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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누드, `안동 양반도시를 흔들다`

▲ 강병두 안동문화사진연구소장전통문화를 보전하고 익히는 것은 소중한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누드퍼포먼스도 하나의 예술장르로 자리매김시켜 표현방법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 될 것 같다.문화란 보고 즐기고 참여하는 것이라고…. 참여 속에서 전통과 새로움을 비교하고 즐길 때 창조적인 신문화가 탄생하리라 믿고 싶다.흔히 나체를 누드라 칭한다. 그렇다고 마냥 벌거벗은 모든 사람을 누드라고 하지는 않는다. 대체로 거기에 일정한 형식이나 예술적 느낌이 있는 창의적인 관념이 곁들인 것이 누드의 진정한 정의라고 할 수 있다. 어떤 목적이나 의미가 나체에 담겨 있어야 누드가 된다는 뜻이다. 결국 나체가 단지 발가벗겨진(naked) 몸이라면, 누드(nude)는 일정한 형식과 의미를 담고 있는 창의적인 몸을 말한다. 회화나 조각 등에서는 생명력의 상징이나 감성, 그리고 성격을 벗은 육체의 양감과 피부의 색감을 이용해 표현한다. 사진예술에서는 빛과 그림자를 이용해 누드 사진을 찍는데, 르네상스 이전부터도 행해왔으나 본격적인 시도는 르네상스시대로 보는 것이 대세다. 현대에는 전위예술이라 해서 행위예술로 표현되기도 한다.안동 문화예술의전당에서 매월 초에 이뤄지는 행사가 있다. 문화 활동을 하는 시, 서, 화, 조각, 행위예술 등 각 분야의 전문가를 초빙해 초대전을 열고 있다.최근 초대전 오픈식에서 색다른 행위예술이 벌어졌다. 안동출신 행위예술가 이혁발씨와 한국누드모델협회의 하영은회장이 안동에서 대반란(?)을 일으킨 것이다.`소통, 불소통 역지사지`로 문명화된 사회에서의 사회구성원인 사람들의 소통과 불소통에 관한 퍼포먼스였다. 시작 전부터 1백여명의 남녀 관람객의 웅성거림 속에 터져 나오는 말은 “과연 안동에서 이런 것을 해도 되나?”였다.내용은 남녀가 사랑을 하고 있는 이미지와 히틀러를 등장시킨 힘찬 이미지가 교차하며 흐르는 빛바랜 영상이 비춰지는 가운데, 퍼포먼스의 주연인 남녀가 힘을 과시하고, 아름다운 몸매를 뽐내며 알몸을 드러내는 것을 시작으로 이내 대화와 소통이 안 되는 듯, 괴로운 장면이 지나면서 지속적인 소통과 불소통을 보여준다. 외면적인 문제 때문인지 서로가 다른 옷을 입고 소통을 시도하기도 하지만, 불통으로 마무리하고 관중과 소통을 시도해 봄으로 대화의 단절,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 같았다.줄거리는 정리가 됐지만 누드퍼포먼스라는 점에서 양반의 도시, 안동 관중의 시각이 궁금해 관람자들의 표정을 살펴봤다. 소수의 관객은 박수로 화답하고 있었지만 미리 자리를 피한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았다. 다수의 관중이 박수대신 침묵을 지켰지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갔음에 틀림없어 보였다.고사성어 중에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란 말이 있다. `옛것을 익혀서 새것을 안다`는 것으로 옛것을 익힘으로써 그것을 통해 새로운 지식과 도리를 발견하게 된다는 뜻이다. 양반의 도시 안동에는 시대를 총망라한 유구한 역사문화와 유불선의 다양한 종교문화가 산재하고 있다. 당연히 전통문화를 익히고 보전하는 것은 소중하겠지만 이 같은 누드퍼포먼스도 하나의 예술장르로 자리매김시켜 표현방법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 될 것 같다.문화란 보고 즐기고 참여하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하고 싶다. 참여 속에서 전통과 새로움을 비교하고 즐길 때 창조적인 신문화가 탄생하리라 믿고 싶다. 이번 누드퍼포먼스를 통해 지역 문화발전의 시금석이 되기를 빌어본다.

2012-11-28

돈과 간격 띄우기

▲ 이원락 경주청하요양병원장성경에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 설교는 가난한 자들에게 행한 연설이다. 성경의 이 부분을 읽고서 가난한 사람들은 예수가 `부자에게 꾸중했구나`하고 대리 만족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부자에게만 꾸중을 한 것이 아니고, 가난한 자에게도 해당된다. 어쩌면 생계를 위해서는 오히려 가난한자가 돈의 유혹을 더 느낄 수도 있다. 어느 농막 집에 `무소유`라고 현판이 걸려 있었다. 그 마당에는 건축 자재 등 여러 버려진 철물 등 폐기물들을 많이 모아두었다. 값이 헐한 것만 모아둬서 무소유인 것 같지만, 그는 유소유로 가득 채웠다. 그는 잡동사니 고물들을 모은 부자인 것이다. 단지 그는 현재 돈을 적게 가진 것뿐이다.부자도 가난한 자도, 모두가 돈의 노예가 되기 쉽다. 신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 더 나은 생을 위한다면 돈과 신,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새는 동시에 섬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현대인들은 꿩 먹고 알 먹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이 땅에서도 천국에서도, 양측 모두에서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신전에서는 하느님을 잠시 생각하지만, 일상평일에는 모두 돈을 생각한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돈은 단순히 그냥 돈이 아니고, 화·불화를 일으키는 영적인 세력이다. 섬김의 대상이다. 단순한 돈이 아니고, 신적인 존재이다. 재물을 말할 때, 돈을 인격화시킨 말인 `맘몬`이라는 것이 된다. 인간은 돈을 신과 견줄 수 있게 높이 받든다. 재물이라는 신이다. 인간은 돈의 힘에 너무 약해 쉽게 유혹에 넘어가 버리고 만다. 양심과 믿음과 정의를 팔아 버린다. 돈을 전능한 존재로 믿기 때문이다.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단다. 이것이 일반 인간의 생각이다. 우리는 돈이 내 삶을 보장한다고 믿는다. 돈을 은행에 저축하거나, 빌딩을 사거나, 주식 투자 등을 해 둔다. `그 돈이 미래를 보장하겠지`하면서 우리는 돈에 눈이 멀어버린다. 그러나 돈이 많아지면 우리의 영적 생활도 어려워진다. 왜냐하면 보물 같은 돈에 마음이 가 버리기 때문이다. 돈이 나의 지배자가 되고, 신의 왕좌 자리에 돈을 모시게 된다. 돈이 있으면 신(하느님)께 기댈 일이 거의 없어진다.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한다. 돈 많으면 병을 앓을 때, 비행기 일등석을 타고 세계에서 제일 좋은 병원에 갈수 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돈을 주었지만, 결국 하느님의 자리를 빼앗아 버리고 만다.북한의 성경에는 전도서에 `돈은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고 적혀 있다고 한다. 우리 남한의 성경에는 `돈은 범사에 응용되느니라`고 쓰여 있다. 돈이 어느 정도 있어야 만족할까? 아무리 많아도 만족은 없다. 그 끝을 모른다.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단다. 여기에서 불행이 싹 튼다. 그러나 인간은 돈이 있어도, 그것을 가지고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물질의 소유뿐이다. 생의 가치와 행복과는 무관하다. 재물이 삶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눈요기 정도일 뿐이고, 자기 무덤이나 잘 가꿀 수 있을 것이다.사람에는 세종류가 있다. 평생 돈을 모으다가 죽는 자, 평생 돈을 꼭 붙들고만 있다가 죽는 자, 돈을 다 날려 버리고 죽는 자 등이 있다. 누구에게도 선하게 누리도록 허락지 않는다. 돈을 객관적 입장에 두기는 참으로 어렵다. 스스로 노력하고, 마음수련을 해야 조금 멀리 띄어 놓을 수 있을 뿐이다.

