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이 1925년 낸 유일한 시집 ‘진달래꽃’표지.
시는 노래한다. 저만치서, 계속해서. 노래하고 있었다, 저만치서 계속해서, 언제까지나.시란 본디 언어의 일정한 나열에 음률을 붙여 노래하기 위한 목적의 것이었다. 조금 과장을 덧붙인다면, 음률을 붙이기 위해 정형화된 시는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많은 가수들의 노래 가사나 마찬가지였던 것이 아닐까. 음악이 먼저였을지, 언어의 나열이 먼저였을지, 그것은 알기 어렵지만 말이다. 음률에 신경써 언어를 나열하려면, 단어나 음절의 개수에도 신경 써야 하고 반복에서 오는 맺음과 이어짐에도 신경 써야 한다. 이른바 두운이나 각운이다. 학생 시절, 음수율이니 음보율이니 그것이 노래인지도 모르고 배웠던 시의 운율은 사실 노래였다. 그것을 알고서 나는 새삼스러운 느낌이 들었다.그러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형식적 규칙이 있는 시들은 대개 누군가 거기에 음률을 붙여 노래를 불렀던 것들이다. 향가니, 고려가요니, 악장이니 시조니, 하는 것이 모두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나 어딘가에 새겨진 문자의 특별한 나열은 기록으로 남아 있지만, 거기에 깃들어 있던 누군가의 노래는 휘발되어 사라져 버리고 만다. 그러면, 우리에게 남아 있는 언어는 노래의 흔적이다. 지금은 노래를 목 놓아 불렀던 그 사람의 그 노래를 부를 수밖에 없던 절박한 마음이나 악기의 소리나 목소리 역시 사라져 버린 것이다. 마치 오랫동안 어떤 집에 살았던 누군가 떠나간 다음에 그를 모르는 다른 사람이 그가 남겼던 흔적을 통해서 그의 삶의 활동들을 짐작해보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리가 시를 읽으며, 그 노래를 떠올리는 것은.노래라는 제약에서 벗어나 언어의 자유를 획득한 자유시의 이념이 제기되고 그것이 일반화된 지금, 시는 읽는 것이다. 서가에서 시집을 골라 펼치고 눈으로 읽는다. 유독 세계를 받아들이는 감수성이나 그것을 포착해내는 언어의 해상도가 뛰어난 시인이 만들어낸 놀라운 언어의 연결은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한다. 물론 자유시를 읽는 것은 귀가 즐거운 경험은 아니지만, 눈을 즐겁게 하는 경험이다. 그렇게 지금 시와 노래의 가사는 점점 더 멀어져만 간다.
김소월 시인.
하지만, 가끔씩, 눈앞에 펼쳐지는 현란한 언어에 눈이 피로해질 때쯤, 서가에 꽂힌 김소월(1902∼1934)의 시집을 펼치면, 시는, 노래한다. 시가 노래하기 시작한다. 비록 ‘진달래꽃’의 원본은 구경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귀해져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그 재현물에 불과하지만, 시인 김소월이 시를 공부하고 언어를 고르며 흥얼거렸을 콧노래는 흔적으로도 남아 있지 않지만, 김소월의 시를 읽으면 분명 노래가 내 귀를 울린다.김소월은 우리 시인들 중에서 가장 많이 노래로 불린 작가이다. ‘진달래꽃’이나 ‘개여울’, ‘엄마야 누나야’, ‘나는 세상모르고 살았노라’등 예전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가수들이 김소월의 시를 노래로 만들어 불렀다. 김소월의 시집을 펼쳐 읽으며 내가 흥얼거리는 멜로디는 사실 그 가수들의 노래일지도 모른다. 시에 노래가 한 번 깃들면,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고서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제는 문자의 나열로만 남은 김소월의 시를 그토록 많은 가수들이 노래로 만들고 싶어 했던 것은 그의 시가 민요에 뿌리를 두고 있어 형식적 정형을 띠고 있기 때문일 테지만, 단지 그것만이 이유는 아닐 것이다. 김소월의 시 속에는 천연덕스럽게 노래로 부르고는 있지만, 말로는 못할, 말로는 못했던 복잡한 감정의 잔여가 들어 있다. 시를 처음 읽을 때는 그 형식적 정형이 완벽해서 그 복잡한 감정을 눈치 채기 어렵지만, 세상을 살아가다가 무심코 말로는 바뀌지 않은 감정이라는 경험을 공유했을 때, 김소월의 시를 제멋대로 흥얼거리게 될 때, 시는, 노래한다. 비로소 노래하기 시작한다./송민호 홍익대 교수
2021-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