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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앞에만 서면 두근두근

등록일 2023-12-10 18:30 게재일 2023-12-11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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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정규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사공정규 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오늘은 발표가 두렵다는 30대 K과장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K과장은 매월 1회 회사 전체회의에서 발표해야 한다. 평소 직원에게 개인적으로 이야기할 때는 괜찮은데, 많은 사람 앞에 나가서 발표할 때는 극도의 두려움과 불안감이 엄습한다. 심장이 쿵쿵거리고 목소리가 떨리고 얼굴이 붉어지고 식은땀이 난다. 미리 적은 것을 읽는 것조차도 힘이 든다. 중요한 발표가 있는 날이 다가오면 전날 두려움과 불안으로 한숨도 못 자기도 하고 발표가 끝나고 나면 온종일 몸살을 앓기도 한다.

K과장은 정신과적 검사와 진단적 면담을 통해 사회불안장애(Social Anxiety Disorder)로 진단됐다. 사회불안장애는 오랫동안 사회 공포증으로 불려 왔으며, 현재는 두 명칭이 혼용되나 사회불안장애가 대표 진단명이다.

사회불안장애의 핵심적 특징은 타인에게 자세히 관찰될 수 있는 사회적 상황에 노출되는 상황에 대해 극도로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하며 사회적·직업적 상황 등에서 현저한 고통이나 손상을 가져오는 것이다. 사회적 불안장애에서 말하는 사회적 상황의 대표적인 경우를 살펴보면, 여러 사람 앞에서 수행(예: 발표, 노래, 연주 등)을 하거나 어떤 행동(예: 음식을 먹거나 마시는 자리)을 하는 상황, 시험 특히 면접을 보는 상황, 낯선 사람이나 권위 있는 사람을 만나거나 대화를 하는 상황, 공중화장실에서 다른 사람이 있을 때 소변을 보는 상황 등이다. 불안장애의 분류에 속하는 공황장애, 범 불안장애의 평생유병률은 각각 3%, 9%인데, 사회불안장애의 평생유병률은 10% 정도이다. 사회불안장애는 이렇게 흔한 질병임에도 진단이 잘되지 않고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떨리고 긴장되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이므로 수줍음이 많은 성격 탓이라 치부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불안장애는 단순한 수줍음을 넘어 그 정도가 지나쳐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친다는데 문제가 있다. 즉, 학교 적응, 취업률, 직업적 생산성, 사회경제적 지위, 낮은 사회적 안녕, 심지어 삶의 질과도 연관된다.

만약 수줍음도 아주 심해 일상적인 사회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사회불안장애로 진행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또 어린 시절의 수줍음은 대부분 거듭된 사회적 노출을 통해 호전되는 양상을 보이는 것과는 반대로, 사회불안장애는 사회적 상황이 늘어나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 심해지는 양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특히 사회불안장애는 공황장애, 우울장애, 알코올 의존, 약물 의존 등의 후유증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불안장애는 상황이 반복될수록 자신의 불안한 예측대로 들어맞는 것만을 기억하며 점점 악화한다. 사회불안장애를 단순한 수줍음으로 방치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 사는 우리는 사회불안장애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고, 사회불안장애는 약물치료나 인지행동치료로 치료가 비교적 잘 되는 질환임에도 정신과를 잘 찾지 않는 경향이 있다.

사회불안장애의 약물치료에서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는 꾸준히 복용하면 공포감, 불안감을 덜어 주는데 효과적이고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은 치료 초기 불안이 아주 심할 때 사용할 수 있고, 발표 공포증에 흔히 사용하는 베타 차단제(인데놀)는 신체적 증상(예: 떨림, 심계항진, 발한)을 완화하는 데 즉각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인지행동치료에는 왜곡된 생각을 고쳐주는 인지치료, 사회적 상황에 직면하여 연습하는 직면치료(노출치료), 긴장 이완을 해 신체적 증상을 조절해주는 신체조절법(이완치료법)이 있다.

사회불안장애 환자는 2가지 핵심 인지왜곡이 있다.

첫째, 모든 사람에게 인정, 칭찬을 받아야 한다. 완벽해야 한다는 인지왜곡이 있다.

둘째, 사회적 평가에 대한 조건적 신념, 내가 실수하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부정적(예: 무시하거나 싫어할 것이라는 등)으로 평가할 것이라는 인지왜곡이 있다.

이러한 인지왜곡적 생각들이 두려움과 불안, 신체적 증상(예: 떨림, 심계항진, 발한)들의 증상을 일으키게 되고 증상을 줄이기 위한 방어적 시도들이 오히려 증상을 악화시킨다. 사람들에게 사회불안에 대한 자신의 부족함을 솔직하게 드러내면 예를 들면, “나는 지금 (주요하신 여러분들) 앞에 서니 상당히 긴장되고 떨린다”고 말하면, 상대방도 존중해주고 나는 겸손해 보이며 내 긴장도 풀고 1석3조이다.

오히려 사람들이 더 긍정적으로 평가할 가능성이 커진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서 자신과 같은 부족함을 발견하면 공감하고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위안을 얻기 때문이다. 부족함을 인정하고 실수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사람들의 마음이 오히려 관대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사회불안장애 환자들은 불안한데 불안을 보이려 하지 않으려 하기에 오히려 부자연스러워지고 더 불안해진다.

오히려 자신의 사회불안을 알려라. 자연스러워진다. 덜 불안해진다. 더 좋은 평가를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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