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Don Quixote)라고 하면, 우리는 바로 시대착오의 전형적인 인간을 떠올리곤 하지만, 미겔 데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1547~1616)가 1605년 처음 발표한 돈키호테의 1권 ‘기발한 이달고 돈키호테 데 라만차’는 말하자면 소설의 원형이자 현대적인 소설의 문을 열어젖힌 최초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아마 독자분들은 납득하기 어려운 분도 계실지 모르리라. 아동문학전집이나 세계문학전집 사이에 끼워 있던 축약판의 돈키호테를 읽으셨던 분이거나, 비루먹은 말 로시난테를 몰아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의 기괴함을 기억하시는 분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안영옥 선생님이 완역하여 ‘열린책들’에서 출판된 2권 합쳐 천 사오백 페이지에 육박하는 소설 돈키호테를 찬찬히 들춰본다면, 아마도 풍차를 향해 돌격했던 돈키호테의 호쾌함 속에 숨겨진 의미를 얼마간 짐작할 수 있을지도 모르리라.
미겔 데 세르반테스는 1547년 스페인의 마드리드 근방에 있는 역사도시 알칼라 데 에나레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빚을 지고 재산을 압류당한 아버지때문에 도망다니고 감옥살이까지 하는 등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길가에 떨어진 찢어진 종이라도 주워 읽는 열렬한 독서광이었다고 하는데,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이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독서를 통해 접하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열광만이 그에게 유일한 위안이었을 것임은 넉넉히 짐작할 수 있다.
이때 그는 당시 가장 유행했던 로망스 장르인 기사로망스를 탐독하고 또 탐독했을 것이다. 어느 시대건 이야기만이 비참한 삶을 위로해주는 유일한 열쇠이거니와 하물며 번쩍이는 은색 갑옷을 입고 적들과 싸워나가는 기사의 이야기가 삶에 지쳐있는 그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그러하듯이 말이다.
사실, 소설 ‘돈키호테’에 등장하는 라만차 지역에 살고 있는 이달고라는 인물 역시 당시의 기사소설, 즉 기사 로망스에 완전히 매료되어 있었다. 그는 이미 나이가 쉰에 가까운 인물이었지만, 1년 중 틈이 날 때마다 기사소설을 읽었고, 자신이 읽고 싶은 기사소설을 구입하고자 물려받은 수많은 밭을 팔아버릴 정도였다.
인간은 누구나 낯선 체계와 질서를 갖고 있는 세계에는 자연스럽게 끌리기 마련이라지만, 그의 호기심과 도취는 정도를 넘어선 것으로 본래의 삶까지도 내버리고 이야기 세계에 몰입해 있었다. 나아가 그는 단지 이야기 세계에 몰입해 있는 것을 넘어서 스스로 그 이야기 세계로 나아가고자 했다. 그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칼과 창과 투구를 손질하고, 피부병에 걸리고, 삐쩍 마른 말이나마 챙겨서 ‘로시난테’라고 명명하고, 자신의 이름을 이야기 세계 속 기사들의 위대한 이름을 본떠 ‘돈키호테 데 라만차’라고 붙였다.
이 위대한 시작이 바로 ‘돈키호테’라는 신화의 탄생에 해당한다. 그는 스스로 객줏집의 주인을 졸라 그로부터 기사서품을 받고 자신을 기다리는 모험의 이야기가 펼쳐져 있을, 말하자면 메타버스의 세계 속으로 뛰어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미 그를 둘러싼 세계는 귀족과 기사, 모험과 낭만이 넘치는 곳으로부터 시장과 학교에서 부르주아들이 득세하는 곳으로 넘어가 버렸던 것이다.
돈키호테의 모든 행동들이 우스꽝스럽게만 여겨지는 것은 그 세계가 이미 단일한 유니버스가 아니라 쪼개진 세계, 혹은 이미 변화가 일어난 세계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돈키호테’는 스스로를 제물로 하여, 기사로망스가 상징하는 한 시대의 가장자리의 봉합선 바깥쪽을 뒤집어 보여준 것이다. 어쩌면, 우리 세계에 우스꽝스러운 돈키호테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의미는 시대가 변화해가고 있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홍익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