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부터 우리 조상들은 매화·난초·국화·대나무를 사군자라 하여, 고결한 군자의 인품에 비유하여 시를 짓거나 그림을 남겼다. 한국 시문학의 거장 서정주님도`국화 옆에서`란 시에서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까지 수많은 인고 세월이 있었음을 노래했지만, 한 송이 국화꽃은 수많은 인연들이 모인 결정체임을 간과해서도 안된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태양의 빛과 뿌리로부터 올라오는 수분과 영양분이 필요하다. 흙 속에 수분이 있기 위해서는 비가 자주 와줘야 하며, 비가 오려면 구름이 필요하고, 그 구름은 바닷물, 시냇물이 태양의 열로 수중기가 되어 다시 구름이 된 것이다. 이렇게 국화가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태양·물·구름이라고 하는 무수한 인연의 결합에 의해 우리 눈앞에 한 송이의 국화꽃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신라의 의상 스님은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진성은 참으로 깊고 지극히 미묘해(眞性甚深極微妙)/자성을 지키지 않고 연(緣)을 따라 이루더라(不守自性隨緣成)/하나 안에 일체 있고 일체 안에 하나 있으니(一中一切多中一)/하나가 곧 일체요 일체가 곧 하나일세(一卽一切多卽一)/한 티끌 그 가운데 시방세계 머금었고(一微塵中含十方)/일체의 티끌 속도 또한 역시 그러해라(一切塵中亦如是)”
사면이 거울로 된 방에 촛불을 비추면 촛불이 수없이 비춰진다. 그 방안에 수정구슬을 가져다 놓으면 그 수정공 안에 무수히 많은 촛불이 다 들어가 비춰진다. 옆에 수정구슬을 또 가져다 놓으면, 한 수정구슬 속에 있는 무한대의 촛불이 다른 수정구슬에 담기고, 이것이 다시 다른 수정구슬에 담긴다. 이 순간 중중무진(重重無盡)의 촛불이 수정구슬 안에서 반짝이며, 반사되는 것과 반사하는 것의 구분이 사라진다.
이렇듯, 내 몸 안에 있는 체세포는 100조개의 세포 가운데 하나이지만 그를 복제하면 온전한 나, 곧 나와 생김새는 물론이거니와 목소리와 성격·지능까지 닮은 또 하나의 사람이 만들어진다. 시작도 끝도 없는 우주도 한 티끌이 대폭발(big bang)을 해서 만들어졌다. 우주가 한 원자에 압축돼 있고, 우주의 구조와 원자의 구조가 상동성(相同性)을 갖기에, 천체물리학자들은 원자의 구조를 연구해 우주의 비밀을 해명하려 한다. 전자가속기를 이용해 원자 안의 작은 미립자에 대해 새로운 사실이 추가되면 우주의 비밀이 한 꺼풀 벗겨지고, 허블 망원경을 통해 우주의 비밀이 밝혀지면 원자의 실체를 밝히는 연구도 한 걸음 진전된다. 망망한 우주가 곧 하나의 원자이고, 하나의 원자가 곧 망망한 우주이다. 의상 스님의 말대로 하나 중에 일체가 있고, 일체 중에 하나가 있다(一中一切多中一).
하나는 일체와 관련지을 때 하나이다. 하나에 열이 있고, 인다라망의 구슬처럼 하나에 일체가 담겨 있으니 하나가 전체이다. 우주 삼라만상의 무한한 조화가 연기 아닌 것이 없으니 전체가 곧 하나이다. 우주 삼라만상 일체가 인다라망의 구슬처럼 서로 비추고, 조건이 되고, 관계를 하고 있으니 일체가 하나이다.
부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하나임을 알리시려고 일찍이 사바세계에 오셨다. 우리 모두가 부처님의 참 말씀을 모르고, 너와 내가 하나 아닌 둘이라는 잘못된 생각에 인류의 역사는 불행한 것이었다. 둘이라는 잘못된 생각 때문에 우리는 항상 번뇌와 망상 속에서 헤매고 있는 것이며, 불행이 따르고 있는 것이다. 실은 행복이라는 말도 불행의 상대적인 의미이기 때문에, 불행이 없다면 행복이라는 용어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차안이 있기 때문에 피안이라는 말도 필요한 것처럼, 실은 모두가 하나임을 사무치게 하는 아는 삶에는 언제나 행복과 상락아정(常我淨)의 열반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