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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예? 아니오?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 얼마 전, 향후 모 기관 평가를 위한 주요 안건 처리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오래전부터 해결되지 않은 케케묵은 안건 하나가 있었는데, 마침, 회의 테이블에 올라왔다. 위원 중 한 명이 먼저 꽤 괜찮은 의견을 내었다. 그런데 회의를 주관하던 기관장이 그 의견을 들어보니, 말은 맞고 합당한데, 따르자니 본인 소관인 내부 부서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다 그렇잖아도 컨트롤이 잘 되지 않아 속앓이를 앓던 터라,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그때, 좋은 방향을 생각하며, 나도 덧붙여 한마디 했더니, 다들 동요할 것 같았는지, 갑자기 기관장이 버럭, 그게 쉽지 않은 문제인데다 다들 마땅한 대책이 없는 것 같다며 서둘러 안건을 정리하려 하였다. 그 목소리 톤과 권위적인 태도에 다들 쥐 죽은 듯, 눈치만 보다가 ‘예’하고 일제히 숙이는 게 더 가관이었다. 졸속 행정, 이건 아니다 싶어, 한마디 더 하니, 아까보다 더 큰 소리로 못 박는 게 아닌가. 그러자 다들 아까보다 더 충성스러운 태도로, ‘예’하던 모습이란! 대책이 없는 게 아니라, 구렁이 담 넘어가듯, 교묘히 싫은 것을 감추며 일을 졸속으로 마무리 지으려는 속이 빤히 보였건만, 다들 권위에 굴복해 버리니, 참, 마음이 헛헛했다.장탄식(長歎息)을 하고 운전하고 돌아와 지인과 저녁을 먹으며 그날 일을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지인의 말이 더 가관이었다. ‘너도 참…. 세상 순진하기는! 그게 바로 인간이야. 공부한다더니, 인간 공부 안 하고 무슨 공부했냐.”는 핀잔만 잔뜩 듣고서, 허, 참. 깊어가는 가을, 많은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1597년 2월, 한양에서는 원균의 모함으로 이순신에 대한 국형장이 한창이었다. 문무백관 200여 명이 모두 그를 죽여야 한다고 일제히 아우성칠 때, 심지어, 이순신을 크게 추천한 유성룡마저도 선뜻 못 나서던 그때, 혼자 ‘아니오’를 외친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영의정 이원익. 그 결과, 이순신은 살 수 있었고 풍전등화 속 나라를 구한 명장으로 남을 수 있게 되었다.또 연산군 때, 환관 김처선은, 감히 두려워 아무도 말 못 할 때, 이토록 음탕한 임금은 보지 못했다며 직언(直言)하다 목숨을 잃었다. 화난 임금이, 그를 죽인 후에도, 그 집안을 멸족하고, 그 이름자 중 하나인 ‘처(處)’자 사용을 금지함은 물론, 동명이인들은 개명하라는 명까지 내렸으니. 게다가 처용무의 이름도 풍두무(豊頭舞)로 바꾸고, 과거 시험에서 처(處)자를 썼다고 합격을 취소한 일까지 있었으니, 실로 ‘아니오’를 외친 댓가가 크긴 했다. 그러나 다들 ‘예’라고 할 때, 환관으로서 ‘아니오’를 외칠 수 있었던 그 마음은 대단하지 않은가.어느덧 11월이다. 모두가 ‘예’라 할 때, 아닌 것을, 아니라 할 수 있는 것, 그것은 ‘용기’이다. 누군가는 이 용기가 사회에 꼭 필요한 것이라 하고, 또 누구는 그런 용기를 부리다 꺾이고 지쳐 너덜너덜해질 테니, 그냥 그대로 사는 게 좋다고도 한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어느 것이, 과연 인간으로서 떳떳하게 살아가는 길일까? 깊어가는 가을, 나는 예? 아니오? 어디에 속할지 한번쯤 생각해 보면 좋겠다.

2023-11-07

어른의 아지트, 순대국집

나의 취미는 요리다. 그렇다고 집에서 빵을 굽거나 파스타를 하는 건 아니다. 술안주를 직접 만들어먹는 게 좋달까. 코로나 시절 사람들과 함께 술을 마시기 어렵다보니 집에서 혼술을 하는 취미가 생겼는데, 매번 시켜먹기가 부담스러워 간단한 요리를 해먹다 보니 생긴 취미다. 처음에는 된장찌개나 김치찌개 같은 간단한 찌개 종류부터 해먹기 시작했는데, 요즘엔 유튜브에 편리한 레시피가 많아 이것저것 해먹어보는 중이다.하지만 그런 나도 집에서 도저히 해먹기를 포기한 술안주(?)가 두 개 있는데, 감자탕과 순대국이다. 둘 다 30대 남자의 소울푸드 같은 요리인데, 집에서 하자니 손이 너무 많이 가기도 하고 냄새가 온 집안에 남다보니 집에서 해 먹는 건 아예 포기했다. 하지만 소주를 좋아하는 나에게 둘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음식인지라, 감자탕이나 순대국에 혼술이 땡기는 날이면 집 근처의 가게에서 포장을 해 먹곤 한다.그러다보니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사실 순대국밥은 집에서 먹으면 맛이 없다. 감자탕은 그래도 포장을 해서 먹어도 우거지며 고기며 참 맛있게 먹고 밥까지 뚝딱 볶아먹는데(배가 아무리 불러도 볶음밥은 못 참는다. 소주 안주로 볶음밥을 어떻게 참아) 이상하게 순대국은 집에서 먹으려면 손이 안 간다. 분명 가게에서 먹을 때랑 똑같이 해먹어도 도저히 그 맛이 나질 않는다. 희한한 일이다.사실 나에게는 좋은 순대국 집을 구성하는 몇 가지 요소가 있다. 맛이야 당연한 것이겠지만, 술을 마시고 할 때는 맛보다 중요한 요소가 몇 가지가 있다.하나는 냄새. 자고로 순대국 집은 돼지고기와 부속고기를 오래 삶은 냄새가 은은하게 풍겨야 하는 법이다. 그리고 색. 벽지며 천장에 살짝 누런 느낌이 있어야 한다. 세 번째로 주인이 너무 친절하지 않아야 한다. 가끔 말을 걸고 필요한 거 있냐고 묻거나 반찬을 아무 말 없이 리필해주는 경우들이 있는데 나는 그걸 좋아하지 않는다. 친절이라면 친절일 테지만, 이상하게 부담스럽단 말이지. 게다가 반찬을 남기는 걸 싫어하는 나로썬, 그런 친절은 정말 부담스럽기 짝이 없다.어쩌면 순대국의 맛이라는 건 단지 음식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 그런 부수적인 요소를 통해 완성되는 것인지도 모른다.적당히 허름해서 격식 차릴 필요 없는 그 느낌 속에서 평소엔 잘 보지도 않는 야구를 보며 순대국을 기다릴 때의 그 여유로움. 시게 익은 김치와 깍두기를 한 입씩 먹어보고, 양파와 고추를 쌈장에 찍어 먹으면서 소주를 한 잔 따라 미리 마실 때의 그 알싸한 느낌. 펄펄 끓는 뚝배기에 담긴 순대국에 숟가락을 미리 담궈두고, 정구지와 새우젓, 다대기와 들깨가루, 모자란 간은 소금 살짝 넣고 고추기름과 마늘 다진 게 있는 집에선 그것들을 살짝 넣고, 숟가락으로 휘휘 저으며 재료들이 잘 섞이게 만들 때의 그 기분. 숟가락을 꺼내 입으로 슥 해주고, 그 맛에 소주를 한 잔 비우곤 국물을 마실 때의 그 따끈한 맛이란….그렇게 소주를 한 잔 한 잔 비우고 있으면 시간이 느려지는 기분이 든다. 세상 일 따위 어찌되든 상관없을 것 같은 기분도 들고,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았다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기분도 든다. 어쩌면 내가 순대국에 소주를 좋아하는 건 맛보다는 그런 일련의 느낌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 오늘 열심히 살았다, 이제 술도 한 잔 했으니까 오늘 하루는 그냥 쉬자하고, 뇌에서부터 발끝까지 늘어지는 그 기분이 너무나도 좋다. 그런 나에게 순대국집이란 지치고 힘들 때, 구석에 몰린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찾는 나만의 작은 아지트인 셈이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작년 이사를 했을 때에도 나는 제일 먼저 순대국 집부터 찾아다녔다. 맛과 적당한 친절과 적당한 허름함을 갖춘, 혼자를 위로하고 싶은 기분이 들 때 숨어들 수 있는 아지트 같은 곳. 신기하게 그렇게 마음에 드는 순대국 집을 하나 찾고 나면, 비로소 새로운 동네와 친해진 기분이 든다. 이곳에서도 나는 잘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도 들고. 여기서도 이런 저런 일이 많겠지만 그럴 때마다 여기 와서 순대국에 소주 한 병 뚝딱하면 또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오늘도 순대국 집에는 수많은 혼자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있다.문득 그 모습들이 살아고자 힘껏 힘을 내는 모습들 같아 측은한 사랑스러움을 느낀다. 어쩌면 우리에겐 그런 장소가 하나쯤 필요한 것 아닐까?누구도 자신을 탓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따끈한 국물과 차가운 소주에 온 몸을 느슨하게 풀어줄 시간. 그래서 나는 우울할 때 순대국을 먹으러 간다. 당신에게도 그런 시간과 장소가 하나쯤 있기를 바란다.

2023-11-07

그림 밖에 있는 사람

얼마 전, 동생이 참여한 회화전이 벨기에에서 열렸다. 여러모로 기쁜 일이니만큼 나도 동행하여 행사에 참여하기로 했다. 오프닝이 끝나면 프랑스와 스페인을 여행할 계획도 세웠다. 나에게 있어 여행이란 모름지기 먹고 마시고 아무렇게나 늘어지는 시간에 가깝지만, 이번엔 달랐다. 두 눈으로 직접 보고 느끼고 싶은 것들이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었다.다른 것보다 역시 가장 기대되는 건 미술관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명작이라고 불리는 작품을 모조리 섭렵해 주겠다는 마음으로 호기롭게 배낭을 짊어졌다. 다리가 퉁퉁 붓고 온몸이 지끈거려도 다음 날 아침이면 어떠한 미적거림도 없이 벌떡 일어날 수 있었다. 오늘은 또 어떤 것들을 마주할까, 어떤 작품이 나를 놀라게 할까, 설레고 기대되는 마음 덕분이었다.참 신기하다. 백 마디 말보다 하나의 작품이 그 작가 자체를 명징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무엇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지 또 무엇을 감추고자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삶을 살아가는지. 작가는 작품 내부에서 어떤 말도 하지 않지만, 사실 모든 것을 발화하고 있다. 그 당연하고도 중요한 사실을 이번 기회를 통해 또다시 느꼈다.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박물관과 미술관을 들락거리는 내내 우리는 가벼운 흥분으로 들떠 있었다. 책에서만 봤던 작품들이 바로 앞에 놓여 있다는 것에 대한 기쁨이었다. 그리스 조각부터 중세 회화, 르네상스를 거쳐 근현대 미술사를 빛낸 작가들의 작품을 찬찬히 살폈다. 그러다가 문득 발길을 멈췄다. 작품을 한참을 보고, 또 들여다봐도 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다. 빈센트 반 고흐,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앞에서였다.고흐의 그림을 실제로 본 적은 처음이었다. 나는 그의 작품에 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굉장한 감흥을 받으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교과서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매체에 이르기까지 고흐의 작품을 인용하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나는 고흐의 작품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이상했다. 넘치는 감정을 추스를 수가 없었다. 작품이 슬퍼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아름다워서, 그림 밖에 서 있는 사람의 마음이 자꾸만 그려졌기 때문이었다.‘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은 고흐가 정신병동에 입원하기 일 년 전에 그린 작품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고흐는 미래에 관한 낙관을 꿈꿨다. 부서지는 햇빛이 아름다운 프로방스 지역으로 이사를 했던 것도 그런 의미였을 것이다. 실패만 거듭하던 예술가에게 희망적 예감은 얼마나 소중한가. 여전히 호기롭게 캔버스 앞에 서서 붓을 쥘 수 있었던 건, 캄캄한 어둠 속 저 멀리 보이는 한 줄기 빛의 존재 덕분이었으리라. 그림의 시간적 배경은 밤이다. 강변으로 늘어진 집을 밝히는 불빛이 있다. 하늘을 수놓는 별빛도 있다. 강의 표면에 빛이 눅진하게 번져간다. 멀리서 보면 강과 하늘이, 집에서 흘러나오는 불빛과 하늘의 별빛이 모두 하나인 것만 같다.고흐의 밤은 푸르다. 푸른 밤은 차갑다. 그리고 외롭다. 푸른 밤을 밝히는 무수한 빛이 있다. 그렇다고 쓸쓸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극대화된다. 반짝이고 일렁이는 빛을 바라보는 관찰자는 밖에 있기 때문이다. 빛의 내부로 들어가지 못한 채로 차갑고 외로운 공간 속에 서 있다. 그저 물감을 덧칠하고 또 덧칠하면서. 어둠이 있기에 빛은 더욱 강렬하게 빛나고, 슬픔이 있기에 강가의 풍경은 눈물겹게 아름답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그의 오랜 후원자이자 동생인 테오에게 쓴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별들은 알 수 없는 매혹으로 빛나고 있지만 저 밝음 속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숨기고 있는 건지.” 이렇듯 그는 빛을 고통이라고 말한다. 밝고 매혹적이지만 그만큼 아프고 괴로운 것이라 생각한다. “고통스러운 것들은 저마다 빛을 뿜고 있네. 심장처럼 파닥거리는 별빛.” 고흐에게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야말로 그가 해석한 빛에 가까울 것이다. 아름다우나 고통스러운 것. 고통스럽기에 아름다운 것. 마침내 그는 자신을 끈덕지게 따라다니는 하나의 질문을 꺼내놓는다. “내가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거기에는 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고흐도 그것을 알았을 것이다. 자신이 살아있는 한, 계속해서 붓을 쥘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래서 이렇게 덧붙인다. “나의 영혼이 물감처럼 하늘로 번져갈 수 있을까?”텅 빈 캔버스를 바라보는 한 사람의 마음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무엇이든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낙관과 무의미로 끝날 수 있다는 불안. 어쩌면 그건 삶과도 비슷하다. 그래서 우리는 작가들의 작품을 본다. 그림 밖에 서서 그들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캔버스가 채워지면서 어떤 이야기가 탄생하게 될지 말이다.

