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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후보의 안보관’만은 꼭 체크해 보길

심충택 논설위원 재향군인회가 최근 “제20대 대통령은 안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며 차기 대통령의 5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한국 정통성을 부정하지 않을 것, 북한과 대화하면 평화가 올 것이라는 환상이 없을 것, 한미동맹 위축이나 손상을 초래하지 않을 것, 한·미·일 군사협력을 강화할 의지가 있을 것, 군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폄훼하지 않을 것 등이다.벌써 2주일째로 접어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사태를 보면서 재향군인회가 제시한 차기 대통령의 조건에 공감하는 국민이 많을 것이다. 당초 우리 국민은 압도적인 전력을 가진 러시아가 단기간에 우크라이나를 점령할 것으로 전망했지만, 우크라이나 국민은 소총과 화염병을 들고 침략군에 맞서고 있다. 그 중심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있다. 그는 러시아의 암살위협에도 조국을 떠나지 않고 “내게는 죽음을 겁낼 권리가 없다”며 ‘대통령 값’을 하고 있다. 외신에서는 그를 두고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윈스턴 처질 전 영국총리와 닮았다며 호평을 하고 있다.젤렌스키 대통령과 가장 대비되는 우리나라 최고지도자는 조선시대 선조임금이다. 1592년 임진년 4월 13일 왜군이 부산포에 상륙한지 20일도 채 안된 4월 말 선조는 궁궐을 버리고 피란을 떠난다. 징비록에서는 ‘경복궁 앞을 지나갈 무렵 양쪽 길에는 백성들의 통곡소리가 요란했다. 임진강에 이를 무렵 밭에서 일하던 사람이 왕을 보며 “나라님이 우리를 버리시면 우린 누굴 믿고 살아간단 말입니까”라며 통곡했다. ‘5월 1일 날이 저물어서야 개성을 향해 떠나려고 했는데 경기도의 아전과 병사들이 모두 도망쳐 호위할 사람마저 없었다’고 선조의 피란과정을 기록했다. 징비록은 이어서 ‘왕이 성을 비우자 성안에 남아있는 백성을 보니 살아 있는 사람도 모두 굶주리고, 야위고, 병들고, 피곤하여 얼굴색이 귀신과 같았다’고 했다.선조와 같은 무능한 지도자 때문에 우리 민족은 셀 수 없을 정도로 주변 국가의 침략을 당해왔다. 그때마다 백성들은 살상을 당하고 금수강산은 초토화됐다.그럼 지금 우리는 안전한가. 친북·친중 외교로 일관해온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한국의 유일한 안보시스템인 한미동맹은 뿌리째 흔들려 왔으며 지금도 악화일로에 있다.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정에서도 미국의 동맹국 가운데 유일하게 우리나라만 대러제재 동참에 우물쭈물하다 미국측으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다. 현재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4국(호주·인도·일본·미국) 안보협력체인 ‘쿼드(Quad)’에도 한국은 쏙 빠져 있다. 위험한 독재정권인 북한·중국·러시아가 바로 옆에 있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나라는 강한 동맹국 없이 혼자 힘으로 평화를 유지할 수 없다.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면서 우리 국민은 독재정권의 무자비한 본성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오늘은 20대 대선 선거일이다. 지금 우리 국민 상당수는 진영논리에 갇혀 대통령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조건도 생각해 보지 않은 채 투표를 하는 경향이 있다. 최소한 나와 가족의 생명과 직결된 후보의 ‘국가 안보관’만이라도 체크해 보고 투표장에 가야 한다.

2022-03-08

투표율 낮으면 民意 왜곡된다

심충택 논설위원 모레(4일)부터 이틀간 실시되는 대선 사전투표를 앞두고 국민의힘이 잔뜩 긴장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전국으로 확산돼 고령층을 중심으로 투표율이 뚝 떨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지금의 확진자 추세라면 사전투표일이나 9일 본선거일에 얼마나 많은 국민이 오미크론에 감염될지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다. 선관위가 확진자와 격리자를 위해 별도의 투표시간을 마련했지만, 기저질환자나 병세가 좋지 않은 유권자들은 투표를 꺼릴 확률이 높다.사전투표가 조작가능성이 있으므로 선거일인 9일 당일에만 투표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퍼지는 것도 국민의힘으로선 안타까운 부분이다. 지난 2020년 치러진 21대 총선에서 사전투표 부정이 있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이번 선거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을 우려해 사전투표를 꺼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민의힘 주지지층인 보수층과 60대이상에서 사전선거를 부정선거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실제 지난 4·15총선 당시 투표용지 출력 과정에서 다른 투표용지와 겹쳐 인쇄(배춧잎 투표지)됐거나, 투표용지 고정을 위해 부착한 화살표 모양 스티커가 함께 인쇄(화살표 투표지)된 경우가 있어 부정선거 논란이 있었다. ‘요즘 세상에 부정선거가 어떻게 가능하냐’는 생각이 우리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유튜브를 통해 지난해 총선의 부정선거 음모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국민의힘으로선 유권자 모두가 사전투표든, 본투표든 투표를 하기를 바라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박빙승부가 예상되는데다 유권자 절반 이상이 정권교체를 원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투표율은 승패를 가를 최대변수로 여겨지고 있다. 윤 후보도 “당일 투표만 해서는 이길 수 없다. 사전투표, 반드시 해 주셔야 한다”고 당부했다.민주당은 사전투표율이 높을수록 이재명 후보에게 유리하다고 보고, 사전투표 독려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결과 이 후보 지지층에서 사전투표를 하겠다는 응답이 높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전투표에서는 코로나 확진 및 밀접접촉으로 인한 격리자도 투표할 수 있다. 중앙선관위는 선거일 당일 치러지는 본투표일과는 달리, 사전투표는 이틀간 진행되는 만큼 둘째 날인 5일 확진·격리자 투표를 진행하기로 했다.선관위는 유권자가 선거제도에 대한 불신을 갖는 것에 대해 해소해 줄 책임이 있다. 이와관련, 중앙선관위 측은 “소위 ‘배춧잎 투표지’나 ‘화살표 투표지’는 투표사무원의 부주의나 인쇄 과정에서의 오류에 의한 것으로 부정선거와 무관하고, 정규 투표용지로서의 효력을 갖는다”고 밝혔다. 그리고 투표용지에 인쇄된 QR코드를 통해 투표자를 역추적하거나 누구에게 투표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는 일각의 소문은 명백한 허위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유권자들은 투표 관리의 투명성과 방역의 안전함을 100% 믿고, 사전투표든 본투표든 투표에 참여해야 한다. 그래야 민의(民意)가 왜곡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2022-03-01