2012-11-23

안동의 `나라사랑 큰나무`와 런던의 `양귀비꽃`

▲ 김부환 유럽경제문제연구소장지난 17일은 제73회 순국선열의 날이다. 이 날은 국권 회복을 위해 헌신한 순국선열의 독립정신과 희생정신을 후세에 길이 전하고, 선열의 얼과 위훈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법정기념일이다. 삼일절, 광복절 등은 많이 알고 있지만 이날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요즘 우리사회는 세대간, 이념 간 갈등 등으로 인해 일제 식민시대와 6·25전쟁을 단순한 과거사로만 인식하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해 주고 있다. 안동은 독립운동의 성지라고 불려도 좋을 만큼 독립운동사에 큰 획을 긋고 있는 곳이다. 독립운동의 첫 걸음인 1894년 갑오의병이 일어난 유일한 곳이 안동이며, 독립유공자로 포상된 인물이 가장 많은 곳이기도 하다.과거의 역사는 우리의 미래를 비쳐 주는 거울임과 동시에 미래를 이끌어 줄 지팡이와 같다. 우리는 세계사에서 보기 드문 유래 없는 고도 압축 성장을 이뤘다. 그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세대 간의 갈등도 만만치 않다. 그럴수록 차근차근 채워갈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채워가야 한다.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순국선열의 독립정신과 희생정신을 함께 기리며, 미래의 주역이 될 우리 자녀들을 이끌어가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순국선열과 보훈정신을 기리는 것이 비단 우리만은 아니다. 1차 대전 종전 서명일인 11월11일을 `포피데이(poppy day·양귀비의 날)`라 부른다. 복무 중 순직한 군인들을 기념하기 위해 1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부터 영연방국가들이 시행하고 있는 현충일인 셈이다. 많은 비-영연방 국가들도 이 날이나 또는 비슷한 날을 종전 기념을 위한 특별한 날로 추모하고 있다. 결국 `포피데이`는 1918년 1차 세계대전의 적대행위를 역사의 뒤안길로 돌리기 위해 11월11일로 정해진 것인데, 독일과 연합국 대표들이 서명한 종전협정에 따라 적대행위는 11번째 달의 11번째 날에 공식적으로 종결되었음을 의미한다.지금 영국에는 붉은 꽃을 달고 거리를 누비는 신사 숙녀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빨간 양귀비 조화를 단 택시들도 볼 수 있다. 양귀비 꽃을 달고 다니는 이유는 나라 위해 목숨 바친 군인들의 희생을 기억하기 위해서다.`플랑드르 들판에 양귀비꽃 피었네~ 줄줄이 선 십자가들 사이에~ 오! 플랑드르 들판에 잠든 그대여….` 양귀비가 순국선열의 피를 상징하게 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어떤 연합군인과 어느 여인이 주고받은 시(詩)가 계기가 됐다. 이 여인은 참전 군인을 기리는 의미로 붉은 양귀비꽃을 옷에 달고 다녔다고 한다.1차 세계 대전의 최악의 전장의 하나인 플랑드르 들판에 핀 양귀비 꽃. 그 화려한 붉은 색은 전쟁에서 군인들이 흘린 피를 상징한다. 오늘날 포피데이를 맞는 영국에선 종이로 만든 양귀비꽃을 시내 어디서든 판매하기도 하고, 손쉽게 구입해 많은 사람들이 가슴에 달고 다닌다. 수익금은 전쟁미망인, 고아, 상이용사들을 위해 쓰일 정도로 양귀비꽃은 이제 그들에겐 애국심의 상징이 됐다.우리 국가보훈처도 2005년부터 `나라사랑 큰나무`배지달기 운동을 벌여왔다. `당신의 나라 사랑이 대한민국을 키워간다`는 뜻으로 푸른 나무 그림에 태극 열매와 비둘기 등을 담았지만 아직까지 국민들 가슴에 완전하게 자리 잡진 못했다. 영국 포피데이에 만발하는 양귀비를 생각하면 한국의 `나라사랑 큰나무` 배지는 너무나 초라하다. 독립운동의 성지인 안동에서부터라도 순국선열기념일을 좀 더 의미 있게 보냈으면 한다. 요란하지 않으면서 의미와 실속을 챙기는 행사 말이다.`나라사랑 큰나무`배지를 단 미래의 꿈나무와 함께 내년부터라도.

2012-11-21

물의 효율적 이용과 자연재해 예방

▲ 조정국내고향지킴이 안동대표 현재 지구촌은 가뭄, 집중호우, 한파 등 전례 없는 기상이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올해는 104년만의 가뭄으로 농업인들의 가슴을 태우더니 태풍조차 농민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게다가 이러한 기상이변이 최근들어 더욱 심화되고 있고, 주기도 점차 빨라지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농촌진흥청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농촌용수는 담수량 부족으로 작년부터 필요한 수량(179억t)보다 30억t 이상 부족하다고 예측했다. 우리나라의 연평균 강수량이 1천245㎜로, 세계 평균(880㎜)보다 많으나 대부분의 물을 바다로 흘려보내고, 30% 안팎만 이용하기 때문에 물 부족 국가라는 오명이 붙었다.최근 기후변화에 따른 국지성 호우 등 집중강우로 강우일수는 감소하는데도 강우량은 증가하는 추세다. 1일 최대 강우량만 해도 1970년대 407mm에서 2000년대에는 870mm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이런 극심한 유량의 변화는 주변 농경지에 안정적 용수공급을 어렵게 하고, 가뭄과 홍수로 인한 피해를 증가시켰다.이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충분한 물그릇을 확보해 수자원을 충분히 확보하고, 필요한 시기에 알맞은 용수를 공급하는 것이 유일한 대책이다. 물은 이제 생활자원을 넘어 경제의 핵심동력으로 부상, `블루골드`로 불리고 있다.가뭄과 연이은 태풍에 따른 집중호우를 겪으며, 그나마 다행인 것은 4대강사업의 일환으로 농업용수의 확보와 통제를 위한 저수지 둑 높이기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될 수 없으며, 위기가 왔을 때 해결하려 들면 비용과 피해가 너무 크다. 이런 문제에 직면해 농업용수의 확보와 활용을 위해 가장 기본적인 인프라 구축으로 볼 수 있는 것이 4대강사업의 저수지 둑 높이기 사업이다. 저수지 둑을 높이면 평상시 물을 충분히 확보해서 올해와 같은 가뭄에도 물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게 된다. 또 많은 비가 쏟아지더라도 물을 저류했다가 천천히 흘려보내 하류부에 홍수로 인한 피해가 없게 된다.농업용수문제 해결은 단지 몇 t의 물을 확보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둑 높임 지역 일대를 가뭄과 홍수라는 자연재해로부터 지켜내고, 연결된 하천과 함께 지역 생태계를 보호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건강한 생태계 조성은 친환경 고품질 농산물 생산을 통한 소득 증대와 수변공원 등의 활용으로 하나의 인프라가 만들어내는 파급효과는 거의 전폭적이라고 하겠다. 농업에 필요한 물을 얼마나 어떻게 담을 것인가에서 출발한 물에 대한 해답은 기후변화에 따른 재해예방과 함께 다가올 물의 황금시대에 우리가 누릴 수 있는 물의 경제에 대한 해답이기도 하다.수자원확보와 효율적 이용으로 홍수와 가뭄 등 자연재해 예방이나 피해 복구는 정부와 지자체 주도로 이뤄지고 있지만 그래도 농촌에서 만큼은 내 고향을 지켜나가는 현지 주민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농촌에서 물은 곧 환경이자 생명이기 때문이다. 한국농어촌공사에서 역점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내 고향 지킴이`는 전국 농업분야 4대강사업의 수혜자인 지역주민 2천여명으로 지난해 7월 결성돼 현재까지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안동시 관내도 35명의 내 고향 지킴이가 활동 중이다. 이들은 농업분야 4대강사업 준공지구인 안동 풍천농경지 리모델링사업지구와 만운지구농업용저수지 둑 높이기사업의 현황파악과 손상유무 등 재해 예방을 위해 시설물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있다.앞으로도 우리 지킴이들은 물의 효율적 이용과 자연재해 예방을 위해 지속적으로 시설물관리 및 모니터링을 실시하는 등 한층 더 노력할 것이다.

2012-11-20

아버지

▲ 이원락경주청하요양병원장·수필가 사랑은 상대자와의 거리에 비례한다. 아무리 사랑해도 멀리 떨어져 있으면 강도는 누그러져서 줄어들게 된다. 이런 현상은 꼭히 사랑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이 현상을 따른다. 그러나 예외가 있다. 가족 간의 사랑은 거리와 관계가 없다. 오히려 떨어져 있으면 더 그리워지게 된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유학을 할 때, 방학으로 집으로 갈 때면 며칠 동안 밤잠을 설친다. 집에 가면 만나야 할 사람이나,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면 잠을 이룰 수가 없다.부모는 항상 그립다. 어머니의 자애스런 사랑과 아버지의 근엄한 삶에서 우러나오는 미소는 나를 자꾸만 집으로 이끌고 가려한다. 그 끌림에서 벗어날 수 없다.TV에서 방영된 `인간 극장`이란 프로는 감동을 주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이 프로를 보고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치료가 불가능하고, 병원에서는 6개월, 길어야 1년 정도만 살 수 있다는 애기, 얼굴은 붉은 물을 뿌린 듯, 얼룩진 애기의 수명 연장을 위해 철인 3종 경기를 달린 아버지 이야기였다.직장도 그만 두고 부모는 아들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다. “아들의 숨만 쉬도록 해 주면, 평생을 감사하며 살겠다. 살려 달라. 하나님, 이 애기를 데려가려면 우리도 같이 데려가 달라!”고 되뇌이면서 정성을 바친다.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있는 아들의 이름을 은총으로 지었다. `은총이에게 세상을 더 넓게 보여 주자`고 생각해 애기를 집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자기는 철인 3종 경기를 택했다. 애기와 함께 더 멀리 가보기 위한 선택이었다. 애기를 휠체어에 싣고 뒤에서 밀면서 뛰기, 플라스틱 통에 애기를 담아서 밀면서 수영하기, 수레에 앉혀서 자전거 뒤에 달고 타기 등으로 애기와 늘 같이 지내면서 철인 3종 훈련을 했다. 그리고 끝내는 완주했다. 그는 하나님에게 감사했다. 이제 그 애기는 10살이 됐단다.그는 TV방송에서 이렇게 말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손닿는 데 있다. 순간순간 참고 견디면, 행복해 질 수 있다” 애기는 자라면서 자기에게, “아빠, 더 이상 아파하지 마. 더 이상 울지 마. 언젠가 일어설 거예요.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하는 것 같이 느꼈단다. 그는 자식 사랑하기를 자기 스스로에게 하듯이 했다. 그는 자기의 운명을 사랑했다. 힘들게 살았어도 스스로 노력하여 운명을 극복했다.장애아 등 약점은 숨기면 파괴적으로 되지만, 사랑해 노력하면 장점으로 바뀐다.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라면 운명을 사랑하게 된다. 부모도 운명으로 만났다. 자식도 그렇다. 운명마저도 하나님의 통제 하에 있다. 애기 옷 등에는 `made in heaven`(하늘이 만든 작품)이라고 적혀 있었다. 병을 가진 자식을 그렇게 표현했다.나에게는 가난하게 자란 친구 한 사람이 있다. 그의 아버지는 낮은 학벌에 걷기에 지장을 약간 느끼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친구의 학교 성적은 매우 좋았으나 가난에 민감했다. 그래서 아버지와 가끔 항의성으로 다투기도 했다. 그 친구는 자기 아버지를 이렇게 소개했다. 입학금이 없어서 직장을 사직하고 받은 명예퇴직금을 그에게 주면서 “나의 전부를 맡긴다. 아버지의 자랑거리가 되어라”고 하셨단다. 그리고는 돌아앉아서 눈물을 흘리시더라고 했다. 송두리째 내어 주신 아버지! 이제는 늙어서 기저귀를 갈아주어도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아버지로 변했다고 울먹이면서 이야기했다.자식들은 그 고뇌를 자기가 자신의 자식을 키워 본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된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아버지가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이다.