2023-11-07

이준석은 탈당하는 즉시 ‘고립무원’이 된다

심충택 논설위원 국민의힘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지난 주말 부산까지 찾아가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를 만나려 했으나 문전박대 당했다. 보수정당을 아끼는 많은 국민은 이날 인 위원장이 어떻게든 이준석을 포용해 공멸의 길로 가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기대했지만, 그 희망은 산산이 부서졌다.이준석은 이날 자신을 만나러 온 인 위원장에게 시종 영어로 말하면서 “환자는 서울에 있다”며 모욕을 줬다. ‘서울환자’는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 핵심측근들을 겨냥한 것으로 보여진다. 부산시민들이 가득찬 자리에서 이준석이 인 위원장에게만 일부러 영어로 말한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너는 우리 국가의 일원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의미가 포함됐다고 해석하고 있다. 이런 해석이 아니더라도 멀리서 자신을 찾아온 손님에게 어떻게 그렇게까지 모질게 대할 수 있느냐는 것이 대체적인 민심이다.인 위원장의 연이은 이준석 포용행위는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힘은 이제 보수정당을 회생시키는데 나름대로 역할을 한 이준석에게 할 도리는 다 했다는 충분한 명분을 쌓았다. 결과적으로 인요한식 ‘포용의 축적효과’가 이준석의 탈당과 신당창당 명분을 사전에 반감시키는, 보이지 않는 성과를 낸 것이다.이준석의 신당창당은 기정사실로 된 것 같다. 여당 입장에선 이제 이준석 탈당이 그렇게 위협적이지 않게 됐다. 만약 이준석이 ‘윤핵관’에 의해 쫓겨났다는 ‘피해자 이미지’를 가질 경우, 그의 신당은 여당에 일정부분 상처를 줄 수 있다. 2030세대를 중심으로 지지기반이 겹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의힘에서 발붙일 곳이 없게 되자 스스로 당을 박차고 나와 신당을 창당하려는 그에게 민심이 우호적일 리 없다.그의 손을 잡아줄 정치인도 별로 없어 보인다. 이준석이 신당창당 준비과정에서 민주당 비명계 의원을 접촉하고 있다고 밝힌데 대해 우상호 의원은 “개똥같은 소리”라며 일축했다. 금태섭 신당 ‘새로운 선택’의 곽대중 대변인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민의힘에서 안되다 보니 원래 있던 당에 맞불을 놓기 위해 신당을 만들겠다는 것 아닌가. 같이 하면 득보다는 실이 많다. 우리뿐 아니라 누구하고도 같이 하기 힘들다”고 했다.곽 대변인 말처럼, 이준석 신당론은 ‘가능성’으로 남아 있을 때에만 협상력이 있다. 여당의 끈질긴 포용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을 탈당하는 즉시 그는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상태에 놓이게 된다. 칼은 꺼냈을 때보다 칼집에 있을 때 더 위협적이라는 것은 꾀 많은 이준석이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내년 총선에서 이준석이 출마 지역을 서울 노원구가 아닌 대구를 염두에 둔 것 같다는 일부 보도도 나오고 있어 대구시민들이 의아해하고 있다. 이준석이 말하는 신당이 성공하려면 우선 탄탄한 지역기반을 갖춰야 하고 상당한 지지세력도 있어야 하는데, 대구를 정치거점으로 삼겠다는 그의 발상은 지나가는 소도 웃을 일이다. 보수진영의 산실인 TK지역 유권자들이 ‘먹던 우물에 침을 뱉는’ 이준석을 국회의원으로 뽑을 순 없지 않은가.

2023-11-07

대구시 긴축 재정, 선택과 집중으로 극복하길

대구시가 내년도 예산안을 올해보다 1천443억원이 줄어든 10조5천865억원으로 편성하고 시의회에 제출했다. 대구시의 예산이 전년보다 줄어든 것은 1998년 IMF 위기 이후 25년만이다. 대구시는 부동산경기 회복둔화와 내수부진 영향 등으로 지방세 감소가 예상되고 중앙정부의 교부세 감소 등으로 긴축재정 편성이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중앙정부도 국정운영 기조를 긴축으로 가져가고 있는 마당에 정부 교부금에 의존하고 있는 지자체의 긴축기조 유지는 당연하다. 대구시뿐 아니라 전국 지자체가 비슷한 상황이어서 지자체가 예산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하는지에 따라 예산지출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대구시는 예산 편성의 3대 원칙을 정했다. 건전재정 기조 유지와 약자복지 강화, 미래신성장 동력 재원 확보가 그것이다. 홍 시장은 취임 후 일관되게 건전재정 유지를 주장했고 내년에도 지방채 발행 없는 건전재정을 유지했다. 전국 지자체의 모범적 사례로 평가되는 만큼 바람직한 방향이다.저소득층과 노인, 장애인 등을 위한 복지예산은 오히려 10% 이상 늘려 꼭 필요한 부분은 별도로 챙겼다. 또 보조사업과 재량사업 등에 대한 평가를 통해 지출구조를 조정하고, 미래신성장 동력 재원확보에 방점을 찍었다. 선택과 집중의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예산편성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이다.그러나 내년에도 경기상황이 좋지 않을 것이란 전망 속에 예산의 감축편성은 재정의 경기 대응력을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있다. 시의 긴축 재정이 지역경제에 타격을 줄 것이란 일각의 우려다. 이런 우려를 불식하는 재정 운용의 묘미를 찾는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건전 재정을 유지하더라도 재정 감축으로 지역경제가 활력을 잃으면 재정 투자의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긴축 재정 속에 살림을 살아야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어려울수록 허리띠를 더 꽁꽁 매 시민이 낸 세금이 헛되이 쓰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시의회의 예산 심의도 긴축재정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두고 검토해야 할 것이다.

2023-11-07

인요한發 특권 폐지

우정구 논설위원 헌법상 평등의 원칙에 의해 누구나 특권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어떤 목적이나 사정에 따라 법률상 그 예외를 인정하는 것을 두고 우리는 특권이라 부른다.우리나라 국회의원에게는 법률상 두 가지 특권이 있다. 현행범이 아닌 이상 국회의원은 회기 중에 체포되지 않는 불체포특권과 의회에서 한 발언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 면책특권이 그것이다.국회의원 의정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법적 장치지만 특권 남용사례가 많아지면서 특권 폐지를 주장하는 국민의 목소리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국민의힘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최근 국민여론을 반영하여 불체포특권과 의원 숫자 감축, 세비감액 등의 특권 축소를 당에 정식 요청했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이슈로 늘 비관적으로 끝난 사안이지만 그의 요구에 정치권이 어떻게 반응을 할지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그동안 국회의원 특권 폐지를 위해 법률안도 여러차례 만들어졌지만 국회를 통과한 적은 한번도 없다. 아무리 비판이 거세도 기득권을 유지에는 여야가 한통속이기 때문이다.지난 4월 출범한 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는 “국회의원들이 180개가 넘는 엄청난 특혜를 누리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정치가 난장판이 됐다”고 말했다. “권모술수를 써서라도 국회에 입성하려는 사람이 많은 것도 특권 때문”이라며 특권폐지 운동에 국민적 참여를 호소한 바 있다.총선을 앞두고 특권 폐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높은 지금이야말로 특권 폐지의 호기다. 인요한발 특권축소 요구가 정치권에 과연 불을 지필 수 있을까 두고 볼 일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3-11-07

소나무 재선충 확산… 동해안 절경이 ‘민둥산’

동해안의 유명관광지인 포항시 남구 호미곶과 동해면에 자생하는 해송(海松)들이 집단 고사하고 있다고 한다. 이 일대 야산을 비롯해 포항지역 해안 절벽에서 아름다운 숲을 이루며 자라는 소나무 대부분이 재선충에 감염됐기 때문이다. 호미곶면 대동 1리 이장 이광수씨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재선충이 심했다고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올해는 멀쩡한 소나무가 없다. 마을 산들이 모두 민둥산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했다. 200년간 이 마을의 상징역할을 하며, 민간신앙의 대상이었던 갯바위(노적암)에 뿌리 내린 해송도 재선충으로 말라죽었다. 포항은 올해 전국에서 재선충 피해가 가장 큰 지역으로, 구룡포부터 호미곶까지 해안선을 따라 소나무 20만여 그루가 고사했다. 문제는 재선충병이 우리나라의 가장 크고 긴 산줄기인 백두대간으로 번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산림당국과 경북도, 각 시·군은 이를 차단하기 위해 영주·봉화 라인을 마지노선으로 해서 확산 방지에 총력을 쏟고 있지만, 백두대간 감염도 시간문제로 보인다. 산림청에 따르면 지난해 5월부터 올 3월까지 전국 소나무재선충병 방제대상목은 219만774본이었다. 이중 경북이 90만6천483본(41%)으로 가장 많았다.소나무 재선충병은 치료제가 없어 감염된 나무는 모두 말라죽는다. 이로인해 현재까지 소나무 재선충의 완전방제에 성공한 나라는 없다. 전염성이 강하고 치사율이 높아 ‘소나무 에이즈’로 불릴 정도로 무서운 병이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에 따라 매개충의 활동시기가 빨라지면서 감염지역도 빠른 속도로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소나무는 우리나라 산림의 23%를 차지하는 수종이다. 특히 바닷가 척박한 토양에 적응하면서 자생한 해송숲은 한번 훼손되면 복원이 쉽지 않다. 해송 없이 황폐화된 ‘민둥해안’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풍경이다. 소나무 집단 고사는 환경 문제를 비롯해 산림자원 측면에서도 국가적 손실이 큰 만큼, 산림당국과 각 지자체는 재선충 방제에 적극적으로 나서 피해확산을 막아야 한다.

