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엔 특별히 봄이 없는 듯 따뜻하고 온 세상이 그린 색이다. 늘 열대 과일의 향기가 흐르는 느낌이고 공기는 싱그럽고 하늘은 맑다.
“계십니까?” 호텔방의 전화가 힘차게 울렸다. “프런트 데스크로 내려 오십시오. 손님이 버스에 놓고 내린 봉투가 도착했습니다.”
일요일 밤 학회참석을 위해 싱가포르 공항에 도착해 호텔로 가는 리무진 버스에서 주머니에 있던 봉투 하나를 버스 안에 떨어뜨리는 실수를 했다. 그 봉투에는 현지에서 교통비 등에 사용하려고 인천공항에서 환전한 싱가포르 달러 200여 달러(20만원)가 있었다.
호텔 체크인을 하면서 그 봉투를 버스 안에 떨어뜨린 걸 안 필자는 호텔 프런트에 버스회사 연락을 부탁했다. 그러나 리무진에는 여러 승객이 있었고 혼잡했기에 필자는 사실상 봉투를 포기하는 심정이었다. 봉투를 길가에 떨어뜨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에게 봉투를 내민 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차비 9달러를 본인 돈으로 운전기사에게 지급했다고 하였다. 내가 10달러를 주니까 1달러를 내밀었다. 그냥 관두세요 라는 표정을 지으니까 그렇게 고마워하는 표정이었다. 사실 190달러를 돌려받은 내가 더 고마워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싱가포르!
국민소득 5만불이 넘는 세계적인 부자이면서 모범국가. 이 국가가 어떻게 이런 성장을 했는가를 느끼는 정직성이었다.
싱가포르에 출장 왔다고 하니까 지인들이 “리콴유 전 총리 조문 왔는가?”라고 농담을 건넨다.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을 포함한 각국의 대통령이 다투어 조전을 보내고 조문을 올 정도로 리콴유의 감동과 위력은 싱가포르에선 말할 것도 없고, 세계적으로 대단하다.
The Founder of the Nation. 싱가포르 국가를 창설한 총리. 필자가 싱가포르에 도착한 다음날 아침 전 세계, 특히 한국신문에는 큰 뉴스가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었다.
강력한 리더십과 효율적인 경제정책으로 신생 독립국가 싱가포르를 아시아 최고 부자국가로 만든 리콴유 전 총리가 향년 91세의 나이로 타계했다는 뉴스였다.
한 국가의 전직 지도자의 사망이 이토록 우리에게 특별한 감동을 주는 이유는 무엇인가?
리 전 총리는 1959년 영국 식민지에서 자치령으로 승격한 싱가포르의 초대 총리로 취임해 1990년 퇴임하기까지 31년간 싱가포르를 이끌었고 총리 퇴임 후에도 선임장관 등을 맡아 내각에 자문 역할을 해 오는 등 지난 50 여년 간 싱가포르의 정신적인 그리고 정치적인 지주역할을 해온 지도자이다.
리 전 총리의 리더십 아래 작은 항구도시였던 싱가포르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 중 하나로 발전했다.
싱가포르에 여러 차례 출장을 왔지만, 일인당 소득 5만 달러가 넘는 싱가포르의 기반시설, 생활수준, 그리고 필자가 관심이 많은 대학의 시설 및 운영규모는 세계적이다. 구미 어떠한 사회, 대학들에 뒤지지 않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갖추고 있다.
그는 시장에 기반한 경제 모델을 추진하면서도 서구식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법치와 강력한 리더십을 통한 `아시아적 발전 모델`로 싱가포르의 발전을 이뤄냈다.
리콴유의 통치 방식에 여러 이의도 있고 후세에 역사가들의 평판이 있겠지만, 싱가포르를 주변 말레이시아와 태국, 인도네시아와 확실히 차별화된 국가로 키운 리콴유의 업적은 두고두고 연구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서울의 수도권보다도 더 작은 이 조그만 국가 싱가포르에서 배울 것은 무엇일까?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엄격한 잣대, 정직성, 근면성 그리고 세계를 향한 글로벌 마인드와 국제화. 그런 것들의 융합체일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무엇일까?
지금까지 필자는 싱가포르의 성공은 국제화에 있었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지금 싱가포르에서 느끼는 싱가포르의 힘은 정직성이 아닐까라고 생각해 본다.
어제 나에게 봉투를 건넨 그 직원의 흔쾌한 미소와 겸손이 아마도 영영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