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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법을 무시하는 판사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선거범과 그 공범에 관한 재판은 다른 재판에 우선하여 신속히 하여야 하며, 그 판결의 선고는 제1심에서는 공소가 제기된 날부터 6월 이내에, 제2심 및 제3심에서는 전심의 판결의 선고가 있은 날부터 각각 3월 이내에 반드시 하여야 한다.’공직선거법 제270조(선거범의 재판기간에 관한 강행규정)의 법조문이다. ‘강행규정’으로 못 박아 놓은 것은 판사가 재량의 여지없이 법규대로 처리하라는 취지일 것이다. 그런데도 버젓이 이 법을 무시하는 판사들이 있다는 것은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대표적인 예가 2018년 울산시장선거에 대한 재판과 2021년 대선기간 이재명 후보의 허위사실공표 혐의에 대한 재판이다.2018년 6월 울산시장선거를 앞두고 발생한 선거법 위반 사건은 크게 세 갈래였다.문재인 대통령의 친구로 알려진 송철호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청와대가 상대 후보인 김기현 시장에 대한 표적수사를 경찰에 지시한 것과 청와대 고위공무원들이 송 후보의 선거공약을 지원해주었다는 것, 그리고 민주당 내 경쟁 상대가 경선에 출마하지 않도록 매수한 혐의 등이 수사 대상이었다. 이에 대해 검찰은 “피고인들은 최상위 권력기관을 동원해 경쟁 후보를 표적 수사하고, 상대 공약을 흠집내고, 당내 경쟁자의 출마 포기를 종용하는 등 특정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부정선거를 저질렀다”며 “대한민국 선거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최악의 반민주 선거였다”고 주장했다.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위반 사건은 지난 대선 후보 시절 대장동 개발사업 실무자였던 고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에 대해 “시장 재직 때는 몰랐다”고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와 지난 2021년 10월 국정감사에서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부지 용도변경 특혜 의혹과 관련해 “국토교통부가 직무유기를 문제 삼겠다고 협박했다”고 허위로 답변한 혐의다. 울산시장선거 관련 재판은 2020년 1월 29일 검찰이 공소를 제기한 후 3년 7개월여 만에 재판 절차가 종결됐다. 1년 넘게 공판준비절차로 공전하다가 2021년 5월에서야 정식 공판이 열려 2년 넘게 진행된 것이다. 그 사이 송철호 시장은 지난해 6월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고, 그 사건에 연류되었지만 재판지연으로 국회의원이 된 황운하와 한병도는 내년 5월에 임기가 끝난다. 이재명 대표의 선거법위반 재판 역시 일 년이 넘도록 결심공판도 열리지 않고 있다.사법부는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위한 최후의 보루다. 판사가 외부의 압력이나 영향을 받지 않고, 개인적인 선입견이나 주관적인 의견도 배제하고, 차별이나 편견이 없이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을 해야 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선거법 위반 제판을 지연하는 것은 명백한 위법 행위다.더구나 위의 두 사건처럼 정치판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사건일 경우는 그 죄과가 더욱 크다. 판사가 이념에 치우치거나 정치권의 눈치를 보고 법을 무시하는 행위를 막을 제도적 장치가 조속히 마련되기를 바란다.

2023-11-02

겨울을 준비하며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달력을 또 한 장 넘겼다. 겨울의 초입, 11월이다. 그런데 날씨는 푸근하다. 주말부터 전국적으로 소나기가 오겠다는 예보도 있는데…. 달력을 살펴보니 공휴일이 없어 좀 쓸쓸한 달이지만 1일부터 청송 사과축제가 열리고 3일에는 포항문화재단이 주최하는 포항음악제가 시작되며 10일에는 구룡포 씨푸드축제가 준비되고 있다.저녁 먹고 영일대 바닷가로 나갔다. 40여 일째 해오고 있는 해변가 ‘맨발로 걷기’를 하기 위해서다. 바다시청 신발장에 신발을 벗어두고 잔잔한 파도가 밀려오는 바닷가에 서니 하루의 일과가 머릿속에 정리된다. 붉게 물든 큰 보름달이 수평선 위에 떠 있고 많은 사람이 깨끗한 모래 위를 걷고 있다. 나는 찰방찰방 물을 밟으며 영일대 쪽으로 걷는다. 많은 사람이 스치며 조용히 뒷짐 지고 걷거나, 팔을 크게 흔들며 걷는다. 대부분 혼자서 걷는 사오십 대가 많고 노년의 부부도 조용히 얘기하며 걷고 몇몇이 놀러 나온 젊은이들은 불꽃도 터뜨리고 사진도 찍는다. 무릎 깊이의 물속에서 발가락을 꼬무락거리며 조개를 줍고 있는 아줌마가 있는가 하면 모래사장에 해초와 함께 밀려 나온 조개를 도로 바다로 던져주는 아저씨도 있다.영일대 부근까지 오니 스페이스워크가 알통을 재는 것 같은 포즈 위로 달이 보인다. 집을 나설 때는 춥지는 않을까 하고 따뜻하게 입고 나왔으나 물속에 발을 담구어 보면 차갑지가 않다. 요즘은 바람도 잔잔하다. 해변에 서 있는 스틸아트 이정표를 보니 먼 나라 도시 10개 정도가 거리가 표시되어 있는데 뉴욕이 약 1만1천km이고 서울은 270km이다. 되돌아 오면 포스코의 휘황 찬란한 불빛이 포항의 힘을 빛나게 하고 있다. 남쪽 끝 여객터미널 앞까지 와서 체조를 하며 잠깐 쉬고 되돌아간다. 이렇게 약 3천500 보 2.5km를 걷는다. 오늘도 버스킹 그룹 몇 개가 노래를 들려주고 큰길 옆 식당에는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떠들고 카페에는 연인들의 모습이 조용하다.이처럼 바다는 맑고 깨끗한데 근래 갑자기 들려오는 ‘럼피스킨’이라는 소 전염병이 전국 74곳이나 발생하였고 약 5천 마리가 살처분됐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있다. 다행히 경북은 아직 피해가 없다니 다행이다. 이 병은 모기 따위가 옮긴다는 데 또 빈대가 출몰하고 있다는 놀라운 소식도 들린다. DDT(다이클로로다이페닐트라이클로로에테인) 뿌려서 1970년대에 없어진 줄 알았던 빈대가 또 말썽이다. 아마 해외에서 유입된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맨발 걷기를 마치고 모래밭을 나와보니 스틸아트 작품들은 거의 철거되고 몇 개만 남겨두었는데, ‘Time’의 흰 딱따구리는 기둥을 쪼고 있고 ‘비상(飛上)’의 20마리 포항갈매기들은 하늘을 향해 뜨겁게 날아오른다.집에 와보니 땀이 조금 났다. 이제 여름철 옷은 빨아 넣고 길고 두꺼운 겨울옷을 꺼내야겠다. 벌써 마음먹고도 행하지 않았던 에어컨 청소도 전기 코드는 이미 빼놓았지만 필터도 닦고, 이방 저방 흩어져 있는 선풍기도 씻어 넣어야지. 시골집 뒷간도 정리하고 황토방에 불을 때어 주어야겠다. 곧 겨울이 들어선다는 입동(立冬)이니 더 추워지기 전에 주위를 정리하고 마음 조용히 11월을 맞이하자.

2023-11-02

아키는 여전히 슬프다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베리의 마지막 날. 병원 예약시간에 맞추기 위해 바삐 준비했다. 이동용 켄넬을 깨끗이 씻어 희고 폭신한 새 수건을 깔았다. 따뜻한 물에 적신 수건으로 베리의 몸을 정갈하게 닦았다, 연노랑의 옷을 입혔다. 한손으로도 가뿐히 들 만큼 가벼운 베리. 평소 좋아하던 장난감과 함께 켄넬에 들였다. 아키를 베리 앞에 데려가 마지막 인사를 하게 했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 켄넬을 들고 내려갔다.남편을 기다리며 주차장에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괴로움의 숨소리만 가쁘게 들릴 뿐 베리는 기척이 없었다. 그때였다. 웬 늑대울음 소리가 들렸다. 집에서 나는 소리 같았다. 얼른 뛰어 올라갔다. 현관문을 여니 세상에나…. 아키는 아까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서 하울링을 하고 있었다. 나를 보고도 꼼짝않은 채, 얼마전까지 베리가 있었던 안방을 향해 고개를 돌려 더욱더 크게 늑대 소리로 울고 있었다. 나도 울음이 왈칵 터졌다. 아키를 껴안았다. 너도 베리와의 이별이 슬프구나. 아키의 목줄을 찾아 일단 데리고 내려갔다.베리의 켄넬 옆에 두자 울음을 그쳤다. 작년 4월, 베리가 입원했을 때 식음을 전폐한 아키의 증상을 얘기했더니 문병을 허용해 준 수의사에게 전화했다. 이번에도 아키의 동행을 허락받았다.남편에게 얘기했더니 놀라고 애달파했다. 아키는 남편에게 안겨서, 내 품에 안겨 숨을 거두는 베리를 다 지켜보았다. 아키는 베리의 마지막까지 함께했다.빗속을 뚫고 도착한 장례식장에는 베리의 빈소가 마련돼 있었다. 미리 보낸 베리의 사진이 TV모니터로 보였다. 강아지 간식이 들어 있는 조그마한 제기, 그리고 조화이긴 하지만 예쁜 꽃들도 장식되어 있었다. 또 한 켠 벽엔 베리의 사진으로 만든 가랜드도 걸려 있었다.화장이 진행되는 두세 시간을 우리 부부는 베리의 사진이 반복적으로 바뀌는 TV모니터만 지켜보며 말이 없었다. 그런데 아키는 달랐다. 우리 둘 사이에 앉아있다가 사람 기척이 나면 부리나케 뛰어나갔다. 아키를 본 사람들이 몇 마디 말을 걸고 애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다시 조문실로 들어와 우리 곁에 앉는다. 그러다 문소리가 들리면 또 튀어나갔다가 그들과 잠시 지내고 들어오곤 했다. 넋을 잃고 앉아있다가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키의 행동이 마치 조문객을 맞는 상주의 그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말없는 남편에게 내 생각을 얘기했더니 남편도 슬쩍 웃음을 보였다.작은 보자기에 싸인 베리의 한 줌 뼈를 들고 집으로 온 그날 이후, 이웃 분이 날 붙들고 긴한 얘기를 하겠단다. 여태껏 강아지가 둘이나 있어도 우는 소리도 안 들렸는데 요즘은 매일 하울링 소리가 들려 이상하네요. 베리의 마지막 날, 목청 높여 하울링하던 아키였다. 내가 집 비운 사이 슬픔을 못견디어 울었나 보았다. 베리와의 슬픈 이별, 그로 인한 분리불안증 때문일까. 평소 베리와 아키는 깊이 의지하던 사이였고, 어쩌면 우리들보다 훨씬 더 애착관계였을 터. 아직도 슬픔을 삭이지 못한 아키를 혼자 두어선 안되겠다 싶어 웬만하면 어디든 데리고 다닌다.

2023-11-01

무릎통증과 예방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무릎은 우리 몸의 체중을 대부분 지탱하면서도 운동을 하는 관절이다. 관절도 크고 그 기능은 단순히 앞 뒤로만 운동이 가능하다. 어깨나 다른 관절처럼 다방향 운동이 안되고 오직 앞 뒤로만 움직인다. 체중의 대부분을 지탱하면서도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어깨처럼 다방향으로 움직이면 불안해지고 그럼 이에 따른 다른 관절이나 몸의 균형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기에 선택된 진화의 결과이다.일반적인 인간이 서 있을 때 골반은 앞으로 살짝 넘어가는 전방경사가 되어 있고 허리뼈는 신전 되어 있으며 허벅지 뼈와 종아리 뼈는 안쪽으로 내회전 되고 발목은 평발처럼 되어 있다. 장애가 있거나 특수 상황이 아니라면 모든 인간은 서 있을 때 이 상태로 몸을 지탱한다. 톱니바퀴가 서로 딱딱하게 맞물려 있는 것처럼 서로를 당겨주고 받쳐주면서 허리부터 하체의 균형이 유지된다.이중 어느 하나라도 과사용, 손상, 질병 등으로 인해 문제가 생기면 톱니바퀴 전체의 균형에 문제가 생기고 통증이 발생한다. 보통은 허리쪽에 무리가 많이 가고 발목이 이런 부하를 대신 받아 삐거나 하지만 무릎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많다. 특히 나이가 들면 들수록 무릎은 구조적으로 닳기 때문에 무릎 쪽에 무리가 많이 간다.무릎은 무리가 가기 시작하면 염증이 생기고 파열이 되고 닳기 때문에 허리나 발목처럼 다시 회복되는 게 쉽지 않고 지속적으로 문제를 일으킨다. 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걸어야 하기 때문에 걸으면서 다시 무릎에 무리가 가는 악순환이 생긴다. 그래서 무릎은 아프기 시작하면 빨리 치료를 하는 것이 좋다. 시간 지나면 회복되겠지 생각하고 방치하면 회복이 되지 않았을 때 더 심해진다. 처음엔 단순히 무릎 쪽 인대나 근육의 문제로 시작된 것이 붓게 되고 압박이 심해지면서 지속적인 염증 반응과 함께 무릎이 조금씩 닳게 되는 구조적 문제로 진행된다.무릎의 치료도 역시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일시적인 통증과 부분적인 통증은 통상 1~2주 이내의 치료로 좋아지나 부어 있으면 기본 한달 정도는 열심히 치료해야 만족스런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나이가 많거나 닳아서 무릎이 울퉁불퉁한 경우는 완치는 힘들고 통증을 줄이고 보행을 편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치료를 해야 한다. 몇 달은 기본으로 치료 해야 하고 심한 경우 한약과 병행을 해야지 효과를 볼 수 있다.개인이 해줄 수 있는 운동은 가능하다면 허벅지쪽을 단력시킬 수 있는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 계단 오르기나 자전거 타기 스쿼트 같은 운동을 무리가지 않는 선에서 하면 된다. 통증이 있을 때 걷기운동은 좋지 않다. 달리기나 등산도 무릎에 큰 무리가 가니 무릎이 아픈 사람은 하면 안 된다. 치료가 되고 무릎 염증이 사라지고 통증이 사라지면 걷기 달리기 등산을 하면 된다.음식은 단백질 섭취를 위해 육식 위주로 해야 한다. 근육량을 늘리려면 육류 위주의 식사를 하고 밥과 빵 국수 등의 탄수화물 섭취는 줄인다. 그리고 물은 일부러 많이 먹지 않는다. 무릎 통증이 심한 사람은 보통 무릎이 부어 있는데 이때 몸에 좋다고 수분을 과다 섭취하면 무릎 부기가 가라앉지 않으니 물을 일부러 먹는 것은 삼가야 한다.

