었다. 결국 이 회사는 자사 홈페이지에서 이강인의 광고 영상을 내렸다.이강인을 모델로 기용한 K 통신회사 등도 프로모션 포스터를 내렸고 축구를 단독 중계하는 방송들도 이강인 출전을 내세우면서 마케팅을 하다가 그의 사진을 중계방송 공지에서 내렸다.이런 가운데, 이강인이 영국 런던으로 가 손흥민에게 직접 사과했다고 전해진다. “지난 아시안컵 대회에서 저의 짧은 생각과 경솔한 행동으로 인해 흥민이 형을 비롯한 팀 전체와 축구 팬 여러분께 큰 실망을 끼쳐드렸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SNS에 게재했다.이강인의 사과를 받아들인 손흥민도 같은 날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려 이강인을 용서해달라고 말했다. 손흥민은 이강인과 어깨동무를 한 채 웃고 있는 사진과 함께 “그 일 이후 강인이가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한 번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달라. 대표팀 주장으로서 꼭 부탁드린다”고 했다.이를 두고 두 파로 갈려 용서와 질타가 또 이어지고 있다.“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어디서든 행복 축구하시길”, “반성하고 사과했다니 다행이다. 앞으로 더 좋은 선수가 되어달라” “국민의 관심을 받는 선수인 만큼 앞으로는 실수하지 않길 바란다” 등 좋은 댓글도 달렸지만, “개인 간 사과, 용서와 별개로 팀에 분란을 일으킨 팀원에 대해선 규정대로 징계해야 한다”는 반론도 나오고 있다.이런 와중에 차범근 전 축구대표팀 감독이 “이강인의 부모님, 그리고 뻔히 알면서 방향과 길을 알리려 애쓰지 않은 저 역시 회초리를 맞아 마땅하다”며 한국 축구계를 향한 조언을 남겼다.차 전 감독은 한 축구 행사에서 “축구를 잘하는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 멋진 사람, 주변을 돌볼 줄 아는 큰 사람이 돼야 한다고 당부하고 이야기해왔다”며 아시안컵 기간 불거진 축구대표팀 내 갈등 사건을 언급했다.그는 “아시안컵을 마친 뒤 스물세 살의 이강인이 세상의 뭇매를 맞고 있다”며 “스페인이나 프랑스에서는 대수롭지 않던 일이 한국 팬을 이렇게까지 화나게 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동양적 인간관계야말로 우리가 자연스럽게 물려받은 무기이자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차 전 감독은 이런 예절이 박지성과 자신이 선수 생활을 성공적으로 마친 비결이라고 언급했다.그러면서 “설사 아이들이 소중함을 모르고 버리려고 해도, 아이들이 존경받는 성인으로 성장하도록 어른들이 다시 주워서 손에 꼭 쥐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차 전 감독은 이날 행사에서 상을 받은 선수들의 학부모를 향해 “이 자리에 계시는 부모님들은 어른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며 “품위 있고 진정한 성공을 위해 무엇이 중요할지 우선 생각해야 한다. 꼭 부탁드린다”고 하였다.정말 이강인 사태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보여준다.그 하나는 한국과 외국의 문화의 차이이다. 해외에서 성장한 이강인은 해외의 문화에 익숙해서 이런 사태를 가져 왔을 것으로 본다. 선후배 관계가 그렇게 강하지 않은 해외 문화로 그의 상황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필자를 비롯하여 많은 교수들이 해외에 연구년을 갔다가 자녀를 해외에서 키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들도 이와 유사한 문제에 부딪힌다. 미국과 같은 나라에는 존댓말 자체가 없어서 어른이나 아이나 평등하다는 개념을 갖고 있기도 한다.그러나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교육을 잘 받은 미국인들은 여전히 부모와 선배에게 예의있게 대한다는 사실이다. 문화에도 불구하고 교육의 문제로 귀결된다.그래서 여기 또 하나의 중요한 교훈은 차범근 전 감독의 말처럼 부모가 한국적 예의를 잘 가르쳐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해외에서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 중 이렇게 한국적 예의를 잘 가르치는 부모도 많다. 그건 아름다운 전통이기도 하다. 가장 한국적인 게 가장 국제적이라는 말도 있다. 한국적 예의는 해외에서도 아름답게 보고 있고 그것이 한국을 끌어가는 힘일 수도 있다.

2024-03-03

안락사와 존엄사

사공정규 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안락사(安樂死)를 뜻하는 ‘euthanasia’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 ‘eu’는 좋다(good), ‘thanasia’는 죽음(death)을 뜻한다. 즉, 좋은 죽음이라는 의미다.안락사는 회복할 수 없는 죽음이 임박한 환자에게 고통을 덜어준다는 명분하에 생명을 단축해 사망에 이르도록 하는 방법이다. 사망에 이르는 방법에 따라 적극적 안락사와 소극적 안락사로 나눈다. 적극적 안락사는 적극적인 행위에 의해 예를 들면 약물 등을 사용하여 환자를 사망하게 하는 것이고 소극적 안락사는 치료를 중단하는 소극적 행위에 의해 환자를 사망하게 하는 것이다.존엄사(尊嚴死, death with dignity)는 무엇인가. 회생 가능성이 없는 사망 임박 단계의 환자가 연명 목적의 치료를 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죽는 과정으로서 생을 마감하는 행위이다.존엄사와 소극적 안락사의 차이는 무엇일까? 둘 다 환자의 연명치료(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치료 효과는 없으면서 임종 기간만 연장하는 치료)를 중단하는 것이다. 덧붙여 말하면 존엄사는 연명치료 이외의 영양분, 물, 산소 등의 공급을 중단할 수 없지만, 안락사는 영양분, 물, 산소 공급을 중단할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안락사는 회복할 수 없는 죽음이 임박한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방치해 생명을 단축해 사망에 이르도록 하는 방법이지만, 존엄사는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으로 자연스러운 임종의 과정을 인위적으로 늦추지 않겠다는 것이지, 죽음을 앞당긴다는 것이 아니다.존엄사에서 무의미한 치료를 중단하고 자연스럽게 죽을 권리를 인정한다는 것은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사망에 이르게 할 조치를 하는 ‘안락사’와는 다른 것이다.사실 안락사는 기본적으로 제삼자가 죽음을 원하는 사람의 죽음을 돕는 것으로 기본적으로 조력 타살의 의미가 내포돼 있다. 필자는 안락사라는 네이밍(naming)이 미화돼 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소극적 안락사’를 존엄사라는 더 미화된 표현으로 바꿔 사용하는 경우가 있고 심지어는 의료진이 약물 등을 마련해주고 환자가 자신에게 직접 그 약물 등을 투여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는 ‘의사조력극단적인 선택(physician-assisted suicide)’도 존엄사라 부르기도 한다.우리 모두가 긍정하는 가치가 담긴 존엄사라는 네이밍은 긍정의 가치를 실현하는 행위로 인식될 수 있어 사회적 논의를 할 때 ‘존엄사’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매우 주의해야 한다. 존엄사의 선택에 의한 연명치료중단이라 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의 가치판단에 따른 자의적인 선택이고 타인으로부터 강요받지 않는 자유로운 동의(free consent)여야 한다. 연명치료를 중단한다는 것은 한 생명의 불씨를 끄는 것일 수 있으므로 환자가 자의적으로 선택했다 하더라도 선택을 번복할 수 있어야 한다. 환자의 자의에 의한 선택이라 하더라고 시간에 따라 상황에 따라 가치판단이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최근 우리나라에서 소위 ‘조력존엄사(의사조력극단적인 선택)’에 대한 논의가 가열되고 있다.지난 2022년 6월 15일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내 최초로 ‘연명의료결정법 일부개정법률안(소위 조력존엄사법)’을 대표 발의했고 지난 2023년 7월 12일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조력존엄사(의사조력 극단적인 선택)’에 대한 인권적 쟁점과 대안에 관한 토론회를 정부기관 최초로 개최했다. 조력존엄사(의사조력 극단적인 선택)는 소생 가망이 없는 환자가 의사에 의해 처방된 약물을 직접 복용 또는 투약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조력존엄사(의사조력 극단적인 선택)’가 인정된다면 스스로 죽을 권리가 인정된다는 것이다. 만약 스스로 죽을 권리가 인정돼 더욱이 약물을 투입해 인간 생명을 단축하는 것을 허용한다면 생명 경시 풍조가 조장될 수 있다.또 완치를 위해 정성을 다하기보다 고통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할 수도 있다.‘조력존엄사’는 “생명을 최대한 존중하고, 의학 지식을 인륜에 어긋나게 쓰지 않을 것”을 서약한 의사의 역할과 “의사는 환자가 자신의 생명을 끊는데 필요한 수단을 제공함으로써 환자의 극단적인 선택을 도와주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는 의사 윤리에 근본적으로 배치된다.이어 ‘조력존엄사는 품위있는 죽음을 돕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문제 같은 외적 상황이 영향을 미침으로써 가족과 사회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고려해 보라는 압박으로 내몰 수도 있다.정말 존엄하게 죽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라면 ‘조력존엄사법’이 아니라 임종의 시간이 오기까지 질병으로 인한 고통을 완화해 보다 편안한 삶을 유지하고 남겨진 시간의 의미를 발견해서 그 시간을 충실히 살아가도록 배려하는 생애 말기 따뜻한 돌봄을 위한 완화의료와 호스피스 강화와 지원이 우선이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극단적인 선택률 1위 국가이다.‘조력존엄사법’을 허용할 경우 국가가 극단적인 선택을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극단적인 선택을 조장하고 극단적인 선택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국민에게 심어줄 수 있다. ‘조력존엄사법’이 아니라 ‘극단적인 선택 대책기본법’이 우선이다.

2024-03-03

위대한 기업의 조건

엄주선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미국 펜실베니아대학교 와튼스쿨의 데이비드 시로타 조직행동학 교수는 10년 동안 89개국 237개 기업의 직원을 대상으로 동기부여 방안에 대하여 연구하였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국가 지역 성별 인종 나이 직무에 관계없이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으며 자신이 노력한 대가로 공정한 임금과 안정을 원했고 동료와의 협력과 친화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하였다. 또한 근로자들은 어떤 상황에 있든 자신의 3가지 욕구 즉 공정성, 성취감, 동료애를 만족시키려 하며 이 세가지 욕구가 충족되면 조직의 목표 달성의 열의가 생겨난다고 한다.이런 측면에서 보면 포스코의 현장 혁신 방법론인 QSS(Quick Six Sigma)활동이 근로자의 3대 욕구인 공정성 성취감 동료애를 모두 만족하게 하는 좋은 활동이라 할 수 있다. 2005년부터 현재까지 18년 이상을 지속해온 비결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활동 초기 만들어진 철학은 자기자신, 동료, 회사를 사랑하라이며 사상은 전원이, 스스로, 제대로, 꾸준히 실행한다이다.철학의 첫째인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는 제조 현장의 본질인 기업이 지속적으로 이익을 창출하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제조과정에서 일과 낭비에 대한 의미를 이해하고 낭비를 발굴하고 개선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성장하며 성공 체험을 통해 성취감과 일에 대한 보람을 느끼는 것이다. 이러한 자신의 성장이 곧 동료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으로 동료 사랑이며 더 나아가 낭비 제거로 회사의 성과에 기여하게 되므로 회사사랑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 출발점이 성공 체험을 통한 성취감이다.직장에서 가장 많은 불만 요소 중의 하나가 공정성에 대한 부분이다. 누구는 일이 많아 고생하는데 누구는 일이 없다거나 누구는 활동을 하는데 누구는 안 한다거나 하는 것이다. QSS활동은 공장 내 신입사원부터 공장장까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전원이 참여한다. 그러기 위해 공장에서 관리해야하는 설비를 조직의 최소 단위인 반 단위가 서로 합의하여 나누어 담당하고 전원이 목표를 설정하여 설비성능복원과 과제 활동을 실시한다.이렇게 최소 조직 단위인 반에서 본인들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담당 구역과 설비를 새것처럼 복원하고 개선하여 일상에서 유지하기 쉬운 상태로 만드는 과정은 매우 힘들다. 서로가 쉬는 시간과 휴일을 양보하고 다같이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달간을 활동을 할 때마다 작업복이 흠뻑 젖을 정도로 땀을 흘리고 기름때를 묻혀가면서 함께 노력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어렵고 힘든 과정을 같이하면서 자연스럽게 짙은 동료애가 형성되며 변화된 모습을 보고 성취감과 만족감은 극대화된다.지금까지 20년 가까이 포스코는 전원이 참여하여 이러한 현장 혁신활동을 통해 위대한 기업이 갖추어야 할 공정성 성취감 동료애를 지속 발전시켜왔고 현재 진행형이다. 이제부터는 이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가 같이 공감하고 동참하여 지속 발전시켜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2024-03-03