2023-11-07

바로 보는, 청도 새마을운동발상지기념공원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4절까지 있는 새마을노래는 한때 거리에서 흔히 들을 수 있었던 노래였다.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가사를 만들었다고 하는 이 노래는 70년대를 풍미했던 노래 중 가장 유명한 곡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아침마다 마을에 울려 퍼졌고, 사람들은 마을 공동의 일을 위해 모였다. 마을을 스스로 정비하고 깨끗하게 가꾸는 데 일손을 보탰다. 새마을운동이 전국으로 시행되면서 노래도 더불어 더 많이 활용되었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은 이 단조로운 노래 그리고 새싹 무늬가 그려진 초록 모자와 기억을 공유한다.새마을운동은 1970년 4월 22일 박정희 대통령의 제안으로 농촌 마을 가꾸기 운동에서 시작되었다.1969년 8월 박정희는 수해복구사업을 돌아보다 청도의 신도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다른 마을에 비해 깨끗하게 정비되어있는 마을을 보고 크게 감동을 받았으며, 새마을가꾸기운동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듬해 10월부터 박정희의 제안하에 정부가 주체가 되어 전국의 농촌 마을을 중심으로 새마을가꾸기운동이 실시된다. 정부는 당시 쌍용시멘트의 과잉 재고를 농촌 마을에 나눠주며, 마을 재건을 독려했다. 마을 진입로를 확장하고, 하천에 작은 다리를 건설하고, 초가지붕을 슬레이트 지붕으로 개량하고, 공동 우물을 정비하며, 목욕탕이나 빨래터 등 공공장소의 건립에 활용되었다.대통령의 개인 관심에서 시작되었던 새마을운동 사업은 정부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농촌 마을의 호응도를 끌어내었다. 이에 정부는 각 마을의 성과에 따라 기초·자조·자립 마을 3단계로 나누고, 차별적 물자 지급을 하면서 마을끼리의 경쟁심을 자극했다. 물자가 배제되는 마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으나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며 차등 지급하였다. 1970년대는 물자가 풍족한 편은 아니었고, 마을마다 공동체를 유지하던 전통이 남아있었던 시기라 의외로 성과는 매우 좋았다. 뜻밖의 성과에 정부는 농촌에서 도시와 공장까지 운동을 확산시켰고 전국적으로 새마을운동이 시행되었다. 실제로 새마을운동은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한국 경제의 급성장에 일조한 면이 많다.그러나 도시의 산업화로 농촌과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도시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유신 정권에 대한 격한 목소리가 나오던 때에 박정희에게 필요했던 것은 ‘국가에 의해 통제되는 시스템’이었다.1973년 박정희는 “10월 유신이라고 하는 것은 곧 새마을운동이고, 새마을운동이라고 하는 것은 곧 10월 유신”이라 선언했으며, 초록 모자·노란 완장·새마을노래는 상징이 되어 전국적으로 추진되었다. 도시·공장·학교·마을 등 전부 새마을운동이란 이름 붙었으며, 공동체를 위한다는 명목하에 사람들의 노동력과 재산과 시간 등은 반강제로 동원되었다. 도로의 포장·보수, 다리의 건설, 마을 진입로 건설 등은 국가사업임에도 보상받기가 쉽지 않았고 마을 사람들의 노동력은 무료로 제공할 수밖에 없었다.초기의 새마을운동이 마을을 위한 자발적인 행동이었다면 1973년 이후의 새마을운동은 마을 주민으로서의 의사가 반영되지 못한 국가의 반강제적 사업이었다. 마을공동체가 자체적으로 유지하던 전통적인 공동체 생활은 국가가 주도할수록 점점 더 퇴색되어갔다. 1979년 박정희의 암살로 새마을운동은 내리막길을 걷는다.새마을운동 발상지로 자주 언급되는 청도 청도읍 신도마을에는 현재 새마을운동발상지기념관과 기념공원, 새마을테마파크가 마을 정경과 어우러져 공존하고 있다. 기념공원의 입구에 들어서면 과거 마을 주민들이 힘을 모아 세웠다는 신거역과 박정희 대통령의 전용 열차, 대통령 동상과 차표 동상이 보인다. 세월의 흐름을 머금은 빛바랜 열차와 물건들이 오랜 기억을 자극한다. 신거역 안에는 곰돌이가 차장으로 앉아있어 재미를 더한다. 작은 전시관으로 꾸며진 신도정미소나 교복체험관을 지나 기다란 번영의 길을 따라 걸으면 멀리 새마을운동발상지기념관이 있다. 이곳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마을이 변화된 모습과 당시의 책자나 사진, 현재 다른 나라로 수출되고 있는 새마을운동에 대한 정보들이 1·2층에 나눠 전시되어 있다. 신도리마을 안으로 한참을 걸어 들어가면 산 아래 새마을테마파크가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잘살아보세관·새마을학교·시대촌·놀이터·스탬프 투어·숙박시설 등 둘러볼 거리가 많아 흥미를 더한다.새마을운동은 농촌에 불어온 근대화 운동에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잘살아보고자 하는 자발적인 마음에서 시작되었으나 국가가 주도하면서 그 의미가 퇴색되고 전통적인 마을공동체 유지 체제마저도 흔들리는 결과를 가져왔다.새마을운동은 현재 경제발전의 일환으로 여러 나라에 수출되고 있다. 근대화에 성공한 결과적인 면뿐만 아니라 과도한 실적 경쟁과 국가에 의해 통제되는 시스템이었다는 부정적인 면도 간과하지 않으면 좋겠다. 우리의 과거이자 현재와 연결된 역사를 지닌 이곳을 걸으며, 새마을노래를 흥얼거려본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최정화 스토리텔러

2023-11-06

기억과 치유의 문을 열고 닫으며

죽음은 온전히 살아남은 자의 몫이다. 망자를 절차에 따라 떠나 보내고 남은 자리엔 ‘정리’와 ‘상실’의 과제가 남는다. 뜻하지 않은 죽음은 ‘만약(if)’이라는 후회와 회한의 절차를 반복한다. 그 반복적인 절차 속에서 상실은 옅어지고 삶에 대한 또 다른 에너지를 얻기도 한다. 그 무엇도 온전히 상실의 빈공간을 채우지는 못하겠지만 무뎌지고 잊혀지면서 상실의 아픔은 아물어간다.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스즈메의 문단속’은 바로 이러한 ‘정리’와 ‘상실’에 관한 영화다.‘너의 이름은’에서도 그렇지만 의미를 알 수 없는 꿈에서 시작된다. 반복되는 꿈, 그 속에서 미지의 궁금증은 증폭되어 간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꿈은 모두 과거의 어느 시점에 발생한 사건을 기점으로 한다. 꿈은 조금씩 조금씩 반복되며 진행된다.꿈은 죽음과 맞닿아 있고, 그 죽음을 있게 한 원인과 연결된다. 원인은 재난이고 그 재난 속에서 살아남은 자의 상실을 어떻게 극복하고 채워갈 것인가의 이야기가 전개된다.2020년 1월 일본에 있었다. 포항문화재단의 재난을 문화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해외교류 프로젝트의 담당자로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던 후쿠시마 이와키시를 방문했다.2017년 11월 15일 포항 흥해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인한 시민들의 트라우마를 문화적으로 극복하고자 꾸준히 노력하였고, 그 일환으로 일본에서 활동중인 단체와 교류를 추진하게 된다.10여 년의 세월이 지나고 있었지만 그날의 흔적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당시 지진해일로 인해 적지 않은 인명 피해를 입었던 이와키시는 여전히 피해 복구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원전 피해 지역에 가까워질수록 당시의 흔적은 짙게 남아 있었다. 그날의 상처는 여전히 진행중이었다. 하루 아침에 사랑하던 이들을 잃었고, 살던 집과 동네가 쓸려 내려가는 모습이 각자의 기억 속에 박혀 있었다. 동일본 대지진의 복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었다.전작인 ‘너의 이름은’과 ‘날씨의 아이’가 가상의 재난을 다루고 있는데 반해 ‘스즈메의 문단속’은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실제 사건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피하거나 외면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닌 심연의 깊숙한 곳에 도사리고 있는 기억을 직접적으로 끄집어 낸다. 그날의 기억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만약이라는 가정을 끊임없이 반복해 보지만 돌이킬 수 없다는 지점에서 택한 방법은 과거의 상처를 직시하는 것이다. 물리적 피해복구와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남은 치유는 그 속도를 달리한다. 2020년 후쿠시마 이와키시의 방문에서도 피해복구와 다르게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막연한 두려움과 긴장은 여전했었다.영화는 애도와 치유의 방법으로 실제 일어났던 재난을 끌어온다. 원인을 알 수 없지만 누군가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하지만 그것이 해답이 되지 않음을 깨닫는다. 묻고 감추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고 살핀다. 잊으려해도 잊혀지지 않던 그날의 기억은 온전히 되살아나 눈앞에 펼쳐진다. 외면한 기억을 뒤돌아 마주했을 때, 기억의 문을 활짝 열어 젖혔을 때 황량했던 내면에 순풍이 풀고 꽃이 피어난다. 이유없는 재난 앞에서 스즈메의 이유를 찾기 위한 문단속은 계속되지만 사라진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는다.영화는 장면 장면마다 재난을 경험했을 사람들의 트라우마를 직접적으로 건드리는 요소들을 배치해 두었다. ‘만약(if)’의 문을 열고 닫으며 초월적인 존재의 능력을 갈구하지만 이미 발생한 재난은 돌이킬 수 없다. 각인된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영화는 손쉽게 위로하지 않는다. 타인의 위로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날의 기억을 직시하고 인정했을 때, 그곳에서부터 치유가 시작된다고 말한다.직간접적으로 재난을 경험했을 모든 이들에게, 닫혔던 마음의 문을 열고 다시 닫음으로써 비로소 이후의 삶이 시작된다. 영화 속에서 이와키의 해변가에서 보았던 높은 방벽이 나왔을 때 울컥했던 마음과 함께 감정의 울림이 크게 여닫히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잊어서 치유되는 것이 아닌 기억해서 아물어가는 상처의 치료 과정을 보게 된다./김규형 (주)Engine42 대표

2023-11-06

여당의 주류세력 희생, 民心 움직일 수 있다

국민의힘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총선을 5개월여 앞두고 당 주류를 겨냥한 희생적 인적쇄신을 요구하면서 TK(대구경북) 정치권이 긴장하고 있다. 인 위원장이 불출마 또는 수도권 험지 출마 대상으로 지목한 당 지도부, 중진, 친윤(친윤석열)계 의원들이 TK지역에 다수 포함돼 있다. 정치권에서는 인적 쇄신에 해당하는 현역 의원이 30∼40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인 위원장의 혁신안이 어느정도 관철될지는 미지수지만, 이번 총선을 계기로 TK정치권이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TK정치권에서는 선수(選數)가 많다거나 지도부에 속했다는 이유만으로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반론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만약 TK지역에서 인 위원장의 권고를 수용하겠다는 현역의원이 나온다면, 그 여파는 영남권 전체로 번질 수 있다.당내에서는 혁신안을 수용하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일부 언론 보도에 의하면 김기현 대표는 지역구(울산 남을) 불출마로 가닥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TK지역에서는 당 주류측 의원들에 대한 수도권 출마 가능성을 놓고 뜨거운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만약 혁신위의 인적 쇄신 요구가 수용되면 TK지역은 절반 이상의 현역 물갈이가 이뤄지게 된다.내년 총선에서 TK지역에 무소속 돌풍이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당 지도부나 중진, 친윤계라는 이유로 공천에서 탈락할 경우, 해당자 중 상당수가 무소속 출마를 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국민의힘 인적쇄신 작업은 혁신위 말고도 당무감사위원회, 인재영입위원회에서도 현재 진행하고 있다.총선 때마다 어느 정당할 것 없이 현역의원에 대한 대대적인 물갈이는 필수적으로 단행한다. 역량이 떨어지는 의원을 교체하고 새로운 인재를 영입하는 것은 선거승리를 위한 주요전략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혁신위 권고안이 일정부분 현실화돼 민심을 감동시킨다면, 보수정당 총선승리의 결정적인 동력이 될 수 있다. 이제 대답은 국민의힘 당 지도부와 윤 대통령 최측근 의원들이 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2023-11-06

‘윤심’이 아니라 ‘민심’을 받들라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속담에 “죽어봐야 저승을 안다”고 했다. 정부·여당이 강서구청장 선거에 올인 했으나 참패하자 정신이 번쩍 든 모양이다. 이제야 윤 대통령은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 “나부터 반성하겠다”고 했고, 여당은 환골탈태하겠다면서 혁신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총선을 앞두고 저승이 어른거리니 겁이 나서 허둥대는 모습이 측은하다.필자는 이미 본 칼럼을 통해 여러 차례 정부·여당에 고언(苦言)을 했다. “제주 돌담이 대통령에게”(2022년 8월 9일), “권력이 아니라 국민을 보라”(2022년 9월 6일), “당심·윤심·민심”(2023년 1월 31일), “공정과 상식, 그 표리부동에 대하여”(2023년 2월 28일), “중도층의 표심이 두렵지 않은가”(2023년 10월 10일) 등이 대표적이다. 유사한 비판과 충고들이 다른 언론에서도 수없이 지적되어왔음은 물론이다.그럼에도 모른 채 하더니 총선이 다가오자 이제야 호들갑이다. 쇄신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혁신과 변화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해야 한다. 이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의 인식이다. 내년 총선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중간평가일 뿐만 아니라, 현재의 여당은 사실상 ‘용산의 출장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권력은 민심을 받들면 살고 거스르면 죽는다. 윤 대통령은 “민심이 곧 천심”이라고 했지만 말 뿐이었다. 오만·독선·불통으로 무너진 전 정권을 닮아가고 있다. 청와대를 떠나 용산으로 이전할 때의 초심은 어디로 갔는가? 소통이 막혔으니 왜 청와대를 나왔는지 모르겠다는 것이 민심이다. ‘59분 대통령’이라는 별명은 불통의 상징이다. 참모들에게 “소통을 강화하라”고 지시할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솔선수범해야 한다.“나부터 반성하겠다”는 대통령의 말이 ‘위기 모면용’이 아니길 바란다. ‘반성이 기만’이 되면 민심은 폭발한다. 보선 참패는 대통령이 자초했고, 총선의 승패도 대통령의 변화에 달려 있다. 정치초보가 오만해서 폭주하면 사고 친다.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민심은 부정평가가 긍정평가의 두 배를 넘나들고 있다. 대통령이 바뀌지 않으면 총선은 ‘백약(百藥)이 무효(無效)’다.여당의 쇄신 역시 시급하다. 용산만 쳐다보는 무력한 당이나 ‘혁신 시늉만 내는 혁신위원회’는 없는 게 낫다. 보선 참패의 책임으로 물러난 ‘윤핵관’ 사무총장을 20일 만에 다시 총선 핵심직책에 중용(重用)한 것이 혁신이란 말인가? 위장된 혁신은 역풍을 불러온다. 또한 정당민주주의 관점에서 볼 때 당내 비판은 ‘내부 총질’이 아니라 ‘충언(忠言)’이다. 총선 승패는 중도층이 결정한다는 점에서 중도 확장성이 있는 당내 비판세력을 존중해야 한다. 이들이 탈당 또는 신당을 창당할 경우 수도권 선거는 더욱 어려워질 뿐이다.대통령이 민심을 오독(誤讀)하거나, 당이 ‘윤심’만 살피면 ‘떠난 민심’이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공천에 ‘윤심’이 작용할 수는 있겠지만, ‘당락은 민심이 결정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국민을 이기는 권력은 없다.