코로나를 정말 독감 정도로 여겨도 될까

심충택 논설위원 정부 방역당국이 그저께 “코로나19가 빠르면 이달말, 늦어도 3월중에는 정점을 찍을 것”이라고 밝히면서, “코로나가 낮은 중증화율을 유지하면서 대규모 유행상황을 거치면 계절성 독감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치명률이 높지 않은 풍토병(엔데믹)으로 자리잡는다”고 했다.방역당국은 확진자의 치명률과 위중증률 수치로 이를 설명하고 있다. 과거 코로나 델타변이의 치명률과 위중증률이 0.7%와 1.4% 수준이었던 반면 오미크론 치명률과 위중증률은 0.18%와 0.42%로 뚝 떨어졌으며, 특히 50대이하의 경우 오미크론 치명률은 거의 0%에 가까워, 코로나를 독감수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는 논리다.정부발표와는 달리 국민들은 지금 주변에 확진자가 속출하면서 이제 전염병과의 전쟁을 시작하는 기분이다. 매일 확진자와 위중증환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모두가 좌불안석이다.얼마 전 시골 고향마을에 갔더니 골목에 인적이 없어 마을 전체가 텅빈 느낌이 들었다. 대부분 자식과 떨어져 혼자 사는 노인이 많아 너도나도 코로나 감염 불안 때문에 집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덜컥 코로나에 감염되기라도 하면 보건소 외에는 의사진료를 받을 수 없는 농어촌지역 주민들의 경우 이렇게 셀프방역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대도시에 사는 시민들도 불안하기는 시골노인들과 마찬가지다. 가족 중 한 사람이 확진이 될 경우 격리는 어떻게 해야 될지, 한밤중에 아이가 갑자기 열이 나면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받아줄지, 10세이하 아이들도 확진자가 많다는데 안심하고 학교에 보내도 되는지 등등 걱정이 태산이다.최근 약국과 편의점에서 의사 처방 없이 살 수 있는 감기약 해열제가 불티나게 팔리는 것도 언제 코로나에 걸릴지 모르는 불안감 때문이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가정 내 상비약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어린이 해열·진통제 판매량이 최근 3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지난주 상급종합병원이 즐비한 수도권에 사는 생후 7개월 아기가 응급병원 이송 중 사망한 사건은 아이가 있는 가정을 더욱 불안하게 하고 있다. 119구급대는 신고 6분 만에 집에 도착해 10곳이 넘는 병원에 전화를 걸어 입원이 가능한지 수소문했지만 모두 ‘준비가 안된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방역당국이 “병상은 충분하다”고 큰소리치지만 응급상황에서 영유아나 임신부들이 곧바로 입원할 수 있는 병상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숨진 아기 가족에게는 이미 우리나라 의료체계가 붕괴한 것과 다름없다.정부의 느슨한 방역 탓에 재택 치료자들이 길거리를 활보하는 것도 시민들을 24시간 공포에 떨게 한다. 재택치료자 무단이탈 사례가 논란이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최근에는 해외입국자 자가 격리 애플리케이션 사용이 중단되면서 확진자들이 거리를 누벼도 방역당국이 파악하기 어려워졌다.최근 대중교통을 이용해 보면, 주변사람이 기침이나 재채기라도 하면 승객 모두가 화들짝 놀라 피하는 장면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이런 공포상황 속에서 정부가 코로나를 감기정도로 여기고 안심하라는 식으로 말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일이다.

2022-02-22

설 민심, 야권 후보 단일화의 최대 변수

심충택 논설위원 지난 주말 다녀온 고향마을에서도 주된 화제는 역시 대통령선거였다. 그중에서도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단일화될 수 있는지 여부에 많은 관심이 쏠려 있었다. 아마 설 연휴가 지나면 이러한 유권자 관심은 여론조사에 반영돼 나타날 것이다.과거 대선후보 단일화 사례를 보면 대체적으로 선거 30~40일 정도시기에 단일화에 합의했거나, 단일화 방식에 합의했다. 내일(27일) 한 시민단체 주관으로 처음 열리는 야권후보 단일화 토론회에서 어떤 말이 오갈지 주목이 된다.국민의힘 원희룡 선대본부 정책본부장과 국민의당 이태규 선대위 총괄본부장이 최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언급한 내용은 후보 단일화의 어려움을 잘 말해주고 있다. 이날 원 본부장은 “추울 땐 난로가 필요했는데 지금 봄이 왔다”며 윤 후보의 ‘자강론(自强論)’에 무게를 싣는 당내기류를 강조했고, 이 본부장은 “단일후보 조사를 했을 때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상대로 경쟁력에선 안 후보가 월등히 높다”며 안 후보의 독자출마론을 거론했다.양당의 입장도 그렇지만, 현재로선 후보단일화로 가는 길이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그러나 안 후보 지지율이 20%선까지 갈 경우 유권자들의 단일화 요구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2강 1중 구도가 고착화 되면 야권의 후보 단일화 없이 정권교체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단일화 여론이 강해지면 양쪽 모두 단일화 테이블에 앉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조선일보가 지난 15~16일 전국 18세이상 유권자 1천1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정권교체를 원하는 응답자 중에서 야권단일화가 필요하다고 답한 사람은 65.2%에 이르렀다. 경쟁력에선 윤 후보(38.5%)가 안후보(35.9%)를 앞선 반면, 적합도에선 안 후보(41.3%)가 윤 후보(36.3%)를 앞섰다.원희룡 본부장이 언급한 것처럼, 윤 후보측은 최근들어 지지율이 상승추세를 보이면서 단일화 없이 대선 승리가 가능하다는 생각을 가진 듯 있다. 후보 단일화 과정의 진통 등을 고려하면 4자 대결도 해볼만 하다는 게 윤 후보 측 내부 판단이다. 특히 안 후보와 각을 세우고 있는 이준석 대표가 후보 단일화 추진을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내분이 재현될 우려가 있다는 점도 윤 후보 입장에선 부담이다.그러나 정권교체의 가능성을 높이려면 후보 단일화가 전제돼야 하기 때문에, 이 문제가 집중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하면 대선이슈의 중심이 후보 단일화 쪽으로 옮겨갈 가능성은 크다. 단일화 방식으로는 현재 ‘여론조사 경선 뒤 공동정부 구성’이 그럴듯하게 거론되고 있다. 서로 손해 보지 않고 명분이 있는 합의형 단일화 방식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윤 후보의 지지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거나 안 후보 지지율이 가라앉을 경우 여론조사 경선은 생략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야권후보 단일화가 이루어지면 지지율 흡수와 컨벤션 효과까지 더해지면서 대선 판세가 급변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 시각이다. 어쨌든 설 연휴이후의 민심이 야권후보 단일화의 최대변수가 될 전망이다.

2022-01-25

‘선거구 수도권 집중’ 두고만 볼텐가

심충택 논설위원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오늘(19일) 지방선거 선거구 획정을 위한 간담회를 갖지만 언론의 관심을 끌지 못해 아쉽다. 대선보도 영향도 있겠지만, 인구만을 기준으로 한 현행 선거구 획정방식이 농어촌지역 정치소멸을 가져온다는 문제의식을 언론사들이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잘 반영하는 현상이다. 현행대로 사람수만을 기준으로 선거구를 나눌 경우, 인구가 집중되는 수도권은 지방선거나 총선거 의석수가 계속 증가하게 되고, 반대로 비수도권 의석수는 정원을 늘리지 않는 한 줄어들게 된다. 국회의원 선거구의 경우 지금도 수도권 의석이 절반정도를 차지하고 있다.최근 경북 성주·청도군을 비롯해 이번 지방선거에서 광역의원 선거구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전국 농어촌 자치단체 13곳이 집단행동에 들어간 것도 언론에서는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헌법재판소가 지난 2018년, 광역의원 인구 상하한선 편차를 4대 1에서 3대 1로 바꾸라고 판결하면서 올해 지방선거부터 이들 자치단체의 광역의원이 각각 한 명씩 줄어들게 돼 있다.총선이든, 지방선거든, 농어촌 지역 선거구의 경우 인구 하한선과 함께 선거구 면적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예천군을 예로 들면 현행 선거구 획정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알 수 있다. 예천군은 19대 총선(2012년)부터 21대 총선(2020년)까지 매번 선거구가 조정됐다. 19대에는 문경·예천 선거구, 20대에는 영주·문경·예천 선거구, 21대에는 안동·예천 선거구에 속했다. 예천군은 2024년 치러지는 22대 총선에서도 군위군의 대구편입이 예고돼 있어 또다시 선거구가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 선거 때마다 예천군민들이 느끼는 ‘정치적 소외감’이 얼마나 클지 짐작하고도 남는다.국회입법조사처에서는 선거구획정의 기본방향과 관련해 ‘사람 수가 적은 농어촌지역은 인구수만을 기준으로 하게 되면 지역대표성이 선거구획정에 반영되지 못한다’는 보고서를 낸 적이 있다. 도시로의 인구유입과 농어촌 인구감소가 가속화하고 있는 현실에서 인구수만을 편향되게 적용한다면 농어촌 선거구는 도시지역에 비해 지나치게 면적이 확대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에도 대부분 주에서 하원 선거구를 획정하면서 인구수 외에도 지리적 인접성, 지역이익의 대표성 등을 일반적인 획정원칙으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선거구획정 개선과 관련한 입법안이 여러차례 국회에 제출됐지만, 정개특위에서 한번도 심사받지 못한 채 폐기돼 왔다. 총선때마다 수도권 의석 비중이 계속 커지면서, 국회에서는 수도권 규제완화 입법이 거침없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14일 수도권 군사시설 제한보호구역이 대거 해제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과반의석을 획득한 수도권 국회의원들의 의사결정은 블랙홀처럼 모든 자원을 수도권으로 빨아들이고 있다. 국회가 국토 전체를 효율적으로 쓰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정개특위에서 선거구 획정 개선문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하길 기대한다. 선거구 획정이 합리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의석수를 무기로 한 수도권 국회의원들의 권력남용을 막을 수가 없다.