총선을 앞두고 거대 양당의 출산 정책을 보며

유영희 작가 두 딸이 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 출산을 하지 않았다. 더 미루다가는 임신이 안 될까 걱정하면서도 선뜻 결정을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둘 다 직장에 다니다 보니, 육아 부담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해 치러지는 총선에서 거대 양당의 출생률 높이기 정책에 눈길이 더 간다.통계에 따르면, 작년 4분기 합계출산율은 0.65명이다. 2022년만 해도 0.78명이었는데 1년 사이에 더 훅 떨어진 것이다. 2005년부터 저출산 대책을 시행했지만 이제는 젊은이들이 결혼은커녕 연애도 포기한다고 하니, 출생률 높이기는 정말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설문조사에 의하면, 이렇게 초저출산이 계속되는 것은 경제적 부담과 육아의 두려움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말하면 옛날에는 더 가난해도 아이만 잘 낳았다는 ‘라떼 레퍼토리’가 나올 법하다. 그러나 작년 12월에 발표된 경제연구원이 조사한 결과를 보니, 한국 젊은이들의 형편이 얼마나 열악한지 눈물이 날 지경이다.2022년 현재 25∼39세 고용율을 보면, OECD 평균은 87.4%인데 우리나라는 75.3%이고, 그나마도 청년층 비정규직 비중이 2003년 31.8%에서 2022년 41.4%로 증가하였다. 이런 물리적 조건을 보면, 우리나라 MZ세대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생활비 우려와 재정 상황 불안도 45%는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글로벌 MZ 세대의 불안도는 32%라고 한다. 반대로 재정에 대해 안정감을 느끼는 한국의 MZ세대는 31%이고 글로벌 평균은 42%이다. 우리나라 도시인구 집중도는 431.9로 OECD 평균 95.3의 4배가 넘고, 우리나라 여성 고용은 OECD평균 87.2%에 비해 매우 낮은 75.8%다. 게다가 OECD 육아 가능 기간과 이용률은 61.4인데, 우리나라는 10.3이다. 이러니 출산하는 사람이 신기할 지경이다.각계 전문가들이 진단한 초저출산 원인과 대책을 살펴보니, 각자 자기 전공에 치중하는 느낌이 든다. 육아 전문가는 아이가 소비재로 전락한 현상을 원인으로 들고, 인구학자는 대도시 집중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경제연구원의 조사 결과를 보니, 가장 중요한 것은 고용 안정이다. 고용이 안정되면, 주거 문제도 해결되고 육아 부담도 완화된다. 지방에서 고용이 창출된다면 인구도 분산된다.그런데 양당의 저출산 대책을 보면, 현금 지원성 대책이 많다. 여당은 10조원, 야당은 28조원의 예산을 잡고 각종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일과 가정의 양립을 외치며 만든 여당의 ‘늘봄’ 정책은 부모와 아이가 ‘늘못봄’ 정책이라며 비판의 소리가 나오고 있고, 제1야당의 1억 대출 역시 미봉책이다. 도대체 그 1억을 10년 만에 어떻게 갚을 것인가? 그보다 세수 감소로 올해 각종 예산도 다 삭감한 마당에 이런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법률적 부부에게만 지원하는 정책만으로는 출생률이 높아지지 않는다는 선진국 사례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총선을 앞둔 선심성 정책이라는 비판을 면하려면 좀 더 진지한 고민을 해주기 바란다.

2024-03-03

이불 빨래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이사한 김에 이불을 빨았다. 몇 년전부터 흰 시트의 오리털이불만 고집하는 남편 때문에 잔잔한 꽃무늬가 있거나 색깔 있는 이불들은 거의 버리고 없다. 흰 이불의 껍데기를 벗겨 세탁기에 넣어 빨고 삶고 건조기로 돌려 말리기만 하면 되니 빨래가 쉽다. 속통도 건조기의 이불털기나 살균 기능으로 돌린 후 뜨거운 채로 꺼내 손바닥으로 탁탁 쳐서 부풀리면 다시 뽀송뽀송해진다. 따끈한 햇빛과 바깥바람을 쏘여주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한 지 꽤 오래 된 듯하다.50년도 더 전이었다. 우리 삼남매는 모두 큰 도시로 가 자취를 하면서 학교를 다녔다. 원래 살던 읍내에도 중고등학교가 있으나 교육열이 넘쳤던 부모님의 판단에서였다. 주말이면 셋 중 한 명이 번갈아 일주일치 반찬을 가지러 집에 갔다. 차비 문제도 있지만 주말에도 공부하라는 오빠의 엄한 단속에 나와 남동생은 엄마가 보고 싶고 집밥이 그리워도 참을 도리밖에 없었다.중학교 2학년쯤 화창한 봄날이었다. 오랜만에 집에 온 나는 이웃의 친구를 찾았다. 중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집안일을 도우다 곧 대도시의 공장에 취직할 거라는 친구였다. 친구는 같이 강으로 가서 빨래를 하자고 했다. 빨래를 집에서 하지 않고 어디를 가냐는 내 말에 큰 빨래는 강에서 하면 더 좋다며, 소풍같이 바람도 쐴 수 있다고 했다. 못 가게 하는 엄마를 졸라 거죽에 빨간 깃을 댄 겨울이불의 광목호청을 뜯어 양철함지박에 담았다. 빨래방망이와 비누를 챙기고, 양은도시락에 밥과 김치도 야무지게 쌌다. 함지박을 머리에 이고 친구 따라 한참을 걸어 간 강가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빨래를 하고 있었다. 적당하게 넓적하고 평평한 돌을 찾아 자리를 잡았다. 물에 적신 이불호청은 열서너 살의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무거웠다. 그렇게 큰 빨래를 해 본 적도 없었다. 능숙하고 요령있는 친구를 힐끗거리며 낑낑대니 친구가 많이 도와주었다.빨래터 한쪽엔 불을 피워 커다란 드럼통에 빨래를 삶아주는 사람이 있었다. 약간의 돈을 주면 되나 보았다. 알 턱이 없었던 나는 친구의 도움으로 빨래까지 삶을 수 있었다. 빨래를 가져다주면 물이 펄펄 끓는 드럼통에 넣어 기다란 막대기로 휘휘 저으며 푹푹 삶았다. 건져 함지박에 담아주면 물가로 가져가 방망이로 탕탕 두들겨 비눗기를 뺐다. 어쩌면 양잿물이었는지도 모른다. 보얗게 흰 호청을 친구랑 맞잡고 둘둘 말아 짜서 자갈이 깔린 강가로 나간다. 많은 빨래들 틈에 자리를 봐서 빨래를 펴두고 돌멩이로 네 귀퉁이를 눌러 이불이 날아가지 못하도록 하는 것까지 꼼꼼한 친구를 따라했다.빨래가 마를 동안 쨍쨍한 땡볕 아래 따끈한 돌밭에 앉아 싸간 도시락을 먹으며 한참을 친구랑 수다를 떨었다. 나는 학교 얘기, 외국인 영어선생님 얘기를, 친구는 곧 취직할 공장이 있는 대도시의 삶에 대해 꿈꾸듯 얘기하였다. 뜨거운 돌멩이 덕에 빨래는 쉬 말랐다. 네모반듯하게 개어 함지박에 담았다. 머리에 이고 돌아오면서도 한껏 물오른 우리의 수다는 끝나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코피를 쏟아 엄마 속을 태웠다.

2024-02-28

몸 구석구석 지압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사람들은 아플 때 스스로 그곳에 손을 댄다. 아픈 것을 조금이라도 해결해 보려고 하는 본능적인 시도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플 때 어디를 만져주면 좋은지 알아보자. 아픈 곳을 찾으면 시간이 될 때마다 수시로 지압을 하고 만져주면 매일 매일 불편한 증상들이 조금씩 개선될 것이다. 수일에서 수주동안 꾸준히 하면 좋다.우선 두통과 어지럼증 등 두부에서 일어나는 불편한 증상은 뒷목과 어깨를 만져주는게 좋다. 상부경추 위주로 모든 경추부를 압박해주고 승모근 부위를 꾹꾹 눌러 준다. 바로 눕거나 앉아서 손을 머리 뒤로 한뒤 뒷머리뼈에 붙어 있는 소후두직근 대후두직근을 만져준다. 특히 아픈 부위는 깊게 꾹꾹 눌러 준다. 많이 할수록 좋다. 티비 볼 때 앉아서 멍하니 있을 때 자기전에 누웠을 때 뒤통수 최하단 뼈 근처의 근육들을 만져 준다. 그리고 목 옆의 흉쇄 유돌근과 사각근 부위를 눌러서 아픈 부위를 만져 준다. 다음은 어깨 최상단 승모근 부위도 만져보고 아프면 풀어준다.어깨가 결릴 때는 승모근과 견갑거근 능형근을 풀어 준다. 아픈 어깨 반대쪽 손으로 어깨쪽을 만져주면 닿는다. 닿지 않으면 골프공 같은 것을 바닥에 깔아두고 잘 조준한 다음 누워서 압박을 해줘도 된다. 특정 부분에서 엄청나게 아플 수가 있다. 그 부분 근육이 뭉치고 염증이 생긴 부위라 조금 더 깊게 압박을 해주면 된다.회전근개 통증은 보통 어깨 관절통으로 나타난다. 대부분 극상근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위팔뼈와 어깨가 만나는 관절면을 눌러보다 특히 아픈 곳 주변을 깊게 꾹꾹 눌러 준다. 견우라는 혈자리 근처이고 극상근건 부착부를 검색한 다음 위치를 보고 가늠해도 좋다.다음은 허리 통증이다. 요방형근과 대둔근 중둔근 소둔근을 풀어 주면 된다. 검색으로 위의 근육들을 찾아서 꾹꾹 눌러준다. 이 부위는 주변 사람이 도와주면 더 좋다. 아래팔 척골 부분을 흉추 12번 갈비뼈와 골반뼈 사이에 넣은 다음 몸무게로 눌러 주면 된다. 조심해야 할 것은 갈비뼈를 누르면 골절 위험이 있으니 그 아래 살이 있는 곳에 척골을 넣은 다음 몸무게로 눌러야 한다. 그리고 다리가 저린 경우는 엉덩이 중간 부분에 팔꿈치를 대고 눌러 보면 아픈 곳이 있다. 보통 이상근이 있는 자리고 좌골 신경이 분지되는 곳이다 적당한 체중으로 누르면 상당히 뻐근하고 아픈데 풀어주면 다리 저림에 많은 도움이 된다.아래다리 쪽은 전경골근을 꾸욱 누르면 아픈 경우가 있다. 족삼리란 혈자리 근처를 누르면서 발까지 다리 외측을 타고 깊게 눌러준다. 무릎 뒷쪽 흔히 오금이라고 하는 슬와근 근처를 눌렀을 때 많이 아프면 그곳도 깊이 눌러준다. 무릎 통증이 좋아지는 경우도 있고 하지의 혈액순환이 좋아져 밤에 잘 때 쥐가 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 발은 간단한 골프공이나 자갈을 바닥에 깔고 나서 발바닥을 올린 뒤 체중을 누르면 특히 아픈 곳이 있다. 인체 반사점이니 지압을 해주면 좋다. 인체 어느 곳이든 지압을 할 때는 며칠에서 수주까지 그곳의 통증이 세게 만져도 안 느껴질 정도로 하는 것이 좋고 그곳이 풀리면 주변을 다시 더듬어 아픈 곳이 생기면 반복한다. 할일 없을 때 손을 움직여 불편한 곳을 풀어 보자.