2023-11-06

주목받는 삼성그룹의 신공항 SPC 참여

삼성그룹이 신공항 건설과 후적지 개발사업을 주도할 특수목적법인(SPC)에 참여할 지가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주 삼성글로벌리서치(옛 삼성경제연구소) 김완표 사장 등이 대구시를 방문해 홍준표 시장과 TK신공항 건설과 K-2 군공항 후적지 개발과 관련한 논의를 벌였다고 한다. 이 자리서 홍 시장은 “TK 신공항과 후적지 개발은 대한민국 중남부 신경제권 형성의 중심축이 될 중요한 사업으로 적극적인 참여”를 요청했고, 김 사장은 “TK 신공항 사업에 깊은 관심을 갖고 그룹차원에서 충실히 검토하겠다”고 대답한 것으로 전해졌다.신공항 사업과 관련해 삼성그룹의 주요 인사가 대구시를 방문한 것은 이례적인 동시에 매우 고무적이다. 신공항과 후적지 개발을 주도적으로 끌고가야 할 SPC 구성에 민간기업으로서 국내 최고 최대기업인 삼성이 참여한다면 사업의 성공률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현재 공공기관으로서 한국주택토지공사(LH)와 한국공항공사 등이 참여 의사를 밝힌만큼 삼성그룹의 참여에 따라서는 사업의 속도가 훨씬 빨라질 수 있다.또 삼성그룹이 참여 의사를 밝힌다면 투자자 모집에도 큰 힘이 실리고 대구시가 목표로 한 연내 SPC 구성도 수월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지역 최대규모 공공프로젝트인 신공항 건설과 후적지 개발사업은 특별법에 따라 진행함으로써 국가가 보증하는 사업이다. 신공항 건설에만 11조5천억원이 소요되는 등 천문학적 사업비가 투입될 사업이어서 대기업의 참여는 필수적이다. 삼성의 참여가 이뤄진다면 사업에 활기를 불어넣을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대구시가 삼일회계법인을 통해 이들 개발사업에 대한 사업성을 분석해 본 결과, 순현재가치(NPV)는 최대 2조5천억원, 내부수익률(IRR)은 최대 12.3%로 밝혀졌다. 대구시는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사업성이 충분한 것으로 나타났으니 기업들의 SPC 참여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대구가 기업의 모태인 삼성그룹이 참여한다면 금상첨화격이다.대구시는 삼성그룹의 대구시 방문이 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주길 바란다.

2023-11-06

‘희망 고문’ 된 공공기관 지방이전

홍석봉 대구지사장 수도권 공공기관의 2차 지역이전이 내년 4월 총선 이후로 연기됐다. 과열 경쟁과 사회적 공감대 미형성이 이유다. 수도권 공공기관의 2차 지역이전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국토부는 올 초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올 상반기 내 기본계획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2차 이전 대상은 300곳 이상이다. 전국의 광역 및 기초단체가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경제적 파급력이 크고 직원 수가 많은 우량 공공기관이 대상이다.돌발 변수가 생겼다. 혁신도시가 아닌 지역에서 “우리도 유치하겠다”고 뛰어들었다. 유치 과열이 불가피해졌다. 정부는 속도조절에 나섰다.우동기 지방시대위원장은 “총선 전에 바람을 타서 화약고를 건드리기보단 준비를 철저히 한 뒤 이전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 국토교통부와 조율했다”며 이전 연기를 공식화했다. 수도권 민심을 의식한 것이라는 지적이 일었다.상주시 등 전국 80여 자치단체장들은 지난 2일 비혁신·인구감소 도시 총궐기대회를 열었다. ‘혁신도시특별법 개정’ 촉구 결의를 했다. 지자체장들은 혁신도시 위주의 1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으로 비혁신도시는 균형발전 측면에서 미흡했기 때문에 공공기관 이전을 지방소멸과 인구 위기를 극복하는 정책적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정부와 국회에 촉구했다. 상주시는 제천시와 균형발전위원회를 방문, 비혁신도시로의 공공기관 이전 당위성이 담긴 공동성명서를 전달하기도 했다.이러다간 전국 226개 기초자치단체가 모두 공공기관을 우리 지역으로 이전해 달라고 요구할 판이다. 공공기관 배정에 목을 매고 있는 혁신도시 단체장과 주민에겐 ‘희망고문’이다. 저마다 당위성을 내세운다. 주무부서는 떡 갈라주듯 할 수도 없고 머리를 싸매야할 터이다. /홍석봉(대구지사장)

2023-11-06

‘마당개’를 아십니까

홍덕구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개를 마당에 묶어서 키우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대가 있었다. 그 시절의 개들은 도둑이 들거나 낯선 사람이 침입하는 것을 경고하는 ‘경비견’ 역할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허름한 잠자리와 짧은 목줄은 당연했고, 주위에는 제때 치워 주지 않은 똥오줌이 널려 있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당연히 산책은 기대조차 할 수 없었고, 복날 즈음해서 개장수에게 식용으로 팔려 가는 일도 흔했다.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된 오늘날에도 이런 처지에 놓인 개들이 적지 않다.1m 내외의 짧은 목줄로 마당에 묶여 생활하는 개를 ‘마당개’라고 한다. 공장에서 경비용으로 묶어서 기르는 개를 뜻하는 ‘공장개’라는 표현도 있다. 농어촌 지역이나 공장지대를 지나가다 보면 이런 마당개와 공장개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사람이 반가워 날뛰는 녀석, 경계심을 표출하며 사납게 짖어대는 녀석 등 반응도 제각각이다.2022년 조사에 따르면 도시 지역보다 농어촌 지역에서 마당개의 비율이 높게 나타난다.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상대적으로 미비한 탓이다. 보호자와 함께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즐기는 도시 지역의 개들과, 온종일 짧은 목줄에 묶여 지내는 마당개와 공장개들은 같은 개라고 하기엔 ‘팔자’ 차이가 너무 커 보인다. 인간이라면 어떨까? 어떤 사람이 짧은 줄에 묶여 행동반경을 제약당하고, 배변조차 줄에 묶인 채 그 자리에서 해야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심각한 학대이자 인간에 대한 모독이라고 할 것이다.보도에 따르면 지난 11월 2일, 경주시는 안강읍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24마리의 개를 구조했다. 오물과 쓰레기와 뒤엉킨 채 방치된 개들은 기생충과 피부병에 감염되어 있었다. 이처럼 적절한 환경과 능력을 갖추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많은 동물을 사육하는 사람을 ‘애니멀 호더(Animal hoarder)’라고 한다. 이 또한 심각한 동물 학대 행위이다.개정된 동물보호법은 ‘반려동물에게 상해를 입히거나 질병을 유발하는 행위’와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지만, 현행법으로 이러한 동물 학대 행위를 예방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상해나 질병, 죽음 같은 실제적 피해로 이어지는 경우에만 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안전하고 깨끗한 생활환경을 제공하고 다치거나 아플 때 반드시 치료해주는 등 동물을 기르는 사람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의무를 설정하고, 이를 위반하는 경우 법적제재가 가능하도록 동물보호법이 추가 개정되기를 바란다.법제도의 개선과 함께 동물권에 대한 의식도 바뀌어야 한다.페미니즘 철학자 도나 해러웨이는 ‘반려종 선언’에서 반려종이 성립하려면 두 개 이상의 서로 다른 종이 상호 영향을 주고받아야 한다고 썼다. 인간은 개를 길들여 반려동물로 삼았지만, 개 또한 휴머니티(인간성)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 반려동물은 정복과 지배, 사육의 대상이 아니라 또 다른 우리이기도 하다. 마당개에게서 보이는 풍경은 짧은 줄에 묶여 있는 동물이 아니라, 주체의 신화에 속박당한 우리 자신이다.

2023-11-06

사회 자정작용 시스템

강길수 수필가 10월 하순, 후덥지근하던 가을 날씨가 소슬해진다. 어제와 오늘은 습도가 20%대까지 낮아졌다. 그래선가. 보도의 벚나무 낙엽들이 절반은 부서졌다. 샛노랗거나 새빨간 벚나무 낙엽을 줍던 즐거움도 올핸 못 누릴까 보다.낮은 습도에 벚나무 낙엽이 쉬이 부서지듯, 자연물들은 서로 반응한다. 그들의 상호 반응이 내겐 자정작용(自淨作用)으로도 보인다. 발생하는 오염물들을 자연은 끝없이 자정작용으로 정화한다. 공기나 물 등 무생물들도 물리, 화학적 자정작용을 한다. 살펴보면, 자연은 자정작용이 점철된 시스템이다.인간사회는 어떨까. 당연히 자정작용시스템을 갖는다. 인간이 만든 법과 제도는 결국 자정작용시스템이다. 인간사회의 정치제도 중 자정작용의 결정체는 무얼까. 바로 ‘자유민주주의’라 본다. 지구촌 대부분 나라가 사실상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채택한 것을 봐도 그렇다. 자유민주주의는 사전이 말하듯 ‘자유주의에 입각한 민주주의’다. 자유가 없는 민주주의는 허울이나 말장난에 불과하다.우리나라가 해방 이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이룬 것은 행운이다. 75년의 짧은 기간에 자유민주주의 선진국사회를 국민과 지도자가 해냈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의 자정작용시스템은 무엇일까. 언론, 관습, 문화, 윤리, 도덕, 나아가 입법, 사법, 행정 등 사회 제 요소일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하고 신성한 자정작용시스템은 바로 공명정대한 선거다. 주권이 국민에 있기 때문이다.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떤가. 2020년 4·15총선 직후 부정선거 소송이 126건이나 제기됐다. 이후 많은 분이 부정선거퇴치 운동을 한다. 저작가 G 박사는 2017년 대선부터 올 강서 보궐선거까지 8차례에 걸쳐, 통계학 대수법칙을 위반하는 부정선거를 선관위가 주도했다고 주장한다. 또 H 교수는 올 강서 보궐선거 사전투표 결과가 나올 확률은 무려 5.7경분의 1이라 한다. 오랫동안 품질 수치를 다뤘던 나도 사전투표 결과를 보는 순간, 조작된 수치임을 직감했다.숫자는 진실이며, 증거다. 10월 강서 보궐선거의 득표율은 당일 투표 여당 47.12%, 1야당 48.46%, 차이 1.34%다. 반면, 사전투표는 여당 30.61%. 1야당 65.68%, 차이 35.07%다. 투표자 기준 사전투표율은 46.51%다. 따라서 비슷한 두 모집단의 투표결과는 거의 같아야 한다. 상식적, 통계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결과다.앞에서 보았듯 우리나라는 신성한 사회 자정작용시스템인 선거가 거악 오염시스템으로 전락해버렸다. 부정선거 획책 세력이 국민을 깔보고, 사회 체제 전복을 암암리에 도모한다는 의심이 짙다. 전쟁은 외부침략이고 부정선거는 내부침략이다.대통령과 정부, 정치권, 사법부, 언론은 이제부터라도 부정선거를 발본색원하여 나라의 자정작용시스템을 회복시켜내야 한다. 혁신, 변화 다 좋지만 선관위 발표 거짓 선거 숫자에 바보처럼 승복하여 어릿광대놀음만 해서는 안 된다. 여당 혁신위가 해야 할 최우선 과제는, 부정선거를 막는 일이다. 이는 나라를 지키려는 국민의 뜻이다. 나라의 자유민주주의 체제 존속 여부가 걸린 문제니까.

