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열린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회장의 추도행사가 주목을 받으면서 삼성과 대구와의 운명적인 인연을 떠올리게 된다.
이 회장이 대구를 첫 사업 장소로 선택한 것은 1930년대 일제강점기 때다. 1938년, 28세였던 그는 중국과 만주를 떠돌며 중계무역을 경험한 후, 서문시장(큰장) 맞은편에 전문 경영인 두 명과 함께 지금 삼성그룹의 모태인 삼성상회를 설립했다. ‘별표국수’라는 브랜드를 가진 삼성상회는 창업초기부터 국수를 생산하면서 큰돈을 벌었다. 6·25전쟁 중에는 별표국수가 피난민들의 주식(主食)이 되다시피 했다. 전쟁 중 삼성상회 앞에는 매일 피난민과 대구시민들이 몰려와 장사진을 쳤다고 전해진다. 그는 삼성상회에서 얻은 수익금으로 부산에 삼성물산을 재건했다.
이 회장은 1954년에는 대구에 제일모직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대구는 당시에도 섬유산업이 발전한데다, 서문시장에는 전국적인 섬유류 도매상이 몰려 있었다. 여기에다 대구시가지를 가로지르는 신천이 공업용수를 공급해 주었기 때문에 공장입지로는 최적지라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신천인근에 있는 침산동 논밭 7만여 평을 공장부지로 확보했다.
제일모직 건설 당시 이 회장은 가건물에 사장집무실과 숙소를 만들고, 공사현장을 직접 지휘했다. 그는 특히 제일모직 사원들의 기숙사를 지을 때 와세다대학 재학 시절에 읽은 ‘여공애사(女工哀史)’라는 소설에 영향을 받아 많은 공을 들였다고 한다. 1956년 5월 2일 제일모직이 ‘골덴텍스’ 생산을 시작한 이후에도 이 회장은 자주 대구에 내려와 제일모직 숙소에서 기거했다. 대구시는 중구 ‘삼성상회’ 터와 제일모직이 있던 자리인 북구 대구삼성창조캠퍼스까지 4㎞ 구간을 ‘경제 신화 도보길’로 조성해, 이 회장의 발자취를 기념하고 있다.
삼성그룹을 승계한 이재용 회장이 최근 비메모리 반도체분야 투자적지를 찾는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끌고 있다. 현재 전 세계 비메모리 시장에서 삼성은 2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1위와의 격차가 매우 큰 상황이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초격차(경쟁업체가 추격할 수 없는 기술 격차)’를 달성하려면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 삼성전자는 오는 2030년까지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 연구개발(R&D)과 생산시설 확충에 133조원을 투자하고 전문인력 1만5천명을 채용한다는 계획도 발표해 놓은 상태다.
삼성그룹이 잘 파악하고 있겠지만, 대구에 있는 경북대와 디지스트(DGIST)의 비메모리분야 R&D 인프라는 국내 어떤 대학보다 경쟁력이 있다. 대구·경북지역 대학에서 한 해 배출되는 반도체 전문인력도 수도권에 뒤지지 않는다. 특히 대구에는 K-2군공항이 이전하면 정주여건이 최고 수준인 후적지가 생겨난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취임 직후부터 비메모리 반도체 대기업 유치를 위해 전력을 쏟고 있다.
이재용 회장이 최첨단 반도체 생산 인프라를 갖춘 투자처를 찾는다면, 삼성상회와 제일모직 설립 때 할아버지 이병철 회장이 선택한 것처럼 대구가 최적지라는 조언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