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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한 인생

등록일 2012-10-17 21:10 게재일 2012-10-1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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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석준 수필가

내가 20대였던 40년 전만 해도 130호가 살던 우리 마을에 회갑을 넘긴 노인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고, 부모가 회갑 때까지 살아 계시면 큰 경사로 알고, 온 동네 사람들을 초청하여 잔치를 베풀고, 함께 축하해 마지않았다. 그러나 요즘은 `인생은 육십부터`, `육십은 청춘`이란 말이 있듯이, 회갑나이는 노인 축에 끼지도 못한다. 따라서 회갑연을 하는 사람도 찾아보기 어렵고, 그 대신 칠순잔치를 많이 하고 있으니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해방 직 후 우리나라 사람의 평균 수명은 50살을 겨우 넘었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남자의 평균 수명은 76.54세, 여자의 평균 수명은 83.29세라고 한다. 여자가 남자보다 7년이나 오래 사는 데 대해 전문가들은 남자가 여자보다 사회생활이 길고, 경쟁이 심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며, 또한 여자가 남자보다 스트레스 대처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남자의 경우는 괴로워도 참는 경우가 많아 스트레스가 쌓이게 되고, 또 이를 해결하기 위해 흡연이나 과음을 하지만 여자의 경우 괴로우면 울기도 하고, 맘껏 표현해 스트레스를 풀기 때문에 오래 산다는 것이다.

생명공학자들은 인간의 건강과 수명을 연장하기 위하여 밤잠을 설쳐가며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이미 1953년 왓슨에 의해 DAN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하였고, 1997년 영국 에딘버러의 로슬린 연구소에서 복제양 돌리를 탄생시켰으며, 2003년 유전자의 비밀을 밝히는 인체 게놈프로젝트를 완성하여, 인간의 의도대로 유전자를 조작해 각종 질병의 치료는 물론 대물림되는 체질마저도 바꿀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의학자들은 향 후 5~10년 이내에 현대의학으로서는 해결하지 못하는 암이나 에이즈를 완전 정복하고, 20년 이내에는 인간의 수명을 130세까지 연장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의학이나 유전공학이 아무리 발전한다 하더라도 인간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는 없다. 태어나는 자는 반드시 죽는 것(生者必滅)이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지난 가을 친구 몇 명과 함께 남산 등산을 갔다가 팔각정에서 10년 만에 한 동기생을 만났는데, 그 동기생이 대뜸 한다는 소리가 “야, 니 와 이리 늙었노?”였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늙어가는 것은 잘 모른다. 남은 늙어도 자기는 안 늙는다고 생각하고 있다. 친구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보아야 하는데, 친구는 늙어도 자신은 안늙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착각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 인간이다.

한국인의 사망률 1위는 각종 암으로 인한 사망(26.3%)이고, 2위는 뇌혈관질환으로 인한 사망(13.9%)이며, 3위는 급성심근색으로 인한 사망(7.3%)이라고 한다. 늘그막에 암이나 뇌출혈로 쓰러진다면 본인의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간병하는 가족들이 겪는 고통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노인들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한결같이 “잠자듯이 죽는 것”이라고 대답한다고 한다. 그러나 잠자듯이 편안하게 죽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50대 중반 이후 종교를 찾는 경향이 부쩍 늘어난다고 하는데, 그 이유를 심리학자은 `마음의 평안` 또는 `사후에 대한 불안감`때문인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어느 철학자가 “인간은 삶이 두려워 사회를 만들고, 죽음이 두려워 종교를 만들었다”고 말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죽음이 불안으로 다가오는 것은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의 한계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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