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겁의 시간을 돌고돌아 아홉봉우리에 스며든 生
1봉~9봉까지 인간사 의미로 이름붙여
10월은 등산하기 딱 좋은 계절이다. 날씨가 선선해 산을 오르내릴 때 땀이 많이 나지 않아 신체적 불편함이 없다. 게다가 단풍이 곱게 물드니 자연풍경에서 보는 마음까지 상쾌해진다.
기상청에서 올해의 단풍시기예상도가 나왔다. 이 자료를 보면 9월 말경 강원도의 명산 설악산, 오대산에서 첫 단풍이 들기 시작하여 차츰 남하하면서 팔공산 오는 17일, 내장산이 18일 단풍이 들고, 가장 늦게는 전라도 두륜산이 이달말경이다.
단풍 절정기는 18일부터 11월 11일이다. 설악산, 오대산 단풍놀이가 절정을 이루는 시기는 10월 18일에서 21일사이인데, 이때가 되면 강원도의 산을 비롯해 중부지방의 산은 붉은 색으로 갈아입고 오가는 등산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느라 바쁘다.
가을이 한창 무르익을 때 전국의 어느 산을 등산해 봐도 단풍이 곱다.
울긋불긋 물든 나뭇잎을 보면 누구라도 찬탄하기 마련이어서 이 시기에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많지만 전국의 모든 산들이 이달 중순과 11월초가 되면 단풍을 보러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필자가 알기로 우리나라 산 가운데 단풍이 곱기로 유명한 산은 내장산, 속리산과 가야산 등 순서다. 유명세를 떨치는 단풍 명산의 올해의 절정기를 보면 속리산(10.27), 가야산(10.30), 내장산(11. 5)인데, 가을단풍과 함께 억새가 만발하는 산들이 많으니 가을등산을 권해본다.
아직은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시기지만 계절의 변화와 함께 인간의 변화를 점지하고 있는 산, 영월의 구봉대산을 다녀왔다. 이 산의 아홉 개 산봉우리를 오르내리면서 다시한번 인간의 참모습과 인생에 대한 어떤 작은 생각들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니 좋은 산행이었다.
평소에도 필자는 산에 대해서는 경외하는 생각을 가진다. 그래서 산행하는 과정에서 항상 자연에 대해 겸손한 자세를 보이고 자연의 지혜를 얻으려 노력하고 있는데, 이번 구봉대산 등산에서 경험하고 얻은 윤회사상은 인간사의 산 교육장처럼 느껴지는 묘한 기분을 가져다주었다.
영월에 있는 구봉대산은 모두 아홉 개의 산봉우리를 말한다. 암릉으로 되어 있는 구봉대산은 1봉에서 9봉까지 그 이름이 따로 있는데,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과정을 봉우리 명칭으로 사용했으니 많은 사람들에게 이색적인 감흥을 주고 있는 산이다.
어차피 산행기에서 아홉 개 산봉우리를 오르내리는 것을 쓰게 마련이다. 여기에서 일괄적으로 산봉과 그 뜻을 적어놓는 것이 산행기나 앞으로 독자들이 구봉대산을 등산하는데 도움주기 때문에 간단히 산봉 명칭과 함께 담긴 뜻을 적어본다.
제1봉(양이봉)은 인간이 어머님 뱃속에 잉태함을 나타내고, 제2봉(아이봉)은 인간이 세상에 태어남을 나타내며, 제3봉(장생봉)은 인간이 유년, 청년기를 지나는 과정을 의미한다. 제4봉(관대봉)은 벼슬길에 나아감을 의미하고, 제5봉(대왕봉)은 인생의 절정기를 나타내는 명칭이다.
