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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실정

등록일 2012-05-04 21:12 게재일 2012-05-04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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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락 경주청하요양병원장

근래에는 여러 학교에서 학생들이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는 소식을 자주 들었다. 그들은 폭행을 당하거나, 또는 많은 학습량에 심리적 압박을 감당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육체는 녹초가 돼 버리고 정신적인 면도 허물어져 내리는 것 같았을 것이다.

지금의 학교에서는 오로지 지식축적만을 강조한다. 달달 많이 외우면 된다. 회사의 직원 채용에도 인격의 성숙도나 인간성, 그리고 학문의 전공분야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현실사회에서는 학벌이 제일 크게 작용한다. 그래서 건강하게 커야할 청소년이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혹사에 시달리고 있다. 게다가 학교에서 놓친 부분은 학원 등 사교육으로 메워 나간다.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정도이다. 때로는 고뇌 때문에 폭행으로 빠져 드는 것 같다. 안타깝다.

자본주의 경제 논리 속에 빠져든 교육은 산업화되고 있다. 학생들은 획일적인 교육으로 인해 상품화 되고 있다. 학교라는 공장에서는 매우 능률적으로 `생산(배출)`시키려는 것 같다. 그래서 단지 `우수 상품`만을 생산하기위해 최선을 다하는 `생산활동`으로 변질되고 있다.

그렇게 되면 학교는 공단이나 거대 시장(市場)이 되고 학생은 모두 판매대에 진열할 상품이 될 것이다. 좋은 상품이란 보다 높은 학점과 좋은 직장에 취업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스트레스로 인해 다른 것은 아무것도 생각할 여유가 없을 정도다. 오로지 공부만 강요당한다. 그들은 삶의 목표와 방향을 모른다. 다만 사회에 이끌리면서 뚜벅뚜벅 따라갈 뿐이다. 때로는 폭행으로 일탈해 버린다. 죽음까지도 생각할 정도로 무방비 상황인 모양이다.

본래 교육이란 인간성을 키우는 전인적인 교육, 즉 지식과 인격을 숙성시키고, 적극적으로 자기 개발을 하도록 도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학교의 존재이유는 `앞날에 이 사회를 이끌어 나갈 인격체로 학생을 훈련시키는 장소`라는 것에 있다. 인간을 물건 다루듯이 한다는 것은 인간을 위한 교육이라 할 수 없다.

학교란 자기 주변에 대한 이해는 물론이고, 필요하다면 새로운 생각이나 새로이 발생하는 분야 등을 기꺼이 받아드리는 법을 배우는 곳이다. 예를 들어 만약 사회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면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토대로 국가적 국제적 그리고 지역적 문제를,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곳이다.

교육 분야는 단순히 사실을 알아가는 것, 또는 그냥 잘 외우기를 익히는 것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모든 현상의 기초를 알게 해 그것이 진행해 가는 방향과 방법을 알 수 있도록 능력을 키우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인간은 컴퓨터와 같은 기계적인 기능이외에도 마음이라는 소프트웨어가 있고 바로 이 마음이란 것이 그를 인간이게 한다.

그러나 학생들은 노예처럼 시키는 대로 배운다. 똑같은 독도인데도 우리나라와 일본은 서로 다른 입장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두 나라 중 어느 한 나라(일본)는 자기 것이 아니다. 동일한 사실도 당사국의 입장에 따라 교육 내용이 다르게 나타난다. 진실은 하나인데도 말이다. 그러나 학생들은 그런 교육을 그대로 받아드린다.

앞으로는 나만의 이기적인 세계에서는 살 수 없다. 서로를 인정하는 조화된 세상이 될 것이다. 현재의 주변과는 다른 세상일 것이다. 이때 학생들은 복잡하게 얽힌 세상에서 그 구조를 잘 이해해야 비로소 좀 더 성숙하게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지식을 가르치는 것만을 교육이라 하지 않는다. 학교생활에서는 학생을 보호하면서 문제에 직면해 결정을 내릴 때, 지혜롭게 통찰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키워 줘야 한다. 학교에서는 지식의 전달도 중요하지만 인격을 위한 지혜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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