2023-11-01

한국교회에 묻는다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506년 전 엊그제, 약관 34세 독일 청년이 세상을 바꾸었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의 종교개혁은 교회를 변화시켰을 뿐 아니라, 세상의 물줄기를 소용돌이치게 하였다. 가톨릭교회의 부패와 교황의 부당한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여,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개신교의 출발을 알렸다. 루터 자신은 ‘종교개혁’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본인의 소신과 하나님의 이끌림에 따라 하는 수 없이 한 일이라고 술회하였다. 1517년 10월 31일 아침에 95개의 문장으로 적어 교회 정문에 내걸었던 선언문에도 그의 다짐과 경고는 물론 누구와도 토론하겠다는 의지를 함께 담았다. 개신교가 태동했으며, 사회와 역사가 크게 변화하기 시작하였다.오늘 우리 교회는 어떤가. 웬일인지 교회는 권력과 금력 앞에 무릎을 꿇은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은가. 루터의 개혁은 교회를 ‘돈’의 그림자로부터 떼어내지 않았는가. 당시 면죄부로 상징되는 교황의 금권을 반성경적인 것으로 규정하면서 종교개혁을 시작하였다. 우리 교회가 권력을 탐하고 돈을 좇는 모습을 언론에서 만날 때, 목사님과 교회를 믿고 따르는 착한 교인들이 무슨 생각을 할까 걱정이 된다. 교회는 개인의 복락만을 추구하는 기복(祈福)의 구습에서 벗어나야 한다. 어렵고 힘든 민생을 이어가느라 지치고 고단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경제적으로 고립된 사람들을 찾아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전해야 하지 않을까. 정치적으로 부당하고 문화적으로 왜곡된 이슈들에 대하여도 윤리적 도덕적으로 반듯한 목소리를 만들어 전해야 하지 않을까.우리가 목격하는 한국교회는 사회적 담론 형성의 권위를 스스로 잃어버렸다. 오늘 들리는 교회의 목소리는 누구보다 앞서 돈과 힘을 따라 세상에서 성공하여 행복하길 바라는 욕망을 전할 뿐이 아닌가. 사회적으로 소외되어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가거나 정치적으로 건강한 목소리를 내는 모습은 교회로부터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오백 년 전 독일 청년이 꿈꾸었던 교회의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그 이전의 교회로 다시 돌아간 모습이 아닌가. 사람과 이웃을 섬기는 목사가 아니라, 교인들과 주변으로부터 대접받는 목사. 동네의 여느 집들보다 화려하게 우뚝 선 교회 건물들. 힘없는 이들을 보살피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힘있는 자들을 따르는 교회. 사회의 건강을 돌보기 보다 개인의 행복에만 천착하는 메시지.구석구석에서 선한 목회를 펼치는 목사님들도 많을 것으로 기대한다. 싱싱한 포부와 멋진 믿음으로 신학에 도전하는 젊은이들도 많을 터이다. 16세기 독일 청년의 용기와 도전을 21세기에도 만나보고 싶다. 저렇듯 무너져 내리는 오늘 한국교회의 모습 앞에 든든한 믿음으로 무장한 기개와 다짐을 목격하고 싶다. 지구의 반대편에서 두 번째 종교개혁을 일으킬 수는 없을까. 이대로는 안 된다. 착한 교인들이 불쌍하고 수렁에 빠진 사회가 심각하다. 마지막 보루 한국교회가 본연의 모습을 되찾아 나라에 치유와 회복이 깃드는 날이 어서 찾아왔으면 한다.

2023-11-01

포스코 노사 합의, 55년 무파업 전통 이어가길

55년만에 첫 파업 위기를 맞았던 포스코 노사가 지난달 31일 극적 합의를 도출했다. 노사협상을 걱정스럽게 지켜보던 지역사회가 이제 안도의 한숨을 돌리게 됐다. 포스코 노사는 지난달 30일 오후 3시부터 12시간에 걸친 마라톤 회의 끝에 임금 및 단체협약에 잠정 합의했다. 이날 열린 중앙노동위원회 조정회의는 파업시한인 0시를 넘겨 한때는 창사 후 첫 파업이라는 위기감도 나돌았다. 그러나 노사가 파업만은 막자는 생각으로 파업시한 이후에도 성실 협상을 벌여 잠정안을 도출했다. 55년 무파업의 포스코 전통이 저력을 발휘한 셈이다.합의된 주요 내용은 기본금 10만원 인상, 주식 400만원 지급, 일시금 250만원, 격주 4일 근무제 도입 등이다. 포스코 노조는 이날 합의된 잠정안을 9일 조합원 투표에 부칠 예정인데, 과반이상 찬성이면 올해 임단협은 최종 타결된다.포스코 노사는 지난 5월 24일 상견례를 시작한 이후 10월 5일까지 24회 교섭을 벌였으나 양측이 합의점을 찾지 못했고, 노조는 쟁의 행위 찬반 투표에 부쳐 77%의 찬성을 얻기도 했다.이에 따라 포스코 노조 파업에 대한 지역사회의 우려와 걱정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포항경제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포스코의 파업이 안겨줄 후폭풍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포스코 직원뿐 아니라 고객사, 협력사, 지역사회는 물론 나아가 국가적으로도 막대한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이다.이런 면에서 포스코 노사의 협상 타결은 지역사회만 아니라 국가 경제적으로도 단비와 같은 소식이다. 노사는 상생의 관계다. 노사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면 경영조직이나 관리가 아무리 좋아도 생산성을 높일 수 없는 게 지금의 시대 흐름이다.55년 무파업의 포스코 노조 전통이 지속 이뤄지길 바란다. 전통이란 공동체 내에서 형성된 사상이나 행동 등을 말한다. 조직의 정신적 가치를 이르는 말로도 표현된다. 상호 신뢰와 양보로 상생의 길을 걸어온 포스코의 노사 협력정신이 지역사회와 국가 경제발전에 힘이 되는 모범사례로 계속 남길 희망한다.

2023-11-01

TK 국가산단의 成敗, 속도전이 중요하다

지난 3월 국가첨단산업단지 후보지로 지정된 대구와 안동, 경주, 울진 4곳의 국가산단 사업추진 속도가 빨라진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31일 열린 ‘신규 국가산업단지 기업설명회’에서 신속 예비타당성조사(예타) 제도 도입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신규 국가산단에 대한 신속예타 방침은 지난 3월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면서 국가첨단산업벨트 구축을 최대한 앞당기기 위해 예타 조사 기간을 7개월에서 2개월까지 단축하고, 이르면 2026년 착공이 가능하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었다.원희룡 국토부장관은 이날 기업설명회에서 “국가산단 조성과 관련해 신속한 추진이 중요하다”면서 입주 기업에게 각종 세제·보조금 혜택을 부여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수도권에서 3년(중소기업은 2년) 이상 공장시설을 갖추고 사업한 기업이 공장시설 전부를 수도권 밖으로 이전하는 경우 최대 10년간 법인세를 면제받을 수 있게 해준다. 특히 인구감소지역인 안동·울진으로 이전하는 기업은 10년간 법인세 100% 감면 후 2년간 추가로 50% 감면혜택을 받는다. 대구·경북 국가산단에 입주하는 기업들은 복잡한 행정 절차에 대한 원스톱 서비스도 받는다. 오랜 기간이 소요됐던 인허가나 교통·환경 영향평가 같은 경우 사전 컨설팅을 통해 신속하게 통과시켜 준다. 기업유치 발목을 잡아왔던 각종 규제들도 정부가 나서서 해제해 주기로 했다.정부가 지난 3월 발표한 전국 15개 첨단 국가산단 중 대구·경북에서는 4곳이 선정됐다. 대구는 미래 자동차와 로봇산업이, 안동은 바이오의약, 경주는 소형모듈원전(SMR), 울진은 수소생산 산업이 집중 육성된다. 현재 세계 각국이 첨단산업 육성에 너도나도 뛰어든 상황이기 때문에, 국가산단 조성은 속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부는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 수도권 주요기업들이 대구·경북지역 국가산단에 신규투자를 활발하게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유인책을 만들 필요가 있다. 물론 대구·경북 각 지자체와 정치권의 ‘기업유치 총력전’이 전제돼야 한다.

2023-11-01

대중교통전용지구의 명암

홍석봉 대구지사장 대중교통전용지구는 도로 전체를 시내버스 등 대중교통과 보행자만 다닐 수 있도록 조성한 교통 시설이다. 자가용 통행이 24시간 차단된다. 일부 조업차량과 긴급자동차, 준대중교통만 제한적으로 진입이 허용된다. 주로 상업시설의 밀도가 높고 보행자 통행량이 많은 도심 지역에서 설치한다. 도로 폭은 왕복 2차로, 제한속도는 30km/h, 버스베이 등의 시설이 갖춰진다. 통행 위반시 과태료가 부과된다.대구시는 2009년 12월 국내 처음으로 중앙대로 반월당네거리~대구역네거리 구간을 대중교통전용도로로 지정, 시행하고 있다. 당시만 해도 획기적인 교통정책이었다. 시민들은 기대반 의구심 반으로 지켜보았다. 이후 보행환경개선과 상권활성화, 상징거리조성, 소음·대기오염 감소 등 도심 활력을 도모하는 효과가 컸다. 이에 서울시와 부산시도 뒤따랐다.대구 중앙로는 대중교통전용지구 지정 이후 5년 만에 시내버스 이용객이 33.8% 증가했다. 유동인구도 17.7% 늘었다. 자가용 통행이 줄면서 이산화질소, 미세먼지, 일산화탄소, 아황산가스가 20~40% 줄었다. 소음도 낮아졌다.하지만 시행 14년이 지난 현재 중구 태평로 일대의 활발한 재건축과 재개발 등으로 교통환경이 크게 변했다. 동성로 경기가 침체됨에 따라 전용지구 검토 요구가 높아졌다. 게다가 서울과 부산시가 같은 이유로 운영 중단 및 일시 해제한 점도 작용했다. 대구시가 1일부터 대구역네거리~중앙네거리 구간의 대중교통전용지구를 해제했다. 동성로 르네상스 프로젝트도 함께 추진한다. 도심 활력을 되찾고 동성로 상권 활성화에도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교통 환경은 유동적이다. 아쉽지만 대중교통전용지구 일부 해제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11-01

등대를 읽다

배문경 수필가 “햇살이 사라질 때 그 불빛은 거친 파도를 좀 더 밝은 은색으로 물들였고, 푸른색이 바다에서 밀려나가고 순수한 레몬색 불빛이 밀려들어 곡선을 그리면서 부풀어 오르다가 해안에서 부서질 때 그녀의 눈은 황홀에 빠졌고, 그녀의 마음 밑바닥에서도 순수한 기쁨의 파도가 출렁거렸다.”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 중에서바다를 바라보다 등대와 눈이 마주쳤다. 멀리 있으니 작고 앙증스러워 보이는 빨간 등대다. 어쩌면 파도 그리고 바다와 저렇게 잘 어울릴까. 그 주위를 날개를 펴고 비상하는 갈매기 떼는 한 폭의 그림이 된다.지금 나는 구룡포 대보 호미곶 등대박물관에 와 있다. 등대박물관이 큰 규모로 새로 지어졌다. 들어서자 맞은편 유리창으로 펼쳐지는 바다가 푸르게 다가온다. 천정에서 내려온 디지털 화면에는 일몰부터 일출까지의 풍경과 바다와 선박을 이어주는 역동하는 등대를 표현했다. 생명의 빛으로 만들어진 육각형 화면은 수시로 변화해 멋진 장면을 연출한다.분수를 뒤집어 놓은 듯이 생긴 조명나무 밑에 서자 전구가 켜지고 뿌연 물방울이 떨어진다. 보물선 조타체험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지만 페달을 밟자 시원하게 대포가 발사되어 문어괴물을 물리쳤다. 빛의 마을 캐릭터와 함께 기념사진도 찍다보니 어릴 적의 나와 조우하는 느낌이다. 그때는 이렇게 좋은 세상도 아니었다. 슬리퍼를 신고 바다의 모래사장을 헤매다보면 발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던 모래알들이 간지럽고 즐거웠다. 바다는 늘 푸른빛으로 나를 유혹했다.등대는 항로표지의 한 종류다. 빛으로 배를 안내하는 광파표지다. 바다에서 튀어나온 곳이나 섬과 같이 배가 목표지점으로 삼을 수 있는 곳에 설치한다. 그래서 해안의 긴 선착장 끝에는 육지에서 차와 사람을 조절하는 신호등처럼 등대가 있다. 어둠이 깊을수록 별이 빛나듯이 어둠이 짙어진 바다를 향해 불빛을 쏘는 등대야말로 바다를 지키는 수호신이다.내 삶의 수호신은 무엇일까. 어릴 적, 연로하신 부모님과의 소통되지 않는 우울한 유년을 위로해주던 사람은 큰 오빠였다. 가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길에서 나는 오빠에게 작은 한 송이 꽃이었을지도 모른다. 오빠는 막내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어려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대학을 다닐 때는 교수님께서 나를 지지해주셨다. 인생의 선배인 그 분은 힘든 일도 가볍게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길러주셨고 삶의 애환에 대한 깊은 이해와 소통을 함께 나누었다. 세상의 풍파에 흔들릴 때마다 등대 같은 그들이 있어 나는 난파되지 않고 여기까지 온 모양이다. 1세기에 만들어진 스페인 라코루냐등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등대다. 세계 수많은 나라의 유명한 등대가 있겠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는 인천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위치한 팔미도 등대다. 크고 작은 등대가 이제는 불빛을 쏘아대며 배를 순항하도록 하는 것 외에도 자연 암초로 인해 스노쿨링으로 바다를 즐길 수 있는 감포항 인근의 송대말등대처럼 친근한 것도 있다.등대는 다양한 방식으로 배를 돕는다. 캄캄한 밤, 빛을 이용해 육지를 알려주는 광파표지와 먼 바다에서 위치확인이 어렵거나 배들이 서로의 위치를 알 수 없을 때 도움을 주는 전파표지, 안개나 비, 눈 등으로 시야가 흐릴 때 음파표지, 보이지 않는 바다 속의 위험지역을 모양과 색을 이용해 알려주는 형상표지가 있다. 어쩌면 우리는 누군가의 등대이거나 누군가는 나의 등대일 수도 있다. 보이거나 보이지 않더라도 가슴속에 십자가처럼 빛나는 무엇 하나.우리 삶에 등대와 같이 어둠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 인생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먼저 인생을 살다간 사람들의 발자취가 아닐까. 잘 들여다보면 삶을 통해 남보다 조금 더 앞서가며 역사에 오래토록 남을 발자국의 주인인 그들의 삶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겐 등대가 아닐까. 불빛처럼 빨간색등대는 오른쪽에 장애물이 있으니 왼쪽으로 다니라는 뜻이고 흰색등대는 왼쪽은 암초가 있으니 가면 안 된다는 위험신호를 보낸다. 우왕좌왕 갈팡질팡 삶이 흔들릴 때 그들이 남긴 삶의 발자국에 슬며시 발을 올려보자.