제6봉(관망봉)은 지친 몸을 쉬어감을 의미하고, 제7봉(쇠봉)은 인간의 병들고 늙음을 의미하며 제8봉(북망봉)은 인간이 이승을 떠남을 의미한다. 그리고 마지막 9봉은 `윤회봉`이라 이름지어 산을 사랑하고 덕을 베푼 사람은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불교의 윤회설에 근거를 둔 것이니 필자가 영월의 구봉대산에 오른 것도 다 인연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구봉대산 등산의 들머리는 영월군 수주면 법흥리에 소재한 법흥사 주차장이다. 법흥사는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창건한 절로서 옛 이름은 흥년사이다.
법흥사는 양산 통도사, 오대산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 정선 정암사와 함께 5대 적멸보궁 중 하나로 알려져 있는 유명사찰이다.
이번 산행코스는 주차장에서 널목재를 타고 산 능선을 올라가서 1봉부터 9봉까지 순차적으로 오른 후에 하산길은 음다래기골로 해서 법흥사 일주문으로 내려오는 순회 원점코스인데, 총 거리는 7km로 4시간 30분 정도면 넉넉한 편이다.
필자는 이번 등산에서 미리 정보 자료를 통해 산세 등을 익혔지만 산행에 앞서 주차장 입구에 세워진 등산안내도를 보면서 위치를 눈에 익힌다. 그리고 나서 바로 산행을 시작하는데, 일요일이라 그런지 여러 산악회에서 회원들이 많이 보인다.
등산객 일행들 속에 묻혀 걸음을 시작하는데, 등산로 입구는 주차장과 연결된 나무다리 문이다. 그 문을 통과해 인생의 과정, 여러 구비를 알아보려는 기대감 때문인지 맘 설렌다.
길을 이어가 작은 계곡을 몇 번 지나니 능선으로 오르는 편안한 흙 숲길이 나타난다. 산행들머리에서 2km 거리 쯤, 계곡이 끝나는 지점의 능선으로 오르는 아래에 구봉대산 안내판이 있다. 1봉까지는 600m, 구봉대 정상까지는 1.3km 거리다.
마지막 계곡을 지나고나니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진다. 여기서부터 산행길은 외길로 쭉 이어져 있다.
15분 정도 된비알을 치고 올라 널목재에서 한숨을 고르고 나서 곧장 올라가니 제1봉 양이봉이다. 이제부터 윤회관을 담은 명칭들과 함께 그 의미들을 새기는 등산이 될 것이다. 1봉은 조망권이 좋지 않은데, 안내판이 없으면 그냥 지나갈 정도로 봉우리 같지 않다.
양이봉을 지나 2분 쯤 가면 2봉인 아이봉이 나타나고, 다시 봉우리를 지나서 4분거리에 3봉(장생봉)이 나타난다.
1봉과 2봉은 경관이 별로여서 쉬 지나쳤는데 3봉에 올라서니 주변이 멋있다. 암릉위에 소나무가 잘 어울리는 풍경과 함께 멀리 백덕산 줄기가 시야에 들어오면서 이어지는 능선들의 장관들이 가슴을 탁 틔게 한다.
3봉에서 안내판을 읽어보고서는 산행을 이어가 안부와 헬기장을 지나니 4봉이다. 관대봉에서 주변을 한번 살펴본 후에 5분 정도 오르니 5봉이 나타난다. 대왕봉이라 이름 붙은 이 봉우리는 인생의 절정기를 나타내는 명칭이다.
필자도 50대에 접어들었으니 이 산의 명칭으로 따져 본다면 대왕봉에 해당된다. 실제로 1봉에서 5봉까지는 20분 남짓 걸리는 가까운 코스다. 그래서 5봉에 올라 내 살아온 인생 여정의 길과 비교해 봐도 지나온 세월이 쏜살처럼 빨리 흐른 것처럼 생각이 된다. 대왕봉이란 이름에 걸맞지 않게 기이하게 생긴 바위틈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라고 있는 소나무들을 본다. 척박한 풍토에서 자란 소나무의 끈길진 생명력이 돋보이지만 하지만 힘들게 성장한 것이 여실히 들어나는 현장이기도 해 눈길을 보낸다. 여기 정상에 서서 멀리 북으로 보면 사자산 주능선이 길게 서쪽으로 이어지고 있고, 동북방향으로는 백덕산이 펼쳐진다.
