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포스코 수소환원제철소와 공리주의

유성찬(협동조합) 지속가능사회연구소 소장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포항시민연대 공동대표 6월은 보훈의 달이다. 민족의 독립과 나라를 수호하기 위해 희생된 선열들을 추모하고 배우며, 희생을 제대로 보은해야 한다는 뜻이다. 포항고 재학 중 6·25한국전쟁에 학도의용군으로 참전했다가 상이용사로 돌아온 외숙부님이 계셨기에 필자에게는 보훈의 의미가 남다르다고 느끼고 있다.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던질 수 있는 마음가짐과 그 혼이 이 나라를 지탱해왔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가족과 이웃이 확장되는 공동체라는 말이 그렇게 인간에게는 중요하다. 또한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공동체를 위해 활동하고, 그런 생활양식을 가진 친구들이나 이웃들, 직장동료들을 보면 그 사람의 인격을 높이 사게 된다.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관점에서 사물과 업무를 파악하고 일을 하는 사람에게 존경심을 갖게 되는 것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도덕적 의무이다.포스코가 탄소중립사회를 실현하고자 수소환원제철소를 만들기 위해 부지 확보에 나섰다.포스코는 포항시 송정동과 송내동, 동촌동, 제철동에 걸쳐있는 공유수면 일원에 약 40만평의 용지를 조성해 수소환원제철소를 건립하는 것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포스코의 계획은 시작부터가 순조롭지 않다지난 1일 남구 호동 근로자종합복지관에서 100여명의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주민설명회를 열기로 하였으나 포스코의 자료제공이 미흡하다고 항의하는 주민들로 인해 설명회는 정상적으로 시작도 못하고 파행을 겪었다.이날 설명회는 수소환원제철소 용지조성사업에 대한 산업단지 계획변경과 환경영향평가, 교통영향평가, 재해영향평가 등에 대한 주민 등의 의견을 듣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포스코홀딩스는 그동안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본사를 서울에서 포항으로 변경, 결정했다. 그 과정에서 들은 이야기 중 하나가 수소환원제철소를 건립하기에는 포항제철소 내 부지가 협소할 뿐만 아니라 시민 정서 극복이 쉽잖다며 부지가 그런대로 2배인 광양제철소로 갈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다. 사실 확인을 위해 수소문하는 등 부산을 떨기도 했다. 그렇지만 다행스럽게도 포스코는 포항에 수소환원제철소를 건설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수소에너지산업과 관련하여서는 석유화학단지가 있는 울산지역과 무관할 수 없다. 울산은 국가산업지도에서 수소에너지특구다. ‘수소’라는 가스를 만들기에 위해서는 석유화학공정에서 발생하는 암모니아(NH3), 메탄(CH4) 등에서 수소(H2)를 분리해내어야 한다.탄소제로사회, 탄소중립경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포스코가 현재의 코크스제철법에서 수소환원제철법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은 환경분야에 대해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이다.수소환원제철법은 석탄이 소비되지 않는 방식으로 철강을 생산하는 친환경적인 방식이다. 또 그래야만 포스코의 철강제품을 유럽으로 수출할 수 있다. 2026년부터는 이산화탄소(C02)가 대량발생하는 철강제품은 탄소국경세가 붙어서 수출할 수 없게 된다.세계에서 으뜸가는 포스코가 수소환원제철법을 현실에서 성공만 한다면 대한민국은 지구상의 지도적 국가로 우뚝선다는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수소환원제철소 건립은 그렇게도 중요하다. 이제까지 코크스 제철소가 우리나라를 선진국 대열에 들어가도록 했다면, 앞으로는 수소환원제철소가 그 선진국을 밀고 갈 것이다.수소환원제철소 부지를 확보하는 과정이 순탄치는 않아 보인다. 이미 포항지역공동체가 소란스럽다. 포스코와 포항경제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포스코가 뿜어 낼 분진과 미세먼지, 환경오염물질 등으로 고통받을 피해자들이 있을 것이라는 것은 당연한 사실로 존재한다. 희생에는 보은이 있어야 하듯이 피해에는 합리적이고도 충분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 이는 지역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당연한 처사이다.주민설명회에서 보다시피 환경시민단체들과 지역주민들은 포스코가 환경영향평가업무에 있어서 불확실성을 보여줬다고 수소환원제철소 부지확보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필자는 여기서 공리주의를 떠올린다. 공리주의는 19세기중반 영국에서 나타난 사회사상이지만, 현대에서 공리주의는 공직사회에서부터 시민사회에까지 업무와 목표를 정하는 기준이 되는 도덕철학이 되었다고 본다.인간은 살아생전에 행복을 추구하기 마련이고, 그 행복을 더욱 많은 사람들이 누리게 하는 것이 법과 제도이다. 또 그 법과 제도는 소수자를 보호해야 한다. 특별히 재난과 위기 상황이 아니라면,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모토는 인간의 사회생활에서 진리에 가깝다.필자는 탄소중립사회를 선도하고자 하는 포스코의 수소환원제철소 건립을 찬동하며,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도덕철학이 포항지역공동체와 시민사회에서 우리의 일상생활, 경제생활에 근본으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물론 공동체를 위해 희생된 피해자들을 합리적이고도 충분한 보상이 이뤄져야 함은 필수이다.

2023-06-11

정치인들의 탈선과 비리 이미 도를 넘었다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여야 의원들의 탈선(deviant behavior)이 심상치 않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의원들의 비리가 드러나고 탈당, 사퇴, 구속되는 사태까지 전개되고 있다.이러한 비리와 비행이 터질 때마다 여야는 상대만을 극렬하게 비판 비난한다. 이들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은 엄청나지만 의원들의 진정한 반성이나 자각은 찾아 볼 수 없다. 흔히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고 했다.그러나 최근 진보를 자처한 민주당의 탈선은 보수정당에 못지않게 빈발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념이나 무늬만 진보이지 비리와 탈선은 보수 정당에 못지않다. 정치권은 비리가 노출될 때마다 부패 척결이나 정치 개혁을 외치지만 의원들의 탈선은 증가하는 추세이다. 이 와중에서도 양대 정당 지지율이 30%대를 유지하니 지극히 한심한 작태이다.최근 민주당의 돈 봉투 관련 스캔들이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다. 과거 배고픈 야당 시절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부패스캔들이 연이어 터지고 있다. 그들이 과거 야당일 때는 진보와 개혁을 외치면서 도덕성면에서는 집권 보수당보다 우월하다는 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당시 부패 척결, 약자와의 동행, 사회정의 실현을 당의 슬로건으로 내걸었고 그것이 당시에는 상당히 먹혀 들었다.김대중 대통령 이후 세 번이나 집권한 민주당은 보수 기득권 정당이 될 정도로 변질되었다. 지난 집권당 시절 서울, 부산, 충남지사의 성 스캔들은 성추문 정당으로 낙인 찍혀 지방 선거의 패배로 이어졌다. 지난 송영길 당대표 선출과정의 돈 봉투 배포 의혹은 당의 이미지를 또 다시 추락시켰다. 현금을 돌렸다고 의심받던 두 의원은 탈당하였다. 연이은 김남국 의원의 코인 투자는 그 개인뿐 아니라 당의 위상을 흔들고 있다. 가뜩이나 당대표 사법 리스크로 휘청거리던 판에 의원들의 비리는 당을 더욱 위기로 몰고 있다.집권 정당 국민의 힘에도 탈선과 비행의 전통은 민주당에 못지않다.해방 후 장기 집권 보수당은 부패의 상징으로 낙인찍혀 버렸다. 고인이 된 전직 대통령 전두환과 노태우의 국고 환수액은 각기 2천억 원을 훨씬 넘었다. 전두환은 추징금 922여억 원이 아직 미납 상태다.이회창 당 대표 시절의 차떼기 정당이라는 오명은 아직도 남아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변호사비 대납 등 금전 문제로 구속되었고, 박근혜 대통령 역시 측근비리와 부정으로 탄핵까지 선고받았다. 최근 곽상도 의원은 50억 뇌물 수뢰 혐의는 재판에 계류 중이다. 보훈부 장관 후보자는 겸직 금지된 12건의 변론을 재임 중 수임한 사실이 드러나 있다.최근 경실련조사에서 임대업을 겸직한 국회의원이 수두룩하고 재산증식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전체 의원들의 주식이나 가상자산을 정밀 조사한다면 여당의원 역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이 같은 정치인들의 탈선과 비행은 국민들의 정치 불신의 근원이 된다. 의원들의 이러한 탈선이 정치에 대한 무관심뿐 아니라 정치적 냉소주의로 이어질 수도 있다. 여야 모두 정치인들의 탈선이나 비행을 질타하지만 소나기만 지나면 모두 잠잠해진다.정치인들의 비행과 탈선 바탕에는 거대한 여야의 공존구도가 버티고 있다. 양대 정당은 상호 묵인과 야합이 언제나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 국회의원들은 특권부여 등 기득권 보장에는 여야가 구분 없이 잘 협조하였다. 국회의원의 세비인상과 연금, 겸직, 특권 부여에는 여야가 협력해 왔기 때문이다.지방의회에도 의원 세비 심의위원회가 조직되어 그들의 세비 인상을 통제하는데 국회에는 그런 장치마저 없는 것이 사실이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의원 정수 조정이나 의원 선출 방식마저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솔직히 공천이나 기득권 포기하는 의원은 없기 때문이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항상 부패의 온상이 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여야 정치인들의 탈선과 비리는 더욱 지능화되고 증가된다. 이러한 정치인들의 탈선과 비리를 근원적으로 막을 장치는 마련할 수 없을까.우선 국회에 대한 시민들의 견제 장치부터 마련할 필요가 있다. 국회 자율적 정화 장치인 윤리위원회만으로 의원들의 탈선까지 막을 수 없다. 언론의 국회에 대한 감시 비판 기능이 보다 강화되어야 한다. 문제는 언론, 시민 단체, 유권자 단체마저 진영정치로 인해 양쪽으로 갈라져 있다. 공정한 감시나 비판을 원천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양극화된 한국 정치 구도 하에서 여야 정치인들의 탈선과 비리는 더욱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높다.내년 총선은 또 다시 다가오고 있다. 이런 정치 문화에서 깨끗한 후보를 선택할 수 있을지 여전히 의문이다. 이런 구도에서는 양식 있는 유권자들의 정치적 무관심은 더욱 증대될 것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그레셤의 법칙이 정치판에서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을 새삼 느꼈다.

