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에 가장 먼저 사람이 살았을 곳은 어디일까. 궁금해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일단은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산명(山名)으로 등장하는 대흥산 기슭과 대흥골을 먼저 꼽고 있다. 이는 중앙동행정복지센터 홈페이지 대흥동 지명유래에서도 일부 내용이 나타난다.
“조선시대 칠성강 북서쪽 대흥산 앞에 마을을 형성하여 영일현 북면 대흥리로 불리었다. 1694년경 엔 60-70여 호의 마을을 형성하였으며, 1700년대 초 이 고장의 세곡(稅穀)을 수송·보관하는 포항창(浦港倉)이 설치되면서 부락명이 포항리로 되고, 포항장(1일과 6일)을 형성하였다. 대흥동 영일현 북쪽 우물곡동(雨勿谷洞)에 대흥제(大興提)가 있어 18결의 논에 물을 대었다는 기록이 있는 유래 깊은 명칭이다. 해방 후 택지로 변한 대흥못의 옛 자리는 지금의 용흥동 현대타워 아파트 정문 앞 부근이 된다. 오늘날 대안산·대왕산과 대안곡의 명칭은 대흥산과 대흥곡이 변음된 것이다.”
대흥산과 대흥골은 어디 쯤 될까?
포항시사를 살펴 정리해 보면, 1731년 지금의 용흥동과 대흥동이 포함되는 넓은 지역의 대흥리는 포항리로 개칭되면서 지명이 없어졌다가 1910년 포항동 일부와 용당동 일부를 더해서 용흥리가 만들어졌다. 용당동의 용(龍), 대흥동의 흥(興)을 더하여 용흥리(龍興里)를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1946년 초음정을 개칭하면서 예전 대흥동의 지명이 다시 살아난듯하나 현재 대흥리의 영역은 1731년 이전의 극히 일부만 포함하고 있고, 예전 대흥리 대부분은 현재 용흥동으로 떨어져 나간 것으로 보인다.
대흥동과 용흥동 영역에서 대흥·대왕·대안을 키워드로 검색해 보면, 대흥동에서는 연관성 있는 지명이 없고, 용흥동에서는 용흥우방아파트단지 뒤편 대흥초등학교와 대흥중학교가 나오고, 행정복지센터 앞에서 서북쪽으로 난 골짜기에 대안지와 소류지, 대흥지 체육공원, 대안길(용흥 현대타워 2차 앞-대안지 지나 용흥동 590번지까지 2.4km 정도), 또다른 대안길(용흥동 378-10번지-성안 교회, 200m 정도), 대안길 16번길(참행복한 교회-성안 교회, 220m 정도) 등이 검색되고 있다. 이 일대가 대흥골이 틀림없는 듯하다. 그렇다면 지명 확정시 대흥지 소류지, 대흥지 체육공원, 대흥길, 대흥길 16번 등으로 명명되어야 함이 타당하나 고증이 부족해서인지 반영되지 않았다.
대흥못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대흥동 지명유래에 “대흥제(大興提)는 용흥동 현대타워 아파트 정문 앞 부근이 된다.”고 적고 있다. 주민센터에서 서북쪽으로 1.7km 지점에 있는 대안소류지로 표기된 곳과 대흥못은 상관성이 없는 듯하다.
대흥산은 지리서 및 옛 지도에서도 나타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23권, 경상도 영일현의 ‘산천’ 조에는 “대흥산(大興山) 현의 북쪽 23리에 있다.”고 적힌 문구가 있다. 조선시대 1리가 449.28m이므로 23리는 10.3km 정도이고, 남성리 영일읍성-칠성천-연일대교-탑산까지가 보행거리 10.3km 쯤 된다.
또한 ‘토산’조에는 “죽전(竹箭) 대흥산에서 난다.”는 부분이 발견된다. 죽전은 대나무 화살을 뜻하는데 대흥산에 이대나 신이대로 불리는 대나무가 많이 난다는 의미로 읽혀진다.
영일현 관할지역에 포항창을 적고, 뒤편에는 흥해 관할 경계지점에 산을 그리고 대흥산으로 적었다. 같은 ‘조선지도’의 흥해군 관할에는 연일과 경계되는 산을 그려 봉림산으로 적고 있다. 또한 ‘광여도(1737-1776년 간행)’ 흥해 관할에도 포항창으로 보이는 ‘浦’자를 쓰고 그 뒤로 산을 그려 봉림산으로 적고 있다.
고산자 김정호가 만든 ‘대동여지도’에는 영일현 관할지역에 浦項을 적고, 뒤편에 흥해 관할 경계지점에 산을 그리고 봉림산으로 적고 있으며, 인터넷 두산백과에는 “옛날 용흥동을 죽림산(竹林山) 아래에 있다 하여 죽림동이라고 하였으며, (중략) 조릿대가 많이 자라고 있는데, 산 정상에는 전몰학도충혼탑이 있다.”고 적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에는 “봉비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도심 속의 전통 사찰인 죽림사는 불국사의 말사이며 신라 때 창건되었다고 전해진다.”라고 적혔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정리해 보면, 영일현의 북쪽 23리에 대흥산이 있고, 산형이 숲에서 서남방을 향해 앉아있는 봉황 형국을 하고 있어서 봉림산으로도 공식적으로 쓰고 부른 듯하다. 한국전쟁 이후에 전몰학도충혼탑을 세운 이후부터는 탑산이 산명으로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이며, 화살대로 쓰는 신이대가 많이 나서 민간에서 죽림산이라 간간이 부른 듯하는데 현재 일부 단체 등은 유래와 어울리지 않게 ‘봉황이 날아오른다’는 봉비산(鳳飛山) 이라는 명칭도 쓰고 있다.
지명은 우리 조상들의 삶의 향취와 멋이 담겨져 있는 문화와 역사의 일부분으로서, 바로 알고 잘 보전해서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백두대간의 큰 기운을 품은 낙동정맥을 지나 포항의 대표 산줄기인 비학지맥을 거쳐 도음산의 분맥으로 내려온 대흥산은 ‘자연이 베풀어 크게 발전 한다’는 산명처럼 오늘날 포항 형성 발전의 모체가 된 포항 제일의 위계를 차지하는 소중한 지명이다. 따라서 탑산·봉비산·대왕골·대안지 등을 정리하고, 대흥산과 봉림산을 병행사용하며, 대흥골·대흥지 소류지·대흥지 체육공원·대흥길 등으로 지명 회복시키는 일이 포항 문화의 뼈대를 충실하게 만들고 가꾸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