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에 인간은 생활 전반에 걸쳐서 획기적인 변화를 겪기 시작했다. 증기기관의 발명, 프랑스 혁명, 가톨릭교의 변화, 시계의 발명 등으로 그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됐다. 사리판단을 내리는 새로운 가치는 `나(我)`로부터 출발하기 시작했고 가톨릭 교리의 자리에는 돈과 시간이 들어섰다. 사람은 자기의 시간을 스스로 통제해서 자율성을 점차 갖게 됐다.
돈은 모든 것의 가치를 결정하는 척도가 됐고 최근에는 거의 모든 기술들이 세계화됐다. 그에 따라 재화의 흐름은 무서울 정도로 빨라졌다. 조금 전 일어난 미국의 사건이 당일, 세계의 곳곳에 영향을 준다. 돈은 규모가 커져서 세계 속으로 아주 잘 흘러 다닌다. 그에 따라 돈을 쓰는 시간단위는 짧아진다. 경제적 성공을 위해서는 빠른 템포가 제일 중요한 열쇠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로는 활발한 교역으로 돈이 모이는 곳에서는 경제 중심지가 만들어 졌다. 따라서 도시의 모형도 빠른 템포로 변해 갔다. 우리가 자랐던 거리는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해 있다. 산업화시대로 들어가면서, 우리들은 더 많은 재화를 위해 성과에만 치중한다. 현대는 시간에 쫓기는 `속도 전쟁의 시대`가 돼 버렸다.
돈이 들더라도 새로운 것만 찾는 경향은 갈수록 많아진다. 이와 더불어 사회와 문화의 변화는 더욱 심하다. 그 예로 1714년에 처음 만든 타자기의 일반인에게 보급되기 까지는 150년이 걸렸는데 인터넷은 이용자에서 5천만 번째 이용이 4년 정도 짧게 걸릴 뿐이다.
계속 시간에 쫓기는 사회에서는 뿌리 깊은 진정한 변화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끝 모를 가속화는 개별기업에 높은 압력을 행사한다. 상대 기업에 뒤쳐저 버리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으로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경제`라는 의미의 장기적 전략을 세우는 것은 주저된다. 그래서 인간과 자연을 착취하면서 계속 혹사시키는 길밖에 없다. 지금과 같이 자원을 무자비하게 다루면 앞으로 수십 년 안에 수백만 년간 유지된 기상은 변해 버릴 것이다.
정치문제들은 실시간으로 논평을 해야 한다. 차분히 앉아서 평론을 내릴 여유가 없다. 미국의 금융위기에 대한 정부대책은 빠른 시간 내에 여론의 압박아래서 결정해야 한다. 전 세계가 그물같이 얽히면서 빨라지기만 하니까 오늘날은 큰 그림을 그릴 여력이 없다. 그때그때 가장 큰 불길만 꺼가는 형편이다.
가정에서도 성과유무로 상대 능력 정도를 판결한다. 성공 여부로 애정의 양을 측정하고 평가한다. 부정적인 결과는 부부관계라도 청산을 모색한다. 현대의 개인은 깊은 불안감에 시달린다. 이런 불안을 없애려고 작업을 더 빠르게 처리하고 쓸모없는 대기 시간을 줄이려 한다.
현대로 이어지는 급박한 느낌은 종교의 위안마저 놓쳐버리게 한다. 그래서 영원함에 대해서는 일부러 외면하고 불과 백년 이내라는 우리의 짧은 인생에만 집착한다. 예전에는 세상의 지속을 창조에서 마지막 심판의 날까지로 보았으나 근래에는 출생에서 죽음까지로 줄어들었다.
그러므로 이런 급변하는 시대에서 정치권력이나 종교 등은 사회 구성원을 잡아매는 구속력으로서의 힘은 약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돈과 시간이 보편적인 가치 기준이 되고 있다. 오직 이성의 힘에 전적으로 의존하며 종교란 인간이 만든 작품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그래서 세상은 세속화로 바뀌고 전통은 개인화를 통해 쪼개져 해체돼 버린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인생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는 사실이다. 치부하거나 성공으로는 그의 전체인생이 좋게 꾸며질 수 없는 것이다. 외형은 좋아도 내부는 허무할 수 있다.
그래서 기성종교는 빠른 시대 변화에 대해 가속화를 막는 문화적 걸림돌 노릇을 톡톡히 해 왔다. 종교는 언제나 인간의 가치를 일깨우며 인간이 만든 발전 안에는 항상 위험이 내장돼 있음을 지적해 왔다. 우리는 이 점에 대해 머물러 깊이 생각을 해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