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국 의원의 파문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코인투자 논란이 가속되고 있다. 그동안 절약과 가난의 삶을 “라면만 먹는다. 낡은 신발을 신는다” 등으로 유권자들의 동정심과 후원을 구했던 그가 수십억이 넘는 코인 가상재산을 갖고 있다고 하니 유권자들은 매우 당황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국회회기 기간 중 자주 자리를 비우면서 가상코인 투자를 했다는 게 보도되면서 문제의 핵심이 급격히 의원 직분 태만으로 이동하고 급기야는 그가 가상자산 과세 유예 법안에 참여했기에 로비가 있었던가 아닌가라는 의구심도 자아내고 있다.
룰(Rule)과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논리는 사실상 미국과 같은 준법이 잘 지켜지는 곳에서 기인한다. 미국에 처음 간 사람들은 자동차 정지선에 꼬박꼬박 서는 룰을 잘 지키는 미국에서 왜 쇼핑카트는 주자장 아무데나 버리고 가는지 이해가 늘 안된다.
결국 룰은 ‘강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예이다. 미국서는 정지선을 안지키다 적발되면 큰 벌금이 나온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논리라면 쇼핑카트를 아무데다 놓으면 페널티를 주어야 한다. 그런데 그러한 룰이 없으니까 쇼핑카트가 아무데나 어지럽게 놓여있다. 한국에서 100원 짜리 동전을 넣어서 카트를 쓰고 다시 카트를 정리해야 100원 동전을 찾는 간단한 룰로 한국의 소핑카트는 잘 정리된다. 결국 어떤 국민이든 법을 잘지키는 국민이라는 선입견은 없다. 누구든 어떤 나라 국민이든 룰과 형식에 의해 질서가 지켜 지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1970년대는 대학가의 시험 커닝(시험 부정)이 만연하던 시절이다. 정치적인 부정과 독재에 항거하면서도 그 자신은 커닝으로 시험을 치르는 모순된 대학생들의 모습이었다.
포스텍 재임 기간 중 시험 커닝이 없는 깨끗한 캠퍼스를 경험했다. 포스텍은 미국 스탠퍼드대학처럼 ‘어너코드’(Honor Code·시험치기전 양심선언)가 있어 커닝없는 시험을 치르고 있다. 한국학생 한 명이 시험종료 시간을 지나 30초 정도 더 답변을 작성했고 이것이 문제가 되어 몇 개월에 걸쳐 학교에 소명하는 작업에서 고생했던 경우를 보았다. ‘어너코드’와 커닝에 대한 엄격한 스탠포드의 룰과 형식은 결국 스탠포드 학생들의 내용을 지배하게 되었다.
“제도는 사람을 유혹한다”는 말도 있다. 따라서 교수들은 공정한 평가가 유도될 수 있는 방법으로 학생들이 커닝에 대한 유혹을 받지 않도록 하고 학생들은 그들이 말하는 ‘공정한 사회’를 위해 커닝과 같은 부정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건 자명하다.
정부가 교차로 꼬리물기 금지 캠페인을 위해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고 한다. 교통의 흐름을 방해하고 운전자의 이기주의의 산물인 꼬리물기는 사실상 후진 한국운전문화의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30여 년 전 미국서 귀국한 직후 포항에서 한번은 신호등 없는 사거리에서 잠시 멈추고 주위를 살피고 전진하는데, 왼쪽 길에서 오는 차에 받쳤다. 그때서야 신호등 없는 사거리에선 눈치껏 가야하고 꼬리물기가 일반화돼 있다는 걸 알았다. 반면 미국에선 신호등 없는 사거리에선 모든 차는 정지해 사거리에 진입한 순서대로 진행하도록 돼 있다. 이 제도는 인적이 드문 곳에서도 철저히 지켜지고, 어기게 되면 벌금을 물도록 되어 있다.
사실 교차로 꼬리물기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신호등 없는 사거리에서의 꼬리물기다. 고속도로에서도 뒤에 오는 차가 더 빨리가라고 경적소리를 내기도 한다.
한국 교통문화에 안타까움을 느끼는 건 이러한 후진성이 ‘적당주의’와 관련이 있고, 그러한 적당주의는 룰과 형식이 잘 정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교통체계를 좀더 정교하고 과학적으로 체계화하고, 운전자, 보행자의 교통규칙을 룰과 형식의 관점에서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김남국 의원의 문제도 룰과 형식의 강화로 막을 수 있었다. 그에게 문제가 있다면 룰과 형식에서도 문제를 찾아 볼 수 있다. 그가 한 행동들 코인 가상제도 투자, 회기 기간 중 좌석 이탈, 재산목록에 가상재단 불포함 등등은 모두 불법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의원의 가상재산도 재산목록에 포함해야 한다는 룰 개정은 늦은감이 있지만 조속히 시행되어야 한다. 가상재산도 언제든지 현금화 할 수 있다면 당연히 포함되어야 한다.
국회 개정 시간에는 특정한 이유없이 자리를 무단 이탈해서는 안 된다는 룰을 ‘어너코드’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나 아무 때나 자리를 떠날 수 있다면 그건 나라일을 의논하라고 국회의원을 뽑아준 국민에 대한 모독이다.
다양한 방법으로 국회의원 윤리를 위반한 의원은 다음에는 공천될 수 없다는 룰도 필요한데 최근 민주당은 오히려 공천 룰을 약화 시켰다는 전언이다. 하자가 있는 후보가 공천되도록 룰을 약화시켰다는 룰과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룰을 거꾸로 올라가는 모습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 김남국 의원 사태를 계기로 룰과 형식을 더 강화해야 한다. 그러한 강화를 통해 내용이 향상되는 그런 사회, 그런 국가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