2024-02-28

잎꾼 개미

피귀자 수필가 이파리들이 찰랑거리며 간다. 잘린 나뭇잎을 지고 가는 개미떼의 모습이 팔랑거리는 날개 같다. 개미는 잎에 가려 잘 보이지 않고 다양한 모양으로 잘린 잎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동하는 모습이 이채롭다. 지고 갈 크기만큼 잎을 잘라 등에 지고 나른다고 잎꾼 개미, 또는 잎을 자를 때 아래턱뼈를 마치 가위처럼 사용하기 때문에 가위 개미라고도 불린다.열대종인 이 개미가 최초의 농사꾼이라니! 부지런하고 근면한 대명사가 개미지만 농사도 짓는다는 말에 저절로 귀가 쫑긋해졌다. 게다가 인간보다 5천만년 정도 먼저 농사를 시작한 종으로 평가 받는다고 하니 혀를 내두를 수밖에.개미들은 지구에서 가장 크고 복잡한 동물 사회를 이룩하고 있다. 무리가 생성되고 몇 년 있으면 800만의 개체를 가지게 된다고 한다. 개미학자들이 규모를 알기 위해 버려진, 어떤 개미집의 내부에 시멘트를 들이부은 결과 42평, 즉 어지간한 집 한 채 크기가 나왔다고 한다. 작은 개미들의 생활 과정이 놀랍다.우리는 종종 보이는 대로 그것에 갇혀버리는 실수를 한다.작고 보잘 것 없다고 무시하거나 마음대로 판단해 버리고, 편견과 고정관념의 방해에 전체 모습을 오롯이 바라보지 못한다. 하여 생각의 확장을 스스로 가로막고 진실을 보는 시야를 차단해버리는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꽃나무처럼 순순해져 보이는 것 너머의 진실을 바라보는 눈을 열어야 하리.이들이 잎을 채취하는 이유는, 잘게 찢어서 균사를 사육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균사가 이들의 주식인데, 그들이 기르는 균사와 서로 의존적인 공생을 하고 있다. 즉 균은 개미들이 있어야 살 수 있고, 개미의 애벌레들은 균이 있어야 생존할 수 있는 공생관계인 것이다. 개미들은 버섯 균이 새로운 식물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감지해낼 수 있으며, 만약 어떤 식물이 균에 해롭다고 밝혀지면 더 이상 그 식물을 수집하지 않는다고 하니 많이 똑똑하다. 무르익은 개미들 삶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인생의 온갖 경험들이 응축되어 쌓인 지혜와 비견되어 감탄하게 된다.이들 개미의 분업화 수준은 매우 높다. 성숙한 무리에서는 몸의 크기로 대략 4계급으로 나뉘는데, 계급마다 맡은 일이 다르다고 한다. 각 계급의 이름은 정원사개미, 소형일개미, 중형일개미, 대형일개미(병정개미)이다. 머리의 직경이 1㎜가 되지 않는 정원사개미는 어린 유충을 돌보거나 버섯 농장에서 일하며, 잎을 운반하는 개미들을 기생파리로부터 보호한다. 소형일개미는 정원사 개미보다는 약간 크며 경비병 역할을 한다. 잎을 가지러 가거나 오는 개미들을 보호하며 다른 생물이 공격할 경우 제일 먼저 방어를 한다. 중형일개미는 잎을 자르고 무리로 가져오는 역할을 한다. 대형 일개미는 가장 큰 개미로 무리를 외부침입자로부터 지키는 것이 주 임무이다.개미들이 잎을 수집하고 있을 때, 잎꾼 개미 위에 다른 개미들이 올라타서 가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얌체라서가 아니다. 기생파리가 이동하는 개미의 목을 공격하는 걸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 기생파리는 일개미 머리의 관절에 산란관을 꽂아서 알을 낳으므로, 잎을 들고 가는 정원사 개미나 소형개미가 지키면서 기생파리의 공격을 방지해준다니 조직적이고 일사불란하다.작디작은 개미들도 이렇게 서로 힘을 합쳐 공생 관계를 유지하며 잘 살아가고 있는데 우리는 어떠한가. 서로 편을 갈라 공격하고 없는 일까지 만들어 험담을 하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어떻게든 상대를 끌어내리고 내가 올라가겠다며 모여서 시위를 하고 피켓을 들고 소리치며 일상생활을 방해하는 여러 어리석은 작태가 혐오스러울 지경이다.새해엔 잎꾼 개미처럼 맡은 일 잘하며 시기와 질투 없이 끝이 보이지 않는 역할을 스스로 헤쳐 나가는, 모두에게 이로운 사람, 쓸모가 많은 사람, 살아서는 기둥이 되고 죽어서는 역사가 되는 사람, 그가 있음으로 우리 모두가 더 아름답고 행복해지는 그런 사람이 늘어나 평화로운 사회가 되기를 빌어본다. 우리 모두가 이들 개미처럼 자유와 평화를 위한 달콤한 농사꾼이 되어보면 어떨까.

2024-02-28

청명(淸明)과 명리 이야기

24절기 가운데 다섯 번째가 청명(淸明)이다. 태양의 황경이 15도에 위치하며, 올해는 4월 4일(음력 2월 26일)이다. 음력으로는 3월의 절기다.청명을 한자로 풀이하면 맑을 청(淸)에 밝을 명(明)이다. 날씨가 맑고 하늘이 차츰 밝아진다는 뜻을 의미한다. 음양오행에서도 청명에서 곡우까지 15일간을 5일씩 3후(候)로 나누었다. 초후(初候)에는 오동나무에 꽃이 피기 시작하며, 중후(中候)에는 종달새가 나타나며, 말후(末候)에는 무지개가 처음 보인다고 한다. 완연한 봄빛으로 가득한 화창하고 따사로운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전한(前漢)의 회남왕 유안(劉安·기원전 179~122)이 저술한 ‘회남자(淮南子)’ 권5 ‘시칙(時則)’에 보면 음력 3월인 진월(辰月)에는 초요(招搖·북두칠성 자루 끝에 있는 별)가 진(辰) 방향을 가리킨다. 해질녘에 칠성수(七星宿)가 남쪽 하늘 가운데 나타나며, 새벽녘에 견우수(牽牛宿)가 나타난다. 이달의 방위는 동쪽, 수는 8, 맛은 신맛, 냄새는 누린내다.이 달은 생기가 왕성하여 양기가 활발하게 발산되고, 구부리고 있던 새싹이 모두 밖으로 나오는 때다. 그러니 묵은 곡식은 창고에 남겨둘 수 없다. 이에 천자는 관리에게 명하여 곡식 창고를 열어 가난한 자를 도와주고, 식량이 떨어진 자에게 빌려주게 하며, 재물 창고를 열어 제후들에게 예물로 보내 훌륭한 선비를 초빙하고, 어진 사람에게 예를 갖추어 인재를 구하게 했다. 또한 사공(司空)에게 봄비가 내려 낮은 곳의 물이 차오를 수 있으니 나라 안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들판을 잘 살피고, 제방을 수리하며, 물길을 소통시키고, 도로를 정비하라고 명했다. 날씨가 포근해지면 해빙으로 발생할 수 있는 재난이나 백성들의 굶주림을 살피는 것은 물론, 인재 등용을 중요하게 생각한 대목을 엿볼 수 있다.청명 다음날인 4월 5일은 한식(寒食)이다. 동지가 지나고 105일째 되는 날이다. 한식을 한자로 풀이하면 차가운 밥을 먹는다는 뜻이다. 옛날에는 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4대 명절 중 하나였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청명조(淸明條)에 따르면 청명에 버드나무와 느릅나무를 비벼 새 불을 일으켜 임금에게 바치며, 임금은 이 불을 정승과 판서를 비롯한 문무백관과 360개 고을 수령에게 나누어 준다. 이를 사화(賜火)라 한다. 수령들은 한식날에 다시 이 불을 백성에게 나누어주는데, 묵은 불을 끄고 새 불을 기다리는 동안 밥을 지을 수 없어 찬밥을 먹는다고 해서 한식(寒食)이라 했다.중국 춘추시대 진나라 문공의 충신 개자추가 공을 세우고도 벼슬을 받지 못하자 면산(綿山)으로 은둔했다. 나중에 문공이 잘못을 깨닫고 개자추를 나오게 하려고 불을 질렀지만 끝내 타 죽었다는 고사에서 개자추를 기리기 위해서 찬 음식을 먹었다는 이야기도 있다.한식은 잡귀들이 꼼짝없이 묶여있다고 해서 ‘귀신 맨 날’ 즉, 손 없는 날이라 했다. 그래서 산소에 잔디를 새로 입히거나, 비석이나 상석을 세우기도 했다. ‘청명에는 부지깽이도 땅에 꽂으면 잎이 돋는다’는 말이 있다. 청명 다음날인 4월 5일은 식목일이기도 하다. 한때 공무원과 학생들이 식목일에 산에 가서 나무를 심은 적도 있었다.이때는 봄을 완연히 느낄 수 있는 시기이기에 농사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볍씨 소독과 모판을 만들기 위해 논에 물을 대고, 써레질과 논둑과 밭둑을 손질한다. 청명에 날씨가 좋으면 풍년이 들고, 궂으면 흉작을 예상했다. 어촌에서도 마찬가지로 풍어를 기대한다. 한식날 새벽에 천둥이 치면 서리가 일찍 오고, 저녁에 천둥이 치면 서리가 늦게 온다는 믿음도 있었다.‘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라는 속담이 있다. 하루 먼저 죽으나, 하루 늦게 죽으나 별 차이가 없음을 말한다. 무엇보다 우선할 것은 청명과 한식에 불을 조심해야 한다는 점이다. 천지의 음양이 바뀌는 시기라서 기후가 불안정하고, 바람이 거세기 때문에 반드시 불조심을 해야 한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명리학적으로는 청명부터 진월(辰月)이 시작된다. 진월은 봄의 마지막 달이다. 물을 머금은 토(土)다. 봄의 기운을 갈무리하여 다음 사월(巳月) 여름으로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계절 중에서도 가장 생명력이 강한 시기다. 그래서 진월에 태어난 사람들은 왠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일도 잘 풀리는 기운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명리학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보면 음양의 기준으로 볼 때 춘분을 기점으로 음이 양에게 주도권을 빼앗긴다. 본격적인 양의 기운이 득세하니 꽃도 피고, 씨앗을 파종할 수 있는 것이다. 확연히 낮이 밤보다 길어진다. 봄은 젊음의 계절이고, 시작이다. 사람의 인생으로 치면 이제 신접살림을 시작하는 신혼기라고 보면 좋을 듯하다. 젊어서 부지런히 일도 하고, 자식도 낳아 키우고,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해야 할 일을 부지런히 하듯이 말이다.청명에 우리는 자연의 이치대로 사는지 한번 뒤돌아봐야 할 것 같다. 독신주의가 득세하고, 아이 낳는 것을 필수가 아니라 선택으로 생각하는 오늘날의 젊은이를 바라보면 걱정이 앞선다. 봄에 열심히 씨앗을 뿌려야 가을에 거둘 것이 있다는 단순한 이치를 거스르며 살고 있지는 않는지?

2024-02-28

겨울 장마

홍석봉 대구지사장 때 아닌 ‘겨울 장마’로 농가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매년 2월 말에서 3월 초, 한반도에는 계절적인 영향으로 저기압이 형성된다. 하지만, 올해는 강수량이 예년보다 훨씬 많다. 특히 2월 강수량치고는 이례적이라는 분석까지 나온다. 올 들어 지난 18일부터 25일까지 대구·경북엔 평균 50㎜ 이상 강수량을 기록하는 등 평년보다 4배가량 많은 눈과 비가 내렸다. 기상전문가들은 엘니뇨 영향 때문으로 해수 온도와 기온이 모두 높고 대기층이 수증기를 다량 함유해 비나 눈이 더 많이 올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1월 기온이 20도가량 오르는 등 최고기온을 기록한 것과 이번의 많은 눈과 비는 극히 드문 현상이라고 진단하고 있다.올해 유례없는 겨울 장마와 흐린 날씨 때문에 ‘성주참외’가 ‘발효과’ 현상이 나타나 농가들이 비상이 걸렸다는 소식이다. 참외는 3월부터 본격적인 수확에 들어간다. 하지만, 참외 성숙기에 속이 먼저 익는 현상으로 과육 내 발효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상품성이 떨어진 참외는 판매도 어렵다.일조량이 격감, 화훼와 시설 채소 및 과일 재배 농가가 직격탄을 맞았다. 시설 채소나 과수가 일조량 부족으로 병해와 기형 과일이 많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된다. 햇빛이 부족하면 시설 하우스 온도가 떨어지고 습도까지 높아져 역병까지 번질 수 있다. 일부 농가는 온 종일 조명을 켜고 전기보일러를 틀고 있지만, 적정 일조량에 못 미처 애태우고 있다. 늘어난 전기료 부담에 수확시기마저 놓치면서 화훼와 시설 재배 농가들이 이중고를 겪고 있다.전 세계가 기후변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우리에게도 발등의 불이 됐다. 환경 재앙이 현실로 닥쳤다. 지혜로운 대응이 필요하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4-02-28

