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혹시 아침에 와플 시키셨던 분이죠?”
갑작스런 목소리에 흠칫 뒤를 돌아보았다. 커피숍 종업원처럼 보이는 그는 나에게 천원짜리 두장과 동전을 내밀었다.
첫 KTX 포항 산천을 시승하면서 아침부터 마음이 들떠 있었다. 사실 15분이면 충분한 거리를 혹시 길을 잃을지도 모를일에 집에서 일찌감치 출발했다.
처음 가보는 KTX 포항역. 아직 네비게이터도 잘 알려주지 못하는 그곳을 대강의 눈썰미로 차를 운전하여 가면서도 첫 등교를 하는 초등학교 아이마냥 마음은 들떠 있었다. 다행히 길을 헤매지 않고 포항역을 쉽게 찾을수 있었다.
멀리서 보이는 역의 웅장한 모습을 보면서 필자의 가슴은 뛰었다.
“아 드디어 포항에서 단 한 번의 열차로 서울을 갈수 있구나” 26년간 포항에서 지내면서 서울에는 거의 매주 한 번은 가야 하는 그런 생활의 연속속에서 좀더 편리한 교통편을 꿈꿔왔고 이제 그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들뜸과 꿈은 곧 실망스러움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우선 역앞에서 승객들이 내리거나 주차장으로 접근하는 길들은 아직 정리가 되지않아 어수선 했고 그래서 유연하게 차들이 움직이기가 쉽지않았다.
간신히 주차하고 승객대기실에 들어서긴 했다. 현대식으로 꾸며진 모습은 크게 다가왔지만 편의시설이나 식사시설의 다양성은 부족해 보였다.
표를 구입하고 이곳 저곳 구경하다 보니 출발까지 10분 정도가 남아있었다. 커피숍에 길게 줄을 서있는 손님을 따라 내 순서가 다가왔을 때 이젠 8분정도 남아있었다.
아메리카노 원두커피와 진열대의 와플(waffle)을 주문한 필자는 1~2분 기다리면 되리라고 조금은 급한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그러나 3~4분이 지났는데도 주문한 커피와 와플은 나오지 않았다.
필자의 마음은 초조해 지기 시작헀다. 첫 시승의 열차를 놓칠 판이었다.
“왜 빨리 안나오죠 ?” “네, 와플은 5분정도는 기다려야 해요” “아니 거기 진열대에 있는 걸 주는 것 아닌가요?” “아니요 직접 구워 드리죠” “아니, 그럼 5분정도 걸린다는 걸 손님에게 알려줘야 하잖아요”
가벼운 설전끝에 난 그냥 커피만 들고 뛰기 시작했다. 너무도 시간이 촉박하여 돈을 돌려받을 시간도 없었지만 이런 경우 와플값을 돌려받을 권리가 손님에게 있는지 법적인 판단도 쉽지 않았다.
허겁지겁 기차에 오른 필자에게 연속의 실망이 다가왔다. 우선 좌석이 맨앞이었는데 바로 앞의 벽이 꽉막혀 숨쉬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래서 좌석을 놔두고 객량 사이의 간이의자에 앉기 위해 객량을 나왔다.
그런데 그 간이의자는 바로 화장실문 앞에 있었다. 좌석은 모두 차서 다른 자리도 보이지 않고 울고 싶은 심정으로 간이의자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7살짜리 꼬마가 내 앞에 엄마와 함께 서있었다. “왜 좌석이 없니? 내 자리가 저기인데 거기 가서 앉을래?” 그런데, 꼬마의 대답이 뜻밖이었다. “아뇨. 거긴 답답해서 앉기 싫어요”
“아니 무슨 돈이죠?” “손님이 아침에 와플을 놓고 가신분 아닌가요? 돈을 돌려 드리겠습니다” “아니 그럼 ?”
첫 시승에 다소 실망과 짜증을 느끼며 다시 포항역에 내린 필자의 가슴은 씻겨 나가고 있었다. 얼마전 싱가폴에서 겪었던 잃어버린 돈을 찾았던 그 정직성을 이곳 포항역에서 다시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그래 바로 이거야. 그래서 우리도 희망이 있는거지. 포항역을 빠져 나오면서 필자의 마음은 첫 시승의 실망이 모두 사라지는 가볍고 흔쾌한 마음이었다. 어둠이 깊게 드린 포항역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