2012-11-16

출산 장려 정책과 노인 복지

▲ 이원락 경주청하요양병원장·수필가대부분의 노년들은 퇴직 등으로 소득이 줄어들어 가난하게 살아간다. 그리고 이들은 또한 비생산적인 존재로 낙인이 찍혀 있다. 노인 인구의 증가로 생산성의 저하를 우려해 정부가 출산 장려 정책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경제 불확실한 여건으로 출산에 대한 관심이 많이 줄어들고 있다. 거기에다가 초혼 연령이 높아지고, 이혼율의 증가 등도 출산율을 낮추는 큰 요인이 된다. 그 결과 2016년부터는 학령인구가 급격히 줄어든다고 한다. 또 정부는 생산성의 저하뿐만 아니라, 노년 부양비(2000년 10.1%, 2005년 12.6%, 2020년 21.8%)가 늘어나기 때문에, 더욱 경제에 악영향의 원인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경제 발전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인구들이 필요해서 출산율을 높이려고 안간 힘을 쓰고 있다.인구 2천500만 명이던 1961년에 알맞게 낳아서 훌륭하게 잘 키우자. 1966년에는 3자녀 3살 터울로 낳아서 35세에 단산하자. 인구 3천300만 명이던 1971년에는 딸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1978년에는 하루 앞선 가족계획, 10년 앞선 생활 안정. 인구가 4천만 명이던 1982년에는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둘도 많다는 등 인구정책 구호는 계속 바뀌어 왔다. 그러던 것이 근래에는 `많이 낳기`가 구호가 되는 아이러니를 보게 된다.출산 장려는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노년 부양비 감소를 위한 방안으로 고출산이 유일한 대안인가 △ 지금의 우리나라 인구수는 적은가? 많은가? △ 우리나라의 적정인구는 얼마인가? △ 인위적, 정책적으로 적정인구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등의 다양한 관점에서 조사해 볼 필요가 있다.노인 기간은 다른 면으로 볼 때 점차 성숙하는 기간으로도 볼 수 있다. 노인들은 한창 일할 수 있는 나이에 퇴직을 당한다. 일이나 직업을 갖지 않는 것은 휴식이 아니다. 파스칼이 “만일 병사나 노동자들이 `일이 고되다`고 불평한다면 아무 일도 시키지 않는 벌을 주어라”고 한 것은 직업이 없는 것을 끔직한 형벌로 보았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대다수의 일은 최대 능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노인들이 감당할 수 있는 일거리는 많이 있다.1992년 고령자 고용 촉진법으로 55세 이상의 고령자를 직원의 3%를 뽑도록 했고, 그 후 고령자 인재 은행, 노인 취업 알선 센터, 노인 공동 작업장 등 여러 조치가 있었다. 2008년에는 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 촉진에 관한 법률도 제정했지만, 그 효과는 아직 미미하다. 기업 경영자는 좀 더 좋은 경영을 위해서는 벌금을 지불하더라도 고령자의 취직을 좋아하지 않는다.55세의 조기정년제도는 큰 손실이므로 정년 연장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사회 전체에 파급효과가 너무 커서, 청년 실업을 줄이면서 점차적으로 해야 한다. 청년 실업자 수의 감소가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다. 노인의 취업에는 정년후 재고용 및 시간제 고용(시간제 근로, 촉탁직, 계약직 등의 형태), 또는 임금 피크제(이는 기업의 자율적으로 결정할 분야이다.)등이 있다.어떤 보고서에는 저출산이 장차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려서, 국가를 존폐 위기로 몰아넣는다고 했다. 그러나 `출산 장려가 유일한 수단인가`에 대해서는 잘 생각해 봐야 한다. 양적으로 많이 낳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기들을 훌륭히 잘 키우는 질적인 문제도 중요하다. 출산 장려도 중요하지만, 이것이 임금 피크제 등으로 정년 연장과 결합하면 탈출구가 더 크게 보일 수도 있다는 보고도 있다.

2012-11-09

시급한 자살예방 대책

▲ 배연일에베네저 국제대학교 특임교수·시인 우리나라는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벌써 8년째 부끄러운 1위를 차지하고 있어 `자살공화국`이라는 오명마저 쓰고 있다. 게다가 청소년부터 여성·노인에 이르기까지 전 연령대가 자살의 위험에 노출돼 있기도 하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0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에서 자살로 사망한 사람은 무려 1만5천566명이나 된다. 그리고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은 31.2명으로 하루 평균 42.6명이 자살로 목숨을 잃고 있다. 이는 OECD 회원국 평균치인 12.8명의 2.4배에 이른다. 더구나 OECD 회원국의 평균 자살률은 감소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유감스럽게도 증가하고 있다. 자살로 말미암은 사회 경제적 비용이 3조 원이 넘을 것이라는 추산도 있지만, 비용보다도 우리 국가와 사회에 미치는 피해는 실로 어떤 통계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우리나라 자살의 큰 특징 중의 하나는 노인과 여성의 자살률이 높다는 점이다. 노인은 경제적 빈곤과 질병, 고독이 자살의 주된 원인이라 할 수 있고, 여성의 자살(이는 OECD 회원국의 무려 4배에 달한다.)은 현저히 증가한 여성의 사회 진출이 여성의 역할 변화와 역할 과잉으로 스트레스를 심화시킨 탓이 아닌가 생각한다. 또한, 청소년의 사망원인 1위가 2년 연속 자살이라는 사실도 우리는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빈발하고 있는 자살 문제를 더 이상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할 게 아니라, 심각한 우리 사회와 국가의 문제로 인식해 시급히 그 대책을 내놓아야 마땅하다고 본다. 이에 필자는 자살예방 대책으로 다음과 같은 합리적이고 실현 가능한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첫째, 무엇보다 자살예방을 위해 정부 예산을 대폭 증액해야 한다. 이웃 일본은 자살예방에 연간 무려 3천억 원을 투입하는데, 우리나라는 고작 20억 원에 불과하다고 하니 과연 이 적은 예산으로 자살예방에 적극 나설 수 있을지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그런데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올해 서울시의 노숙인 관련 예산만도 자그마치 419억7천여만원이라고 하지 않는가.둘째, 현재 전국의 정신보건센터와 민간단체들이 자살예방교육 및 상담을 하고 있긴 하지만 예산, 시간, 전문 인력 등에 한계가 있다. 따라서 관계 당국은 자살예방교육을 전담하는 전문 강사를 대대적으로 선발해야 한다. 왜냐하면, 전문 강사가 자살예방의 성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주요 일간지에 홍보를 해서라도 전문 강사를 전국적으로 선발해 선발된 전문 강사들에게는 소정의 교육을 이수케 한 후, 표준 교안으로 자살예방교육에 나서도록 해야 한다.셋째, 관계 당국은 엄선된 적정 수의 전문 강사를 도나 광역시 단위로 배치해 중, 고교와 대학은 물론 여성과 노인이 있는 곳은 어디든 찾아다니며 연중 지속해서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교육을 하도록 해야 한다. 물론 전문 강사에 상응하는 처우가 보장되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넷째, 한 영혼 한 영혼을 귀히 여기는 종교계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자살예방 상담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주었으면 하는 마음 정말 간절하다.마지막으로 관계 당국은 인터넷상에서 자살방법을 알려주거나 자살을 부추기는 자살 유해 사이트 등을 강력히 단속·처벌해야 한다.불행하게도 지금 이 시각에도 우리 주변에는 자살로 목숨을 잃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비록 늦은 감은 있지만, 정부는 이제부터라도 시급히 자살 예방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한 생명은 천하와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것일 뿐만 아니라 국가의 소중한 인적자원이기에.

2012-11-05

때와 기회

▲ 이원락 경주청하요양병원장·수필가약 60년 전 초등학교 시절의 친구들이 살아온 족적을 보면, 각양각색이다. 처음부터 잘 사는 사람은 드물고 계속 빈한하다든지, 노력하여 재물을 많이 모은 사람도 있지만, 잘 살다가 빈털터리가 되어버린 사람도 있다. 높은 자리로 출세를 잘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중도에 탈락한 친구도 많다. 세상만사는 아무도 모른다. 세상에는 운수가 좋은 경우와 극도로 나쁜 경우까지 모두 가능한데, 이런 것을 우리는 운명이라고 한다.운명은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대양의 큰 고래가 그물에 걸려 잡히기도 하고, 창공을 나는 새가 올무에 걸려서 죽기도 한다. 또는 호랑이가 한 눈을 파는 사이에, 입에 물려 있던 노루 한 마리가 죽기 직전에 도망쳐서 살아남는 것도 TV에서 본 적이 있다.게으른 자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지만, 세상의 삶에는`때와 기회`(time chance)라는 것이 있다. 가장 좋은 시기와 기회에 이른다면 일은 이뤄 질 수 있다. 물건의 유통기한과 같이 인생에도 시점이 있다. 날 때와 죽을 때, 심을 때와 거둘 때, 웃을 때와 울 때가 있고, 일을 시작할 때와 끝마칠 때가 있다.장소에서도 제약이 많다. 이는 차를 타고 도로를 질주할 때와 비슷하다. 지켜야 할 것이 많다. 빨간 신호등, `공사 중`이라는 팻말, 과속 방지 턱, 속도 제한, 감시 카메라, 경찰이 숨어서 속도를 측정하는 것 등의 제한 조치를 지켜야 한다.삶에는 변수가 너무나 많다. 전쟁에서는 연약해 보이던 다윗이 거구인 골리앗을 이겼고, 정치학과 1등 졸업생이 항상 국회의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 똑똑한 자가 세상 돈을 다 모아 가지는 것도 아니고, 제일 달리기를 잘 한 우사인 볼트도 실격당한 적이 있다. 지식이 많은 것도 사람들 모두가 선망하지는 않는다.선한 사람 같이 보여서 복 받는 악인이 있고, 악인이 당해야 할 정도로 벌을 받는 의인도 있다. 누구는 부정을 저지르는데도, 자꾸만 부를 축적해서 뻐기고 산다. 이런 것은 모순 같아도 현실이다.또 어떤 일이 잘되어 나간다고 해서, 모든 것이 순조롭게 되지는 않는다. 돈은 모았으나 가정생활에는 펑크가 날 수 있고, 세상에서는 성공했다고 모두가 인정하나 친구들 간에는 좋지 않는 평을 듣는 사람도 있다. 건강하던 자의 몸에 큰 병이 생길 수도 있다. 이 모두는 `때와 기회`에서 만나는 운명적인 것이다. 이것을 놓친다는 것은 행운이 불운으로 변하는 것과 같은 말이다. 시점과 기회를 잘 잡아야 한다. 인간은 잔꾀와 지혜가 있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는 인간일 뿐이다.로또 23억 원을 탄 한 남자는 목욕탕에서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고, 인천에 사는 한 사람은 로또로 19억 원을 탔으나 가정이 깨어지고, 재산은 5천만 원 밖에 남지않았다고 한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는 성경의 말씀을 기억에 떠 올릴 수밖에 없다.인생은 부조리, 모순 덩어리, 불합리한 것 같다. 살다보면 여름이 갑자기 한 겨울로 변할 수도 있고, 비 오다가 눈이 휘날릴 수도 있다. 아무도 내일을 모른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차를 몰고 더 좋은 삶과 만족을 위하여, 너무 급하게 멀리 떠나가고 있다. 기름이 바닥난다는 신호가 계속 울리고 있다.때와 기회는 포착하려고 노력해도 잡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히려 착실히 일상을 보내는 자가 더 현명하다. 인생은 학교와 같다. 배우며 깨달으며 살아간다. 머물러 잠시 쉬면서 현실과 진리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2012-11-02

