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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딸 전체주의와 용산 전체주의 대결

등록일 2024-01-21 19:19 게재일 2024-01-22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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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한국 정치에서 전체주의 비판이 수시로 등장한다. 전체주의(totalitariannism)는 개인은 전체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반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다. 2차 대전 전후 많은 인명을 앗아간 히틀러나 무솔리니의 나치즘이나 파시즘은 대표적 전체주의이다. 레닌이나 스탈린 역시 공산 혁명이란 허구적 전체주의 이념으로 수많은 인명을 희생시켰다. 우익 독재나 좌익 독재의 이면에는 전체주의라는 반민주적 악마가 숨어 있다.

오늘날 21세기 흔히 ‘이데올로기 시대’는 끝났다고 한다. 그러나 이 나라 정치판에는 아직도 상대를 전체주의로 몰아가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야당인 민주당을 전체주의세력으로 규정한 바 있다. 최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도 ‘개딸 전체주의’와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선포하였다. 이에 뒤질세라 야당 역시 윤석열 정부를 향해 검찰 독재정권이라 부르며 ‘용산전체주의’라고 받아치고 있다. 이 나라 양 극단 정치의 바탕에는 상호 포용키 어려운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가 깔려 있다.

자주 회자되는 개딸 전체주의부터 살펴보자. ‘개딸’은 ‘개혁의 딸’을 줄인 말인데 그 어감이 매우 좋지 않다. 우리 가정에 개가 반려견이라는 이름으로 가족의 일원이 된지 오래지만 개판이나 개떡처럼 접두어 ‘개’는 아직도 추잡한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개 딸은 지난 대선부터 이재명 후보를 적극 지지하는 여성 열성당원을 지칭한다. 이들은 당내 대선 후보 경선과정에서 이낙연 지지자들을 ‘수박’으로 불렀다. 이들은 수박의 초록색 겉과 붉은 속이 다르듯 상대를 비난 비판하기 위해 이 용어를 사용하였다. 이들은 지금도 반명이나 비명 세력을 수구 보수적 사이비 수박 세력으로 간주한다. 민주당을 탈당한 이낙연 전 대표도 개딸로부터 2년간 수모를 당했다고 실토한 적이 있다.

어느 민주당 집회에 잠시 참관한 적이 있다. 그들은 이재명 당 대표가 등단, 발언하자마자 ‘옳습니다.’를 외쳤다. 이들은 이재명 대표의 언행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이에 반하는 세력을 용인치 않는다. 정치인들은 이런 열광적 지지그룹이 필요하지만 사당화 등 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야당은 이에 대해 윤석열 정부를 ‘용산 전체주의’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용산 대통령실은 여당과 정부 권력의 중핵축이다. 정부 출범 이후 집권당에 대해 용산은 항상 우위를 점했다. 당정관계를 수직적 구조라고 비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권 출범 시부터 이준석 전 대표는 징계를 당하고, 당대표 후보 안철수, 유승민, 나경원은 모두 후보를 포기하였다. 여론상 최하위였던 김기현 후보만이 당 대표에 당선되었다. 최근에는 검찰 출신 한동훈 법무장관이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전격 취임하였다. 이를 두고 용산 대통령실의 입김이 작용치 않았다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집권 여당의 당 조직이나 인사에서부터 정책 결정에 이르기까지 용산의 힘이 작동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국회 청문회를 무시한 인사권 남용, 김건희 특검법에 이르기까지 법률안에 대한 계속된 거부권 행사는 용산 대통령실의 위세를 잘드러낸 것이다. 이를 야당은 윤석열 정부를 상명하복의 ‘용산 전체주의’라 비난하고 있다.

여야의 이러한 상대를 향한 비판과 비난은 극한 대결의 정치로 연결된다. 전체주의는 상대를 적대화, 악마화하는 도구로 활용된다. 여야는 겉으로 민생과 실용정치를 내세우면서도 상대를 전체주의 사슬로 매도하여 정쟁만 유발한다. 미국에서 1960년대 상대 정적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죽이는 맥카시적 수법이 이 땅에 재현된 셈이다.

상대를 대화의 파트너로 인정치 않고 저주의 대상으로 삼는 곳에서 상생 정치는 살아날 수 없다. 물론 이곳에 당내의 민주주의도 제대로 성장할 수 없다. 더욱이 4·10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자당의 승리만을 위한 이념적 팬덤 정치는 더욱 갈등정치만 조장한다. 정치인이 선도하고, 언론이 방조하고, 시민 사회마저 갈라진 상황에서 민생이나 상생 정치는 결코 회생될 수 없다.

강서 보선 패배 후 대통령은 이념보다 민생 우선의 정치를 강조했다. 그러나 여야 정치권의 모습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이재명 대표의 백주의 테러 사건도 진보당 강성희 의원의 돌출사건도 모두 한국적 갈등 정치가 초래한 비극이다. 이론적으로는 양극정치에서 중도층이나 무당층이 캐스팅 보트를 쥐면 양극 대립은 막을 수 있다. 그러나 한국적 정치 풍토에서 건전한 중도층은 독자적 정치 세력을 형성할 수 없다. 결국 선거의 막판에는 중도층이 좌우로 편향되기 때문이다.

최근 제3의 중도 정치를 표방하면서 여러 개의 신당이 창당되고 있다. 이들이 과연 양극 정치 해소의 마중물이 될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기대난망이다. 제3의 빅텐트는 치기도 어렵고, 치더라도 선거용 임시 천막일 뿐이다. 정체성이 다르고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타협이나 상생의 정치가 자리하려면 우선 상대를 전체주의로 몰아가는 이념정치부터 걷어 치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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