2023-11-01

24절기(節氣)와 명리(命理) 이야기

우주의 현상과 질서인 자연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순환한다. 자연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주변 환경을 관찰하고 기록하여 자연 변화의 규칙에 순응하여 이에 적응하고 대응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천체의 주기적 변화를 관찰하여 시간을 구분하고 날짜를 매겨 기록한 것이 역법(曆法)이다. 달을 기준으로 하는 태음력(太陰曆)과 해를 기준으로 하는 태양력(太陽曆)을 절충한 태음태양력(太陰太陽歷)을 지금 사용하고 있다.자연현상 가운데 풍열습조한(風熱濕燥寒)의 변화 원리를 담아낸 것이 절기(節氣)다. 절기에는 인간의 생존과 활동을 위한 조건이 되는 시간, 날짜, 온도, 습도 등의 정보가 모두 담겨져 있다. 절기는 천문학적으로는 태양의 황경이 0도인 날을 춘분으로 하여 15도 이동했을 때를 청명으로 구분하는 등 15도 간격으로 24절기를 나누었다. 따라서 90도인 날이 하지, 180도인 날이 추분, 270도인 날이 동지다.명리학은 계절에 따른 자연과 사람 사이의 기운을 보는 학문이기 때문에 절기는 명리학의 기준이 된다. 중국과 우리나라는 농경문화이기에 계절의 변화가 삶에 밀접하게 관계가 있다. 농경문화에서 절기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농사짓는 일이 계절의 시간과 흐름에 맞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절기는 양력 즉 태양력을 사용한다.명리학에서 한 해의 시작은 입춘이다. 양력으로 새해 1월 1일이 아닌 입춘일(2월4∼5일)을 한 해의 시작으로 잡는 이유는 농경사회이기 때문이다. 농사의 관점에서 새해는 봄을 알리는 때로 하는 것이 유리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절기에는 농사와 관련된 이름이 많다. 24절기는 중국 주(周)나라 때 화북 즉, 황하지역의 기후에 맞추어졌다.명리학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과 낮과 밤이 순환하는 자연의 원리를 인간의 삶에 적용시켰다. 어떻게 하면 풍족하고 질병이 없이 장수할 수 있을 지 긴 세월을 거쳐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음양과 오행, 계절의 순환과 반복을 관찰하고 그 경험을 축적하여 원리를 찾아내어 인간의 삶에 반영하였다.중국 고대의 천문학 자료 중 전한(前漢)의 회남왕 유안(劉安·기원전 179~122)이 저술한 회남자 ‘천문’편은 가장 오래된 자료로 손꼽힌다. 천문(天文)에 대해 고유(高誘)는 “천문에 문(文)이라는 것은 상(象)이다. 하늘은 일의 발생에 앞서 먼저 조짐의 형상을 드러내 보인다. 해와 달, 화성· 수성· 목성· 금성· 토성의 오성(五星), 그리고 혜성 등으로 사람에게 미리 꾸짖고 경고한다”고 해석했다.이 자료에서 우주의 생성과 발전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사고를 엿볼 수 있다. 여기에는 만물의 생성과 변화의 기본 요소를 기(氣)라고 보았다. 또한 자연계와 인간계의 상관관계에서 생존에 유리하기 위해서는 각 계절에 합당한 정치를 시행해야 함을 강조했다. 세성(歲星, 목성) 또는 태음(太陰, 달)의 운행에 따라 인간의 삶이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우주(宇宙)를 설명하는 문헌으로는 진나라 상앙의 스승이었던 시교(尸佼 기원전 390~330)가 저술한 시자(尸子)가 있다. ‘상하사방왈우(上下四方曰宇),왕고래금왈우(往古來今曰宙)’. 위아래 사방을 ‘우’라고 말하고, 예로부터 지금까지를 ‘주’라 한다. 회남자에도 ‘예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것을 ‘주’라고 하며, 사방과 위·아래를 ‘우’라고 한다’는 말이 있다.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우(宇)는 공간이고, 주(宙)는 시간이다. 즉, 시공간(時空間)을 말한다.시공간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성격 형성에도 계절의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봄 태생은 추운 겨울을 지나 따뜻한 기운을 맞으므로 생동적이다. 여름 태생은 불처럼 확산시키고, 오지랖도 넓고 일도 잘 벌이는 것이 특징이다. 여름에 태어났음에도 ‘나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사주에 차가운 금수(金水) 기운이 강해서 그렇다. 다시 말해 여름 태생답지 않게 소극적이고 안전한 것만 선호하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가을 태생은 결실을 맺고 열매를 수확하는 때에 태어난 것이다. 가을은 열매가 여물고 사람도 성숙해지는 시기로 목표를 완성하는 시기다. 겨울 태생은 수확한 작물을 보관하고 저장하여 다음해 종자로 사용하기 위해서 기다리는 시기다. 사람은 이러한 계절 변화에 따라 생활해야 하는 이유로 명리학은 인간의 삶과 밀접한 관계에 놓이게 된 것이다. 춘추시대 제나라 안영의 ‘안자춘추’에 나오는 남귤북지(南橘北枳)는 강남의 귤을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뜻이다. 또 귤화위지(橘化爲枳)는 귤이 변해서 탱자가 된다는 말이다. 즉, 기후와 풍토가 다르면 동일한 것이라도 그 성질이 달라지는 것처럼 인간도 주위의 환경에 따라서 생각과 행동이 달라질 수 있음을 나타낸다. 그만큼 태어난 장소와 계절의 중요성을 말한다.회남자 ‘인간’ 편에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변방에 사는 노인이라는 뜻으로, 세상만사에 변화가 많아 어느 것이 화(禍)가 되고, 어느 것이 복(福)이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현실이 이와 같이 변화무쌍하여 앞날을 예측하기 혼란할 때는 지난날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2023-11-01

‘인요한 혁신위’가 할 일은 공천이 아니다

심충택 논설위원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의 주장대로, 과연 ‘영남스타’인 주호영 의원(대구 수성갑·5선)이 기득권을 포기하고 수도권 험지에 출마할 가능성이 있을까. 나는 가능성 제로라고 생각한다. 주 의원은 이미 국민의힘 당협위원장이 자리를 잡고 있는 수도권 지역구에 낙하산공천을 받아 총선을 치르겠다는 가정 자체를 하기 싫을 것이다.총선취재를 여러번 해봤지만, 어떤 지역구든 현역의원을 이기기는 힘들다. 특히 수도권 현역들의 경우 당선직후부터 다음 선거에 대비해 지역구 관리를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정당별 지지도가 엇비슷하고, 공천경합자도 많아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다음선거 공천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강박관념 때문이다. 지금 비판받는 민주당의 팬덤정치는 현역의원들의 끊임없는 조직관리 때문에 생긴 측면이 강하다.이런 수도권 선거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주 의원이 인 위원장의 서울 험지 출마요구를 받아들일 리가 만무하다. 주 의원은 지난 4월 대구지역 한 방송에 출연해 TK현역 공천 물갈이설에 대한 생각을 밝힌 적이 있다. 당시 그는 2016년 총선에서 공천 탈락 후 무소속으로 출마한 경험을 상기시키면서 “어떤 이유로 공천에서 탈락했지만 정말 괜찮은 정치인이라면 다시 당선시켜주는 경우가 많아져야 한다”고 했다. 만약 대구 수성갑에서 공천을 받지 못할 경우 무소속 출마를 불사하겠다는 의지가 읽혀지는 부분이다.여기서 주 의원을 예로 들었지만, 인 위원장이 “낙동강 하류 세력은 뒷전에 서야 한다”며 TK정치권을 비하하고, 김기현 대표(울산 남구을·4선)와 주호영 의원을 콕 집어 수도권 험지에 출마하라고 요구한 것은 신중하지 못한 발언이다. ‘잘 모르는 사람끼리 술집에 앉아서 할 수준의 말을 혁신위원장이 함부로 얘기한다’는 비판에 공감이 간다. 당사자들은 애써 감정을 누르고 있겠지만,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수도권 험지에 출마하라는 말은 사실 정치를 그만두라는 얘기와 다름없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도 최근 이와 관련해 “TK중진 서울 차출은 그냥 죽으라는 얘기다”라고 했다. 사실 국민의힘이 김 대표나 주 의원을 서울험지에 출마시킨다고 해서 감동할 국민도 없다.여당은 이번주 총선기획단과 인재영입위 가동을 시작으로 총선준비에 들어간다. 12월 12일부터는 총선 예비후보자 등록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당 사무총장이 단장을 맡는 총선기획단은 선거전략과 공천기준 수립 등 밑그림을 그리는 기구다. 향후 출범할 공천관리위원회의 실무기구로 생각하면 된다. 인재영입위는 말 그대로 당선가능성이 있는 인재를 추천하는 역할을 한다. 국민의힘은 앞서 호남, 수도권, 청년 등을 영입 키워드로 제시한 바 있다.앞으로 두 기구가 본격적인 활동을 하게 되면 그동안 혁신위가 제기했던 이슈들은 묻힐 수밖에 없다. 혁신위가 공천에 관여해 봤자 실효성이 없다는 얘기다. 혁신위가 지금 긴급하게 해야 할 작업은 수도권 선거판세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을 견인할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내놓는 것이다.

2023-10-31

경북도 투자유치 12조… 이게 단체장 성적표

국내 경제상황이 좋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경북도와 각 시·군이 기업들로부터 유치한 투자금액이 9월말 현재 12조원을 넘어섰다. 특히 2차전지 분야에만 5조9천12억원의 투자를 이끌어내 경북도가 국내 이차전지 산업의 중심지로 자리를 굳혔다. 경북도는 그동안 포항(양극재 전주기), 구미(양극재, 분리막), 상주(음극재), 경주(리사이클링)와 함께 2차전지 투자유치 활동에 총력을 쏟아왔다. 경북도는 앞으로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에 선정된 포항을 중심으로 2차전지 기업 집적화를 위한 투자유치 활동에 올인할 예정이다. 포항은 현재 영일만 산단과 블루밸리 산단을 혁신거점으로 삼아 2030년까지 세계 1위 양극재 생산도시가 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2차전지에 이어 투자유치 금액이 1조원을 넘어선 산업은 반도체(2조1천443억원)와 데이터센터(1조5천200억원) 분야다. 기계금속(방산·4천550억원)과 관광서비스(4천340억원) 분야의 투자유치금액도 4천억원을 넘어섰다. 경북도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한 기업은 SK그룹이다. SK에코플랜트는 DCT텔레콤과 KB자산운용 등과 함께 포항에 ‘데이터센터 캠퍼스’를 조성하는데 1조5천200억원을 투자했다. 그리고 SK실트론은 구미 국가산업 3단지에 1조2천360억원을 투입해 2026년까지 300㎜(12인치) 반도체 실리콘웨이퍼 제조설비를 증설한다.국내 모든 지자체와 경쟁해 경북도가 올들어 벌써 12조원이 넘는 투자유치 금액을 달성한 것은 놀랄만한 성과다. 이철우 도지사를 비롯한 도내 시·군 단체장들의 역량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한다. 투자유치실적은 바로 단체장들의 성적표다. 앞으로 경북도는 대구경북신공항이 2030년 개항하면 투자유치 환경이 획기적으로 개선된다. 특히 최근 제정된 분산에너지활성화 특별법에 근거해 전기요금이 전국 최저수준이 되면 세계 어느 도시 못지않은 ‘기업친화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앞으로 경북도가 최적의 투자 인프라를 갖춰 국내 첨단산업의 중심지가 되길 바란다.

