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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등록일 2012-07-06 21:50 게재일 2012-07-06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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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락 경주 청하요양병원장

`희생 나눔 봉사`라는 교훈을 가진 어느 장애인 학교. 교회에서 지도층으로 봉사하고 있는 노련한 교장이 운영하는 학교에서 천지를 뒤흔드는 사건이 영화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십자가 배지를 달고 음흉한 생각을 가진 교장, 그의 악행을 도운 직원들, 뒷돈 받은 경찰, 전관예우의 변호사, 판사의 왜곡된 판결, 이 모두는 함께 어울려서 한 편의 영화를 성공적으로 만들어 냈다. 선(善)이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모순과 부조리로 꽉 채워진 영화였다.

애플의 창업주, 세계적인 기업가, 굴곡 많은 인생을 살았던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저서는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이다. 그는 시리아 출신의 아버지가 결혼을 하지 않고 동거 중에 태어났다. 그리고는 그는 양부모 밑에서 자라나는 모순과 부조리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태어나면서부터 일생간 이어진다.

사춘기에 굶주린 애기의 사진을 잡지에서 본 후 모순되고 불공평한 세상으로 인식해 종교를 버리는 것에서 뒤틀림은 시작된다. 고등학교 때 여학생과 동거해 23세에 애기를 출산했으나 그 애기를 버렸다. 이것은 나중에 친자로 확인됨으로서 밝혀지게 된 것이다. 자기의 성장과정을 자식에게도 똑 같은 형태로 물려준 것이다.

그는 장성 후 여동생과 함께 아버지를 찾았는데 직장 근처의 식당 주인이었다. 아버지임을 확인한 후 그는 다시는 찾지 않았단다.

그는 자기들이 경영하는 업체의 정보를 빼 갔다고 생각해 경쟁업체에 대한 복수심으로 꽉 차 있었다. 상표가 깨물려 일부가 떨어져 버린 사과는 무엇을 뜻하는가? 모순과 부조리에 물려버린 자신의 자화상은 아닐까? 이럴 때는 용서가 유일한 해결법이다. 강철로 된 악의 고리를 녹여버리는 용광로이다. 용서를 하면 무엇보다도 자기의 마음이 편해진다. 마음속에 꽉 채워져 있던 복수심이 눈이 녹듯 녹아내린다. 자신이 혜택을 본다. 이로서 자기의 매듭은 풀렸고, 이제는 그 매듭을 상대에게 떠넘기게 된다.

세상은 공평해야 된다. 공산당과 같이 획일화된 평등이 아니라 능력에 따른 공평이 있어야 한다. 사회에서 한 쪽으로 쏠림이 있다든지 약육강식, 승자 독식만이 있다면 공평은 꼬리를 감춰 버리고 이기는 자의 전횡이 판을 칠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지옥 같다`고 한다.

우리는 자주 마음으로 `죽여 버리고 싶다`는 등의 살인을 꿈꾼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마음에서 나온다. 마음이 조종하는 데로 몸은 움직인다. 그러나 법은 행동을 다스릴 뿐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다. 마음으로는 굉장히 흉폭한 살인을 했을지라도 행동화하지 않으면 그는 죄인이 아니다. 이때는 `죽일 놈, 보새끼` 등의 욕을 뱉을 뿐이다.

욕은 `화내다`라고도 표현한다. 화는 火자(字)로 표현되며 불을 의미한다. 불꽃과 같이 널름거리면서 상대를 태워 버리려 한다. 이런 것은 지옥에서나 가능하다. 화는 화를 불러내고 그래서 악순환이 계속된다. 그들은 잘못된 일이 발생하면 누구의 잘못인가를 따진다. 그리고는 `너 잘못이야`하면서 남의 탓으로 돌린다. 침소봉대, 점점 커진다. 이런 것에 우리 모두는 중독되어 있다.

용서는 긴 여행이다. 가슴속에 오해가 부글부글 끓어서 하기 어렵다. 어떤 이는 용서까지 가는데 10년 이상이 걸렸다고 한다. 용서는 자신에게 주는 최상의 선물이다. 소송할 일이 있어도 최선을 다해 합의하는 것이 옳다. 다행히도 많은 사람들은 시련을 받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평범하게 살아간다.

그럼 이럴 때에도 용서는 잘 한 것일까? 나에게 피해를 준 사람이 10년 징역을 받게 됐지만 내가 탄원하여 5년으로 감형됐다. 그는 풀려 난지 2년 만에 살인을 하여 다시 구속됐다. 그럼 나의 탄원서는 범죄를 위한 시간을 만드는데 도움을 주지는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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