2023-06-04

한국, 3차산업혁명 문턱서 좌절위기

위현복 (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1차 산업혁명은 1760년대 영국에서 일어났다. 이에 비해 미국은 1800년대 후반에 1차 산업혁명이, 1900년대 전반기에 2차 산업혁명이 일어났다.탄소중립의 세계적 구루 제레미 리프킨에 의하면, 경제적 변혁이 발생하려면 기본적으로 3가지 요소에 전반적인 변화가 상호작용해서 일어난다고 한다. 첫째 동력원으로써 에너지, 둘째는 커뮤니케이션 매개체, 셋째는 운송·이동 수단의 변화다. 이들이 상호작용해서 경제적 변화와 혁명을 일으킨다는 것이다.19세기 후반에 1차 산업혁명이 일어난 미국은 유럽보다 100년 늦게 산업혁명이 시작되었다. 20세기에는 저렴한 석유를 바탕으로 한 중앙제어식 전력과 전화, 라디오, TV, 그리고 전국 도로망을 달리는 내연기관 자동차가 상호작용하며 2차 산업혁명을 이끌었다.현재는 3차 산업혁명이 진행 중이다. 3차 산업혁명의 동력원인 에너지는 재생에너지 바탕의 에너지원으로 바뀌고 있으며, 디지털화한 재생에너지 기반의 거대한 컴퓨터 통신망과 재생에너지로 구동되는 전기 및 연료전지, 그리고 디지털화한 운송·물류망이 상호작용해 3차 산업혁명을 이끌어가고 있다. 미국의 1차 산업혁명 때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말기로 산업혁명이 뭔지도 모르는 사이에 지나갔다. 2차 산업혁명 시기에는 일제 식민지 치하에 있었다. 해방 후에는 6·25 전쟁이 발발했다. 미국보다 100년 늦은 1960년대에 이르러서야 군사정부에 의해 1차 산업혁명, 70년대와 80년대에 2차 산업혁명이 뒤늦게 일어났다. 그후 21세기 3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와 각종 디지털 산업, 제조업이 가장 발전된 나라가 된 상태에서 선진국과 동시에 맞았다.그러나 지금 3차 산업혁명 와중에도 대한민국은 없는 것 같다. 아직 전반적인 국민 의식은 1차 산업혁명 시대에 머물러 있고, 정치인과 관료들도 2차 산업혁명 시대에 안주하고 있다. 최첨단 기업들 또한 2차 산업혁명기 ‘제조업 시대’의 유혹에 빠져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외면하고 있다.3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각종 디지털 기기, 반도체, 전기 배터리, 전기자동차 등을 가장 잘 만드는 나라인데도 의식과 가치관은 과거에 안주하고 있다. 어떤 나라보다도 앞서갈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는데도 아직도 개발도상국 코스프레를 하는 것 같다. 전 세계는 유럽 선진국을 필두로 해서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을 위해 전력 질주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뒤처지고 있다.지난해 독일은 재생에너지 비중이 49%를 넘어섰고, 미국도 30%를 향해가고 있다. 심지어 중국조차 28~29%에 달하고 일본도 25%를 넘어섰다. 반면 우리나라는 7.2%다. 재생에너지 시범지구인 제주도가 재생에너지 18%를 달성했지만, 송배전 선로 부족으로 지난해 103차례 셧다운 사고가 났다.왜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현상이 발생할까. 탄소중립 실천에 국가들이 미적거리자 글로벌기업들이 나서서 RE100(제품생산에 재생에너지 100% 사용) 달성을 주도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정부까지 나서서 CF100(원자력까지 포함해서 탄소중립)을 달성하면 안 되느냐며 글로벌 조류에 어깃장을 놓고 있다. 우리나라의 모든 공산품은 수출과 무역에 연관되어 있는데도 산업현장에서는 공장 지붕에 만이라도 태양광을 설치하자고 해도 “나라가 알아서 해주겠지”라며 딴전을 피운다.쌀이 남아돌자 ‘콩 심으라, 팥 심으라’하면서도 농지 태양광 설비는 법으로 규제해 놓고 ‘땅이 좁아 탄소중립이 불가능하다’는 타령만 하고 있다. 재생에너지는 분산에너지여서 수많은 마이크로 송배전망이 필요한데도 그간 이를 대비하지 못해 제주도는 재생에너지 18%에 셧다운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총체적인 부실 상황인데 우리나라는 탈원전을 폐기하며 재생에너지 확대정책도 함께 폐기해버린 듯하다. 선진국 문턱에서 맥을 놓아버린 모양새다. 탄소중립 정책은 에너지 자립, 에너지 안보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충분히 이 땅에 내리쬐는 햇볕과 바람을 이용해서 에너지 자립을 할 수 있는데도 딴전을 피우고 있다.송배전망을 촘촘하게 하기 위해서는 민간 참여 등 한전 단일 판매망 변화가 필요한데 오히려 한전 국유화를 외치는 이들도 있다. 수백·수천 년간 관리되어온 농촌의 전답을 이용하여 태양광과 풍력 발전을 하면 농촌도 회생하고 국토 균형 발전도 이루고 에너지 자립도 가능한데 땅 없다는 타령만 하고 있다. 더욱 한심한 행위는 마을에서, 도로에서 500m 이격거리를 두어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데 시·군 당국과 시·군 의회가 경쟁적으로 앞장서고 있다는 것이다.대한민국은 3차 산업혁명 요소들이 가장 잘 갖춰져 있는 국가다. 세계에서 휴대폰과 TV, 자동차 배터리를 가장 잘 만드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세계 각국이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조건을 가지고 있음에도 정치인과 관료, 기업인들의 의식 부족으로 3차 산업혁명 문턱에서 무너질 위험에 처해있다. 지금 우리는 글로벌 선도국으로 가느냐, 후진국으로 퇴보하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2023-06-04

‘2025 APEC 정상회의’ 경주서 열려야 한다

주낙영 경주시장 경주시가 올해 역점을 둔 단 하나의 화두를 꼽으라면 단연 ‘2025 APEC 정상회의’유치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를 뜻하는 APEC은 전 세계 인구의 약 40%, 교역량은 50%, GDP는 62%에 달한다.사실상 이 경제협력체가 세계 경제를 주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미·중·일·러 4강을 비롯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21개국 정상이 한자리에 모이는 만큼, 개최 도시가 얻게 될 유무형의 사회경제적 유발 효과는 상상 이상이다.각국 정상을 비롯해 6천여 명이 넘는 정부각료, 기업인, 언론인이 참가하는 정상회의 기간 중에는 전 세계의 매스컴을 통해 개최도시가 집중 조명된다. 반드시 경주가 유치해야하는 이유다. 여러 경제적 효과뿐만 아니라 역사문화관광도시 경주를 세계에 알리는 획기적인 전기가 될 것이다.정부에서 유치도시 선정을 위한 공식 일정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황임에도 지자체 간 유치 경쟁이 뜨겁다. 지금 경주와 경쟁하고 있는 도시는 부산, 제주, 인천이다.우리 경주만 유일하게 기초자치단체이고 다른 경쟁도시는 모두 광역지자체다. 표면상 불리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APEC 정상회의는 수도권이 아닌 지방도시에서 개최하는 것이 포용적 성장을 지향하는 APEC의 관례이기도 하다.정부의 국정목표인 ‘대한민국 어디서나 잘사는 지방시대 실현’을 위해서라도 지방도시인 경주에서 유치해야할 충분한 명분과 당위성이 있다.정상회의가 단순히 회의만 한다면 수도권이나 대도시가 편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상회의를 통해 대한민국을 전 세계에 제대로 알리고 싶다면 그 도시는 반드시 경주가 되어야 한다.APEC 정상회의가 경주에서 열린다고 상상해 보자. 행사가 열리는 11월은 형형색색의 단풍이 최절정에 달하는 시기다. 세계 정상들이 한복을 입고 불국사, 동궁과 월지, 첨성대, 월정교 등에서 찍은 사진과 영상이 전 세계로 퍼진다면 그야말로 감동 그 자체가 아닐까.이외에도 경주 유치의 당위는 차고 넘친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통문화유산의 보고이자,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도시로 한국의 찬란한 문화를 세계에 홍보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경주다. 한마디로 가장 한국다운 도시인 것이다. 지난 수년간 APEC 교육장관회의, 세계물포럼, UN NGO컨퍼런스, 세계원자력국제대회 등 대형 국제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른 경험과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다.각국 정상과 배우자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은 물론 경호와 안전면에서도 어느 곳보다 최적이다. 정상회의가 열릴 화백컨벤션센터와 경주보문관광단지는 회의장과 숙박시설이 밀접해 이동 동선이 매우 짧을 뿐 아니라 다른 경쟁도시와 달리 바다에 접해있지 않고 호리병처럼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정상 경호와 안전에 완벽한 통제가 가능하다. 2005년 APEC이 부산에서 개최됐을 때도 한미정상회담은 경주서 열렸는데 회담장소인 보문단지 일대가 경호에 최적지였기 때문이다.대한민국의 발전상을 선보이기 위한 적지 또한 경주다. 경주엔 한국수력원자력 본사와 월성원자력발전소, SMR 연구개발의 전초기지가 될 문무대왕과학연구소, 양성자가속기센터, 경주 e-모빌리티 연구단지가 있다. 특히, 최근 SMR 국가산업단지 선정은 세계에 우리 원전산업을 세일즈할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또한 포항, 울산, 구미 등 산업도시와 인접한 경주는 다양한 산업시찰을 통해 대한민국의 경제발전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최적지이기도 하다.혹자는 유치 경쟁에 있어 정치 논리나 힘의 논리를 이야기한다. 우리 경주는 20년 전에 태권도공원을 유치하고자 도전했다가 실패한 뼈아픈 경험이 있다. 태권도의 발상지이자 역사문화도시인 경주에 오는 것이 당연함에도 실패하고 말았다.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이제 다시 실패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된다. 그 어느 때보다 더 시민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힘을 모아줄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경주사람을 만나면 누구라도 APEC 이야기만 하더라는 이야기가 들려야 한다.절박한 시민들의 뜻과 의지와 열정이 모인다면 그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고 반드시 해 낼 수 있다고 확신한다. 경주시도 천재일우의 기회를 맞아 반드시 성사시키겠다는 사즉생의 각오로 모든 역량을 모아 유치 활동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2023-05-21

룰(Rule)과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김남국 의원의 파문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코인투자 논란이 가속되고 있다. 그동안 절약과 가난의 삶을 “라면만 먹는다. 낡은 신발을 신는다” 등으로 유권자들의 동정심과 후원을 구했던 그가 수십억이 넘는 코인 가상재산을 갖고 있다고 하니 유권자들은 매우 당황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국회회기 기간 중 자주 자리를 비우면서 가상코인 투자를 했다는 게 보도되면서 문제의 핵심이 급격히 의원 직분 태만으로 이동하고 급기야는 그가 가상자산 과세 유예 법안에 참여했기에 로비가 있었던가 아닌가라는 의구심도 자아내고 있다.룰(Rule)과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논리는 사실상 미국과 같은 준법이 잘 지켜지는 곳에서 기인한다. 미국에 처음 간 사람들은 자동차 정지선에 꼬박꼬박 서는 룰을 잘 지키는 미국에서 왜 쇼핑카트는 주자장 아무데나 버리고 가는지 이해가 늘 안된다.결국 룰은 ‘강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예이다. 미국서는 정지선을 안지키다 적발되면 큰 벌금이 나온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논리라면 쇼핑카트를 아무데다 놓으면 페널티를 주어야 한다. 그런데 그러한 룰이 없으니까 쇼핑카트가 아무데나 어지럽게 놓여있다. 한국에서 100원 짜리 동전을 넣어서 카트를 쓰고 다시 카트를 정리해야 100원 동전을 찾는 간단한 룰로 한국의 소핑카트는 잘 정리된다. 결국 어떤 국민이든 법을 잘지키는 국민이라는 선입견은 없다. 누구든 어떤 나라 국민이든 룰과 형식에 의해 질서가 지켜 지고 있는 것이다.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1970년대는 대학가의 시험 커닝(시험 부정)이 만연하던 시절이다. 정치적인 부정과 독재에 항거하면서도 그 자신은 커닝으로 시험을 치르는 모순된 대학생들의 모습이었다.포스텍 재임 기간 중 시험 커닝이 없는 깨끗한 캠퍼스를 경험했다. 포스텍은 미국 스탠퍼드대학처럼 ‘어너코드’(Honor Code·시험치기전 양심선언)가 있어 커닝없는 시험을 치르고 있다. 한국학생 한 명이 시험종료 시간을 지나 30초 정도 더 답변을 작성했고 이것이 문제가 되어 몇 개월에 걸쳐 학교에 소명하는 작업에서 고생했던 경우를 보았다. ‘어너코드’와 커닝에 대한 엄격한 스탠포드의 룰과 형식은 결국 스탠포드 학생들의 내용을 지배하게 되었다.“제도는 사람을 유혹한다”는 말도 있다. 따라서 교수들은 공정한 평가가 유도될 수 있는 방법으로 학생들이 커닝에 대한 유혹을 받지 않도록 하고 학생들은 그들이 말하는 ‘공정한 사회’를 위해 커닝과 같은 부정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건 자명하다.정부가 교차로 꼬리물기 금지 캠페인을 위해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고 한다. 교통의 흐름을 방해하고 운전자의 이기주의의 산물인 꼬리물기는 사실상 후진 한국운전문화의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30여 년 전 미국서 귀국한 직후 포항에서 한번은 신호등 없는 사거리에서 잠시 멈추고 주위를 살피고 전진하는데, 왼쪽 길에서 오는 차에 받쳤다. 그때서야 신호등 없는 사거리에선 눈치껏 가야하고 꼬리물기가 일반화돼 있다는 걸 알았다. 반면 미국에선 신호등 없는 사거리에선 모든 차는 정지해 사거리에 진입한 순서대로 진행하도록 돼 있다. 이 제도는 인적이 드문 곳에서도 철저히 지켜지고, 어기게 되면 벌금을 물도록 되어 있다.사실 교차로 꼬리물기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신호등 없는 사거리에서의 꼬리물기다. 고속도로에서도 뒤에 오는 차가 더 빨리가라고 경적소리를 내기도 한다.한국 교통문화에 안타까움을 느끼는 건 이러한 후진성이 ‘적당주의’와 관련이 있고, 그러한 적당주의는 룰과 형식이 잘 정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교통체계를 좀더 정교하고 과학적으로 체계화하고, 운전자, 보행자의 교통규칙을 룰과 형식의 관점에서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김남국 의원의 문제도 룰과 형식의 강화로 막을 수 있었다. 그에게 문제가 있다면 룰과 형식에서도 문제를 찾아 볼 수 있다. 그가 한 행동들 코인 가상제도 투자, 회기 기간 중 좌석 이탈, 재산목록에 가상재단 불포함 등등은 모두 불법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의원의 가상재산도 재산목록에 포함해야 한다는 룰 개정은 늦은감이 있지만 조속히 시행되어야 한다. 가상재산도 언제든지 현금화 할 수 있다면 당연히 포함되어야 한다.국회 개정 시간에는 특정한 이유없이 자리를 무단 이탈해서는 안 된다는 룰을 ‘어너코드’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나 아무 때나 자리를 떠날 수 있다면 그건 나라일을 의논하라고 국회의원을 뽑아준 국민에 대한 모독이다.다양한 방법으로 국회의원 윤리를 위반한 의원은 다음에는 공천될 수 없다는 룰도 필요한데 최근 민주당은 오히려 공천 룰을 약화 시켰다는 전언이다. 하자가 있는 후보가 공천되도록 룰을 약화시켰다는 룰과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룰을 거꾸로 올라가는 모습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 김남국 의원 사태를 계기로 룰과 형식을 더 강화해야 한다. 그러한 강화를 통해 내용이 향상되는 그런 사회, 그런 국가를 기대해 본다.