위쪽을 쳐다보니 9봉까지는 거의 5봉과 비슷한 암릉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쉽게 올랐지만 이제부터는 산봉우리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아기자기하게 등산하는 맛이 있을 것이다. 난간 밧줄을 붙잡고 암릉을 오르내리면서 계속되는 암릉길을 조심스럽게 걸어가 목조데크계단 길을 조심스럽게 걸어 6봉 앞에 선다.
이정표 안내판을 보니 벌써 법흥사에서 3.5km를 걸어왔다. 6봉(관망봉)에는 대리석으로 만든 표지석이 있다. 영월군민이 세워놓은 이 표지석 부근에서 바라보는 전경이 좋다.
광망봉은 인생을 되돌아보고 지친 몸을 쉬어가는 봉우리다. 인생의 절정기를 지나 관조의 시간을 가지라고 이름을 관망봉이라 지었으니 그 이름답게 9봉 가운데 조망이 가장 빼어나기는 하다. 여기에는 둥근 바위 뒤로 앙상한 고사목이 있어 산행나온 많은 사람들은 고사목을 배경으로 하여 사진을 많이 찍는데, 구봉대산 관망봉은 이 고사목으로 인해 사진촬영 명소가 되고 잇다. 필자도 여기에서 뒷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몇판 찍었다.
산위에서 계속 이어지는 멀리 산등성을 보다가 암릉길 급경사진 길을 20여m 내려서서 다시 오르면 7봉이 나타난다.
7봉은 늘그막의 덧없는 인생을 의미하는 봉이다. 그래서 인지 이 산봉우리에서는 조망할 것도 없어서 그냥 지나서 20여미터 오르니 헬기장으로 이루어진 정상이 나타나는데 넓은 공지 형태의 북망봉(8봉)인데, 여기가 구봉대산의 주봉이다.
필자는 소나무와 잡목사이 등로를 15분 정도 걸어가서 구봉대산의 마지막 봉우리인 제9봉(윤회봉) 안내판 앞에 섰다.
1봉에서 9봉까지 오는데 대략 1시간 2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윤회봉에서 필자는 잠시간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겨본다.
인간은 태어나 유년과 청년, 중년, 노년의 단계를 거쳐 다시 태어난다는 불교의 “윤회설”을 회상하니 오늘을 정말 열심히 살아야한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그 생각을 하다가 문득 시상에 잠긴다.
`두메, 영월에 가면/ 구봉대산이 있다./ 아기를 잉태한 1봉에서/ 절정기 대왕봉을 지나/ 쇠락하는 봉우리 너머/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는/ 윤회봉이 자리잡고 있다.// 이 산을 오르내리며/ 지나온 산행 길/ 그 흔적 속에서/ 걸어온 생애를 비춰보고/ 내딛는 걸음 속에서/ 인생윤회의 산봉우리,/ 내 삶의 구비를 헤집는다.`(자작시 `영월 구봉대산에서` 전문)
멀리 산 풍경들을 조망하다가 하산 준비를 한다. 하산방향은 엄둔치로 내려가는 삼거리에서 좌측방향으로 난 길을 따라 길을 걸어 830봉에서 음다래기계곡으로 내려서는 길이다.
가을 햇볕을 타고서 하산길을 이어가 칼바위 삼거리에서 왼편으로 접어들어 내려가니 계곡이 나온다. 음다래기계곡길을 타고 10분 걸어 나가서 법흥사 일주문에 도착했다. 등산을 끝내고 잠시 쉬면서 이곳 법흥사 적멸보궁의 명당 터를 보호하는 산을 다시 생각해본다. 아홉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구봉대산. 인간은 태어나 유년과 청년, 중년, 노년의 단계를 거쳐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불교의 윤회설에 따라 명칭을 붙인 9개봉. 그 봉우리마다 심오한 인생의 뜻을 담아놓고 있으니 우리 인생의 참의미를 알게 해주는 아름다운 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