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행복의 위치

등록일 2012-06-08 21:25 게재일 2012-06-08 22면
스크랩버튼
▲ 이원락 경주청하요양병원장

행복해 지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자기의 기원을 신에게 아뢰기도 하고 어떤 이는 자신을 침묵 속에 놓아두고 명상에 잠기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큰 바위 같은 위압적인 형체물에 빌기도 하면서 소원이 이뤄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을 찾아 온갖 곳을 기웃거려 본다.

그러나 우리는 외부의 힘을 빌리기보다는 스스로가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 또 만들 수 있다. 행복을 위해서는 긍정하고 감사하는 마음의 자세가 중요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불안과 우려의 마음으로 거부하거나 부정하면서, 불행을 만드는 대장장이가 돼 버린다.

행복은 누구에게나 금방 왔다가 속히 사라지는 특성이 있다. 그럼 누가 더 크고 오래 지속되는 행복을 느낄까? 어떤 사실에서 기쁨 등을 많이 느낄수록 그는 더 크게 행복을 느낄 수 있다.

행복의 반대말은 `없음`이다. 사랑 없음, 의미가 없음, 웃음이나 희망이 없음, 친구, 의욕, 이웃 없음, 용서 없음 등 불행이란 모두 `없음`으로 표현될 수 있다. 반대로 행복과 동행하는 단어는 `기쁨, 감사` 등이다.

생활 중에서 이런 감사를 오래 지속하려면, 뭣보다도 나뿐 아니라 상대의 평범함을 인정해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려면 사랑을 키우는 가정교육이 아주 큰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행복을 위해 똑똑하고 성공한 자가 되려고 기도나 노력을 하는 것은 환상이다.

가정은 행복의 생산 공장이다. 모든 이는 그의 가정이 좀 더 행복하기를 원한다. 그렇게 되려면 식구들에게 기대를 줄이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긍정의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이것을 받아드리면 기쁨이 가능하다.

우리는 가정생활에서 부부가 서로의 평범함을 받아드리지 않으려 하는 경우가 많다. 남보다 더 출세하거나 돈을 많이 벌기를 바란다. 이런 곳에는 긍정이란 것이 없다. 자식도 평범하게 받아드려야 한다. 나의 행복은 너의 삶 속에 있다. 아내는 눈물짓는데 남편은 콧노래가 가능할까?

때로는 우울이나 좌절, 고뇌 등으로 힘들어서 엉엉 울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감사는 선택이다. 감사할 일에 원망하기도 하고, 반대로 원망할 일인데도 감사하는 이가 있다.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행복은 감사 그 너머에 있다. `더 이상 못 참겠다`의 너머에, 그리고 `끝장내야 겠다`와 `죽어도 용서를 못하겠다`를 지나가야 행복과 감사가 있다.

행복, 절대적 행복은 없다. 그것은 하늘나라에 가야만 느낄 수 있다. 세상의 행복은 상대적 행복뿐이다. 기준이 없다. 이런 것에는 종교가 선택의 능력을 키워 준다. 많은 재산으로 불행해 하기도, 적은 재산으로 행복을 느낄 수도 있다.

신비를 느끼는 순간에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장작을 쪼개어 보라. 수많은 나이테가 나타나고 거기서 시간의 농축을 느껴 볼 수 있다. 커다란 돌을 들어 보라. 지렁이 등 벌레가 우글거린다. 작은 벌레들의 생존 방법이나 나이테를 보면서 우리는 신비를 느끼고 감사와 행복을 품게 된다.

묵상이나 깊은 생각을 하면 그때마다 감사한 느낌을 갖게 된다. 하루에 머리털이 자라는 것을 모두 이으면 35m, 심장은 쉬지 않고 1년에 270만℃를 뿜어내고 눈꺼풀은 520만번 깜박인다. 그리고 해는 수십억 년을 똑 같이 떠오르는 것 등에서도 생명을 받음에 대한 감사와 신비 그리고 행복감을 갖게 된다.

생각이 깨어 있으면 보이는 모든 것이 기적으로 가득 차 있다. 행복의 현주소는 바로 이곳이다. 이 세상이 신비와 기적으로 가득 차 있음을 알면 행복을 느낀다. 삶이 기도이고 생각이 기도일 때 그리고 기쁨과 신비를 느낄 때 행복은 그곳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마음산책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