2023-05-21

스포츠과학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다

박성률트레이닝과학연구소장동국대 의과대학 연구초빙교수 대한민국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은 1976년 8월 1일 몬트리올에서 나왔다. 그 당시 한국 스포츠는 인간의 한계만을 시험대에 올려 지켜보던 시대였다 해도 과장이 아니다. 몬트리올 올림픽 금메달 1개에서 시작해 88서울올림픽과 92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금메달 12개를 획득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10년 남짓이다. 이렇게 단기간에 세계 최상의 경기력을 갖추게 된 우리나라 엘리트스포츠의 힘은 어디에 있을까?특히나 아시아인은 인종학적으로 불리하다고 여겨졌던 올림픽 수영에서 금빛 물살을 가른 박태환과 스피드 스케이팅의 모태범, 이상화, 그리고 고난이도 기술 개발로 자신의 이름을 딴 체조의 양학선까지도 스포츠과학의 지원으로 철저히 분석되고 연구된 결과물이 적용된 성과라면 믿을 수 있겠는가?이렇듯 엘리트스포츠의 세계적인 도약을 위해서 스포츠과학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인 시대가 됐다. 그렇다면 과학은 엘리트선수의 경기력에 어떻게 기여하는가? 경기력은 체력뿐만 아니라 기술, 심리 요인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된다. 과학은 이러한 경기력 결정요인을 실험 도구와 첨단장비를 이용해 측정, 분석하고 경기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훈련 방법과 훈련 환경을 개선하는 데 기초적인 정보를 제공한다.엘리트스포츠에서 체력은 경기력을 결정하는 가장 기초적인 요인인데, 무엇보다 측정과 평가 방법이 중요하다. 과거 체력 측정은 100m 달리기나 오래달리기 또는 윗몸일으키기와 같은 단순한 방법으로 실시되면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자료를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현재는 다양한 측정 도구와 방법이 이용되는데, 근관절기능검사는 선수의 관절 가동 범위 및 근력, 그리고 운동부하검사는 산소 운반체계 능력으로 나타내는 최대산소섭취량과 운동 수행을 예측하거나 훈련 강도를 평가하는 데 활용되는 젖산역치를 측정한다.이에 더해 스포츠과학은 운동 지속 시간과 에너지 소비 형태를 측정해서 각 종목별로 요구되는 에너지 시스템을 분석하여 효율적인 훈련 프로그램을 구성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한다. 일반적으로 100m 달리기의 경우 약 98%의 인원질 시스템(ATP-PC)과 약 2%의 무산소성 해당과정과 젖산 시스템으로 에너지 대사가 이루어지고, 마라톤의 경우 약 95%의 유산소 시스템과 5%의 젖산 시스템으로 에너지가 생성된다. 이같이 종목에 따라 쓰이는 에너지 시스템에 대한 분석은 개별 선수의 체력 상태에 맞는 훈련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현장에 적용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스포츠과학은 선수의 역학적 기술과 지각-동작 기술을 측정, 분석해 경기력 향상에 기여한다. 영상 장비를 이용한 빠른 신체 움직임의 순간 위치 변화와 힘의 작용에 대한 분석은 잘못된 동작을 교정하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데도 과학적 근거를 제시한다. 게다가 선수의 연속 동작과 움직임 분석을 위해 비디오 영상분석 장비도 활용되는데, 대표적인 사례로 역도의 장미란 선수가 자세 교정 등으로 베이징올림픽에서 세계신기록을 경신하며 금메달을 따는 데에 기여도는 상당했다.엘리트선수의 경우 경기 상황에서 필요한 정보를 찾아내고 상대방의 움직임을 정확히 예측하는 능력 또한 매우 중요하다. 안구추적기는 안구 움직임을 촬영할 수 있는 소형 카메라가 부착된 장치를 머리에 착용하여 선수가 보는 장면과 눈동자 초점이 한 화면에 나타난다. 이러한 장비를 이용한 측정과 분석은 패널티킥 상황에서 골키퍼가 키커의 어깨와 공을 차는 다리에 시선을 고정하거나 배드민턴에서 상대방의 라켓을 든 팔과 머리 사이의 공간에 시선을 집중하여 공이나 셔틀콕의 방향을 예측하는 훈련에 적용된다. 그뿐만 아니라 스포츠과학은 심리검사를 통해 엘리트선수의 심리적 특성을 파악하고 심리기술훈련을 통해 심리적 변화를 최소화하는 데 기여한다, 다시 말해 스포츠현장에서 경기력 향상을 위한 스포츠심리의 역할은 시합이나 훈련 상황에서 선수 스스로 심리상태를 조절할 수 있도록 심리기술을 훈련하는 데 있다. 선수들이 훈련하는 환경과 실제 경기하는 환경과의 차이에서 비롯된 여러 요소들은 선수들의 불안, 각성 혹은 집중력 등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최근에는 전통적인 심상 훈련에다 과학을 접목해 실제 상황과 유사한 환경에서 훈련할 수 있도록 가상현실을 적용한 심리기술훈련이 적용되고 있는데, 대표적인 사례로 2020도쿄올림픽에서 올림픽 양궁 역사상 최초 금메달 3관왕인 안산 선수를 배출한 양궁 국가대표팀을 들 수 있다. 이처럼 과학은 엘리트스포츠 영역에서 체력과 기술, 심리까지 폭넓게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과학은 엘리트스포츠뿐 아니라 건강을 증진하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생활 스포츠에도 응용되고 있다. 생활 스포츠 참가자의 건강 및 체력 상태를 측정, 분석해 다이어트, 부상 및 운동 상해 예방, 재활 등 운동치료에 맞는 운동 유형을 찾고 빈도, 시간, 강도를 정해 운동 효과를 드높이는 데도 기여하고 있다.

2023-05-21

전염병을 향한 인간의 도전

박문하 전 포항시의회 의장 우리에게 평소 마이크로 소프트사의 창업자로 잘 알려진 ‘빌 게이츠는 탁월한 기업가라는 이미지 외에도 통 큰 기부와 봉사활동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인간적인 면모와는 별도로 그는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정확하게 진단 하는 것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CEO들에게 주문한 변화의 필연성은 혁신을 거부하고 현실에 안주한 노키아의 몰락으로 충분히 증명되었으며 인공지능이 인간만큼 훌륭한 가정교사 노릇을 할 날이 멀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도 적중해가고 있다.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행한 발언 중에 주목할 것은 전염병에 대한 언급이 아닌가 한다. 만약 인류가 멸망하게 된다면 가뭄이나 홍수로 인한 식량 기근이나 핵 전쟁 같은 재앙이 아니라 전염병에 의해 파멸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역설한 대목이다. 이 말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오기 전에 예상한 것이어서 새삼 그의 혜안이 놀라울 뿐이다.기원전 3000년 고대 이집트의 미라에서도 천연두의 흔적을 볼 수 있을 만큼 인류의 역사는 질병의 역사라고 해도 아닐 정도이다. 역사 이래로 인간은 강력한 세균과 바이러스의 도전을 받아 왔고 더불어 전염병은 우리 인류의 역사에 있어 한 국가나 사회의 존망뿐만 아니라 역사의 방향까지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다. 흔히들 우리는 절망스러운 역사를 기억하면서 끔찍한 전쟁을 떠올리지만 기실 질병이 인간에게 안긴 고통에 비하면 이내 아주 사소한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BC 431년 도시국가 아테네는 콜레라로 인해 190만 명이 사망하였고 서기 165년에 로마제국에서 시작된 천연두로 5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서기 541년부터 한 세기 동안 페스트가 650만 명의 생명을 앗아갔다고 기록되어 있다.끔찍한 전염병의 역사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1347년부터 유럽 대륙을 다시 찾아온 페스트(흑사병)는 6년여 동안 7천500만 명에서 2억여 명의 인명을 집어 삼켰고 이때 사망한 인구가 정상으로 회복하는데 300년이 걸렸다고 하니 전염병이 얼마나 무섭고 인간을 괴롭혔는가를 확인해주고 있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흑사병을 고치기 위한 노력은 사람들로 하여금 지나치게 머신에 의존하게 하는 나약함을 드러내게 만들었고 일반 민중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던 보카치오의 ‘데카메론’도 페스트 팬데믹을 피해 피렌체 교외 별장으로 피난 온 젊은 남녀 10명의 이야기에 기반을 두고 있는 내용이다.이후 19세기 인도와 중국에서 창궐한 콜레라로 1천500만 명의 생명이 쓰러졌고 20세기 스페인 독감은 5천만 명 이상의 목숨을 빼앗아갔다.21세기가 도래한 최근의 코로나 19까지 질병은 인간의 생존과 진화 과정에서 얼마나 두렵고 공포스러운 존재인가를 보여주었고 15세기 중반 유럽 전역을 덮쳐 유럽 인구의 거의 절반을 삼킨 대재앙은 실제 인류가 완전히 멸망하는 것으로 예측한 학자들이 상당수였다는 것이 속속 밝혀졌었다.또한 유럽대륙에서 발생한 천연두는 16세기 아메리카 대륙의 잉카와 아즈테카의 강대한 제국을 덮쳐 신대륙 원주민의 90% 절멸시켰다. 거대 제국들은 전염병 앞에 바람 앞에 촛불처럼 쓰러져 갔다. 20세기 들어 발생한 스페인 독감으로 사라진 생명들은 제1차 세계대전 사상자 4배를 넘고 있다.한 대륙의 제국을 초토화 시킨 천연두는 치명적인 질병이기도 하지만 운 좋게 회복되어도 얼굴에 흉한 상처로 삶의 질을 떨어트리는 최악의 질병으로 기록되고 있다.1873년 우리는 전염병의 역사에서 주목할 만한 사람을 만날 수 있으니 그 이름은 ‘에드워드 제너라는 영국인 의사이다. 제너는 소의 젖을 짜는 여성들은 이상하게 천연두에 안 걸린다는 것에 착안하여 소와 천연두 면역력과의 연관성을 연구한 결과 최초의 효과적인 우두 종두법 실험을 통해 마침내 인류는 천연두와의 치열한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유케 되었다.‘하나님의 천벌로 내린 전염병은 인간이 극복하지 못한다’는 종교계의 주장도 천연두 퇴치에 대한 그의 확신과 집념을 꺽지 못했다1979년 WHO는 마침내 지구상에서 천연두의 박멸을 공식선언 하였다. 길고도 무시무시한 전염병과의 전쟁에서 인간이 승리하는 순간이었다. 질병으로 죽음에 직면한 엄혹한 조건의 극한 상황 앞에서 억누를 수 없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인간의 도전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보여 주는 일례가 아닐 수 없다.때마침 지난주에는 대통령이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흔들었던 코로나 19 팬데믹 종식을 선언한 바 있다. 2020년 1월 코로나19 발생이후 장장 3년 4개월 만이다.기나긴 팬데믹 기간에서 정상으로 오기까지의 험난한 여정은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과 심각성을 확인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어쩌면 지금도 전염병은 탐욕스러운 인간을 향해 소리 없이 공격을 준비하고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전염병과 인간이 공존하는 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해야 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필연이거나 숙명일지도 모를 일이다.

2023-05-14

유난히 불안하고 걱정이 많은 것도 ‘병’