TK공천 보류지역, 與공천갈등 뇌관되나

국민의힘이 어제(28일) 대구·경북 11곳을 비롯한 전국 24개 지역구의 경선 결과를 발표했지만, TK지역의 경우 7곳이 아직 공천 방식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여당 공관위가 “가장 늦어질 수 있다”고만 밝히고 있어 해당 지역 현역의원들의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 대구는 동구갑(현역 류성걸), 북구갑(양금희), 달서갑(홍석준)이고, 경북은 안동·예천(김형동), 구미을(김영식), 영주·영양·봉화·울진(박형수), 군위·의성·청송·영덕(김희국)이 해당된다. 대구 3곳은 선거구 변경과도 관계가 없어 특별히 공천 보류 지역으로 분류될만한 이유가 없다. 경북도내 영주·영양·봉화·울진 지역구와 군위·의성·청송·영덕 지역구는 선거구 변경이 기정사실화돼 공천방식 결정이 늦어진다고 하지만, 안동·예천과 구미을은 뚜렷한 이유없이 공천 보류 지역이 됐다. 선거구가 변경되는 두 지역구 현역 중 김희국 의원은 일찌감치 총선 불출마 의사를 밝혔으며, 박형수 의원(울진 출신)은 지난주 의성·청송·영덕·울진 지역구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TK지역에 국한된 얘기는 아니지만, 공천 방식이 보류된 지역의 경우 재공모나 우선 추천(전략 공천) 지역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일부 공천보류 지역은 당 공관위가 현역들을 대상으로 불출마 설득 작업에 나섰다는 소리도 들린다. 여당 공관위가 TK지역 공천을 맨 마지막으로 돌린 것은 29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쌍특검법(대장동 50억원 클럽·김건희 여사 주가 조작 의혹 특검법)’ 재표결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지금까지 진행된 국민의힘 공천은 ‘현역불패, 신인 횡사 공천’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현역들은 인지도가 높은데다 오랫동안 당원 명부를 가지고 지역구 관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도전자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다. 대구·경북 7곳의 공천 보류 지역은 공천 갈등의 뇌관이 될 소지가 다분하다. 여당 공관위는 끝까지 민심을 최대한 반영하는 공천을 해서 과거와 같은 공천 파동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2024-02-28

끔찍한 새 학기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2월은 늘 왠지 흐지부지하다. 한 달 삼십일을 채우지 않고 끝나면서도 늘 같은 날수가 아니다. 28일이었다가 29일이었다가. 그렇게 마치는 한 달을 보내면 봄이 온다. 봄소식을 기다리면서 학교가 열린다. 아이들이 돌아오고 선생님이 돌아온다. 친구들을 만나면서 아이들은 신이 나겠지만, 교실을 지켜야 하는 선생님들은 삼월 개학이 천근만큼 무겁다. 교육이 본래 가볍지 않은 일이라서 마음이 무겁다면 격려하고 끌어도 올리겠지만, 요즘 선생님들에겐 교육이 아니라 존재가 무겁다고 한다. ‘왜 교사가 되었을까. 이걸 계속할 수 있을까. 그만두면 무엇을 해야 하나. 계속한다면 무엇에 기대를 걸어야 하나.’ 월요일이 끔찍한 직장인들처럼 선생님들에겐 끔찍하다.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데, 이제는 아이들이 두렵다. 부모들에게 떳떳해야 하는데 부모들 앞에만 서면 쪼그라든다.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어디서부터 고쳐야 하는지 누구도 답을 모른다. 순진한 아이들이야 그렇다해도, 학교를 다녀 본 부모들은 사실은 조금 안다. 교육이란 건 본디 아이들을 선생님에게 믿고 맡겨야 겨우 돌아간다는 것을. 무섭고 때로는 가혹했던 선생님이 계셔서 그래도 우리가 모두 이만큼 자랐다는 것을. 호랑이 선생님 덕분에 질서를 익히고 예절을 배웠다. 매섭던 눈초리로 지켜주신 선생님이 무서워서 한 자라도 더 배우지 않았을까. 오늘 교실은 어떤가. 선생님이 구겨진 자부심을 붙들고 존재를 의심하는 처지가 되었다. 아이들과 학부모가 두려워 교실 문을 열기가 끔찍해진 교실에 진심어린 교육이 살아있을 턱이 없다.교육이 부끄럽다. 개학을 앞두고 교실이 걱정이다. 학교의 문을 열면서 교육의 내일을 염려한다. 대한민국의 공교육은 이대로 좋을까. 처음에는 ‘나라의 미래를 기른다’는 자부심으로 가득했을 젊은 선생님들이 아니었을까. 세상에 할만한 직업이 의사밖에 없는 듯이 시끄러운 세상에 교사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가르치고 사람을 만드는 일에 어려움이 태산같고 박봉도 견디겠지만, 교육이 살아있는 교실을 지키지 못하면 거기 서 있을 까닭을 잃게 된다. 정상적인 수업이 펼쳐지고 온당한 교육이 진행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교육과정이 중요하고 교육 효과가 중요하지 않을까. 오늘 교육정책을 위한 담론들에는 왠지 누군가 이익집단을 챙겨주려는 저의가 숨어있는 듯하여 불편하기 짝이 없다. 교육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새로운 다짐으로 새 학기를 열어야 한다. 아이들이 바르게 자라는 기대로 가득해야 한다. 학기가 쌓이면서 쑥쑥 커가는 아이들이 교사들의 보람이 되어야 한다. 철없는 아이들의 비뚤어진 요청에 반듯하게 교육적으로 반응하는 선생님이 되어야 한다. 교육의 테두리를 함부로 생각하는 학부모가 사라져야 한다. 믿고 맡길만한 교사가 되어 교육의 질서를 바로잡는 건 선생님 본인의 몫이 아닐까. 직장인의 월요일이 즐겁고 선생님의 삼월이 즐거워야 한다. 아이들과 함께 마음껏 가르치고 배우는 일로만 신이 나는 새 학기가 되었으면 한다. 선생님이 살아야 교육이 산다.

2024-02-28

경북도 내년 국비 12조 목표, 반드시 달성을

경북도가 내년 국비 확보 목표를 12조원으로 설정했다. 이는 작년 11조5천16억원보다 4천984억원이 늘어난 것으로 연간 12조원대 국비 목표는 처음이다. 경북도는 27일 2025년 국가투자 예산 확보전략 보고회를 열고, 국비 확보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도는 단계별, 사업별, 실국별로 맞춤형 대응전략을 마련해 추진하되 시군과의 유기적 공조, 지역 정치권의 협조 등을 통해 핵심사업의 국가 예산 반영에 주력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그러나 내년 정부 예산은 글로벌 경기침체와 건전재정 유지의 올해 정부 기조가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보여 국비 확보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경북도의 치밀한 전략과 보다 정교한 대응이 있어야 한다.특히 경북도는 내년에도 중점을 두고 추진해야 할 과제가 많다. 포항시민의 오랜 숙원인 영일만횡단구간 고속도로는 내년에 보상과 공사 착공이 시작돼야 하며 남부내륙철도(김천-경남 거제) 사업도 추진돼야 한다. 또 대구도시철도 1호선 하양 연장구간에서 영천 금호읍까지 추가 연장을 위한 실시설계 용역비 확보도 시급하다.SOC 사업 외 구미 반도체 특화단지 활성화를 위한 반도체 소재·부품시험평가센터 설립도 반드시 성사시켜야 한다. 경북도가 농업 대전환을 위해 추진 중인 스마트 농업단지 조성과 원전 로봇실증센터 설립 등 많은 숙제가 있다.경기침체와 부동산 거래 부진 등으로 지자체들은 세수감소로 재정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런 면에서 내년 국비 확보는 더 절실하다. 일부 단체장이 연초부터 중앙부처 등으로 뛰어다니는 것도 내년 국비 확보가 쉽지 않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정부의 예산 지원을 받아야 할 자치단체로서는 국비 확보는 전쟁이라 부를 만큼 경쟁이 치열하다. 경북뿐 아니라 이미 전국 지자체가 국비 확보를 위해 대응책 준비에 나서고 있다.경북도는 정부 정책과의 적합도, 사업 타당성, 실현 가능성 등 국비 지원사업에 대한 정밀한 검토를 벌여 내년 국비 확보가 차질없이 진행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2024-02-28

3월 1일의 물결을 되뇌며

경북남부보훈지청 보상과 백창훈 1931년 3월의 어느 날이었다. 탑골공원에 모인 인파는 하나둘 술렁이고 있었다. 독립 선언서를 낭독해야 할 민족 대표 33인의 부재, 유혈충돌을 방지하려 했던 그들의 뜻은 의심없이 순수했지만 구심점을 잃은 인파는 모두 지향을 잃고 방황하고 있었다.그 때에 앞장선 이는 정재용 선생이었다. 그는 품속에 숨겨두었던 독립 선언서를 꺼내어 팔각정 단상 위에서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그렇게 나비의 날개짓은 태풍이 되었고, 그가 붙인 작은 불씨는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가 주목한 큰 불길이 되었다. 정계, 학계 및 종교계의 거두가 아닌 단지 남들보다 조금 더 배운 지식인이 발휘한 용기와 그가 내딛은 몇 발자국이 역사의 큰 획을 그은 것이다.보훈의 사전적인 의미는 갚을 보에 공 훈, 즉 공적에 보답한다는 의미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공적 속에 세워졌으며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권리, 풍요의 밑바탕에 유공자들의 위업이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는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예외없이 해당되므로 보훈 역시 모두의 몫일 것이다. 3.1 운동에서의 정재용 선생의 역할에서 우리는 큰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누군가가 해 주겠지’, ‘거창하고 복잡한 일이므로 제도적인 뒷받침이 수반되어야겠지’하는 마음이 아닌 우선 나 하나부터 실천하는 것이 보훈일 것이다. 마음가짐으로, 일상 속에서, 작은 것부터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유공자들에게 감사하고 그들을 대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마치 3.1운동의 불씨를 지핀 정재용 선생의 실천처럼 말이다.본인은 국가보훈부에 소속되어 공무원으로서의 책무 하에 보훈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3.1운동의 이 일화를 되뇌어본 순간 공무원이 아닌 개인이자 한 국민의 일원으로서도 유공자들의 공적에 감사하고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혹시 모를 일이다. 작디작은 몸짓이라고 생각했던 우리의 실천이 3.1운동처럼 큰 여파가 되어 이 사회를 더 바람직한 모습으로 만들 수 있다. 예우받고 존경받는 유공자들의 모습, 그들을 대우하는 국가와 이 사회의 모습을 보면 더 많은 사람들이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하려는 마음가짐을 갖게 될 테니.

2024-02-28

몰입과 성장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스키를 타고 산비탈을 질주할 때는 몸의 움직임, 스키의 위치, 얼굴을 스치며 지나가는 공기, 눈 덮인 나무에 집중한다. 조금이라도 마음이 흐트러지면 눈 속에 고꾸라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는 이 순간, 우리는 완전한 몰입을 경험하게 된다. 미국 시카코대학 교수이자 삶의 질 연구소장인 칙센트미하이는 “몰입은 의식이 경험으로 꽉 차 있는 상태다. 각각의 경험은 서로 조화를 이루고 느끼는 것, 바라는 것, 생각하는 것이 하나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삶을 훌륭하게 가꾸어 주는 것은 행복감이 아니라 깊이 빠져드는 몰입에서 오는 것이고, 일과 놀이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것이 건강한 삶이라고 한다. 휴식이 새로운 에너지원을 만들듯 일과 문제만 몰입하기 보다 놀이와 병행하는 것이 건강한 삶이기 때문이다. 몰입은 생각의 연속선이고 선택과 집중을 말하기도 한다. 선택과 집중은 기업이든 개인의 삶이든 성공을 위한 지름길이다. 한정된 시간에 경쟁 상대를 이기는 비기(秘器)는 자원과 기술, 시간을 선택과 집중하여 원하는 성과를 창출해내는 것이다.‘마누라 빼고 다 바꾸라’는 모토로 전 직원이 반도체에 몰입하여 성공한 일류 기업이 오늘날 삼성이다.뉴턴은 “어떻게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느냐”는 질문에 “내내 그 생각만 하고 있었으니까” 라고 했다. 시인이나 수필가는 하나의 테마에 몇 달이고 생각에 생각을 이어가고 초고가 나오면 천 번의 수정을 거쳐 명작이 탄생한다고 한다. 성공하는 스포츠인이나 기술자, 과학자 등 어떤 분야의 최고가 되는 삶의 공통점은 하나를 선택하고 하나에 생각하고 집중하여 몰입하는 특징이 있는 것이다.아인슈타인은 “나는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99번은 틀리고 100번째가 되어서야 비로소 맞는 답을 얻어낸다”고 했다. 잠자는 90%의 잠재력을 일깨우는 몰입을 쉽게 하기 위해서는 목표가 명확해야 한다. 목표를 이루기 위한 핵심 문제가 설정되면 몰입할 수 있다. 문제 난이도는 높지만 중요해서 그것을 푸는 것이 의미가 있어야 하고, 문제를 푸는 기간을 정하면 더 몰입하여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이제는 Work Hard에서 Think Hard의 시대다. 열심히 일하면 남들보다 2배 이상 잘하기도 힘들지만 열심히 생각하면 남보다 10배, 100배까지도 잘 할 수 있다. 성공과 행복을 동시에 거머쥐고 싶은 사람이라면 열심히 생각하는 것에 인생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삶의 그림이 그려지고 목표가 정해지면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나의 문제를 설정하고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 생각과 연구를 거듭하여 몰입에 이르게 되면 뜻은 이루어지는 것이다. 개인의 성장과 성공하는 삶은 몰입의 깊이에 달려 있고 쓰레기통에 던져 놓았던 먼지 낀 시간들을 순도 100%의 황금빛 삶으로 바꾸는 것이다. 몰입은 최고의 나를 만나는 기회이고 미래를 읽는 시간이다. 성공하는 기업들은 미래 산업의 핵심을 읽고 선택과 집중하여 승부를 건다. 그것은 인간의 능력이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사고 활동이 몰입이기 때문이다.

