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정규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사람들은 누구나 불안(不安)한 감정을 안고 살아간다.불안의 사전적 의미는 ‘마음이 편하지 않다’는 뜻이다. 불안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가 안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이나, 걱정하는 마음’이다.누구나 오지 않은 미래를 알고 싶어 하고 예측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다. 미래는 준비하고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불안 덕분에 미래를 대비하고 미래를 안전하게 만들고 나를 성장하게 한다.이렇듯 불안은 매우 고마운 감정이다. 즉, 불안(不安) 자체가 병적인 것은 아니다.그러나 병(病)적 불안(pathological anxiety)은 미래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특별한 이유 없이 막연하게 그 결과를 재앙(災殃)적으로 예측한다. 재앙적으로 예측하는 불안은 오히려 미래를 효율적으로 대비하지 못하게 해 미래를 안전하게 만들지 못하게 하고 성장하지 못하게 한다.병(病)적 불안으로 과도한 심리적 고통을 느끼거나 현실적인 적응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는 질환을 불안장애라고 한다. 불안장애에는 여러 질환이 있는데, 우리에게 비교적 친숙해진 진단명 공황장애도 불안장애의 일종이다.그러나 불안장애의 대표적인 질환은 범 불안장애(汎不安障碍, generalized anxiety disorder)인데 잘 알려지지 않는 것 같다.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편람 제5판에 따르면 범불안장애 진단기준의 핵심적인 특징은 일상생활을 할 때 사소한 일에도 지나치게 과도한 불안과 걱정을 하는 상태를 말한다.범 불안장애의 핵심은 걱정이다. 걱정은 과거보다는 미래에 대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걱정을 하면 더 나은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과도한 걱정은 오히려 더 큰 걱정을 가져오고 불안을 증폭한다.앞서 언급한 공황장애의 평생유병률은 3%인데, 범 불안장애의 평생유병률은 9% 정도로 알려졌다. 범 불안장애는 이렇게 흔한 병임에도 진단이 잘되지 않고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첫 번째로 범 불안장애의 걱정은 남이 느끼기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일을 걱정하기 때문에, 또한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하는 만성적인 경과이기에, 단순히 ‘예민한 성격’으로 치부된다.따라서 걱정이 많은 것은 자신의 예민한 성격이 문제이지 병으로 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걱정이 팔자’라는 말이 있는데, 유난히 걱정이 많은 것은 범불안장애 일 수 있다.또 범불안장애 불안의 특징은 ‘부동성(浮動性)’이다. 일상적인 삶 속에서 불안이 너무나 만연해있기에, 일상 상황이나 활동에서 막연하게 둥둥 떠다닌다는 의미에서 ‘부동성 불안’이라고 한다.갑자기 짧은 기간 극심하게 삽화적으로 일어나는 공황장애에 비해 서서히 덜 극심한 양상으로 발병하고 지속적이고 만성적인 경향이 있다. 따라서 어떤 특정 상황에서의 불안감이 아니고 갑작스럽게 심각한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므로, 이를 병(病)이라 생각하지 않고 성격이라 생각하고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두 번째로 범 불안장애는 만성적인 자율신경계의 과잉 각성 증상으로 인해 신체적 증상으로 많이 나타난다.특히 우리나라는 불안의 감정 표현이나 걱정의 인지적 표현보다 신체적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예를 들면 두통, 근육통, 피로감, 소화불량, 가슴 두근거림, 숨이 참, 빈맥, 빈뇨, 급박뇨, 땀이 남, 목안의 이물감, 안검경련, 손발 떨림, 손발 저림, 어지러움, 얼굴이나 가슴이 화끈거림 등의 신체적 증상이다. 따라서 신체 불편감이 우세하므로 신체장애의 일종이라 생각하고 소화기 내과, 심장내과, 호흡기 내과, 이비인후과, 신경과, 산부인과, 비뇨기과 등을 전전하며 정신건강의학과로 방문하는 경우가 드물다.세 번째로 범불안장애 환자는 불안과 걱정이 아닌 다른 증상들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불안하고 걱정이 되어서 잠들기 어렵고 자주 깨는 불면증이 나타나지만, 그냥 ‘불면증’으로 만 호소한다. 불안과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에너지가 소진되어 피곤한 것을, 그냥 ‘만성 피로’라고 호소한다. 불안과 걱정으로 머리가 멍하고 집중력이 떨어진 것을, 그냥 ‘주의력 저하’라고 호소한다.따라서 범 불안장애의 진단이 가려져 놓치는 경우가 많다. 모든 질환은 조기 진단, 조기 치료가 중요하다. 범 불안장애는 대개 청소년기 후반에서 성인 초기에 많이 발병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런데 진단은 중년기에 가장 많이 된다. 왜냐하면, 상기 열거한 이유 등으로 진단이 잘되지 않고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놓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범불안장애 환자의 3분의 2 이상이 10년 이상 경과 후 정신건강의학과를 내원하는 등 진료가 늦어지는 경향이 있다.범 불안장애를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면 예후가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공황장애, 우울장애, 알코올 의존, 약물 남용 등의 합병증으로 발전할 수 있고, 삶의 질을 현격히 떨어뜨리기 때문에 조기에 전문적인 정신건강의학과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
2023-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