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부모은중경`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여러 스님들과 함께 사위성 밖 남쪽으로 가다가 해골 무더기를 보시고는 오체투지(五體投地)하여 절을 하셨다. 이 모양을 본 아난존자가 “부처님은 삼계(三界)의 큰 스승이시고 사생(四生)의 자부(慈父)이신데, 어찌하여 해골더미에 예배 하시나이까?”하고 묻자 부처님은 이렇게 답변하셨다.
“이 한 더미 해골이 나의 전생(前生)의 조상도 되었을 것이요, 또 여러 대에 걸쳐 나의 부모도 되었을 것인즉 내가 예배하는 것이다. 아난아! 이 해골을 가지고 두 몫으로 나누어 보아라. 만일 남자의 백골이면 희고 무거울 것이오. 여자의 백골이면 검고 가벼울 것이다”
이에 아난존자가 “부처님이시여! 사람이 죽은 뒤에는 마찬가지 백골이옵거늘 어떻게 백골이 다르다고 하시나이까?”하고 다시 묻자, 부처님께서는 “여자는 살았을 적에 아들 딸 낳고 아기를 한번 낳을 적마다 서말, 서되의 피를 흘리며 여덟 섬 너말의 젖을 먹어야 하므로 백골이 검고 가벼우니라”하시고, 부모님의 열 가지 큰 은혜(父母十重大恩)-첫째 배 안에서 열 달 동안 길러낸 은혜, 둘째 낳으실 때 고통 받는 은혜, 셋째 젖먹이고 길러준 은혜, 넷째 마른자리 진자리 가려준 은혜, 다섯째 오줌똥 가려 주신 은혜, 여섯째 쓴 것은 삼키고 단 것은 뱉아 먹인 은혜, 일곱째 생명을 걸고 지켜주신 은혜, 여덟째 자식을 교육하여 사람답게 한 은혜, 아홉째 먼 길 가면 걱정하는 은혜, 열번째 끝까지 사랑으로 보살펴 주신 은혜를 하나하나 말씀 하신 후 “가사 어떤 사람이 왼 어깨에 아버지를 업고 오른 어깨에 어머니를 업고, 수미산을 백번 천번을 돌아서 가슴이 터져 뼈가 드러나고 뼈가 닳아서 골수가 흐른다 하더라도 오히려 부모의 은혜를 갚을 수 없느니라”고 하셨다. 이는 부모님의 은혜가 얼마나 지중한가를 다시금 일깨워 주는 말씀으로써 부모님의 은혜는 실로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다고 하겠으며, 그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을 것이다.
공자님께서도 “효는 백행의 근본이며 참다운 효란 부모의 몸과 입을 잘 받들어야 함은 물론이요, 부모의 마음과 뜻을 잘 받들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부모에 대한 효도는 살아 계시는 동안 음식을 잘 해드리고 용돈을 넉넉히 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그것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긴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모님의 뜻을 잘 살펴서 그 뜻에 맞도록 행동하는 것이 바람직한 효도의 길이라고 본다.
옛부터 우리 조상들은 웃어른을 공경하고 부모님을 지극정성으로 섬기는 경로효친사상을 윤리의 근본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이웃나라로부터 동방예의지국이란 칭송을 받았으며, 공자님 같은 분은 “동방의 예의 바른 나라인 동이(東夷)에서 살고 싶다”고 까지 했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미풍양속은 해방 이후 물릴 듯 밀려오는 서구문화를 주체적으로 수용하지 못한 영향도 없지 않지만, 우리 사회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대가족중심사회에서 핵가족중심사회로 급격하게 이행되는 과정에서 점차 빛을 잃어가고 있으니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식은 부모의 행동을 보며 자란다. 그러므로 내가 부모에게 불효하면 내 자식 또한 불효하기 마련이다. 이는 한 치의 착오도 없는 인과의 법칙이다. 그러므로 내가 내 자식에게 효도를 바라거든 내가 먼저 부모에게 효의 본(本)을 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