2024-02-27

올 듯 말듯, 필 듯 말듯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봄이 오는 길목에 눈을 맞으며 설경 속을 거니는 것은 어쩌면 행운(?)이 아니었을까 싶다. 더욱이 고향 근처에서 눈 내리는 풍경을 본다는 것은 수십년 만에 느껴보는 설렘이었을지도 모른다. 표표히 날리는 눈발이 어릴 적의 추억을 소환하여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언어의 몸짓으로, 무언의 함성으로 내려앉는 듯했다. 근래 봄비가 잦아들어 벌써 봄인가 싶었었는데 마치 겨울을 환송이라도 하듯 춘설이 나부끼니, 마음은 솜털 마냥 포근했었다고나 할까?짧게나마 내린 눈과 잎샘추위가 잰걸음으로 오던 봄걸음을 주춤하게 한다. 벌써 산골짝에서는 복수초가 꽃망울을 터뜨리고 뒤뜰의 청매가 진한 향기를 내뿜기 시작해도 아직 봄이 오는 길은 더디기만 하다. 순탄하고 순조롭게 금방이라도 올 것만 같은 봄은, 새침데기 아가씨마냥 이리저리 망설이며 시치미를 떼고 올 듯 말듯 앙탈을 부리는 듯하다. 그만큼 겨울은 끈덕지고 봄날은 인고를 거쳐야 오는 것이리라.‘매화 옛 등걸에 춘절(春節)이 돌아오니/옛 피던 가지에 피엄즉도 하다마는/춘설이 난분분(亂紛紛)하니 필동말동 하여라’ -조선시대 평양 기생 매화(梅花) 시조얼핏 읽어보면 옛날에 피었던 가지에 다시 꽃이 피듯이 따스한 봄날을 맞이하고 싶지만, 때아닌 봄눈으로 봄이 언제 올지 모른다는 뜻으로 풀이될 수 있다. 이 시조는 평양 기생 매화가 연적(戀敵) 동료 기생 춘설(春雪)에게 애인을 빼앗기고 원망하며 지었다는 유래가 전한다. 자신의 늙어진 몸으로 비유되는 고목에 매화가 다시 피어나길 바라면서 자기 이름과 꽃의 이름을 이중의 뜻이 되게 한 중의법(重義法)으로 자신의 심경을 토로한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시조는, 고목 등걸에도 꽃이 다시 피어나듯이 옛적에 교유했었던 정든 이들이 다시 올 듯도 하지만, 때아닌 봄눈이 어지럽게 흩날려 세상이 복잡해졌으니 못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정치적인 의미로도 풀이된다.바야흐로 40여 일 앞둔 총선으로 정국이 때아닌 봄눈 마냥 어지럽고 뒤숭숭한 모양새다. 연일 끊이질 않는 공천경쟁에 온갖 파문이 일고, 제3지대 신당의 이합집산으로 향방이 주목되는가 하면, 악의적인 딥페이크 콘텐츠 등장과 선심성 정책발표 등 하루하루 점입가경이 따로 없을 정도다. 각각의 정당과 출마자들에게는 아직 올 듯 말 듯한 봄이지만, 저마다 벅차게 맞이할 봄날을 믿고 준비하며 결연한 각오를 다지는 듯하다. 정당정치의 관건인 공천을 위해 타협하고 양보하며 새로운 줄을 서고 온갖 기를 써보지만 여전히 관문은 낙타구멍이니 치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공천의 꽃망울이 어렵사리 맺혔다 해도 당선이라는 꽃은 끝끝내 조마조마 필 듯 말 듯할 것이다. 여와 야가 격돌하고 보수와 진보, 관록과 신예가 대항하여 소신과 비전을 관철시켜야 봄꽃으로 일어설 것이다. 냉혹함이 난무하는 올 듯 말 듯한 봄날에 필 듯 말 듯한 망울이지만, 진실과 정의, 공정과 희망의 꽃은 투표로 환하게 피어날 것이다.

2024-02-27

고로쇠 약수

우정구 논설위원 단풍나무의 일종인 고로쇠 나무는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驚蟄)을 전후해 자신의 몸에서 많은 수액을 내놓는다. 땅속의 수분과 뿌리에 저장해두었던 양분을 빨아올려 몸 밖으로 내놓는 수액 속에는 칼슘과 미네랄, 마그네슘 등이 함유돼 이를 마시면 인체내 노폐물 배출과 피로회복, 미용 등에 좋다고 한다.고로쇠 약수는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가 지리산에서 전투를 벌이던 중 목이 마른 병사들이 화살이 꽂힌 나무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고 원기를 회복한 데서 유래됐다는 설이 있다.또 신라시대 도선국사가 좌선을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무릎이 펴지지 않아 주변에 있던 나뭇가지를 잡았으나 나무가 부러지는 바람에 넘어졌다고 한다. 그때 부러진 나무에서 수액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받아 마시니 무릎이 펴지고 원기가 회복됐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처음에는 뼈에 유익한 나무라는 뜻의 골리수(骨利水)라는 이름으로 불리다 고로쇠로 바뀌었다고도 한다.경칩을 전후해 20일 정도 채취가 가능한 고로쇠 약수를 맛볼 수 있는 고로쇠 축제가 시작됐다. 지난 25일 경남 산청을 시작으로 내달 초까지 남원, 진안 등지에서 고로쇠 축제가 열린다. 특히 고로쇠물 채취는 밤 기온이 영하 3∼5도, 낮기온 영상 8∼13도일 때가 좋다고 하니 지금이 적기다. 고로쇠 약수 효과가 알려지면서 봄철만 되면 전국에서 이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아마 그 중에는 봄의 기운을 느껴보고자 하는 이도 적지 않을 것이다.지구온난화로 벚꽃 개화기도 예년보다 3∼6일 빨라질 것 같다는 소식도 들린다. 고로쇠 약수 축제가 시작됐다는 것은 어느새 봄이 우리 곁에 와 있음을 알리는 반가운 소식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02-27

醫·政 강대강 대치, 극적인 돌파구 마련될까

심충택 논설위원 의대 증원을 놓고 정부와 전공의간의 ‘강대강 대치’가 이어지면서 MZ세대 특유의 퍼스낼리티가 우리사회의 주요담론이 되고 있다. MZ세대는 2000년대 전후 디지털 환경에서 성장한 청년들을 통칭하는 개념이다. 대학생부터 자녀를 둔 30대후반 학부모까지 포함된다. 수련병원 전공의들은 대부분 MZ세대다.대구에서는 새해들어 ‘MZ세대 공무원’이 이슈로 거론된 적이 있었다. 공직사회의 보수적이고 수직적인 근무환경에 염증을 느낀 신규 공무원들이 대거 이직을 하는 경향이 계속되자 대구시가 기존 관행(인사철 떡 돌리기, 연가 사용 눈치 주기, 계획에 없는 회식, 개인 연락망 공유)을 타파하는 혁신방안을 내놓은 데서 비롯됐다.전공의와 관련된 담론의 핵심도 ‘의료대란’ 원인 중의 하나를 MZ세대 특유의 성향에서 찾는다는 데 있다. 전공의들이 사법처리 위험에도 열흘 이상 복직을 거부하고 있는 것은, 한국의 부정적인 의료환경 때문에 실제 병원을 떠나겠다는 각오를 했을 수 있다는 논리다.전공의나 의대생들이 우리정부의 의료정책에 거부감을 느끼고 해외에서 기회를 찾으려 하는 움직임은 이미 일반화되고 있다. 아마 의대생이나 전공의를 자녀로 둔 부모들 상당수가 이로 인해 속을 끓이는 일이 많을 것이다. 최근에는 미국 의사면허 시험 정보공유 커뮤니티(usmle Korea)의 접속량이 폭주하면서 한때 접속이 차단되기도 했다는 뉴스가 나오기도 했다. 이 사이트는 20여 년간의 면허시험 정보가 누적돼 있어 미국 의사를 희망하는 한국 의사들의 안내 역할을 하는 모양이다.정부가 의대증원 정책에 반발한 전공의들의 집단사직을 ‘시위용’으로 인식한다면 큰 오산이다. 그들의 성향을 볼 때 지금처럼 정부가 국민지지를 믿고 계속 위협을 할 경우, 사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 정부가 연일 주동자에 대한 구속수사 원칙을 강조하며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음에도, 이제 전국 주요 수련병원 인턴합격자들까지 계약포기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 이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사실 윤석열 정부가 의대정원을 2천명 늘린다고 해서 한국의료의 고질적인 병폐(필수의료·지방의료 공백사태)가 사라진다는 합리적인 근거가 없다. 오히려 의대정원 확대는 우리사회의 가장 민감한 이슈인 ‘사교육비 뇌관’을 건드려 대형학원 수입만 늘려주는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특히 과학·산업계는 인재들이 너도나도 의사가 되기를 희망하면서 연구인력을 어디서 구할지 걱정이고, 재학생들의 대규모 자퇴가 예상되는 이공계 대학들도 비상이 걸려 있다.한가닥 실낱 같지만, 이번 주들어 정부와 전공의 간의 타협 가능성이 보이는 것은 천만다행이다. 정부가 전공의들의 복귀를 전제로 “정원을 포함한 모든 의제가 대화의 대상이 된다”고 했고, 의대 교수협의회도 “중재자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일부 수련병원에선 전공의들의 현장 복귀 움직임도 있는 모양이다. 정부와 의사단체는 하루빨리 협상 테이블에 앉아 서로 입장을 경청하면서 의료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

2024-02-27

DGB금융 황병우 회장에게 거는 기대 크다

DGB금융지주 차기 회장이 황병우 대구은행장으로 결정됐다. DGB금융은 다음달 중 대구은행의 시중은행 전환을 앞둔 만큼, 조직을 안정적으로 이끌 내부 출신 인사를 선택한 것으로 분석된다. 황 행장은 곧 열릴 주주총회를 거쳐 회장에 취임하며, 아직 은행장 임기가 1년 정도 남았기 때문에 당분간 대구은행장을 겸직할 것으로 예상된다. DGB금융 회장추천위원회는 “황 내정자는 DGB금융그룹의 시중은행 전환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해 그룹의 새로운 미래와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끌 역량 있는 적임자”라고 밝혔다. 황 행장은 1967년생으로 현직 금융지주 회장 중 가장 젊다.그동안 DGB금융 회장 선임과정은 전국 경제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대구은행이 시중은행으로 전환하는 역사적인 해인 만큼, 차기 지주회장에 거는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그만큼 황 행장 앞에 놓인 숙제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황 행장이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과제는 시중은행 전환 이후에도 조직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도 전국적으로 몸집을 키우는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확장을 위해 공격적인 영업을 하다보면, 그동안 대구경북 중심의 지방은행만이 갖고 있는 장점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우려의 시각이 있다.대구은행은 시중은행으로 전환되자마자 수도권은 물론이고 지방은행이 없는 충청·강원권 등을 거점으로 하는 점포를 내고, 주목을 받을 만한 성과도 내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지방은행 특유의 연고주의를 탈피하는 것이 급선무다. 대구은행 임원 상당수가 특정 고교 출신들이고 대구경북 소재 대학 출신이라는 점은 조직확장과 내부견제를 약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지난해 8월 대구은행 일부 영업점 직원들이 증권계좌를 고객 동의 없이 무단으로 개설하다 발각된 것도 내부견제 부실에서 나온 대표적 사례다.대구경북 정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황 행장이 곧 DGB금융 회장 자리에 앉으면, ‘국내외 시장개척’과 ‘기존고객 유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2024-02-27

저출산 후폭풍… 신입생 없는 초교 경북 27곳

교육부에 의하면 경북도내 신입생이 한 명도 없는 초등학교가 올해 27곳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2021년 22곳, 2022년 28곳이던 것이 지난해는 31곳이 됐다가 올해는 27개 학교에서 신입생이 없어 입학식을 치르지 못한다고 한다. 전국적으로 초등학교 신입생이 없어 입학식을 치르지 못하는 학교가 157곳에 이르고 대도시인 대구도 3개교가 입학식을 치르지 못한다. 경북은 17개 광역단체 중 전북(34개교) 다음으로 그 수가 많다.경북 안동시 죽전초교는 3년째 신입생이 없다. 전교생 11명은 4∼6학년뿐이며 이들이 졸업을 하면 학교는 폐교 돼야 할 처지다. 인구절벽이 현실화되고 있는 현장을 목격하는 것 같아 절망스럽다.올해 초등학교 예비소집 인원은 36만9천여 명으로 처음으로 40만명 선이 무너졌다. 한국교육개발원은 2026년도에 가서는 초등학교 신입생 수가 29만여 명으로 30만명 선도 붕괴될 것으로 예상했다.문제는 이같은 현상에도 뾰쪽한 대책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국가나 자치단체들이 나서 저출산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그동안 국가가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하고도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해 출산율 회복이 쉽지 않아 보여서다. 초등학생 수의 감소는 장차 중고교, 대학교까지 영향을 미치고 교대 출신의 초등학교 교원수급 전망도 불안케 한다. 교대를 졸업해도 임용까지 시간이 많이 걸려 교사 인기도 요즘 시들하다.신입생이 한 명도 없는 학교가 속출하는 것은 저출산의 문제가 빚어낸 많은 문제점의 하나에 불과하다. 저출산의 문제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다룬다 하더라도 학생 수 감소에 대한 교육당국의 장기적이고 종합적 대책이 있어야 한다. 인력과 시설, 재원 등 교육자원의 재분배나 효율적 관리에 대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특히 대도시보다 빠르게 진행되는 농어촌지역의 교육기반 붕괴에 대비해 지역사회의 공동체를 지킬 수 있는 교육당국의 현명한 대처가 절실한 때다.