2023-10-31

TK 국비확보, 지자체와 정치권 원팀돼야

윤석열 대통령의 내년도 예산 시정연설을 시작으로 국회의 예산 정국이 이달부터 본격화된다. 예년과 다름없이 대구시와 경북도는 지금부터 내년도 국비확보를 위한 비상 상황에 돌입하게 된다. 정부는 내년도 국가 예산안을 복합경제 위기상황 등을 고려, 올해보다 2.8% 늘어난 657조원 규모로 편성했다. 예산 확보가 예년과 달리 만만치 않다는 얘기다. 특히 예산안이 전례 드물게 소폭 인상에 머묾에 따라 전국 지자체간 확보전도 매우 치열할 것이 예상된다.대구시는 지난달 30일 국회의원회관에서 홍준표 대구시장과 대구시 주요 간부 그리고 국민의힘 양금희 대구시당 위원장 등 지역정치권이 함께 참석한 가운데 예산정책협의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대구시는 TK신공항 특수목적법인(SPC) 연내 구성과 달빛고속철도특별법 연내 제정, AI로봇 글로벌 혁신특구 선정, 신공항 철도, 중소기업은행 대구 이전 등 정책 현안 5건과 국비사업 13건을 등을 건의했다. 대구시로 봐선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현안이나 정부 예산과 부처 의견 등을 종합해 볼 때 쉬워보이는 것도 하나 없는 상황이다.지자체의 국비확보는 내년도 지역 살림살이의 규모를 가늠하는 잣대인 동시에 지역성장동력과 직결되는 문제여서 사활을 건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지역정치권의 관심과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과를 낼 수 없다.대구시의 건의에 따라 지역정치권도 상임위별로 열심히 챙기기로 했으나 내년도 예산안 사정이 예년과 다르게 팍팍하다는 점을 고려,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경북도 지난 9월 예산정책협의회를 갖고 지역현안에 대해 지역정치권의 협조를 구한 바 있다. 대구와 경북은 윤석열 정부 들어 국가산단 추가 지정이나 반도체 특구 지정 등으로 지역 현안들이 비교적 순항을 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신공항 건설과 미래전략 산업 육성 등은 하루가 빠르게 진행돼야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것이어서 지자체와 지역 정치권은 원팀이 돼 정부를 설득해야 한다. 예산 국회가 끝날 때까지 잠시도 긴장을 풀지 말고 최상의 성과를 내는 데 노력해 주길 바란다.

2023-10-31

지방시대와 징비록

우정구 논설위원 조선시대 선조 때 영의정과 도체찰사를 지낸 서애 유성룡이 쓴 징비록(懲毖錄)이 새삼 전국의 이목을 끌었다.이목을 끌게 한 주인공은 바로 이철우 경북도지사다. 지난달 27일 제5회 중앙지방협력회의 참석차 경북 안동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에게 이 지사가 징비록을 선물한 때문이다. 징비록은 “과거의 잘못을 경계해 삼간다”는 뜻인데, 임진왜란의 발발 원인과 전쟁 과정에서 조정의 실정 등을 상세히 기록한 책이다.때마침 대통령이 안동 유림인사들을 만나 간담회를 가진 장소인 병산서원도 유성룡이 징비록을 쓴 장소이기에 이 지사의 징비록 선물에 담긴 의미에 관심이 더 갔다.언론들은 이 지사가 징비록을 대통령에게 선물한 이유에 대해 “지방시대를 여는 것이 나라의 근간을 튼튼히 할 수 있기 때문”으로 풀이했다. 이날 이 지사는 책을 건네면서 “징비록은 부끄러운 역사를 이겨내고 오늘이 있게 한 위대한 기록”이라며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지방시대를 여는 것”이라 말했다.이 지사는 또 “조선시대 대부분 지방관료가 한양에서 파견돼 주인 의식이 없고 전쟁과 같은 상황에서 관료가 먼저 도망가는 일이 벌어졌으니 지방이 무너지고 불과 20일만에 수도 한양이 함락된 것”이라 설명했다.징비록은 임진왜란 전란사로 임진왜란의 공과를 냉정히 따져 기록한 책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일본에서조차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로 인기를 모은 책이다.이 지사는 평소에도 지방시대를 열어야 하는 당위성을 강조하면서 직원들에게 징비록 일독을 자주 권했다고 한다. 지방시대에 대한 이 지사의 남다른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3-10-31

詩香으로 깊어 가는 가을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소슬바람 결에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오색영롱한 단풍이 물들어가듯이 10월엔 각종 축제나 문화행사, 기념식이나 체육대회가 도처에서 열리고 한 켠에선 풍년가를 부르거나 단풍놀이로 화색이 감도는 등 시월 한 달이 짧게만 여겨진다.등을 치며 떨어지는 낙엽 한 잎에서 새삼 삶의 의미를 깨우친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가을엔 누구나 가슴 설레는 시인이고 시에 젖어 어디론가 떠나고픈 계절이기도 하다. 문화적인 테마와 이벤트로 풍성했던 시월을 뒤로 하고 깊어 가는 가을과 함께 시향(詩香)의 추임새로 11월이 열리고 있다.미틈달의 첫날은 우리나라 ‘시의 날’이다. 한국 최초의 신체시인 최남선의 ‘海에게서 少年에게’가 한국 최초의 월간지인 ‘소년’ 창간호에 발표된 1908년 11월 1일을 기념하여 1987년부터 시의 날을 제정, 기념사업을 열면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만산홍엽으로 물들어가는 산야나 은빛 억새의 몸짓을 보면서 아름다운 시상을 떠올리고, 그렇게 쓰여진 시에서 또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연상(聯想)작용이나 감성의 바다에 빠질 수 있다면, 시의 울림은 여전히 삶의 큰 위안과 감동을 줄 것이다. 그만큼 시적인 효능과 가치가 크기 때문이다.시는 감정의 순수한 발로이듯이, 자연의 변화나 사회적인 현상에 대한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절제된 언어로 표현하는 예술이라 할 수 있다. 섬세하면서도 유려하고 짧으면서도 유장한 의미를 담고 있는 한 편의 시가 문자로만 머물지 않고, 현대 들어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표출되고 변용되고 있음은 지극히 고무적인 일이 아닐까 싶다. 이를테면 시의 구절에 음색을 입혀 말과 목소리로 표현하면 시낭송이 되고, 시의 행간에 곡조를 붙이면 시노래가 되며, 몸동작이나 대화를 곁들여 연기하듯이 시의 퍼포먼스를 펼치면 시극(詩劇)이 되듯이 시의 확장성은 실로 다양하고 무진하다 할 것이다.이러한 측면에서 최근에 시낭송과 시극 등이 다양하게 열리면서 ‘시의 날’을 마중한 것 같아 반갑고 넉넉하기만 하다. (사)한국문인협회 경상북도지회는 예천에서 열린 제8회 시낭송 올림피아드에서 회원들의 자작시 또는 경북문협 회원의 발표시로 시낭송의 격조와 향기를 더했고, 포항시낭송회는 10월 중순 울릉도 초청공연에 이어 지난 주말 구룡포읍 아라광장에서 열린 ‘경상북도 해녀 한마당 축제’에서 해녀스토리 시극을 성황리에 펼쳐 갈채를 받았다. 또한 포항문인협회는 시민문화행사의 일환으로 회원들의 작품을 시민들과 함께 낭독함으로써 문화도시 포항의 문화적 자긍심을 높이고 포항 문학의 숲을 풍성하게 가꾸는 계기를 마련해 눈길을 끌었다.시는 시인이 쓰지만 쓰고 나면 결국 독자의 것이며, 시낭송이나 시극은 개개인의 독특한 목소리나 몸짓이 말과 감성의 조화를 통해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하는 언어적 예술이라 할 수 있다. 시의 날을 맞아 시를 즐겨 읽고 감상하며 시처럼 살아가는 일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2023-10-31

동네 책방에서 만나는 SF

강지우SF평론가 김초엽 작가가 지난 10월, 중국 은하상의 ‘최고인기외국작가상’을 수상했다. 성운상에 이어 중국의 양대 SF 문학상에서 모두 수상하는 쾌거를 이룬 것이다. 이렇게 기쁜 소식이 들릴 때마다 작가와 포항의 한 동네 책방에서 진행했던 공개방송 겸 북토크가 떠오른다. 방송을 진행한 지 6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그날은 가장 행복하고 자랑스러운 기억 중 하나로 남아있다.2019년 12월,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김초엽 작가와 팟캐스트 ‘서바이벌SF키트’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북토크 행사가 열렸다. 포항 효자시장 안 독립서점 ‘달팽이 책방’에서였다. 책방 사장님이 마련해주신 포근한 공간과 향기로운 차, 설레는 마음으로 모인 사람들, 김초엽 작가와 ‘서바이벌SF키트’의 호스트 토끼한마리(내 닉네임이다), 공상주의자가 마법처럼 몽글몽글한 시간을 만들어 냈다. 그 시간 우리가 흠뻑 빠져들었던 작가의 세계는 SF의 언어로 쓰였기에 문화권을 넘어 공감받았는지도 모른다.그러고 보면 ‘달팽이 책방’은 SF와 인연이 많은 곳이다. 영어원서낭독모임 ‘영자’에서는 영화 ‘콘택트(Arrival)’의 원작이기도 한 테드 창의 소설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함께 읽었다. 한국어로 읽어도 만만치 않은 책이라 영어로 도전하기에 살짝 겁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만의 유려한 문장을 작가가 의도했던 대로 음미하고, 서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나누며 안도의 웃음을 짓기도 하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테드 창의 소설은 인물이 아닌 과학이 주인공으로 보일 만큼 과학적 사고나 가치관이 작품의 뼈대를 형성한다. 한 번 읽어서는 이해가 어려운 작품도 간혹 있지만, 궁리하고 이해했을 때 느끼는 경이감은 다른 장르에서 느끼기 어려운 감동이다.얼마 전에는 포스텍SF어워드와 문윤성SF문학상 대상을 받은 지동섭 작가와 함께하는 ‘SF 소설쓰기’ 워크숍도 있었다. SF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창작의 원리를 알면 SF를 비평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까 싶어 서둘러 참가 신청을 했다. 역시나 체계적인 커리큘럼과 열띤 합평 속에 SF를 어떤 관점으로 읽어야 할지 많이 배우는 수업이었다. 수강생들의 글솜씨에 감탄하는 한편, 창작의 고통이 무엇인지도 절절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내가 지방에 살면서도 SF적, 문화적 토양을 풍부하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책방 덕분이다. ‘달팽이 책방’에서는 유일무이한 개성의 독립출판물을 구경하는 재미도, 사장님의 안목으로 큐레이션 해 놓은 단행본(과학 교양 도서와 SF 소설도 빠지지 않는다)에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즐거움도, 시중의 카페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홍차와 허브차 컬렉션을 맛보는 사치도 누릴 수 있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독서 모임은 지역 문화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포항 지역의 문화예술인이 전시회나 음악회를 열기도 한다.이렇게 소중한 문화 플랫폼이지만 전국의 동네 책방 현황을 보면 운영이 어려워 오래 지속되는 경우가 드문 것도 사실이다.만약 그대의 동네에 운 좋게도 책방이 남아있다면, 이번 주말에는 동네 책방에 놀러 가 보는 건 어떨까?

2023-10-31

가을 장미와 음악 생각

가을은 음악을 깊은 사색으로 바꾸는 계절이다. 숨을 들이마시면 차가운 공기가 가슴 속에 텅 빈 공명을 만드는 계절이다.햇빛은 녹슬고, 바람은 속을 시리게 한다. 불현듯 쓸쓸해지거나 쉽게 회상에 잠기는 것을 두고 흔히 가을을 탄다고 한다. 날씨와 풍경의 변화 등으로 신체의 리듬이 변하면서 생기는 일종의 증후군인데, 감성이 풍부해지고, 골똘히 생각에 잠길 때가 많아지며, 외로움이나 공허함을 느끼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그렇다면 이 텅 빈 마음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가을을 타는 이에게 음악만큼 좋은 약은 없다.가을엔 주로 사이먼 앤 가펑클을 듣는다. 폴 사이먼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선율과 노랫말이 아트 가펑클의 솜사탕 같은 하이 테너 보컬로 울려 퍼질 때, 귀에도 단풍이 든다. 아침엔 ‘Wednesday morning 3AM’이나 영화 ‘졸업’에서 밴 크로포드가 연기한 로빈슨 여사의 테마곡 ‘Mrs. Robinson’을 듣는다. 무명 시절, 폴 사이먼의 연인이었다가 그가 유명해지자 그 명성의 일부가 되고 싶지 않다며 사이먼을 떠난 캐시라는 여인을 노래한 ‘Kathy’s song’, 또 사랑하는 연인의 죽음을 그린 ‘April come she will’을 오후에 들으면 눈물이 맺힌다.이 계절 노을이 지는 안양천변을 걸을 때는 클라라 주미 강이 연주한 에른스트의 ‘여름의 마지막 장미’가 좋다. 타오르고 퍼붓고 맹렬하던 것들이 쇠잔해지는 풍경은 마음을 시리게 한다. 바이올린 선율에 붉은 넝쿨로 열리는 여름의 마지막 장미를 떠올리면서, 내가 가진 음악의 기억은 엘튼 존으로 비약한다.장미는 여름꽃이지만 가을에 피는 경우도 있다. 가을 장미는 여름 장미처럼 화려하지 않다. 낙화를 앞둔 쓸쓸함에 꽃잎의 빛깔은 어둡고, 차가운 서리를 머금으면 마치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보인다.엘튼 존의 ‘Candle in the wind’는 여름 장미처럼 화려하게 피었다가 가을 장미처럼 쓸쓸하게 진 두 여인에게 바치는 노래다. 한 사람은 노마진 베이커, 즉 마릴린 먼로이고 또 다른 한 사람은 다이애나 스펜서, 바로 다이애나 왕세자비다.이 곡은 원래 마릴린 먼로를 애도하는 곡인데, 1997년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장례식 때 다이애나와 절친했던 엘튼 존이 자신의 원곡을 개사해서 불렀다. 원곡의 첫 소절인 Goodbye Norma Jean(노마진 베이커는 마릴린 먼로의 본명)을 Goodbye England’s Rose로 바꿔 부른 이 곡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팔린 싱글로 기록될 만큼 큰 인기를 끌었다.“당신은 바람 속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살았죠. 비가 내리면 누구에게 의지해야 할지 모르면서. 당신을 알았더라면 좋았겠지만 난 아이에 불과했죠. 당신의 초는 오래전에 다 타버렸고 당신의 전설도 꺼져버렸죠”라는 원곡의 후렴구는 “당신은 바람 속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살았죠. 해가 져도 사그라지지 않고 비가 내려도 꺼지지 않는 당신의 발자취는 영국의 가장 푸른 언덕을 따라 항상 이곳에 깃들죠. 당신의 초는 오래전에 다 타버렸지만 당신의 전설은 영원할 거예요”로 개사되었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엘튼 존은 공연에서 종종 원곡을 부르긴 하지만, 1997년 버전의 ‘Candle in the wind’는 부르지 않는다.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추모하는 곡을 상업적인 자리에서 부르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가 이 곡을 라이브로 부른 건 다이애나의 장례식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마릴린 먼로와 다이애나 왕세자비 둘 다 서른여섯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겉으로는 화려한 장미처럼 보인 삶이었지만 사실 바람 속의 촛불 같은 생이었다. 대중에 의해 섹스심벌 마릴린 먼로로 살아야 했던 노마진 베이커, 영국 왕실의 정치적 목적과 대외 선전의 도구로 살아야 했던 다이애나 스펜서. 이 둘의 삶과 죽음은 전혀 다르면서도 꼭 닮아 있다. 노마진 베이커는 20세기 할리우드의 아이콘으로, 다이애나 스펜서는 전 세계의 헐벗고 고통받는 자들에게 사랑을 전해준 봉사와 희생의 상징으로 인류에 기억되고 있다. 둘 다 영원히 시들지 않는 붉은 장미로 세상에 남은 것이다.가을은 음악을 깊은 사색으로 바꾸는 계절이다. 세피아톤으로 펼쳐진 가을 햇살 아래, 금빛으로 물들어가는 단풍 그늘 밑 벤치에 앉아 음악을 듣는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면, 삶이란 얼마나 팍팍하고 지루한 것인가.

