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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냐, 돈이냐, 그 물음의 원점

등록일 2022-03-14 19:57 게재일 2022-03-15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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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에 출판된 ‘장한몽’제 1권의 단행본 표지. 현담문고에 소장된 것으로 해당 웹사이트(http://www.adanmungo.org/)에서 원문을 볼 수 있다.

인간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 놓인다.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까 하는 작은 선택부터 자신의 삶을 결정할 중요한 선택까지. 그런 의미에서 선택이란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선택에는 언제나 그에 따른 결과가 기다리고 있고, 그 결과는 타인이 대리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의 선택에는 언제나 내가 선택하지 않은 선택지에 대한 미련과 환상이 해묵은 것이지만 그렇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처럼 남겨져 있게 마련이다. 죽음이냐, 복수냐 하는 운명적인 선택을 두고 고민했던 햄릿의 고민만큼은 아니라고 해도, 우리는 살아가며 언제나 치명적인 선택의 순간을 마주하게 되고, 역설적으로 그 선택의 순간이야말로 우리는 자신의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이 마주치는 운명적 선택과 그 뒤에 남겨지게 마련인 잔잔하지만 끈질긴 삶의 여파가 문학적인 주제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만큼의 선택의 문제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사랑이냐, 돈이냐 하는 오래된 선택의 문제 역시 중요한 이야깃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특히 자본주의 경제제도가 번성하기 시작한 이후에 등장한 근대소설의 가장 중요한 주제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이 선택이 가시화되었던 가장 중요한 시작점은 1913년 신문에 등장했던 일재(一齋) 조중환(趙重桓·1884~1947)의 소설 ‘장한몽’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은 일본 작가인 오자키 고요(尾崎紅葉·1868~1903)가 1897년부터 연재되기 시작했던 소설 ‘곤지키야샤(金色夜叉)’의 번안이었는데, 이 고요의 소설 역시 또 다른 영국 소설의 번안이어서, 이 주제가 얼마나 연쇄적인 파급을 일으킬 만큼 충격적이었는가 하는 것을 가늠할 수 있는 사례가 된다.

아마 ‘장한몽’이라고 하면 고개를 갸웃거리실 독자도 있겠지만, 그나마 ‘이수일과 심순애’라고 하면 조금은 기억하실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그야말로 있는 집 자식인 김중배가 내놓은 찬란한 다이아몬드 반지와 천애 고아로 심순애의 아버지 심택에게 얹혀살며 미래에 대해 아무 것도 약속할 수 없는 사랑 밖에 줄 것이 없는 이수일의 사랑 사이에서 고민하는 심순애의 선택을 다룬 이야기가 바로 이 ‘장한몽’이다.

당시 심순애가 마주칠 수밖에 없었던 그 선택이 그토록 선명하고 날카로운 것일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바로 그 이전에는 사랑이냐 돈이냐 하는 각각의 가치가 결코 동등한 것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조선 혹은 그 이전 시대라고 해서 돈 때문에 사랑을 배신하는 사람이 왜 없었겠는가, 근대적인 개념의 ‘낭만적 사랑’은 아니었다고 하더라고, 정(情)에서 비롯되거나 윤리에 바탕을 둔 사랑을 저버리는 사람이 또한 왜 없었겠는가, 그 당시에도 그런 사람들이 존재했고, 소설에 등장했지만, 대개는 악인이었고, 대개는 그 사랑을 배신한 대가로 죽음을 맞이하거나 운 좋게 회개하는 운명을 맞이하곤 했다.

요컨대, ‘장한몽’과 ‘곤지키야샤’이전에, 사랑이냐 돈이냐라는 선택지는 전혀 동등한 것이 아니었다. 돈과 바꿀 수 없는 사랑이라는 가치가 존재한다는 근거는 없지만 강렬한 믿음이 모두의 의식 아래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돈이 사랑을 위협할 수는 있겠지만, 교환하거나 대체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 소설 ‘장한몽’은 과연 그러한가, 하고 질문했던 것이다. 심순애는 그러면서 그 사이에서 진심으로 고민했던 것이다. 억눌려 있던 것이 터져 나오는 통쾌함도, 그래도 어딘가에 사랑은 존재한다는 바람도 모두 이러한 담론 속에 모여들었던 것이다. 이는 여전히 끈질기게 이어지는 인간이 떨칠 수 없는 물음에 해당한다. 사회가 변해가면서 무작정의 사랑을 믿는 사람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홍익대 교수 송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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