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은 한 점도 낭비하지 마라. 어느 저녁자리에서 들은 말이다. 죽은 것 같은 가지에 새싹이 피어나 파릇파릇 다시 시작하는 걸 보면 바람이 날라 오는 봄기운은 낭비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고영민시인은 ‘봄이 오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좋아지는 것 같다’고 했고 안도현 시인은 봄날 나무에 귀 기울이면 ‘그렁그렁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난다고 했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휴대폰에는 많은 등록된 친구들이 봄 사진을 올리고 있다. 피는 꽃 옆에서 함께 활짝 웃고 있다. 다들 ‘좋아요’를 누르고 ‘꽃보다 사람이 아름답다’투의 댓글을 단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따뜻한 봄볕을 받으며 “‘좋아요’는 어떻게 지구를 파괴 하는가”라는 책을 보고 난 뒤로는 ‘좋아요’를 누를 수가 없다.
우리가 봄을 퍼 나르는 디지털세계는 우리가 물건을 사고팔고, 게임도 즐기고, 은근히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며 트위터에 글을 올리는 곳이다.
그렇게 많은 활동을 하면서도 우리는 물질을 소모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방에 불을 켜둘 때 전력이 소모되는 것을 알면서도 디지털 세계에서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종이책을 사면은 나무가 베어져야 하지만 e-북을 이용하면 가격도 싸고 물질낭비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정보통신망 전체가 소비하는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엄청난 데이터를 저장하기 위해서 어느 만큼의 물이 소비되는지 해저케이블은 바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지 못한다. 내가 지금 휴대폰을 충전하는 이 전기는 화력인가, 원자력인가, 재생에너지인가와 같은 질문을 하며 충전을 하지 않는다.
휴대폰을 만드는 금속 때문에 서식처를 잃어가는 고릴라는 더욱 더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그 휴대폰 때문에 고릴라의 서식처가 사라지고 있다고 걱정하는 글에 ‘좋아요’를 누르고 있을 수도 있다. 지금 컴퓨터로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의 나도 마찬가지다.
“‘좋아요’는 어떻게 지구를 파괴 하는가”를 쓰기 위해 기자이자 피디인 저자 기욤 피트롱은 스마트폰을 작동시키는 금속, 지구상 가장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들, 해저테이블 가설현장 등을 누볐다고 한다.
그는 단순히 ‘좋아요’를 한 번 보내기 위해서 지금까지 인간이 세운 것들 가운데 아마도 가장 거대한 규모일 것이라고 여겨지는 엄청난 하부구조를 설치하고 가동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디지털로 인한 오염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고 한다.
기욤 피트롱이 빠르게 확산하는 디지털 오염 속도를 이렇게 설명했다. 엄청난 자원과 에너지를 먹어대는 거대한 설비들 속에서 이리저리 이송되고 저장되며 처리되는 그 데이터들은 새로운 디지털 컨텐츠로 만들어지며,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인터페이스가 필요하게 된다….
세계 디지털산업은 너무도 많은 물과 자재, 에너지를 소비하기 때문에 이것이 남기는 생태발자국은 프랑스나 영국 같은 나라가 남긴 생태발자국의 세배에 이른다.
오늘날 디지털 기술은 전 세계 전기생산량의 10%를 끌어다 쓰며, 이산화탄소 총배출량의 총 4%를 차지하는데 이는 세계 민간항공업 분야의 배출량의 두 배라고 기술했다. 기욤 피트롱의 이 말도 불편한데 해마다 그 양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니 이 일을 어찌해야 하나.
석탄, 석유, 희귀금속. 인류는 이런 에너지의 전환을 통해 가공할만한 성장을 이뤘다. 그리고 지금 디지털시대의 최고 이용자는 그레타 툰베리로 대표되는 ‘기후세대’ 들이다.
세계의 기후혼란에 맞선 운동은 SNS상에서 대부분 이뤄진다. 대기업들은 녹색디지털을 홍보하며 자신들이 사용하는 건물의 에너지는 모두 재생에너지, 탄소제로의 에너지임을 강조한다.
하지만 디지털세계는 대부분 지구를 구하거나 기후혼란을 타개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소식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르도록 퍼 날라야 많은 사람들이 알 텐데 이 일을 어찌해야 하나.
우리 나라의 샹황은 더욱 심각하다. 대한민국은 디지털 세계의 대표적인 수단인 스마트폰 보급률, 속도 등에서 세계 최강국이다. 미국 시장조사기관인 퓨 리서치(Pew Research)가 세계 27개 국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 2019년을 기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가 바로 대한민국으로 조사됐다.
생생한 생명의 기운을 만끽하는 봄날. 그 환한 기운을 나누기 위해서 내가 올린 글과 사진에 옆자리의 동료가 ‘좋아요’를 누르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것들이 동원되고 소모되고 있는가.
지구의 봄을 위해서 ‘좋아요’가 지구를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모른 채로 우리는 이 봄을 퍼 나르고 있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도 비극이요, 얻어도 비극인 세상이 되었다. 컴맹, 생태맹을 너머 우리 모두는 지구의 봄을 보지 못하는 춘맹(春盲)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