2024-02-27

하고자 하면

강길수 수필가 “어떤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도움을 청하였다. 그가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하였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면서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바로 나병이 가시고 그가 깨끗하게 되었다.”미사 복음에서 이 성경 이야기를 들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우리 사회도 깊은 병이 들었다. 몸의 한 부위가 병들면 온몸이 아프거나 영향받듯, 지금 우리 사회 공동체도 지체(肢體)들이 심한 병을 앓고 있다. 나병 환자가 하고자 하여 예수께 무릎 꿇고 도움을 청해 나았듯, 우리 사회도 지금 무언가 하고자 해야 한다.’한국의 가장 크고 심각한 병은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부정선거다. 2020년 4·15 총선 직후 우리나라는 부정선거 문제가 제기되었다. 많은 애국자의 희생적 노력으로 부정선거는 사실로 드러났다. 선거소송 재검표장에서 쏟아진 수많은 위조 투표지는 물론 선관위가 발표한 선거결과 수치의 통계학적 분석데이터 등은 확실한 증거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좌 편향된 악의적 정치재판으로 부정선거의 진실을 덮어버리거나 쉬쉬하며 정의를 묻어버린 망국적 행태를 보였다.나라의 선거 공정성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의 결연한 활동으로 국민 절반 이상이 부정선거 사실을 알았다는 보도를 보았다. 또 국정원과 인터넷진흥원의 합동 선관위 보안 점검 결과도 발표되었다. 이어 KBS의 부정선거 관련 보도로 이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최근엔 여당 비대위원장이 사전투표지 감독관 도장날인을 인쇄로 갈음하지 말고 법대로 ‘개인 도장날인 시행’을 수차 요구하기에 이르렀다.이 같은 변화는 ‘하고자 하는’ 마음을 먹은 나병 환자의 결기와 같다. 그의 하고자 하는 마음은 어떻게 일어났을까. 병고에서 나으려는 절실한 자각에서 비롯되었을 터다. 사무치게 병이 낫기를 바란 환자는 이제 병을 낫게 할 분만 찾아가면 되었다.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자기의 간절한 소망을 부탁하는 일만 남은 것이다.우리나라의 크고 심각한 병은 어찌해야 나을까. 이런 마음이 든다. 우선 선관위가 침묵하는 국민과 하늘 무서움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나병 환자처럼 ‘하고자 하면’ 길이 보이리라. 다음 대통령이 선관위에 공정선거를 요구하는 일이다. 국민에게서 통치권을 위임받은 최고 책임자로서 나라의 크고 시급한 이 문제를 꼭 ‘하고자 하는 일’로 삼아야만 한다. 이는 선거 개입이 아니라 대통령의 중요한 책무의 하나다. 그다음 정치권 여야가 함께 공명선거 시스템을 만들어내야 한다.공직선거법 제158조 3항은 사전투표지에 투표관리관 개인 도장날인을 규정하고 있다. 한데 선관위는 공직선거관리규칙 84조 3항에 ‘인쇄 날인으로 갈음’할 수 있게 했다. 법 위반이며 해괴한 망발이다. 인쇄는 인쇄고, 날인은 날인이다. 부디 선관위, 정부, 여당, 야당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오는 4·10 총선부터 우리나라가 부정선거 중병에서 깨끗이 낫도록 해 주기 바란다. ‘하고자 하면’ 못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2024-02-26

‘메탄 감축 로드맵’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24년이 시작된 게 엊그저께 같은데 벌써 2월의 마지막 주를 맞이하게 되었다. 엄청난 시간의 속도를 느끼면서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게 되는데, 불과 지난 1년 사이에 역대급 기록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유럽의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C3S)에 의해 올해 2024년 1월의 지구 평균기온이 13.14도를 기록해 최근 30년(1991~2020년) 1월 가운데 가장 따뜻한 1월로 기록되었다. 또한 ‘2023년 2월부터 2024년 1월까지 1년 기간 동안’ 지구 평균온도가 산업화 시점인 1850년대에 비해 1.52도 상승으로 기록되었다. 무려 170년 만에 최초로 1.5도를 넘어서는 대기록이다.2013년 IPCC는 지구온도가 2도 이상 올라가면 북극이 녹아 이산화탄소보다 30배나 강력한 온난화 효과를 보이는 메탄가스가 대량 분출될 것으로 예측했다. 이렇게 되면 지구 온도는 순식간에 4도까지 오를 것이고 인류는 공룡처럼 지구에서 멸종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므로 지구의 온도상승을 2도 이하로 억제해야 하는데, 산업화 이후 인류는 이산화탄소와 메탄 등 온실가스를 급격하게 배출하면서 대기중에 이들 물질이 계속 축적되었다. 따라서 배출량을 갑자기 줄여도 온난화는 계속되기 때문에 지구온도 상승을 1.5도 이하에서 반드시 멈추어야 한다.이렇게 인류는 지구온도 상승의 마지노선을 1.5도로 설정하고 2015년에 전세계 모든 나라들이 온실가스를 감축하기로 약속하는 ‘파리기후변화협약’을 체결했다. 우리나라는 2021년에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을 제정하였으며, 2023년에 ‘탄소중립 녹색성장 제1차 국가 기본계획’을 확정하였다. 특히 이 계획에서는 2050탄소중립 달성 전략과 203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2020년 기준 우리나라 온실가스 총 배출량은 6억5천238만톤이고 이중에서 메탄 배출량은 2천740만톤으로 약 4.2% 정도이다. 그러나 메탄은 대기중 농도가 이산화탄소에 비해 이백분의 일(1/200) 이상 낮으나 지구온난화지수가 약 30배나 높다. 또한 메탄은 대기중 체류시간이 약 10년으로 이산화탄소(최대 200년)에 비해 현저히 짧아 집중적으로 감축하면 1.5도 이하 억제를 위한 단일요인으로는 가장 효과적이고, ‘파리기후변화협약’ 목표 달성에 크게 기여 가능할 것이다.메탄의 주배출원은 농축산(장내발효, 가축분뇨처리, 벼재배 등), 폐기물, 에너지(탈루 등) 부문인데, 2020년 기준 대구광역시(군위군 제외)는 온실가스 총배출량 중 이 부문 비율은 3.5%에 불과하나 군위군은 무려 42%나 된다. 경상북도도 대부분 시·군이 군위군과 유사할 것이다. 따라서 대구경북의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은 국가가 수립한 ‘메탄 감축 로드맵’과 궤를 같이해야 한다. 농축산 부문에서는 체계적인 논물관리, 저메탄사료 개발·보급, 가축분뇨 자원화 확대, 폐기물부문에서는 음식물폐기물 발생저감, 폐자원 바이오가스화 확대 등이 대구경북 ‘메탄 감축 로드맵’ 의 핵심사업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2024-02-26

방언의 고고학 ‘어뜨무러차’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한국의 근현대시 100년, 그리고 한국현대시단을 대표해온 한국시인협회 50주년을 맞아 우리가 살고 있는 국토를 노래한 시들을 모아 엮은 작품집이 있다. ‘노래하자 아름다운 우리 국토를 : 국토사랑시집’(한국시인협회, 천년의 시작).이 시집은 우리말의 곡진한 의미와 꼴을 찾는 시인들의 작품을 찾아 알리고 그 속에 알알이 박혀있는 고어나 방언을 되살려 표준국어의 운용을 확대하려는 의도로 기획되었다.그런 기획 의도를 오탁번 회장은 금방 알아차리고 반겼기에 작품집 제작이 순조로웠다.1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그는 작년 고인이 되었다. 그가 남긴 유작집인 ‘좋은 시는 다 우스개다’(태학사, 2024)가 며칠 전 출간되었는데 놀랍게도 그는 그 당시를 회상하고 있었다. “지지난 달에 나온 이상규 교수의 시집 ‘외젠포티에의 인터네셔널가 변주’(예서, 2022)에 ‘아 그리운 오탁번’이라는 시가 있는 것에 놀랐다.2008년 내가 한국시인협회장으로 일할 때 국립국어원장이던 그를 만난 적이 있다. 방언시집을 낼 때 국립국어원에서 지원금 교부를 받기 위해서였다.국어학 전공 교수로만 알았지 그가 등단한 시인이라는 것을 그때는 잘 몰랐다. 그의 시집에 ‘오탁번’이 등장한다. 이 아니 놀랄쏘냐.”라며 17년 전 오랜 추억을 서로 교감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놀라워했다.“까물치도록 사투리를 애껴 시에 자릴 앉히는 오탁번 시인의 요오 메칠 전에 출간한 ‘비백’ 곳곳에서 탁, 탁 맥히는 충청도 사투리. 이 어른 일부러 사투리 애끼가면서 요 모퉁이 조 모퉁이에 종자씨 모종 흐트뿌려 놓듯, 시 제목이 ‘노향림’인 시 작품 맨 끄트머리에 ‘노향림의 시를 읽으면/어뜨무러차!/짊어진 소금가마처럼/눈물이 다 나네’ 노향림 시 한 편도 안 읽었어도 고만 눈물이 따라 날라카네.”- 이상규 시‘아, 그리운 오탁번’ 부분)시의 맨 끝부분에 나오는 “진자지미 밥 뜸 들이는 그리운 냄새에 아직 벗어나지 못한, 갈보리처럼 밟힌 마이너리티 촌티를 못 벗은 건지 안 벗는건지 매양 오탁번 시인의 시가 그래서 그립다.”‘어뜨무러차’는 어린아이나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릴 때 내는 소리를 나타내는 말이다. 으샤, 영차 등의 뜻인 셈이다. 이 한 마디가 시의 본질이 언어의 예술이자 우리 국어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오 시인은 토착어는 중앙 집권의 공식 언어가 아니지만 현재진행형으로 사용되는 소리언어로서 존중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그렇다. 그는 표준어를 보다 윤택하게 하기 위해서 서울 지역의 교양인이 아닌 다양한 지역에 수평적으로 공존하는 방언을 찾아 시어로 사용했다. 그 속에서 ‘마음의 고고학’이라는 일관된 미학을 우뚝 세운 것이다.사용하지 않아 천천히 사라지는 고어들이나 변두리인들이 사용하던 낡은 언어를 정성을 쏟아 한 편의 시 안에 곱게 자리를 만들어 앉혀내는 시인들의 경이적인 노력들이 이어질 때 전통의 현재적 계승이 이루어지는 게 아닐까? 사람들의 기억 속에 담아둔 옛 기억의 순수한 언어들을 새로운 시청각적 시언어로 탈환시키는 일은 국가기관이 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다.이러한 문화적 변곡점을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한국시인협회가 흔쾌히 동참해 준 결과다.오탁번 회장은 국어정책 연구 지원 기관인 국립국어원의 이러한 호소어린 요청을 시인들에게 한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분이셨다. 순은빛으로 반짝이는 우리 말 토박이의 소리를 회귀의 미학으로 꽃 피워 주신 시간과 공간 언어의 필경사, 오탁번 선생을 다시 또 그리워한다.그는 “이제 순은이 빛나는 이 아침에서 순금이 반짝이는 저 오로라빛 암흑으로 갔다. 독을 바른 창을 잡고 휘장을 친 수레를 몰고 그는 갔다. 아아, 희망도 절망도 없는 가을 하늘 아래 흔들리는 구절초 하나 같은”그와 나는 국립국어원장과 시인이라는 그 한 번의 만남, 그 후에도 시를 쓰거나 에세이로 기억하면서 잊지 않고 교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2024-02-26

