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충택 논설위원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판사가 자의적으로 판결할 수 있는 ‘가짜뉴스’에 대해 5배 징벌할 수 있는 규정을 그대로 유지한 채 확정되면 기자들의 취재 자세는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특히 청와대, 국회, 지방의회를 주로 출입하는 정치부기자나 행정기관, 검찰, 경찰 등이 주 출입처인 사회부 기자들은 절벽과 같은 취재장벽이 생긴다.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주로 신문사 정치·사회부 기자들이 권력기관의 부패행위나 비리내용을 끈질기게 취재해 사회의 건전성 유지에 공헌해 왔는데, 언론중재법이 개정되면 이러한 근성 있는 기자들을 구경하기가 어렵게 된다.일부 메이저급을 빼고는 우리나라 신문사 재무구조는 서울, 지방 할 것 없이 취약하다. 대부분 수입을 정부나 지자체, 대기업, 건설사 광고에 의존하고 있다.최근 들어 광고 매체가 다양해지면서 신문사 광고 파이도 계속 줄어들고 있다. 이런 상황을 뻔히 알고 있는 기자들이 만약 자신이 쓰고 있는 기사가 가짜뉴스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면 과연 기사를 쓸 수 있을까. 혹시 판사를 잘못 만날 경우 자칫 패가망신은 물론, 소속 신문사 존폐문제까지 걸려 있는데, 기사 한 건 때문에 이러한 모험을 할 수 있는 기자는 아마 없을 것이다.언론중재법이 개정돼 기자들이 권력비리에 대한 폭로 기사를 쓰지 않는 것이 우리 사회에 더 순기능적일까.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이 오듯, 신문사가 권력비리 행위에 대해 침묵을 지켜도 현실은 그대로 존재한다. 오히려 악화된다.신문사가 조국 전 법무장관의 가족비리를 끈질기게 파헤치는 기사를 쓰지 않았을 경우, 어둠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특정계층의 의전원 입학 비리 행위는 국민들이 까마득히 모를 것이다.권력을 견제하는 신문들이 생존을 위해 침묵을 선택하면, 우리나라는 하루아침에 친여권 매체들이 만들어 내는 ‘가상세계’가 실재(實在)를 압도해 버리는 사회가 된다. 프랑스 사회학자인 장 보드리야르는 이러현 현상을 ‘하이퍼 리얼리티’라고 했다. 하이퍼 리얼리티는 대중이 가상세계를 더 실재인 것처럼 인식하고 사는 것을 말한다. 보드리야르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 대중매체가 만들어 낸 카피(모사)된 이미지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현실을 모사(模寫)된 이미지의 세계, 즉 허구 혹은 환상일 뿐이며 가짜가 진짜를 대신하는 세계라고 보는 것이다.그는 대표적으로 ‘워터게이트 사건’을 언론이 만들어낸 모사된 이미지라고 설명했다. 실재하고 있는 현실은 권력에 의한 부정부패, 부도덕, 비리 행위로 가득 차 있는데, 언론은 빙산의 일각 같은 사건을 들춰내 마치 우리 현실 속에 이러한 병리현상이 특정 정치인에게만 국한된 것처럼 다뤘다는 것이다.대중이 현실을 인식하고 해석하는 창문인 언론은 사회의 병리현상을 밝혀내고 치유하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도구다. 권력에 도취된 일부 정치인들이 신문사에 재갈을 물려 침묵을 강요하면, 우리 국민은 ‘문(文)비어천가’를 부르는 친여권 매체에 둘러싸여 보드리야르가 말하는 가상세계에서 살 수밖에 없다.
2021-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