2023-11-06

서울공화국은 곤란하다

김진국 고문 경기도 김포시의 서울 편입 문제로 정가가 어수선하다. 경기도 분도(分道) 시민공청회에서 이런 제안이 처음 나온 것은 이해할 만하다.김포시민이야 서울 편입을 원할 수 있다. 그걸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당론으로 받아들였다. 김 대표는 지난달 30일 김포골드라인 교통 대책 시민 간담회에서 김포시민이 의견을 모은다면 법률을 개정하겠다고 약속했다.김 대표는 “생활권·통학권, 직장과 주거지 간 통근 등을 봐서 서울시와 같은 생활권이라면 행정 편의가 아니라 주민 편의를 위한 것”이라는 논리다. 그는“원칙적으로 서울과 출퇴근이 공유되는 곳은 서울시에 편입하는 것을 당론으로 정하고 추진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니 김포뿐 아니라 고양·부천·광명·구리·하남 등 서울 인근 도시들이 모두 들썩인다.김 대표 논리대로라면 수도권 전체가 서울이다. 대구·부산·광주 등 전국에서 중환자는 서울 대형병원으로 간다. 콘크리트 아파트 한 채에 30억~40억 원이라는 말을 들으면 속이 편치 않다. ‘서울공화국’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그렇다고 전국을 서울로 집어넣을 수는 없다. 집중도를 낮춰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을 마련하는 게 정부가 할 일이다.‘경기(京畿)’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고려 현종(1018) 때다. 고려 초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왕도(王都) 주위 오백 리에 ‘적현(赤縣·京縣)’과 ‘기현(畿縣)’을 설치했는데, 이를 통합하면서 경기라고 부른 것이다.경기도는 원래 서울과 한덩어리다. 조선 시대 이후 서울 중심이 더 강화됐다. 사람이 나면 서울로 보낸다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국토교통부 균형발전현황판을 보면 서울·인천·경기, 수도권 인구가 전체 인구의 50.6%다. 1960년 20.8% 수준이었던 수도권 인구 비중이 80년 35.5%, 90년 42.8%으로 치솟더니 2019년 말 드디어 절반을 넘어섰다. 면적은 서울이 전체 국토의 0.6%, 인천 1.1%, 경기 10.6%로, 합쳐서 11.8%, 10분에 1에 불과하다.그런데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은 서울이 4만9천680원으로 대구(2만 5천543원)의 두 배에 이른다. 수도권은 4만703원, 비수도권은 3만9천212원이다. 청년 실업률도 수도권이 4.67%인데, 비수도권은 6.36%다. 그러니 서울로 몰릴 수밖에 없다. 여기에 뭘 더 가져다 붙이겠다는 건가.김포의 서울 편입 정책은 선거용이라는 정황이 분명하다.내년 4월 총선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절체절명의 고비다. 레임덕이냐, 힘 있는 임기 시작이냐를 가르는 선거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를 통해 수도권 민심을 확인했다. 그대로라면 수도권에서 지난 총선 결과인 103 대 16보다 더 나을 수 없다.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 안간힘을 쓰려 할 것이다. 그렇다고 국가 대계를 좌우할 문제를 선거용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그린벨트를 설정하고, 수도 이전을 구상하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면 아무리 다급해도 그런 꼼수를 부렸을까.노무현 전 대통령은 세종시 이전 공약으로 선거 때 ‘재미 좀 봤다’라고 말했다.좋은 구상이라도 선거에 연결하면 왜곡되기 마련이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도 지역 특성과 전체 연결을 고려하지 않은 나누어 먹기가 되면서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의 정치적 거래, 그 이후 선거 때마다 이용되면서 표류하고 있는 새만금은 전형적인 득표 미끼가 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코로나 지원금도 선거 전 현금 살포에 이용됐다.선거를 계기로 기발한 정책들이 발굴된다.평소 관료 조직의 경직성을 뚫기 힘든 과감한 정책도 선거를 계기로 실현되는 일도 있다. 미국의 뉴딜정책도 선거를 통해 나왔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국가 미래에 대한 거대한 디자인에 맞춰져야 한다. 당장 기존의 지역 발전 구상은 어떻게 할 건가. 여야를 막론하고 비전은 없고, 잔꾀만 느는 것 같아 걱정이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11-05

만원

독거 할머니, 할아버지 스무 분께 생일상을 차려 주기로 한 날이다. 복지관에 들어서니 10시였다. 12시까지 오시면 된다고 했는데 어르신들이 벌써 와 계신다. 어르신들께 따뜻한 커피를 한 잔씩 드렸다.“아이구야, 고맙네. 고마워.”흔하고 흔한 게 커피인 것을. 커피 한 잔에 어르신들은 마음을 다 내놓으신다. 할머니들은 나의 손을 붙잡고 고맙다며 연신 인사를 한다. 배가 고파서 일찍 와 계신 것이 아니라 마음이 고파서 일찍 와 계신다는 것을 나는 어르신들의 한마디에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무엇엔가 홀린 듯, 내 부모를 대할 때처럼 온기를 가득 담은 시선을 보내 주었다. 12시가 되기도 전에 어르신들은 모두 도착했다. 음식이 아무리 맛있어도 혼자 먹는 것은 맛이 없다고 하신 어느 어르신의 말씀이 가슴이 찡했다.밥을 먹다가, 나는 빨간 스웨터를 입은 할머니 한 분께 시선이 멈췄다. 할머니는 미역국을 드시다 말고 미역 줄기처럼 긴 눈물을 흘리셨다. 미역귀 같이 갈라진 손으로 눈물을 훔쳤으나, 어느 누구도, 아무도, 말이 없었다. 말은 없었지만, 우리는 모두 그 침묵에 공감하고 있었다. 할머니 곁으로 조용히 다가갔다. 그리고 두텁고 거친 손마디를 꾹, 잡았다. 할머니는 무겁게 입을 여셨다.“내, 시집와서 3년 되던 해, 영감 죽고 50년 만에 처음 받아보는 생일상….”시집오던 첫 해에 남편이 미역국을 끓여 줬는데 미역국을 보니 영감 생각이 너무 나서 넘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늙으니 자식도 소용없다 하시며 영감 보고 싶어서 빨리 영감 곁으로 가고 싶다며 눈물을 훔치신다.“할머니 제가 할머니 영감 해 드릴게요”“진짜가? 진짜가?”할머니는 못 미더운 듯 자꾸 확인을 하셨다. 할 일이 많았지만 할머니의 말동무가 되어 주기로 했다. 할머니의 살아온 안타까운 이야기부터 돌아가신 할아버지 이야기, 한 번도 찾아 주지 않는 자식들 이야기는 몇 번씩 반복되었다. 그 많은 이야기 중에 내 가슴을 울리는 이야기 하나가 있다.“새댁아, 나는 세상에서 나무가 최고 부럽대이.” 할머니는 뜬금없이 나무가 부럽다고 하신다. 출세한 자식도 아니고, 등 긁어줄 영감도 아니고 그저 나무가 되고 싶다고 하신다. “봐래이, 나무는 봄에 꽃 핀다고 사람들이 보러 오제, 여름에는 덥다고 나무 밑에 모이제, 가을에는 늙어도 단풍 본다고 너도나도 찾아 주지 않나?”할머니가 왜 나무가 제일 부럽다고 하는지 알고 나니 나는 스스로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나도 바쁜 일을 핑계 대며 부모님을 찾은 지 오래다. 마음과 몸이 따로 놀고 있으니, 나 또한 빨간 스웨터 할머니 자식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내 얼굴은 할머니의 스웨터에 반사된 듯 붉어지고 있었다. 김경아 작가 “제가 이제 할머니 보러 갈 테니 저의 나무가 되어 주세요. 저는 사시사철 갈게요.”라고 했더니 할머니는 까르르 웃으셨다. 행사가 끝나고 짐을 챙겨 나오는데 빨간 스웨터 할머니가 갑자기 다가와 내 손을 꼭 잡더니 무언가를 건네주고는 부랴부랴 도망치듯 가버렸다. 아무리 불러도 영감님을 만나신 듯 뒤도 보지 않고 달려가셨다. 꼬깃꼬깃 구겨진 만 원짜리 하나가 내 손바닥의 지문을 물고 있었다.‘할머니, 할머니’ 혼자서 열 번도 더 불러보았다. 눈물이 났다. 어쩌면 전 재산 일지도 모르는 만 원에 할머니의 지난 세월이 다 들어있었다. 나는 가로수의 은행잎에 시선을 멈추었다. 어디를 보며 여기까지 왔을까. 앞으로 내가 바라보아야 할 곳이 어디일까. 무관심의 세상에 나도 일조를 하고 있었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누가 죽어 나가는지. ‘나 좀 봐 달라’는 가련한 소리를 어쩌면 우리는 돈으로, 옷으로, 음식으로 잠재우거나 아예 무시하지 않았던가. 전 재산일지도 모르는 돈을 쉬이 내게 주었던 할머니의 마음이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내 마음에 오버랩 되었다. 내가 살아오면서 이렇게 큰 재산을 받은 적이 있었던가.

2023-11-05

안동의 전통문화, 바이오·관광 황금알 낳다

권기창 안동시장 안동의 전통문화가 바이오·관광 산업으로 변신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일궈내고 있다.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은 유교문화의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한 추로지향의 도시로 일컬어지며 미래 천년을 선도하는 인문 정신을 널리 공유하는 곳이다. 전국 최다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독립운동의 성지’이자 서울과 경주 다음으로 문화재를 많이 보유한 고장이다. 서애 류성룡, 석주 이상룡, 이육사 등 시대를 막론한 구국의 정신이 이어지고 퇴계 이황, 학봉 김성일 등 유학을 근본으로 한 인문 가치가 오롯하다.800년 역사의 한국 전통마을 하회마을이 품어 온 하회별신굿탈놀이는 지난 20년 동안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이라는 국제적 축제의 향연을 만들어 내며 지역경제 활성화의 효과까지 끌어내고 있다. 또한, 하회선유줄불놀이는 올해 드라마 악귀에 나오면서 역대 최대 규모의 관광객 발길을 이끌었다. 또한, 천년을 이어온 차전놀이와 놋다리밟기는 올해 처음으로 ‘차전장군 노국공주 축제’로 개최되며 국내외 관광객의 큰 환호를 얻었다.비단,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하회마을과 병산서원 봉정사 도산서원뿐만 아니라 안동의 살아 숨쉬는 전통문화가 소위 ‘힙’한 관심을 받고 있다. 종가 며느리의 손으로 이어져 내려온 전통주가 새로운 소비 트렌드를 형성하며 백화점 등 고급 식당 등으로 납품되고, 특히 안동소주는 스카치위스키에 버금가는 세계적 명주의 비전을 그리며 미국, 일본 등 새로운 수출 판로를 열어가고 있다. 조선시대 선비가 쓴 백여 가지가 넘는 음식 조리서 ‘수운잡방’은 영국, 프랑스 등으로 소개되며 한국의 전통을 알리는 한편, 웹툰, 영화 등 새로운 콘텐츠로 재탄생되며 이목을 끌고 있다.퇴계의 고향 도산에는 안동국제컨벤션센터가 세워져 국제회의·포럼 등이 열리며 서양의 다보스포럼의 위상을 지향하는 인문정신의 중심지로 널리 자리매김해가고 있다. 또한, 퇴계 이황의 인문사상과 철학이 녹아든 마지막 귀향길을 따라 지난 9월 전국 백패커 500명이 참여한 ‘제1회 고아웃 슈퍼하이킹’이 개최돼 문화유산과 천혜의 자연 속에서 힐링할 수 있는 ‘한국의 산티아고 순례길’로 불리며 전국적인 명성을 쌓았다.안동은 천년 역사의 대마 주산지이기도 하다. ‘100번의 손길이 가야 안동포가 만들어진다’는 옛말처럼 안동사람들은 천여 년의 역사 동안 대마를 재배하고, 삼을 짜 베로 만들어 내는 ‘길쌈’의 명맥을 이어왔다. 여기에 2020년 8월 지정 경북 산업용 헴프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됐다. 헴프에 있는 CBD, 즉 칸나비디올이라는 성분을 추출해 연구, 개발할 수 있는 길이 안동에서 열리며 대한민국 의료산업의 새로운 비전을 창출해내고 있다. 현재 총괄 주관기관인 경북바이오산업연구원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30개의 국내 기업과 4개 기관이 헴프규제자유특구 실증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현대에 들어서도 다양한 역사문화가 신산업 콘텐츠로 이름을 알려가고 있다. 1976년 안동댐 수몰로 고향(예안)을 잃은 도산면 서부리에는 마을주민과 지역작가가 협업해 예끼마을을 만들어 관광 핫 플레이스로 거듭나고 있다. 또한, 영해·영덕 지역에서 잡은 고등어에 소금을 뿌린 뒤 등짐과 우마차에 실려 250리를 이동해 안동에 도착해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안동간고등어가 됐다. 또한, 안동 출신 권정생 동화작가의 유작인 ‘엄마 까투리’는 국내를 넘어 세계로 수출되는 인기 애니메이션이 됐다.안동은 인간 생명과 존엄을 중시해온 인문 본향의 전통을 마중물로 글로벌 바이오생명 산업의 최적지로 이목을 끌고 있다. 특히, 백신·헴프 등 바이오 산업 기술개발부터 제품생산까지 원스톱전주기 지원 시스템을 구축하며 백신 생태계 클러스터를 완성했다. 기회발전특구, 글로벌혁신특구, 바이오 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등에 지속 도전하며 글로벌 바이오 허브로 도약해나가고 있다. 안동인의 숨결이 담긴 전통문화유산의 잠재력이 문화관광을 넘어 경제산업 분야에까지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며 지역발전의 탄탄한 주춧돌이 되고 있다.글로벌 한류 열풍 속에 한국 전통의 매력으로 국내외 관광객을 이끌고, 백신·헴프 등 바이오 클러스터 집적화로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중심의 바이오 도시로 도약하겠다.

