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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등록일 2012-08-10 21:44 게재일 2012-08-1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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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락 경주청하요양병원장

사려 깊은 생각은 조용한 마음이 지속돼 내면을 안착시킬 때 비로소 가능하다. 평온하게 사람을 대하면 그는 자기 주위마저 평화롭게 만든다. 그러나 일상의 삶은 불안의 연속이다. 조용할 수가 없다. 그로 인해 심란할 때 사람들의 마음은 흔들린다. 사방에서 일어나는 여러 여건들이 우리의 마음에 풍파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한 모든 인간은 평화를 바라면서도 마음속에는 탐욕과 증오심, 미움, 시기심 등으로 화평한 분위기를 만들지 못한다. 세상은 우리에게 원한과 대결을 계속 부추긴다. 그래서 전쟁에서 승리하면 영웅시하고, 세상일을 처리함에 있어서도 투사정신을 부추기고 있다. 과격함을 싫어하고, 평화를 지향하면 나약한 사람으로 몰아 부친다.

인류사에서 보면 평화를 주창하던 사람들은 대부분이 죽임을 당하거나, 말로가 비참했다. 흑인의 자유와 인권을 위한 링컨, 히틀러 시대에 평화를 위해 노력한 폰 회퍼, 흑인의 비참한 현실의 개선을 위해 노력한 루터 킹 목사 등이 그 대표적인 사람들이다. 이와 같이 평화는 많은 대가를 치루면서 조금씩 자라왔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전쟁이 없어도 가난하거나 여러 질병이 퍼져있는 곳, 독재정치를 하는 곳은 평화가 없다. 사상 대결이 있거나, 끝없이 내분이 일어나는 곳이면 평화는 떠나 버린다. 너무 많이 조용한 것도 좋지 않다. 억압된 분위기가 여기에 속한다. 억눌려서 조용하기만 하고 논쟁이 없다면, 그곳은 공동묘지와 같은 곳일 것이다.

그럼 평화로운 곳이란 어떤 장소일까? 그곳은 현제명의 노래가사에서 볼 수 있다. 인생의 험한 바다에서 노를 저어 험한 물결을 넘어가서야 비로소 발견하는 산천경개 좋은 언덕이다. 갈등으로 소란을 일으키는 곳이 아니다. 문제점이 있을 때 화합해 공동으로 노력하는 곳이다. 돛단배가 질풍같이 부는 폭풍을 거슬러 삼킬듯한 파도를 넘어 도달한, 자유 평등 행복이 가득한 곳이다. 그곳에 도달하려면 온갖 험난을 이겨 나가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가슴 속에 이런 긍정적인 각오가 넘쳐날 때 바로 거기에 평화가 깃든다.

평화는 더 좋고, 더 정의롭고, 더 안전한 삶이 있는 곳에 있다. 단점과 갈등으로 꽉 찬 가슴을 가진 인간이 삶을 지배하면 평화는 없다. 무질서, 질병, 억압, 인권 말살, 사람차별이 있는 곳에는 평화는 깃들지 않는다. 외면해 버린다. 있다면 염려와 두려움으로 가득한 가짜 평화일 뿐이다. 지상의 평화로운 곳은 인간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이는 하늘로부터 온다. 인간의 노력에는 한계가 있다.

평화를 위해서는 평화의 절대 가치를 선포하는 종교 수준의 확신이 필요하다. 종교는 인간의 마지막 보루다. 종교는 인류의 미래를 예시해 준다. 생명을 지키고 사랑을 실천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

종교는 도움이 필요한 약자의 편에 서야 한다. 가진 자의 논리를 따라가서는 안 된다. 종교는 자칫 잘못하면 가진자, 권력자의 성장 지상주의 논리에 함몰돼 버릴 수가 있다. 그러면 평화는 자꾸만 멀어져 버린다. 종교가 세상의 가치를 따라간다면 그것은 존재에서 마침표를 찍는 것과 같다. 지금 종교는 물질축복으로 개인의 욕망을 부추기는 경우가 많다. 이는 악행일까, 선행일까?

평화를 위해서는 여러 방면에서 인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제일 크게 요구되는 것은 가난에서 해방시켜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서는 사회의 모든 조직을 가동해야 한다. 외국인 근로자도 여기에 포함된다.

또 한 가지는 무지와 어리석음에서 탈출시켜야 한다. 그래서 사회의 모든 소식을 알게 해 주어야 한다.

민주화가 뭔지, 삶의 지향점은 어디인지를 토론해 보아야 한다. 평화를 지향하는 사람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하는 자들이다. 즉 남을 위해 시간을 할애하는 사람들이다. 성실히 일하는 자들은 모두 여기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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