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생의 고단함을 느낄 때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어릴 적 걱정 없이 즐거웠던 때로 잠시나마 돌아가 본다. 모래밭에 손을 묻고 두꺼비집 노래를 부를 때나 꽃이나 풀을 돌맹이로 짓이기며 소꿉놀이에 쓸 저녁 반찬을 만들 때, 나는 힘껏 내려가 있던 입꼬리를 다시금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옅게 웃어 보일 수 있다.
삭막한 사무실 책상에 앉아 현생이 괴로울 땐 이렇게 작은 구멍 하나를 만들어 잠시나마 어린 시절 추억 속으로 빠져본다. 그리고 퇴근 후나 주말이 되면 어린 시절 만끽했던 자유로운 일상을 꼭 즐기리라 다짐하며 다시금 타자기에 손을 올린다.
주말이 되면 어릴 적 즐겨 먹었던 불량식품들을 찾아 일부러 초등학교 앞 작은 문방구에 들린다거나, 계절마다 엄마가 조각조각 잘라주던 제철 과일들을 먹기 위해 마트로 장을 보러 간다. 어린 시절 사소한 습관부터 작은 기억까지 다 복기해보며 따라하다보면 삶의 지루함과 어려움에서 조금이나마 멀리 벗어나 볼 수 있다.
이렇게 나처럼 어린 시절의 향수로 물건을 구매하는 키덜트 족은 대략 십년 전부터 주요 소비자층으로 자리 잡았다. 키덜트족이란 키드(kid:아이)와 어덜트(adult:어른)의 합성어로 어른이 지만 여전히 어린 시절의 분위기와 감성을 추구하는 성인들을 일컫는 말이다.
퇴근길에 뽑기 기계 앞에서 동전을 한 가득 손에 쥐고 인형 뽑기에 열중하다 집에 가는 길에 작은 인형 하나 손에 들려 있다면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큰 기쁨과 만족감이 든다. 돈을 얼마를 썼거나 인형에 큰 의미가 있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 이상하다고 여기거나 철이 없다고 느끼진 않는다. 그저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오늘 나의 현실적인 문제들로부터 벗어나 마음이 만족하다면 되는 것이다.
나와 같은 키덜트 족은 옷이나 특정 상품을 구매할 때에 물건의 사용 가치를 재고하는 것이 아닌 어린 시절 즐겨 보던 만화나 기억속 함께 커왔던 캐릭터 상품을 구매함으로써 심리적 만족감을 채운다. 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인 가심비를 추구하는 경향으로 상품의 가격이나 쓸모, 가치 보단 주관적 마음의 만족감을 더 중요시하게 여기는 것이다.
더 나아가 fun(재미)과 consumer(소비자)를 결합한 펀슈머는 단순히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닌, 물건을 구매할 때에 재미를 추구하는 소비자를 뜻한다. MZ세대 중심에서 시작된 펀슈머는 가격 대비 재미를 쫒는 이른바 ‘가잼비’를 추구하며 소비 과정에서 재미와 즐거움의 경험을 중시한다.
SPC 삼립의 대표 스터디셀러 제품인 정통 크림빵은 60주년 기념으로 기존 사이즈 대비 약 7배 정도 큰 사이즈로 ‘크림대빵’을 출시한 바 있다. 성인 두명의 얼굴을 가릴 정도로 점보 사이즈로 출시되었던 대왕 크림빵은 보자마자 웃음을 자아낼 정도로 커다란 사이즈에 이색적이었고 처음 출시됐을 때엔 품귀 현상까지 생겨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출시가 대비 약 2배 넘는 가격으로 거래되었을 정도였다.
이어 대왕 시리즈라 불리는 8인분의 양이 담긴 세숫대야 냉면, 팔도 도시락 8인분이 합쳐진 대왕 팔도 점보 도시락, 공간춘 대왕 짬짜면 등이 출시되어 가잼비와 가심비를 더한 상품들을 마트나 편의점에 심심찮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상품들 모두 출시 전부터 화제성이 있었으며 출시되자마자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웃돈이 붙어 거래되었을 정도라니 익숙한 상품에 웃음 요소를 더한 상품이 현재까지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덕분에 나는 더욱 즐겁게 마트나 편의점, 문방구 등 여러 장소를 돌아다니며 재미를 찾고 추억에 젖어 현실의 고단함을 조금 잊어볼 수 있게 된다. 누군가는 나의 이런 소비 습관을 보며 철없어 보인다고 고개를 저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뭐 어떤가. 이 단순한 행위로도 작은 기쁨을 맛볼 수 있고 생의 즐거운 면을 조금이나마 추구할 수 있다면 다시금 어린 시절 반짝였던 두 눈과 튼튼한 다리를 가지고 이곳 저곳 쏘다녀볼 수 있다.
오늘은 또 어떤 새롭고 재미있는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고단함을 잊는 법은 이렇게 단순하고 쉽다. 덕분에 새로운 한 주를 다시금 활기차게 살아갈 수 있게 한다. 시원해진 가을 바람을 맞으며 운동화 끈을 꽉 매고 다시금 뚜벅뚜벅 걸어가본다. 이렇게 걷다 보면 고단함보다는 일상이 즐거움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