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의호 포스텍 교수·산업경영공학과지난 주말 제자들이 포항에 모였다. 연구실 창설 26주년 기념모임.1989년 30대 중반의 나이에 이름만 들었던 포항의 포스텍에 온 지 어언 26년이 지났다.정말 포항이라는 도시라면 포항제철로만 알고 있던 필자가 포항에 온 건 물론 포항공대의 설립 때문이었다.미국서 학위를 마치고 미국의 한 대학의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던 시절 포항공대에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한번 같이 여기서 함께 일해 보지 않겠냐는 제의였다.그전에 재미과학자협회가 한국에서 열은 학회에 참석차 왔었던 필자는 포항공대가 제공한 버스를 타고 학교를 한번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사실 1980년 미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첫 대학이었던 스탠포드 대학의 환경은 충격적이었다.월등한 시설과 건물, 그리고 학생들을 위한 시설이나 기숙사, 기혼자를 위한 연립주택은 물론이고 각 가정마다 보이는 여러 대의 자가용 차량들…. 풍부한 물자, 멋진 자연환경….이런 것들을 보면서, 이 세상에 이렇게 잘 사는 나라도 있구나, 라는 탄식을 하였다.그리고 또 놀란 것은 학업의 질이었다. 한국 대학에서 한 학기에 하던 분량을 2~3주에 커버 하는 속도감은 물론이었고 미국의 엘리트 학생들의 학구열과 창의적인 문제 해결 방식은 필자를 놀라게 한 것은 물론 스스로 부끄럽게 느끼기도 하였다.그리고 귀국한 1989년의 포스텍은 한창 건물을 짓고 있었다. 첫 입학생들은 이제 갓 3학년이 되어 있었다.세계적인 공과대학을 만들겠다는 신념을 이 작고 서울이 아닌 한국적인 사고로는 변방의 도시였던 포항에서 퍼붓고 있는 분들과 합류하면서 포항생활은 시작되었다.포항의 포스텍의 열기는 비록 미국보다는 덜한 환경일 지라도 솟아오르는 정열을 고국에 쏟겠다는 과학자들을 충족 시키기에 충분하였다.미국에서 영원히 살수 있는 권리인 영주권을 포기하고 귀국한 필자의 결정은 옳았다는 것은 연구실 창설 26주년 기념식에서 더 강렬히 다가왔다.한국의 과학, 산업, 기업, 교육 등의 여러 분야에서 활약하는 제자들 숫자가 어언 80명이 넘는다. 대학, 국가연구소, 대기업, 벤처기업은 물론 3군에도 제자들이 퍼져있다.연구실의 모토인 `Be a leader, not simply a winner`(단순한 승리자에 도취되지 말고 주변과 사회를 돌보는 리더가 되라)를 실천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고맙다.이러한 인재들이 포항에서 배출되었다는 것도 자랑스럽다.대학 밖에서 포항의 공공기관, 시청, 상공회의소, 방송국, 지역 사회단체, 언론기관 등에 참여하여 지역발전을 위해 나름대로 뛴 26년은 꽤 긴 세월이었다.30대의 청년은 60의 초로의 길에 접어들었다.이제 2년만 더 있으면 포항생활 28년이 된다. 28년은 서울에서 생활하였던 28년과 꼭 같아 진다. 이제 2년만 지나면 포항이 새로운 고향으로 완벽하게 필자에게 자리 잡게 된다.학생유치를 위해 고교를 방문하면 항상 하는 소리가 있다.“여러분들의 시야를 넓혀라. 그러면 어디가 서울이고 어디가 지방 인가? 여러분이 살고 있는 그 지역이 세계로 나아가는 출발이 된다”그런 의미에서 포항은 그리고 경북은 세계로 나아가는 출발이 되어야 한다. 모든 지역은 세계를 향해 각개 약진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적으로 자리잡은 포스코와 포스텍의 성공은 최근 조금 주춤하긴 하지만 눈여겨 볼만한 것이다.포항 생활 28년을 결산하는 2년후`포항 28년`이란 책을 하나 내고 싶다. 타향 포항은 이제 고향이 되었다.
2015-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