어떻게 살 것인가?

▲ 정석준 수필가사람은 누구나 잘 살고 싶어 한다. 잘 살고 싶어하는 욕망은 인간이면 누구나 갖는 공통 목표다.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사람들은 우선 돈이 많아야 하고, 권세나 지위가 높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돈이 많아야 한다면 얼마면 만족할까?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으로서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을 했던 최시중이란 사람의 재산은 100억이 넘는다고 한다. 그런 그가 몇 억원에 눈이 어두워 구속 수감 중에 있다.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전 의원은 6선의 국회의원이며, 현 정권 실세 중에 실세다. 그만하면 부귀와 영화를 한 몸에 가진, 남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 그도 몇 억원을 집어 삼켰다가 쇠고랑을 찼다. 우리나라 최고 갑부인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유산 문제로 형제간에 법정다툼을 벌이고 있다. 옛 말에 아흔 아홉섬 가진 부자가 머슴 한 섬 뺏어서 100석을 채운다는 말이 있듯이, 100석 하는 사람은 천석꾼이 되고 싶고, 천석꾼은 만석꾼이 되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심이다.`법구경`에서 부처님은“설사 히말라야 산(세계에서 제일 높은 산)을 황금으로 덮는다 하더라도 결코 한 사람의 욕망을 채울 수 없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인간의 욕망은 정말 끝이 없는가 보다.또 지위는 얼마나 높아야 만족할 것인가? 시의원 한 사람은 도의원이 되고 싶고, 도의원 한 사람은 국회의원, 국회의원 한 사람은 대통령이 되고 싶어 한다. 최고 정상의 자리는 한자리뿐인데, 너도나도 대통령 하겠다고 야단들이다. 하나같이 나라와 국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실은 권력욕의 화신들이다.우리나라는 60년대 이후 경제적으로 잘 사는 것이 곧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악착같이 일을 해 세계 12대 경제부국으로 부상, 지난 6월25일자로 세계 일곱 번째로 국민소득 2만달러, 국민 5천만명의 20~50클럽 회원국이 됐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지금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는가? 우리나라는 OECD 28개국 중에서 국민행복지수가 맨 꼴찌에서 두 번째에 머무르고 있고, 자살율 세계 1위, 3쌍에 한 쌍이 이혼하는 이혼율 세계 1위인 나라에 살고 있다. 경제적으로 잘살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부처님 당시 빔비사라라는 왕이 있었다. 인도에서 가장 큰 나라의 왕이었다. 왕은 우리 인간들이 추구하는 모든 것을 다 갖고 있었다. 그의 말은 곧 법이었다.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것도 그의 말 한마디에 달려 있었다. 아름다운 여자가 있으면 언제든지 취할 수 있었고, 맛있는 음식은 항상 대기 중이었다. 그 나라의 모든 것은 왕의 것이었다. 그러나 왕은 항상 마음이 불안했다. 외국 군대가 쳐들어오지는 않을까, 신하나 왕자들이 호시탐탐 왕위를 넘보지는 않는지 불안했고, 음식에 독약을 넣지는 않았는지 불안했다. 그는 하루도 마음이 편안한 날이 없었다. 그래서 왕은 틈나는 대로 수레를 몰고 부처님을 찾아와서 마음의 위로를 받고 돌아가곤 했다.그런데 부처님은 가진 것이라고는 분소의 한 벌과 바릿대(밥그릇) 하나뿐이었다. 그는 나무 밑에서 잠을 잤고, 맨발로 걸어 다녔으며, 남의 집에서 밥을 빌어먹었다. “부처님 밤새 잘 주무셨습니까?”“그래 잘 잤다. 너도 잘 잤느냐?”이른 아침 새소리에 잠을 깬 부처님과 아난(부처님을 시중들고 있는 제자)이 주고받는 대화이다. 부처님의 일상은 이렇게 늘 행복과 평화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이 세상에서 참으로 잘 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부족함이 없는 것이 잘 사는 것이요, 구할 것이 없는 것이 잘 사는 것이요, 원망이 없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 성냄이 없는 것이 잘 사는 것이요, 미움과 질투가 없는 것이 잘 사는 것이요, 공포와 불안이 없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 강제와 속박이 없는 것이 잘 사는 것이요, 해탈과 자유가 있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숫타니파타)

2012-10-31

때와 기회

▲ 이원락 경주청하요양병원장·수필가약 60년 전 초등학교 시절의 친구들이 살아온 족적을 보면 수많은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일생을 처음부터 잘 사는 사람은 드물고, 계속 빈한하다든지 노력해 재물을 많이 모은 사람도 있지만 잘 살다가 빈털터리가 되어버린 사람도 있다. 또 높은 자리로 출세를 잘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중도에 탈락한 친구도 많다. 세상만사는 아무도 모른다. 세상에는 운수가 좋은 경우에서 극도로 나쁜 경우까지 모두가 가능한데, 이런 것을 우리는 운명이라고 한다.이런 것은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대양의 큰 고래가 그물에 걸려 잡히기도 하고, 창공을 나는 새가 올무에 걸려서 죽기도 한다. 또는 호랑이가 한 눈을 파는 사이에 입에 물려 있던 노루 한 마리가 죽기 직전에 도망쳐서 살아남는 것도 TV에서 본 적이 있다.게으른 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살아가지만 세상의 삶에는`때와 기회`(time chance)라는 것이 있다. 가장 좋은 때와 기회에 이른다면 일은 이룰 수 있다. 그러나 그 기회에 도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사회에는 시간의 한계선이 있기 때문이다. 인생에도 날 때와 죽을 때, 심을 때와 거둘 때, 웃을 때와 울 때가 있고, 일을 시작할 때와 끝마칠 때가 있다.장소에서도 제약이 많다. 차를 타고 도로를 질주할 때 처럼 지켜야 할 것이 많다. 빨간 신호등, `공사 중.`이라는 팻말, 과속 방지 턱, 속도 제한, 감시 카메라, 경찰이 숨어서 속도를 측정하는 것 등의 제한 조치를 지켜야 한다. 삶에는 변수가 너무나 많다. 전쟁에서는 연약해 보이던 다윗이 거구인 골리앗을 이겼고, 정치학과 1등 졸업생이 항상 국회의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 똑똑한 자가 세상 돈을 다 모아 가지는 것도 아니고, 세계에서 달리기를 제일 잘하는 우샤인 볼트도 실격당한 적이 있다. 지식이 많다고 사람들 모두가 선망하지 않는다. 선한 사람 같이 보여서 복 받는 악인이 있고, 악인이 당해야 할 정도로 벌을 받는 의인도 있다. 누구는 부정을 저지르는데도 자꾸만 부를 축적해서 뻐기고 산다. 이런 것이 모순 같아도 현실이다.또 어떤 일이 잘돼간다고 해서, 모든 것이 순조롭게 되지는 않는다. 돈은 모았으나 가정생활에는 펑크가 날 수 있고, 세상에서는 성공했다고 모두가 인정하지만 친구들 간에는 좋은 평을 듣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건강하던 자의 몸에 큰 병이 생길 수도 있다.이런 모든 것이 `때와 기회`에서 만나는 운명적인 것이다. 좋은 때도 있고, 나쁜 때도 있다. 시점과 기회를 잘 잡아야 한다. 인간이 잔꾀와 지혜가 있다고 해도, 한계가 있는 인간일 뿐이다. 로또 23억원을 탄 한 남자는 목욕탕에서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고, 인천에 사는 한 사람 역시 지난해 로또 1등으로 19억원을 탔으나 가정이 깨어지고, 재산이 5천만원 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는 성경(전도서 1장2절) 말씀을 기억에 떠올릴 수밖에 없다.인생은 부조리이자 모순 덩어리고, 불합리한 것 같다. 살다보면 여름이 한겨울로 변할 수도 있고, 비 오다가 눈이 휘날릴 수도 있다. 아무도 내일을 모른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차를 몰고 더 좋은 삶과 만족을 위해 너무 급하게 멀리 떠나고 있다. 기름이 바닥났다는 신호가 계속 울리고 있다.때와 기회는 포착하려고 노력해도 잡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히려 착실하게 일상을 보내는 자가 더 현명하다. 인생은 학교와 같다. 배우며 깨달으며 살아간다. 머물러 잠시 쉬면서 현실과 진리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2012-10-26

업보(業報)