민주정 아테네와 군국주의 스파르타-금권정치와 전군 체제

고대 그리스는 아테네를 비롯해 스파르타, 테베, 코린토스, 에레트리아가 폴리스 대표적인 도시국가였다.기원전 431년에서 404년,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에 대항해 스파르타를 지원하는 도시국가가 승리했다곤 하지만, 그리스 사회는 에너지 고갈이라는 쓴맛을 보아야 했다. 결국 그들이 바르바로이, 즉 변방의 야만인이라 부르던 마케도니아 발아래 무릎 꿇게 된다.그리스 수도 아테네는 민주정 대표적 역사 도시이자 지혜와 전쟁의 여신 아테나 이름만큼 역사가 깊다. 기원전 8세기 전후로 귀족들이 정치·군사적 권력이 점차 강화되면서 왕정이 약화된다. 그러자 교역과 공업으로 부를 축적한 시민과 귀족 간 대결 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왕정으로 시작해 군주정에서 민주정으로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발전했다.기원전 6세기에 접어들면서 상공업이 발달하자 빈부 격차가 심해지고 부채를 해결하지 못해 노예로 전락하는 시민이 늘어났다. 기원전 594년, 이때 아테네 최초의 시인으로 평가받는 솔론(Solon)이 등장한다. 재산 정도에 따라 정치적인 권리에 차등을 주는 개혁, 금권정치를 단행한다. 부채노예를 금지하고, 정당하게든 부당하게든 팔려 간 사람들과 빚의 멍에를 피해 이국땅을 방황하는 사람들을 아테네로 돌아오게 했다.그러나 참정권은 아테네에 거주하는 사람 중 여성, 이방인, 미성년자, 노예, 전과자, 빈민 등을 제외하면 10%에 불과했다. 이는 플라톤의 ‘국가론’으로 진화(?)하면서 먼 훗날 존경받는 지식인, 교육받은 귀족에게 권력을 준다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에게 영향을 끼치며 미국 헌법의 토양이 된다.각설, 금권정치는 새로운 세력의 등장을 부추겼다. 정치가 페이시스트라토스가 상대적으로 신분이 낮은 빈민의 지지를 끌어내며 이들을 기반으로 권력 중심에 선다. 귀족은 귀족대로, 평민은 평민대로 제한된 권력 행사에 만족해야 하는 금권정치가 못마땅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두 신분 간 극심한 대립을 가져왔다. 그러나 수적으로 우세했던 빈민 세력을 등에 업은 페이시스트라토스는 정권을 탈취하다시피 하여 참주에 오른다. 그가 죽자, 아들 히피아스가 기반을 이어받았으나 독재로 치달으며 폭정을 일삼자 참주 능력에만 의존하는 참주정은 결국 붕괴를 앞당기게 된다. 페르시아로 도망친 히피아스는 페르시아 다리우스 1세가 그리스를 침공할 당시 길잡이를 자처하며 훗날을 도모하지만, 마라톤 전투에서 죽는다. 이후 그리스는 행정구역 개편과 더불어 평의회를 설치하고 아테네에 참주의 등장을 방지하기 위한 ‘도편추방제’가 생겨났다. 깨진 도자기에 독재의 가능성이 있는 인물을 적어 600표 이상이 나오면 10년 동안 해외로 추방하는 제도다.폴리스 중 아테네처럼 민주정으로 발전한 경우와 달리 귀족정에서 벗어나지 못한 대표적인 경우가 스파르타다. 스파르타인은 피정복민 노예 헤일로타이(heilotai)와 주변인 페리오이코이(peri-oikoi) 위에 군림했다.스파르타 시민이라면 누구나 군국주의적인 제도에 참여해야 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스파르타인 스스로는 매우 합리적인 민주정이라고 생각하였다.스파르타에는 왕이 두 명이 있었다. 이들은 세습 가문에서 선출되는 귀족 대표자였지만, 군사 지휘권만 지녔을 뿐 그 어떠한 정치적인 행위에도 간섭할 수 없었다. 행정은 다섯 명의 집정관이 주도했으며, 관직 감시 역할도 담당했다. 특히 집정관은 노예 헤일로타이 감시와 탄압이 가장 중요한 업무였다. 스파르타 신민은 20세부터 60세까지 병역 의무를 졌다. 유사시뿐만 아니라, 단체로 병영생활을 하면서 똑같은 토지를 배분받았다. 이 토지는 피정복민 노예에 의해 경작되면서 신민으로서 균등한 대우를 받았다.헤일로타이에 의해 음식이 만들어지고, 차려지면 시민 모두가 함께 식사를 즐겼다. 사정이 이런 만큼 불쌍하고 가련하기 짝이 없는 헤일로타이 감시가 가장 중요했을 법하다.웃기는 이야기지만, 이 제도는 다양한 정치적인 문제로 인해 고단한 삶을 이어가던 인근 그리스인에게 무한한 동경의 대상이 된다. 똑같이 먹고, 누리며 즐기는 삶은 대를 이어 양산되는 헤일로타이라는 노예가 있어 가능했다. 따라서 헤일로타이는 결혼도 할 수 있었고, 가정을 위해 제한적이나마 재산도 모을 수 있었지만, 이유 없이 죽임을 당하는 경우도 허다하였다.‘국가’를 쓴 플라톤이 가장 이상적인 국가체제라고 한 스파르타였지만, 우리 아니면 모두 적이었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보다 배척하였으며, 개인의 성향보다 모든 초점이 체제수호에 맞춰져 있었다. 플라톤이 극찬하였으면서도 스파르타로 옮겨가 살지 않은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사족을 붙이자면 상상의 확장일지 몰라도 스파르타는 민주정의 원조 아테네와 달리, 다양성을 부정하는 파시스트 원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4-02-26

고용률 1위의 마법(?), 울릉군

홍석봉 대구지사장 인구 9천 명의 울릉군은 우리나라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자치단체다. 한때 인구가 2만7천 명을 웃돌던 시절도 있었지만 옛 이야기다. 면적도 가장 적다. 그런 울릉군이 10년 째 1등하는 것이 있다. 바로 고용률이다.지난해 하반기 전국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전체 고용률이 가장 높은 곳은 경북 울릉군으로 82.4%를 기록했다. 전국 시·군·구 228곳 중 고용률 1위다. 특·광역시 중에는 인천 옹진군이 73.9%로 가장 높았다. 고용률은 15세 이상 인구 가운데 취업자 비율이다.울릉군은 2014년 상반기부터 전국 시·군·구 중 10년 째 고용률 80% 대를 넘나들며 선두를 유지해왔다. 지난해 상반기엔 81.8%로 청송군에 이어 2위로 밀려났었지만 반년 만에 다시 왕좌를 되찾았다. 관광이 활성화된 덕분이다.울릉군의 1위 비결에 대해 통계청은 “육지와 동떨어진 섬 지역 특성상 어업과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한 일자리 수요가 꾸준한 데다, 관광과 숙박도 활발해지며 고용률이 높게 유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2위는 고용률 81.6%의 경북 청송군이 차지했다. 울릉과 청송은 지난해 상·하반기 서로 1위를 주고 받았다. 지자체 중 고용률이 80%를 넘는 지자체는 울릉군과 청송군, 그리고 전남 신안군(80.1%)뿐이다. 의외로 농·어촌 지역이 높은 고용률을 나타낸다. 이동이 적고 안정적인 직업 특성 때문이다.이같은 이유로 울릉군은 일자리 걱정이 없는 섬이 됐다. 농·어업과 관광·숙박업이 단단히 주민 생계를 받쳐주고 있다. 최근 기후변화로 울릉도의 대표적인 명물 오징어가 사라지는 것이 문제지만 말이다. 경기도 크게 타지 않는다. 고용률 1위를 유지하는 울릉군의 비결이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4-02-26

지방소멸에 맞서는 경북형 청년정주도시

경북도가 지방소멸 극복과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 지방정부와 대학, 기업이 함께 추진하는 경북형 청년정주도시 건설 사업을 올해부터 본격화한다. K-U시티로 불리는 이 사업에는 경북도내 17개 시·군과 29개 대학, 30개 고교, 95개 기업이 공동 참여해 교육, 취업, 주거, 결혼문제를 해결해 청년들이 정주할 수 있는 도시로 만들겠다는 것이다.경북도는 이 사업의 추진을 위해 지방소멸대응 기금 291억원을 투입해 지역산업 기반의 인재양성, 양질의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연구센터 건립, 정주환경 조성, 문화콘텐츠 활성화 등에 주력할 예정이라 한다.경북도는 지방소멸과 저출생 해결에 일찍부터 행정력을 쏟고있다. 지난해는 지방자치단체 인구감소 대응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전국 최우수 기관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철우 도지사는 저출산과의 전쟁을 선포, 저출산 극복을 통해 지방시대를 열겠다는 각오를 여러차례 밝힌 바 있다.통계청에 의하면 지난 10년 간(2013∼2022년)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 이동한 인구는 60만명을 육박했다. 경북에도 같은 기간 9만명이 수도권으로 유출됐다. 이동인구의 60%가 청년층이며 취업과 학업이 이동의 주된 이유였다.지금과 같은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의 경제·문화적 격차가 해소되지 않으면 앞으로도 수도권으로의 이동은 여전할 수밖에 없다. 경북도의 K-U시티는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지방에서도 양질의 일자리를 가질 수 있고 정주 여건을 개선해 젊은 부부가 결혼해 살기좋은 도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그러기 위해선 지방정부만의 노력으로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다. 지방정부의 노력에 정부의 지원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경북도의 K-U시티 계획이 제대로 실현될 수 있도록 정부는 지원하고 경북도는 청년 인구가 유입되는 도시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우리는 국토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이 모여 사는 비정상적 나라다. 비정상적 국토 구조를 바꾸는데 경북형 K-U시티 계획이 모범적 선례가 되도록 경북도의 분발이 있어야겠다.

2024-02-26

정부·의사 대화하면서 파국 막을 해법 찾아라

전국 수련병원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이 일주일째 이어지면서 의료 공백 사태가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병원을 떠난 전공의 빈자리를 전임의와 교수 등이 채우고 있지만, 일부 병원에선 전임의들마저 이탈할 기류를 보이고 있다. 특히 대학병원 교수들 사이에서 교수와 병원 소속 의사를 함께하는 겸직을 해제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인다니 걱정이다. 현재 전국 수련병원들은 수술과 진료 일정을 절반까지 줄이고, 전임의와 교수 등 병원에 남아있는 의사 인력을 최대한 활용해 전공의 집단 사직에 대처하고 있다. 대구지역은 수련병원 전공의 90%가 사직서를 냈다. 수련병원에서는 전공의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업무 복귀를 요청하고 있지만, 대부분 병원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수련병원에서는 지금 응급이나 중증 질환이 아닌 수술은 대부분 연기하고 있다. 환자들은 아예 수련병원 진료를 포기하고 준 종합병원으로 향하고 있다.정부는 강경태도를 굽히지 않고 있다. “증원규모 2천 명은 계속 필요한 인원”이라며 3월 4일이라는 시한까지 정해 각 대학으로부터 의대 정원 신청을 받고 있다. 2천 명 증원의 근거는 정부가 지난해 조사 때 각 대학이 제출한 증원 희망 숫자다. 전공의들은 “2천 명 증원 강행 시 끝까지 저항하겠다”라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다행인 것은 의과대학 교수협의회가 “중재자 역할을 하겠다”라고 나선 점이다. 전공의들의 스승인 교수들이 협상창구 역할을 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하지만, 정부와 의료계 간 입장 차가 큰데다 교수협의회 입장이 ‘증원 규모 재검토’여서 중재가 원만하게 성사될 것 같지는 않다.정부와 전공의들은 의대교수협의회가 중재하겠다고 나섰을 때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과 같은 강경입장을 고수하다 국가의료체계가 붕괴할 경우 그 책임은 어떻게 질 것인가. 양측 모두 현재 국가가 위기 상황임을 인식하고 의료 대란이 더 이상 확대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정부는 특히 ‘2천 명 증원’이라는 숫자에 너무 집착해선 안 된다. 그러니까 사태가 계속 악화하는 것이다.

