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원락 경주청하요양병원장60이 넘은 나이에 과거를 회상해 본다. 학생시절 어느 날 거울을 보는 순간, 거울 속의 나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이 진하게 풍겨 나왔다. 풋내기 대학생인 나는 30~40대의 아버지는 이해됐으나 50~60대의 아버지의 마음이나 모습은 상상할 수 없었다.그때는 아버지와 대화하거나 함께 식사하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고등학생이었을 때 나는 어려운 생활 때문에 아버지와 다투기도 했다.`아버지가 사는 모양으로는 살아가지 않겠다. 아버지 보다 성공한 사람으로 살겠다. 나의 자식을 위해, 나는 아버지가 나에게 해 준 것보다 더 많이 해 줄 것이다`고 다짐도 여러 번 했다.여러 번 불만을 표시하면서 아버지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리기도 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절대 권위는 인정했다.그러나 늘 가족들을 위해 힘들어도 주저앉지 않고, 이를 악 물고 일어나야 했기에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셨던 아버지였음을 이제는 확실하게 절감하고 있다. 그 후로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무한히 차 있어도 아버지에게는 그것을 표현하지 못한 안타까움이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다.그 후 세월이 많이 흘러 내가 아버지, 할아버지가 된 지금의 느낌으로는 과거보다 일상 생활에서 아버지의 역할은 점점 축소돼 버렸고, 예전같이 그리움의 대상으로 강하게 느껴지지는 않는 것 같다.이제 아버지란 돈이나 벌어다 주는 사람, 얼굴 보기가 어려운 사람, 호통이나 야단만 치는 사람, 별로 인기가 없는 사람으로 바뀌어 가는 것 같다.점점 더 아버지 없는 가정, 아버지 역할이 줄어든 시대로 변하고 있다.어느 문학가는 “아버지 없는 사회는 남성의 소외나 주도권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모두의 위기를 의미한다”고 했다. 아버지의 권위가 회복될 때 국가와 가정, 학교의 권위도 회복 된다고 했다.청소년 범죄는 권위가 줄어든 아버지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부권이 약하면 사회가 혼돈되고, 아버지의 그림자가 희미해진 가정은 주춧돌이 없어진 거나 마찬가지이다. 한국인의 무의식 속에는 군사부일체라는 유교 사상이 깔려 있다. 아버지의 권위는 곧 모든 권위자의 상징이었다.어느 교수는 “아버지의 지위가 흔들리는 사회(fatherless society)는 신이 없는 사회(godless society)로 되어간다”라고 했다.최근 아버지의 역할에 대한 설문에 학생들은 아버지를 어느 정도는 대우를 해 주는 것 같았다.그들은 아버지를 `등대, 등불, 친한 친구, 꼭 필요한 산소, 쓰지만 유익한 한약, 가로등, 피뢰침, 나침반, 멘토, 자신의 살점을 다 떼어 나에게 주는 가시고기, 안경, 아무리 노력해도 아빠를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물음표` 라는 등 여러 가지 대답이 있었다.요즈음의 젊은이는 세상일에만 애쓰고 수고하면서, 자식은 마음으로만 사랑하는 아버지를 원하지 않는 것 같다. 컴퓨터, 스마트폰, 돈과 같은 물질로서 만족을 주는 아버지도 좋지만 친밀감으로 교제할 수 있는 아버지를 더 원하는 것 같다.자식들은 아빠를 통해 뭔가를 배울 수 있어야 한다.영국의 시인은 “한 명의 아버지가 백 명의 스승보다 귀중하다”라고 했다. 세상의 그 어떤 스승이나 유명한 사람보다도 가족에게 큰 영향을 주기에 행복한 가정의 결정적 요인이 된다.세상은 살아가기가 어렵다. 자식 키우기는 더욱 어렵다. 아버지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수 많은 슬픔과, 고통, 그리고 모든 것을 떠나보내면서, 비로소 온전한 아버지로 성숙되어 간다.아버지로서의 권위는 회복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과거에 가족들을 권위로 지배하면서 아내와 아이들을 사랑으로 대하지 못한 것을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가족들과 함께하는 즐거운 시간을 가지고, 아내와 자녀들과 함께 애정어린 관심과 고민을 나누는 시간을 가질 것을 권한다.
2012-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