2023-11-05

더이상 늦추어선 안 된다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OECD 보건통계를 근거로 볼 때, 한국 임상 의사 수는 인구 1천명당 2.6명으로 OECD 국가 중에서 멕시코에 이어서 두 번째로 적다고 한다. OECD 국가 평균 임상 의사 수는 3.7명이라고 한다.인구 1천명당 임상 의사가 많은 국가는 오스트리아(5.4명)와 노르웨이(5.2명)이고, 임상 의사가 적은 국가는 한국(2.6명)과 일본(2.6명, 2020년), 멕시코(2.5명)라고 한다.한국의 이러한 의사 부족과 함께 과학자 양성은 더 심각한 상황이다. 정부가 18년간 묶여있던 의대 정원을 확대하기로 하면서 과기 특성화 대학의 의전원 설립 가능성은 이전보다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의대가 증원되면 당연히 포스텍, 카이스트가 ‘의사 과학자 양성’을 위해 추진해 온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 설립도 승인되어야 한다.의사과학자는 의사 면허를 가진 과학자다. 진료보다는 임상에서 나타난 여러 문제를 연구하고, 이러한 연구 성과가 환자 치료나 의약품, 의료기기 개발에 활용될 수 있도록 돕는다. 줄기세포 치료제, 인공장기, 유전자검사, 면역항암제 등 바이오산업과 의료 분야의 최신 연구와 기술 개발을 맡고 있어 국가경쟁력을 끌어올릴 핵심 인력이 의사 과학자이다.최근 25년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37%가 의사과학자이고, 세계적인 제약회사의 대표과학책임자 70%도 의사과학자인 것으로 알려졌다.미국 의과대학의 경우 한해 졸업생 4만5천명 중 3.7%가량이 의사과학자의 길을 걷는다. 매년 1천700명가량의 의사과학자가 배출된다.미국은 연구중심 의대를 별도로 운영한다. 이런 의대들은 공과대와 협업하거나 아예 공과대가 의대를 설치해서 신약개발이나 바이오산업을 주도하고 있다고 한다.이에 비해 한국은 의대 졸업생 중 의사과학자가 되는 이들이 1% 미만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해 모집정원이 3천58명이므로 30명에 불과하다는 얘기다.이는 미국, 유럽 등 선진국과 우리나라의 바이오산업, 첨단의학 기술의 격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그는 “의사과학자를 키우려면 의과대학 교육에 공학을 집어넣은 트랙을 만들어야 하는데, 기존 의대를 바꾸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과기의전원을 설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협의 반대 논리는 이렇다. 의사과학자 가운데 일부가 임상의로 이탈할 가능성이 있고, 이들 대학의 경우 부속병원이 없어 임상과 연구의 긴밀한 연계가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의협은 의사이건 의과학자의 절실한 증원과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현재 의사수를 묶어놓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다. 의사의 희소성에 의한 의사의 높은 봉급을 즐기려는 게 의협의 목적처럼 보인다.여기서 의대 광풍의 사회문제도 한번 짚어보자. 의대를 가장 많이 보내는 고교가 서울대라는 농담도 있다.요즘 이공계 대학의 저학년에서 휴학하고 의대 진학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코로나로 학교를 못가고 비대면 수업을 하는 경우가 늘면서 이러한 현상은 가중되고 있다고 한다. 이공계 학생들은 친구들의 의대 입시 공부로 친구 만나기도 꺼린다는 소문이다.의대에 최상위권 학생이 쏠리는 현상은 받아들인다 해도 그러한 배경에는 안정된 수입에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전문의 자격증을 가지고 안정된 수입이 보장되는 의대 내의 세부 전공에 지망생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환자의 목숨을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보다는 수입이 보장되는 전공으로 몰리는 것은 장기적 의학발전 관점에서 큰 걱정이다. ‘수만 가지 의약품 중 한국이 개발한 건 하나도 없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의대 약대가 함께 관련된 문제이겠지만 한국의 의사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신약개발 같은 분야로 진출하는 사례가 많아져야 한다고 본다.포스텍, 카이스트 중심으로 의과학자 양성 방안으로 공과대가 주도하는 연구중심 의대 신설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의미가 있어 보이는 이유이다.의대 열풍은 그 열풍이 단순히 개인의 수입과 영달이 모티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생명을 구한다는 사명감이 바탕이 된다면 의과학의 연구에 좀 더 많은 비중을 두어야 한다. 또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가 도입돼야 할 것이다. 새로운 신약은 엄청난 숫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의대 열풍’은 그 자체가 이공계의 다른 학문에 위협이 된다. 그러나 의과학 발전이 병행된다면 그러한 위협은 상쇄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한다.언제까지 의협은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싸움에 몰입할 것인가? 의사 부족으로 병으로 고생하고 숨을 거두는 환자들, 그리고 의과학자 부족으로 의과학 후진국으로 신약 하나 개발 못하는 나라로 창피를 당하는 이런 상황에서도 밥그릇 지키기 위한 의사증원 반대를 계속 할 것인가? 의대 광풍을 즐기는 게 그렇게 기쁜 일인가?냉철하게 생각해야 한다. 더 이상 늦추어서는 안 된다.

2023-11-05

누구나 마음처방전이 필요하다

사공정규 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많은 사람은 정신질환이 나와 무관하다고 생각하고 싶어 한다. 또 정신질환은 드문 병이고 쉽게 발생하지 않는 병으로 생각한다.그런데 ‘2016년도 정신질환 실태 역학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18세 이상 성인의 주요 17개 정신질환에 대한 평생 유병률은 25.4%로 분석됐다.평생 유병률은 평생 한 번 이상 정신질환에 걸리는 사람의 비율을 의미하는데, 25.4%라는 건 4명 중 1명이 주요 17개 정신질환을 평생에 한 번 이상 경험한다는 의미이다. 그만큼 정신질환은 흔한 병이라는 말이다.그러나 실제 정신질환의 평생 유병률은 이것보다 훨씬 높다.왜냐하면, 우리가 현재 주로 사용하고 있는 정신질환의 진단 기준인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 5판’(DSM-5)에 의하면 300여 개의 정신질환이 있는데, ‘2016년도 정신질환 실태 역학조사’는 조현병 및 관련 장애, 양극성장애(조울증), 주요 우울장애, 공황장애, 범 불안장애, 외상후스트레스장애, 강박장애 등 주요 17개 질환만 조사했기 때문이다.신체 질환은 나와 무관할까요?우리가 신체를 가지고 살아가는 한, 신체의 문제가 없을 수 없다.인간이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한, 정신의 문제 즉 마음의 문제가 없을 수 없다. 우리는 누구나 생로병사를 겪게 된다.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이를 피할 수는 없다.신체든 정신이든 모두 내가 돌봐야 할 소중한 나이기에 예방과 치료, 재활을 피하지 말고 정성을 다해야 한다.디지털 시대가 현대인에게 신생활 문화를 선물했지만, 더불어 건강의 적인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고 있다.스트레스는 요즈음 현대 의학에서 가장 큰 화두 중 하나이다.스트레스를 잘 관리하지 못하고 방치하면, 불면증, 불안증, 우울증 온갖 정신적 질환뿐만 아니라, 고혈압, 심장병, 당뇨병, 심지어 암 등 온갖 신체적 질환이 발생한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다.필자가 2006∼2007년 미국 하버드의대 메사추세츠 종합병원(Massachusetts General Hospital, MGH) 우울증 임상연구프로그램(Depression Clinical Research Program, DCRP) 연구원으로 있을 때, 심신의학의 대가 하버드 의과대학의 교수인 허버트 벤슨 박사의 프로그램에 연수한 바 있다.허버트 벤슨 박사는 병원을 찾는 환자의 25%만이 약물치료, 수술 등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고 나머지 75%는 심신의학을 통해 심신관리를 잘해 자가 치유력을 높이면 나을 수 있는 환자로 분류했다.심지어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25%의 환자조차도 심신의학을 통해 심신관리를 잘해 자가 치유력을 높이면 더 큰 의학적 치료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강조했다.신체적인 질환이든 정신적인 질환이든, 병에 걸리면 그에 합당한 치료적 도움을 받아야 한다.그러나 그 어떤 치료도 신체건강과 정신건강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병에 걸리면 치료가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치유여야 한다.그렇다면, 치유는 무엇일까요?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치료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치료는 의사가 병을 고치려고 하는 행위를 말하고 치유는 자기 스스로 병의 근본적인 원인을 알고 병의 원인을 낫게 하는 활동을 말한다.치료는 질병을 가진 환자가 대상이고 전문가에게 위임될 수 있으며 치료받는 특정 기간의 개념이다. 반면 치유는 우리 모두가 대상이고 위임될 수 없으며, 자신이 일생 지속하는 평생 과정의 개념이다.신체가 건강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심신의학에서 말하는 치유 처방, 운동도 하고 좋은 식습관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운동 처방전과 식이 처방전은 소위 생활습관병인 당뇨병과 고혈압 환자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운동 처방과 식이 처방을 받고 평생 실천하는 것이 치유이다.정신이 건강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심신의학에서 말하는 치유 처방, 스트레스 관리 즉 마음 관리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마음처방전은 정신질환자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마음 처방전을 받고 평생 실천하는 것이 치유이다.우리는 살면서 마음의 상처를 받지만, 마음의 상처를 마주하는 방법을 제대로 배워 본 적이 없다.그런 우리에게 마음처방전은 건강을 위한 치유를 넘어 인생의 지혜이다.

2023-11-05

지방 균형 발전 외치더니 서울을 확대한다고요?