2022-01-18

설에는 골목상권에 活氣 넘쳤으면…

심충택 논설위원 정부가 이번 주부터 백화점과 대형마트를 ‘방역패스’ 대상에 추가로 포함시키자 수도권 주요언론사들이 일제히 비판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이들 시설을 이용하는 소비자 입을 통해 방역패스 적용에 대한 부당성을 제기하는 목소리를 집중 보도하고 있다. 예를들면, ‘임신이나 기저질환, 백신 부작용이 있으면 백신을 맞지 않은 게 아니라 못 맞는 것인데 갑자기 장도 볼 수 없는 죄인으로 만드느냐’, ‘대형마트는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돕는 생필품을 판매하는 곳인데, 모든 고객이 모바일로 방역패스를 확인해야 하는 절차를 거치게 됨으로써 고령 고객들의 불만이 높다’, ‘고객 불편이 증대되고 기본권을 보장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등의 논리다. 취재내용에 수긍은 가지만, 한편으론 생필품을 꼭 대형마트에서 구입해야 되느냐는 생각이 든다. 집주변에는 전통시장도 있고, 동네가게도 널려 있다.여기에서 대형마트에 대한 일부 언론사들의 보도태도를 언급하는 것은 지난 2013년 ‘대형마트 규제법’이 국회에서 통과됐을 때도 이들 언론사들이 대형마트 입점규제와 의무휴업을 문제 삼는 기사를 약속한 듯이 쏟아낸 기억이 나기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대형마트 규제법은 중소도시 곳곳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던 대형 유통시설이 골목상권을 붕괴시키자 일요일을 포함한 공휴일 월 2회 의무휴업을 해야 하고, 점포를 개설할 때 주변상권영향평가서와 지역협력계획서를 지방자치단체에 제출하도록 등록요건을 강화한 내용이었다.당시 이들 언론사들은 대형마트가 일요일 휴업을 한다고 해서 소비자들이 전통시장을 찾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농어민의 피해사례를 집중 부각시키며 영업규제에 대한 반대여론을 확산시키는 데 주력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대형마트들은 당시 수도권 언론을 마치 전단지처럼 활용하며 광고비를 뿌려댔다.그동안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를 이용할 경우, 골목 가게들과는 달리 안심콜이나 QR코드만으로 입장 가능했다. 그러나 이번주부터는 전자출입명부 QR코드 등으로 백신 접종 완료 인증을 하거나 PCR 음성확인서를 제출해야 입장할 수 있게 됐다. 일주일의 계도기간을 거쳐 다음주(17일)부터는 방역패스를 위반할 경우 해당 시설은 물론 개인에게도 과태료가 부과된다.정부가 이번에 대형유통시설에 대해 방역패스를 확대한 것은 집단감염 위험성에 대비한 측면도 있지만 타 시설과의 형평성 문제를 많이 고려했다. 자영업자들과 학부모들은 그동안 식당과 학원, 독서실, 도서관은 방역패스를 적용하면서 백화점과 대형마트는 왜 포함시키지 않느냐는 불만을 많이 제기해 왔다.설 연휴가 이제 보름 남짓 남았다. 대구·경북 시도민들은 이번 설 장은 대형마트 대신 전통시장이나 주변가게에서 봤으면 좋겠다. 똑같은 돈을 골목상권에서 쓰는 것과 대형마트에서 쓰는 것은 지역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다르다. 대형마트에서 쓰는 돈은 당일 서울본사에 입금되지만, 골목상권에서 쓰는 돈은 곧바로 지역사회로 환원된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영세 자영업자들이 번 돈은 은행에 들어갈 여유도 없이 생계비로 쓰여진다.

2022-01-11

새해 지방의회의 변신 기대된다

심충택 논설위원 새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곳 중의 하나는 지방의회다. 지방자치법 개정으로 오는 13일부터 지방의회에 정책지원관제도가 도입되고, 현재 지방자치단체장이 가지고 있는 지방의회 사무직원들의 인사권이 지방의회 의장에게 넘어가기 때문이다. 새롭게 선보일 정책지원관은 국회의원 보좌진처럼 지방의원들의 의정자료 수집과 조사 연구를 지원하는 업무를 한다. 인사권 독립과 정책지원관제 도입은 지방의회의 오래된 현안이었던 만큼, 이 제도 시행으로 지방의회가 새해에는 어떻게 변신을 할지에 대해 많은 국민과 언론이 눈여겨보고 있다.우리나라 지방자치제는 1991년 지방의회 출범, 1995년 민선단체장 선출로 오랜 경륜을 쌓아왔다. 그렇지만 이러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지방의회에 대한 중앙정부의 전횡은 30년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비슷하다. 아직도 어린학생 취급을 하고 있는 것이다. 법률기관인 지방의회를 ‘행정안전부 지침’이라는 문서 한 장으로 좌지우지하려 한다. 지방의회의 고유권한인 조례제정권과 예산심의권도 정부지침 앞에서는 힘을 못 쓴다.정부가 지난달 지방의회에 전달한 ‘정책지원 전문인력 운영 가이드라인’을 보면, ‘지침횡포’의 전형(典型)이 뭔지를 알 수 있다. 이 가이드라인에서는 정책지원관 공모를 광역의회는 6급 이하, 기초의회는 7급 이하로 의원정수의 50% 내에서 1년 또는 2년 임기로 뽑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책지원관을 뽑되, 임기는 1∼2년짜리로 하라는 내용이다. 응시요건 지침도 까다롭기 짝이 없다. 학사학위를 취득한 사람의 경우 국회·지방의회·법인·단체 등에서 법무 회계·법제·감사·조사 관련 분야 1년 이상 실무경력이 있어야 응시를 할 수 있도록 했다.지방의회에서 이러한 자격을 갖춘 정책지원관을 선발하기가 어렵다는 불만의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특히 농어촌지역에 있는 지방의회에서는 이러한 요건을 갖춘 정책지원관을 찾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집행부 공무원들이 지방의원들을 무시하는 태도도 여전히 문제다. 국회와는 달리 지자체 공무원들은 지방의회에 출석해 적당히 거짓말을 해도 괜찮다. 위증죄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불출석에 따른 법적 제재조치가 없기 때문에 지방의회의 출석요구가 있더라도 바쁘다고 핑계 대고 나가지 않아도 상관없다.나는 지방자치의 정착을 막는 이 같은 부조리들은 중앙집권적 사고에 젖어 있는 수도권지역 언론에 많은 책임이 있다고 본다. 어떤 조직이든 비리를 저지르는 일부 구성원이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일부의 일탈행위들을 모아서 지방의회 전체를 매도하는 기사를 수도권 언론에서는 주기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지방자치 정착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면 알겠지만, 대부분 지방의원들은 주민들과 희로애락을 같이하면서 생활정치를 실천하고 있다. 초선시절에는 아마추어로 시작하지만 재선, 3선을 거치면서 국회의원 못지않은 정치가로 자리 잡아 간다. 지방의회가 잘 정착해서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꽃을 피울 수 있도록 국민 모두가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2022-01-02

