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에 다닐 때였으니까 45년 전, 1979년이다. 햇수를 꼽아보니 아득한 세월이다. 한문원전강독 교재가 삼국유사였다. 삼국유사(5권 9편)에는 짧거나 긴 139개의 이야기가 있다. 5명의 학생이 매 주 두 명씩 돌아가면서 원문을 해석해서 읽고 발표하는 식의 수업이었는데 한 사람 당 4~5개 정도의 기사를 선택했는데 나는 주로 여성이 주인공인 기사들을 골랐다. 그 중 하나인 ‘선덕왕지기삼사(善德王知機三事)’는 당에서 보낸 모란꽃씨가 향기가 없으리라는 것, 영묘사의 개구리 우는 것으로 백제군의 침입을 알아차린 일, 당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낭산 남쪽 도리천에 묻으라는 이 세 가지 얘기로 선덕여왕의 지혜로움을 찬탄하는 이야기이다. 선덕여왕과의 첫 인연이었다. 한 학기 수업이 끝날 즈음, 삼국유사를 들고 경주 가서 그 현장을 찾아보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으나 그때뿐, 삼국유사는 잊혀졌다. 표지가 너덜거리는 낡은 책은 서가 한구석에 틀어박혔다.
석사 후 바로 결혼했고, 몇 년 늦게 박사과정을 했다. 육아와 집안일에 출강에 박사과정은 무척 벅찼다. 박사논문을 쓰고 학위를 받자 심신은 지칠 대로 지쳤다. 그저 ‘먹고 자고’가 소망일뿐이었다. 논문 쓰느라 소홀했던 아이들에게 온전히 나를 쏟기로 했으나 무위도식했던 나날이었다. 무료하게 방바닥을 뒹굴던 어느 날 책장 속 낡은 책이 눈에 들어왔다. 삼국유사였다. 벌떡 일어나 책을 꺼내드니 깨알같이 주석을 달아놓은 부분이 펼쳐졌다. 동시에 그 옛날 꿈꾸었던 욕망이 떠올랐다. 아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었네…. 대강 옷 걸쳐입고 그 낡은 책 하나만 달랑 들고 차에 시동 걸어 무작정 경주로 달렸다.
경주에 들어서자 머릿속이 하얘졌다.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 대학교 때 답사, 그 후론 온 적이 없었고, 게다가 지금은 혼자다. 막막해서 길가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조수석에 얹혀 같이 온 삼국유사를 펼치니 딱 ‘선덕왕지기삼사(善德王知機三事)’. 그래 여기부터 시작하자. 표지판이 제대로 있었던지 모르겠다. 어찌어찌 사천왕사지 부근까지 갔다. 풀숲을 헤치고 기찻길을 가로 건넜다. 제멋대로 자란 풀이 우거진 조붓한 길옆으로는 키 큰 소나무가 완강히 버티고 있는 무덤들이 으스스했다. 무서움을 이기며 한참을 오르자 저 위 커다랗게 빛나는 왕릉이 보였다. 좁고 컴컴한 소나무숲을 지나서였는지 유난히 밝은 빛이 능 위에 쏟아졌다. 내 기억 속의 선덕여왕릉은 언제나 형광색 연둣빛으로 눈부시다. 선덕여왕릉을 시작으로 2년 넘게 경주에서 삼국유사 현장을 누볐다. 책을 쓰신 일연스님의 걸음걸음에 내 발자국이 닿아서였을까 1996년 경주에 개교하는 위덕대 교수가 되었다. 삼국유사 덕분이라 했더니 남편이 그 낡은 책에 하드양장의 표지를 입혀 삼국유사라고 금박으로 새겨 선물해 주었다. 25년 동안 위덕대에선 ‘경주의 삼국유사 현장기행’ 개발에 매진했다. 선덕여왕을 주제로 한 ‘여왕 코스’를 넣어 숱한 답사객들을 안내했다. 그 옛날 대학원생으로 선덕여왕님을 만났던 내가 지금은 선덕여왕경모회장이 되어 능제를 모시는 초헌관으로 뵙는다. 오는 10월 27일, 17번째 선덕여왕릉제의례가 선덕여왕릉에서 거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