유영희 작가 지난 10월 말,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김포를 서울시에 편입하는 것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구리, 하남 등 서울과 인접한 다른 도시도 서울시 편입을 요구하자, 주민 합의를 전제로 서울에 편입하는 것도 적극 검토하겠다고 하면서 메가시티가 세계적 트렌드라며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경기도를 경기남도 경기북도로 나누는 과정에서 불거진 이 논의에 김포시장은 오래전부터 준비해왔다고 하지만, 주민 설문 조사 보고서 한 장 없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어 그 배경에 의혹이 쏠리고 있다.갑작스러운 이 소식에 국민들 모두 총선용이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고, 도시공학자 등 전문가들은 그 나름대로 도쿄나 뉴욕의 메가시티화는 행정구역을 편입시키는 방식이 아니라면서 김포시의 서울 편입에 대해 부정적인 상태다.양천구, 강서구의 서울 편입 선례 역시 군색한 변명이다. 김포시는 인구 50만 명이 대도시인 데다 서울과 동심원을 그리는 상태도 아니고 마치 열쇠 모양처럼 길죽한 형태라서 도시 이용 효율성마저 엄청나게 떨어진다. 어떻게 보아도 서울시 인구나 면적이 세계의 다른 나라보다 작지 않은 상황에 서울을 더 늘려야 한다는 주장의 정당성은 찾기가 어렵다.김포시의 서울 편입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서울시 편중 심화를 가속화한다는 점이다. 메가시티와 서울의 확장은 개념이 다르다. 메가시티 구상이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하려면, 전국적으로 메가시티를 어디에 어떻게 몇 개를 건설할 것인지 큰 단위에서 행정구역 개편 논의와 맞물려서 이루어져야 한다. 게다가 인접 도시까지 주민만 합의하면 서울 편입을 적극 고려하겠다니, 이것이 책임 있는 여당에서 일하는 방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서툴고 위험하다.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은 김포시의 서울 편입 발표가 있은 지 며칠이 안 되어 나온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과 모순되기 때문이다. 11월 1일부터 3일간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지방시대 엑스포’ 행사가 있었다. 이 행사는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시작되었는데, 이 행사에서 있었던 ‘제1회 지방자치 및 균형발전의 날’ 기념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중앙정부는 쥐고 있는 권한을 지역으로 이전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원래 10월 29일 지방자치의 날은 2012년에 정했던 것인데, ‘지방자치 및 균형발전의 날’로 올해 이름을 바꾸었기 때문에 제1회가 된 것이다. 이것만 보면 정부가 지방 균형 발전의 의지가 꽤 있는 것처럼 보인다.그러나 이번 서울을 메가시티로 추진하겠다는 발표를 보면서 과연 이런 명칭 변경과 엑스포 행사가 진정성도 없고 그저 형식적으로 행사만 치른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국방보다 경제보다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는 공자의 말도 있듯이, 신뢰는 정치의 근본이다. 당리당략으로 졸속 정책을 발표하는 방식은 구시대적 발상일 뿐 아니라 성공하기도 어렵다.장기적인 국토 균형 발전 계획을 세워서 지방의 인구 소멸도 막고 국민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주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2023-11-05

성공을 위한 꿈, 이미지트레이닝

장광일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대한민국이 배출한 불세출의 공격수 손흥민 선수에 관하여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2022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은 물론 올해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고 있는 토트넘의 주장 손흥민! 이번 시즌 초반 8골을 넣으며 EPL 득점 순위 2위에 올랐고, 9월은 통산 4번째 이달의 선수상을 받았다. 그는 지구촌 전체의 슈퍼스타이자 ‘월드 클래스’이다. 토트넘 감독 포스테코글루는 “토트넘의 손흥민 주장 선임은 옳은 선택이다. 그는 뛰어난 리더가 될 모든 자질을 갖췄다는 사실에 의심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요즘은 손흥민의 리더십이 뜨고 있다. 그의 리더십에 대해서 Chat-GPT에 물어 요약해 보니 공격적인 스타일과 활짝 웃는 모습에서 동료들의 주목을 받고, 팀의 성공을 위해 개인적인 명예나 성과보다는 팀워크와 협력을 중요시하며, 항상 최선을 다하고, 소임을 신중하게 수행하며, 경쾌하고 긍정적으로 팀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어떤 상황에서도 동료들을 격려하고 배려한다는 것이다. 이는 기업의 리더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기도 하다.또한, 그의 축구의 장점을 물어보니 첫째, 빠른 속력과 뛰어난 기술이다. 그의 스피드와 기술은 상대방을 혼란에 빠뜨리고 수비선을 찢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공격적인 성향을 가지고, 골을 넣고 득점 기회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전진한다는 것이다. 셋째, 양발을 자유롭게 사용하여 공을 콘트롤하고, 슛을 날릴 수 있는데 이는 양발을 활용하여 공격력과 전술적 다양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기업의 기본활동, 꾸준함, 전략과 전술 또한 기업 성장에 핵심요소이기도 하다.다른 관점에서 그의 성공의 한 축으로 이미지트레이닝을 말하고 싶다. 그가 가장 존경하는 TOP3 인물로 호날두, 박지성, 메시를 들었고, 항상 그들의 축구 영상을 보면서 따라 하고, 배웠다는 것이다. 그들처럼 돼야겠다는 성공의 꿈은 혹독한 부친의 축구 훈련을 견디어 냈으리라 판단한다.이미지트레이닝(Image Training)은 올바른 기술 따위의 습득을 위하여 머릿속에 그 운동이나 동작을 그려 보는 연습법이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팔이나 손가락을 움직이지 않고 마음속으로만 근육을 강하게 수축하는 상상 이미지트레이닝 훈련만으로도 실제 근육이 15%나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명한 선수들은 휴식시간에도 이미지트레이닝을 통해 연습한다고 한다.생각의 차이가 얼마나 중요한지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베트남 전쟁 포로로 무려 7년간 독방에 수감되었던 미국의 조지 홀 대위는 그곳 독방에서 매일 머릿속으로 골프 코스를 떠올리며 한 라운드씩 상상으로 골프를 하였다고 한다. 7년의 세월이 흘러 귀환 후 첫 라운드에서 그의 골프 실력은 완벽에 가까웠다는 것이다.성공을 상상하면서 동시에 실제 상황에 가깝게 계획된 ‘연습’을 진행하는 것은 매우 좋은 결과를 낳는다. 이러한 이미지트레이닝 방법들을 적절히 조합하고, 개인의 상황에 목표를 맞게 적용한다면 성공을 위한 기반을 확립할 수 있다. 주장 완장을 찬 손흥민이 토트넘을 이끌고 커리어 최초 리그 우승을 기록하길 기대해 본다.

2023-11-05

안동 가는 길

김규종 경북대 교수 지난 10월 28일 노문과 졸업생 초대로 포항에서 하루 묵고 왔다. 포항에 간 김에 구룡포에 있는 일본인 거리와 구룡포항 그리고 횟집에 들렀다. 자연산 횟감과 신선한 안주를 푸짐하게 내오는 인심 좋은 주인을 졸업생이 잘 알고 있었다. 이래저래 눈도 마음도 육신도 풍요롭고 넉넉한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귀로(歸路)에 오른 것이다.구룡포항과 포항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이어주는 신작로가 돌아오는 길을 상쾌하게 동반한다. 불과 25분 만에 고속도로에 들어서서 달리다 보니 ‘안동’으로 연결되는 도로 표지판이 얼굴을 내민다. 그 순간 무엇인가 가슴을 ‘쿵’ 소리 나게 두드린 것 같다. 삽시간에 가슴이 아프고 곧이어 눈시울이 따뜻해지는 것이다. 대체 이건 뭔가?!그것은 지나간 날들의 상념과 장면이 갑작스레 들이닥친 까닭이다. 큰아이가 어느 대학 무슨 과를 갈 것인가, 고민할 때 나는 안동대 민속학과를 추천했다. 21세기는 동아시아의 세기이며, 그 중심에 우리나라가 자리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것은 나의 확신이자 예감이며, 어떤 강렬한 계시 같은 확증이 심중을 관통했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어리석고 무능한 군왕과 서글픈 사대부들과 한심한 신료(臣僚)들 때문에 숱한 고초를 겪어야 했던 조선 백성은 민주주의 시대에 제대로 빛을 보기 시작한다. 신분 제약의 사악한 족쇄(足鎖)가 풀리자 민초(民草)들은 하늘로 비상(飛翔)했다. 독재자들과 학살자들의 등쌀을 뚫고 21세기 20년대 우리는 세계의 빛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하지만 16년 전 큰아이는 내 결정이 성에 차지 않았다. 그런 아들을 다독여 민속학을 공부하도록 하면서 틈나는 대로 안동대를 찾았다. 언젠가 안동대 정문에서 아이를 만나서 즉시 영덕 강구항으로 차를 달렸다. 대게를 먹는 철도 아니었지만, 둘이 한 상 푸짐하게 받아들고 소주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살아가는 얘기를 했다.그 당시 나는 맛난 걸 먹게 되면 모친에게 택배로 부쳐드리곤 했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먹은 것보다 많은 양을 서울 모친댁으로 부쳤다. 그래야 속이 편하고 유쾌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나와 출장을 가는 동료 교수들은 안절부절도 유만부동이다. 제주도에 가면 갈치나 돔, 여수에 가면 말린 생선을, 장흥에 들르면 돼지고기를 부친 까닭이다.그래봐야 10만원이면 충분하다. 그 정도 돈은 있다가도 없는 것 아닌가?! 하지만 그런 마음의 선물을 보낼 기회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런 얘기를 동료들에게 하곤 했고, 몇몇 사람은 나와 함께 택배 행렬에 동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나의 택배를 받아줄 어머니는 이 세상에 아니 계시다. 그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안동 가는 도로 표지판을 보았을 때, 큰아이와 어머니 그리고 나의 16년 전 모습이 동시에 떠올랐다가 사라져간다. 그래서다. 내 마음과 눈시울이 순간 커다란 변화와 마주했던 까닭은 그래서다. 저 멀리 떠나간 시공간과 언어와 인연이 하얀 일광(日光)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2023-11-05

대구시 신청사, 이젠 건립에 지혜·역량 모으길

재원확보 문제로 논란을 빚었던 대구시 신청사 건립사업이 다시 속도를 낼 전망이다.대구시는 건립 재원문제로 1년 넘게 답보상태에 빠진 대구시 신청사 건립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대구시 보유 5곳의 공유재산을 매각한다고 지난 주 밝혔다.당초 건립예정지인 두류정수장 일대 일부 부지 매각은 없는 것으로 하되 대구시 동인동 청사와 의회·주차장, 칠곡행정타운, 성서행정타운, 달서구 용산동 중소기업제품판매장 등 5군데 공유재산을 팔아 재원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이로써 홍 시장 취임 후 신청사 재원확보를 두고 지역 정치권과 빚어진 논란은 일단락됐다.대구시의 재정 건전성 유지를 위해 빚내 청사를 짓지 않겠다는 홍 시장의 원칙이 지켜졌고, 전임 시장 때 결정한 두류정수장으로의 이전 약속도 유지할 수 있게 돼 논란 소지는 줄어들었다. 다만 5곳의 공유재산을 매각하더라도 신청사 건립비용 5천억원을 충당하기에는 부족할 것으로 보여 추가적인 재원 확보 대책이 필요하다.시는 공유재산 매각대금(가감정가 3천270억원)과 남아 있는 신청사 기금 600억원 그리고 부동산 경기회복으로 매각금액이 상승한다면 가능할 것으로 예상을 하나 불확실한 면이 없지 않다. 또 행정타운 매각에 따른 해당지역의 반발도 잠재워야 할 문제다.하지만 2004년 대구시청사 건립계획을 세운 지 20년만에 사업시행에 들어갈 수 있다는 면에서 대구시의 청사 건립 확정발표는 의미도 있고 고무적이다. 오랫동안 염원했던 대구시민의 기대감도 상당하다 할 것이다.2030년 완공을 목표로 시작하는 대구시 신청사는 대구를 대표하는 건물로 우뚝 서야 한다. 대구의 상징인 동시에 대구시민의 자존심이 되도록 지어져야 한다. 홍 시장도 이런 점을 고려 “각계각층의 모든 지혜와 역량을 모아 전국 3대 도시에 걸맞는 랜드마크가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대구 미래 새역사를 쓰는 대구경북 신공항 개항과 때를 같이하는 대구시 신청사 건립이 지역민의 열망 속에 대역작으로 탄생하길 기대한다.

2023-11-05

혁신 외면하면 ‘야권 200석’ 현실화될 수도

국민의힘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2호 혁신안’으로 “당 지도부, 중진, 대통령과 가까이 지내는 의원은 불출마하거나 수도권 험지에 출마하라”고 권고했다. 여당 내 기득권 타파의 대상으로 당 지도부와 중진, 친윤(친윤석열)계 의원들을 지목하며, 희생을 강요한 것이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혁신위원장 시원하게 한번 지르네. 혁신이란 바로 그런 것”이라고 긍정평가했듯이, 혁신안에 공감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다만 혁신안의 폭발성을 감안해 김경진 혁신위원은 “인 위원장 개인의 정치적 권고 메시지”라고 강조하면서, 혁신위 공식 의결 사안은 아니라고 말했다. 2호 혁신안의 실현여부는 미지수다. 당 지도부는 김기현 대표·윤재옥 원내대표·이만희 사무총장을, 친윤계는 권성동·장제원·이철규 의원을, 당 중진은 3선이상 의원(31명)을 지목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대부분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 불만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기현 대표는 “정식 제안이 오면 검토해 보겠다”며 즉답을 피했다.혁신위의 이번 쇄신안은 무게감이 크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이후 여당은 국민들 눈에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존재로 보였다. 특히 최근 당 인재영입위원장에 직전 사무총장을 지낸 이철규 의원을 임명하면서 민심을 아랑곳하지 않는 정당이라는 소리를 들어왔다. 그러나 이번에 파격적인 혁신안을 내놓으면서 민주당보다 한발 앞서 ‘총선바람’을 선점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여당의 이번 혁신안은 절대 용두사미로 끝나서는 안 된다. 국민의힘이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려면 당 전체 구성원들의 선당후사(先黨後私) 희생정신이 반드시 필요하다. 당 지도부와 친윤계, 중진그룹이 공천개혁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경우, 여당에 대한 민심이 크게 달라질 것이다. 여당은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수도권 중산·청년·중도층 모두가 낙제점을 줬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번 기회에 혁신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민심은 급격하게 악화한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야권 200석’이 정말 현실화될지도 모른다.