2023-10-31

조용하고 열렬한 싸움

나를 빛내게 하는 것은 타인의 부러워하는 시선이 아니다. /언스플래쉬 지난한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왔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부니 슬슬 새로운 운동을 도전해볼까 싶어 주말마다 배드민턴장에 나가고 있다. 배드민턴을 많이 쳐본 적이 없어 막상 코트 위에 서니 다소 자신감이 떨어졌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배드민턴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됐다.배드민턴을 치는 동안은 잡생각을 하지 않아도 돼서 좋다. 날쌔게 날아오는 공을 끈질기게 바라보다 정확한 타이밍에 공을 쳐내야만 상대의 공에 반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일 아침엔 잠을 깨우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실 것인지 아니면 든든하게 배를 채워줄 따뜻한 라떼를 마실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불현 듯 떠올라도 잽싸게 저 멀리 날려 보내야 한다. 잡생각이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동안 날아오는 공은 어느덧 바닥에 구르고 있으니 말이다.상대에게 공을 보내는 흐름 또한 읽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자칫하다 공을 치기 쉽게 주면 상대는 그 틈을 타서 강한 스매싱과 스트로크를 사용하여 거센 공격을 퍼붓는다. 조금이라도 집중을 놓으면 이미 승리의 흐름은 상대의 손에 쥐어져선 상대가 예측하는 대로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다 게임이 끝나고 마는 것이다.선수들의 시합 영상을 보면 숨 쉬는 법을 잊을 정도로 몰입된다. 수비를 하는 동안은 춤처럼 유연한 움직임을 보이다가도 공격할 타이밍이 되면 다이빙하듯 등을 구부리며 잽싸게 공을 보내기 위해 돌진한다. 그렇게 공이 오가는 동안은 마치 둘이 하나가 되어 추는 쌍무(雙舞)가 펼쳐지는 무대를 보는 듯한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배드민턴은 몸을 던져 수비를 함과 동시에 공격의 방향까지 생각해 내어야 한다는 것도 참 매력적이다. 방어와 공격이 빠르게 오가는 동안은 땅과 부딪히는 운동화의 마찰 소리와 라켓으로 공을 칠 때의 타구음 소리만 날 뿐. 코트라는 주어진 반경 안에서 불필요한 소음 없이 이어지는 조용하면서도 열렬한 싸움이란 점이 더욱 마음에 든다.최근 여러 모임 자리를 가게 되면서 불필요한 상황에 놓여 난처했던 적이 있었다. 본인의 사회적 지위가 어느 정도인지, 또는 얼마나 유능한 사람인지 증명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인다거나, 필요에 따라 타인을 낮추어 스스로 돋보이게 만드는 거친 언행을 보며 깊은 피로감을 느꼈다.그런 부담스러운 대화에 비하면 코트 속 불필요한 소음이 제거된 채 열렬히 경기에 임하는 배드민턴 플레이는 간단하고 명료하다. 배드민턴 경기에서 욕심은 과한 공격으로 이어지기 쉬우며 공이 코트 밖으로 벗어나는 범실을 저지를 확률이 높아진다. 이기고 싶단 욕망만으로 힘을 너무 많이 주거나 공격의 흐름만 생각하다보면 오히려 돌아오는 건 실패라는 결말뿐이라는 것이다.그러니 낮게 몸을 웅크리고 계속해서 움직이며 공이 어느 방향에서 날아오든 빠르게 칠 준비를 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마음이 급하면 공을 빠르게 치게 되고 불필요한 생각에 빠져 들면 타이밍을 놓쳐 공을 쳐낼 수 없게 된다. 나의 실력과 장점을 잘 아는 것과 동시에 상대가 어떤 점에 강하면서 또 어떤 약점이 있는지 파악해야만 원하는 방향으로 게임의 흐름을 이끌 수 있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잠이 들기 전엔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의 안세영 선수 경기 영상을 본다. 결승 전 경기도중 심한 무릎 부상이 크게 왔음에도 그녀는 기권하지 않고 오히려 경기를 리드한다. 자신의 소신과 기량을 펼쳐 오히려 상대를 위압하는 그녀의 모습에선 오늘을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뜨거운 감동을 주었다. 오랜 기간 고통을 감내하고 스스로 개척해나갔을 노력의 과정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나를 빛내게 하는 것은 타인의 부러워하는 시선이 아니다. 타인이 가지지 못한 것을 미리 내가 쥐었다고 해서 어깨를 으쓱이는 것이 아닌, 그 사람만이 가진 특유의 정신력 그리고 고난을 대하는 집념과 기량에서부터 오는 것임을 다시금 깨닫는다.일요일 오후, 점심에 다다를 때 쯤 라켓과 셔틀콕을 챙기고서 실외 배드민턴장으로 향한다. 저 하얀 코트 안에서 나는 얼마나 더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 수많은 고난 사이에서 어떤 집념을 가지고 저 수많은 공을 쳐낼 것인지. 금요일 아침부터 든 생각을 일요일 오후가 다되어서야 황급히 마무리 지어 본다. 고귀한 기량은 불끈 쥔 두 주먹과 튼튼한 다리에서부터 나오는 것임을, 월요일을 조금 더 가뿐하게 맞이하기 위해 평소보다 더 힘을 주어 스매싱해본다.

2023-10-31

입주아파트 사전점검·세금도 사전점검

박덕기 대구 서구 세무관리팀장 2022년 서대구역 개통과 더불어 지식산업센터, 공원, 구립도서관 등 사회기반시설이 들어섬에 따라 기존의 노후된 주택을 철거하고 새로운 주거시설을 건축하기 위한 재개발, 재건축사업이 도시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사실 서구는 대구의 중심축이었던 70~80년대 이후 신도시 개발과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인구가 감소하고 고령화가 진행되는 등 과거의 영광을 뒤로한 채 침체기에 빠져들고 있었다.하지만 유행은 돌고 돈다 했던가? 지금 서구는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서대구 역세권 개발과 산업철도 등 광역교통 인프라연계를 통한 미래 교통허브 조성으로 서대구권의 주요 거점도시로 급부상하면서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재개발사업이 서구 전역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어 정주여건 또한 대폭 개선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두류역e-편한세상 902세대가 2022년에 입주했고 서대구KTX영무예다음(1천418세대), 서대구역서한이다음더퍼스트(856세대)가 올해 상반기에 입주를 마쳤으며 하반기에는 서대구센트럴자이(1천526세대), 서대구역화성파크드림(1천594세대), 서대구역반도유보라센텀(1천678세대) 등 4천798세대가 입주를 앞두고 있다.대단지 신축아파트단지가 조성되면 주거환경 개선 및 인구증가뿐만 아니라 취득세 등 관련 세수도 늘어나게 된다. 특히, 입주민들은 아파트가 준공됨에 따라 이주 준비, 분담금 정산, 자금 대출, 취득세 납부 등 그동안 미뤄졌던 일들을 처리하기에 정신이 없다.그래서 우리 세무과에서는 아파트 시공사에서 입주 전 각종 하자나 마감 확인을 위한 사전점검일을 지정하는데 착안해 사전점검 현장에서 안내 책자를 배부하고 취득세 등 지방세 상담을 실시함으로써 입주민들의 세무 궁금증을 해소하고 시간적·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로 했다.2023년 3월에 서대구KTX영무예다음, 8월에는 서대구역반도유보라센텀 그리고 9월에 서대구역화성파크드림 사전점검일에 세무상담 부스를 설치해 운영한 결과 200여 건의 세무고충을 상담했으며 특히 은행 부스의 대출 상담과 연계한 편리성으로 입주민들의 만족도가 높았다. 이제는 입소문이 나서 다른 재개발 현장에서도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우리 구청에서는 내년에도 신규 입주단지에 대하여 출장 세무상담을 실시할 계획이며 현직 세무사와 일대일 상담이 가능한 무료 세무상담실과 마을세무사 제도 등 구민들이 만족하는 세정서비스를 지속적으로 펼쳐나갈 예정이다.

2023-10-30

근대와 현재가 만나는, 구룡포 일본인 가옥 거리

촘촘하고 짙은 나무 창살이 건물의 겉면을 감싸고, 비대칭형 창문이 드문드문 드러난다. 2층에 덧댄 목재들이 툭 튀어나와 있고, 지붕에는 일직선의 기와가 이중으로 처마를 장식한다.건물들은 옆집과의 완충공간도 없이 다닥다닥 붙어 일본 특유의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길게 늘어서 있다.드라마 ‘여명의 눈동자’(1991)와 ‘동백꽃 필 무렵’(2019)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이곳은 옛 포항의 황금어장이며, ‘포항의 종로’로 불렸던 ‘구룡포 일본인 가옥 거리’다.구룡포 일본인 가옥 거리는 길게 늘어선 해안선을 따라 그 이면도로에 일본인들이 모여들면서 형성된 상업지구였다. 1908년 한일어업협정이 체결되면서 일본인에게도 조선인과 동일한 어업권이 보장되었고, 수산자원이 풍부한 구룡포는 가가와현 일본인 어민들이 모여들어 거주촌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1932년경에는 구룡포 거주 일본인 가구가 287가구·1천100명이 넘었고, 신사에 올라가는 계단 측면에 세워진 공헌비가 120개에 달했다고 하니 당시 그 화려한 성세를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일본인 거주지는 조선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일본에 의해 착취당하던 조선인들은 거리의 뒤편 산등성이 후미진 별도의 장소에서 생활했다. 1945년 일본인이 떠나간 후 구룡포 사람들은 120개의 공헌비에 새겨진 일본인 이름을 시멘트로 발라 없애버린다. 이후 적의 재산이었던 가옥이라 하여 적산가옥이라 불렸던 이 거리의 건물들은 국가에 귀속되었다. 1960년 옛 신사가 있던 곳은 충혼탑과 구룡포 공원으로 탈바꿈한다. 재미있는 점은 옛 일본의 공헌비에 구룡포 공원을 조성하는데 기여한 사람들의 이름을 새겨 계단을 장식했다는 것이다. 착취의 상징이었던 공헌비를 통해 과거를 청산하는 방법이 유머러스하다. 2001년 문화재보호법 개정에 따라 근대건축물의 보존을 위한 등록문화제 제도가 만들어지고 보존과 복원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된다. 2010년 포항은 국가에서 이 거리를 매입하여 일본식 가옥을 중심으로 거리를 조성하였다.일본인 가옥 거리에 남겨진 적산가옥은 한옥과는 다른 이면을 찾아볼 수 있다. 한옥은 기단 위에 1층 건물이 놓이고 온돌이 깔린다. 이 건물에서 중요한 것은 곡선미를 자랑하는 기와와 이를 받치는 기둥이며, 그 외의 벽은 대부분 개방적인 문의 형태로 되어 있다.앞마당에서 데워진 공기가 뒷마당의 화단에서 식어 넓은 대청마루를 통해 순환한다. 마당은 생활 공간이며, 마당을 나누는 담장은 까치발을 들면 안이 훤히 보이는 높이에 불과하다. 한옥은 개방적이고 밝고 마당을 비롯한 공간의 여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이에 비해 일본식 건축물은 폐쇄적이고 어두운 편이다. 일본은 어둠이 차분함을 만든다고 여겨 집을 어둡게 짓는 면이 있다고 한다. 2층 건물의 외벽은 좁은 나무 창살로 촘촘하게 엮어 내부가 보이지 않는다. 2단으로 된 기와는 직선으로 곧게 뻗어 있고, 내부는 좁고 긴 복도가 특징이다. 정원은 나무와 꽃으로 꾸며 차를 마시며 구경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그림 같은 정원이다. 습기를 방지하기 위해 건물의 기단부와 복도의 윗면 등에 환기를 위한 통로가 마련되어 있다.하지만 적산가옥은 완전한 일본식은 아니다. 일본식 외관·서양식 입식 구조·한국의 온돌과 벽을 접목시킨 형태를 지닌다. 포항의 일본인 가옥 거리의 건축양식도 비슷하여 크게 3가지 형태의 건물을 확인할 수 있다. 술집·약국·숙박시설 등 상업 거리를 형성하던 건물은 주로 1층 상점·2층 다용도실로 이뤄진 주상복합형 건물이 지어졌다. 1열식 마치야로 도로에서 보이는 건물의 가로면보다 보이지 않는 세로면이 긴 형태이다. 일본식 전통 양식인 좁고 긴 복도가 특징이다. 이와는 또 다른 형태로 건물의 가로면이 세로면보다 길게 드러난 2열식 정방형의 가옥도 눈에 띈다. 이 건물은 주로 어촌민가로 보이며, 중복도가 특징이다. 3열식 이상의 대규모 건물은 서민주택은 아니었다. 하시모토 젠키치와 도가와 야사부로는 당시 구룡포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현재 하시모토의 집은 근대역사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깔끔하게 정돈된 일본식 정원이 있으며, 다다미방과 도코노마-신이나 부처 등을 모셔두는 신성한 공간-와 장식장(도코바시라) 그리고 대문 입구의 간독(생선 소금절임용) 등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식 온돌도 적용되어 있다.적산가옥은 주로 일본인이 많이 살았고 수탈의 전진 기지였던 항구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인천·목포·여수·군산·논산·포항·부산·창원 등은 아픈 역사가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그러나 적산가옥은 일본의 잔재가 아니라 일본·서양·한국식이 결합된 독특한 한국 근대의 건축물로 봐도 무방하다 생각된다.적산가옥과 같은 형태는 한국의 일본인 가옥에만 남아있기 때문이다. 신사로 향하던 계단을 올라 구룡포 공원에서 바다를 내려다본다. 일본인 가옥 거리의 복잡함과 달리 구룡포 바다는 고요하기만 하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최정화 스토리텔러

