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근대 이후 한국에서 독서의 사유를 처음으로 전개했던 이는 우리가 이른바 해외문학파로 지칭하는 독문학자 김진섭이었다. 물론 조선시대에 학자로서 책과 독서에 대해 논했던 사람은 수도 없이 많지만, 근대적인 의미에서 독서와 서적, 서재와 장서에 대해 본격적으로 말했던 것은 그가 최초였다. 그는 서적의 취미와 독서의 즐거움을 예찬하면서, 독서를 중심으로 한 사유를 자신의 수필에 담아냈다.#2 세밑에는 너무 진지한 책보다는 가벼운 책이 좋다. 2020년에 작고한 존 르 카레의 스파이 소설 몇 권이라면 추운 겨울밤을 지내기 적절할 것이다. 그가 쓴 대부분의 소설은 영화화 돼 있어서 영화와 함께 읽어보기 좋다. 첩보스릴러의 고전이 된 ‘추운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나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등을 추천한다.한 해가 저물고, 다음 해를 맞이할 무렵이 되면, 지난 일 년 사람들과의 만남을 정리하듯, 그간 읽지 못해 아쉬운 책들을 떠올려보곤 한다. 늘 만나고 싶었다가 겨우 시간을 내어 만난 반가운 책들도 있지만, 도서관에서 진작에 빌려두었지만 결국 보지 못하고 기한이 되어 반납한 책들도 있다. 어떤 책들은 인터넷 서점 장바구니에 몇 번이나 넣었다가 끝내 주문하지 못하고 있다가, 이번 새해에는 꼭 읽어야지, 하며 다시 찾아 넣는 책들도 있다. 책이란 문자나 이미지로 만들어진 정보를 담고 있는 물성을 가진 미디어에 불과한데, 가끔은 그것이 사람 사이의 인연처럼 느껴진다. 한 해가 저물 때가 되면, 못다 한 인연의 끈들이 새삼스레 나를 불러 세운다. 세밑의 독서는 늘 그렇게 아쉬웠던 인연을 끄집어낸다.여름과 겨울의 차이가 뚜렷한 나라에 살다 보니, 계절 감각이란 것을 잊고 살기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어느 사이인가 우리는 계절에 점차 둔해지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세밑이라는 것이 어느 때부터 특별한 시기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인간의 관계가 계절을 따라 운행하지 않게 된 현상과 관련되어 있다. 빼곡한 수첩에 연락처를 옮겨적던 시절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예전보다 확실히 망년회나 신년회가 줄어든 지금을 보면, 우리의 인간관계들은 확실히 예전보다 계절을 타지 않게 되었다. 지금 우리의 인간 관계는 스마트폰의 단톡방 속에, 인스타나 페이스북의 팔로우 속에 들어 있어서, 그 유통기한은 지나치게 길거나, 혹은 지나치게 짧다. 세밑이라고 특별할 것은 없다. 마찬가지로, 한 해가 저물 무렵, 한 해의 일들을 떠올리고 못다 한 일들을 아쉬워하거나 새로운 일들에 대한 희망을 갖는 일도 조금 새삼스러워졌다. 하물며, 독서라면, 더욱 그렇다.하지만 그럼에도 이번 세밑에는 만나지 못해 아쉬운 인연을 떠올리듯, 읽지 못해 아쉬운 책들을 일부러라도 떠올리려 하고 있다. 우리가 거스르려 해도 우리는 1년을 주기로 누군가와 만나고 헤어지며 살아가고 있고, 우리의 생각과 책읽기도 1년을 주기로 멈추고 나아가기를 반복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다가올 새해에는 조금 더 좋은 책을 읽고, 조금이라도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지, 타인에 대해 관심을 갖기 어려운 시대지만, 그러니까 더욱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한다.세밑의 독서기는 이렇게 늘 얼마간의 반성과 얼마간의 기대와 함께 한다. 지나간 한 해에 대한 아쉬움을 채우기 위해 그간 읽지 못했던 철학서들과 전공이론서를 잔뜩 빌려두고서는, 채 얼마 보지 못하고, 결국 냉전시대 독일에서 활동한 스파이의 활동을 다룬 소설을 읽고 있다.지금 내 앞에 놓인 책들은 문자를 잔뜩 담고 있는 물건이 아니라, 내가 언젠가 인연을 맺었던 사람과 같다. 나라는 존재가 내가 만났던 인연의 총합이듯, 내가 읽었던 책들의 총합이다. 하나, 하나의 점들이 이루고 있는 궤적을 따라 나의 사유가, 나의 존재가 비로소 자리 잡는 것이 아닌가. 가끔은 아쉬운 인연이 있듯, 아쉬운 책들도 있다. 그것이 삶이 아닌가.따뜻한 차를 한 잔 마시면서 늘 그렇듯 이번에는 읽어야지 하며, 아쉬웠던 책들을 주문하고 나서, 읽던 책들을 마저 읽는다. 독서에서 인생을 찾고, 철학을 말했던 이들처럼 거창한 독서의 사유는 아니지만, 동경과 환상, 아쉬움과 만남을 겪으며, 세밑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간다. 삶 역시 그렇게 흘러간다./송민호 홍익대 교수
2022-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