사공정규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사람들은 누구나 불안(不安)한 감정을 안고 살아간다.불안의 사전적 의미는 ‘마음이 편하지 않다’는 뜻이다. 불안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가 안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이나, 걱정하는 마음’이다.누구나 오지 않은 미래를 알고 싶어 하고 예측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다. 미래는 준비하고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불안 덕분에 미래를 대비하고 미래를 안전하게 만들고 나를 성장하게 한다.이렇듯 불안은 매우 고마운 감정이다. 즉, 불안(不安) 자체가 병적인 것은 아니다.그러나 병(病)적 불안(pathological anxiety)은 미래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특별한 이유 없이 막연하게 그 결과를 재앙(災殃)적으로 예측한다. 재앙적으로 예측하는 불안은 오히려 미래를 효율적으로 대비하지 못하게 해 미래를 안전하게 만들지 못하게 하고 성장하지 못하게 한다.병(病)적 불안으로 과도한 심리적 고통을 느끼거나 현실적인 적응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는 질환을 불안장애라고 한다. 불안장애에는 여러 질환이 있는데, 우리에게 비교적 친숙해진 진단명 공황장애도 불안장애의 일종이다.그러나 불안장애의 대표적인 질환은 범 불안장애(汎不安障碍, generalized anxiety disorder)인데 잘 알려지지 않는 것 같다.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편람 제5판에 따르면 범불안장애 진단기준의 핵심적인 특징은 일상생활을 할 때 사소한 일에도 지나치게 과도한 불안과 걱정을 하는 상태를 말한다.범 불안장애의 핵심은 걱정이다. 걱정은 과거보다는 미래에 대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걱정을 하면 더 나은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과도한 걱정은 오히려 더 큰 걱정을 가져오고 불안을 증폭한다.앞서 언급한 공황장애의 평생유병률은 3%인데, 범 불안장애의 평생유병률은 9% 정도로 알려졌다. 범 불안장애는 이렇게 흔한 병임에도 진단이 잘되지 않고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첫 번째로 범 불안장애의 걱정은 남이 느끼기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일을 걱정하기 때문에, 또한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하는 만성적인 경과이기에, 단순히 ‘예민한 성격’으로 치부된다.따라서 걱정이 많은 것은 자신의 예민한 성격이 문제이지 병으로 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걱정이 팔자’라는 말이 있는데, 유난히 걱정이 많은 것은 범불안장애 일 수 있다.또 범불안장애 불안의 특징은 ‘부동성(浮動性)’이다. 일상적인 삶 속에서 불안이 너무나 만연해있기에, 일상 상황이나 활동에서 막연하게 둥둥 떠다닌다는 의미에서 ‘부동성 불안’이라고 한다.갑자기 짧은 기간 극심하게 삽화적으로 일어나는 공황장애에 비해 서서히 덜 극심한 양상으로 발병하고 지속적이고 만성적인 경향이 있다. 따라서 어떤 특정 상황에서의 불안감이 아니고 갑작스럽게 심각한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므로, 이를 병(病)이라 생각하지 않고 성격이라 생각하고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두 번째로 범 불안장애는 만성적인 자율신경계의 과잉 각성 증상으로 인해 신체적 증상으로 많이 나타난다.특히 우리나라는 불안의 감정 표현이나 걱정의 인지적 표현보다 신체적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예를 들면 두통, 근육통, 피로감, 소화불량, 가슴 두근거림, 숨이 참, 빈맥, 빈뇨, 급박뇨, 땀이 남, 목안의 이물감, 안검경련, 손발 떨림, 손발 저림, 어지러움, 얼굴이나 가슴이 화끈거림 등의 신체적 증상이다. 따라서 신체 불편감이 우세하므로 신체장애의 일종이라 생각하고 소화기 내과, 심장내과, 호흡기 내과, 이비인후과, 신경과, 산부인과, 비뇨기과 등을 전전하며 정신건강의학과로 방문하는 경우가 드물다.세 번째로 범불안장애 환자는 불안과 걱정이 아닌 다른 증상들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불안하고 걱정이 되어서 잠들기 어렵고 자주 깨는 불면증이 나타나지만, 그냥 ‘불면증’으로 만 호소한다. 불안과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에너지가 소진되어 피곤한 것을, 그냥 ‘만성 피로’라고 호소한다. 불안과 걱정으로 머리가 멍하고 집중력이 떨어진 것을, 그냥 ‘주의력 저하’라고 호소한다.따라서 범 불안장애의 진단이 가려져 놓치는 경우가 많다. 모든 질환은 조기 진단, 조기 치료가 중요하다. 범 불안장애는 대개 청소년기 후반에서 성인 초기에 많이 발병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런데 진단은 중년기에 가장 많이 된다. 왜냐하면, 상기 열거한 이유 등으로 진단이 잘되지 않고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놓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범불안장애 환자의 3분의 2 이상이 10년 이상 경과 후 정신건강의학과를 내원하는 등 진료가 늦어지는 경향이 있다.범 불안장애를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면 예후가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공황장애, 우울장애, 알코올 의존, 약물 남용 등의 합병증으로 발전할 수 있고, 삶의 질을 현격히 떨어뜨리기 때문에 조기에 전문적인 정신건강의학과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

2023-05-14

윤석열 정부의 가치외교 역설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윤석열 정부는 ‘가치 외교’를 외교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한 개념으로 들리지만 근년에는 언론뿐 아니라 학술 용어로도 사용되고 있다.가치 외교는 인권, 법치, 시장경제라는 보편적 자유주의적 가치의 결속으로 반자유주의적, 반인권적 가치를 견제 봉쇄한다는 개념이다. 가치 외교는 국가 간의 연합이나 동맹을 통해 자유주의적 가치의 공동 번영을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이론적으로 그럴듯해 보이는 가치 외교는 실리외교와는 다소 괴리가 있고 그 역설이 초래되기도 한다. 결국 가치 외교는 미소 냉전시대의 이념외교의 기본 틀을 크게 탈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치 공유국가들의 결속을 통한 반자유주의적 국가를 배격하는 가치외교는 원래 취지와는 달리 개별국가의 외교적 손실이라는 역풍의 위험도 있다. 그것이 바로 가치 외교의 역설이며 부메랑이다.윤석열 정부는 취임사에서부터 ‘자유와 인권’의 가치를 전면에 내세웠으며 그것을 가치외교의 토대로 삼고 있다. 정권 교체 이후의 새 정부는 대체로 전임정권의 정책이나 폐습을 청산하려고 노력한다. 문재인 정권과 마찬가지로 윤석열 정부 1년은 적폐청산과 사정정국으로 귀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윤석열 정부의 지난 정권에 대한 비판은 외교 정책도 예외 없이 적용되고 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문재인 정권의 대북 정책이나 북방외교의 기본 골격이었다. 그러나 그 화해 정책의 당위성은 충분히 인정되었지만 한반도 평화 정착의 실효는 거두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의 2019년 판문점 선언과 평양선언은 초기의 기대와는 달리 형해화 된 선언문으로 남아 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정부의 중간자적 화해 협력이라는 정책기조에서 탈피하여 한미 안보 동맹을 최우선 과제로 하는 가치 외교의 기조로 삼고 있다.윤석열 정부의 가치외교는 이념적 안보 동맹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정부의 대일 외교는 대통령의 소위 ‘통 큰 결단’을 통한 파격적 대일 관계개선으로 나아가고 있다. 대통령은 지난번 한일 정상회담에서 굴욕외교라는 국내의 비난을 무릅쓰고 강제 징용문제에 대한 제3자 배상 원칙을 해결책으로 제시하였다.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도 ‘100년 전의 일로 일본의 무릎을 끊게 할 수는 없다’는 입장으로 선회하였다. 일본의 책임 있는 사과보다는 일본정부의 선의에 기댄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는 입장이다. 윤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과의 ‘워싱턴 선언’을 통해 핵 확장 억제 협의기구(NCG)를 설립하여 북핵 대응 공동대응 장치를 마련하였다. 당초 기대했던 미국의 반도체법과 인플레이선 감소 법(IRA)의 한국기업의 보호책은 마련치 못했지만 한미 안보동맹은 보다 강화된 느낌이다. 서울의 한일 정상 회담은 한일 셔틀외교를 복원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모두가 적극적인 가치외교의 결과물이다.현 시점에서 가치 외교가 초래한 손익계산을 명확히 해 볼 필요가 있다. 가치외교는 원래의 이상과는 달리 우리의 국익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가치외교는 예상한대로 중국, 러시아, 북한의 강력한 비판에 직면해 있다.중국은 한미일 안보 동맹 강화를 연일 신랄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윤 대통령의 대만 해협 관련 발언에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반한다면서 ‘불장난을 좋아하면 불에 타죽는다’는 원색적 비난도 마다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정부의 인도적 지원뿐 아니라 군사적 지원 가능성에 대해 러시아의 반대 입장도 분명히 드러나 있다. 북한의 워싱턴 선언에 관한 노골적인 비난은 말할 필요도 없다.중국과 러시아, 북한의 역 삼각 동맹의 강화는 동북아의 신냉전시대를 예고하고 미국 주축의 한미일 결속외교는 또 다른 안보의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무역 적자가 날로 심화되는 우리 현실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무역보복 등 경제적 손실도 냉철히 분석해야 할 것이다.흔히들 국제관계에는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다고들 말한다. 미중 패권 경쟁시대에 윤석열 정부의 가치 외교의 기본 틀은 미국과 일본에 편향 의존된 것은 사실이다. 과거의 2차 대전 후의 냉전시대로의 회귀처럼 신냉전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한미일 안보적 결속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경제적 실리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가치나 이념을 앞세운 한미일 삼각 동맹이 초래하는 부메랑을 걷어내어야 한다. 우리는 이제 세계 6위의 군사력과 세계 10위권의 국격에 걸 맞는 외교를 펼쳐야 한다. 과거의 강대국 의존의 저자세 외교, 종속외교에서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구한말의 역사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미국과 일본이 체결한 테프트 카츠라 조약의 비극적 역사를 결코 잊어서 안 된다. 당시 미국이 필리핀을 지배하고, 일본이 한반도의 지배를 인정한 야합의 조약문을 되새겨 보아야 한다.한미일의 철저한 안보 동맹 뒤에 숨은 후폭풍을 막을 수 있을까. 가치외교의 역설이 우리에게 던지는 근본적 질문이다.

2023-05-07

‘에너지 전환’ 대응은 대한민국 혁신의 기회다

위현복 (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재생에너지 기반 에너지 전환시대를 맞아 세계 각국에서 연일 재생에너지 강화 정책이 쏟아지고 있다. 독일은 2023년 4월 15일부터 원자력 발전소를 완전히 멈췄다. EU에서는 2022년 재생에너지 비중이 22%였는데, 2030년 목표를 32%에서 42.5%로 대폭 높였다는 뉴스도 있다. 미국은 2040년에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발표했다.우리나라는 2021년 문재인 정부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30.2%까지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지난해 윤석열 정부는 이를 21.6%로 대폭 낮췄다.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탄녹위)’는 지난 3월 21일 우리나라 탄소배출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산업계의 2030년 탄소감축목표를 문 정부 때의 14.5%에서 11.4%로 후퇴시켰다.이 시점에서 우리는 탄소중립의 의미와 우리나라의 역할을 다시 한번 곱씹어 봐야 한다. 현재 글로벌 아젠다의 첫 번째가 지속가능성 즉 탄소중립이라고 할 수 있다. 21세기에 기후 재앙을 막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지구 온도상승을 1850~1900년을 기준해서 1.5℃에서 막아야 한다. 그런데 벌써 1.09℃가 올라, 불가피하게 석유·석탄·가스 등 화석연료 기반 에너지생태계를 재생에너지 기반 에너지생태계로 전환해야 하는 일이 전 인류적 과제로 부상해 있다.그럼 우리나라가 현 국가 위상에서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일까. 한국은 현재 경제력 10위, 군사력 6위, 문화적 지위 3위 이내에 드는 명실상부한 강대국 중 하나이다. 전 세계로부터도 선진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2021년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1964년 설립 이후 개발도상국으로서는 유일하게 한국의 지위를 선진국으로 변경했다.하지만,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하는 역할은 여전히 개발도상국 중 하나다. 특히 관료와 정치인들의 의식은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다.2015년 12월 파리 기구협약을 통해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정한 후, 각국이 목표달성을 위해 총력을 쏟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정부조차도 탄소중립에 대한 정책이 오락가락한다. 재생에너지 기반 에너지 전환은 ‘에너지 안보’, ‘에너지 자립’ 차원에서도 반드시 달성해야 하고 또, 달성 가능하다. 국가 지도자와 정치인의 의식 전환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고, 특히 집행기관인 중앙·지방 정부 역할과 자세 변화가 가장 시급하다. 국회는 당장 재생에너지 기반 에너지 전환이 가능한 입법을 해야하고, 지방 정부는 태양광 입지규제(도로에서 500m, 민가에서 500m)를 중앙정부의 이격거리 완화 방침에 맞춰 신속히 해제해야 한다.우리나라는 GDP 대비 세계 2위 수준의 제조업 강국이다. 에너지의 주류인 석탄·석유·가스 등 화석연료 바탕의 에너지 10대 소비국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명성도 얻고 있다. 한국은 탄소 배출량 100만 톤이 넘는 73개 기업이 국가탄소총배출량(6억 7천960만t)의 75%(5억 974만t)를 배출하는 나라다.이런 상황 속에서 산업계가 탄소배출 목표를 덜 줄이려고 아우성을 치고, 대정부 로비를 통해 관철시켜 2030년까지 산업계부문 탄소절감량을 14.5%에서 11.4%로 낮춘 것이다. 산업계는 11.4%가 아니라 오히려 2030년까지 평균 절감량인 ‘40%’까지는 절감해야 한다. 그것이 ‘오염자 부담원칙’에도 맞다. 그래야 에너지 전환시대에도 우리나라 산업계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가 있다.‘지속가능성 목표이행’은 위기로 인식될 수 있지만, 우리 경제에는 오히려 기회라고 할 수 있다. 국토균형발전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도시 주변이나 공단 주변 농지에 태양광·소형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단지를 활성화할 경우, 버려지고 묵혀진 땅이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소멸되어가는 농촌이 신선한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바뀌는 것이다.우리나라의 논·밭은 수로와 농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수백 년 이상 영농현장으로 잘 관리되고 있다. 발전 사업을 하기에는 가장 잘 정리된 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태양광 발전으로 인한 수익을 따져 보면, 농지 300평당 100kWh의 전력생산이 가능해서 현재 쌀농사와 비교할 경우 20배 이상의 소득이 창출된다.일자리 또한 원자력과 비교할 때 같은 양의 전력생산(100만 kWh)에서 20배 이상의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농촌 소멸을 막을 수 있는 길이 열리고, 후발국들에게 새로운 개발모델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윤석열 정부는 에너지 전환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이 대한민국을 다시 한번 혁신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제조업 글로벌 10위, 탄소배출 글로벌 10위인 한국이 앞장서서 탄소배출에 책임이 큰 선진산업 국가들의 탄소중립달성 목표시한을 2050년이 아니라 2040년으로 앞당길 수 있도록 나서야 한다. 한국이 세계적인 변화와 혁신을 선도함으로써 글로벌 선도국가가 되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023-05-07