▲ 정석준 수필가사람이 사는 모습을 보면 그야말로 천태만상(千態萬象)이다. 어떤 사람은 부자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가난하게 태어나며, 어떤 사람은 하는 일마다 성공하고, 어떤 사람은 하는 일마다 실패한다. 어떤 사람은 수명 장수하는데, 어떤 사람은 20살도 못 넘기고 단명하며, 어떤 사람은 미인으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박색으로 태어나는데,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그 원인을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고, 우리의 조상들은 사주팔자나 조상 탓(잘되면 제 탓, 잘 못되면 조상 탓)으로 돌렸으며, 생물학자들은 한낱 우연으로 돌렸고,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인간의 모순 부조리로 돌렸으며, 불교에서는 업보(業報)로 설명하고 있다.업이란 카르마(Krama)란 범어를 의역한 것인데, 원어를 정확하게 우리말로 번역하기는 어려우나 대체로 행위(행동), 습관력, 버릇, 남아 처진 힘(殘在力), 꾸며내는 힘(構成力) 등과 비슷한 뜻을 가지고 있다.업은 몸(身)과 입(口)과 뜻(意)으로 짓는다. 즉 몸으로 살생(殺生)하고, 도둑질(偸盜)하고, 삿된 음행(邪淫)을 하고, 입으로 거짓말(妄言)하고, 두말(兩舌)하고, 욕지거리(惡口), 꾸밈말(綺語)을 하고, 뜻으로 욕심(貪慾)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짓(愚痴)을 일삼고 있다. 이를 10악업(十惡業)이라고 하며, 그 반대로 몸으로 살려주고(放生), 부지런히 힘쓰고(勤勉), 바른 행동을 하고, 입으로 바른 말(正語), 진실된 말(眞語), 사랑스런 말(愛語), 실다운 말(實語)을 하고, 뜻으로 베풀어 주고(布施), 자비로 대하고(慈悲), 슬기롭게 행하는 것(智慧)을 십선업(十善業)이라고 한다.업을 분석해 보면 첫째 선악의 의사, 둘째 의사 뒤에 일어나는 실제 행위(행동), 셋째 의사와 행동의 습관적 잠재력으로 이루어져 있다.선악의 의사란 행위의 동기 목적을 말한다. 어떠한 행위도 그것이 책임있는 행위로 성립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의사를 동반해야 한다. 예컨대 살인할 의사와 목적이 없이 잘못해 사람을 죽였다든가 자기의 자유의사가 아니고 강요된 행위로 인해 살인했을 경우에는 완전한 살인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실제 행동이란, 선악의 의사에 의해 실제로 신체와 언어로서 행해진 선악의 행동을 말한다. 선악의 의사만 있고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 않거나 실제 행동이 실패해 미수로 끝나면 그것은 행위가 완성됐다고 할 수 없다.습관적 잠재력이란, 자기가 지은 업이 그대로 소멸되지 않고, 그대로(그때마다) 습관력이 돼 그 사람에게 남게 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도둑질을 한 경우에 처음에는 양심의 가책이나 주위에 대한 두려움, 익숙하지 못한 행동 때문에 잘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두 번 성공하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양심이 마비되고, 대담해지며 도둑질을 하는 방법도 향상되고, 그것이 습관화되면 무의식적으로 도둑질을 하게 된다. 이것은 악사뿐만 아니라 선행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업보설이란 선한 업(業報)에는 반드시 좋은 과보를 받고, 나쁜 업(業報)에는 반드시 나쁜 과보를 받는다는 것인데,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욕지전생사(欲知前生事: 전생의 일을 알고자 하는가)/금생수자시(今生受者是: 금생에 받은 것이 그것이다) /욕지래생사(欲知來生事: 내생의 일을 알고자 하는가)/금생작자시(今生作者是: 금생에 짓는 그대로이다)”法華經에서 전생에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알고 싶으면 금생에 내가 받은 것을 보면 전생의 나를 알 수 있고, 내생의 내 모습을 알고 싶으면 금생에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가를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업자득(自業自得)·자작자수(自作自受)의 설이며, 자기의 의사에 의해서 자기의 운명을 개척해 갈 수 있다는 자율설인 것이다.

2012-10-23

자기 용서

▲ 이원락경주청하요양병원장·수필가 우리는 자기의 삶을 돕는다고 생각하면서도 살아가는 중에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를 혹사시키면서 학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서 사랑하고 용서하기가 힘든 자는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여긴다. 그는 어떤 때는 “비록 하나님이 나를 용서했어도, 나는 나를 용서할 수 없어”라고 하면서 하나님 보다 더 높은 기준을 자신에게 적용하려 한다. 우리는 살아가는 중에 간혹 스스로에게나 또는 이웃에게 잘못을 저질러 버릴 수도 있다. 이럴 때는 자책감과 죄책감, 자괴감, 수치심 등이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가혹하게 자기를 정죄하기도 한다. 그는 이것을 자기에 대한 사랑으로 여긴다.세상에서 가장 학대받고 천대를 당하면서도 용서마저 받지 못하는 자가 곧,나 자신이 아닌가. 또 병들게 하고 정신적으로 감옥에 가두어 버린 자가 혹시 나 스스로가 아닌가. 나에게 가장 대우를 받지 못하는 자가 바로 자기 자신이 아닌가. 지극히 약하고 작은 사람 속에 바로 나 자신이 포함되어 있지는 않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혹시 자기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다면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이것은 마음속을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 차게 하고, 자존감을 낮추어 버리며, 자기를 학대하거나 비하시켜 버린다. 부정적인 내용을 강화해 버린다.어린 아이에서 청소년일 때까지 우리는 하루에 수십 회 동안 부모로부터 부정적인 말을 듣는다고 어느 학자는 말했다. 그 말들에는 이런 것이 있다. `가만히 있어! 조용해! 안 돼! 수준이 그 또래 정도구나! 또 그랬구나! 아이구 더러워! 이 바보야! 이놈의 원수! 누구 닮아 이 모양이냐! 이걸 점수라고 받아왔나! 한 번만 더 이러면 너를 호적에서 파 버린다! 내 뱃속에서부터 괴롭히더니! 왜 이리 못났는가! 우리 집 이렇게 된 것은 너 때문이야!` 등의 말로 자식을 정신적으로 조여 줘 버린다.부정적인 말은 가슴에 상처를 안겨 준다. 인두로 지져서 낙인시켜 준다. 내가 옷을 사 입었을 때 4명이 `옷이 좋다`고 하더라도 1명이 좋지 않다고 하면 1명의 말이 가슴에 남는다. 부정적인 말을 듣고 생긴, 부정적인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회복하려 하면 적어도 4명의 긍정적(축복의)인 말을 들어야 한다.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면 사랑, 기쁨 등의 말은 들리지 않고 아득히 멀어져 버린다.세상에서 소문난 인물들은 모두 엄청난 부정적인, 이런 것을 노력으로 극복한 사람들이다.예를들어 가롯 유다는 예수가 있는 곳을 경찰에게 알리고 돈을 받았다.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를 모른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나 그 뒤의 풀이가 서로 상반된다. 유다는 잘못을 이해하고 돈을 버렸으나 자기를 학대하고 이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러나 베드로는 통곡으로 잘못을 깨우치고 예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 자기를 학대하지 않았다.자기 사랑은 자기를 용서하고 긍정하여 자기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일어날 수 있는 잘못된 행위는 그 자체일 뿐 인생 전부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잘못된 행동과 자기를 구분해야 한다. 자기중심주의, 자만심, 우월감, 도취, 이기주의에서는 자기사랑이 자랄 수 없다. 특히 이기주의자란 자기를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사랑하는 척 하는 사람을 말한다.나의 과거에 있었던 약점, 지난날의 아팠던, 잘못된 경험 등은 나의 정신력의 성장에 많은 기여를 했다. 그러므로 이런 것을 빙긋이 웃으면서 받아들여라. 그러면 약점을 사랑할 수 있다.약점이야 말로 정신적인 성장을 위한 좋은 거름이 된다. 신은 우리의 약점을 통해 위대한 일을 계획한다. 이제 거울 앞에 서서, 앞에 보이는 나에게, “너, 미안해. 나는 너를 용서한다. 너도 나를 용서하라”고 이야기 해 보자.

2012-10-19

유한한 인생

▲ 정석준 수필가내가 20대였던 40년 전만 해도 130호가 살던 우리 마을에 회갑을 넘긴 노인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고, 부모가 회갑 때까지 살아 계시면 큰 경사로 알고, 온 동네 사람들을 초청하여 잔치를 베풀고, 함께 축하해 마지않았다. 그러나 요즘은 `인생은 육십부터`, `육십은 청춘`이란 말이 있듯이, 회갑나이는 노인 축에 끼지도 못한다. 따라서 회갑연을 하는 사람도 찾아보기 어렵고, 그 대신 칠순잔치를 많이 하고 있으니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해방 직 후 우리나라 사람의 평균 수명은 50살을 겨우 넘었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남자의 평균 수명은 76.54세, 여자의 평균 수명은 83.29세라고 한다. 여자가 남자보다 7년이나 오래 사는 데 대해 전문가들은 남자가 여자보다 사회생활이 길고, 경쟁이 심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며, 또한 여자가 남자보다 스트레스 대처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남자의 경우는 괴로워도 참는 경우가 많아 스트레스가 쌓이게 되고, 또 이를 해결하기 위해 흡연이나 과음을 하지만 여자의 경우 괴로우면 울기도 하고, 맘껏 표현해 스트레스를 풀기 때문에 오래 산다는 것이다.생명공학자들은 인간의 건강과 수명을 연장하기 위하여 밤잠을 설쳐가며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이미 1953년 왓슨에 의해 DAN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하였고, 1997년 영국 에딘버러의 로슬린 연구소에서 복제양 돌리를 탄생시켰으며, 2003년 유전자의 비밀을 밝히는 인체 게놈프로젝트를 완성하여, 인간의 의도대로 유전자를 조작해 각종 질병의 치료는 물론 대물림되는 체질마저도 바꿀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의학자들은 향 후 5~10년 이내에 현대의학으로서는 해결하지 못하는 암이나 에이즈를 완전 정복하고, 20년 이내에는 인간의 수명을 130세까지 연장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의학이나 유전공학이 아무리 발전한다 하더라도 인간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는 없다. 태어나는 자는 반드시 죽는 것(生者必滅)이 만고불변의 진리이다.지난 가을 친구 몇 명과 함께 남산 등산을 갔다가 팔각정에서 10년 만에 한 동기생을 만났는데, 그 동기생이 대뜸 한다는 소리가 “야, 니 와 이리 늙었노?”였다.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늙어가는 것은 잘 모른다. 남은 늙어도 자기는 안 늙는다고 생각하고 있다. 친구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보아야 하는데, 친구는 늙어도 자신은 안늙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착각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 인간이다.한국인의 사망률 1위는 각종 암으로 인한 사망(26.3%)이고, 2위는 뇌혈관질환으로 인한 사망(13.9%)이며, 3위는 급성심근색으로 인한 사망(7.3%)이라고 한다. 늘그막에 암이나 뇌출혈로 쓰러진다면 본인의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간병하는 가족들이 겪는 고통도 이만저만이 아니다.노인들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한결같이 “잠자듯이 죽는 것”이라고 대답한다고 한다. 그러나 잠자듯이 편안하게 죽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50대 중반 이후 종교를 찾는 경향이 부쩍 늘어난다고 하는데, 그 이유를 심리학자은 `마음의 평안` 또는 `사후에 대한 불안감`때문인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어느 철학자가 “인간은 삶이 두려워 사회를 만들고, 죽음이 두려워 종교를 만들었다”고 말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죽음이 불안으로 다가오는 것은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의 한계인지 모른다.