롯데쇼핑몰, 대구 경제에 정말 도움될까

심충택 논설위원 대구시 수성구 대흥·연호동 수성의료지구내 ‘대구롯데쇼핑타운’(롯데몰)이 지난 5월 공사에 들어가 현재 지반정지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2014년에 토지분양을 받은 이후 우여곡절 끝에 7년 만에 공사를 시작했다. 그동안 롯데몰 부지는 주상복합단지, 또는 호텔이 건설된다는 등등의 소문이 나면서 롯데측의 진의에 대한 무수한 의혹이 제기돼 왔다. 롯데측은 7만7천49㎡ 에 달하는 이 부지를 3.3㎡당 538만원에 매입했다. 부동산업계는 현재 주변 상업용지가 3.3㎡당 1천500만원 선에 거래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수성의료지구는 이름 그대로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이 해외 제약사 등 의료관련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헐값에 부지를 분양한 곳이다.2025년 개점을 목표로 하고 있는 롯데몰은 지난해 6월 지하 1층, 지상 8층, 연면적 25만314㎡규모로 건축허가를 받았다. 대구 신세계백화점(21만4천635㎡)보다 매장 면적이 17% 가까이 큰 수준이다. 백화점, 아울렛, 영화관, 스포츠시설, 외식, 오락 등을 하나의 공간에 집약시킨 대구 최대 쇼핑몰로 만든다는 계획이다.권영진 대구시장은 수성의료지구에 롯데몰이 입점하게 돼 대구경제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공식석상에서 밝혀왔다. 정말 대구시장은 롯데몰로 인해 대구경제가 좋아지고 고용이 확대될 것으로 믿고 있는가. 나는 정반대의 현상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우선 롯데몰이 수성의료지구에 둥지를 틀면 반경 2km내에 있는 범어·만촌동과 시지지구의 골목상권은 붕괴될 것이 뻔하다. 전통시장 상인들과 골목상권 자영업자들이 코로나19보다 더 무서워하는 것은 백화점, 할인점 같은 대형 쇼핑몰이다. 평소에 집 주변 가게나 전통시장을 주로 이용해 오던 시민들은 생필품 구입이나 외식에 편리한 대규모 쇼핑몰이 생기면 그곳으로 발길을 돌리게 돼 있다. 골목상권은 공동체 경제의 정맥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그만큼 골목상권에 생계를 걸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다. 롯데몰이 얼마나 많은 지역업체를 입점시키고, 대구시민을 직원으로 고용할지 모르겠지만, 주변 골목상권 붕괴는 많은 서민들을 길바닥에 나앉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롯데측은 지난달 롯데몰 사업 주체를 대구 현지법인(롯데쇼핑타운대구)에서 서울 본사(롯데쇼핑)로 변경했다. 사업주체 변경의 의미는 대구 현지법인이 운영 중인 동대구역 신세계백화점과는 달리, 하루 매출액이 그날 바로 서울본사로 올라가게 된다는 것이다. 롯데몰이 신세계백화점과 비슷한 매출액을 올린다고 가정할 경우, 매년 1조원에 달하는 매출액이 서울로 빠져 나가게 된다.사업주체 변경 외에도 롯데측의 신뢰성을 의심할 만한 일이 최근에 또 발생했다. 롯데측과 대구시가 맺은 상생협약에는 롯데몰 건설공사 시 지역업체 이용과 인력참여를 확대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지만, 최근 롯데몰은 지반정지 작업을 하기 위한 공사를 외지업체와 20여억원에 계약체결을 했다. 이러한 상황인데도 대구시는 롯데측 입장만 변호하고 있으니 그 이유가 궁금하다.

2021-12-26

이젠 대선후보 ‘본인검증’에 집중하자

심충택 논설위원 20대 대통령을 뽑는 대선이 유력후보들의 가족 과거사를 파헤치는 지겨운 네거티브전으로 변질됐다. 지난 주말에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동시에 가족의 불법행위와 불미스러운 일로 국민에게 사과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이 후보는 장남의 불법도박 의혹사건에 대해, 윤 후보는 아내 김건희씨의 경력 부풀리기 의혹에 대해 사과했다. 유력 대선후보들의 가족문제가 선거의 모든 이슈를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된 느낌이다. 후보들이 가끔 내놓는 국정비전과 정책공약은 이 블랙홀에 금방 묻혀 버리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대선후보 가족과 관련된 네거티브전은 앞으로 더 치열해질 가능성이 크다. 상대후보 가족이나 주변인물에 대한 네거티브와 정치공작은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더욱 기승을 부리는 게 선거판 관행이다. 상대후보에 대한 혐오감을 조성하는 네거티브 캠페인은 지지층을 결집하는 데는 최고의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진영에 관계없이 언론사들도 가족검증이라는 미명하에 이 싸움에 적극 부화뇌동(附和雷同)하는 감이 없지 않다. 이번 대선이 역대 최악의 비호감으로 진행되는 것이 종편방송을 중심으로 한 언론탓이라는 목소리가 많다.선거판이 점점 더 저질로 흐르는 것에 대해 여야에서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다행이다. 여권원로인 유인태 전 국회사무총장은 지난주 윤 후보의 아내 김건희씨의 사생활 관련 의혹제기에 대해 “어디 유흥업소 종업원 운운하는데 어머니가 그렇게 돈이 많은 집 딸이 그런데 나오는 경우를 봤느냐. 그런 걸 가지고 하면 오히려 역풍 맞을 수 있다”고 했다. 야권에서도 이 후보 가족문제에 대한 과도한 공격을 자제하자는 말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금태섭 선거대책위원회 전략기획실장은 이 후보 장남의 불법도박의혹과 관련해 “당사자가 관여하지 않은 가족 구성원의 개인문제를 소재로 공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두 사람의 말에 공감하는 국민이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국내외적으로 전에 없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코로나19 위중증환자와 사망자 급증으로 온 국민이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고, 외부적으로는 미·중 패권 경쟁으로 국가경제가 위태위태하다.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여야 선대위가 상대후보 가족의 약점이나 파고 있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지금부터라도 대선후보들은 국가 현안해결에 대한 각자의 생각과 대안을 국민에게 설명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국회의원과 전직 장관까지 지낸 사람들이 번갈아 등장해 상대후보 가족의 개인사 문제를 놓고 왈가왈부하는 모습은 우리나라 정치권의 천박한 수준을 국내외에 드러내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각 정당 선대위는 미래세대를 위한 비전 제시와 정책공약이 선거승부를 좌우할 중도층 공략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 언론은 대선전이 ‘가족배틀’로 흐르는 것을 부추겨선 안 된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비대면 시대 속에서는 국민을 대신해 언론이 각 후보들을 심층 검증하는 역할을 해야한다. 특정후보 가족에 대한 차별적이고 편파적인 보도에 집중하면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려서는 안된다.

