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한 사람이라고 하면 의당 나약한 사람으로 생각한다. 손해를 봐도 웃기만 하는 또는 겸손해 다른 사람에게 굽신거리기를 잘하는 자로 치부해 버린다. 여성이 온유하면 좋은 사람으로 여긴다. 그러나 남자가 온유한 성격이라면 고분고분하고 그냥 착하기만 한 자를 연상한다. 더러는 무능한 자 또는 뼈대 없는 자로 연체동물과 비슷한 느낌을 갖는다.
반대로 성공적인 사람은 터프한 성격으로 강인하고 거만한 성품을 가진 자들로 인식한다. 때로는 무서울 정도로 무자비하거나 폭력이나 복수심도 가지고 있는 자로 여긴다.
그래서 현 사회에서는 온유한자란 성공과는 거리가 먼 사람 무시당하거나 짓밟혀도 저항을 못하는 자로 본다. 그 반대로 성공한자는 자기주장이나 개성이 강한 자들을 연상한다. 이런 사람은 모든 전리품을 독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온유한 마음이란 실제로는 최고급의 정신 상태로서 수양과 노력 없이는 가질 수 없는 것이다. 배우고 갈고 닦아야 하는 마음공부를 끊임없이 해야 한다.
또는 신앙의 깊은 경지를 말한다. 이것은 배워도 배워도 못다 이루는 분야이다. 그러면서도 인간이 살아가는 중에 꼭히 해야만 하는 것이기도 하다.
남의 마음을 이해하고 자기를 잘 파악하는 부드러운 사람을 우리는 `온유한 지혜 자`라고 한다.
그런데 자기를 있는 모습 그대로 볼 수 있는 혜안을 가진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래서 풀무에서 쇠가 다루어지듯 연단하여 자아를 컨트롤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힘들다. 수련하다가 대부분은 중도에 포기해 뛰쳐나가 버린다. 견디지 못한다.
나는 지나치지 않는지 또는 모자라지나 않는지, 무모한지, 겁 많은 지, 힘이 넘쳐나거나 딱딱하지나 않는지를 잘 파악해야 한다. 자신을 과대평가하거나 비하를 할 필요는 없다. 그는 미래를 잘 볼 수 있는지 지나치게 건방지지나 않는지 과도히 걱정을 하지나 않는지 등을 명상을 통해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돼야 중심을 잡을 수 있고 비로소 그는 당당한 자신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이런 경지에 도달하면 그에게는 세상의 만사가 그의 것이자 모두의 것이 된다. 한계를 초월한다. 공유의 개념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신이 주신 주위의 환경을 깨끗하게 한다. 그는 나눌 줄 알고 작은 것을 무시하지 않는다. 사회에서는 큰 것이라 해도 대단한 것으로 여기지 않을 수도 있다.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
기독교에서는 이런 노력을 하면 하나님의 선택을 받는다고 하고 불교에서는 그 자신의 노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목표라고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이 경지에 도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쉽게 시작했으나 많은 시간이 걸려서 수행과정이 삶에 방해되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되기도 한다.
힘을 강하게 하고 싶지만 온유를 위해서는 힘을 줄이거나 빼라고 한다. 힘이 강한 것이 최고의 기준이라면 이 세상은 호랑이나 사자의 천지가 돼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오히려 미물이 지구를 덮고 있음을 매일 본다. 온유란 나약과 같은 여린 종류의 단어가 아니다.
온유한 자는 쓸데없는 곳에 함부로 팔을 걷어 부치지 않는다. 하고 싶은 것도 참으면서 어떤 일의 처음과 마지막을 따뜻한 마음으로 한꺼번에 보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그의 시야에는 훈풍으로 가득해 진다.
인류 역사는 사건을 중심으로 `권력자`의 성취를 연대순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신의 입장에서는 `온유, 자비, 사랑`을 역사의 중심에 둔다. 이 두 가지는 정 반대의 개념이다. 종교는 우리에게 세계사적인 성공과는 반대의 것을 수행하라고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