2012-10-17

신념(信念)

▲ 이원락 경주청하요양병원장·수필가어떤 생각이나 물질에 대해서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관점을 가지고 있다. 관점을 오랫동안 가지면 소신으로 변한다. 소신은 시간이 흘러가면 점점 익어가서 신념이 된다. 그것이 만들어지기까지 그는 긴 세월 경험을 축적해 왔다. 그래서 어떤 문제에 대해 어떤 이는 이렇게 설명하기도 하고, 다른 이는 저렇게 설명을 하기도 한다. 때로는 주장하는 사람들이 한 편으로 쏠려 있는 경우도 있지만, 어떨 때는 양 측의 숫자가 거의 엇비슷하기도 한다. 지동설의 초기와 같이 소수만이 진리의 편에 서는 경우도 있었지만, 제일 큰 대립은 대통령 선거 때, 불과 몇 표의 차이로 한 쪽이 승리를 하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도 있었다. 1954년 자유당 시절에는 국회에서 4사5입(四捨五入) 원칙을 만들어서 헌법을 통과 시켰다. 당시의 여당 국회의원 중 단 2명만 4사5입 가결 방법을 반대했다고 한다. 뚱딴지같은 통과였다.삶의 원칙에 대해 고심한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갈고닦은 생각이 밑받침돼 형성된 신념을 가질 수 있다. 만일 그 신념에서 누구나 좋아하는 향기가 나거나 아름다움이 있으면, 다른 사람의 동의를 받는 공감대가 만들어져서 확산될 수 있다. 그것은 따뜻함과 정의를 대변하여 확산되면, 사상의 주의(主義)로 만들어 진다.신념은 각자의 사고의 산물이기 때문에 같은 목표를 두고도 보는 방향에 따라 여러 가지가 가능하다.누구는 자유 민주주의를 택하고, 어떤 이는 사회주의를 택하기도 한다. 현실에서 지금 복지 정책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더 빨리 진행해야 한다고 한다. 어느 것이 맞는지는 신만이 아신다. 신념은 각자의 것이기 때문이다. 공감의 폭이 넓으면 넓을수록 그 뿌리는 더욱 확실하게 사회에 적용된다.다양한 인간의 소신은 한 가지로 통일될 수 없다. 통일된 신념이 있다는 것은 무언가 외압이 강하게 작용했을 때 가능하다. 신념의 단일화는 불가능하다. 그것은 인간이 진화를 거듭하여 신의 경지에 가야만 가능할지도 모른다.하기야 수십 년 후에 인간 두뇌 정도의 영특한 스마트폰을 가질 것이라고 하니, 미래를 기다려 보자. 그러나 그때에도 인간의 주장과 학설이 여러 가지로 난무할 것이다. 아마도 지금의 지능 수준 정도로는, 인간은 아마도 영구히 단일화해 통일된 이론이나 신념은 불가능할 것이다.모든 주장들이 단일한 결론이 만들어져서 기타의 것이 잔잔한 미소 속에 철회될 때까지, 여러 학설들이 심심해서 잠들 때까지, 각각의 입장들이 시들어 버릴 때까지, 인간들은 자기 것을 주장하고, 고민하고 연구하면서 또는 입장을 설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그러나 인간의 주장과 연구는 선한 결과를 낳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이상(理想)적인 생각을 하여 만든 이데아는, 지향하다가 이데올로기로 변질되어서 많은 사람들을 전쟁에서 죽였다. 종교마저 사랑을 빙자하여 세계적인 살육을 행하기도 했다.세상에는 소신에 대한 여러 잣대들이 우후죽순과 같이 푸르게 인간을 유혹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이곳으로, 어떤 이는 저곳으로 기웃거리게 된다. 그러기에 자기의 주장이 종국에는 꼭히 선(善)쪽에 있다고는 확신할 수 없다. 그러므로 불확실한 각자는 우선 지금 여기서 상대의 생각에도 귀를 기울이고, 존중하려고 노력해야 한다.어쩌면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처럼, 인간은 전체를 알기에는 한계가 있나보다. 그것을 우리는 자기에게 설정된 환경이라 할 것이다. 다른 말로는 운명이라 한다. 생각을 결정지우는 환경을 누구에게나 똑같이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2012-10-12

중중무진(重重無盡) 연기

▲ 정석준 수필가옛부터 우리 조상들은 매화·난초·국화·대나무를 사군자라 하여, 고결한 군자의 인품에 비유하여 시를 짓거나 그림을 남겼다. 한국 시문학의 거장 서정주님도`국화 옆에서`란 시에서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까지 수많은 인고 세월이 있었음을 노래했지만, 한 송이 국화꽃은 수많은 인연들이 모인 결정체임을 간과해서도 안된다.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태양의 빛과 뿌리로부터 올라오는 수분과 영양분이 필요하다. 흙 속에 수분이 있기 위해서는 비가 자주 와줘야 하며, 비가 오려면 구름이 필요하고, 그 구름은 바닷물, 시냇물이 태양의 열로 수중기가 되어 다시 구름이 된 것이다. 이렇게 국화가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태양·물·구름이라고 하는 무수한 인연의 결합에 의해 우리 눈앞에 한 송이의 국화꽃으로 존재하는 것이다.신라의 의상 스님은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진성은 참으로 깊고 지극히 미묘해(眞性甚深極微妙)/자성을 지키지 않고 연(緣)을 따라 이루더라(不守自性隨緣成)/하나 안에 일체 있고 일체 안에 하나 있으니(一中一切多中一)/하나가 곧 일체요 일체가 곧 하나일세(一卽一切多卽一)/한 티끌 그 가운데 시방세계 머금었고(一微塵中含十方)/일체의 티끌 속도 또한 역시 그러해라(一切塵中亦如是)”사면이 거울로 된 방에 촛불을 비추면 촛불이 수없이 비춰진다. 그 방안에 수정구슬을 가져다 놓으면 그 수정공 안에 무수히 많은 촛불이 다 들어가 비춰진다. 옆에 수정구슬을 또 가져다 놓으면, 한 수정구슬 속에 있는 무한대의 촛불이 다른 수정구슬에 담기고, 이것이 다시 다른 수정구슬에 담긴다. 이 순간 중중무진(重重無盡)의 촛불이 수정구슬 안에서 반짝이며, 반사되는 것과 반사하는 것의 구분이 사라진다.이렇듯, 내 몸 안에 있는 체세포는 100조개의 세포 가운데 하나이지만 그를 복제하면 온전한 나, 곧 나와 생김새는 물론이거니와 목소리와 성격·지능까지 닮은 또 하나의 사람이 만들어진다. 시작도 끝도 없는 우주도 한 티끌이 대폭발(big bang)을 해서 만들어졌다. 우주가 한 원자에 압축돼 있고, 우주의 구조와 원자의 구조가 상동성(相同性)을 갖기에, 천체물리학자들은 원자의 구조를 연구해 우주의 비밀을 해명하려 한다. 전자가속기를 이용해 원자 안의 작은 미립자에 대해 새로운 사실이 추가되면 우주의 비밀이 한 꺼풀 벗겨지고, 허블 망원경을 통해 우주의 비밀이 밝혀지면 원자의 실체를 밝히는 연구도 한 걸음 진전된다. 망망한 우주가 곧 하나의 원자이고, 하나의 원자가 곧 망망한 우주이다. 의상 스님의 말대로 하나 중에 일체가 있고, 일체 중에 하나가 있다(一中一切多中一).하나는 일체와 관련지을 때 하나이다. 하나에 열이 있고, 인다라망의 구슬처럼 하나에 일체가 담겨 있으니 하나가 전체이다. 우주 삼라만상의 무한한 조화가 연기 아닌 것이 없으니 전체가 곧 하나이다. 우주 삼라만상 일체가 인다라망의 구슬처럼 서로 비추고, 조건이 되고, 관계를 하고 있으니 일체가 하나이다.부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하나임을 알리시려고 일찍이 사바세계에 오셨다. 우리 모두가 부처님의 참 말씀을 모르고, 너와 내가 하나 아닌 둘이라는 잘못된 생각에 인류의 역사는 불행한 것이었다. 둘이라는 잘못된 생각 때문에 우리는 항상 번뇌와 망상 속에서 헤매고 있는 것이며, 불행이 따르고 있는 것이다. 실은 행복이라는 말도 불행의 상대적인 의미이기 때문에, 불행이 없다면 행복이라는 용어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차안이 있기 때문에 피안이라는 말도 필요한 것처럼, 실은 모두가 하나임을 사무치게 하는 아는 삶에는 언제나 행복과 상락아정(常我淨)의 열반이 있을 뿐이다.