2021-12-19

포스텍에 의과대학이 꼭 필요한 이유

심충택 논설위원 경북도와 포항시가 포스텍(포항공대) 의과대학 설립을 위해 총력을 쏟고 있다. 지난주에는 포항출신 김정재·김병욱 의원이 나서 국회에서 ‘의사과학자 양성’을 주제로 정책세미나를 개최했다. 이 세미나에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김기현 원내대표, 조해진 교육위원장도 참석해 의사과학자 양성을 국책사업화하겠다고 약속했다.이철우 경북도지사와 이강덕 포항시장이 포스텍 의대 설립에 목이 타는 이유는 경북도내에 아직 고난도 중증질환에 대한 치료역량을 갖춘 상급종합병원이 한 곳도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2~3월 대구·경북에서 신천지사태로 코로나19가 대유행했을 당시 경북도내 위중증 환자들은 입원할 병실을 구하지 못해 119구급차를 탄 채 전국을 헤매야 하는 고통을 당했다.기존 의료체계를 붕괴시키는 심각한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세계 각국은 지금 의사과학자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바이러스 공포 속에서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한 주역들은 의사출신 과학자다. 예를들어 지난해 12월 미국 화이자와 함께 ‘화이자-바이온텍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 독일의 생명공학기업인 바이온텍은 터키 이민 가정 출신의 의사과학자 부부가 설립한 회사다.불행하게도 한국은 아직 신약(오리지널 의약품)이나 백신을 자체 개발한 경험이 전무하다. 세계 30대 제약사에 한국 회사는 한 곳도 끼지 못하고 있다. 특허가 만료된 오리지널 약품을 복제해서 손쉽게 돈을 벌고 있기 때문에, 엄청난 인적·물적자원이 투입되는 신약개발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의사과학자가 양성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돼 있지 않은 것이다.이강덕 포항시장이 최근 다녀온 미국 보스턴시 하버드 의대 부속병원(매사추세츠 종합병원) ‘분자이미지연구소’에는 의사과학자들이 중심이 돼 신약개발과 임상실험을 주도하고 있다. 이 연구소에는 의사뿐만 아니라 물리학자, 화학자, 유기화학자, 공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협력연구를 펼치고 있는데, 포스텍이 의대를 설립할 경우 모델로 삼을 만한 곳이다.주영석 카이스트(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는 “의사과학자는 의사이지만 환자 진료보다 연구·개발에 더 많은 시간을 쓰는 사람”이라고 언급했다. 주 교수는 “우리나라 의과대학에서도 현재 수련의(인턴), 전공의(레지던트) 과정에 들어가는 대신 기초의학을 전공하는 의사들이 있긴 하지만 의대 졸업자 중 기초의학교실로 가는 의사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어 기초의학 붕괴 위기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하버드 의대처럼 실력있는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학부시절부터 바이오 분야에 익숙한 인재를 발굴해 내는 시스템이 돼 있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과학인재들이 몰려 있는 포스텍 같은 유수 공과대학에 의과대학이 없다는 것은 국가 100년대계 차원에서 불행한 일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는 신종 전염병 백신이나 치료제를 자체개발할 수 없다는데 대해 많은 열등감을 느껴왔다. 포스텍 의대설립과 의사과학자 양성은 대선후보들이 주요공약으로 내걸어야 할 현안이다.

2021-12-12

‘이준석 가치’ 평가절하하면 안 된다

심충택 논설위원 정치부 기자 시절 각종 선거를 취재하면서 다양한 여야 후보들의 캠프를 경험했다. 외부에 대해 개방적인 캠프가 있는가 하면, 이너서클(Inner circle) 중심의 꽉 닫힌 캠프도 있다. 주로 거물급 인사들의 선거캠프가 닫혀 있다. 이너서클 멤버들이 외부인사들을 경계하면서 충성심 경쟁을 펼치는 배타성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선거캠프의 이너서클은 생리상 폐쇄적일 수밖에 없다. 문고리 권력을 나누기 싫기 때문이다.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 캠프의 주류인물로 구성된 ‘윤핵관’이 논란이 되고 있다. ‘윤석열 핵심 관계자’를 줄여서 쓴 윤핵관은 일종의 이너서클이다. 경선과정에서 윤 후보를 지지하거나 도왔던 중견정치인들 다수가 해당인물로 거론되고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윤 후보에게 불만을 터트린 것도 근본원인은 윤핵관에 있다. 이 대표는 이들이 의도를 갖고 당내분란을 조장하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윤핵관 일원으로 지목되는 익명의 한 의원은 이 대표를 두고 “당무우선권을 가진 후보가 대표를 징계할 수 있다. 초장에 버릇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막말이다. 전형적인 호가호위(狐假虎威)다.최근 국민의힘 초선의원들 사이에서도 “선대위의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되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대선에 임하고 전쟁을 치러야 하는데 문고리 3인방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는 불만이 나왔다. 윤 후보가 소수의 핵심인물에 의존해서 선거를 치르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권성동·장제원·윤한홍 의원을 ‘문고리 3인방’이라며 부정적으로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이 대표는 지난 6·11 전당대회에서 젊은 당원들과 2030세대의 열광적인 지지로 36세에 제1야당 당수로 선출됐다. 당시 국민이 이준석을 국민의힘 사령탑으로 선택한 본질은 권위주의와 부패에 찌든 낡은 정치를 바꾸라는 것이다. 이 대표는 취임 후 국민의힘을 디지털정당으로 변신시켜 기업처럼 효율성과 효과성을 추구했다. 각 시·도당에서는 온라인 입당신청자가 쇄도했고, 호남지역에서도 신규당권이 급증했다. 국민의힘 전성기는 그때였다.윤 후보가 지난 3일 울산에 머물던 이 대표를 직접 찾아가 그동안의 갈등을 풀고 ‘일체(一體)’가 되기로 한 것은 다행이다. ‘윤핵관 울타리를 벗어난’ 윤 후보의 리더십이 돋보인 시간이었다. 선대위 합류를 보류했던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도 총괄선대위원장직을 수락했다니 이제 ‘윤석열 선대위’는 순조로운 출발을 할 수 있게 됐다. 민주당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6·11전당대회 당시와 같은 국민의힘의 변화다. 그때의 변화 돌풍이 지금 불면 집권여당이 아무리 자금이나 조직, 여론형성 등에서 압도적인 우위에 있더라도 선거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각종 여론조사를 분석해보면, 내년 대선은 부동층이 많은 젊은 유권자들의 의중에 따라 승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윤 후보는 이준석의 가치를 정확하게 평가해야 하며, 그가 활동할 공간을 충분히 만들어 줘야 한다. 윤 후보가 포용력과 수권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민심은 하루아침에 싸늘해진다.