2023-10-30

산보의 미학

김진섭(1903~?)은 일본 호세이대학에서 독문학을 전공하고, 귀국해서 이하윤, 정인섭 등과 함께 해외문학연구회를 조직해서 비평활동을 전개했다. 그는 1930년 무렵부터 독서와 번역에 대한 글을 다수 썼고, 수필을 최초로 본격적인 문학 작품으로 썼던 인물이다. 해방 이후에는 ‘생활인의 철학’ 등의 산문집을 남겨 수필가로서의 이름을 갖고 있다. 산보, 혹은 산책은 인간이 할 수 있는 행위 중에서 가장 간단하고도 그 의미가 깊은 활동이다. 어딘가에서 어딘가까지 때로는 목적을 가지고, 때로는 목적을 갖지 않고 걸어가면서 무언가를 보는 산보는 마음만 먹는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닌가.모니터에 머리를 박고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잠시 미뤄두고 10분 정도라도 바깥의 주변을 산보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풀리는 경우도 있다. 어딘가를 걷는 것은 나의 삶에 붙은 자연스러운 맥락을 잠시 바꾸는 행위이다.1930년대 독일 문학을 전공하고, 해외문학파의 이름으로 번역과 비평 활동을 했던 김진섭은 1934년에 ‘산보와 산보술’이라는 글을 쓴다. 산보라는 행위가 단순하고 간단하다보니 산보에 대해서 쓰인 글이 많지 않은데, 모처럼 이 글이 있어 읽고 음미해볼 만하다.김진섭은 생활인들이 갖게 마련인 직업의 중압과 가정의 번잡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전제하고, 그럴 때 자연으로 가서 웅장한 삼림을 찾기 마련이라고 쓴다. 하지만, 도시에서의 일상생활에서 여행이라는 것이 어디 그리 쉽게 얻어지는 것일까. 그럴 때, 조그만 여행의 형식이 바로 산보라는 것이다. 즉 “거니는 것이 휴식이 되는 상태”가 바로 산보다.물론, 산보는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형태도 다양할 것이다. 가족과 함께 하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산보도 있고, 친구와 함께 무언가를 이야기하면서 하는 산보도 있다. 술집에서 술을 나누면서 하는 내밀한 고민에 대한 이야기와 달리, 거리의 소음을 배경 삼아 나누는 고민 이야기도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사랑하는 사이에 함께 하는 산보는 특별한 어떤 것을 하지 않더라도 함께 손을 잡고 어깨를 겯기만 해도 그 자체가 사랑이 아닌가.비록 김진섭은 그 모든 산보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은 혼자서 하는 산보라고 말해놓기는 했지만, 그것은 그가 사유와 문학을 다루는 학자였기 때문이다. 철학자였던 칸트가 매일 정해진 시간에 산책했다는 일화가 있는 것처럼, 무언가를 생각하고 쓰는 긴 과정 중에 잠시 흐름을 끊고 산보하는 것은 사유의 생활을 영위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소설가 박태원이 썼던 많은 소설들 속에서 구보씨는 낮이나 밤이나 산보한다. 그의 산보는 바로 글쓰기 자체가 된다.하지만, 산보는 모든 사람의 것이다. 어떤 형식이든 어떤 사람들과 하든 좋다. 친구들과 함께 하는 카페 순례도, 혼자 혹은 동료와 사무실 근처를 한 바퀴 도는 산책도,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인근에 있는 녹색의 자연을 찾아 나뭇가지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는 그 아래를 걷는 일도 모두 산보이다. 산보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평등한 행위가 아닐까.그렇게 길을 걷다보면, 우리 앞에 펼쳐진 복잡하고 다양한 세상의 모습들은 매순간 발견이 된다. 특별한 목적이 없더라도, 아니, 오히려 특별한 목적이 없으니까, 산보하는 발걸음 속에 눈에 들어오는 모든 대상들은 모처럼의 발견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스마트폰 속 지도를 보고서는 절대로 찾을 수 없는 우연한 만남들이 산보하는 마음 속에는 찾아온다.그런 의미에서 보면, 산보란 독서에 가장 가까운 행위일지도 모른다.문자와 그림들이 빼곡히 들어 있는 하나의 세계인 책의 세계 속을 헤매며,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행위가 독서라면, 거리를 거닐면서 세상 속에 들어 있는 수많은 정보와 자극들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찾아내 의미로 만드는 행위가 바로 산보니까 말이다.우리 모두 오늘 오후만큼은 잠시라도 시간을 내어 세상이라는 책 속을 산보해 보면 어떨까./홍익대 교수 송민호

2023-10-30

경북도의 농업대전환시대, 성공 길 보인다

경북도가 이모작과 공동영농으로 농업 소득을 2배 이상 끌어올리는 대한민국 농업대전환시대를 열기 위한 시범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25일 경북도가 농업대전환 시범단지로 선정, 추진 중인 문경사업단지에서 첫 결실인 콩 수확이 시작됐다고 한다. 이곳 문경 영순 들녘은 매년 벼농사 한 번만 지어왔던 곳이었으나 시범단지로 지정받은 올해부터는 105ha 면적에 콩과 양파를 중심으로 이모작 공동영농을 추진하고 있다.현재 결실을 맺은 콩 수확이 끝난 자리에는 바로 양파가 파종되고 일부는 내년 초 감자가 식재될 예정이다. 들녘 전체는 늘봄영농조합법인이 책임 경영하고 공동영농에 참여한 농가에는 연말쯤 참여 면적에 따라 기본소득 등이 지급된다고 한다.경북도 관계자는 “현재 수확된 콩은 판로에 문제가 없도록 섭외 중에 있다”고 밝히고 “계획대로라면 단지의 농업소득이 기존보다 3.3배 늘어난 26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경북도의 농업대전환 사업은 특화작물의 이모작과 공동영농 방법을 통해 농가의 소득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계획이다. 동시에 고령화된 농촌의 인력 문제도 해결하는 데 목적이 있다.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이 사업의 완성을 위해 농업대전환 추진위원과 함께 네덜란드의 선진농업을 벤치마킹하고 문경, 예천, 구미 등을 우선 시범단지로 선정했다.이 지사는 농민이 도시근로자와 같은 일 하면서 도시근로자보다 낮은 소득을 얻어야 하는 문제에 고민하다 이 사업을 본격화했다. 농토 면적이 우리와 비슷한 네덜란드는 우리보다 두 배(8만 달러) 높은 농업소득을 올리고 있다.경북도가 전국에서 가장 앞장서 추진하는 농업대전환 사업이 문경사업단지 뿐 아니라 경북 전역에서 들불처럼 일어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경북도의 전폭적인 지원과 영농기술분야에 대한 연구 등이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다.이 지사가 희망하는 돈 벌기 위해 농촌으로 가는 이도향촌(離都鄕村)의 날이 하루빨리 도래하길 바란다.

2023-10-30

해충의 습격

홍석봉 대구지사장 전국이 미국흰불나방 유충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송충이 비슷한 유충들이 수십 수 백 마리씩 무리지어 활엽수 잎에 달라붙어 나무 하나 정도는 며칠 사이에 벌거숭이로 만들어버린다.유실수는 물론 도심의 가로수와 공원 조경수 등 수종을 가리지 않고 잎을 갉아 먹어 피해를 입히고 있다. 최근 한강 변에서 많이 발견돼 송충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산림청도 3단계 경계령을 내리는 등 비상이다.1958년 미국흰불나방이 국내에 처음 들어온 후 65년 만의 일이다. 미국흰불나방 유충은 예전에도 대량 발생한 적이 있다. 하지만, 올해처럼 극성인 때는 드물다. 곤충학자 등 전문가들은 지난 여름 잦은 비와 가을까지 이어진 고온 현상이 영향을 미친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잊혀졌던 ‘빈대’가 다시 출몰했다. 프랑스에서 빈대 때문에 홍역을 앓고 있다는 외신이 전해진지 얼마되지 않았다. 국내 곳곳에서 수십 년 전 박멸돼 사라졌던 빈대가 다시 발견됐다. 대구 계명대 기숙사와 인천 서구의 외국인들이 자주 찾는 찜질방에서도 발견됐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방역도 쉽지 않다.얼마전 부산항 컨테이너 야적장에서 남미 원산의 붉은불개미 50마리가 발견돼 방역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붉은불개미는 사람이 물리면 호흡곤란을 일으킬 정도다. 또한 경남 창원에서는 나무를 갉아 먹어 목조건축물에 피해를 주는 미국 캘리포니아 원산의 흰개미가 발견되기도 했다.해충의 출현은 지구 환경 변화 즉 온난화의 영향이 크다. 앞으로 어떤 미 기록종의 해충이 내습할 지도 알 수 없다. 보건 위생 청결과 꼼꼼한 방제가 필수적이다. 지구 온난화 해결을 위해 전 지구적인 노력이 필요하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10-30

‘자연기반해법(NBS)’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연구본부장 지난 8월 환경부는 하천관리 강화 전문가 간담회에서 4대강 사업 이후 본류는 정비가 잘 됐으나 당시 제대로 정비되지 못한 지류, 지천에서는 기후변화로 인해 홍수에 더 취약해져 준설 등 하천환경 정비가 절실하다고 했다. 비슷한 시점에 개최된 ‘국가물관리기본계획’ 변경 공청회에서는 전 정부에서 결정한 금강과 영산강 5개 보에 대한 해체, 개방 결정과 한강과 낙동강 보의 강 자연성 회복 구상에 따른 보 처리방안 마련 등의 계획을 취소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자연기반해법(Nature-based solution, NBS)’이 크게 주목받았다.국가물관리기본계획에서는 ‘자연기반해법’을 자연의 기능과 공정을 모방한 생태적 설계기법으로 정의하였다. ‘자연기반해법’을 도입한 하나의 시설이 수자원확보, 오염물질저감, 홍수방어, 생태복원 등 수량-수질-수생태의 다기능·다혜택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했다. 상류 산림복원, 사면녹화, 토사유출 발생저감, 수변습지와 저류지 확보, 수변림 조성과 홍수터 복원, 하천곡률 복원 등 하천과 관련한 다양한 ‘자연기반해법’이 소개되었는데, 대부분이 하천유역에 적용된다.지난 정부에서는 인위적 하천 준설을 억제하고 보와 같은 하천시설의 설치와 운영을 최소화하는 등 하천에서 ‘자연기반해법’의 직접적용을 강조했다. 반면에 이번 정부에서는 갈수록 커지는 기후변화로 인한 악영향을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방안으로 하천보다 하천유역에서 보다 폭넓게 ‘자연기반해법’을 적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였다. 이렇게 물관리에서 적용된 ‘자연기반해법’은 도시화와 산업화 이전으로 단순히 돌아가는 것이 아닌 산업화와 도시화를 병행하는 새로운 개념이다.최근 새롭게 부상한 ‘자연기반해법’은 물순환을 포함한 자연계 전체를 보호하고 복원함으로써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생물다양성을 증진하며, 자원을 지속 가능하게 관리하는 개념이다. 이를 통해 사회적 복지를 향상시키고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며, 재해 위험을 감소시키고 환경을 정화하는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다양한 이점으로 인해 ‘자연기반해법’은 지속 가능한 개발과 환경보호를 위한 중요한 도구로 여겨진다.자연기반해법(NBS) 우수사례를 살펴보면, 덴마크 코펜하겐에서는 ‘클라우마퀴어 사업’으로 집중호우에 대비한 도시 물관리 시스템과 녹지공간 개선사업을 시행하였다. 호주 멜버른에서는 열섬현상 완화와 생물다양성 향상을 위한 도심녹화 프로젝트가 시행되었고, 미국 뉴욕에서는 ‘하이라인 프로젝트’로 폐쇄된 철도노선을 고가공원으로 재활용하여 녹지공간을 제공하였다. 대구·경북에서 ‘자연기반해법(NBS)’ 적용이 시급한 곳은 작년 9월 태풍 힌남노의 집중호우로 큰 피해를 본 포항시 형산강과 냉천 유역, 올해 7월 집중호우와 산사태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영주시와 예천군 등 경북 북부 내성천 유역 그리고 사유지 비중이 높지만, 국립공원으로 승격된 팔공산 지역 등이다.