2012-10-10

비판과 분별

▲ 이원락 경주청하요양병원장여러 색들이 겹쳐질수록 밝은 색은 사라지고 점점 검고 어두운 색깔로 바뀌어 간다. 인간의 마음에 색깔이 있다면 복잡한 인간관관계는 온갖 색깔들로 꽉 채워져서 세상은 온통 검게 물들여질 것이다. 인간의 마음도 색깔들 같이 다양해 간혹 밝은 색의 행복을 느끼겠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검은 색의 고민과 불행으로 가득 차게 된다. 또 색깔에는 조화되는 색깔이 있고 어울리지 않는 색깔도 있다. 자기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밝고 좋은 관계를 가진다면 그것은 누가 봐도 싫지 않은 색을 나타낼 것이다. 공동체 단위의 인간관계 속에서도 지속적인 노력을 하면 우리는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이룰 수 있다. 이 사회에서는 그 사람의 마음의 폭이 넓을수록 더 큰 단위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많아진다.그러나 세상일은 대부분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시도하던 일이 걸림돌에 걸려 좌절하거나 남이 만들어 둔 덫에 걸려 꼼짝 못하기도 한다.세상에서 인간이 하는 일은 반대자가 반드시 있게 마련이고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진리다. 자기와는 반대 색깔의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비판자 역할을 한다. 그래서 간혹은 어떤 일에 있어서 나도 반대자의 입장에 있지나 않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이 세상의 삶의 대부분은 어려움으로 가득 차 있다. 추진하던 일이 잘 이루어지면 그것을 사람들은 그냥 보아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배 아픈 사람이 많을 수 있다. 비판의 대상이 된다. 성취란 이런 것을 극복해야만 이뤄낼 수 있다.있을 수밖에 없는 갈등 속에 있을 때 상대는 나에게 심리전을 한다. 사기와 의지를 꺾으려고 비웃음, 무시, 조롱, 불평, 비판을 퍼붓는다. 이때 행복은 멀리 달아나 버린다. 세상에서는 날카롭게 비판해 판단하면 모두가 그를 똑똑하다고 한다. 그는 현란한 말로 비판함으로써 남의 눈에 쉽게 띄어서, 처세술이 좋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어떤 이가 비판하면 다른 이는 그 비판을 다시 비판하면서 비판의 수레바퀴를 돌린다. 그래서 성경은 비판의 고리를 끊기 위해 비판을 말라고 했다. 비판은`분석하여 결함(결점)을 잡아내는 것`이다.그 대신`분별`할 것을 종교에서는 권한다. 분별이란 무엇이 더 좋은 일일까, 어떻게 하면 더 나은 것이 가능할까 하면서 현실의 결점을 보완하고 시정하는 선에서 생각한다. 그 배후에는`사랑`이 있다.비판의 뒤에는 폭력과 위협이 가능하고 공모가 있을 수 있다. 평안하게, 행복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살지 못하게 하고, 그럴듯한 명분으로 마구 흔들어 버린다. 그런 비판의 이면에는 주로 돈 문제와 주도권 다툼 등 이득과 관계되는 일과 이기심이 숨어 있다. 비판은 일을 그르치게 하는 것이 목적이며, `자기는 의롭고, 평가할 자격이 있다`는 교만에서 나온다.분별할 줄 아는 사람은 깊이 생각하며 비교적 세상을 단순하게 본다. 주로 밝은 색의 사고를 한다. 복잡한 세상에서 외피를 뚫고서, 사랑의 눈으로 그 안을 볼 수 있는 자들로서, 생각이 어렵지 않고 순수하다.우리는 비판에 숙달되지 말고, 분별력을 키워야 한다. 학교 교육도 가정의 자녀 교육도 행복을 위해 분별력을 키우는 곳에 집중해야 한다. 불행을 청년기의 젊었을 때 겪는다면 그것은 행복의 씨앗으로 창조적인 힘을 키우게 된다. 이런 불행은 분별력을 키워 준다는 뜻이다.행복은 자기 극복을 통해 분별력을 가진 사람에게만 가능하다. 그는 세상을 누구보다도 선하고 정확하게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다.

2012-10-05

현대사회와 종교

▲ 정석준 수필가최근 리비아를 비롯한 아랍권의 반 서방 시위가 확산되고 있다. 유대인들로부터 모금한 돈으로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를 모독하는 동영상을 제작·유포한데 이어 프랑스 시사주간지 `샤틀리 엠도`가 무함마드를 그린 만화를 실었기 때문이다. 시위를 촉발한 동영상에는 무함마드가 늘 술에 취해 있고, 돼지고기를 먹고, 여색을 탐하며, 도둑질을 일삼는 것으로 나온다. 만화의 만평은 무함마드를 조롱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유일신을 믿는 종교의 배타성은 종교의 본질적 부분의 하나다. 우리가 21세기의 불길한 가능성 가운데 하나로`문명의 충돌`을 거론할 때 그 문명의 충돌이란 본질적으로 종교들 사이의 충돌이다. 다시 말해 충돌의 커다란 주체들이 흔히 예견되듯 서방과 아랍이라면 그 충돌이란 기독교 문명권과 이슬람 문명권이다. 이슬람권의 많은 사회에서는 아직도 정교 분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공화정을 택하고 있는 이란 같은 나라가 역설적으로 이슬람 공화국이라는 완고한 신정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슬람권의 다른 나라들에서도 세속의 일이 흔히 종교에 포섭돼 있다.이슬람 국가들이나 서방의 기독교 국가들에 비해서 종교로부터 더 독립적으로 보이는 한국 사회에서도 종교는 여러 가지 양상으로 세속의 일에 간섭하고 있다. 실은 세계 여러 곳에서 수입된 종교들이 한국에서는 기묘하게도 근본주의적 성격을 띠게 돼 다른 종교들에 대해서 또는 그 종교 내부에서 심하게 충돌한다. 단군상의 목이 잘리거나 불상이 훼손되는 일도 자주 발생한다. 특정한 교파나 그 교파 지도자의 부패나 여타의 일탈행위를 보도하는 언론기관은 흔히 신도들의 물리적 공격 목표가 된다. 21세기 첨단 과학시대를 사는 오늘날에도 종말론은 고개를 숙일 줄 모른다.이런 것들은 일부 이단 종파들의 종교적 일탈일 뿐 정통교파의 종교라는 것은 본디 거룩하고 너그러운 것인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기독교의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교회의 역사는 피로 얼룩진 역사이다. 십자군 전쟁이나 신·구교간의 전쟁은 기독교의 역사의 수많은 피흘림 가운데 두드러진 예일 뿐이다.종교는 인간의 감정과 의지를 지배하는 신념체계이기 때문에 자기가 믿는 종교가 외부로부터 침해를 받으면 그 반응이 민감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오늘날 우리는 과거의 폐쇄적인 틀에서 벗어나 다종교 시대에 살고 있다. 바이블벨트에 있는 휴스턴에도 이슬람 모스크가 있고, 이슬람의 나라 파키스탄에도 교회가 세워져 있다. 보스턴에도 캄보디아 불교가 있고, 모스크바에도 힌두교인, 런던에도 시크교인이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심지어 가족 구성원간에도 종교를 달리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이런 현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는가? 우리는 어쩔 수 없이`다종교현상`을 현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며, 이런 다종교 사회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존중해주는 `공존의 원리`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본다.다종교 사회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존중해주는 공존의 원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내가 믿는 종교의 가르침만이 참 진리라고 확신한 나머지 남의 종교를 폄하하거나 멸시한다면 공존의 원리가 깨어지게 되고, 걷잡을 수 없는 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리게 마련이다. 내가 믿고 있는 종교가 소중하면 남의 종교도 소중하다. 종교 간의 우열을 논한다든가, 내가 믿고 있는 종교만이 참 진리이고, 다른 종교는 미신이란 주장은 갈등만 조장할 뿐 문제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2012-10-04

야권 단일화

▲ 이원락 경주청하요양병원장이번의 대통령 선거에서는 야권의 후보 단일화가 지금까지 매우 큰 관심사가 됐다. 그 이유는 단일화하지 않으면, 여당이 승리하리라는 것을 누구나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이한 것은 무소속으로 후보출마를 한 사람의 지지층이 많다는 것이다. 무소속으로 당선되면, 기존의 정당에 이리 채이고, 저리 부딪치면서 짧은 수명으로 끝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단자급의 정치 선수들은 무소속 정권을 잘 차려진 상으로 보고 냉큼 집어 먹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야권의 두 사람은 서로 공통점과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야당 후보는 비교적 정치때가 덜 묻어 있는 것 같고, 무소속 후보는 정치판에 겨우 진입했을 뿐 아직 정강정책을 거의 발표하지 않은, 그야말로 신인이다. 많은 사람들은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이 순수 민간인을 정치로 끌려오게 만들었다고 한다.야당 후보는 비교적 절도가 있고, 예의를 아는 것 같다. 극단적인 생각은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 표현이 덜 거칠다. 약간 우직해 보이고 서민형의 사람이다. 옆집 아저씨 같다. 그리고 무소속 후보는 청순해 보인다. 어떤 이는 그 점때문에 살벌한 정치에서 `과연 리더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하고 의심하기도 한다. 그는 화려한 학력과 경력, 그리고 기술력과 조직 운영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는 구태와 기득권을 한꺼번에 무너뜨릴 수 있는 21세기의 소통형 지도자로 부각시키려 노력한다.그러나 시민은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재벌의 구명운동은 재벌 유착은 아닌지, 과연 노래방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을 정도로 세상을 살았는지 말이다. 노래방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면 청순한 것이 아니라, 너무 소심하거나 오락적인 여유가 없는 사람이다. 또 몇 번 가보았다면, 거짓말을 한 셈이다. 가봤다해도 문제, 가보지 않았어도 문제다.인간은 성장하면서 인생의 단맛, 신맛, 쓴맛, 짠맛을 모두 맛보아야 한다. 여유롭게 성장하고, 최고의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하고, 했던 일 모두가 성공적이라고 해도 인간관계마저 그런 수준을 할 수는 없을 수도 있다. 오히려 넉넉하게 컸다는 것은 단맛만 알 뿐, 신맛, 쓴맛, 짠맛은 모르고 성장했을 가능성이 많다.두 후보는 누가 단일화 후보가 되든지,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여당 후보에 대한 공격을 할 때는 같은 단어를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재벌 개혁과 노동 인권 강화`일 것이다. 후보 단일화 과정은 일종의 담합 행위이다. 서로 이익을 교환하는 `사익추구행위`이다. 그러나 이 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담판 같은 타협은 감동을 국민에게 줄 수 없어서 효과적이지 않을 것이다. 또 상대의 포기를 전제로 하기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치열한 경쟁을 하여야만 한다. 경선을 하는 것도 서로의 유·불리를 따져보기에 거의 불가능하다. 국민은 여론 조사 방법에 흥미가 없다.결국은 지지층의 변화를 예의주시할 것이다. 그러려면 선거 등록까지의 약 2개월의 기간동안 따로 행보를 지속해 자기편을 모을 것이다. 그런 연후 한 쪽으로 기울면 후보를 결정할 수 있다. 그러나 비슷한 힘겨루기 양상이면 큰 어려움에 봉착한다.단일화의 가능성은 어느 정도 있다. 두 사람은 큰 야망이나 욕심을 가지지 않은 삶을 살았고, 서로 적대 관계가 된 적이 없었다. 또 단일화가 실패하여 집권을 못하면, 그 결과에 대한 비난은 엄청날 것이다. 그래서 둘은 수시로 만나 티타임을 갖는다든지, 함께 시장을 방문한다든지, 토크쇼에 출연한다든지 하면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야당은 정당 없는 후보에게 언제든지 정당가입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는 정당을 만들 의사나 능력이 전혀 없는 것 같다. 연합할 수밖에 없다.