기록과 보존 안 하는 한국 사회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최근 시니어 테니스 대회에 고문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본부석의 경기대진표에는 한 번 지면 탈락하는 토너멘트의 경기결과가 표시되고 있었다. 그런데 누가 이겼는지만 표시하고 스코어가 표시되지 않고 있었다. 이상한 풍경이었다. 경기진행자는 모든 다른 시니어 대회도 그렇게 한다고 전한다.미국에서 오랫동안 동호인 테니스 대회에 참가하면서 스코어 표시를 안 하는 대회를 본 적이 없다. 한국에서도 과거 필자가 진행한 대회는 그렇게 한 적이 없었는데 가벼운 충격이 다가왔다.스코어가 표시되지 않으면 어떻게 경기가 진행되었는지 알 길이 없고 승자 패자가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비상식적인 상황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는 게 ‘기록과 보존을 안하는 한국사회의 단면’이다.그런데 돌이켜 보면 포스텍에서 28년간 테니스 동아리 지도 교수를 하면서 매년 거행되는 각종 대회의 결과를 잘 보존하라고 했건만 잘 보존되는 걸 보기 힘들었다. 결국, 일부는 지도 교수가 기록 보존했지만, 학생들도 그런 훈련이 잘 되어 있는 것 같지 않았다.하긴 국가적 차원에서의 청와대 기록이나 정부 기록도 잘 보관되지 않아 전 정부의 기록들을 참고하지 못하고 새로운 정책을 세우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또 정부가 바뀔 때마다 전 정부의 부서를 폐기하고 생소한 새로운 부서를 만든다. 다행히 이번 정부는 그 정도가 심하지 않아 다행이다.몇 년 전 포항 역사의 상징 포항 기차의 역사(驛舍)는 결국 무참히 부서졌다. 그 부서진 역사 위로 차가 달리지만 허탈감은 너무 심했다. 특히 해병대 출신의 전역 장병들의 가슴은 휑하니 뚫렸다는 소문이다.눈물과 기쁨, 그리고 오랜 역사를 간직한 포항역이었다. 일본시대부터 사용하기 시작해 해방과 함께 건축된 포항역사는 거의 100년 가까운 포항의 산증인이다.필자는 10년 전 2013년 여름 두달 간 드레스덴이라는 옛 동독의 명품도시에서 드레스덴공과대학교 총장의 초청으로 방문 연구를 한 적이 있다.그곳엔 아주 유명한 프라우엔교회 (Frauenkirche)가 있다. 이 교회는 300년 전 지어졌는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고 한다.전쟁이 끝난 후 드레스덴 시민들은 언젠가 재건축될 것을 생각하며 무너진 프라우엔교회의 돌에 번호를 매겨 보관했고, 독일 태생의 한 과학자가 노벨상 수상 기금을 모두 기부해 어린 시절 프라우엔 교회의 기억을 되살리며 10여 년 전 완전 재건축에 성공했다고 한다.그에 반하여 한국에서는 옛 건물들과 유적지들은 사라지고 있다.서울의 종로2가에 있던 역사적 보존가치가 높은 화신백화점 건물이 사라진 건 큰 충격이었다. 일제시대에 건축되어 옛 건축미를 가지고 있던 그곳은 초현대 건물로 바뀌었다. 중앙청 건물은 일제의 잔재라고 하여 폭파시키고 해체하였다. 단성사 국도극장 등 보존가치가 높은 건물들이 이젠 흔적조차 찾아볼 수가 없다.파리나 런던, 바르셀로나나 리스본 등 유럽은 도시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으로 형성되어 있다. 옛 건물들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다.이러한 유럽의 오랜 도시들뿐만 아니라 역사가 일천하다는 미국의 워싱턴 필라델피아 등도 방문해 보면 옛날 건물들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그러한 역사적 건물들이 관광자원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자부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치욕의 역사적 건물, 부서진 역사적 건물도 원형 그대로 보존하여 후세들에게 교훈으로 삼고 있다.심지어 중동의 사우디아라비아의 상업도시의 중심 젯다를 방문했을 때, 젯다의 옛마을을 보존하고 있었다. 젯다의 ‘올드타운’이라는 옛마을을 재건축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며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모습이었다.급격히 발달하는 나라이지만 사우디는 국격으로는 한국에 뒤지는 나라이다. 그런데도 젯다의 옛마을은 비록 세련되게 보존은 하지 못했지만, 옛모습 그대로 놔둔 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었다.역사적 가치란 무엇인가. 반드시 건물이 고풍스럽고 멋있어야 하는가. 그냥 오랫동안 거기에 있던 건물이라면 그건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이다. 그 건물의 초석은 그 시대의 것이고 건축양식은 좋든 싫든 그 시절 것이다.진행이 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폐철도 공원 조성 시 축소된 모형을 건립한다고 하지만 과연 그런 모형이 감동을 줄 수 있을까? 왜 한국은 역사를 무시하고 부수고 없애는 것일까 그리고 기록을 보존하지 않는 것일까?서울의 성냥갑처럼 서 있는 아파트촌을 보면 어지러워지기까지 한다. 요즘은 각 지역도 마찬가지로 황폐해지고 있다. 그냥 부수고 없애고 새로운 것을 세우는 걸 좋아한다.기록도 하지 않고 옛것을 무시한다. 역사는 무시당하고 있다. ‘기록과 보존을 안 하는 한국사회’ 언제까지 이럴 것인가?

2023-04-30

안전체험관 불공정한 결정은 포항시민에 큰 재난

양만재포항지역사회복지연구소 소장 모든 경쟁은 성과를 올리는 장점도 있지만 과열에 따른 지나친 비용증대로 부작용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경북도 소방본부가 도내 시군 대상 경북 안전체험관 부지 공모를 통해 안전체험관을 선정한다는 발표가 있었다.포항, 구미, 영주 등 여러 시군 자치단체들이 유치 경쟁에 참여하겠다고 선언했다. 다음달 2일까지 마감을 앞두고 시군의 경쟁 열기가 고조되고 있으니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유치경쟁 과열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최근 언론 보도를 종합해 보면 포항은 지난 2017년 11월 15일 규모 5.4의 사상 초유의 지진이 발생해 큰 피해를 입었다. 지열발전 관련 국책사업의 추진 과정에서 발생한 촉발지진으로 판명났다.포항시는 지진 피해 복구 및 지진과 같은 재난으로부터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가 됐다. 이에 포항시는 20만명의 서명을 받아 청와대 국민청원을 신청하는 한편, 정부와 국회를 지속적으로 설득해 ‘포항지진피해구제법’을 제정했다. 이 법 제23조에 지진 피해지역 주민을 위한 안전교육시설 설치 근거가 명시되어 있다.포항시는 행정안전부 및 경북도에 경북 안전체험관 건립을 5년 간 지속 건의했다. 2019년 4월에는 경북도 재난안전실장 주관으로 경북도 소방본부와 포항시 관계자가 참여한 가운데 경북 안전체험관 건립을 논의했다. 그 결과 경북 안전체험관 건립 예산 확보는 도 재난안전실, 운영은 소방본부, 부지 제공은 포항시가 담당하기로 합의했다.포항시는 지진피해가 극심했던 포항시 흥해읍 마산리 일원으로 부지를 확정하는 공문까지 주고받았다는 것이다. 포항시는 행정안전부의 국민안전체험관 건립예산 확보시점까지 시기를 기다려 왔다.그런데 경북도가 느닷없이 안전체험관을 공모를 통해 건립한다는 발표가 나자 포항시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형국에 크게 실망을 했다.좌절감과 실망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모라는 발표에 여타 시군들이 당근을 제시하면서 경쟁대열에 참여한다는 메시지가 나오고 있다.구미시는 에코랜드 일대 부지를 제공하기로 하고, 도내에서 학령인구가 가장 많다는 점을 내세웠다. 영주시는 순흥면 일대 코레일 연수원 일원의 부지를 제공할 것이며, 낙후된 북부권 균형개발 차원에서 경북 안전체험관의 영주 건립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그 외에도 안동시, 상주시, 영천시, 경산시 등 10여개 이상 시군이 유치에 나섰다.기후위기로 인한 지진, 태풍, 홍수 등의 자연재난과 각종 사회재난, 안전사고가 점차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도내 시군이 안전체험 시설의 확충, 유치는 두말할 나위 없이 환영해야 할 일이다. 더욱이 여타 대도시와 광역자치단체에서는 안전체험관이 있지만 경북도는 없으니 말이다.기후변화 현상으로 재해의 피해가 가중되고 있다. 기후 변화와 기상 이변 하나의 요인만 재난을 일으키는 경우가 드물다. 지역사회의 안전인프라시설의 취약성과 지역민들의 재난 대응 역량 부족 즉 안전 교육에 부재에 따른 교육취약성 등이 결합할 때 가중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안전체험관의 존재는 현대 사회의 필수적인 시설이라 할 수 있다.하지만 안전체험관이 도내 한 곳에 설립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라, 도내 시군이 유치 경쟁 과열 양상은 어쩌면 당연하다 할 것이다. 공모라는 방식은 경쟁현실의 불가피성과 경쟁의 장점을 인정하면서도 과열경쟁의 부작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당초 경북 안전체험관 건립 논의의 중심에 섰던 경북도의 재난안전실이 아닌 왜 소방본부가 공모에 나섰는가 하는 점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공모 경쟁 과열의 진원지가 아닌가 싶다.이미 공모를 하겠다고 선언한 만큼 누굴 탓하고 책임을 전가한들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 시점이다. 과열된 경쟁에 따른 도내 시군민들 간의 불필요한 갈등 유발과 행정력 낭비가 발생하지 않도록 부지 선정에 필요한 원칙과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안전체험관의 운영에 따른 교육효과성, 도내 시군민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교통편의성, 대형재난 발생에 따른 피해주민의 고통을 덜어 줄 재난의 역사성, 안전체험관 운영에 따른 수익성과 지속가능성, 안전사고 사전예방 효과와 사고대응 증대에 필요한 기술과 정보를 제공할 전문 교육인프라를 갖춘 회복탄력성 등이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포항시민들은 2017년 11월 발생한 5.4 촉발지진에 따른 수천억원의 피해를 당했고, 지난해에는 힌남노 태풍이라는 자연재난에다 사회재난을 연이어 겪었다. 자연 재난의 위력을 고통스럽게 체험한 시민들이다. 행정안전부와 경북도는 안전체험관 건립에 따른 불공정한 결정으로 포항 시민들에게 참담한 고통을 또 추가해서는 안될 것이다.

2023-04-30

특정 종교 단체의 정치 간여 이대로는 안 된다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한국 정치에서 일부 종교 단체의 정치 참여가 도를 넘고 있다. 우리의 양극화되고 분열된 극한 정치에서 파생된 기이한 현상이다. 정치와 종교의 영역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양자는 상호 존중할지언정 지나친 간섭과 투쟁은 우리 정치를 더욱 혼탁케 하고 불안케 한다. 정치의 궁극 목적은 흔히 말하는 국리민복이다.종교는 불완전한 인간이 초월자를 통해 참된 행복과 구원의 길을 구하는데 목적이 있다. 양자는 다른 영역인데 종교는 현실 정치에 야합하여 득을 보려 하고 정치는 종교 세력을 이용하는데 문제가 있다.서구 기민당처럼 종교의 이상이나 진리가 정강 정책에 반영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중세 정교일치도 아닌 현대 사회에서 종교를 정치의 수단화하는 현상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전광훈 목사처럼 정치적 간여나 투쟁행위는 오히려 국민을 불안케 하고 정당정치의 퇴행을 초래할 수도 있다.과거 공산 독재국가나 오늘의 북한은 체제 유지를 위해 정치를 철저히 종교화하였다. 평양의 거리에서는 ‘김일성 수령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살아계신다’는 슬로건이 붙어 있다. 이미 김일성 부자는 신격화되어 인민의 우상으로 고착된지 오래이다. 3대 수령에 대한 믿음과 존중은 종교처럼 내면화되었다.주민들은 수령을 절대적 칭송과 흠모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공산권의 개방화 과정에서 공산 독재자들의 동상은 파괴되었다. 러시아 레닌의 동상마저 사라지는데 김일성 동상에는 아직도 참배객이 늘어나고 있다. 수령의 만경대 생가는 성역화되었고, 북한의 가정에는 수령 초상이 걸린 지 오래다.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론은 북한수령을 통해 완전한 생명을 부여 받는다는 ‘사회 정치 생명체론’으로 대치되었다. 결국 북한당국은 정치를 종교화하여 체제 통제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최근 전광훈 목사의 정치 간여는 국민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전 목사는 오래전부터 본 회퍼의 이론을 앞세워 광화문 보수 강경집회를 주도해 왔다.그는 줄곧 문재인 정권의 퇴진에 앞장서면서 강경 보수 정치인들을 집회에 끌어들였다. 그는 강경 보수층의 지지를 얻기 위해 진보 세력을 용공으로 매도하였다.전 목사는 각종 선거뿐 아니라 국민의힘 당의 당 대표 선출과정에도 노골적으로 개입한 흔적을 남겼다. 그가 지방선거뿐 아니라 차기 총선 공천권을 요구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전 목사는 기존 기독교 단체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자기 과시형 언행을 쏟아 내었다. ‘하느님도 내 말 듣지 않으면 그냥두지 않는다’는 그의 발언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최근 국힘당 김재원 최고위원의 ‘전광훈 목사가 자유우파를 통일했다’는 발언도 상당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쯤 되면 그의 행태는 목사이기 전 선동 정치인이다. 일부에서 그를 예언자로 칭송하지만 국힘당에서는 그를 시급히 손절하자는 주장이 우세하다.가톨릭정의사제구현단의 활동 역시 문제의 소지가 있다. 어느 신부의 윤석열 대통령 해외 순방시의 비행기 추락을 위해 기도했다는 발언은 가톨릭의 가르침에도 크게 벗어난다. 가톨릭 성직자의 금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다.지난주 전주에서부터 출발한 정의사제구현단의 정치 집회에도 곱지 않는 시선이 존립한다. 이들은 윤석열 정부의 반역사성을 규탄하기 위해 전국 집회를 계획하고 있다.여기에도 진보와 보수의 찬반양론이 대립한다. 과거 가톨릭정의사제구현단은 유신 체제 타도라는 명분으로 민주화 운동에 크게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암울했던 독재 정권 시절 그들이 고통받는 민중의 선봉에 선 역할은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다.그러나 윤석열 정부 출범 1년도 안 된 시점의 대통령의 탄핵 주장은 지나치다는 비판도 따른다. 성직자인 사제의 입장은 정치적 투쟁이 아닌 종교적 신앙적 실천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들의 활동이 자칫 정치를 더욱 분열을 조장할까 우려된다.결론적으로 종교인들의 정치 간여와 투쟁은 자제되어야 한다. 자칫 이들의 행위가 이 나라의 양극 정치나 진영 정치를 조장하고 갈등과 저주의 정치를 촉발하기 때문이다.물론 전 목사의 정치 투쟁과 정의사제구현단의 행태를 평면 비교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종교와 정치는 본질적으로 다른 영역이며 양자의 범주 착오와 침범은 국론분열만 조장한다. 목회자나 성직자들이 정치에 직접 간여하려면 그들의 신분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다.정치인들이 자신의 정치적 영달이나 지지세 확산을 위해 종교 세력을 정치에 끌어 들이는데도 문제가 많다. 종교인들은 이 땅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의 눈물을 닦아 주는 역할에 더욱 충실해야 한다. 종교와 정치는 상호 범주 착오나 침범을 해서는 안 된다. 물론 양자 간 애매모호한 영역은 존립한다. 종교는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에 더욱 충실하고, 정치는 오직 민생과 복지를 위해 더욱 매진해야 할 시점이다.