2021-12-05

‘국민의힘 안녕한가’라고 묻고 있다

심충택 논설위원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에 재학하던 중 당 대변인으로 선발된 국민의힘 임승호 대변인이 지난주 당의 선대위 인사와 관련 “정말 지금 저희 당의 상황이 안녕한 것인가. 매일 선대위 명단에 오르내리는 분들의 이름이 어떤 신선함과 감동을 주고 있나”라는 의문을 제기하면서 “솔직히 요즘 당 상황을 보고 있으면 답답하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활력이 넘쳐나던 신선한 엔진이 꺼져가는 느낌”이라고 했다.국민의힘 지지자 중에는 임 대변인의 말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이준석이라는 젊은 정치인이 당 대표로 당선되면서 활기찼던 국민의힘의 신선한 엔진동력이 꺼져가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이준석 대표의 등장으로 새롭고 건강한 바람이 일어나는 것처럼 보였지만, 지금 선대위 구성 과정에서 드러나고 있는 국민의힘의 모습은 과거 ‘낡은 정당’으로 회귀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게 한다.오는 12월 6일 출범을 앞두고 이상기류에 휩싸인 윤석열 대선후보 선대위가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선대위 총괄위원장으로 내정됐던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 특유의 벼랑끝 전술을 펴면서 윤 후보의 리더십을 흔들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김 전 위원장은 현재 윤 후보의 끈질긴 구애에도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식의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이며 당과 선대위를 흔들고 있다. 당내에서는 “빼고 가자”는 견해도 있는 모양인데, 충분히 나올 만한 소리다.지난주에는 더불어민주당 핵심인사들이 김 전 위원장을 만나 국민의힘 선대위 참여를 만류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민주당 인사들이 야당의 선거사령탑으로 거론되는 인물을 만나 ‘거기 가면 안된다’는 식의 무례한 태도를 보인 것은 순전히 김 전 위원장의 처신 때문이다. 노련한 정객인 김 전 위원장이 자신의 최근 행태가 야당과 윤 후보 리더십에 얼마나 큰 상처를 줄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혼란한 시국에 우리 국민이 정치 신인 윤석열을 야당 대선 후보로 뽑은 것은 새롭고 건강한 정치를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기성 정치인과는 다른 국가의 미래 청사진을 제시하고, 강력하게 실천해 달라는 바람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윤 후보가 집권 후의 국가운영 로드맵을 고려해 구성하고 있을 선대위 진용을 보면 이러한 국민 기대와는 거리가 있다. 지금 윤 후보 주변에 여의도 정치인들만 들끓고 있는 현상이 이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윤 후보가 더 잘 알겠지만, 국민의힘이 지금의 위치에 있는 것은 전적으로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국민 덕이다. 선대위 구성을 놓고 이번 주에도 혼란한 상황이 계속되면 민심은 돌아설 수 있다. 누가 뭐래도 선거의 중심은 후보다. 이리저리 휘둘리는 모습을 더 이상 보여선 안된다. 대선은 아직 3개월 이상 남았다. 윤 후보가 그동안 컨벤션 효과에 힘입어 여당 후보에 비해 지지율이 앞서왔지만, 선거 판세는 여러 번 요동칠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선대위를 정상적으로 가동해서 집권 후 시행할 분야별 주요 정책제시를 통해 민심을 얻어야 한다.

2021-11-28

유력 대선후보들의 ‘열린귀’ 아쉽다

심충택 논설위원 신라 제48대 경문왕 때 경주 도림사 대나무 숲속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소리가 들렸다는 삼국유사 설화는 정치권력의 ‘막힌 언로(言路)’를 풍자한 글이다. 현 정권의 메인스트림인 586세대도 대학시절 언론의 자유를 목말라했다. 당시 운동권 학생들에게 거의 유일했던 의사표현의 도구는 신문방송이 아니라 대자보였다. 그러면 그들이 180석 국회의석을 통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장악한 현 정부에서는 언론의 자유가 열려 있는가.지난해 한 대학생이 대학 구내에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하는 대자보를 붙였다는 이유로 법원이 유죄(벌금 50만원) 판결을 내린 것은 현 정권의 언론관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당시 법조계에서는 “정부 비판 대자보를 붙인 것에 무단침입 혐의를 씌워 기소를 하고, 법원이 독재 정권에도 없었던 판단을 내렸다”는 비판이 나왔다.더불어민주당이 또다시 언론장악을 위한 언론중재법 개정 카드를 꺼내들었다. 연말까지 가동하는 국회 언론·미디어제도개선 특위에서 언론에 대한 5배 징벌적 손해배상을 골자로 하는 언론중재법을 비롯해 신문법, 방송법 등 언론 관련 법안을 패키지로 논의한다고 한다. 정상적인 언론사의 취재행위를 법으로 차단하고 대자보시대를 열자는 것과 다름없이 생각된다. 문제는 차기 유력 대통령후보들의 언론관도 현 정치권력과 다름없다는 점이다.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최근 자신에 대한 언론보도와 관련 “우리가 언론사가 돼야 한다. 저들의 잘못을 우리의 카톡, 텔레방 댓글로 커뮤니티에 열심히 써서 언론이 묵살하는 진실을 알리자”고 했다. 이 후보는 지난 14일 경남 거창군청 앞에서도 지지자들에게“기울어진 운동장, 나쁜 언론 환경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즉흥연설을 했다. 이 후보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한창 논의 중일 때 이 법안에 대해 “최대 5배 징벌적 손해배상은 약하다. 언론사를 망하게 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도 언로가 막혀 소통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변의 충고를 듣는 것을 꺼려해 중진급 국회의원들도 그의 방을 찾는 것을 어려워한다는 소문이 나오고 있다. 윤 후보가 기자들과의 접촉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소리는 오래전부터 나왔다. 언론 인터뷰 등을 최소화하고 기자들이 캠프사무실에 들락날락하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대선 경선기간 동안 그의 캠프는 ‘서초동 캠프’라고 불렸다. 캠프가 마치 검찰청처럼 폐쇄적이고 관료화돼 있다는 의미다.유력 대통령 후보 모두 우호적인 보도를 하는 언론은 가까이하고, 비판언론은 멀리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언론의 근본적 기능이 정치권력에 대한 감시자이자 비판자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의 비판을 감당하는 것은 정치인의 숙명이다. 언론은 권력자들의 홍보도구가 아니다. 이재명·윤석열 후보 모두에게 언론에 대한 거부감이나 적대감을 버리고 언론의 견제 비판 기능을 즐길 줄 아는 철학을 가지길 권한다. 권력자가 비판의 소리를 포용하는 역량이 없으면 부패할 수밖에 없고, 역사적으로도 뒤끝이 좋지 않았다.

2021-11-21

청년세대를 위해 대선후보가 할 일

심충택 논설위원 어떤 선거든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하는 지역이나 사람은 특별한 대접을 받는다. 지난해 총선에서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국책사업으로 성사시킨 PK(부산·경남) 지역이 대표적이다. 내년 대선에서는 아직 대부분 부동층으로 남아 있는 2030세대가 선거 결과를 좌우할 캐스팅보트로 부상하고 있다.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민주화를 거치면서 진보성향이 강한 40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보수성향이 강한 60대이상 고령층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특정 이념에 정착하지 않는 20대와 30대 표심은 두 후보가 모두 놓치고 있다.전체 유권자 중에서 약 3분의1을 차지하는 이들 청년세대는 이념과 지역에 크게 얽매이지 않고 선거 당시의 정치 상황과 이슈에 따라 투표하는 ‘스윙보터’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자기 이익 중심으로 정치 현안을 판단하기 때문에 정권에 의한 피해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 대한 충성도가 낮다. 실제 사회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 당장 현실에 필요한 변화를 제시하는 것에 관심도가 높다.청년세대의 이러한 성향을 인식하고 여야후보들은 최근 이들이 관심을 보이는 부동산과 일자리 공약을 집중적으로 내놓고 있다. 민주당은 선대위에 후보 직속 기구인 ‘청년 플랫폼’을 신설해 당내 청년들을 전면 배치했다. 외부 인사 영입도 준비 중이다. 경선 과정에서 ‘398 후보(20대의 3%, 30대의 9%, 40대의 8% 지지율)’라는 조롱을 들은 윤석열 후보는 첫 공식 일정부터 이준석 대표를 만나 청년세대의 취약한 지지세를 확장할 아이디어를 들었다. 특히 윤 후보는 경선 후 홍준표 의원을 지지했던 청년당원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당장 홍 의원의 선거대책위원회 참여는 불투명한 상황이지만 홍 의원이 젊은 층에 어필했던 장점을 적극 벤치마킹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다만, 여야후보들이 청년세대들을 향해 경쟁하듯이 선심성 공약을 쏟아내는 모습은 걱정스럽다. 대부분 공약이 돈 퍼주기다. 이재명 후보는 청년 기본 대출 1천만원과 연 200만원의 청년 기본 소득을 약속했다. 기본 주택 100만호 중 일부는 청년들에게 우선 배정하겠다고 했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청년들에게 세계 여행비 1천만원을 지원해주면 어떠냐는 말까지 했다. 윤석열 후보도 마찬가지다. “저소득층 청년에게 월 50만원의 청년 도약 보장금을 최장 8개월간 지급하겠다”고 했다. 청년 재산 형성 보조도 언급했다.홍준표 의원이 청년세대에게 강한 지지를 받은 것은 국회의원 정원축소와 로스쿨 폐지, 대입 수시 폐지 같은 정책공약을 내놨기 때문이다. 이준석 대표 취임 이후 국민의힘 신규당원이 급증한 것도 새로운 정치와 정책 등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일회성의 선심경쟁으로는 젊은층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그것은 오히려 이들의 미래에 부담을 지우는 포퓰리즘일 뿐이다. 대선후보들은 청년층의 절절한 고민과 기대를 경청하면서 이들의 삶의 질이 실질적으로 나아질 수 있는 정책공약을 개발하고, 서로 치열하게 공약검증을 하길 바란다.

