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은 꼭 필요해서, 또 어떤 책은 꼭 필요하지 않지만 언젠가는 필요할 것 같아서, 또 어떤 책은 꼭 필요했는데 어디다 두었는지 몰라서 한두 권씩 사들이는 책들이 순식간에 산을 이루게 된다. 집이든 연구실이든 책꽂이를 넘쳐 바닥에 쌓이기 시작하는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다.
아마도 책을 읽는 것을 그다지 자신의 취미로 삼지 않으시는 분이라도 이것만큼은 공감하실지 모른다. 별 대단한 생각 없이 읽으려고, 읽어야 할 것 같아서, 아이들을 위해 조금씩 사둔 책들은 어느새 집안 여기 저기 쌓인다. 한번 불어나기 시작한 책들은 단호한 마음을 먹고 정리하지 않으면 절대로 줄어들지 않으며, 자기 증식한다.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면 그야말로 대략 난감한 혼란 속에 빠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아마도 무언가 수집을 해본 경험이 있는 분들은 잘 이해하시리라. 무언가 모으는 데 들이는 시간은 비교적 잠깐이지만, 이를 정리하는 시간은 무한대에 가깝게 소모된다. “오늘만큼은 꼭 이 산더미 같은 책들을 정리해버려야겠다”고 굳은 마음을 먹고, 그 바다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보면, 정리는커녕 고작 책 몇 권을 버리고 난 뒤 빈곳을 채우기 위해 더 많은 새로운 책들을 주문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무언가를 모아 내 집에 들여 어떤 공간에 언제든 꺼내볼 수 있도록 배열하여 두는, 수집이라는 행위가 한편으로는 자기가 가진 취향이나 기호, 감식안을 드러내는, 즉 사회 속에 자기 정체성의 확인과 과시라는 행위와 밀접하게 관련된 것은 분명하다. 부르주아의 지적 취미에 해당했던 서적에 대한 수집은 이제는 한물간 것이지만, 최근 젊은 세대들에게서 불고 있다는 신기한 바이닐 레코드(LP) 붐도 그렇지만, 어떤 것이든 내가 좋아하는 것을 모으고 보여주는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행위이다.
게다가 책을 모은다는 것은 어떤가, 책이란 물성(物性)을 가진 것이기도 하면서, 기억 그자체이기도 하지 않은가. 평론가인 발터 벤야민이 파리의 시인 보들레르에게서 발견했던 ‘산책자’라는 것은 결국 ‘수집가’이기도 했던 것이다. 다만 그 수집가는 과시만을 위해 자신의 서재에 책을 모아두는 수집가가 아니라 자신이 거닐던 파리라는 도시의 파사주들 사이에서 어딘가 다른 시대로 연결되는 선들을 발견해서 기억들을 그러모아 새로운 시로 써냈던 이들이었다. 기억의 수집가였다고 생각해도 좋으리라.
미술가이자 미술평론가인 근원 김용준(1904~1967)은 그의 수필들을 담아놓은 책 ‘근원수필(近園隨筆·1948)’속에서 ‘골동(骨董)’을 완상하는 행위에 대해, 그것이 단지 좋은 옛 물건을 소유하는 의미만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흘러오는 옛 형제의 피를 느끼고 그들의 감각이 어느 모양으로 나타났는지가 궁금”해서라는 의미를 덧붙이고 있다. 이 글이야말로 ‘골동’을 수집하는 행위가 단지 귀중하고 값나가는 물건의 수집이 아니라, 머나먼 기억을 수집하는 행위임을 알려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마찬가지로, 한국미의 순례자이자, 찬미자였던 혜곡 최순우(1916~1974)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1992)’에서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면서, 그것의 비색이나 곡선, 상감의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좀 더 근원적인 ‘빛깔’이 몸에 배어드는 마음을 지적한다. 그 아름다움에는 분명 형태의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어떤 교감이 존재하고 있으리라.
아차, 책들을 꺼내 정리하다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다보니, 책을 정리해 버리기는커녕, 새로운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 이제 갓 들어선 가을의 오후가 지나가 버린다. /홍익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