2023-04-16

100세 시대와 운전면허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서울시가 고령운전자 면허 반납시 10만원짜리 교통 카드를 주는 제도를 4월부터 본격 시행한다고 한다.여러 지방자치 단체들이 앞다투어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고 제도의 찬반양론과 함께 이 제도를 둘러싼 잡음도 일고 있다.일부 시·군들이 고령 운전자가 면허를 반납할 경우 인센티브로 제시한 현금이나 지역 상품권, 교통카드 등을 차일피일 미루며 수개월째 지급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시·군들은 정부가 국비지원을 미뤄 어쩔 수 없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행정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는 지적이다.내년에는 65세 이상 인구가 1천만명을 넘는다고 한다. 국민 5명 중 1명이 소위 ‘고령’이 되는 셈이다.유튜브에는 100세 시대에 젊게 사는 방법 등이 넘쳐 난다. 눈에 띄는 것 중에 하나가 나이를 20년 세월을 돌려 살아가라는 이론이다. 34세 나이에 미국 하버드대 역사상 최초로 여성 심리학과 종신 교수가 된 엘렌 랑거 교수는 ‘시계 거꾸로 돌리기(counterclockwise)’ 실험으로 유명하다. 그는 1979년 실험에 참여할 70대 후반에서 80대 초반의 남성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오하이오주 지역 신문에 냈다. 이 실험의 목적은 심리적인 시간을 되돌릴 때 나타나는 사람의 생리적 변화를 관찰하는 것이었다.연구팀은 시골의 한 수도원에 모였다. 수도원 내부를 20년 전인 1959년처럼 꾸몄다. 1959년 이전에 생산된 TV·라디오·신문·가구·집기 등을 배치했다. TV와 라디오에서는 1959년 당시 드라마·뉴스·쇼가 흘러나왔고 신문도 1959년의 것이었다. 한마디로 1979년의 분위기는 사라지고 누가 봐도 20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이 들도록 했다.실험의 결과는 놀라웠다고 한다.실험에 참여한 시니어들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 상태가 놀랍도록 좋아졌다고 한다. 랑거 교수는 이를 “정신이 젊어지면 육체도 젊어진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를 논문에 발표하였다. 이 실험은 시니어들의 젊게 사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이들은 ‘노인’이라는 단어조차 사용하기를 거부한다.시니어 전용 영화관에 들른 적이 있다. 티켓에는 ‘노인 할인’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쓰여 있다. 더구나 그것도 55세 이상 노인 할인이라는 단어였다.문득 ‘노인?’하면서 고개가 갸우뚱 해졌다. 그 하나의 느낌은 왜 55세가 노인인가 하는 생각이었다.평균 수명 80세가 넘고, 그리고 곧 평균 수명 100세가 다가오는 시대에 있어서 노인이라는 단어를 적용하는 데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신문을 보면 “노인들 겨울건강 주의보” “노인 교통사고 급증” 등 기사제목을 보면서 몇 살을 기준으로 노인이라고 하는지 아리송할 때가 많다.또 하나의 다른 느낌은 과연 ‘노인’이라는 단어를 꼭 사용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자신이 노인이라는 말을 듣게 되는 나이가 되면 노인이라는 단어가 별로 유쾌하지 않은 단어라는 것을 알게 된다.영어권 국가의 예를 보면 노년이란 단어에 해당하는 Old Man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미국의 경우 시니어 시민(Senior Citizen)이란 말을 자연스럽게 사용하며 시니어란 번역한다면 ‘선배’정도에 해당할 것이다. 극장 같은 공공 공연 장소에서 할인을 하는 경우 시니어 디스카운트(Senior Discount)란 단어를 사용한다.나이에 대해 우리가 흔히들 잘못 알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나이가 들면 마땅히 다 병이 생기고 쇠약하게 되며 외모가 나빠진다는 믿음이다. 그래서 노안, 노망, 노환이라는 질병 용어가 생겼고 노쇠하고 노약하다는 표현도 종종 사용된다. 그러나 그러한 선입견을 몰아낸 ‘인턴’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70세 가까운 나이의 시니어가 30대의 젊은 상사 밑에서 일하는 것인데, 이제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라면 젊은 사람 밑에서 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시대가 됐다. 오히려 내가 그 젊은 사람보다도 더 젊다는 선언이 되는 것이기도 하는 것이다.나이는 숫자가 아닌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시니어’라는 말도 좋고 ‘선배님’‘선생님’이란 좋은 단어가 얼마든지 있는데 이제 노인이란 단어는 묻어야 한다.이제 100세 시대에 우린 살고 있고 시니어들의 활약도 사회의 중요한 몫이 되고 있다.그런 측면에서 운전면허반납 제도는 여전히 동전의 앞면을 가지고 있다. 시니어들이 교통사고를 일으키면 큰 관심을 가지고 보도 되는 것도 문제이다. 통계적으로 유의차가 있는 나이가 언제인가를 분석해 보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운전포기는 결국 외출이나 행동반격을 좁히면서 건강에 해롭다는 100세 건강관리 이론도 지지를 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앞서 언급한 엘렌 랑거 교수의 ‘시계 거꾸로 돌리기’이론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젊게 생각하면 젊고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도 젊음을 유지하고 싶고 건강하게 살고 싶다. 그건 시니어들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 면에서 100세 시대 운전면허 반납 제도는 더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2023-04-16

어깨 통증 잡는 맞춤형 운동 치료

박성률 트레이닝과학연구소장동국대 의과대학 연구초빙교수 요즘같이 일교차가 심한 환절기에는 관절 통증이 자주 나타나거나 악화하기 쉽다. 관절 통증 가운데 어깨 통증은 우리나라 성인의 60% 이상이 평생 한 번 이상 경험할 정도로 흔한 근골격계 증상이다. 하지만 잘못된 정보와 이해부족, 막연한 견관절의 통증에 대한 두려움으로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십상이다.어깨는 우리 몸에서 유일하게 360도 회전하는 관절이다. 그만큼 불안정한 부위이며 손상되기도 쉽다. 나이가 들면서 힘줄이 약해지고, 운동이나 컴퓨터, 스마트폰 등 전자 기기의 과도한 사용으로 인한 잘못된 자세 등 다양한 요인으로 어깨 통증이 생긴다. 나이가 들어 어깨 통증이 심해지면 자연스럽게 오십견으로 단정하지만 같은 어깨 통증이라도 회전근개 파열, 석회화 건염 등 다른 질환일 수 있다.회전근개 파열은 어깨 통증의 70% 정도를 차치할 정도로 흔한 질환이다. 최근에는 골프 등 스포츠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환자가 증가하는 추세다. 회전근개는 어깨를 감싸고 있는 극상근, 극하근, 소원근, 견갑하근과 같이 4개의 힘줄을 말하는데, 어깨 안전성, 운동성, 유연성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 이 힘줄이 여러 원인에 의해 약해지거나 찢어지면서 발생하는 것이 회전근개 파열이다.대개는 과도한 어깨 사용으로 인한 힘줄 파열이 원인인데, 증상은 본인 스스로 아픈 팔을 움직여 보거나 정상적인 팔의 도움을 받아 아픈 팔을 앞으로나 옆으로 들어 올릴 때 극심한 통증과 운동 제한을 보이는 오십견과 다르다. 회전근개 파열은 팔을 움직여 보면 억지로 움직여지는 어느 한순간 심한 통증을 느끼거나 어디엔가 걸리는 듯한 소리나 느낌을 받는다. 또 팔을 벌릴 때는 힘이 없는 것을 느끼게 된다.회전근개가 완전히 끊어졌다면 찢어진 힘줄을 관절에 붙여주는 수술적 치료가 불가피하지만, 회전근개 파열이 생겼다고 무조건 수술할 필요는 없다. 완전히 끊어지지 않은 부분 파열이라면 적절한 약물 치료와 스트레칭이나 근력 운동으로 증상이 호전될 수 있다. 운동 치료는 비수술적 요법 중 부작용이 가장 적게 나타나며, 근육 상태의 회복이 운동의 목표가 되므로 근본적인 치료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어깨 통증 완화를 위한 운동 치료는 운동 유형, 빈도, 시간, 강도 설정이 중요하다. 운동 유형은 약으로 치면 성분과 같다. 운동의 종목일 수도 있고, 동작일 수도 있다. 크게는 유산소, 유연성, 근력 운동이 있고, 각 운동은 신체 부위와 근육에 따라 종목과 동작, 기구 등이 있다. 빈도는 약의 복용 횟수다. 하루 몇 번 또는 일주일에 몇 번인지를 의미한다. 시간은 약의 총 복용량이다. 운동에서는 지속시간을 의미하여 보통 분 단위로 설명한다. 강도는 약 성분의 함량이다. 운동을 얼마나 힘들게 또는 편하게 할 것인지를 말한다.어깨 통증 완화를 위한 운동 유형으로는 스트레칭 등 신전운동과 근력 운동이 좋다. 스트레칭을 몸풀기로 여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유연성은 체력요인 가운데 중요한 항목이다. 특히 재활에서는 아픈 부위가 정상적인 부드러움이나 가동범위를 회복할 수 있도록 스트레칭이 필요하다. 그리고 벽 밀기나 팔굽혀펴기 등 자기 체중을 이용하거나 고무밴드로 하는 근력 운동도 함께하는 것이 효과적이다.다양한 매체에서도 어깨에 좋은 운동 방법은 추천되지만, 얼마만큼 자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는 부족할 때가 많다. 운동을 통해 치료 효과를 얻기 위해서 똑같은 형태의 운동을 한다면 운동 빈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스트레칭 운동은 하루에 3회 이상을 해야 하며, 근력 운동의 경우 본인 체중이나 고무밴드를 이용한 운동은 하루 1~2회 정도가 적합하고, 바벨 등 무거운 중량으로 하는 웨이트 트레이닝은 주 2~3회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근육의 양을 늘리기 위해서는 중량은 비교적 높이고 횟수는 적게 하는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하지만 통증 완화 등 재활에는 다르다. 무겁게 하는 근력운동은 주로 표면의 큰 근육의 발달을 유도하지만, 심부근육의 발달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 통증은 주로 심부근육에서의 문제이며, 심부근육은 사이즈도 작고 상대적으로 적은 힘을 낸다. 통증으로 인해 힘을 잘 못 쓰는 상태라면 더욱 무게를 낮출 필요가 있다.스트레칭도 강하게 힘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이완시키고자 하는 부위가 당기기 시작하는 각도에서 멈추어 날숨과 들숨을 4~5회 길게 반복하며, 2~3셋트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러므로 신전운동이든 근력운동이든 가늘고 길게, 그리고 자주하되 통증이 없는 범위에서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어깨 통증은 잘못된 진단과 처치로 어깨 힘줄이나 관절 손상을 부추길 수 있기에 전문가의 검사와 진단이 중요하다. 특히 어깨 근력과 관절 운동 능력을 회복하기 위한 운동 치료가 동반돼야 효과적인데, 재발 가능성이 있는 만큼 정기 검사를 받으며 본인의 건강과 체력 상태에 맞는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게 바람직하다.