2023-10-30

LH, TK신공항 조기개항의 주역이 돼 주길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지난 27일 열린 국토교통위 국정감사에서 대구경북(TK) 신공항 건설 특수목적법인(SPC) 참여에 대해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동안 LH는 자사의 과도한 부채 비율 등을 이유로 TK신공항 SPC 참여에 난색을 표해왔다. LH측 입장에 변화가 감지되면서, TK신공항 건설의 선결과제인 SPC 구성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SPC구성을 위해서는 공공기관 출자지분이 절반이상을 차지해야 한다. 대구시는 다음 달 중 서울에서 투자설명회를 열어 연내에 SPC를 설립한다는 방침이다. 지난주 국감에서 LH 이한준 사장은 SPC참여와 관련한 강대식 국민의힘 의원(대구 동구을)의 질의에 “신공항 건설 사업은 TK주민과 대통령 공약이기 때문에 반드시 시행해야 하는 것에는 이의가 없다. 관련 부서와 적극 협의해 진지하게 검토하겠다”고 답변했다. 이 사장은 지난 16일 열린 국감에서 “현재로선 재무적 손실이 상당히 크기 때문에 SPC 참여가 어려운 상태”라고 답한 이유에 대해서는, “경제 여건이 악화되고 부동산 경제가 침체돼 악성 부채가 늘어나고 있어 ‘현재로선 어렵다’고 말씀드린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제 말이 마치 TK신공항이 경제성이 없어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처럼 오해받은 것에 대해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이날 국감에서 강 의원은 TK신공항 건설 재원 마련을 위해 주택도시기금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해 성사 여부가 주목된다. 기금을 활용하는 길이 열리면 신공항 사업을 추진할 SPC의 금융비용 낮추기에 도움이 되는 만큼 LH나 한국공항공사 등 공공기관 참여에 긍정적 효과를 낼 수 있다.최근 한국공항공사에 이어 LH가 SPC 참여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TK신공항 건설에 속도감이 붙은 것 같아 다행이다. LH 이 사장도 언급했듯이, 현 정부의 국정과제인 TK신공항 건설은 사업성도 충분한 만큼 LH가 하루빨리 SPC에 참여해 신공항 조기개항의 주역이 돼주길 바란다.

2023-10-30

정치 팬덤은 민주주의를 파괴한다

김진국 고문 정치인이 고약한 것은 동서고금(東西古今)이 다르지 않다. 민주주의의 고향이라는 기원전 5세기의 아테네는 어디로 갔나. 민주주의의 전범처럼 들먹이는 미국에서도 민주주의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미국에서 선거가 가짜뉴스에 휘둘리고, 선거 결과에 불복(不服)하고, 극렬 지지자들이 의회를 난입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한국도 뒤지지 않는다. ‘개딸’이니, ‘문빠’니, ‘태극기’니 하는 극단 세력들이 정치판을 휘젓는다. 비타협적인 ‘탈레반’ 세력이다. 무조건 자기편만 드니 지지자들은 환호한다. 그러나 대화와 타협이 빠지면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는다.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건 원시 시대부터 작동해온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원리다. 힘이 센 자가 이기고, 이기면 무조건 다 갖는 게임에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붙이는 건 사기다. 합의해놓고 뒤집고, 규칙에 따른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것 역시 민주주의라고 하기 어렵다.근본적인 대변혁이 필요하다. 인내와 시간이 필요하다. 당장 가능한 것 하나라도 고쳐나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여야 원내대표들이 국회 회의장에 비난 팻말을 붙이지 않기로 합의한 것은 작지만 칭찬할 만하다.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주 월요일(23일) 먼저 제안해,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적극적으로 찬성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우선 “국회가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이고, 지나치게 정쟁에 매몰된 모습을 보인다”라며 국회 회의장 분위기부터 개선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윤 대표는 의원총회에서 “본회의장과 상임위 회의장에서 팻말을 부착하거나 고성·야유를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라고 공개했다.그동안 국회를 보면 기가 찼다. 국회 본회의나 상임위 모두 말이 열려 있는 공간이다. 헌법 제45조는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하여 국회 외에서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라고 규정돼 있다. 소위 면책특권이다.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다. 모든 회의가 생중계된다.그런데도 회의장 책상 앞에 피켓을 줄줄이 세워놨다. 국회 참관하는 아이들에게 부끄럽고, 한국을 선진국으로 아는 외국인에게도 창피하다. 본회의장, 상임위 회의장을 놔두고, 국회 본관 계단에 서서 학생들처럼 팔을 흔들며 구호를 외친다. 피켓이나 집단 시위는 자기 목소리를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특권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국회의원 몫이 아니다. 박완서의 소설 ‘도둑맞은 가난’이 떠오른다.상대를 비난하는 팻말을 붙여놓고, 무슨 대화가 되겠는가. 처음부터 국회를 싸움판으로 만드는 짓이다. 복잡한 현안을 단순한 구호로 압축해 공영 방송에 지속해서 노출하는 것은 여론을 왜곡한다. 일부 의견을 과다 대표하고, 국정현안에 대한 국민의 판단을 헷갈리게 한다. 더구나 겨우 팻말이나 들고, 구호나 외치라고 국회로 보내준 게 아니다. 유권자에 대한 모욕이다.일부 과격파 의원은 이를 무시한다. 박주민 민주당 원내 수석 부대표는 방송인터뷰에서 “솔직히 앞으로는 이런 일이 절대 없을 겁니다, 이렇게 말씀드리기 참 어려울 것 같다”라고 말했다. “과거에도 이런 시도가 있었지만 조금 지나서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았다”라는 것이다. 이에 앞서 국민의힘은 보궐선거에서 참패한 뒤 야당을 과도하게 비난하는 정쟁(政爭)성 현수막을 철거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전국적으로 문제 현수막들을 철거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여기에 호응하지 않았다.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경선 때 비난성 문자 폭탄을 “민주주의를 위한 양념 같은 것”이라고 두둔한 일이 있다. 당장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민주주의 파괴를 선동해서는 안 된다. 아이돌의 열성 팬 문화에서는 지지하는 가수 외에 다른 가수는 없다. 우호 세력은 물론 반대 진영의 정치적 경쟁자마저 인정하고 의견을 조정해야 하는 민주주의와는 전혀 다르다. 역사적으로 정치에서 가장 적극적인 팬덤은 나치였다. 팻말과 고성, 야유 등 돌출행동은 카메라의 주목을 받는다. 나쁜 짓을 즐기는 이유다. 적어도 책임 있는 언론만이라도 이런 행동을 외면하면 안 될까.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10-29

맨발걷기, 제대로 알고 해야하는 이유

박성률 트레이닝과학연구소장동국대 의과대학 연구초빙교수 요즘 산과 바다, 공원 등 어딜 가도 맨발로 걷는 사람을 볼 수 있다. 이 같은 열풍에 힘입어 각 지방자치단체는 앞다퉈 조례를 만들어 맨발걷기 장소를 조성하는 등 활성화에 나서고 있다. 맨발로 흙을 밟으면 혈액순환과 관절 건강에 도움이 되고, 운동 효과도 크다는 게 맨발걷기 애호가들의 주장이다. 발바닥이 땅바닥과 접지되면 활성산소를 없앨 수 있고, 병도 이겨낼 수 있다는 동영상과 책도 많다. 하지만 맨발걷기의 효과가 의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다수의 전문의나 스포츠과학자들은 건강하거나 운동기능이 뛰어난 사람의 경우 큰 문제가 없겠지만 당뇨병이 있거나 노인의 경우 감염 및 낙상과 부상 등의 위험 요소가 많다고 지적한다.대부분의 사람들이 매일 맨발로 다니지 않는 데에는 상당한 이유가 있다. 부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발가락이 뭉개질 수도 있고, 피부를 자르거나 구멍을 내는 날카로운 것을 밟을 수도 있다. 게다가 맨발걷기는 뼈와 근육에 부담을 줄 수 있다. 단단한 표면을 맨발로 걸으면 발뿐만 아니라 신체의 나머지 부분에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줄 수 있다. 미국의 한 족부 전문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발뒤꿈치 또는 아치 통증, 정강이 부목 및 건염으로 이어질 수 있어 보행의 생체역학이 적용되어야 이 같은 부상을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맨발걷기는 운동의 원칙에 따라 진행해야 한다. 올바른 방법으로 맨발걷기를 해야 부상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맨발걷기를 하기 전에 준비운동은 필수다. 각 관절을 돌려주고 근육을 늘려주는 체조와 스트레칭 등으로 준비운동을 충분히 해야 부상 위험을 줄일 수 있다. 또 맨발걷기를 할 때는 시선이 중요하다. 땅에는 돌, 유리조각, 가시 등 발바닥에 상처를 줄만한 위험요소가 많이 존재한다. 따라서 아무 곳에서나 맨발을 노출시키면 안 되고 전용공원이나 위험요소가 적은 곳에서 해야 한다.맨발걷기는 지나치게 하면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맨발걷기를 신발을 신고 걸을 때처럼 걷다가는 관절과 인대 및 힘줄에 무리가 갈 수 있다. 맨발걷기를 산에서 하면 내려올 때 체중의 5~7배 정도의 하중이 발에 실리게 된다. 이 경우 아킬레스힘줄염이나 족저근막염이 생길 수 있고, 기존의 병증이 악화할 수도 있다. 특히 근골격계 노화가 진행된 노인들은 잘못된 방법으로 무리하게 걸으면 무릎이나 발목 관절에 하중이 집중되면서 관절염 등 퇴행성 질환이 급속도로 진행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맨발걷기 도중 발에 상처가 나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당뇨병 환자의 경우 작은 상처나 물집도 궤양으로 번질 수 있어 맨발걷기 후에는 상처가 없는지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특히 발에 진물이 나고 갈라진다면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어 당뇨병 환자는 맨발걷기를 자제하는 게 좋다. 다발신경병증과 같은 신경계 질환이 있는 사람은 부상 위험이 없는 곳에서만 맨발로 걸어야 한다. 관절에 문제가 있거나 발의 정렬이 어긋나면 사전에 정형외과의 조언을 구하는 것이 좋다.50대 중년 이상이나 체형의 불균형이 있다면 맨발걷기의 득과 실을 따져봐야 한다. 체형의 불균형은 신발을 신든 맨발이든 많이 걸을수록 발에 무리를 줄 수 있다. 체형 불균형 상태에서는 걸을 때마다 발바닥의 일부분에만 지나친 압력이 가해지게 되어 굳은살이 더 단단해지거나 족저근막염과 같은 발 부위 염증이 생기기 쉽다. 발바닥에는 지방 패드가 있어 발을 보호하는데, 나이가 들수록 점점 지방 패드가 딱딱해지고 얇아져 통증을 유발할 수 있다. 따라서 중년 이상의 연령층은 모든 종류의 걷기 운동에서 준비 단계를 거치는 게 안전하다.특히 노인의 경우 맨발은 낙상 등 부상 위험이 훨씬 크다. 최근 Shoe Science 저널에 발표된 연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765명의 노인 참가자를 대상으로 집에서 넘어진 것과 하루 종일 신발, 양말을 신었는지 또는 맨발로 다녔는지 여부를 분석했는데, 집에서 넘어진 경우 참가자의 절반 이상(51.9%)이 당시 맨발이거나 양말이나 슬리퍼만 신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들은 낙상의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능할 때마다 신발을 신는 것이 바람직하다.더구나 맨땅에는 수많은 병원균들이 존재하여 십이지장충, 포도상구균 등의 질병 감염 위험에 노출될 수 있고, 습한 장소에서 맨발로 걷는 것은 무좀과 같은 곰팡이균 감염의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맨발걷기의 효능이 알려지면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지만 근거가 부족한 면도 많다. 잘못된 맨발걷기는 오히려 건강을 악화시킬 수 있다. 맨발걷기를 만병통치라고 맹신하는 것도 위험하다. 전문가와 사전 의논도 하지 않고 자신의 몸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채 유행하는 건강법을 무작정 따라하다가 안 하느니만 못하게 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맨발걷기가 자신에게 맞는 운동인지 전문의나 스포츠과학자에 확인한 뒤, 자신의 건강 및 체력 수준에 맞는 걷는 자세와 속도 및 시간을 정하고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023-10-29