2023-11-05

겨울철 진객 과메기

우정구 논설위원 경상도의 과메기와 전라도의 홍어는 냄새 나는 생선을 그대로 먹는다는 점에서 곧잘 비교된다. 과메기가 경상도의 겨울철 별미라면 홍어는 전라도의 겨울철 별미다. 강한 암모니아 냄새가 풍기는 홍어에 비해 그래도 과메기는 그보다 냄새가 훨씬 덜하다.청어, 꽁치, 고등어 등 어류는 냉장시설이 없던 시절에는 보관방법이 늘 고민거리였다. 그래서 고안한 것이 염장, 건조, 훈제 등의 방법이다. 소금에 절인 안동 간고등어가 대표적 예다.포항을 중심으로 경상도에서 주로 먹는 과메기는 바닷가 덕장에 청어나 꽁치를 매달아 바닷바람에 얼렸다 녹였다 반복해 생산한 이 지역 특산품이다. 언제부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진 바 없다. 고문서에 “생선 눈을 관통했다”는 뜻의 관목(貫目)이라는 말이 등장한 시기로 보아 18세기 후반으로 짐작을 한다.본래 과메기는 청어를 가지고 만들었으나 1960년대 이후 청어의 생산량이 줄면서 꽁치로 대체됐다.겨울철 진객 과메기 철이 찾아왔다. 포항 구룡포에서는 18∼19일 과메기축제가 열린다. 이에 맞춰 벌써부터 많은 관광객이 과메기를 맛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는 소식이다.과메기가 알려진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은 아니나 빠르게 시장을 넓혀 지금은 전국적 명물이 됐다. 겨울철 별미로 식당이나 주점의 안주로 큰 인기다. 특히 과메기가 품고 있는 오메가3, 아스파라긴산, 비타민 D 등의 각종 영양가치 때문에 소비자들의 관심을 더 끌고 있다.올해는 최근 논란이 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한 소비자의 우려를 덜기 위해 포항시가 식약청 지정의 수산물품질관리센터까지 운영한다니 식품으로서 안정성도 더 높아진 셈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3-11-05

멧돼지 소동

우정구 논설위원 지난해 여름. 스페인의 한 해변에 멧돼지가 물속에서 갑자기 불쑥 튀어나와 이곳에 있던 많은 관광객이 혼비백산 도망친 소동이 벌어졌다.우리나라도 멧돼지가 주거지 도심까지 나타나 소동을 피우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지난 29일에는 포항에서 서울로 가던 KTX 열차가 경주시 갑산리 터널에서 멧돼지와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열차는 긴급 정지하고 승객 200여 명은 다른 열차로 옮겨타야 하는 불편을 겪어야 했다.몇 년 전 울산의 한 아파트단지에는 멧돼지가 아파트 현관문을 부수고 달아나는 일이 벌어졌다. 멧돼지 등장시간이 오전 9시 30분쯤으로 사람의 왕래가 많은 시간이라 하마터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도 했다.멧돼지는 보통 몸무게가 150kg 정도나 큰 것은 400kg까지 나간다. 날카로운 이빨까지 겸비했으니 멧돼지와 갑자기 마주치면 놀라지 않을 사람이 없다.농촌에도 멧돼지의 잦은 출몰로 농사를 망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큰 산 인근의 농촌마을에는 거의 매일 멧돼지가 나타나 이제는 고구마를 심는 사람이 없어졌다고 한다. 정성들여 지은 농작물을 망쳤으니 화나지 않을 농민이 없다.멧돼지의 잦은 출몰은 지금이 짝짓기철로 먹이 활동이 왕성해진 탓이라 한다. 원래 먹이사슬의 중간쯤이던 멧돼지가 천적인 사자와 호랑이 등이 사라지면서 지금은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올랐다. 호랑이 없는 골에 왕 노릇 하고 있는 꼴이다.번식력이 좋은 데다 산림녹화로 서식환경도 좋아져 국내는 35만마리 정도 멧돼지가 서식 중이라 한다. 주민피해 등으로 당국이 엽사를 동원, 포획을 하고 있지만 개체 수를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멧돼지 출몰을 줄이는 묘안은 없는 것일까. /우정구(논설위원)

2023-11-02

韓日지사회의 재개, 도시교류 활성화 기회로

6년만에 한일지사회의가 일본 야마나시현에서 개최됐다. 대한민국 시도지사회 회장인 이철우 경북도지사 등 국내 광역단체장 5명과 일본의 무라이 요시히로 미야기현 지사 등 11명의 단체장이 함께 만나 한일간의 공동현안을 두고 의견을 교환했다.한일지사회는 1999년 대한민국 시도지사회가 구성되면서 양국 지방정부간 교류증진과 공동협력을 위해 출범했다. 2년마다 양국이 번갈아 회의를 개최해 왔으나 코로나19와 한일관계 악화로 2017년 11월 부산 개최를 마지막으로 중단됐다.윤석열 정부가 들어서 한일정상간 셔틀외교가 복원되고 양국간 교류가 활기를 띠는 가운데 양국 지방정부 단체장의 만남이 재개된 것은 여러모로 의미있는 일이다. 특히 도시간 교류가 활발해지고 있는 글로벌 시대에 우리와 인접한 일본 지방도시 수장과의 만남은 경제, 관광, 문화 등 각 분야에서 도시 상호간에 도움이 될 일이 매우 많을 것으로 보여진다.일본은 우리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데다 자유민주주의와 인권 등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다. 국가 차원뿐 아니라 지방도시간의 연대와 협력은 시대적으로도 맞는 길이다. 일본의 경제성장 과정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배우고 반면교사도 삼아야 한다. 특히 수도권 집중이나 지역균형발전, 지방소멸, 저출산, 지방일자리 등 우리 지방정부와 유사한 문제에 대해서는 같은 입장에서 머리를 맞대 공동대응책을 찾아보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이 지사는 한일지사회의 복원을 위해 올초 일본을 방문하는 등 많은 힘을 써왔다. 그 결과 회의 재개가 성사됐고 한일양국 수교정상화 60주년인 2025년에는 한국에서 한일지사회를 개최키로 합의하는 성과도 냈다.다시 시작한 한일지사회를 계기로 양국은 더 자주 만나고 교류폭도 넓혀야 한다. 지방도시간의 협력과 유대강화는 글로벌 경쟁시대에 지방도시가 선택해야 할 필수 코스다.북한의 핵위협 등 긴장된 국제정세 속에 양국 도시간 유대 강화는 동북아지역의 긴장감을 줄이는데도 도움이 된다. 도시간 교류가 더 활성화되길 바란다.

2023-11-02

‘발등의 불’ 된 험지 출마

홍석봉 대구지사장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했던가. 최근 정치권에 일고 있는 험지 출마 논란은 정당 공천과 연관이 깊다.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5개월여 앞두고 있다. 정치인들의 마음은 온통 콩밭에 가 있다. 현역 의원은 물론 출마 희망자들은 중앙당과 용산 주변에 안테나를 꽂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여기에 정치권이 험지 출마 논란으로 뜨겁다. 험지 출마는 금배지를 오래 달았고 많은 특혜를 누린 이들은 이제 뒷전으로 좀 물러났으면 좋겠다는 신호다. 그런데도 눈치없이 무거운 궁둥이를 비비적거리며 일어설 줄 모르는 이들이 대상이다. 통상 3선급 이상이 해당된다. 유권자들의 피로감도 한 몫한다.부산 출신 3선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서울 출마를 선언, 험지 출마론의 불씨를 당겼다. “제 살길 찾는 것”이라는 혹평도 없지 않지만 기득권에 안주하지 않으려는 결단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거기에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주호영 의원과 김기현 대표를 콕집어 “서울 험지에 와야 한다”고 말해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낙동강 하류 세력은 뒷전에 서야 한다”는 언급에 영남 의원들이 발끈했다. 여당 중진에게 ‘험지 출마’가 발등에 불이 됐다.험지 출마는 정치권의 해묵은 과제다. 정당의 지지세가 약한 지역이 타깃이다.20대 총선때 경기 군포에서 내리 3선을 한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텃밭을 떠나 사지나 다름 없는 대구 수성갑에 출마해 당선됐다. 홍의락 전 의원도 대구 북을에서 금배지를 달았다. 이들은 보수 텃밭에서 당선돼 정치 위상을 크게 높였다. 지역주의가 판 치는 우리나라에서 험지 출마는 총선 때마다 되풀이되는 단골 메뉴다. 험지 출마는 위험 부담이 크지만 성공하면 정치권의 스타가 된다.쉬운 길을 두고 어려운 길을 택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서울 종로구에서 당선된 후 다음 총선때 부산에서 출마, 낙선했다. 이후 ‘바보 노무현’ 별칭이 붙었다. 그의 정치 생명을 건 도박은 대통령 당선에 교두보가 됐다.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가 된 것이다.2020년 21대 총선 때는 황교안 당시 미래통합당 대표가 등 떼밀려 종로에 출마했다가 민주당 이낙연 총리에게 고배를 마시고 정치 인생을 마감해야 했다. 이번 국민의힘 혁신위에서 사면 대상자로 거론된 3선의 김재원 의원도 상주·군위·의성·청송을 떠나 서울 중랑을에 나섰다가 분루를 삼켜야 했다.반면 험지 출마 요구에 반발, 대구 수성을에 무소속 출마했던 홍준표 대구시장은 당선됐다. 정치 재기의 기반이 됐다. 국민의힘 텃밭인 대구의 5선 주호영, 3선 윤재옥·김상훈 의원과 부산·울산·경남의 3선 이상 중진들이 험지로 등을 떼밀리고 있다. 험지 출마는 성공보다 실패 확률이 훨씬 높다.험지 출마는 당 쇄신을 위해, 희생을 요구한다. 그러나 공천을 둘러싼 파워 게임 성격이 짙다. 위험 부담이 크지만 정치적 도전과 쇄신을 위한 선택이 될 수 있다.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낸다’고 했다. 정치인에게 후진을 위한 자리 양보는 숙명이지만 고통이 수반된다.

2023-11-02

윤석열 정부 ‘지방시대 종합계획’, 실천이 중요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가 그저께(1일) ‘제1차 지방시대 종합계획’(2023∼2027년)을 내놓았다. 이번 종합계획은 지난 20년간 별도로 수립된 국가균형발전계획과 지방분권 종합계획을 최초로 통합 수립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종합계획의 핵심은 기회발전특구와 교육발전특구, 도심융합특구, 문화특구 등 4대 특구 정책이다.그동안 간헐적으로 발표되긴 했지만, 비수도권 지방정부가 자율적으로 지정할 수 있는 기회발전특구에는 10종 이상의 파격적인 인센티브가 도입된다. 소득세, 법인세, 양도세, 취득세, 재산세, 가업상속세 등의 세제 혜택과 금융·재정 지원, 각종 특례, 근로자 대상 민영주택 특별공급 등이 추진된다.교육발전특구에서는 지역인재가 해당지역에 정주할 수 있도록 종합적으로 지원한다. 지방정부에 공교육 발전전략을 자율적으로 수립할 수 있는 권한을 준다. 실질적인 교육자치 시행의 첫걸음으로 보면 된다. 비수도권 대도시에 들어설 도심융합특구에는 첨단·벤처 일자리와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복합거점이 조성되고, 문화특구에선 해당지역의 관광자원과 문화를 ‘자산’으로 키워내는 사업을 벌인다.우리나라는 지금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양극화가 심각한 수준이다. 수도권에는 절반이 넘는 인구가 거주하고 있고, 국내총생산(GDP)의 51.9%가 집중돼 있다. 매출액 상위 100대 기업 가운데 86곳의 본사가, 1천대 기업의 90%가 수도권에 몰려있다. 수도권 중심의 교육 여건 때문에 지방 인구가 계속 유출돼 전체 시군구의 40%(89개)가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됐다.수도권 집중이 갈수록 심화하는 상황에서 더이상 국가균형발전이 미뤄지면 나라전체가 멸망한다. 그래서 지방시대위 역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우려되는 점은 역대 정부가 그랬듯이, 윤석열 정부 지방정책도 선거용 도구로 전락하는 것이다. 이번 종합계획이 ‘빛 좋은 개살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의 실행력이 담보돼야 하고, 지방정부에 실질적인 권한이 대폭 이양돼야 한다.

2023-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