2021-11-14

국가부채를 가볍게 여기는 정치권력

심충택 논설위원 요즘 신문 광고란을 보면 ‘상속한정승인’ 공고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신문공고일로부터 일정기간 안에 공고인에게 채권을 신고하지 않으면 부채청산에서 제외된다는 내용이다. 부모의 빚을 상속한 자녀가 법원판결을 받아 부모 채권자들에게 빚잔치를 하겠다는 광고다. 부모의 빚을 감당하지 못하는 자녀가 빚잔치를 하기 위해 송사를 벌이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안타깝다. 자식에게 가장 해서는 안 될 일이 빚을 물려주는 것이라는 말은 만고의 진리다.부모의 상속을 포기하는 절차는 까다롭기 짝이 없다. 1순위 상속인(직계비속·자녀, 손자녀)이 상속포기를 하면 2순위(직계존속·조부모), 3순위(피상속인의 형제자매), 4순위(4촌 이내 친족)에 차례대로 넘어간다. 사망한 부모의 빚 때문에 일가친척 모두가 원수처럼 지내는 집이 비일비재한 것은 이처럼 빚이 4촌 친척에게까지 대물림되기 때문이다.국가 부채도 가계 빚과 마찬가지다. 국가가 빚을 갚지 못하면 어떤 일이 생길지는 우리국민의 경우 IMF사태 때 너무나 혹독하게 겪었다. 대통령을 잘못 뽑아 감당하지 못할 빚을 차기 정부에 상속하면 그 국가는 빚잔치하는 자녀처럼 죽음과 같은 고통을 겪게 된다. 국가신용등급 하락과 함께 원화가치가 떨어지고, 해외투자가 철회되거나 끊기면 전 국민이 온전하게 살아갈 수 없다.지난주 국회 예산정책처가 우리나라 빚이 8년 뒤에는 2천조원을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해보다 8.4% 증액된 내년 예산안 수준의 재정 팽창 기조가 유지된다는 가정 아래 계산한 결과다. 나랏빚 500조원(2014년 533조원)이 1천조원(2022년 1천73조원) 되는 데 8년 걸렸는데, 1천조원이 2천조원(2029년 2천30조원) 되는 데는 7년밖에 안 걸린다는 의미다. 문재인 정부 5년간 국가 채무가 408조원 늘어나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간의 증가액 351조원을 훨씬 웃돈다.현재 집권여당 대선주자인 이재명 후보는 문재인 대통령보다 국가 빚에 대한 경각심이 더 없는 것 같아 걱정이다. 이 후보는 김부겸 국무총리까지 나서서 “재정여력이 없다”고 밝혔지만, 최하 30만~50만원의 전국민 6차 재난지원금을 추가로 지급해야 한다고 고집하고 있다. 위험수위에 도달한 국가부채는 뒷전이고, 포퓰리즘으로 내년대선에서 이기겠다는 생각만 머리에 꽉 차 있는 것 같다. 이러니 야당에서 ‘자유당시대 고무신선거와 다름없다’는 비난이 나오는 것이다.이재명 후보는 지난주 열린 민주당 선거대책 위원회에서 “우리나라 국가부채비율이 크게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도 좀 인지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우리나라 빚은 문 정부가 들어선 이후 수직상승하고 있다. 가계부채는 세계 최악이다. 2023년부터는 국가채무의 연간이자가 20조원을 넘어선다. 전국민 재난지원금처럼 일시적으로 국민에게 돈을 푸는 것은 서민생계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청년과 퇴직자, 실직자들이 지속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 마련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정치권력이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2021-11-07

‘대통령 리더십’ 안 보이는 與野후보

심충택 논설위원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여야대진표 확정이 임박했지만, 당선 후 5년간의 국가비전을 선명하게 제시하는 후보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정책·공약은 실종됐고, 즉흥적인 ‘아무말 잔치’가 벌어지고 있다. 정권교체에 집중해야 할 야당은 후보간 상호비방으로 날 새우고 있다. ‘이사람이 대통령감이다’고 할 만한 리더십을 가진 후보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경제·사회·외교적으로 극복하기 힘든 난제가 쌓인 대한민국의 미래가 암울하다.내일(2일) 당 선대위를 가동하는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후보는 대장동의혹 반박에 집중하며 아직 1호공약조차 내지 못했다. 첫 민생행보에서는 ‘음식점 허가 총량제’라는 급진적인 의제를 내놓으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이 후보는 ‘음식점 허가 총량제’ 언급에 대해 “자살할 자유는 자유가 아니고, 불량식품을 먹는 것이 자유가 아니고, 굶어 죽을 자유도 (자유가) 아니듯, 마구 식당을 열어 망하는 것도 자유가 아니다”라는 안타까움에서 표현한 발언이라고 했지만, 관련기사엔 ‘사회주의적 사고가 머리에 가득차 있다’는 댓글이 넘치고 있다.오늘부터 당원투표가 진행되는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에서는 ‘파리떼’ ‘야비하다’와 같은 원색적인 인신공격이 나올 정도로 상호비방전이 과열되고 있다. 경선전이 진흙탕 싸움으로 일관되면서 국민의힘 지지율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위기를 느낀 당 초선의원 35명이 지난주 대선주자들에게 ‘통합의 리더십’, ‘원팀경선’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초선의원들은 “도가 지나친 공격으로 정권교체를 바라는 많은 국민께 실망과 우려를 드리고 있다”며 후보들의 자중을 당부했다. 국민의힘 대선주자와 캠프인사들간의 상호 인신공격은 뒤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상대를 향한 손가락질과 조롱, 비아냥이 계속되면 정권교체는 물건너 간다. 각 후보와 캠프는 국민들이 등을 돌리기 전에 과열된 경선분위기를 진정시켜야 한다.국민의힘은 조직과 자금, 여론전 등 모든 면에서 집권당인 민주당과 비교해 보면 경쟁이 되지 않는다. 외부 환경도 좋지 않다. 민주당은 이낙연 전 대표가 최근 이재명 후보와 만나 정권재창출에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원팀으로 뛰고 있다. 그동안 제3지대에서 조직과 정책을 다져온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오늘 대선링에 오른다. 야권통합을 위해 협력해야 할 안 대표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벌써부터 자극적인 언어를 사용해 가며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당내 지도자의 리더십이 취약한 국민의힘으로선 그야말로 사면초가(四面楚歌) 상황에 놓여있다.국민의힘이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유권자들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정책·공약제시다. 지금까지 야당 대선후보들이 내놓은 정책과 공약은 대선후보 공약집에 넣기엔 구체성이 많이 부족하다. 경선 토론회에서 후보들끼리도 서로 지적했지만, 치밀한 준비없이 설익은 정책을 마구 내놓은 경향이 없지 않다. 국민의힘 후보들이 지금부터 국정운영을 책임질만한 청사진과 리더십을 보여주지 않으면 대선에서 집권여당을 이기기가 쉽지 않다.