2023-04-09

탄소중립 피할 수 있는 기업은 없다

위현복 (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정부는 지난 3월 21일 ‘제1차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2023~2042)’을 발표하면서,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달성을 위한 세부 이행 방안도 제시했다.지난 2021년 문재인 정부가 2030년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기준 40% 줄이겠다고 발표한 NDC의 실행계획이다. 핵심내용은 우리나라가 줄여야 하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 총량은 40%로 유지(IPCC 협정상 한번 설정한 NDC는 후퇴할 수 없다) 하되, 기존 산업부문 탄소 감축 목표(14.5%·3천790만t)를 11.4%(2천980만t)로 줄이는 것이다. 2021년 NDC 발표 당시에도 에너지, 건물, 수송 등 6개 분야에서 산업부문 감축률이 가장 낮았었는데 이번에 다시 3.1%나 줄인 것이다. 산업계는 이번에 5% 감축을 ‘현실적인 감축량’이라고 주장했는데, 국무총리가 설득해서 그나마 11.4%로 합의했다는 후문이다. 산업계에서 줄여준 810만t은 에너지(전기)분야에서 400만 t, 해외부문과 CCUS(탄소 포집 활용, 전장기술) 등에서 410만t을 줄일 계획이다.기후경제학자인 서울대 홍종호 교수는 “2030년이 되면 국제무역규범이 기존의 ‘전통적 WTO 자유무역규범’에서 ‘탈탄소 무역규범’으로 완전히 옮겨질텐데 이러한 국제 추세에 맞춰 기업 경쟁력 재고를 위해서라도 최소한 14.5% 감축으로 원상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지난 3월 20일 정부의 기본계획 발표 하루 전날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는 6차 종합보고서에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지금 당장 행동하라”는 긴박한 메시지를 내놓았다. 글로벌 기업 구글은 벌써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여 RE100을 달성했는데, 한국 기업 네이버는 0.64%만 재생에너지로 조달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글로벌 기업과 토종 기업 간의 재생에너지 경쟁력 수준이다. 국내 대기업들은 ‘탈탄소 무역규범’에 대비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이제 본격적으로 투자를 해야 하는데 정부의 산업부문 온실가스 감축 후퇴 정책은 재생에너지 투자를 축소해도 된다는 잘못된 신호를 보내는 것이어서 심히 우려된다.RE100 달성은 글로벌 기업들간의 피해 갈 수 없는 국제적 약속이다. 국가에 따라 에너지 믹스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산업계에 대한 탈탄소 부담이 달라질 수 있지만, 글로벌 기업 경쟁력에서는 기준이 다를 수는 없다. 나라에 따라 NDC에 원자력이 포함되기도 하고 포함 안 되기도 하지만 RE100에 원자력 에너지는 포함되지 않는다. 순수 재생에너지만 포함된다. 2025~2026년부터 시행되는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도 눈앞으로 다가왔다. 탄소국경조정제도는 철강제품, 유기화학물, 플라스틱 등 9가지 고탄소 배출 제품에 부과하는 일종의 탄소세다.무역이 국가 경제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제조업 강국 대한민국’으로서는 피할 수 없는 장벽이다. RE100은 우선 자체 재생에너지 생산으로 충당하고 부족한 소비전력은 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를 구매해서 채워나가야 한다. 원활한 국제 교역을 위해서는 산업계가 최대한 재생에너지 사용 비중을 높이도록 해야 하는데도 정부가 잘못된 신호를 산업계에 보냄으로써 산업계의 경쟁력을 후퇴시키고, 재생에너지 기반 제조업 강국으로 도약할 기회를 놓치는 것이 아닌가라는 조바심도 든다.필자가 대구, 구미 지역 기업들을 대상으로 RE100 컨설팅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대구의 3공단에 있는 수출 중심의 안경 공장이나 애플에 납품하는 IT기업은 RE100에 굉장히 적극적이다. 50KW, 100KW 정도라도 태양광 설치를 한다.하지만 성서산업단지의 내수용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은 태양광을 설치하면 RE100을 달성하고도 남는데도 필요성을 못 느껴 미적거리는 것이 현실이다.구미산업단지의 삼성, LG에 납품하는 기업들은 재생에너지 생산 여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태양광 설치를 거부하고 있다. 외관도 안 좋고, ‘정부가 어떻게 해주겠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하다.이런 상황에서 산업부문 온실가스 감축을 후퇴시키는 정부 정책에 대해 기업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기업들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재정부 로비 대신 당장 공장 지붕이나 공터, 주차장에 태양광을 설치해서 현재 가능한 20~30% 정도라도 재생에너지 공급에 앞장서야 한다.탄소 감축과 재생에너지 확대는 거창한 계획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곳에서 실천하면 된다. 실천캠페인에는 가장 급한 산업계가 선두에 서야 한다. 국민들도 내 집 옥상이나 내가 다니는 회사 옥상 등에 태양광 발전 시설을 설치하는 운동에 적극 나서야 한다. 정부는 세금 감면 등 각종 인센티브 제공을 통해 캠페인을 독려해야 한다.탄소 감축은 어차피 맞아야 할 매다. 지속 가능한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 할 관문인 것이다. 피해 갈 길은 없다. 정부는 좀 더 타이트한 로드맵과 더 적극적인 정책을 수립해서 산업계가 속히 RE100 달성을 이행하도록 해야 한다.

2023-04-09

춘맹(春盲)

이원만 맏뫼골놀이마당 한터울 대표 봄바람은 한 점도 낭비하지 마라. 어느 저녁자리에서 들은 말이다. 죽은 것 같은 가지에 새싹이 피어나 파릇파릇 다시 시작하는 걸 보면 바람이 날라 오는 봄기운은 낭비하고 싶지 않다.그래서 고영민시인은 ‘봄이 오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좋아지는 것 같다’고 했고 안도현 시인은 봄날 나무에 귀 기울이면 ‘그렁그렁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난다고 했는지도 모른다.지금도 휴대폰에는 많은 등록된 친구들이 봄 사진을 올리고 있다. 피는 꽃 옆에서 함께 활짝 웃고 있다. 다들 ‘좋아요’를 누르고 ‘꽃보다 사람이 아름답다’투의 댓글을 단다.여기까지는 좋았는데 따뜻한 봄볕을 받으며 “‘좋아요’는 어떻게 지구를 파괴 하는가”라는 책을 보고 난 뒤로는 ‘좋아요’를 누를 수가 없다.우리가 봄을 퍼 나르는 디지털세계는 우리가 물건을 사고팔고, 게임도 즐기고, 은근히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며 트위터에 글을 올리는 곳이다.그렇게 많은 활동을 하면서도 우리는 물질을 소모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방에 불을 켜둘 때 전력이 소모되는 것을 알면서도 디지털 세계에서는 다르다고 생각한다.이를테면 종이책을 사면은 나무가 베어져야 하지만 e-북을 이용하면 가격도 싸고 물질낭비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정보통신망 전체가 소비하는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엄청난 데이터를 저장하기 위해서 어느 만큼의 물이 소비되는지 해저케이블은 바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지 못한다. 내가 지금 휴대폰을 충전하는 이 전기는 화력인가, 원자력인가, 재생에너지인가와 같은 질문을 하며 충전을 하지 않는다.휴대폰을 만드는 금속 때문에 서식처를 잃어가는 고릴라는 더욱 더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그 휴대폰 때문에 고릴라의 서식처가 사라지고 있다고 걱정하는 글에 ‘좋아요’를 누르고 있을 수도 있다. 지금 컴퓨터로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의 나도 마찬가지다.“‘좋아요’는 어떻게 지구를 파괴 하는가”를 쓰기 위해 기자이자 피디인 저자 기욤 피트롱은 스마트폰을 작동시키는 금속, 지구상 가장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들, 해저테이블 가설현장 등을 누볐다고 한다.그는 단순히 ‘좋아요’를 한 번 보내기 위해서 지금까지 인간이 세운 것들 가운데 아마도 가장 거대한 규모일 것이라고 여겨지는 엄청난 하부구조를 설치하고 가동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디지털로 인한 오염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고 한다.기욤 피트롱이 빠르게 확산하는 디지털 오염 속도를 이렇게 설명했다. 엄청난 자원과 에너지를 먹어대는 거대한 설비들 속에서 이리저리 이송되고 저장되며 처리되는 그 데이터들은 새로운 디지털 컨텐츠로 만들어지며,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인터페이스가 필요하게 된다….세계 디지털산업은 너무도 많은 물과 자재, 에너지를 소비하기 때문에 이것이 남기는 생태발자국은 프랑스나 영국 같은 나라가 남긴 생태발자국의 세배에 이른다.오늘날 디지털 기술은 전 세계 전기생산량의 10%를 끌어다 쓰며, 이산화탄소 총배출량의 총 4%를 차지하는데 이는 세계 민간항공업 분야의 배출량의 두 배라고 기술했다. 기욤 피트롱의 이 말도 불편한데 해마다 그 양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니 이 일을 어찌해야 하나.석탄, 석유, 희귀금속. 인류는 이런 에너지의 전환을 통해 가공할만한 성장을 이뤘다. 그리고 지금 디지털시대의 최고 이용자는 그레타 툰베리로 대표되는 ‘기후세대’ 들이다.세계의 기후혼란에 맞선 운동은 SNS상에서 대부분 이뤄진다. 대기업들은 녹색디지털을 홍보하며 자신들이 사용하는 건물의 에너지는 모두 재생에너지, 탄소제로의 에너지임을 강조한다.하지만 디지털세계는 대부분 지구를 구하거나 기후혼란을 타개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소식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르도록 퍼 날라야 많은 사람들이 알 텐데 이 일을 어찌해야 하나.우리 나라의 샹황은 더욱 심각하다. 대한민국은 디지털 세계의 대표적인 수단인 스마트폰 보급률, 속도 등에서 세계 최강국이다. 미국 시장조사기관인 퓨 리서치(Pew Research)가 세계 27개 국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 2019년을 기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가 바로 대한민국으로 조사됐다.생생한 생명의 기운을 만끽하는 봄날. 그 환한 기운을 나누기 위해서 내가 올린 글과 사진에 옆자리의 동료가 ‘좋아요’를 누르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것들이 동원되고 소모되고 있는가.지구의 봄을 위해서 ‘좋아요’가 지구를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모른 채로 우리는 이 봄을 퍼 나르고 있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도 비극이요, 얻어도 비극인 세상이 되었다. 컴맹, 생태맹을 너머 우리 모두는 지구의 봄을 보지 못하는 춘맹(春盲)이 되었다.

