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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을 향한 인간의 도전

등록일 2023-05-14 19:59 게재일 2023-05-15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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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하전 포항시의회 의장
박문하 전 포항시의회 의장

우리에게 평소 마이크로 소프트사의 창업자로 잘 알려진 ‘빌 게이츠는 탁월한 기업가라는 이미지 외에도 통 큰 기부와 봉사활동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인간적인 면모와는 별도로 그는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정확하게 진단 하는 것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CEO들에게 주문한 변화의 필연성은 혁신을 거부하고 현실에 안주한 노키아의 몰락으로 충분히 증명되었으며 인공지능이 인간만큼 훌륭한 가정교사 노릇을 할 날이 멀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도 적중해가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행한 발언 중에 주목할 것은 전염병에 대한 언급이 아닌가 한다. 만약 인류가 멸망하게 된다면 가뭄이나 홍수로 인한 식량 기근이나 핵 전쟁 같은 재앙이 아니라 전염병에 의해 파멸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역설한 대목이다. 이 말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오기 전에 예상한 것이어서 새삼 그의 혜안이 놀라울 뿐이다.

기원전 3000년 고대 이집트의 미라에서도 천연두의 흔적을 볼 수 있을 만큼 인류의 역사는 질병의 역사라고 해도 아닐 정도이다. 역사 이래로 인간은 강력한 세균과 바이러스의 도전을 받아 왔고 더불어 전염병은 우리 인류의 역사에 있어 한 국가나 사회의 존망뿐만 아니라 역사의 방향까지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다. 흔히들 우리는 절망스러운 역사를 기억하면서 끔찍한 전쟁을 떠올리지만 기실 질병이 인간에게 안긴 고통에 비하면 이내 아주 사소한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BC 431년 도시국가 아테네는 콜레라로 인해 190만 명이 사망하였고 서기 165년에 로마제국에서 시작된 천연두로 5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서기 541년부터 한 세기 동안 페스트가 650만 명의 생명을 앗아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끔찍한 전염병의 역사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1347년부터 유럽 대륙을 다시 찾아온 페스트(흑사병)는 6년여 동안 7천500만 명에서 2억여 명의 인명을 집어 삼켰고 이때 사망한 인구가 정상으로 회복하는데 300년이 걸렸다고 하니 전염병이 얼마나 무섭고 인간을 괴롭혔는가를 확인해주고 있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흑사병을 고치기 위한 노력은 사람들로 하여금 지나치게 머신에 의존하게 하는 나약함을 드러내게 만들었고 일반 민중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던 보카치오의 ‘데카메론’도 페스트 팬데믹을 피해 피렌체 교외 별장으로 피난 온 젊은 남녀 10명의 이야기에 기반을 두고 있는 내용이다.

이후 19세기 인도와 중국에서 창궐한 콜레라로 1천500만 명의 생명이 쓰러졌고 20세기 스페인 독감은 5천만 명 이상의 목숨을 빼앗아갔다.

21세기가 도래한 최근의 코로나 19까지 질병은 인간의 생존과 진화 과정에서 얼마나 두렵고 공포스러운 존재인가를 보여주었고 15세기 중반 유럽 전역을 덮쳐 유럽 인구의 거의 절반을 삼킨 대재앙은 실제 인류가 완전히 멸망하는 것으로 예측한 학자들이 상당수였다는 것이 속속 밝혀졌었다.

또한 유럽대륙에서 발생한 천연두는 16세기 아메리카 대륙의 잉카와 아즈테카의 강대한 제국을 덮쳐 신대륙 원주민의 90% 절멸시켰다. 거대 제국들은 전염병 앞에 바람 앞에 촛불처럼 쓰러져 갔다. 20세기 들어 발생한 스페인 독감으로 사라진 생명들은 제1차 세계대전 사상자 4배를 넘고 있다.

한 대륙의 제국을 초토화 시킨 천연두는 치명적인 질병이기도 하지만 운 좋게 회복되어도 얼굴에 흉한 상처로 삶의 질을 떨어트리는 최악의 질병으로 기록되고 있다.

1873년 우리는 전염병의 역사에서 주목할 만한 사람을 만날 수 있으니 그 이름은 ‘에드워드 제너라는 영국인 의사이다. 제너는 소의 젖을 짜는 여성들은 이상하게 천연두에 안 걸린다는 것에 착안하여 소와 천연두 면역력과의 연관성을 연구한 결과 최초의 효과적인 우두 종두법 실험을 통해 마침내 인류는 천연두와의 치열한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유케 되었다.

‘하나님의 천벌로 내린 전염병은 인간이 극복하지 못한다’는 종교계의 주장도 천연두 퇴치에 대한 그의 확신과 집념을 꺽지 못했다

1979년 WHO는 마침내 지구상에서 천연두의 박멸을 공식선언 하였다. 길고도 무시무시한 전염병과의 전쟁에서 인간이 승리하는 순간이었다. 질병으로 죽음에 직면한 엄혹한 조건의 극한 상황 앞에서 억누를 수 없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인간의 도전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보여 주는 일례가 아닐 수 없다.

때마침 지난주에는 대통령이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흔들었던 코로나 19 팬데믹 종식을 선언한 바 있다. 2020년 1월 코로나19 발생이후 장장 3년 4개월 만이다.

기나긴 팬데믹 기간에서 정상으로 오기까지의 험난한 여정은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과 심각성을 확인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어쩌면 지금도 전염병은 탐욕스러운 인간을 향해 소리 없이 공격을 준비하고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전염병과 인간이 공존하는 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해야 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필연이거나 숙명일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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