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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 장날

등록일 2024-10-16 18:25 게재일 2024-10-17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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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계현作

상설장이 되었다 해도

오일장은 잊으면 안 돼요

냄새를 확인하고 추억을 상기하고

옛날 떡과 술떡을, 도라지와 냉이를

상업적이지 않게 먹고 살 수 있거든요

라이센스 없는 토박이 장꾼들

습관처럼 출근하는 사람들

구석구석 노인네들 다 모여

콘크리트 담장 아래 쪼그리고 앉아 꼬박꼬박 졸며

봄 햇살 보다 더한 온기를 확인해요

안부 전하면서, 죽지 않으면 보고 또 본다고,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요

제철 봄나물 마중 나오신 거

캐고 뽑아 드리워 주신 거

야박한 가격에도 선뜻 내미는 손

핏줄 빳빳한 마른 손

짓이기 듯 비비는 어설픈 악수

오일장의 자기증명, 그 허술하지만 야무진 목숨들

칼국수 다섯 그릇 시켜 일곱 명 나눠 먹고

동해댁 문덕댁 용산댁 우리 잊지 말아요

멀고 먼 시선 아지랑이에 묻히고

인생, 엄지 검지 모아 팽 하니 푸는 콧물 같은 것

해 지기 전에 버스를 타야지 마지막 버스는

너무 늦기도 하고 우리 운명 같아서 지랄 같아

종일 앉아 있어 시큼한 허리 부축하며

이천원 나물 향기 열댓 봉지

헐렁한 봉지에 담아 집으로 가는 오천 오일장

아쉬워 머물고 싶어도 가슴에만 담아둘

마지막 풍경

더 이상 뜨거운 것은 없어도 더 이상 시들 거 없어도

다음 장날 못 나오면 와병 중이거나

죽은 줄 아시게.

해도동에서 태어났지만 오천에서 오래 살았다. 삶의 언어를 거기서 배웠다. 바탕을 형성하는 인성은 고급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낮은 것은 언제나 은은하다. 금빛이 아니라 은빛이어서 늘 은은하게 빛나고 있다. 흰 머리카락이 더 늘어가고 있다. /이우근

이우근 시인, 박계현 화백
이우근 시인, 박계현 화백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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