2021-10-31

집권여당의 ‘대구조롱’ 어디까지 갈 건가

심충택 논설위원 더불어민주당 양기대 의원(경기 광명시을)이 지난 13일 “코로나19 대확산의 근원지가 대구”라고 말했다는 뉴스를 듣고 ‘저 사람이 정말 우리나라 국회의원이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날 국회 국감에 출석한 권영진 시장에게 “대구가 신천지 교인들의 집단감염사태로 코로나19 대확산의 근원지가 됐다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대구의 초기대응이 미흡하지 않았느냐”고 따졌다. 중국이 아니라 대구로 인해 코로나19가 한국에 확산됐다는 기가 막힌 주장이다.코로나19가 2019년 12월 말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시작돼 전 세계로 확산됐다는 것은 정설로 굳혀져 있다. 당시 중국에서 매일 수천 명의 환자가 발생하자 유럽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바이러스 차단을 위해 중국인 여행객 입국 제한조치에 나섰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중국 차단’ 필요성이 강하게 거론됐다. 그러나 정부는 세계보건기구 권고에 따른다며 ‘고위험지역(우한) 차단과 출입국 검역 강화’라는 방역원칙을 발표한 후 국제공항 입국장을 열어놓았다. 그 사이 국내에선 중국을 다녀왔거나 이들과 접촉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전파됐다. 대구에서도 지난해 2월 18일 국내에선 31번째로 첫 환자가 나왔다.국민의힘 대구출신 국회의원들은 지난주 발표한 ‘(권 의원의)망언규탄 입장문’에서 “문재인 정권은 코로나19 초기 감염자 입국을 막지 못해 대구시민들을 속수무책으로 위험에 노출시켰다. 코로나 대확산의 진짜 근원지는 문재인 정권 자신이다”고 밝혔는데, 공감이 간다.대구·경북은 신천지교인인 31번 환자가 발생한 이후 8일 만에 누적 확진자가 1천명을 넘어섰다. 양 의원이 대구시의 초기대응이 미흡하다고 했는데, 당시 방역상황은 2월 25일부터 3월 9일까지 대구에 머물며 병상과 생활치료센터 확보를 진두지휘한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잘 알고 있다. 대구시민과 방역당국, 의료진은 일심동체가 돼 바이러스와의 싸움을 벌이면서 52일만에 ‘확진자 제로’라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대구시민은 스스로를 봉쇄했고, 대구시 코로나19 비상대응본부 구성원들은 모두 밤을 꼬박 새우며 대구의 의료시스템을 지켜냈다. 당시 생활치료센터와 드라이브 스루 선별검사, 이동검체검사, 자가격리자 의료진관리 등 코로나19 방역의 핵심적인 노하우는 모두 대구가 만들어냈다. 초기대응이 미흡했다는 소리를 들을 이유가 없다.대구시민들이 당시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 양 의원처럼 집권여당과 그 지지자들은 대구에 비수를 꽂는 언행을 서슴지 않았다. 정부는 ‘우한폐렴’이라는 단어는 못쓰게 하면서 ‘대구발 코로나19’라는 지역비하 단어는 마구 썼다. 민주당 홍익표 의원은 “대구경북에 봉쇄정책을 시행하겠다”고 언급해 시민들은 대구가 감옥으로 변할지 모른다는 공포를 느껴야 했다. 민주당 한 청년위원은 “문 대통령 덕에 다른 지역은 안전하니 대구는 손절해도 된다”고 했다.대구 국회의원들도 입장문에서 지적했지만, 집권여당은 대구시민들을 같은 국민으로 여기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2021-10-17

‘위드 코로나’ 국민적 합의 선행돼야

심충택 논설위원 지난해 2월 말 대구에서 코로나19가 대유행했을 때 제1·2 생활치료센터(대구시 동구 중앙교육연수원, 경북대 기숙사) 개소와 운영을 주도한 경북대 의대 이재태 교수와 이택후 교수는 “코로나19 방역에서 생활치료센터는 새로운 표준을 제시한 신의 한 수였다.이 시설이 없었다면 예상할 수 없는 비참한 현실에 직면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시민들이 잘 기억하고 있겠지만, 세계 어디에도 없던 생활치료센터는 코로나19 확진을 받고도 병실이 없어 집에서 입원을 기다리던 환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 직후 대구지역 의료계의 끈질긴 요청으로 개설됐다. 당시 정부에서는 “대구지역 확진자 80% 이상은 의료적 치료가 필요 없거나 진통·해열제만 필요한 가벼운 증상을 보이고 있다”며 경증환자에 대한 격리치료 대책을 내놓지 않다가, 3월 들어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생활치료센터 개설을 허가했다.추석연휴를 전후해 방역당국이 10월말쯤 경증 코로나19 환자를 생활치료센터에 보내지 않고 재택치료를 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는 것을 들으면서 악몽과 같았던 지난해 2월의 대구상황이 재연되지 않을까라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주 “다음 달 말쯤 접종 완료율 70%를 넘기면 ‘위드(with)코로나’를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방역당국은 이미 위드코로나 준비에 들어갔다. 위드코로나는 확진자 수를 감소시키는 데 중점을 둔 현 방역 체계 대신 위·중증 환자와 사망자 수를 중심으로 관리하는 것을 말한다. 확진 판정을 받더라도 병세가 위중하지 않으면 집에서 통원치료를 받도록 하겠다는 것이다.정부가 국민의 방역 피로감과 의료자원의 한계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점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추석 연휴 기간 인구 대이동으로 전국에서 확진자가 쏟아지고 있는 마당에, 대통령까지 위드코로나 운운하며 국민의 긴장감을 풀어지게 하는 것은 정말 신중하지 못한 모습이다.확진자는 아무리 증상이 경미해도 약으로 치료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집에 있으면 불안하다. 더 큰 문제는 집에 방치된 확진자로 인한 연쇄 집단감염이다. 부모가 확진이 되면 자녀가 감염될 확률이 높아질 것이고, 자녀가 어린이집·유치원 원생이거나 초·중·고 학생이면 지역사회에 대규모 집단감염사태가 발생할 것이다. 이를 누가 감당할 것이며, 누가 책임질 것인가. 주변에 확진자가 널려있다는 사실을 알고 시민들이 지금과 같은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위드코로나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국민적 합의를 거쳐야 한다. 정부가 확진자에 대한 역학조사를 포기하면 상식적으로 환자와 사망자 수는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게 돼 있다. 국민들이 코로나19로 인한 인명 피해와 방역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피해를 놓고 선택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합의에 앞서 전제돼야 할 것은 코로나19 치명률이 독감과 비슷하다는 과학적 증거가 명백해야 하고, 환자가 집에 있어도 가족과 지역사회가 모두 안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드코로나는 정부가 전염병 방역을 포기하겠다는 말과 다름 아니다.

2021-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