국정기조의 변화는 탈이념정치에서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서울 강서구청장 보선의 처절한 패배 이후 윤석열 정부의 국정기조는 변화 조짐이 약간 보인다. 대통령은 강서구 패배 후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정치에서 이념보다는 민생을 위해 정친인들이 현장으로 달려가길 촉구했다.정치 혁신을 위해 파란 눈의 인요한씨를 혁신 위원회의 책임자로 맡겼다. 윤석열 정부 출범 1년 6개월 동안 이념을 앞세운 정치가 국정의 기조가 되고 혼란을 자초한 것은 사실이다. 처음에는 정치 경험이 전무한 대통령의 보수권 확대 코스프레 정도로 알았지만 그 강도는 점차 세었다. 정당 간 두 번의 정권 교체로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진 이 나라 정치에서 이념 전쟁은 시대에 뒤진 정치행태이다. 자유주의 명분의 강경우익적인 갈라치기 정치는 극한 대결의 정치, 정치 실종시대를 자초하였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30% 대를 탈피하지 못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번 강서구 보선의 참패는 이를 잘 입증한다. 대통령의 탈이념 정치야말로 국정 기조 변화의 첫 단추이다.대통령은 지난 8·15 경축사에서 공산 전체주의 세력과 이를 따르는 기회주의적 세력과는 대화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하였다. 이 같은 발언은 윤 대통령이 야당을 국정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될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국회뿐 아니라 장외에서도 정치 현안에 대한 정쟁이 날로 증폭되었다. 대통령은 야당 이재명 대표의 대화 제의를 피의자 신분이라는 이유로 거부하였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은 언론과의 원만한 소통마저 거부하고 있다. 후보 시절 공약했던 출근길 도어 스테핑도 공식적인 기자회견도 사라져 대통령의 불통과 독선의 이미지는 더욱 강화되었다. 정부나 집권당의 인사들은 대통령의 심기만을 살피는 수직적 관계만 형성되었다는 비판이 따랐다. 독립운동 영웅 홍범도 장군의 이미지는 여지없이 실추되었다. 정부의 협치는 사라지고 진영 정치, 패거리 정치로 살벌한 전투장이 되고 말았다. 물론 야당의 책임도 면할 수 없다. 민생 정치는 사라지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 되고 있다.대통령은 내치뿐 아니라 외교에서도 이념성을 강조하고 있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프리드만의 자유주의를 수차례 강조할 때도 보편적 ‘자유’ 확산으로 이해하였다. 자유주의 진영의 철통같은 단결을 통해 공산전체주의를 막자는 것은 냉전시대에 자주 들었던 귀에 익은 소리이다. 자유진영에 바탕한 한미 안보 동맹은 역사적인 전통이며 우리의 불가피한 현실이다. 한·미·일의 외교적 결속은 북·중·러의 역 삼각 동맹 결속으로 다시 냉전 체제를 초래하는데 문제가 있다. 한·미·일 가치 동맹은 안보불안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고 경제적 실용외교에도 상충될 수 있다. 윤석열 정부는 한일 간 졸속, 굴욕 외교라는 비난 속에서도 한일관계를 급박하게 정상화하였다. 정부의 강제 징용 보상, 후쿠시마 오염 수의 해결 방식은 일본 정부를 옹호한다는 비판이 따른다. 그러함에도 일본정부는 과거사에 대한 반성은커녕 각료의 신사참배는 늘어나고 있다. 정부의 이념외교는 현대의 실용외교 다원외교에도 역행한다.정부의 이념 정치에는 뉴라이트 식 사고와 논리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일제의 조선반도 식민화계획은 요시다 쇼인의 명치유신의 결과이다. 그러나 한국의 뉴라이트 인사들은 일본의 ‘식민지 근대화론’까지 옹호하고 있다. 일본의 조선 식민지배가 한국의 근대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당치 않는 주장까지 동조한다. 이들은 일제의 조선 침범은 당시 왕권의 무능, 조선인들의 미개성에 기인한다는 주장에까지 동조한다. 정부의 어느 각료는 매국노 이완용의 친일적 입장까지 이해한다는 입장이다. 이 연장선에서 박정희와 전두환으로 이어진 쿠데타의 불가피성까지 옹호한다. 물론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 발전 집념과 그 성과는 인정할지라도 쿠데타를 혁명으로 미화함은 역사 인식의 엄청난 오류이다. 대통령이 일부 뉴라이트 계열의 시대착오적 역사 인식을 국정 기조로 삼는다면 불행은 계속될 것이다.결론적으로 국정 기조를 바꾸려면 대통령부터 이념 정치에서 탈피해야 한다. 문제는 집권당과 대통령실이 이러한 시대에 뒤진 이념정치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데 있다. 집권세력의 독선과 오만은 대통령의 지지율 상승을 가로막는 기제이다. 이런 상황 하에서는 국정의 중간평가인 내년 4월 총선 결과는 물어볼 필요도 없다.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면 현 정부의 국정동력은 추동력을 잃고 대통령의 네임덕 현상은 가속화 될 것이다. 대통령과 정부는 강경 보수 우익의 국정기조를 민생정치로 탈바꿈해야 한다. 새로이 출범한 당 혁신기구는 이러한 제안을 과감히 할 수 있을까. 혁신기구 구성원들의 성향으로 볼 때 이를 기대하긴 어렵다. 양당 대표 회담이든 대통령과의 3자회담이든 대통령은 조건 없이 수용해야 한다. 대통령의 이재명 대표와의 회담이 사법 리스크 해소용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는 안 된다. 여야 정치권은 이념보다는 민생 정치를 위한 대화를 복원할 시점이다.

2023-10-29

체크무늬의 기억법

평생 그 속에 갇혀 있었다잔잔한 떨림으로 번져오던 칸 칸이어지는 직선 무늬를 타고계단들이 자라 올랐고그 직선을 타고 떠나왔다 때로는찌그러지는 체크무늬를 만들고 껴입기도 하면서세상의 빈칸에 파고들곤 했다 따스하기도 하고꽉 찬 칸에서 튕겨 나세상의 끝자리에 매달려 대롱거리기도 하면서젖은 현수막으로 걸려 있기도 했다늑골에 소복한 보푸라기들을 찌르며마분지 같은 칸들이 밀려와 매달렸다 저녁 새들이 물고 오는 칸들이 있었다구름 경전이 칸 가득 쌓이기도 하고다시 그 질긴 교직(交織)에 갇히고풀리기도 하면서헐거덩거리며 왔다 ―김만수,'체크무늬’ 전문 (나의 수많은 근처들·2023) 바야흐로 체크의 계절을 맞는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라는 디자인계의 명언이 있다. 디자인의 기능이 결과물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뜻이다. 시각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이 세상의 모든 조형은 점, 선, 면으로 치환할 수 있다. 20세기 추상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는 이들의 특성을 활용한 조형의 무한한 가능성을 일찍이 주목했다. 여기 1987년 등단 이후 김만수(1955~) 시인의 긴 시력이 내장된 시선집에 담긴 체크 라인을 따라 그가 직조한 삶의 무늬를 들여다보자.체크란 무엇인가? 체크가 주는 속성은 중의적이다. 직선이 주는 단호함과 따스하고 포용적인 질감이 혼재한다. 선과 면이 공존하는 네모난 공간이기에 삶의 무늬는 체크의 칸 속에 갇혀 있을 때는 보이지 않는다. 하여 시인은 체크 밖에서 체크를 보는 방식으로 “평생 그 속에 갇혀 있었다”며 체크 속 지나온 여정을 기억하고 있다.우리가 “체스판 모양의 격자무늬”를 “체크무늬”라고 부르는데 “체크무늬”에서 “체크(check)”란 서양식 장기(將棋)인 “체스(chess)” 즉 왕(King)을 의미한다. 시인은 그 자신이 직조한 체스판 안에서 왕이 되었을까.체크에 내장된 시인의 시간은 횡과 열이 교직하기에 수직이거나 수평이거나 때로는 역방향이다. “직선 무늬를 타고//계단들이 자라 올랐고” 에서 상승기의 방향을 드러낸다면, “찌그러지는 체크무늬를 만들고 껴입기도 하면서//세상의 빈칸에 파고들곤 했다”는 대목에서는 삶의 한 공간에 자리 잡기 위한 치열한 분투기의 격정을 보여준다. 그렇다, 체크의 이중적 속성은 늘 교차한다. “따스하기도 하고” “세상의 끝자리에 매달려 대롱거리기도 하면서” 온기와 냉기를 벼리고 있다. 사람의 생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늑골에 소복한 보푸라기들을 찌르며” 칸과 칸 사이 “마분지 같은 칸들이 밀려와 매달” 리는 삶의 진경이 체크무늬 공간과 겹치기에. 이희정 시인 어떤 공간은 잊고 있었던 현재의 공간을 통해 과거의 감수성을 불러오는 데 일조한다. 누구나 저마다의 장소애(topophilia)를 갖고 있다. 김만수 시인은 포항이라는 공간에서 나고 자랐다. 장소를 구성하는 세 가지 기본 요소가 몸, 가족, 공동체라고 한다면 시인의 체크무늬 속 공간은 포항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져 있다.“저녁 새들이 물고 오는 칸”에는 “구름 경전이 가득 쌓이기도 하”듯 체크무늬 칸, 칸에는 과거와 현재의 공간이 만나 갈등하고 회상하는 장면이 그 경험을 은유하고 있다.이처럼 점으로 시작한 한 시인의 역할은 시작과 끝을 ‘선’으로 연결하는 것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 선은 우리의 삶의 공간인 면과 맞닿아 있다. 켜켜이 직조된 선은 종내에는 하나의 ‘면’이라는 개인의 삶의 공간을 이룬다. 그 면을 이루고 있는 선은 끝없이 변화하며 무한한 가능으로 가고 있다. 시인이 직조한 체크무늬는 시작점과 마무리 점을 잇는 체크의 선들로 사람과 사람을 이으며 평행하게 이어지고 있다.“그 질긴 교직에 갇히고 풀리기도 하면서 헐거덩기리며”

2023-10-29

인류사는 현대까지 어떻게 진행 돼 왔을까?

박진홍 부국장 인류사는 현대까지 어떻게 진행 돼 왔을까 ?인류사는 선사와 역사로 구분된다.역사 이전을 선사(先史)시대, ‘문자 탄생’으로 기록 수단이 생긴 역사(歷史)시대로 나눈다.역사(歷史)란 무엇을 뜻할까?역(歷)은 과거에 있었던 일, 사(史)는 사람이 말을 하는 것으로 ‘사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모든 일에 대한 기록’을 말한다. 동양에서 ‘역사’란 단어가 처음 사용된 것은 대략 400여년전, 명나라 애황이 쓴‘역사강감보’란 저서에서 시작됐다. 그전에는 중국 춘추시대 공자의 노나라 역사서 ‘춘추(春秋)’가 ‘역사’란 단어를 400여년간 대신 하고 있었다. 그러다 기원전 2세기 전후 한나라 사마천이 저술한 사기(史記)가 향후 1천700여년간 ‘역사’란 단어로 사용 됐었다. 서양에서는 BC 5세기경 그리스 헤로도토스가 페르시아전쟁 등에 관해 쓴 책 ‘Historia’에서 ‘역사’란 단어가 시작됐다.역사는 자주 바뀐다.역사적 대사건의 팩트는 불변이지만 ‘역사를 보는 관점’ 즉 사람들의 사관(史觀) 따라 역사 해석이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역사를 공부할 때 정말 유의해야 할 대목이다.인류 역사는 1만년전쯤 메소포타미아에서 농업혁명으로 시작된 촌락들이 도시 문명으로 발전하면서 시작한다. 5천500년전 수메르인들이 메소포타미아문명을, 뒤이어 5천300년전 이집트문명이 각각 수많은 도시국가들의 치열한 생존 경쟁 가운데 생겨난다. 아시아에서는 인도 인더스 문명이 5천년전, 중국 황하문명은 4천년전 시작됐다. 이 대목에서도 ‘우리 사피엔스종을 지구의 절대자로 만든 문명사가, 1만년에 불과하다’는 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인류는 600만년전 유인원 분기 이후 무려 599만년 동안 별 볼일 없는 존재로 살아 왔다. 특히 공룡이 2억3천만년전 출현해 무려 1억6천500만년 동안 지구를 지배한 점과 비교할 때 인류의 역사는 초라하기 그지 없다.현대 학계는 인류 문명사를 ‘소규모 집단·문화가 대규모로 통합·협력하는 방향을 지향해 왔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화폐와 제국, 종교가 주된 역할을 수행해 왔다’고 보고 있다. 과거 수렵채집인들은 물물교환을 했으나 이후 도시와 왕국의 등장으로 물물교환의 효율성을 위해 화폐가 생겨난다.돈은 교환과 이동, 부의 축적에 용이했다.하지만 돈은 ‘상상 속에 존재 하는 상호신뢰시스템’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예를 들어 현대 전세계의 화폐량은 60조 달러지만 실제 유통되는 주화·지폐 총액은 6억 달러 미만에 불과하다. 화폐의 90% 이상이 컴퓨터 서버에만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로마시대 화폐인 주화는 이미 인도에서 유통될 정도로 세계 경제를 연결시켰다. 근대로 넘어오면서 화폐는 전세계를 단일 경제권으로 묶기 시작했다. 유럽인들은 아메리카에서 수탈한 금·은으로 동아시아에서 비단과 도자기, 향신료 등을 구입했다. 세계적 통합 경제권이 정착되기 시작한 것이다. 향후 전세계는 다른 종교와 언어, 통치를 받았으나 돈은 인류 공통의 기준이 됐다.제국주의를 거론하면 먼저 정복과 폭압, 학살, 노예 등 부정적 면이 강하게 제기 된다.하지만 역사를 둘러 보면 제국주의에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예를 들어 기원전 134년 이베리아 반도 캘트족 국가 ‘누만시아’는 로마군에 의해 정복됐다.하지만 21C 현재 스페인은 로마제국에 근간을 둔 로망어와 로마카톨릭교, 법, 정치체계, 건축법 등을 사용하고 있다.2천여년전 로마에 정복됐던 스페인이 현재 내용적으로 로마의 후신이 돼 있는 것이다.중국 역시 지난 수천년 동안 수많은 민족들이 정복과 피정복을 거듭한 후 현재 ‘하나의 통일 제국’에 이른 것으로 볼 수 있다. 과거 중국을 비롯한 모든 제국주의 동화현상은, 전세계 많은 민족·국가의 이질성을 아울러 온 것이 사실이다.또 현대인들이 누리는 문명 대부분도 과거 제국 착취물의 결과라는 점도 부정하기 힘들다.다만 제국에 정복된 민족들의, 수십년에 걸친 동화과정은 매우 고통스러웠다.기독교와 이슬람, 불교 등 종교의 경우 분열의 근원이기도 했지만 인류를 통합하는 매개체 역할도 강력하게 수행해 왔다.앞으로 인류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인류가 자본과 노동, 정보시장이 통합된 하나의 글로벌 제국에서 살게 되지 없을까?

2023-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