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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 청산’과 ‘검사 독재 청산’의 격돌

등록일 2024-02-04 18:35 게재일 2024-02-05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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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총선 60여 일 전이다. 총선 전반전은 여야의 고질적인 격돌구도이다. 선거구도 면에서 양대 정당 사이에 여러 개의 신당이 창당된 것이 달라진 점이다.

이들 제3의 정당이 약진하여 양당의 갈등구도를 완화시킬 지는 미지수이다. 현재는 여당과 야당에서 이탈한 세력끼리 통합하여 합종연횡을 모색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무래도 이들이 하나의 빅 텐트를 치기는 어려운 정황이다. 여야의 공천관리 위원회는 후보 공천의 ‘공정성’을 강조하지만 공천 탈락자들이 상당수 신당 참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여당은 선거 사령탑이 한동훈 비대위원장으로 교체되었지만 야당은 이재명 대표 체제가 그대로 유지될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야의 대표적 선거 슬로건은 ‘운동권 청산’과 ‘검사 독재 정권 청산’으로 집약되고 있다.

이러한 선거 슬로건은 여야의 정치적 대립과 갈등을 증폭시킬 뿐이다. 이러한 상대를 청산제거하려는 정치 프레임은 시대에 뒤진 선거 전략이며 민생 문제 해결에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개딸 전체주의 비판의 연장선에서 ‘86 운동권 청산’을 여당의 총선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86세대란 80년대 학생운동을 주도한 60년대 출생의 학생 운동권 세력을 지칭한다. 집권 여당은 시대에 뒤진 운동권 부패 기득권 세력의 청산이 시대정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80년대 민주화를 위해 투쟁한 학생 운동세력이 이제는 기득권 세력으로 전략했기에 이번 총선에서 반드시 청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생과 개혁을 외면하고 특권 카르텔을 형성하여 ‘내로남불’의 정치를 일삼는 운동권 세력을 제거하자는 취지이다.

이러한 주장이 보수 강경층의 절대적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여당은 운동권 출신 공천 지역에는 경제 전문가 등을 후보로 내세워 선거 승리를 획책하고 있다.

운동권 출신 민주당 정청래 후보에 김경율, 임종석에 윤희숙, 윤건영에 태영호, 김민석에 박민식 후보를 내세운 이유도 거기에 있다. 집권 여당의 운동권 청산이라는 선거 전략이 어느 정도 성공할지는 판단하기 이르다.

민주당은 이에 대해 ‘검사 독재 청산’을 전면에 걸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신년 기자 회견에서 현 정부를 ‘검사정권’으로 규정하고 이의 청산을 선거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민주당은 운동권 세력청산은 과거 군사 독재권 시절 사용했던 낡은 구호라고 맞서고 있다. 이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입신 출세만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여 성공한 정치인들을 비판하고 있다.

운동권 세력은 엄혹한 군부 독재시절 자신의 출세나 영달까지 포기하고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이들은 군부 독재에 대항하여 민주화에 이바지한 자신들의 역할과 공헌을 폄하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의 검찰독재 청산이 시대적 과제라고 강변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정계나 관계, 심지어 국영기업체에 수많은 검찰 출신이 포진된 것은 사실이다. 야당은 대통령 부인 특검 거부와 명품 선물 사건에 대한 수사 부진도 검찰 독재 정권과 연관시켜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상대를 청산하기 위한 선거 프레임은 보수나 진보 진영의 결속을 다지는 데는 일정 부문 기여할 지는 몰라도 선거의 정책적 이슈는 적절치 못하다.

보수 정당의 운동권 세력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오늘 갑자기 등장한 문제가 아니다. 야당 역시 정권 심판론을 총선의 단골 메뉴로 부각하였다. 야당의 검사 독재 청산도 정권 심판의 연장선상에서 그 청산대상을 분명히 했을 뿐이다.

결국 운동권 심판이나 검찰 독재 심판은 상대를 타도하기 위한 선거 전략일 뿐이다. 시대에 뒤진 이러한 네거티브 프레임이 등장한 것은 여야의 극한 대결 정치가 초래한 당연한 귀결이다.

최근 야당 대표와 여당 의원의 정치 테러 사건도 이러한 증오의 정치가 초래한 일 단면이다. 여야 정치권이 아직도 처절한 자기반성 없이 네거티브 정치에 매몰된 것은 우리 정치의 후진성을 그대로 나타낼 뿐이다.

여야의 이러한 반목적인 선거 프레임이 4·10 총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러한 선거 전략이 중도층 표심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슬로건은 자기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집권 여당 내에도 80년대 운동권 출신 정치인이 있으며 민주당에 상대적으로 많이 있을 뿐이다.

야당이 윤석열 검사 독재 정권 청산을 슬로건으로 걸었지만 민주당 내에도 검사출신 정치인은 여러 명 있다. 총선 구호로 상대를 제거하려는 네거티브 프레임은 건전한 정책 대결을 막는 장애물이다. 이러한 상호 거부적 분열적인 선거 프레임으로 건전한 표심을 끌 수 없다.

기후 위기와 인구 절벽, 안보와 민생 위기 등의 거대 담론도 총선 공약에는 통하지 않는다. 흔히 사용했던 포퓰리즘적 정책이나 안보 이념 프레임도 이제 쉽게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국회의원 정수 축소, 세비 삭감, 의대입학 증원, 육아 비 지원, 교통비와 물가 등 민생 문제가 표심을 흔들 가능성이 높다. 여야 공히 네거티브 선거 전략부터 걷어 치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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