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거목이자 포항지역 경제 발전을 견인해온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이 그저께(23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고인은 코오롱그룹 사장을 지내다 1988년 영일·울릉 지역구 국회의원(13대)으로 정계에 진출한 후 18대까지 포항남·울릉에서 6선을 하며 국회 운영위원장, 당 정책위의장·사무총장·최고위원, 국회 부의장을 지냈다. 지난 2007년 동생인 이명박 서울시장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상왕(上王)논란’을 피하기 위해 2009년 8월 정계를 떠나 ‘자원외교’로 국내경제에 이바지했다. 당시 보수정치인 평가에 인색하기로 유명한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동생이 대통령이 안 되었으면 국회의장까지 하실 분”이라고 언급할 정도로, 그는 여야 정치인 모두에게 친숙한 사람이었다.
그는 우리나라가 외환위기 여파로 신음하던 1999년에는 당 정책위의장 자격으로 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장들을 두루 만나 국가 신용등급 조정에 큰 기여를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IMF직전이었던 1998년 당선인 시절, 국회에서 여야충돌로 금융개혁법 통과가 어려워지자 당시 재정경제위원장이었던 그에게 도와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했다. 2002년 사무총장 재임시절에는 당이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위기를 맞자, 박근혜 당시 당대표 영입을 주도했고, ‘천막당사’를 제안하기도 했다.
이강덕 포항시장이 언급한 것처럼, 그는 포항지역 경제발전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포항지역 주요 건설사업에 그의 손때가 묻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영일만항 건설, KTX 포항노선 개설, 동해중부선 개설, 영일만대로 개통 등 그가 아니면 해낼 수 없었던 많은 업적을 남겼다. 포항시 공무원들은 “그가 국회의원이었던 시절 예산을 확보하기가 가장 쉬웠다”고 회고했다.
서울 아산병원에 마련된 그의 빈소에는 26일 발인(서울 소망교회)을 앞두고 정·재계 저명인사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는 이제 우리 곁을 떠났지만, 대구경북 지역민들에겐 ‘영원한 포항의 정치인’이라는 대명사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