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는 현재 자기들의 사회적 위치는 젊었을 때의 교육 정도에 비례한다고 생각한다. 즉, 부모들은 대학이란 자녀들의 안정된 미래를 위한 장기적인 투자의 큰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대학은 취업을 위한 자격증을 따는 곳이 됐고, 취업학생 수의 다소(多少)가 그 대학의 사회적 평가의 기준이 됐다. 그러나 요즘은 대학도 학생 수가 줄어듦에 따라 그럴 듯한 말로 학생들을 유치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학문 연구와 교육을 위한 기관이라는 원래의 사명에서 점차 벗어나 일종의 마케팅을 하는 학교 수가 증가하고 있다는 얘기다.
교실에서는 전체 학생들을 선생님께 향하게 해 두고 정신없이 일방적으로 주입만 시킨다. 학생들이 알려고 하는 것이 뭔지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시험에 합격하면 교육은 완성되고 교양인의 기초를 다졌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컴퓨터가 보편화됐다. 그러나 이것에 숙달되면 학생들의 사고방식은 일정한 틀에 들어가 버릴 수가 있다. 다양한 사고방식은 기대하기가 어려워진다. 가치관의 형성이나 창의적인 사고 활동과는 점점 더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컴퓨터란 단지 평면적이고 단순하게 상상의 세계를 그려낼 뿐이다. 우리는 그 세계를 마치 현실로 인식케 하는 사고를 주입시켜 버릴 위험성이 있다. 오늘날의 과학은 현실세계를 숫자나 도표, 그림 등으로 설명하지만 그것은 자연과 우주의 일부분만 나타낼 수 있다.
또 자연 과학자가 도표나 수치화된 학문만을 다루는 교육에 숙달된다면 나중에는 융통성과 사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인간의 미래 사회에서 요구되는 가장 바탕이 되는 분야는 인문학적 교양이다. 그 방향의 교양 교육을 강화해야만 비로소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그 사회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스스로 개선해 나갈 동력을 갖게 된다.
교육의 궁극적 목표는 각자가 자기 삶의 방식을 자기의 생각대로 개척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하는 것이다. 교육열이 높다는 것과 참다운 교육을 지향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교육에서는 철학이 중요하다. 교육에 철학이 없다면 학생들은 미래의 삶에서 피해를 당할 수 있다.
세상에서는 항상 어떤 종류이든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그 변화를 소화시켜 적응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아이들에게 토론을 통해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교육이 필요하다. 생각을 주고받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이것은 희망찬 미래를 위해서 본질적으로 중요하다. 암기 위주의 교육은 이것과는 멀다.
앞으로는 기술을 올바르게 다루는 교육이 중요하다. 기계공학이나 생명공학도 중요하지만 기계 기술 분야가 미학, 인문학, 예술, 철학분야 등과 결합하면 인간의 삶에 의미를 더 크게 부여할 수 있다.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 같아서 홀대를 받고 있는 순수 인문학이나 기초 과학 등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기계 기술 속에서도 인문학적인 요소를 적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디지털 기술에서 실제와 조작된 이미지의 구분이 어려울 때 어떻게 구분을 할 수 있겠는가? 미래에는 컴퓨터가 인류에게 해악을 끼칠 수도 있다. 어떻게 하면 도움을 받겠는가 등 이런 질문에 대해서도 인문학적으로 고민할 수 있는 사람을 키워야 한다.
학생들의 수업이해 능력을 배운 대로만 기술하게 하게 하는 시험은 인간을 기계 취급하는 것이다. 머지 않아 의사, 법률가 등 잘 나가는 직업이 후 순위가 되는 것을 목격할지도 모른다. 이때쯤에는 수능 성적을 달달 외워서 높이는 것이나 IQ, 부모의 연 소득 액수 등은 의미가 없어진다. 밝은 미래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전인적 학교 교육을 시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