2024-02-26

총선용 매표(買票) 포퓰리즘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총선용 포퓰리즘(populism) 광풍(狂風)이 불고 있다. 선거 때마다 도지는 ‘망국적 고질병’이다. 매표나 다름없는 선심성 공약을 여야가 경쟁적으로 남발한다. 여당이 50을 약속하면 야당은 100을, 또 다시 여당은 150을 던지는 ‘투전판 정치’다. ‘아니면 말고’식의 허황된 공약을 하는가하면, 여야가 야합해서 ‘예타 면제 특별법’으로 대못을 박기도 한다.윤 대통령은 “매표에 가까운 포퓰리즘 정책을 쓰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총선이 다가오자 소상공인들에게 재난지원금 환수면제, 대출이자의 현금반환, 전기료감면 및 신용사면을 단행했다. 또한 부동산·주식·금융투자자들에 대한 소득세와 상속세의 감세도 발표했다. 포퓰리즘을 비판하면서 재정건전성을 외치던 대통령의 표리부동(表裏不同)이다.여당과 야당의 ‘개발 포퓰리즘’ 경쟁은 더욱 가관이다. 여당이 1기 신도시의 재개발·재건축 규제를 푸는 특별법을 발의하자, 야당은 노후계획도시 정비·지원특별법을 발의했다. 여당이 수도권도심철도 지하화를 공약하자, 야당은 전국 모든 도심철도의 지하화로 맞섰다. 여당이 김포의 서울 편입을 다시 띄우자 야당은 서울지하철 5호선 김포 연장 예타를 면제했다. 심지어 여야는 야합하여 대구∼광주 달빛철도 특별법과 수도권 철도지하화 특별법을 모두 예타 없이 통과시켰다.‘복지 포퓰리즘’은 또 어떤가. 야당이 노인 간병비의 보험 급여화와 경로당 주5일 점심제공을 발표하자, 여당은 간병비의 국가부담 확대와 주7일 점심제공으로 맞불을 놓았다. 여당이 2028년까지 기초연금 40만원을 공약하자 야당은 2026년까지 모든 고령층에 기초연금 제공을 약속했다. 야당이 청년들에게 월 10∼20만원 수당, 학자금 무이자대출, 교통비 할인 청년패스를 공약하자, 여당은 대학생 50%에서 80%까지 국가장학금을 주는 동시에 ‘대학생 1천원 아침밥’의 확대 및 연 2%대의 주택담보대출을 약속했다.이러한 막가파식 선심성 정치는 망국의 길이다. 포퓰리즘에 빠졌던 이탈리아·그리스·베네수엘라·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지금 참회하고 있다. 총선을 겨냥해 여야가 던지는 포퓰리즘은 ‘마약’이다. 국민이 ‘마약’에 빠져 판단력이 흐려지면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고, 그 대가는 다시 부메랑이 되어 국민에게 돌아온다. ‘마약 복용’의 대가는 경제파탄이고 미래세대의 불행이다.포퓰리즘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면 정치 불신을 초래하고, 약속대로 실행되면 재정악화로 경제가 거덜 난다. 물론 정치인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마약 같은 권력’에 중독된 정치인들이 ‘마약 같은 포퓰리즘’을 국민에게 투여하고 있으니 제정신이 아니다.결국 미래는 국민의 선택에 달려있다. ‘정치의 수준은 국민의 수준’이기 때문이다. 스위스 국민은 매월 300만원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헌법개정안을 77%의 압도적 반대로 부결시킴으로서 남유럽이나 남미처럼 포퓰리즘에 빠지지 않았다. 앞날을 내다본 그들의 혜안(慧眼)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크다.

2024-02-26

국민을 버리면 의사도 없다

김진국 고문 살아가면서 의사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다. 본인이나 가족이 병으로 고통받을 때 의사는 천사와 같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는 의사가 고맙기 짝이 없다. 연로하신 부모님이 계시면 의사의 도움이 절실하다. 오죽하면 나이가 들어 첫 번째 주거 조건으로 병원을 꼽겠는가.필자도 그동안 많은 의사를 만났다. 환자로서는 물론이고, 이웃으로, 친구로, 여러 가지 인연으로 만났다. 생각해보면 대부분 훌륭했다. 어려운 사람을 잘 돕고, 보이지 않게 기부하시는 분이 많다. 매년 해외로 의료 봉사 가는 사람도 있다. 내가 아는 분들은 하나 같이 합리적이고, 친절하다. 특정 직업을 싸잡아 개념화하는 것은 무리지만, 개인적인 경험으로 보면 그렇다.그런데 최근 전공의들의 집단행동과 그 배후로 보이는 의사들의 발언은 내가 알고 있는 의사 이미지와 너무 달라 당혹스럽다. 의사들은 대한민국에서 머리가 가장 좋다는 인재들의 집합체다. 요즘은 대학 입학 때 성적순으로 전국의 의대 정원부터 먼저 다 채운다고 한다. 그렇게 특별히 선발된 인재들이 다른 어떤 과정보다 오래, 힘들게 공부한다. 그런데 특권 의식에 절어 있는 집단으로 모니 얼마나 섭섭할까 싶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 대응하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의 최고 엘리트 집단이 맞는지 의심이 든다.의사 증원에는 민주당이 더 강경하다. 보수 정권과 합리적 대화가 필요했다. 적어도 국민 여론을 살폈어야 한다. 그런데 스스로 일반 국민과는 다른 사람, 다른 집단으로 고립시켰다. 폐쇄된 엘리트 과정만 걸어와서 그런지 공감이 부족하다. 의사의 높은 소득을 질투하는 마음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의사 스스로 여론과 멀어지는 원인을 제공했다. 국민은 의사에게 최고 엘리트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기대한다. 그런데 이번 사태에서 의사 대표들이 쏟아낸 말들은 자기 이익만 챙기는, 세상 물정 모르는 유치한 수재의 이미지만 남겼다.김택우 의사협회 비대위원장은 정부의 면허 정지 경고에 “의사에 대한 정면도전”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의사에게 도전했다니, “버릇없이 감히 의사에게 대드느냐”는 말로 들린다. 주수호 의협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은 “지방에 부족한 건 (의사가 아니라) 민도(民度)”라고 막말하더니, “아주 급하면 외국 의사를 수입하라”라는 말도 했다. 그는 자신들을 ‘매 맞는 아내’로 정부를 ‘폭력 남편’으로 비유하기도 했다.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정부는 의사들을 이길 수 없다”라고 말했다. 좌훈정 서울시 의사회 정책이사는 박민수 제2차관을 겨냥해 “나이가 비슷하니 말을 놓겠다”라면서 “야, 우리가 언제 의대 정원 늘리자고 동의했냐”, “네 말대로라면 데이트 몇 번 했다고 성폭력 해도 되느냐”고 폭언했다. 전공의 발언은 더 나갔다. 원광대 산본병원 전공의는 “의사가 있어야 환자가 있다”, “내 밥그릇을 위해 사직했다”라고 주장했다.전공의들이 주 80시간씩 일하며 힘들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이 안다. 그런데 힘들다면 인원을 늘려달라는 게 정상 아닌가. 대학병원에 전공의 아닌 교수를 더 늘리려 해도 의사가 더 있어야 하고, 전공의를 늘려 일을 나누려 해도 증원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가 얼마나 힘든데 몰라주느냐. 증원하지 마라”라고 한다. 머리 좋은 의사들이 하는 논리적인 말이라고 이해되나. 국민은 “우리가 힘들게 이 자리에 왔으니 이제 충분히 보상받도록 의사 수를 늘리지 마라”는 요구로밖에 이해할 수 없다.다 그런 건 아니다.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대학병원에 의사가 부족하지 않은데 주 80시간씩 일하느냐”면서 “4~5억 벌다가 3억 벌면 죽느냐”고 꼬집었다. 천은미 교수도 “국민을 설득하려면 환자 곁에 남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의사단체 지도부가 문제다.사회 지도층은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 개인의 이익을 넘어 사회 전체의 지속 발전을 고려하고, 추구해야 한다. 힘이 세다고 사회적 가치를 독점하거나, 머리가 좋다고 다른 사람 몫까지 뺏어가면 야만 사회다. 힘이 있어도 자제하고, 배려할 때 인정하고, 존경한다. 국민과 함께하지 않으면 정부를 이길 수 없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2-25

이재명 민주당의 한심스런 선거전략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4·10 총선이 6주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여야는 각기 공천 경쟁이 치열하다.선거 초반 민주당은 강서 보궐 선거 압승, 국힘당 지도부의 혼선, 대통령 부인 명품 백 수수 사건 등으로 압승이 예상되었다. 그러나 갑작스런 한동훈 비대위의 출범 이후 총선 판세는 여당 쪽으로 기울고 있다. 이곳저곳에서 민주당이 이래서는 이길 수 없다는 비판이 쏟아져 나온다.윤석열 정부의 계속된 악재에도 민주당의 지지율이 추락하고 있다. 이번 주 코리아 리서치 등 여론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 31%는 39%의 여당에 뒤지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이 필패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한동훈 국힘당 비대위가 그렇게 잘한 것도 없는데 민주당 지지율은 이렇게 추락할까. 처음에는 한동훈 비대위원장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과 기대치 라고만 생각했다.민주당 지지세의 추락 원인은 총선 전략의 부재 때문이다. 이재명 민주당의 근본적 각성과 개혁 없이는 이번 총선의 야당 승리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선거는 상대를 이기기 위한 총력전이며 반드시 승리해야 힘이 생긴다. 전 당원의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민주당 내부의 갈등과 내홍은 총력을 약화시킨다. 이미 민주당의 이원욱, 김종민, 조응천 의원은 탈당하였다. 예고된 탈당인데도 당내에서 수습할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전직 당대표 이낙연과 이상민 의원의 탈당은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마저 없었다. 이재명 열성적 지지자들은 ‘수박청산’이라고 좋아했을지도 모른다.이낙연의 ‘새로운 미래’신당은 민주당 공천 탈락자를 맞이할 거물까지 쳐 두었다. 이낙연 전 당 대표의 정치 행보에 비판적인 사람도 많다. 필자 역시 그를 두둔할 생각은 없다. 문제는 이재명 당 대표가 당 분열사태의 심각성을 인식치 못하는데 있다. 현대 민주정당에서는 당권파인 주류와 비당권파인 비주류는 있다. 민주당도 친명과 비명은 공존해야 한다. 이들 간의 경쟁만이 당의 역동성을 기대할 수 있다. 선거 전야의 당내 갈등과 내홍은 결국 민주당 분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이번 민주당 공천과정의 마찰음도 선거의 동력을 약화시킨다. 김영주, 이수진 의원 등 공천 탈락자들의 탈당이 이어지고 있다. 컷오프 된 탈락자들은 당의 공정한 공천 기준이 없다고 비난하면서 농성까지 하고 있다. 공천 후유증으로 탈당 도미노가 이어진다면 당의 결속력은 현저히 저해된다. 흔히 정당 공천에는 NBA특성이 따른다고 주장한다. 공천은 다소 시끄럽지만(Noise), 균형(Balance)과 놀라움(Amaze)이 따라야 한다는 뜻이다.이번 민주당 공천에는 균형도 무너지고 인물에 대한 놀라움마저 상실했다는 것이다. 이번 공천은 비명 제거용 사천이라는 혹평이 따랐다. ‘친명횡재(橫財), 비명횡사(橫死)’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임혁백 당 공천위원장은 출범 초기 시스템 공천을 약속했지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공천 탈락자들이 당의 여론조사마저 불신하고 있다. 이러한 공천 과정의 대립과 갈등이 지나치면 단일대오의 선거는 치르기 어렵다.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산뜻한 정책이나 공약마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민주당의 ‘검찰 독재 심판’마저 여당의 ‘민주당 심판’에 막혀 제대로 먹혀 들지 않고 있다. 오직 대통령 부인 명품 백 하나에 기대를 걸수록 민주당의 선거 공약은 희미해진다. 심지어 총선이 코앞인데도 민주당은 지난 대선 패배의 책임문제를 따지고 있다. 지난 대선 패배는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후보의 반반의 책임이 분명하다. 이를 후보 공천에 적용한다면 친명과 친문간의 갈등만 증폭시킬 뿐이다. 결국 민주당 선거 결속력만 소실시킬 뿐이다.이 과정에서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국회의원 세비 삭감’ 공약이 오히려 설득력이 있다. 민주당은 ‘의사 정원 2000명 확대’라는 의료 정책마저 여당에 빼앗겨 버렸다. 기후위기, 인구 절벽, 꽉 막힌 남북문제, 고물가 등 절박한 민생문제에 대한 정책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집권 여당의 지역별 포퓰리즘 공약이 남발되는 정황에서도 민주당의 장밋빛 공약마저 보이지 않는다.민주당은 총선의 승리를 위한다면 선거의 전략적 틀부터 확 바꾸어야 한다.공천에는 의례 잡음이 있다는 안일한 사고로는 해법을 찾을 수 없다. 권노갑, 정대철 민주당 원로뿐 아니라 전직 정세균, 김부겸 총리의 고언도 겸허히 수용해야 한다. 여기에는 이재명 대표의 당 통합과 결속을 위한 재빠른 결단이 있어야 한다. 아직 남아 있는 후보 공천만이라도 제대로 된 ‘이기는 공천’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최근에는 이재명 대표의 결기와 시원한 사이다 발언도 들을 수 없다. 지난 2년 간 시달려온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 트라우마 때문일까. 이러다간 어느 것 하나 잡지 못하고 선거의 기회를 놓칠 수밖에 있다. 이러다간 그가 주장한 ‘151석의 승리’도 어렵고 ‘화려한 패배’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아진다.민주당의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당대표직의 전격 사퇴나 총선 불출마 선언 같은 극약 처방도 필요하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심기일전의 총선 전략 없이는 야당의 총선승리는 더욱 기대하기 어렵다.

2024-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