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정규 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가슴이 답답하다”, “열이 치밀어 오른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숨이 차다”, “속이 미식거리고 토할 것 같다”, “배에 가스가 차고 속이 더부럭하거나 속이 쓰리고 소화가 안 된다”, “입이 쓰고 입맛이 없다”, “목에 무언가 걸린 것 같다”, “머리가 무겁고 아프다”, “어지럽다”, “몸에 통증이 있다”, “쉽게 피로하다” 등의 증상으로 병·의원에 가서 이 검사, 저 검사 다 받았지만 “특별한 이상이 없다” 거나 ‘신경성’ 또는 ‘스트레스성’이라는 말을 들었나요?그렇다면 이는 ‘신체증상장애(Somatic Symptom Disorder)’일 가능성이 높다. 신체증상장애 환자들은 한 가지 이상의 신체 증상으로 고통스럽거나 일상에 중대한 지장을 초래하지만, 신체증상의 원인을 찾기 위해 시행한 검사에서는 이상소견을 보이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신체증상장애를 가진 분들은 본인은 아픈데 검사상 아무것도 나오지 않거나 검사소견에 비해 증상의 호소가 심하다는 말을 들으니 답답한 마음이다. 또, 주변 사람들로부터 환자의 신체증상이 꾀병 또는 엄살로 오해하게 만들기도 하니 억울하기도 하다. 그래서 신체증상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의사를 신뢰할 수 없게 돼 용한 의사를 찾으러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는 소위 ‘닥터쇼핑(Doctor shopping, 의사 순례)’을 하게 되는 경우가 참 많다. 또한, “뭐라도 원인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비싸다는 검사도 마다하지 않고 한다.신체증상장애의 유병률은 5~7%로 추정된다. 이렇듯 신체증상장애는 흔하지만 신체증상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이 장애의 특징이기 때문에 신체증상장애를 가진 분들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보다는 내과, 신경과, 마취통증의학과, 이비인후과 등 타과 진료만을 찾는 경우가 많다.신체증상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신체증상들을 과도하게 위협적이고 위험하게 생각하고 정상적인 신체감각조차 재앙적으로 해석하고, 어떠한 신체적 활동이 신체에 해를 입힐 수 있다는 공포감으로 신체적 활동을 과하게 회피하고, 신체적 증상에 대한 반복적인 검사와 의학적 도움과 안심에 대한 반복적 추구 행동 등을 한다.신체증상장애의 원인은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환경적 요인 등 다양하다. 생물학적 원인으로는 신체감각에 대한 과민함, 통증 역치의 저하가 대표적이다. 즉 이전에 불편함이나 통증으로 느끼지 않았던 자극들이 통증 역치가 낮아지면서 불편함이나 통증으로 느끼게 된다. 또한, 생물학적 요인으로 자율신경기능 이상이 원인이다. 자율신경은 인체 전반에 분포하여 인체의 기능을 조절하는데 자율신경기능 이상이 오면 다양한 신체증상이 발생하게 된다. 심리적 원인으로는 스트레스로 인해 생긴 부정적 감정, 우울, 불안, 분노(화), 질투 등의 힘든 감정을 자신이나 타인에게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못해 신체적인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본다.사회환경적 관점에서 우리나라가 서구 사회보다 신체증상장애 비율이 더 높다. 서구 사회에서는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경향이 높은데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감정 표현을 하는 것을 “어른답지 못하다”며 참고 억누르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문화적 배경과 ‘우울, 불안’ 등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경우 ‘정신질환자’라고 손가락질 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여성들은 신체증상을 남성보다 더 많이 호소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신체증상장애도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많다.또한 우울장애, 범불안장애, 공황장애 등 다른 정신과적 장애에서도 신체 증상이 흔히 동반된다. 그러나 우울장애에서는 하루 중 대부분 그리고 매일 지속되는 우울한 기분 또는 일상 활동에 대해 흥미나 즐거움 상실 등의 핵심 우울 증상들이 있다는 점에서 신체증상장애와 구별된다. 범불안장애에서는 주요 초점이 대개 신체 증상이 아니고 다양한 사건, 상황, 활동에 대한 걱정이다. 공황장애에서 신체 증상들은 급격한 공황발작 삽화에서 나타나는 경향이 있지만 신체증상장애에서는 신체증상에 대한 생각과 불안이 지속적이다.신체증상장애의 예방을 위해서는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고 부정적 감정을 잘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는 것이 좋다. 그리고 울고 싶을 때 무조건 참기보다 오히려 잘 우는 것이 좋다. 또한 산책, 운동, 명상, 이완요법 등이 도움이 되고, 과식, 술, 담배, 커피 등을 절제하는 것이 좋다.신체증상장애는 조기에 치료를 받지 않으면 나아질 듯 하다가 사소한 자극으로 악화되는 만성적 경과를 보이기 쉽다. 그러나 대부분 신체증상장애 환자들은 진단을 받지 못하고 여러 병원 돌아다니거나 심지어 비의학적인 방법을 하면서 조기 치료의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신체증상장애를 가진 사람 중 제대로 진단받고 치료받는 환자는 3%에 불과하다고 한다.신체증상장애의 치료는 전문적인 정신과적 치료를 조기에 그리고 꾸준히 받으면 여러 합병증을 예방할 수 있고 증상을 경감시킬 수 있고 치료될 수 있다. 우리가 소를 잃었으면 외양간을 고쳐야 한다. 소를 잃고 소와 관계없는 곳을 고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하듯이 건강을 잃어 병을 얻었으면 그 병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그에 맞는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야 한다.
2024-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