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박이 어르신들은 포항의 옛 이름이 갯메기 또는 갯미기였다고 말씀하신다. 젊은 사람들이 들으면 의아해 하겠지만, 한자와 한글 표현에 포항 사투리가 한몫 한 것이다. 포항에서는 청어의 눈을 꿰어 말렸다 녹히기를 반복한 것을 ‘관목’이라고 불렀다가 ‘관메기’로, 다시 ‘과메기’로 정착된 사례가 있다.
포항 지명도 초기에는 ‘갯목’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문맹인이 많았던 시절에 발음하기 편한대로 옮겨지는 말의 특성상 갯목이 자연스럽게 ‘갯메기’ 또는 ‘갯미기’가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포항이라는 이름은 한자로 浦(개 포), 項(목 항)이라 쓴다. 포항하면 항구(港口)도시가 각인되어서인지 浦(개 포), 港(항구 항) 이라고 적는 사람들이 주변에 꽤 많다. 수정해 주면 왜 浦項이 됐는지가 궁금하다고들 한다.
浦(개 포), 項(목 항)을 우리말로 풀면 갯목 또는 받침 ㅅ이 탈락되어 개목이 된다. 국어사전에 ‘개’는 강이나 내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이고, ‘목’은 척추동물의 머리와 몸통을 연결하는 부위라고 설명한다.
고속도로로 진입하거나 빠져나가는 곳을 나들목이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나들목에 대하여 사전에서는 “도로의 교차부가 입체교차로 되어 있어, 직진하는 자동차나 좌우 회전하는 자동차가 뒤얽히는 일이 없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연결하는 시설로서 ‘인터체인지’를 우리말로 순화한 용어이다.”라고 적고 있다.
포항에는 ‘개’자가 들어간 명칭이 몇몇 남아 있다. 호미곶 구만1리의 솥발이개, 우물개, 큰개와 구만2리 까꾸리개, 부느리개 등의 지명이 대표적이다. 포항시사 제3권(제10편 마을유래와 설화 제1장 마을유래 제1절 남구지역 7. 대보면 601쪽)에는 구만리의 지명 ‘개’ 자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구만1리 솥발이개는 보내 북리 갯마을로서 마을지형이 솥 같아 정족(鼎足)으로도 부르고, 우물개는 우물 부근에 형성된 작은 마을로서 웅글개로도 칭하며, 큰개는 우물개 북쪽 해안마을로서 앞 바다에는 암초(暗礁)가 많고 풍랑이 심하여 해난사고가 잦다’라고 명기 해 놓고 있다. 또한 ‘구만2리 까꾸리개는 큰개 서편에 속하는 갯마을로서 이 지역에 풍파가 심하면 고기들, 특히 청어(靑魚)가 뭍으로 밀려나오는 경우가 허다하여 갈구리로 끌었다는 뜻에서 지어진 지명으로 구포(鉤浦)로도 부르고, 부느리개는 서남단 해안 작은 어촌으로서 영일만(迎日灣) 굽이진 바다에 달빛 자욱한 모습이 가관(可觀)이라 분월개(芬月-)로 불렀다 한다. 지금은 마을이 철거되고 방파제만 남아 있으며, 분월포(芬月浦) 로도 부른다’라고 정리해 놨다.
바닷가 모래땅에 살며 풍을 막고 피를 맑게 해 준다는 ‘갯방풍’, 갯가에 자리 잡고 있는 ‘갯마을’등에서의 접두사 ‘갯’도 갯목의 ‘갯’과 같은 의미이다.
포항시사 제1권(제2편 역사 제5장 근대태동기 4. 포항지명 탄생 425쪽)에는 포항지명 탄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포항의 지명이 공식적으로 처음 등장한 것은 영조7년(1731) 포항창진(浦項倉鎭)을 설치하면서다. 창진이 설치된 마을 이름은 원래 영일현 북면 대흥리였으나 이를 포항리로 개칭하고, 창진의 이름을 포항창진으로 명명하였다’
‘포항이란 향호(鄕號)는 포항의 대흥산을 배경으로 형성된 형산강의 하류이자 지류로서 선박의 접안이 가능한 칠성강의 중요지점을 나타내는 우리말 지명인 갯메기(갯미기, 표준말은 갯목)의 한자화(개울·개·물가 浦자와 목 項자)로 이루어졌다. 갯목은 구 역전교(1980년대 초에 복개함) 지역이며, ’(이하 생략). 왜 포항을 항구가 있는 지역 즉 포항(浦港)이라 쓰지 않고 포항(浦項)이라고 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경상북도의 무역항 및 연안항으로 지정된 항구를 살펴보면, 무역항인 포항항(浦項港), 연안항인 울릉항(鬱陵港)·후포항(厚浦港)·강구항(江口港)·구룡포항(九龍浦港), 그리고 연안항으로 추진 중인 감포항(甘浦港)이 있다. 포항·후포·구룡포·감포의 지명에서 모두가 같은 개 포(浦) 자를 쓰고 있는 점은 특이하다. 강가 또는 수변지역이라는 뜻에서 각자 포(浦)를 사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다른 곳에서도 포항이나 갯목 또는 개목이라는 지명을 쓰는 곳이 다수 있다.
안동에서는 오랜 세월 시가지를 흐르는 낙동강 물길을 관리하기 위해 제방을 쌓고 증축한 곳을 포항제(浦項堤)라 부르고, 강변 임청각 앞에는 ‘개목나루’또는‘포항나루’라 불리는 장소가 있다. 동해시 구미동에도 북평시장에서 전천과 동해바다가 합류하는 길목에 갯목항이 있다. 홍성군 은하면 장척리에도 포항마을(개목)이 있다. 그 외에도 함경남도 함주군 포항리, 함경남도 신포시 포항동(개목), 함경북도 청진시 포항동 등이 있다.
이러한 장소의 특징은 인근에 물이 있고 또 물이 나가는 길목에 마을이 있다는 특징이 있다. 포항·갯목·개목 등의 지명은 마을 형국이 바다나 개울 목 또는 물 목에 위치하여 붙여진 지명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위 사례가 보여주듯 이들 지역과 경북 제1도시 포항의 지명 유래는 매우 닮아 있다. 입지적 측면과 지명이 갖는 상징성 등 상당 부분에서 동일한 공통점이 발견되는 것이다.
최근 들어 각 지자체들은 옛 지명을 속속 복원하고 있다. 옛 이름이 놀뫼인 논산은 놀뫼 공소, 놀뫼 새마을금고 등과 같은 장소명을 쓰고 있고, 옛 지명이 서라벌인 경주는 서라벌대로, 서라벌 문화회관 등 자랑스럽게 이름을 명명했다. 의성지역에는 삼한시대 초기 조문국이라는 부족국가가 있던 곳이라 조문국 박물관을 개관했고, 김해는 옛 이름은 금관가야 를 되살려 김해가야 테마파크, 김해가야 축제 등 장소명을 부각시켜 나가고 있다.
포항에도 갯목 시티 역사관, 갯목 광장, 갯메기 대로, 갯메기 체육관 등 포항의 정체성이 반영된 장소명이 생기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