2012-09-28

가을 단상(斷想)

▲ 정석준 수필가해바라기가 담장 너머 길게 목을 내밀고 반갑게 인사를 하고, 길가 코스모스가 한들한들 춤을 추며 가을을 예찬하고 있다. 어느새 가을의 문턱에 접어 든 것이다. 이젠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기운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장자는 “지혜로운 사람은 천리(天理)에 순응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천리에 역행한다”고 했다. 무엇이 천리인가? 해가 뜨면 지는 것이 천리이며, 겨울이 가면 봄이 오는 것이 천리이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천리이고, 태어남이 있으면 죽음이 있는 것이 천리이다. 인간은 이러한 천지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 장자의 가르침이다.지난날을 가만히 돌이켜 보면 앞만 보고 달려온 것 같다. 그리고 어느새 인생의 반환점을 돌아 종착역이 저만큼 보이는 곳까지 와 버렸다. 인생의 종착역이 어디인가?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달려가고 있는 곳이 있는데, 그곳이 죽음이다.기실(其實) 살아간다는 것은 곧 죽어 간다는 의미이다. 발명왕 에디슨은“시간은 돈”이라고 했지만, “시간은 곧 생명”이다. 하루가 지났다는 것은 내 생명이 하루 단축됐다는 것을 의미하고,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다는 것은 내 생명이 일년 단축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잠시 잠깐이 하루가 되고, 한 달이 되고, 일년이 된다. 그러는 사이 해가 거듭되면 병들어 길기만 한 것 같은 인생도 끝나게 되는 것이다.옛날 어떤 사람이 악한 짓만 하다가 명이 다해 저 세상으로 갔다. 저승사자는 그 사람을 염라대왕 앞으로 끌고 가서 “대왕이시여 이자는 세상에 살아있을 때 부모에게는 불효했고, 스승과 어른을 공경치 않았으며, 갖은 악행만 일삼았습니다. 이 사람에게 적당한 벌을 내려 주십시오!” 라고 말했다. 저승사자의 말을 들은 그는 염라대왕에게 “대왕님 저는 살아 생전에 염라국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만약 대왕께서 다음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셨더라면 제 인생을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대왕님 정말 너무 하셨습니다”하고 억울함을 하소연했다. 그러자 염라대왕은 그 사람에게 물었다. “그럼 너는 내가 보낸 세 명의 사자(使者)를 못 보았단 말인가?” “못 보았습니다” “너는 늙은 사람, 병든 사람, 죽은 사람을 못 보았단 말인가?” “그런 사람은 수없이 보았습니다” “늙은 사람, 병든 사람, 죽은 사람이 내가 보낸 사자니라. 너는 그런 사람을 수 없이 보고도 어찌하여 깨닫지 못했느냐. 너는 이제 죄에 대한 업보로 벌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 염라대왕이 말을 마치자마자 저승사자는 그를 끌어다가 활활 타오르는 불구덩이 속에 집어 던져 버렸다.노인과 병자와 사자(死者), 우리는 누구나 이 세 명의 사자(使者)를 수없이 만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냥 건성으로 지나치기만 한다. 니이체란 철학자가 잘 지적했듯이 `나는 항상 여기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날 갑자기 저 세 명의 사자가 나를 직접 찾아왔다는 엄연한 사실을 느닷없이 통고 받게 된다. 그리고 그때서야 지나온 자신의 인생이 잘못투성이었음을 알고 다시는 나쁜 일 않겠다고 애걸복걸해 보아도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해마다 피는 꽃은 같거니와 사람은 같지 않다. 변모하는 것이 어찌 인간뿐일까? 올 해 핀 꽃도 엄밀히 따지면 지난 해 피었던 꽃은 아니다. 만물은 끊임없이 유전(流轉)하고, 모든 것은 물처럼 흐른다. 똑같은 시냇물에 두 번 다시 발을 씻을 수 없다. 흐르는 물이 다르듯이 발을 씻는 나 자신도 늘 변모한다. 똑같은 하루는 영영 오지 않는다. 우리 모두 하루하루를 천금(千金)보다 귀하게 여기고, 알뜰살뜰 살아야 한다. 만약 하루를 헛되이 보낸다면 그것은 영원히 헛된 자국을 남기고 말게 될 것이므로….

2012-09-24

조화(調和)

▲ 이원락 경주청하요양병원장넉넉한 생활을 하는 집은 아니지만 화목한 분위기에서 즐겁게 오순도순 살아가는 옆집의 모양새는 예쁘기만 하다. 조그마한 가게를 운영하는 평범한 가정이라서 그리 기쁠 이유가 없는데도 항상 웃음을 띄고 있다. 주인이 일하러 집을 나설 때는 웃으면서 배웅한다. 자주 가족단위로 바깥나들이를 한다. 즐거움으로 조화를 이룰 때 그곳을 `천당`이라고 한다면 이웃집은 이미 천당 속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나는 합창단의 단원으로 발표회에 여러 번 참석한 적이 있다. 단원들은 모두 아름다운 운율이 되도록 서로 조심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그 결과 합창이 끝날 즈음에는 우뢰같은 박수를 자주 들을 수 있었다.합창단에는 지휘자가 있다. 단원들은 성격이나 소리의 색깔이 모두 다르다.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는 음질을 크게 구분한 것이다. 합창의 화음은 기묘하고 그윽한 느낌으로 우리의 머리를 씻어 준다. 그래서 이때는 조화가 중요하다.합창에서는 튀어나오는 소리나 틀린 음정은 조율돼야 한다. 지휘자가 그 일을 한다. 구성원 개개인의 음을 모두 합해 더 높은 차원의 감동을 주도록 하는 게 지휘자의 역할이다. 그는 각자의 음을 융합시켜나가는 마술사가 되는 것이다.조화의 미덕은 다른 예술 분야에서도 볼 수 있다. 여러 가지 색깔을 아름답게 배열해 기쁨과 의미를 전달하는 미술품이나 섬세하고 조화로운 손놀림에서 이루어지는 조각품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축구 경기에서 한 사람이 뛰어난 경우에는 단독 플레이를 하게 된다. 그러면 팀의 역할보다는 개인의 기량이 앞서버리기에 좋은 성적은 어렵다. 합창에서도 음성이 좋은 개인이 제맘대로 행동해 조화를 깨어 버리는 수가 있다. 어느 한 사람이 똑똑하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조화는 서로 마음을 모으는 것이다. 축구나 합창 등의 단체 활동과 같이 한 덩어리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공동의 노력이다. 그 결과로 이뤄지는 것이 곧 조화(調和)이다. 합동해 서로의 장점을 드러내어야 좋은 경기가 가능하고 자연스레 힘이 모여진다.인간이 사는 세상에서 사람은 어떤 형태로든 크고 작은 모임에 소속된다. 자기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그곳의 일원이 되기도 하고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참여하기도 한다. 어떤 모임은 잘 운영이 되기도 하고 또 어떤 모임은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기도 한다.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고 해도 특정 집단에서 협력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집단에 마이너스가 되는 인물이 된다. 그래서 그는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사회적인 사업의 수행에서도 한 개인의 능력만으로 성공적인 일의 수행은 불가능하다.우수한 구성원이 완벽한 조화를 한다면 최고의 해답을 얻을 수 있겠지만 세상일이란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게 아니다. 비록 우수한 구성원이 아닐지라도 각 구성원 간에 조화가 이뤄진다면 좀 더 추구하는 목표에 근접할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서 같이 노력하고 협력해 목표를 이루어 낼 때 일어나는 감동이나 성취감은 또 다른 조화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유명한 성악가의 노랫소리도 좋지만 평범한 사람들로 구성된 합창단의 화음도 그에 못지않게 좋은 것이 아닐까.모든 면에서 조화롭게 하려고 노력하는 자들은 종국에는 역사를 선(善)쪽으로 향하게 하고, 날아가는 새의 다친 날개를 아파한다. 윤활유에서 섞여버린 찌꺼기를 제거하려고 노력하며 작품의 완결을 위한 화룡점정(畵龍點睛)에 자기를 던지는 자들이다. 조화는 단순하고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공동의 노력과 사랑으로 단결돼야 비로소 가능하다.

2012-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