2023-04-02

ADHD, 일부 반사회성 문제로 이어질 수도

사공정규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요즈음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정신건강의학과에 찾아오는 초등학생들이 늘고 있다.이들 중 상당수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이하 ADHD)를 가진 경우다.ADHD는 말 그대로 주의력이 떨어져 산만하고 행동이 부산하며 충동적인 것이 특징이다.아동이 뭘 하는지 늘 바쁘게 보이고 수업시간 등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할 상황에도 유난히 혼자서 딴 짓을 하거나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잠깐에도 손발이나 몸을 꼼짝거린다.식사도 한자리에서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마치 모터를 달아놓은 아이처럼 늘 부산하다.준비물을 잊어버리고 소지품을 잃어버린다. 아무 생각 없이 무슨 일이든 하는 충동성을 가져, 자기 차례나 규칙을 지키지 못하게 된다. 대답은 질문이 끝나기 전에 불쑥 하기도 하고 친구들을 괴롭히기도 한다.증상은 어릴 때부터 나타나지만, 집안에서 어머니와 함께 지낼 때면 무심코 지나치다가, 단체 생활과 주어진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문제는 뚜렷해진다.아마 선생님으로부터 “아이가 어수선해 수업 분위기를 해친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부모님도 있을 것이다.ADHD를 가진 아동은 지능이 나쁘지 않더라도 주의집중이 안돼 공부를 못하며, 과잉행동으로 사고(事故)의 위험성이 높아지고, 충동적 행동으로 또래와 어울리지 못하고 다른 아이들을 귀찮게 해 소위 ‘왕따’를 당하기 쉽다.또 부모님 선생님으로부터 꾸중을 듣기 쉽다. 따라서 적절히 치료하지 않고 방치할 경우 이로 인해 학습장애, 사고(事故)의 증가, 대인관계 악화, 우울증, 비행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우리나라의 경우 학령기 아동의 6.5% 정도가 ADHD로 추정되며, 남자아이들이 여자아이들보다 3∼4배 많다.이 장애는 아동의 학습능력과 인격발달 등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기에 정신과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그러나 부모님의 ADHD에 대한 잘못된 개념으로 치료를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 흔히 병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애들이 다 그렇다’, ‘정신만 차리면 집중할 수 있다’ 등으로 생각한다.부모님이 알아야 할 것은 ADHD를 가진 아이들의 증상은 심리적이라기보다는 뇌의 주의·집중력을 담당하는 전두엽 부위의 기능 이상에 기인하는 의학적 병이라는 사실이다.ADHD를 가진 아이를 단지 ‘말 안 듣는 아이’, ‘딴청피는 아이’, ‘종잡을 수 없는 아이’, ‘게으른 아이’, ‘사고뭉치’라고 생각하고 “정신만 차리면 집중할 수 있다”고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 이는 다리에 골절을 입은 사람이 있을 때 “정신을 차려서 걸으면 돼”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다리에 골절을 입었는데 제대로 걸을 수 있나? 제대로 치료해서 골절이 치료돼야만 걸을 수 있다.ADHD로 정신건강의학과에 찾아오는 아동들이 과거에 비해 늘고 있기는 하나, 우리나라의 ADHD 치료율은 여전히 낮은 10%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적절히 치료하지 않고 방치해 학습능력만 저해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ADHD 아동의 약 50%에서 감정조절실패·충동성 문제가 동반되며, 청소년기에 이르러서는 25~33%에서 적대적반항장애·품행장애(비행행동)로 발전하며, 성인이 돼 약 18%가 반사회성 문제(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 반사회적성격장애)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ADHD 증상이 있는 아동의 경우 도파민계·노르에피네프린계 약물치료를 하면 전두엽의 뇌기능을 개선해 주의·집중력과 과잉행동은 약 80% 정도에서 호전이 되지만, 감정조절실패·충동성 문제는 50%에서만 호전된다.아동기의 감정조절실패·충동성 문제가 청소년의 적대적반항장애·품행장애(비행행동)로 나타나 탈선이나 범죄로, 성인의 반사회성 문제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ADHD의 빠른 진단과 전문적인 치료가 중요하다. 이는 아동의 의학적 문제를 넘어 인생문제이기도 하고 사회적 문제이기도 하다.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ADHD를 치료함에 있어 보호자에게 희망을 전달해야 하나, 반사회성 발전 가능성의 문제만큼은 민감하지만, 지나친 낙관론을 배제하고 효율적인 치료전략을 제시해주어야 한다.전형적인 약물치료로 호전되지 않는 감정조절·충동성 문제는 필요한 경우 그에 적절한 추가의 약물처방과 함께 어떻게 훈육의 틀을 잡으면 좋을지 문제행동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일관된 훈육 태도를 제공하는 방법 등 교육적 행동치료에 대해 반드시 보호자에게 설명하고 함께 고민하고 전략을 짜야 한다.자녀가 ADHD를 피해갈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없겠지만, 혹시라도 당신의 소중한 자녀에게 ADHD가 왔다면 당당히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으라. 자녀의 소중한 건강과 미래가 걸린 일이다.

2023-04-02

RE100은 우리 손에 달렸다

위현복(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RE100(Renewable Energy 100)은 기업이 제품의 생산, 유통, 보관 전 과정에 걸쳐서 사용하는 에너지를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국제 캠페인이다. 구체적으로는 2050년까지 기업이 사용하는 에너지를 100%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만 충당하겠다는 글로벌기업 간의 자발적 협약이다.2022년 현재 구글, 애플, GM, MS, 이케아 등 370개 글로벌기업이 이미 참여를 선언했다. 국내에서도 SK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 한화큐셀, 고려아연,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 KT, 삼성그룹 등이 참여를 공표했다.RE100이 그나마 널리 알려진 것은 지난해 2월 40% 가까운 시청률을 보인 대선후보 TV토론을 통해서였다. 당시 이재명 후보가 윤석렬 후보를 향해서 “RE100을 아느냐”고 던진 질문 덕분에 기후변화와 에너지정책에 대한 국민적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RE100가 기업 간 자발적 협약에 불과한데도 기업경영의 현실적인 위험요소로 다가오는 이유는 분명하다. 기업이 RE100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제품과 서비스가 소비자에게 전달되어 사용되기까지 전 과정에 들어가는 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해야 한다는 점이다.예컨대, 특정 업체가 판매하는 완성품을 구성하는 모든 부품 생산업체도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기를 사용해서 제품을 생산해서 납품해야 하고, 운송과 애프터서비스에 필요한 에너지까지 전 과정에 모두 100% 재생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는 의미다. 말하자면, RE100이 글로벌기업이나 대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은 모든 업종에 걸쳐 모든 중소기업에 적용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RE100은 대기업이나 기업인, 혹은 국가만의 일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일이다. 국민 모두가 자기가 처한 위치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를 스스로 100%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해 나간다면 RE100은 달성될 것이기 때문이다.국민이 스스로 RE100에 참여하는 방법은 무엇인가?각자 집에서 사용하는 전기·전자 제품을 모두 고효율·절전 제품으로 바꿔야 한다. 당연히 냉·난방 에너지를 최대한 줄이는 노력도 필요하다. 단독주택에 사는 사람은 지붕과 주차장에 태양광을 설치해서 전기세 제로를 실천해야 한다. 아파트에 산다면 옥상과 벽면, 거실 창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여 전기세 제로를 달성해야 할 것이다.지금은 이를 위한 기술적인 문제와 비용의 문제가 거의 해결된 상태다. 주민들의 참여와 노력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다.공장을 운영한다면 우선 사용하는 에너지를 효율화하여 낭비 요소를 없애야 한다. 옥상, 벽면, 주차장에 태양광이나 소형 풍력발전기를 설치하여 신재생에너지로 소요전력을 충당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현실적으로 가능한 만큼 스스로 실행해야 한다.중요한 것은 참여다. ‘우리는 안 해도 되잖아’라면서 빠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RE100은 인류의 미래를 위한 거대한 선언이고 협약이지만,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고 세밀한 실천운동이 따라줘야 한다. 국민 개개인의 참여는 물론이고 모든 빌딩과 공공기관, 산업체가 반드시 참여해야 비로소 효과를 거둘 수 있다.각급 지자체는 독자적으로 해당 지자체의 전기 총수요와 총사용량을 파악하여 스스로 RE100 달성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천에 나서야 한다.농지나 유휴지에 태양광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현재 조례로 규제 중인 이격거리에 관한 주민들의 거부반응과 반발성 민원을 적극적으로 해소해야 한다. 주민들을 이해시키고 분쟁을 조정하는 과정에 시·군 공무원들이 앞장서서 태양광 설치가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이끌어 나가야 한다.태양광 설치에 한국은 5년, 독일은 6개월, 중국은 2개월 걸린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 태양광과 소형 풍력발전에 관한 법령 또한 미비한 실정이다. 독자적인 법령이 없이 사안이 있을 때마다 관련 법안에 끼워넣기식으로 대응한 탓에 정책의 일관성이나 실행력을 담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과 법령정비가 필수적이다.RE100 달성은 시대적인 기회라고 할 수 있다. 과거 에너지전환 시대에 앞서가는 국가는 선진국이 되었고, 뒤따라가는 국가는 추락했다. 더군다나 신재생에너지는 원재료가 누구에게나 어디에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햇빛과 바람이다. 산업화 과정에서 모든 자원이 부족하여 항상 자원을 수입하느라 막대한 돈을 내보내야 했던 우리나라로서는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신재생에너지 선진국 독일보다 우리나라의 일조량이 38%나 더 많다고 하니 얼마나 큰 축복인가?대전환 시대에 국토의 효율적 이용을 재편하고, 동시에 전 국민이 각자의 처지에서 RE100 달성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면, 에너지 자립을 바탕으로 에너지안보와 국가경쟁력 확보에도 큰 기회가 될 것이 분명하다.에너지 경쟁력이 기업의 경쟁력이고 동시에 국가경쟁력인 시대다. 국민 모두의 참여로 대한민국을 국가경쟁력과 에너지 경쟁력에서 새로운 위상을 확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다. RE100! 우리 손으로 해낼 수 있다.

2023-03-26

글로컬대학 발전을 저해하는 개념들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최근 교육부는 ‘글로컬대학 30’ 추진방안 시안을 공개했다. 학령인구 감소와 산업구조 변화에 대응해 지역의 대학들이 자율적으로 혁신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마련됐다고 한다.올해 비수도권 지역 총 10개 내외 글로컬 대학을 지정할 계획이고, 내년부터는 매년 5개 내외 글로컬대학을 지정해 2027년까지는 총 30개를 지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한다. 선정된 대학은 총 5년간 1천억원(매년 200억)을 지원 한다고 하니 파격적인 지역대학 지원책이다.또한,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제안서보다는 대학의 혁신비전과 과제를 핵심적으로 제시한 신청서 5쪽 분량을 제출하도록 요구하고 있어 제안서 접수부터 혁신적이고 신선한 감을 주고 있다.지자체의 참여를 필수로 하고 있다는 점도 시선을 끈다.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내에서 인재양성-취·창업-지역정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구축하기 위해 글로컬 대학에 집중 투자를 지원하도록 유도하고 정부가 매칭 형태로 지원하다는 것이 그 골자이다.정부는 “앞으로 글로컬 대학을 시작으로, 우리 대학이 도전 의식과 혁신 의지를 바탕으로 과감하게 경계를 허물고 담대한 변화를 추진할 수 있도록 범부처와 지자체가 함께 장벽 없는 지원을 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고 한다.그런데 이런 ‘글로컬 대학 30’ 육성전략의 발표 기사 옆의 안동시의 퇴계학당의 관련 기사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지난해 안동시 퇴계학당에서 공부한 고등학교 3학년 학생 75명 가운데 54명이 수도권 대학에 합격해 지역 학부모들의 이목을 끌었다고 자랑스럽게 보도를 하고 있었다.지난 2012년 학당 개설 이후 퇴계학당은 고교특성화 교육 사업으로 안동시장학회가 위탁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지만, 서울 유명학원의 강사를 초빙해 수도권 대학의 진학률을 높이는 걸 큰 자랑으로 홍보하고 있었다.지역발전의 초석이 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퇴계정신에 입각한 인성교육은 물론 다양한 교육시책을 발굴·추진해 서울 및 대도시권에 못지않은 경쟁력 있는 교육여건을 지역 학생들에게 제공하겠다는 것이 퇴계학당의 목표이면서 그 최종목표는 수도권대학의 진학률을 높이는 것으로 되어 있으니 아이러니컬 한 사실이다.수도권대학의 진학이 중요하다면 지역대학의 발전과 진학도 동시에 중요하다는걸 퇴계학당이 깨달아야 한다. 안동이 포함된 경북대구권의 경북대, 포항공대 등 명문대 진학률도 함께 공개하는 것이 퇴계학당의 취지에 맞는 것일 것이다.언젠가 포스코교육재단 관계자들이 서울대 합격률을 자랑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1986년 지역에서 세계적 명문대학을 만든다는 취지로 설립된 포스텍은 포스코에 의해 설립되었고 포스코교육재단은 당연히 포스텍 합격률을 서울대 합격률과 함께 자랑해야 하고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얼마 전 모 국회의원이 자기가 나온 대학을 ‘지방대’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세간의 비판을 받았다. 해당 의원은 과거에도 ‘지방대 출신임에도 블라인드 채용으로 KBS 아나운서에 합격할 수 있었다’는 발언을 했는데, ‘블라인드 채용법’의 취지를 강조하기 위한 열성에서 나온 이야기이지만, 자신의 출신 대학을 낮춘 것에 해당대학 학생들의 큰 반발이 있었다.우리는 사실 지방대는 물론 지방이란 단어 자체를 쓰지 않아야 한다. 한국에서 지방이란 단어는 열등하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지방정부, 지방공무원, 지방대학, 지방신문 등등, 지방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무척 익숙한 단어이다. 문제는 지방이란 단어가 한국에서 중앙에 대한 대등한 개념이 아닌, 열등의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지방대’란 단어이다.세계화 시대에 반드시 고쳐져야 할 개념이 ‘지방’이란 단어의 사용이다. 한국은 더 이상 서울과 지방으로 나눠져야 할 필요가 없는 나라이다. 고속도로를 달려보면 거의 공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전 국토에 걸쳐 사람들이 퍼져 살고 있다. 그만큼 좁은 나라다.좁은 나라의 미래의 번영은 세계화에 있다. 우리는 일체 ‘지방대’는 물론 ‘지방’이라는 단어 자체를 쓰지 말아야 한다. 지방에 있다고 열등한 것도 아니고 중앙에 있다고 우수한 것도 아니다. 각 지역의 객체들은 세계로 도약하며 각개 약진을 해야 한다.정부가 수천억 수조원을 들여 글로컬 대학에 투자한들 퇴계학당처럼 수도권대학의 진학률을 목표로 하고 서울대 합격률을 자랑하는 지역의 풍토에서 어떻게 글로컬 대학의 육성이 가능할 것인가?글로컬 대학의 발전은 교육부의 지원도 필요하지만 우선 우리 자신들의 지역대학에 대한 인식의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글로컬 대학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들은 바로 우리자신이고 우리의 잘못된 개념에 있다. 그러한 개념이 바뀌지 않는다면 아무리 지역대학에 투자를 해도 지역대학의 글로컬 대학으로의 도약은 암울할 뿐이다. 정부가 일체 ‘지방대학’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글로컬 대학의 육성과 투자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 개념이다.

2023-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