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출신 가짜 수산업자 김모(43)씨로부터 포르쉐 차량 등을 제공받은 의혹이 제기된 박영수 특검이 지난주 사표를 내자, 국정농단 사건 특별검사가 희대의 사기꾼과 부적절한 교류를 한 것에 대해 어이없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박 특검은 ‘렌트비를 지급했다’고 하지만 지급시기가 김씨에 대한 경찰 수사가 본격화하던 시점과 맞물리면서 박 특검의 해명이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수사를 통해 ‘뇌물 수사’ 전문가로 불렸던 박 특검이 이번에는 뇌물 소지가 있는 금품을 받았다는 의혹의 당사자가 된 것이다.
지난 2017년 연말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이후 본격적으로 사기 행각을 벌인 김씨는 수행원 역할을 하는 직원들과 함께 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이 직원들을 통해 선물 배달을 시킨 후 사진을 찍어 증거를 남겼다. 포르쉐 차량을 렌터카 업체에서 빌린 뒤 박 특검의 아파트까지 운전해서 그의 운전기사에게 차량 키를 전달한 사람도 이들이다.
경찰은 김씨가 선물을 보냈다는 28명의 명단을 확보해 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명단이나 범죄 혐의가 발표된 것은 없지만, 경찰에 제출된 선물리스트에는 여·야 정치권을 비롯해 검찰, 경찰, 언론계 등 각계 유력인사들이 포함돼 있다. 김씨는 이들 중 일부에게 자동차와 고급시계, 골프채 등을 건넸다고 한다. 현직 검사와 경찰의 경우 수사 진척에 따라 뇌물죄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법무부는 현직검사가 이 사건에 연루된 것을 계기로 검찰 내 스폰서 문화를 점검해 보겠다는 입장이다.
김씨가 박지원 국가정보원장까지 접촉한 것으로 미뤄볼 때 그의 로비는 전방위적으로 이뤄졌을 개연성이 있다. 경찰은 몇몇 언론사 기자들도 김씨의 사기행각에 연루된 것으로 보고 내사를 하고 있다.
경찰은 명단을 확보한 인사들이 받은 금품에 대해 대가성이 있는지를 철저히 조사해서 합당한 조치를 해야 한다. 청탁금지법에는 공직자나 언론인 등이 직무와 관련없이 1회 100만원 또는 한 회계연도에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으면 형사처벌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선물내용을 볼 때 현재로선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으면 이 법률을 적용할 대상은 그렇게 많지 않아 보인다.
사기꾼 김씨를 만나 식사한 적이 있는 홍준표 의원은 “정치를 하다 보면 지지자라고 하면서 만나는 수없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만났다고 해서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지만, 설득력이 없다. 대부분 공직자들은 김영란법 시행 이후 대가성 여부와 관계없이 민원인에게 커피 한 잔 얻어먹는 것도 꺼리고 있다. 국회의원이라고 해서 ‘지지자’로부터 선물을 받거나 식사대접을 받을 특권은 없다.
이 사건은 흔히 권력집단으로 분류되는 정치권, 검경, 주요언론사가 외부 유혹에 얼마나 둔감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경찰은 광범위하고 성역 없는 수사를 통해 사기꾼과 사회 유력 인사들의 유착 의혹 실체를 한 점 의혹 없이 규명해야 한다. 어물쩍 넘어가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