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는 ‘가치 외교’를 외교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한 개념으로 들리지만 근년에는 언론뿐 아니라 학술 용어로도 사용되고 있다.
가치 외교는 인권, 법치, 시장경제라는 보편적 자유주의적 가치의 결속으로 반자유주의적, 반인권적 가치를 견제 봉쇄한다는 개념이다. 가치 외교는 국가 간의 연합이나 동맹을 통해 자유주의적 가치의 공동 번영을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이론적으로 그럴듯해 보이는 가치 외교는 실리외교와는 다소 괴리가 있고 그 역설이 초래되기도 한다. 결국 가치 외교는 미소 냉전시대의 이념외교의 기본 틀을 크게 탈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치 공유국가들의 결속을 통한 반자유주의적 국가를 배격하는 가치외교는 원래 취지와는 달리 개별국가의 외교적 손실이라는 역풍의 위험도 있다. 그것이 바로 가치 외교의 역설이며 부메랑이다.
윤석열 정부는 취임사에서부터 ‘자유와 인권’의 가치를 전면에 내세웠으며 그것을 가치외교의 토대로 삼고 있다. 정권 교체 이후의 새 정부는 대체로 전임정권의 정책이나 폐습을 청산하려고 노력한다. 문재인 정권과 마찬가지로 윤석열 정부 1년은 적폐청산과 사정정국으로 귀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 정권에 대한 비판은 외교 정책도 예외 없이 적용되고 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문재인 정권의 대북 정책이나 북방외교의 기본 골격이었다. 그러나 그 화해 정책의 당위성은 충분히 인정되었지만 한반도 평화 정착의 실효는 거두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의 2019년 판문점 선언과 평양선언은 초기의 기대와는 달리 형해화 된 선언문으로 남아 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정부의 중간자적 화해 협력이라는 정책기조에서 탈피하여 한미 안보 동맹을 최우선 과제로 하는 가치 외교의 기조로 삼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가치외교는 이념적 안보 동맹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정부의 대일 외교는 대통령의 소위 ‘통 큰 결단’을 통한 파격적 대일 관계개선으로 나아가고 있다. 대통령은 지난번 한일 정상회담에서 굴욕외교라는 국내의 비난을 무릅쓰고 강제 징용문제에 대한 제3자 배상 원칙을 해결책으로 제시하였다.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도 ‘100년 전의 일로 일본의 무릎을 끊게 할 수는 없다’는 입장으로 선회하였다. 일본의 책임 있는 사과보다는 일본정부의 선의에 기댄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는 입장이다. 윤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과의 ‘워싱턴 선언’을 통해 핵 확장 억제 협의기구(NCG)를 설립하여 북핵 대응 공동대응 장치를 마련하였다. 당초 기대했던 미국의 반도체법과 인플레이선 감소 법(IRA)의 한국기업의 보호책은 마련치 못했지만 한미 안보동맹은 보다 강화된 느낌이다. 서울의 한일 정상 회담은 한일 셔틀외교를 복원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모두가 적극적인 가치외교의 결과물이다.
현 시점에서 가치 외교가 초래한 손익계산을 명확히 해 볼 필요가 있다. 가치외교는 원래의 이상과는 달리 우리의 국익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가치외교는 예상한대로 중국, 러시아, 북한의 강력한 비판에 직면해 있다.
중국은 한미일 안보 동맹 강화를 연일 신랄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윤 대통령의 대만 해협 관련 발언에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반한다면서 ‘불장난을 좋아하면 불에 타죽는다’는 원색적 비난도 마다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정부의 인도적 지원뿐 아니라 군사적 지원 가능성에 대해 러시아의 반대 입장도 분명히 드러나 있다. 북한의 워싱턴 선언에 관한 노골적인 비난은 말할 필요도 없다.
중국과 러시아, 북한의 역 삼각 동맹의 강화는 동북아의 신냉전시대를 예고하고 미국 주축의 한미일 결속외교는 또 다른 안보의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무역 적자가 날로 심화되는 우리 현실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무역보복 등 경제적 손실도 냉철히 분석해야 할 것이다.
흔히들 국제관계에는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다고들 말한다. 미중 패권 경쟁시대에 윤석열 정부의 가치 외교의 기본 틀은 미국과 일본에 편향 의존된 것은 사실이다. 과거의 2차 대전 후의 냉전시대로의 회귀처럼 신냉전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한미일 안보적 결속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경제적 실리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가치나 이념을 앞세운 한미일 삼각 동맹이 초래하는 부메랑을 걷어내어야 한다. 우리는 이제 세계 6위의 군사력과 세계 10위권의 국격에 걸 맞는 외교를 펼쳐야 한다. 과거의 강대국 의존의 저자세 외교, 종속외교에서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구한말의 역사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미국과 일본이 체결한 테프트 카츠라 조약의 비극적 역사를 결코 잊어서 안 된다. 당시 미국이 필리핀을 지배하고, 일본이 한반도의 지배를 인정한 야합의 조약문을 되새겨 보아야 한다.
한미일의 철저한 안보 동맹 뒤에 숨은 후폭풍을 막을 수 있을까. 가치외교의 역설이 우리에게 던지는 근본적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